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들어와서 유럽 고고학, 특히 당시 서구고고학계 내에서 고고학 내의 이론적 패러다임의 변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영국 고고학을 중심으로 경관에 대한 새로운 고고학적 인식이 등장하였다. 물론 지리학과 문화사를 비롯한 여러 인접 학문은 물론이고 고고학에서도 경관과 경관이 갖고 있는 자료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주목하고 있었고 많은 관련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80년대 이후의 연구는 이전 시기의 경관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와 여러 측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과정고고학과 후기 과정고고학, 그리고 후기 과정고고학 내에서의 다양한 패러다임의 등장 및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90년대에 들어와 경관과 관련하여 물질문화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본격적인 시도가 이루어지고 이에 상응하는 연구성과가 양산되기 시작하면서 소위 '경관고고학(Landscape Archaeology)'은 현재 유럽고고학, 특히 영국고고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음에 제시될 것들은 지금까지 경관고고학 연구에서 제시된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에 대한 것들이다. 다만 이러한 원칙은 경관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자 기준일 뿐 그 자체가 보편적 법칙이나 점검표로써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특정한 경관은 여기에서 제시될 원칙에 준거하여 해석되거나 이해될 수 있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닫혀있거나 완결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수정되거나 보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소리다.
1. 경관은 대상화되고 타자화된 공간이 아닌 의미화된 장소이다.
경관은 산과 강, 대지 등으로 이루어진 자연환경과 집과 경작지, 그리고 기타 인공적인 건축물 등으로 구성된다. 이처럼 구성되는 가시적 경관의 형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화 과정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적 환경만으로 구성된 어느 한 지역의 (자연) 경관에 최초로 인공적인 건축물이 세워지거나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 지역의 경관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텅 빈 들판은 그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곳에 집이 세워지면 그 집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그 이미지는 바뀐다는 뜻이 된다.
단,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자연환경 자체가 이미 의미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산이나 강, 또는 대지는 그것들의 자연적인 형태나 혹은 지형적 특징에 따라 이미 그 지역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은유의 방식으로 의미화되거나 상징화되어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곳에 집과 같은 인공 건축물이 세워지게 되면 기존의 경관에 부여된 의미가 재해석되어야만 하고, 그것은 곧 또 하나의 새로운 경관적 이미지를 보유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경관은 그 자체로 존재성을 드러낸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속한 내재적인 의미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들길은 계절의 변화와 만물의 소생과 휴식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그리고 그 곳은 인간과 대자연, 그리고 신이 만나는 장소이고 따라서 세계를 환하게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즉, 선사시대인들 혹은 고대인들이 걸었던 길은 그 길을 걸었을 옛날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 길을 바라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 당시의 세계관을 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3. 경관의 의미와 해석은 하나의 층위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이러한 의미들과 해석은 때로는 갈등하고 경쟁하며 동시에 타협하기도 한다.
이는 하나의 경관이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시각들, 다양한 시기 속에서 과연 동일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 여부를 말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영국 남부의 자연경관 위에 기원전 3,000년을 전후한 시기 우드헨지(Wood Henge)가 그 안에서 가축을 도살하거나 장례 절차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의미화된다고 하자. 그때 그 제의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이 우드 헨지의 경관적 의미를 과연 동일하게 받아들였을까? 다시 말해서 이 제의에 참가하거나 보고 있는 사람들, 또는 이 제의의 경관을 기억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경관이 갖고 있는 의미를 동일하게 인식 또는 해석하거나 기억했을까 하는 문제이다. 그렇게 봤을때 하나의 경관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아시아에서 흔히 확인할 수 있는 '환호'의 경우에도 적용 가능하다. 환호로 둘러 쌓인 마을을 예로 들 경우, 그 마을 안에 사는 사람, 그 주위에서 환호 마을을 바라보는 사람, 그리고 그 마을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들(다른 환호에 소속되었거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에게 있어 어느 층위나 맥락에서는 동일하거나 비슷하게 환호가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각각 다른 층위에서 다르게 인식되고 해석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이는 환호라는 것 자체가 방어적인 성격, 경계적인 성격, 상징적인 성격 등 다양한 성격을 띤 존재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나 현재나 큰 차이가 없다 할 수 있다.
4. 경관의 이해와 해석은 단순한 암기나 기억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서 가능하며 그 이미지는 느낌과 움직임을 통해 형성되고 내재화된다.
일상생활에서 경관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다. 가시적 경관을 직접 체험하는 경우와 그렇게 체험된 경관이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경우다. 이 중 전자의 경우를 살펴보면 우리가 가시적 경관을 경험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어느 한 관점에서 경관을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경관을 여러 관점에서 그리고 그 경관 사이를 걷거나 움직이는 방식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동적이고 통합적인 감각으로 경관을 인식하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특정한 경관에 대해 떠올리거나 기억한다면 그것은 마음 속에 내재화된 경관의 이미지일 것이며, 그러한 이미지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경험과 담론의 형성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것이다.
