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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괴도 루팡 시리즈>에 나타난 프랑스 민족주의-1

작성자麗輝|작성시간09.09.07|조회수108 목록 댓글 3

 

어젯밤에 2시간 동안 쓴 글이 날아가 마음이 찡했습니다. 왜 다음의 에디터는 '저장' 기능이 약한지 모르겠군요. 각설하고 다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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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많은 소설들은 일정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인 부분을 제외한 뒤 번역되어 '단순 아동용 소설' 로 유통되는 예가 많았습니다. <걸리버 여행기> 라든가 <오즈의 마법사> 가 그런 류라 할 수 있겠지요. '괴도 신사' 로 잘 알려진 모리스 르블랑의 <루팡 시리즈> 역시 그런 류의 소설 중 하나입니다. 모든 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루팡 시리즈> 에는 <홈즈 시리즈> 와 달리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보이는 책들이 있습니다.

 

<루팡 시리즈> 대해 조금 아시는 분은 이 책에 나오는 프랑스 민족주의라는 것이 <홈즈 시리즈> 의 영국을 겨냥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루팡 시리즈> 가 영국 작가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 에 대응하기 위해 집필된 것이라는 것은 이젠 그다지 새로운 사실도 아닙니다. 그 때문에 <루팡 시리즈> 에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여 루팡과 지략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물론 그 대결의 승자는 대개 '루팡' 이 되지요. (이에 대해 코난 도일이 정식으로 항의를 함으로써, 모리스 르블랑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영국인 탐정의 이름을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에서 앞뒤 단어의 첫 발음을 바꾸어 '헐록 숌즈'(Herlock Sholmes) 로 쓰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지요.)

 

그러나 <루팡 시리즈> 에 나오는 영국 이야기라는 건 그리 비판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작가의 분신이라 할 루팡이 영국을 향해 딱히 민족주의적 반감 등을 표출한다거나 하는 예도 거의 없지요. 그저 '루팡' 의 경쟁자로서 '홈즈' 라는 유명 캐릭터를 낮추는 이야기가 종종 나올 뿐입니다. 따라서 영국이나 홈즈에 대한 이야기를 두고 <루팡 시리즈> 에 민족주의 색채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루팡 시리즈> 에 나온다는 민족주의적 이야기는 대체 어디를 향한 것인가? 이는 재밌게도 '독일' 을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왜 독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상황을 잠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는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시대(정확히는 1911~1912년 무렵)로서 1870년의 보불전쟁 이후 라인강 서안의 알자스-로렌 지역이 독일령으로 되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보불전쟁 이후 프랑스에서는 알자스-로렌은 '독일에게 빼앗겨 되찾아야 할 땅' 이었으며 한 수 아래로 보던 독일에 패함으로써 프랑스의 자존심이 구겨진 시대이기도 하고, 특히 이 소설이 쓰여진 1910년대에는 1차대전 이전까지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가 악화되던 무렵이었습니다.

 

반대로 독일의 경우에는 프랑스는 독일 통일의 방해자로서 1870년 보불전쟁으로 프랑스를 격퇴함으로써 독일 통일이 달성되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프랑스가 남독일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독일 지역은 크게 3블럭으로 나뉘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한 조각은 오스트리아를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한 조각은 프로이센을 위시한 북독일을 말하는 것이며, 나머지 한 조각은 프랑스 영향력 하의 남독일 지역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북독일의 통일을 위해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인 것이라면, 북독일과 남독일의 통일을 위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인 것이었지요.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에 보불전쟁 이후 프랑스 민족주의는 단순히 알자스-로렌을 다시 찾자는 주장을 넘어 종래 프랑스의 영향권 안에 존재하던 남독일 지역을 다시금 프랑스 세력권으로 편입하자는 논의까지 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루팡 시리즈> 에서는 독일을 향한 어떤 프랑스 민족주의가 표출되어 있는지 잠시 살펴 보지요. 살펴 볼 책은 까치문고에서 나온 성귀수 역 <아르센 뤼팽 전집> 중 제4권 <813의 비밀> 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독일 제국 성립시기의 독일 황제(빌헬름 1세, 소설 속에서는 프리드리히 3세로 표현)와 황태자(훗날의 빌헬름 2세)의 각종 비밀 편지들을 둘러싸고, 그것의 회수를 위해 당대의 독일 황제(현실의 빌헬름 2세)가 프랑스를 방문하여 수감중이던 루팡과 교섭을 벌이게 되고 루팡은 독일 황제의 의뢰를 받아 편지를 회수하고 자신이 원하던 보수를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때 독일 황제의 편지 회수 요청에 대해 루팡은 두 가지 보수를 요청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석방을 프랑스 정부에 요청하는 대가로 프랑스에게 모로코 분쟁에서 독일이 한 발 양보해 줄 것이고, 둘째는 루팡이 보호하고 있는 남독일 지역의 펠덴츠 대공의 아들에게 대공령과 작위를 회복시켜 주고 대공이 현재 사귀는 여인과 결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첫째가 의미하는 바는 당시의 모로코 분쟁(1911년 무렵)에서 모로코를 식민화하려는 프랑스의 시도를 독일제국이 개입함으로써 양국간 군사분쟁 상황으로까지 상황이 악화되다가 1912년 프랑스가 모로코를 식민화하는 것으로 결론난 이 사건을, 모리스 르블랑은 '루팡이 독일 황제와 교섭함으로써 프랑스에게 유리하게 해결된 것이다' 라는 식으로 각색하였다는 것입니다.

