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중앙아시아] 2. 공포의 유목민, 先스키타이
인류의 역사에서 유목민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수천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말 길들이기, 즉 말의 순화(Domestication of the horse, Taming the Horse)는 BC 3,500~3,000년경 유라시아 북부초원지대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재갈(horse Bit)로 증명된다[카자스탄 보타이]. 이후 BC 2,000년경 바퀴살의 보급으로 이륜마차가 등장하면서 기동성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지만 본격적인 유목민은 BC 1,000년에서야 비로소 출현한다. 이동목축의 발생원인에 대해서는 유라시아 건조화라는 기후적요인과 국가발생으로 인한 농목복합경제 포기의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뭏든 우리의 관심은 BC 9~8 C 유라시아 초원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하는 기마 관련자료들이다. 재갈이나 재갈멈치와 같은 마구, 복합궁활과 화살촉, 아키나케스 검, 청동 가마솥, 사슴돌, 동물문양 장식물 등의 주인은 바로 先스키타이, 이들 인류 최초의 유목민들은 이동목축과 기마술이 부여한 기동성에 힘입어 신속한 문화적 접촉과 전파를 이룬다(* 아시리아의 설형문자 점토판, 그리고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스키타이는 BC 7C 중앙유라시아 원주지를 떠나 볼가강을 건넌 집단이다. 한때 아시리아의 동맹군으로 활약하며 이집트까지 원정하는 등 28년간 메소포타미아를 약탈한 스키타이는 메디아의 공격을 받고 흑해 북안의 초원으로 돌아간 후 BC514년 다리우스의 공격을 받는다 (스키타이2편 참조)).
Arzhan is a site of early Scythian kurgan burials, located in the Tuva Republic, Russia,
시베리아 투바공화국 아르잔 先스키타이 고분유적(쿠르간)
아래 논문에서 보듯이 先스키타이는 우리의 고대사와 관련이 있고, 아시아 상고시대를 지배한 최고의 문화지배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참고] The story of horse [Archaelogy]
[참고논문] 기원전 9~7세기 초기 스키토-시베리아문화와 비파형동검문화권의 대형무덤 비교연구 -러시아 투바 아르잔고분과 요령 대련 강상묘의 비교를 중심으로- 강인욱/조소은
스키토-시베리아문화(=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9세기~3세기경에 유라시아 초원에서 발달한 기마문화로 마구, 동물장식, 무기 등의 스키타이 삼요소로 불리우는 공통적인 유물군으로 대표된다. ‘스키타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이 문화의 기원을 스키타이로 보았지만, 1980년대 남부 시베리아의 아르잔(Arzhan) 고분을 통하여 그 기원지가 투바 일대임이 밝혀지고 있다. 이와 아울러 그 상한연대가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9~7세기대로 소급되어서 전기 스키토-시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아르잔 유형이 설정되고 있다.
그런데 스키토-시베리아문화는 ‘스키타이 삼요소(scythian triad)’로 대표되는 유물뿐 아니라 왕족급(차르급) 고분1)이 등장하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 다. 이러한 왕족급 대형고분은 흑해연안 북쪽의 스키타이 왕족의 무덤으로 드네프르천유역의 체르토므일륵(Chertomylyk), 톨스타야 모길라(Tolstaya Mogila), 솔로하(Solokha)고분 등이 있다. 또한 다른 흑해 연안 지역에서도 케렐르메스(Kelermes), 울스키에(Ulskye) 고분 등이 있다. 카자흐스탄 북부의 세미레치에 지역에는 베스샤트이르(Besshatyr), 이식(Issyk)고분 등이 있으며, 알타이 파지릭문화에는 파지릭(Pazyryk), 쉬베(Shibe), 투엑타(Tuekta), 우코크(Ukok) 등의 고분 등이 있으며 미누신스크지역의 타가르문화에서는 살브익(Salvyk) 고분 등이 있다. 투바지역은 아르잔고분 등이 있다.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대형 고분 중에서도 특히 투바 공화국에 위치한 아르잔 고분은 다른 스키토-시베리아 고분과 비교해서 시기 및 형태에서 뚜렷하게 차이를 보인다. 아르잔 고분은 기원전 9세기 초중반에 세워진 스키토-시베리아문화의 가장 이른 고분이다. 이 아르잔 유적의 조사로 스키토-시베리아문화의 기원지가 중국이나 흑해연안이 아니라 남부 시베리아로 밝혀진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아르잔 고분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단독 무덤을 군집시키는 다른 스키토-시베리아 문화의 고분과 달리 처음 무덤을 만들 때부터 통나무로 거대한 원형기념물을 만들고 200여 년 간에 걸쳐서 추가로 그 안에 무덤을 사용한 대형 집단묘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매우 뚜렷하다.
