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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아름]인용자료

고국원왕과 안악3호분 - 김상

작성자麗輝|작성시간04.10.01|조회수222 목록 댓글 0
고국원왕의 능에 대한 북한사학계의 정설은 황해도의 안악 3호분이다. 단 안악 3호분을 고국원왕 자신의 능이냐, 비의 능이냐, 왕과 비의 합장능이냐, 아니면 왕모의 능이냐의 세부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2차적인 것이므로 생략한다. 우선 안악 3호분을 고국원왕과 관련된 능으로 보는 견해의 근거를 살펴보기로 하자.

무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앙 현실 입구의 좌우에 문지기가 1명씩 서있는 그림이 있다. 그리고 문지기를 통과하여 들어가면 중앙현실 가운데 백라관을 쓴 주인이 앉아있다. 중국 사서에 의하면 백라관은 고구려의 왕이 쓰는 관이다. 또한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중앙행렬도는 10m가 넘는다. 특히 묘 벽화에서 깃발 위에 붉은 글씨로 '성상번'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일반적으로 자사의 지위는 태수를 여러명 거느리므로 태수보다 높다. 유주자사를 지낸 진의 무덤인 덕흥리 고분은 규모에서 안악 3호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품격에서는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안악 3호분의 주인은 자사보다 훨씬 높은 사람이다.

중앙현실 입구에 서 있는 2명의 문지기 머리 위에는 각각 간략하게 출신이 적혀있는데 한 명은 글자가 잘 보이나 다른 한 명은 낡아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보이는 그 글씨는 그림을 그린 후에 적어 넣었고, 예정에 없던 것이라 머리부분을 피하여 흘림체로 적었다. 중앙 현실에 그려져 있는 주인의 좌우에도 여러 명의 인물이 있는데 그 위에 출신이 적혀 있는 사람이 여럿 있다. 즉, 모든 인물마다 인물 그림 옆에 그의 직위 등을 기록하고 있고, 심지어 우물 옆에는 우물이라고 표시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주인의 머리 위에는 누구라고 적지 않았다. 이는 당연한 것으로 오늘날로 따지면 청와대에 들어갈 때 누구나 표찰을 차지만 대통령은 차지 않는 것과 같다. 누구나 아는 왕을 누구라고 적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들어가는 방향에서 보면 왼쪽이고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오른쪽에 서 있는 문지기는 묵서 글자의 판독이 가능하여 신분이 밝혀졌다. 그 문지기의 이름은 동수인데, 지위는 '장하독'이며, 357년(동진의 영화 13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이 무덤은 357년 이후에 축조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치통감에 전연에서 형 모용황과 동생 모용인이 싸울 때 동생을 지지하여 모용황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고구려로 도망친 인물 중에 동수라는 인물이 나온다. 묵서가 나타내는 바와 같이 동수는 요동의 평곽 출신이고, 자치통감의 336년 정월 기사에 나타나는 평곽 지명과 동수라는 이름으로 볼 때, 자치통감의 동수와 안학3호의 동수는 동일인임이 확실하다. 즉, 동수는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달아나 고구려에 항복하고 고구려인이 된 장수이다.

동수 맞은편의 또 다른 문지기 위에 적힌 글자는 잘 보이지가 않는다. 그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묘의 출입구의 두 사람, 즉 왼쪽의 동수 묵서가 있는 인물과 반대편인 오른쪽의 '장하독'이라는 주서가 있는 인물의 위치는 동일할 것이다. 그런데 자치통감에 의하면 동수는 장하독과 거의 같은 지위임이 확실하다. 만일 이 무덤이 동수의 무덤이라고 가정한다면 맞은 편의 장하독은 누구인가? 왜 입구에서 오른쪽의 인물은 무덤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왼쪽 인물인 동수만 무덤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가? 단지 글자가 보이지 않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고 글자가 보이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안학 3호분은 동수의 무덤이면서 또 다른 장하독도 묻힌 그런 무덤이란 말인가? 정 중앙에는 주인이 단 1명 뿐이 아닌가?" - 작성자 00

참고로 중국의 감숙성에서 태수의 묘가 발견되었는데 안악 3호분과 유사하다고 한다. 이에 대한 견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감숙성에 있는 주천 정가갑묘는 중국의 도록에서도 안학 3호분과 거의 같은 기법과 양식을 나타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가갑묘는 중국 내지의 어떤 벽화보다도 안학 3호분이나 장천 12호분을 더 많이 닮고 있다. 심지어 동일인을 모델로 그린 것인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이 묘는 이 지역 태수의 묘이다. 그러나 안학 3호분의 벽화 품격에는 애당초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주인공이 백라관을 쓰고 있지 않음이 확인된다. 즉 안학 3호분은 주천 정가갑묘보다 몇 등급 상위의 묘이다. 그렇다면 안학 3호분은 과연 도망자의 무덤이 될 수 있을까?" - 작성자 00

능이 장군총 같은 기단식 적석총이 아니고 흙으로 쌓은 봉토분이며, 북중국식 풍습이 보인다는 것으로 고구려인의 무덤이 아니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당시 황해도 지역은 주로 전축분이므로 무덤의 주인은 황해도 사람이 아닐 것이다. 또 고구려는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었고, 따라서 문화 역시 북방의 여러 문화가 다 보인다. 중국문화는 고구려가 흡수한 여러 문화의 일부일 뿐이다. 백제 역시 마찬가지다. 전축분인 무령왕릉은 완전히 남중국식이다. 만일 지석이 안 나왔으면 무령왕릉을 남중국 태수의 무덤이라고 했을 것인가?

이 능을 고국원왕의 능으로 보는 가장 큰 근거는 그 위치이다. 능의 위치가 백제와 싸우다 전사한 남평양 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구려는 이 지역을 고국원이라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고국원의 故國은 어느 나라인가? 대방국인가? 고국천왕, 고국원왕, 고국양왕의 故國이 고유명사로 모두 같은 지역인가? 아니면 보통명사로서 과거에 어떤 국가가 있었던 지역이라는 뜻인가? 나는 故國을 보통명사로 보아 고구려 내에 故國은 여러 군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무덤의 정확한 축조시기이다. 동수의 출신지를 기록하는 내용에 <유주 요동군 평곽 도향 경상리>로 되어 있어서 요동군이 유주에 속해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통상 요동군은 유주에 속해있지 않았으며, 370년대 초에 잠깐 속해 있었다. 이는 고국원왕이 죽은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안학 3호분의 피장자는 동수를 무척 총애한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자기의 생전에 동수가 큰 도움이 되어서 죽어서도 그를 문지기로 두면서 그의 생사를 기록한 자는 누구인가? 336년에 망명했고 357년에 죽은 동수를 재임기간 동안 품을 수 있는 왕은 누구인가? 그는 고국원왕(331-370)뿐이 아닐까? 더군다나 이 시기 남평양에서 죽은 왕은 바로 고국원왕이 아닌가?" - 작성자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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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님의 글을 옮긴 것임.
백제점에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왔다. 주인장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안악3호분이 왕릉이지만 고국원태왕의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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