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부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최근 진행한 유라시아 관련 발굴성과 및 해외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발표했고, 오후 2부에는 인도, 중국의 연구성과를 비롯해 강인욱 선생님이 '중앙아시아 적석목곽분의 분포와 신라'라는 주제로 발표를 준비하셨다. 본래는 강인욱 선생님의 발표를 듣고자 오후에 참석했는데, 나중에 일찍부터 참관했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오후 2부의 첫번째 발표였던 김용준 선배의 '인더스 문명 시기 대도시 라키가리 유적' 발표가 좋았다고 했다. 장소를 헤깔려서 변영환 선생님의 '카자흐스탄 카타르토베 고분군 발굴조사 성과'부터 들었기에 그에 대해 간단한 후기를 남기고자 한다. (발표문이 있긴 하지만, 직접 발표를 듣는 것과 발표문만 보는 것은 다르기에 발표를 들은 것에 대해서만 후기를 남기겠다)
1013 2017년 발굴성과로 본 유라시아의 고대문화.hwp (보도자료 참고)
세미나실 앞에 갔더니 이렇게 국외유적 가상체험 코너를 별도로 만들고 있었다.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의 유적 3개소의 발굴성과를 VR로 꾸며놓은 건데(지금 우리 연구소에서도 이런 비슷한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그것보다 좀더 깔끔한 구성이었다) 각 유적마다 세션을 맡은 후배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찬찬히 둘러봤다. 처음에는 주변에 사람도 없고 넓은 공간에 서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빙글빙글 혼자 움직이는게 어색했지만, 외국에 직접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없었음에도 발굴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괜찮은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영환 선생님(국립문화재연구소)의 '카자흐스탄 카타르토베 고분군 발굴조사 성과'는 유적조사 성과를 보여줌과 동시에 이를 어떻게 DB화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겸했기 때문에 단순한 유적조사발표와 조금은 궤를 달리 했다. (이후 삽입한 구글지도는 주인장이 직접 검색해서 캡쳐한 것들이다. 구글에 '카타르토베'라고 치면 세부 고분군에 대한 이미지 및 관련 기사들이 검색되니 참고하면 좋을 듯싶다)
천산산맥과 이리 강(Ili river)의 중간에는 이 둘과 나란한 방향으로 향하는 케트멘(KETMEN) 산맥이라 불리는 독립된 짧은 산맥이 위치한다. 여기에서 분기한 낮은 지맥들이 서남향으로 이어져 천산산맥의 주맥과 연결되고, 케트멘 산맥의 북쪽은 이리 강을 지나 발하슈 호에 이르기까지 완경사면과 저평한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반면 산맥의 남쪽은 천산산맥과 케트멘 산맥, 그리고 여기에서 분기한 여러 지맥들 사이에 크고 작은 계곡과 고산성 초원이 형성되어 있다. '카타르토베 고분군'은 이러한 계곡 중 가장 큰 규모인 '샬코데 계곡'에 위치하며, 계곡의 상류에 해당하는 동쪽은 케트멘 산맥과 가지능선에 의해 막혀 있고, 남쪽과 북쪽은 산지와 이어져 결과적으로 하류역에 해당하는 서쪽만 개방된 형태이다. 계곡 중앙으로는 일리 강으로 유입되는 케겐 강의 지류가 사행하면서 서남류하여 주변으로 넓은 초지를 형성하고 있고, 하천의 남쪽과 북쪽으로 산지와 연결된 완경사면이 자리한다. 그 각각의 완경사면에 산지에서 발원한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지나면서 수많은 곡부와 요철지형이 발달하였으며, 상대적으로 완만한 평탄지와 돌출 지형을 중심으로 고분군이 자리한다.
카타르토베 고분군은 하천 북안에 조성된 고분군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 대형고분군으로 다양한 형태의 고분 60여기가 소속되어 있다. 고분군은 총 4개의 소군락으로 구분되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국외 조사의 중복성을 피하고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체제에서 벗어나 주제 중심의 연구를 추진하기 위하여 '적석계 무덤'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하였다. 이에 몽골 공동연구의 방향을 알타디 산악지역의 초기 철기시대 유적으로 전환하였으며, 2014년 카자흐스탄 고고학연구소와 공동연구 수행을 위한 업무 협약을 새롭게 체결하였다. 업무 협약에 의거, 2015년부터 카타르토베 고분군에서 '사카 문화기'의 고분을 발굴조사하였다.