이와 같은 ‘집단묘’의 전통이 스키토-시베리아문화의 기원과 연관되어 있는 아르잔 고분에서 발견되지만, 정작 비슷한 시기의 유라시아 초원지역에서는 유사한 예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시야를 조금 넓히면 요동반도에서 발견되는 강상, 누상으로 대표되는 비파형동검문화 단계의 적석총 군이 주목된다. 요동반도의 적석총은 장군산, 사평산, 타두 등 의 신석기시대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여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축조가 된 지역적인 무덤 전통이다. 그런데 기원전 8~7세기 비파형동검 초기 단계인 강상묘(崗上墓)시기가 되면 무덤의 한가운데에 족장급의 무덤이 설치가 되고 주변에 방사상으로 무덤이 만들어지면서 문화상이 일변하는 양상을 보인다.
물론, 요동지역의 적석총 집단은 직접 스키토-시베리아문화권과 교류를 했다는 적극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는 점에서 동물장식, 마구, 투구 등의 청동기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초원지역과 교류했던 夏家店上層文化와는 다르다. 하지만 스키토-시베리아문화와 비파형동검문화가 발생하는 시기에 아르잔과 강상묘와 같이 서로 떨어진 지역에서 나타나는 유사한 고분구조의 비교는 기원전 1천년 기 초엽 동아시아 청동기문화의 형성 과정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찰리브라운 작성시간 17.05.08 오호 강가딘이란 필명을 쓰는 분의 글이군요. 그 님은 흉노가 몽고계라고 하던데..
-
답댓글 작성자麗輝 작성시간 17.05.09 네, 네이버 블로거로 활동하고 계시죠. 블로그 및 까페 활동을 하는 몇 안 되는 고고학 연구자이십니다. 강인욱 쌤의 경우, 흉노가 몽고계다~라고 말하신 것보다는 흉노의 원류, 흉노의 시기별 구성원과 영역 변화, 흉노라는 집단이 가지는 다양성, 초원이라는 드넓은 동-서 교류의 장에서 확인되는 다양한 고고학적 현상들에 대해서 복합적으로 설명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흉노는 몽고계다, 라고만 하신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흉노가 그렇게 한단어로 정리될 단순한 집단도 아니고요)
-
답댓글 작성자찰리브라운 작성시간 17.05.09 麗輝 제가 강인욱님에게 넷상에 질문을 하니까 몽고계가 주류라고 답변하셨죠.
-
답댓글 작성자麗輝 작성시간 17.05.09 찰리브라운 그렇군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질문을 하신지는 모르지만, 그말은 찰리브라운님이 얘기하던 백인 운운하는 것과는 다르네요. 저도 개인적으로 흉노의 주류는 몽고계라고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찰리브라운 작성시간 17.05.09 麗輝 최초의 유목문명과 기마술을 창안한 스키타이가 동진해서 흉노제국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거 같아요. 그래서, 소수의 지배층은 백인, 다수의 피지배층은 몽고계인지도요. 묵특 선우의 후손 혁련발발이 백인이란 기록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