 

굳이 영토에 대한 양보를 요구할 것이라면 프랑스가 가장 원하는 지역, 즉 알자스-로렌을 아예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인데 왜 루팡은 그러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루팡 자신의 석방을 프랑스 정부에 요구하는 대가로, 프랑스에게 모로코를 넘기라는 요구를 들은 외국인(독일황제)는)

[독일 황제]"그래, 정말이지 당신의 아이디어는 독창적입니다. 전 유럽의 정치가 아르센 뤼팽을 석방하기 위해 발칵 뒤집힌다 이거로구만. 제국의 백년대계가 아르센 뤼팽의 계속적인 활약을 보장하기 위해서 여지없이 무너져내린다 이거요! 허허. 안 될 말씀이지. 대체 왜 알자스-로렌을 요구하지 않는 거요?"

[루팡]"그 문제도 생각은 해봤었습니다. 폐하. ....(중략).... 물론 언젠가도 그곳의 반환문제도 정식으로 요청하고 또 성취할 수 있을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겁니다. 때가 되면 저로선 그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구요. 다만 현재는 제 수중의 무기가 그리 변변치 않은 바, 좀더 소박한 목표를 겨냥할 수 밖에 없는 셈이죠. 전 그저 모로코의 평화면 족합니다."

...(중략)...

[독일 황제]"모로코와 당신의 자유를 맞바꾸자?"

[루팡]"더도 덜도 말고 그렇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 대화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잊으시면 안 됩니다. 프랑스-독일 양 당사국 중 어느 한쪽이 (모로코 문제에서) 결단을 내리는 조건으로 제 수중에 있는 편지를 몽땅 포기하겠다는 점 말입니다."

 

이에 대해 또 하나의 의문은, 그 편지가 아무리 중요한들 통일독일이 모처럼 얻은 '식민지 획득기회' 를 포기할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독일이 통일한 이후 가장 얻고자 했던 것은 바로 '식민지' 였기 때문이지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모리스 르블랑은 루팡이 독일 황제에게 '찾아 주고자 하는' 편지들 중에는 독일 선황제(현실의 빌헬름 1세)와 영국, 프랑스 간의 비밀협약에 대한 편지도 들어 있다고 설정하고 있습니다.

 

[루팡]"그 편지들 중에는 폐하께서 잘 모르시는 다른 편지들도 있습니다. 그것들에 관한 정보를 조금 공개해 드리지요. ....(중략).... 지금으로부터 불과 20년전('지금' 은 1911~1912년임), 독일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 사이에 어떤 밀약의 체결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중략)... 폐하의 부친(빌헬름 1세. 소설상 프리드리히 3세)과 외조모 되시는 영국 여왕(빅토리아 여왕), 그리고 두 분 모두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황후(빅토리아 황후)의 합작품이라고나 할까요? ....(중략)... 그와 관련된 편지들이 엄연히 펠덴츠의 성채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 은닉처의 비밀은 저만 알고 있구요. ....(중략)... 폐하의 부친께서 친필로 쓰신 편지입니다. ...(중략)... 그 밀약에 의하면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어마어마한 식민지를 양도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리 되기 힘들겠지요."

[독일 황제]"그 식민지 양도를 조건으로 영국이 요구하는 건 뭐였소?"

[루팡]"독일 함대의 감축입니다."

[독일 황제]"프랑스는?"

[루팡]"알자스-로렌의 반환입니다."

...(중략)...

[루팡]"당시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지요. 파리와 런던의 내각은 사태를 짐작하고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거의 이루어진 일이나 진배없었지요. ...(중략)... 한데, 폐하의 부친께서 급사를 하시는 바람에 그 모든 것이 허망한 꿈으로 끝나버리고 만 겁니다. 폐하, 과연 순수한 독일 혈통을 지니셨고, 자국 국민들은 물론 적으로부터도 칭송받았던 저 1870년 전쟁의 영웅이신 프리드리히 3세(실제의 빌헬름 1세)께서 알자스-로렌의 반환 제의를 받아들이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독일국민은 물론 세계가 선황제를 어떻게 바라보겠습니까?... (중략)... 이 밀약이 역사 속에 정식으로 기록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전적으로 폐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설정 속에서 독일 황제는 편지의 회수를 위해 루팡의 첫 번째 조건(모로코 포기)을 들어주게 됩니다.

