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布帳馬車, covered wagon).
포장마차는 미국 내륙의 교통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 18세기부터 사용된 사각의 대형 마차를 일컫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길거리에 있는 아저씨들의 회포를 푸는 이동 술집의 의미가 더 강하다. 잠실역의 유명한 포장마차촌과 석촌 호수앞의 포장마차촌이 대표적이지 않은가...
주인장은 어느날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 봤다.
"고구려에도 포장마차가 있었을까?"
강남을 돌아다니면 우리는 일반 프랜차이즈 커피숖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점심 시간이면 직장인들이 붐비는 그런 곳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이동까페' 다.
종로와 강남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우동이나 오뎅, 떡볶이 등을 파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파는 것이다. 비싼 돈을 들여 가게를 사서 손님들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소형 트럭에 간단한 원두 커피 기계만 놓고 이동하면서 손님들을 찾아가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럼 고구려에는 이런 장사꾼들이 없었을까?
우리는 TV 사극을 볼때 종종 조선시대 시장터를 구경할 수 있다. 아낙네들이 길거리에 나 앉아서 조잡한 물건들을 파는 모습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장처럼 리어카에 물건을 싣고 다니는 사람이나 포장마차처럼 떡볶이 등의 간식거리를 파는 사람들은 보지 못 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조선이 마차 사용을 거의 국가적으로 제한했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는 달랐다...
이에 대한 문헌 기록이 없나 생각해 봤지만 역시 한군데도 없었다.
아니, 이런 기록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발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장은 주인장의 생각이 전혀 가치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번 상상해보자...
현재 고구려의 도성으로 알려진 장안성에는 너비 180~200cm에 달하는 수레가 적게는 4대, 많게는 6대가 한번에 달릴 수 있는 도로가 깔려 있다. 그리고 그런 고구려의 경제 구조상 '상업' 이라고 하는 부분은 대단히 성행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주인장이 앞서 몇몇 글에서 주인장의 논지를 전개했을 것이다.
그렇게 봤을때 민간 거주지가 있고 그옆에 존재했을 고구려의 시장은 어떻게 생겼을까? 주인장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바로 '가락시장' 이 떠올랐다.
거대한 시장...
그 사이로 수많은 수레들이 드나들면서 물건을 나른다.
역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매일 그 시장을 드나들면서 물건을 사 간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규모의 시장 안에서 수레 위에 물건을 놓고 파는 사람들이 없었을까?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없었을까?
아니, 있었을 것이다. 충분히 있고도 남았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고구려의 도성...
당대 천하 제일의 상업 국가, 즉 당시 천하에서 제일가는 GNP, GDP를 자랑했던 고구려...그런 고구려의 도성으로 매일같이 각지에서 천하의 모든 산물이 모여들고 또한 고구려의 각 주요 상권으로 몰린다.
그런 고구려의 시장 속에서 오늘날의 포장마차같은 모습을 찾기란 어렵지 않을 꺼라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눈을 감고 지그시 이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하얀 땡땡이 무늬 옷을 입고 주름치마를 입은 여인네들이 시장으로 나들이를 오다가 길거리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파는 고구려식 고기 산적 꼬치를 먹으며 웃으며 수다를 떠는 모습...오늘날 여학생들이 학교 끝나고 길거리에서 분식을 먹으며 얘기하는 것과 전혀 다를게 없지 않은가...
포장마차는 미국 내륙의 교통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 18세기부터 사용된 사각의 대형 마차를 일컫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길거리에 있는 아저씨들의 회포를 푸는 이동 술집의 의미가 더 강하다. 잠실역의 유명한 포장마차촌과 석촌 호수앞의 포장마차촌이 대표적이지 않은가...
주인장은 어느날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 봤다.
"고구려에도 포장마차가 있었을까?"
강남을 돌아다니면 우리는 일반 프랜차이즈 커피숖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점심 시간이면 직장인들이 붐비는 그런 곳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이동까페' 다.
종로와 강남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우동이나 오뎅, 떡볶이 등을 파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파는 것이다. 비싼 돈을 들여 가게를 사서 손님들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소형 트럭에 간단한 원두 커피 기계만 놓고 이동하면서 손님들을 찾아가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럼 고구려에는 이런 장사꾼들이 없었을까?
우리는 TV 사극을 볼때 종종 조선시대 시장터를 구경할 수 있다. 아낙네들이 길거리에 나 앉아서 조잡한 물건들을 파는 모습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장처럼 리어카에 물건을 싣고 다니는 사람이나 포장마차처럼 떡볶이 등의 간식거리를 파는 사람들은 보지 못 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조선이 마차 사용을 거의 국가적으로 제한했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는 달랐다...
이에 대한 문헌 기록이 없나 생각해 봤지만 역시 한군데도 없었다.
아니, 이런 기록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발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장은 주인장의 생각이 전혀 가치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번 상상해보자...
현재 고구려의 도성으로 알려진 장안성에는 너비 180~200cm에 달하는 수레가 적게는 4대, 많게는 6대가 한번에 달릴 수 있는 도로가 깔려 있다. 그리고 그런 고구려의 경제 구조상 '상업' 이라고 하는 부분은 대단히 성행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주인장이 앞서 몇몇 글에서 주인장의 논지를 전개했을 것이다.
그렇게 봤을때 민간 거주지가 있고 그옆에 존재했을 고구려의 시장은 어떻게 생겼을까? 주인장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바로 '가락시장' 이 떠올랐다.
거대한 시장...
그 사이로 수많은 수레들이 드나들면서 물건을 나른다.
역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매일 그 시장을 드나들면서 물건을 사 간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규모의 시장 안에서 수레 위에 물건을 놓고 파는 사람들이 없었을까?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없었을까?
아니, 있었을 것이다. 충분히 있고도 남았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고구려의 도성...
당대 천하 제일의 상업 국가, 즉 당시 천하에서 제일가는 GNP, GDP를 자랑했던 고구려...그런 고구려의 도성으로 매일같이 각지에서 천하의 모든 산물이 모여들고 또한 고구려의 각 주요 상권으로 몰린다.
그런 고구려의 시장 속에서 오늘날의 포장마차같은 모습을 찾기란 어렵지 않을 꺼라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눈을 감고 지그시 이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하얀 땡땡이 무늬 옷을 입고 주름치마를 입은 여인네들이 시장으로 나들이를 오다가 길거리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파는 고구려식 고기 산적 꼬치를 먹으며 웃으며 수다를 떠는 모습...오늘날 여학생들이 학교 끝나고 길거리에서 분식을 먹으며 얘기하는 것과 전혀 다를게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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