(위 사진이 고분군의 북쪽, 아래 사진이 고분군의 남쪽. 일렬로 고분군이 배치된 것이 흥미롭다)
2015년 1차 연구로 2군의 1호분, 3군의 8호분을 조사하였으며, 2016년 2차 연구는 2군의 8호분과 4군의 10호분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특히 2016년도에는 멀티레이더를 활용한 GPR 탐사를 실시하여 2군과 4군 전체에 대한 물리탐사를 실시하였고, 이를 통해 고분군 전체의 평면형태와 배치, 구조 등의 파악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기반으로 2017년에는 고분군의 가장 하단부에서 확인된 방형분을 토대로 고분군의 전반적인 축조 시점과 방향성, 고분 평면 형태의 변화과정 등을 파악하고자 4군의 14호분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였다.
더불어 주변 지역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 방형의 토성을 확인하였는데 내성(45m), 외성(130m) 규모의 토성은 해자를 갖추고 있었으며 성벽 절개조사 결과 2열의 영정주와 판축층이 확인되었다. 성벽 주변으로 직경 2m 내외의 소형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길이 20m 가량의 방형유구를 포함하여 수많은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토성과 고분군의 관계를 해석한다면 많은 내용들이 나올듯 했다. (중앙의 토성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작은 원형 둔덕들이 다수 확인된다) 특히 이 부분은 동북지역의 고구려 고분군과 지방 성곽의 관계성을 해석하는 데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3차례의 조사를 통해 사카 문화기 고분 4기와 오손 문화기 고분 1기 등 총 5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각각의 고분에서 수집한 시료를 AMS 분석한 결과, 2군 1호분은 B.C. 350~300년, 2군 8호분은 B.C. 350~200년 사이에 집중되는 것으로 확인되었기에 카타르토베 고분군은 기원전 4세기 중엽 무렵부터 조성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유목문화의 경우, 주된 경제 수단인 목축을 위하여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도시나 주거지 등 정착 사회를 파악하는데 있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본적인 유적들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유목민들이 남긴 고분이야말로 그 문화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발표를 들으면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국외 공동조사가 이제 걸음마 단계이지만, 점차 많은 자료들이 밝혀져 유라시아 문화 및 거시적인 세계사적 시각에서 한국사를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은 총덕신 선생님(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의 '중국 신강지구 철기시대 묘장제도:고고유형학적 시각'이라는 발표였다. (발표문의 도면 절반 가량이 해상도가 떨어져서 아쉬웠다. 단, 이번 발표문은 올컬러에 두꺼운 코팅지로 인쇄한 것이라 여느 학회에 비해 발표문에 많은 공을 들였음을 미리 밝힌다) 중국 신강지역의 고고자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중국 내에서도 198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강지역 선사시대의 조기철기시대 말기와 역사시대는 B.C. 10세기~기원전후에 해당하는데(상당히 우리보다 이르다), 특히 기원전후에 묘장제도에서 변화가 나타나지만 여전히 기존의 요소가 잔존한다. 심지어 채도의 경우 조기철기시대 조기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현재 다수의 연구자들이 신강 채도의 '서방기원설' 혹은 '동방기원설'이라는 정형화된 공식의 속박을 뛰어넘어 다각도로 이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채도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앙소문화의 대표적인 유물로 알려져 있으며, 서방기원설로 설명되곤 했다. 신석기시대 토기로 알려져 이해되지만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까지도 나오고 있어 신강지역의 채도 문화가 밝혀지면, 북쪽의 초원 루트로의 전파 경로도 고민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자는 신강지역에 대한 청동기~조기철기시대까지의 고고 조사를 바탕으로 신강지구를 타림분지 북구와 남구, 로프노르지구, 하마 및 주변지구, 투르판분지 및 주변지구, 파미르지구, 이리하유역, 환준가르분지지구 등으로 세분해 각 지구별 유적 현황과 문화 양상을 서술하였다.