5. 경관의 형성과 해석은 권력의 한 행사 방식이다.
특정한 형태의 경관을 형성하는 경우, 자연 경관에 인공적 건축물을 세움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가시적 경관이 권력과 관련해서 해석될 수 있다면, 즉 권력의 존재를 보여주거나 과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권력관계를 자연적인 것처럼 정당화할 수 있으면 경관과 권력의 관계를 보다 쉽게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때 환호 유적이나 헨지 유적, 그리고 거석기념물이나 주거지 등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경관과 권력의 결합방식을 추정할 수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청동기시대 환호 유적을 예로 한번 들어보자. 부여 송국리, 울주 검단리, 창원 남산 등의 환호 유적을 보면 대체로 산 정상부나 경사면에 위치하면서 유적의 앞쪽을 포함한 넓은 가시권 영역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봤을때 청동기시대 환호 마을은 최대 4km에 달하는 가시권 영역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곧 가능한 자위의 많은 지역을 볼 수 있거나 반대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이 유적을 볼 수 있도록 유적이 위치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 마을들을 형성하고 살았던 집단들이 방어를 위해 가장 유리한 지역을 선택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가시적으로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거나 다른 지역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역을 택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화는 환호 축조를 통해 강조되었던 공동체 의식의 강조와 이를 통한 집단 내부의 권력 행사가 주변 지역에 대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리고 주변 지역을 가시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권력은 일상 생활을 통해 시각적으로, 그리고 몸의 움직임에 의해 환호를 경험함으로써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자연화되고 중립화되었던 것이다.
경관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방식은 경관을 경험하는 몸의 움직임이나 시선을 통제하여 원하는 방식대로 경관을 해석하거나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영국 신석기시대 거석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인 에이브버리(Avebury) 유적의 경우를 보면, 제의가 행해지는 헨지 유적 뿐만 아니라 웨스트 케넷(West Kennet) 무덤 유적에서 헨지에 이르는 길(Avenue)을 표시하는 거석들이 세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이 거석들은 헨지 유적에서 행해지는 제의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움직임과 동선을, 길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통제하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움직임과 동선, 그리고 시선의 통제는 통제를 받는 사람들의 경관에 대한 경험을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했을 것이며 그것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경관을 느끼거나 해석하는데 많은 제약을 느꼈을 것이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박물관에서 전시품들을 살펴보는 동선이라든가, 극장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동선을 살펴보면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영화를 보면 로마나 페르시아, 이집트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들을 보유했던 제국의 도성(都城)에 끌려온 포로들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그 거대함과 웅장함, 개선의식을 축하하는 사람들의 환호에 짓눌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또한 경관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6. 경관은 개인 혹은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경관은 단순히 과거와 기억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일상생활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체험되는 등 현재에 속해 있고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이미지는 단순히 언어적으로만 환원되어 표현될 수는 없는 존재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 이미지로서의 경관은 사회적인 언어와는 달리 감각적인 것이며 동시에 매우 사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개인은 특정한 경관을 형성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형성(의미화)된 경관을 경험하면서 기존의 경관 이미지를 해석하거나 재해석하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이야기 거리를 경관의 일상적 경험과 그것에 대한 이미지를 통해서 얻는 것이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경관을 경험하면서 그것을 느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성(개인적인 혹은 집단적인)에 대해 끊임없이 인식하게 된다는 소리다.
즉, 어느 한 집단이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특정한 경관의 해석과 이미지를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통해 가능하다는 소리가 된다. 환호 마을의 경우 마을 안쪽에 살던 사람들은 어느정도 경관에 대한 이미지를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소속감,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강남 혹은 베버리힐즈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생각을 갖고 지내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특정한 경관의 이미지를 통해 얻게 되는 향수나 상상은 현상학적 측면에서 끊임없이 개인의 존재감과 존재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사회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군대에서 느끼는 것들, 그리고 전역한 다음 다시 사회에서 느끼는 것들을 한번 생각해보면 경관이라는 것이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에 경관고고학이 자리잡기에는 무리가 있다. 관련 연구자도 적을 뿐더러 경관에 대해 이렇게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연구성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관이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해석할 필요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취락유적 혹은 성곽유적에 있어 이러한 경관적인 요소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생각의 전환을 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분야가 경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시대상을 파악하고 연대를 비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경관(자연)을 해석하고 분석함으로써 당시 사회를 복원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金種一, 2004,「한국 중기 무문토기문화의 사회구조와 상징체계」『국사관논총』104,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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