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자(虎子)가 무엇인지는 다들 잘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강의 형태도요.
일단 한번 더 설명을 드리자면 호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아래 설명은 '문화관광부 이뮤지엄'(http://www.emuseum.go.kr/sch/full.cgi?v_db=3&v_doc_no=00043608)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虎子로 瓦質製이다. 회색을 주로 띠며, 소성이 불량하여 표면 일부가 박리되었다. 태토는 정선되지 않아 다량의 사립이 혼입되었다. 뒷발은 약간 굽혀서 앞발에 힘을 모으고 상체를 들어 左側으로 힘입게 머리를 돌린 후, 먼 곳을 바라보며 입을 크게 벌린 모습이다. 몸체는 통통하고 발은 발톱을 감춘 듯이 오므렸으며, 입은 몸에 비해 크게 만들었는데, 남자용 便器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얼굴에는 눈, 코와 수염을 표시하였는데 눈동자는 점을 찍어 조그맣게 표현하였으며, 낮은 콧등 끝에 두점을 찍어 콧구멍을 표현한 후, 코 아래와 눈두덩 밑에 음각선으로 꼬부라진 눈썹과 수염을 나타내었다. 등에는 긴 把手를 부착하였는데, 단면형태는 방형에 가깝다. -
와질제라고 기록은 되어 있지만 위에서 제가 언급했던 와질토기와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단순히 와질(瓦質)이라고 하는 경도에 따라서 와질제라고 한 것 뿐이지, 호자를 두고 와질토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와질토기는 위에 정리한 것처럼 특정시기를 대표하는 토기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앞에서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고식 와질토기의 대표적 기형으로는 양쪽에 쇠뿔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목긴 항아리인 ‘조합우각형파수부원저장경호(組合牛角形把手部圓低長頸壺)’와 목이 짧은 단지인 ‘주머니형 원저단경호(圓低短頸壺)’가 있습니다. 또한 신식 와질토기의 대표적인 기종은 뚜껑과 굽다리가 붙고 아가리가 넓은 ‘유개대부광구호(有蓋臺附廣口壺)’를 비롯하여 ‘유개대부직구호(有蓋臺附直口壺)’, ‘단경호(短頸壺)’, ‘화로형토기(火爐形土器)’, ‘고배(高杯)’, ‘양이부호(兩耳附壺)’ 등을 꼽을 수가 있고요.

'조합우각형파수부원저장경호(組合牛角形把手部圓低長頸壺)'(뒤)와 '주머니형 원저단경호(圓低短頸壺)'(앞)

'유개대부광구호(有蓋臺附廣口壺)'

'유개대부직구호(有蓋臺附直口壺)'

'화로형토기(火爐形土器)'

'고배(高杯)'

'양이부호(兩耳附壺)'
그렇기 때문에 호자는 와질토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호자는 백제와 중원 국가와의 교류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발견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또한 고구려나 신라에서는 확인이 안 되고 있어서 백제만의 독특한 문화를 알려주는 유물이기도 합니다. 호자의 경우, 자기로도 제작되며 청동제품으로도 제작되기 때문에 반드시 토기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기사는 호자 출토 기사인데 참고하시라고 올렸습니다.
| 백제시대 남성용 요강 ‘호자’ 출포 | ||
| [어린이동아 2004-11-23 18:33] | ||
호랑이를 본떠 만든 토기의 일종인 백제시대의 남성용 요강 호자(虎子·사진)가 백제 마지막 도읍지인 부여 관북리 유적지에서 출토됐다. 호자가 정식 발굴조사를 통해 보고되기는 지난해 여름 백제시대 고대 성곽인 여수 고락산성에 이어 두 번째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관북리 유적지에 대한 올해 제10차 발굴조사 결과 사비 도읍기 백제(536∼660년) 목곽 창고 5기 외에 토제 호자 1점을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목곽 창고 안에서 평기와 2000여점과 함께 출토된 이 호자는 목을 약간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으며 남성들이 왼손으로 잡고 소변을 볼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구소는 이날 또 2003년 출토된 후 보존 처리를 거친 백제시대 금동광배도 새롭게 공개했다. 양쪽 3개씩 6개의 사각형 돌출부가 나온 이 광배는 중국의 북위 보태 2년(532년)이라는 제작 연대가 있는 금동보살일광삼존입상의 광배와 유사해 백제와 북위와 교류 관계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김세원 기자>claire@donga.com |
그럼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그리고 서성훈 선생님의 논문을 같이 첨부할테니 확인해보십쇼.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부여 군수리사지에서 출토된 호자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 논문입니다. 좀 오래되서 한문이 많기는 하지만 읽어보시면 도움이 많이 될 듯 합니다.
p.s) 첨부파일 - 서성훈, 1979,「백제호자이례」『백제문화』12,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