 

다음의 둘째 조건은 루팡의 음모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인데, 일종의 사기를 통해 독일 황제도 눈치채지 못하게 남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루팡이 보호하고 있다는 '펠덴츠 대공의 아들' 이라는 자는 실상 펠덴츠 대공과는 아무 혈연관계도 없는 프랑스인 청년에 불과하며, 위장한 펠덴츠 대공의 아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그 죽은 사람을 연기하기 위해 신체적 조건까지 맞추고자 프랑스인 청년을 겁박하여 루팡은 그가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는 자해행위까지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의 신분을 독일 황제와의 교섭 하에 회복시킨 뒤, 자신의 양녀(실은 친딸일지도 모르는...)와 결혼시켜 독일 남부의 대공이나 선거후인 펠덴츠 대공을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은밀하게 독일 남부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이는 뜻하지 않은 상황에 흥분한 루팡의 발언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펠덴츠 대공의 아들로 위장한 '피에르 르뒥' 이라는 프랑스인 청년이 돌로레스라는 젊은 과부와 눈이 맞는 장면을 보고 질투심이 솟구쳐 정원의 가시덤불로 집어던진 후(-_-;;;))

[루팡]"바보같은 녀석! 대체 내가 자기를 통해 기대하는 바를 그토록 몰랐단 말인가? 자기가 맡은 역할의 위대한 성격을 그리도 눈치 못 챘더란 말인가! ...(중략)...너는 내 의지대로 대공이 될 운명이었단 말이다. 명목상의 귀족이 아니라 실제로 나라를 다스리는(=독일 남부 지역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군주 말이다. ....(중략).... 이젠 네가 되-퐁-펠덴츠 대공 가문의 구성원이란 말이다. 그리고 네 뒤엔 바로 이 뤼팽이 버티고 있다. ....(중략)... 뭐, 허수아비 대공이라고? 그래서 뭐가 어떻단 말이냐! ...(중략)... 철저한 꼭두각시가 되어서 나의 말을 전하고, 나의 행동을 드러내며, 나의 의지를 실현하고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중략).... 그리고는 돌로레스에게 천천히 다가가 신비스런 열정에 목이 멘 듯, 탁한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루팡]"나의 왼쪽에는 알자스-로렌이, 오른쪽으로는 바덴과 뷔르템베르크와 바이에른까지, 저 프로이센의 오만한 '샤를마뉴'(빌헬름 2세를 지칭)의 장화발 아래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 끝내 와신상담해 오던 독일 남부 지역 모두가 내 영향권 안에 포섭되는 것이오. 상상할 수 있겠소?....(중략).... 꼭두각시에겐 명예와 직책을 내어 주고, 대신 나는 권력을 틀어쥐는 겁니다. 나는 철저하게 그늘 속에 머물 것이오. .... 난 그저 ... 그래, 정원사가 좋겠군. 아, 얼마나 멋진 삶이겠소? 꽃을 가꾸면서 동시에 유럽의 지도를 바꾸는 거요!"

 

독일 남부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 회복, 이는 사실상 1870년 보불전쟁 이전의 상황으로 역사를 되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모리스 르블랑은 루팡의 민족주의적 열망을 통해 독일 황제를 속여 넘김으로써 알자스-로렌 지역을 넘어 독일 남부 지역을 슬그머니 프랑스 세력권으로 되돌리는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종래 다른 작품에서 나타나는 '유쾌한 괴도 신사 루팡' 이 아니라 '음모에 능한 교활한 정치가 루팡' 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건 별론입니다만, 독일 남부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열망은 이후에도 종종 나타납니다. 독일 남부를 장악하여 이를 영토화하거나 최소한 중립지대화하여 프랑스의 국익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1차대전에서 프랑스가 승리한 이후 라인강 유역의 독일 남부지방인 루르 지방을 강제로 점령했다가 돌려 주거나, 혹은 자르 지방을 프랑스와 독일 중 어느 쪽으로 귀속할 지에 대해 주민투표를 하는 쪽으로 조약을 맺기도 합니다. (이후 자르귀귀속 주민투표에서는 히틀러의 독일 정부가 압승을 거두게 됩니다.)

 

 

P. S.

1차대전 전 1910년대의 독일 지도를 통해 루팡이 말하는 "왼쪽에는 알자스-로렌이, 오른쪽으로는 바덴과 뷔르템베르크와 바이에른까지 ... 독일 남부 지역 모두가 내 영향권 안에 포섭되는 것이오" 에서 말하는 지역이 어느 정도의 면적을 말하는지 잠깐 살펴 보도록 하지요.

 

 

위 지도에서 빨간 선으로 밑줄그은 것이 왼쪽부터 로렌-알자스-바덴-뷔르템베르크-바바리아(바이에른) 의 순서입니다. 이 5개 지역을 합치면 대략 파란 선 안쪽의 지역이 되지요. 루팡이 펠덴츠 대공의 가짜 아들을 내세워 지배력을 회복(?) 하려는 독일 남부 지방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저 지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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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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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麗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9.07 재밌는 글입니다. 괴도 루팡에 이런 비밀스러운(?) 내용이 숨겨져 있는지 몰랐네요~한번씩 읽어보세요. ^^
  • 작성자나도사랑을했으면 | 작성시간 09.09.07 오홋!! 읽을만한 글 발견.... 읽을 생각하니.....두근두근.... 한번 잘 읽어 보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麗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9.08 ㅋㅋ 재밌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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