각 지역별로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미분지-바리쿤[巴里坤] 구역
신강 동부의 하미분 지 및 그 주변을 포함. 비교적 이른 시기의 문화 확인. 하미 천산북로묘지와 언불랍극유적이 대표적. 전자는 장방형 수혈토광묘와 수혈토배묘가 다수이며, 매장 방식은 側身曲肢葬(몸을 옆으로 눕혀 사지를 굽혀 매장)임. 연대는 대략 B.C. 2천년대임. 후자는 수혈토광 혹은 수혈석실, 토배이층대가 많다. 굽지 않은 흙벽돌을 주로 쓰고 도기 이외에 청동기와 소형 철기도 보임. 시기는 B.C. 1,300~500년 사이임(수륜교정연대). 그밖에 천산 동단에서도 언불랍극문화와 비슷한 요소 다수 발견. B.C. 10세기~기원전후의 조기철기시대유적 발견. 또한 B.C. 2천년대 고분군도 확인. 수혈석실에 원형으로 돌을 쌓은 봉분 축조. 도기와 동기, 철도와 철단검 등이 부장.
2. 투르판분지-천산 동부 산지구역
투르판분지 및 천산 중부의 산간계곡을 포함. 선선현의 소패희유적과 묘지, 양해묘지, 애정호묘지, 탁극손현의 객격흡극묘지, 우루무치시의 아랍구동풍창유적과 묘지, 어아구묘지, 남산광구 유적 등이 있음(소패희문화로 통칭). 수혈토광과 수혈동실, 수혈석실 등 다양함. 지표에 모두 石堆(돌무지) 혹은 石圍(돌돌림) 표식 확인. 앙신직지장에 頭向은 서쪽. 합장묘 다수. B.C. 1,000~200년 사이에 집중. 해당 지역은 투르판분지의 동시대 유적과 다른 면모가 확인. 여타 유적보다 시기가 이름.
3. 타림분지 북구
천산 중부 산간계곡 사이의 언기분지 및 천산 남록, 타림분지 북부 가장자리 중 중부지역 포함. 화정현 찰오호구 내 여러 고분군, 윤대 군파극고분, 배성의 키질저수지 묘지 등(찰오호구구 혹은 찰오호문화로 통칭). 지표에 석위, 석퇴, 토퇴 등이 있는데 군파극과 키질저수지묘는 석퇴묘가 주류. 규모가 직경 20~30m로 큰 편임. 수혈석실과 수혈토광. 다인이차합장. 앙신 혹은 측신굴지장. 찰오호구의 연대는 B.C. 900~500년에 집중. 화정한 찰오호구와 윤대 군파극은 상이한 문화양상. 특히 찰오호 3호는 1~5호묘와 다름. 형태와 규모, 유물에 차이가 있으며, 다른 것과 달리 조성시기는 기원전후로 판단.
강인욱 선생님이 찰오호 3호 묘지에 대해서 북흉노와의 관련성이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이런 성격의 논고를 발표하신 적도 있고), 조사 과정에서 그와 관련된 자료가 있는지 질문을 했다. 흉노는 B.C. 1세기 중반 분열되었고, 한나라에 내투한 호한야선우와 달리 질지선우가 이끄는 흉노 일파는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기원후 1세기 후반에 후한과 남흉노의 연합군의 공세를 막지 못한 북흉노의 잔존 세력이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훈족인지 여부는 제외하겠다) 아마 이런 상황에 맞춰서 외부에서 유입된 북흉노의 일파가 찰오호유적 중 일부에 자신들만의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보신 것 같았다. 단, 발표자는 북흉노 관련 자료는 없었다고 보며(단, 도기는 다른 고분과 약간 비슷했다고 한다), 강인욱 선생님의 견해에 대해서는 좋은 지적이었다고 의견을 표했다.
4. 타림분지 동구(타림하[塔里木河] 하류)
로프노르지구의 소하 5호 묘지 및 공작하 고묘구 묘지가 대표적. 철판사 묘지도 포함. 소하 5호 묘는 바닥이 없는 배모양 목관 사용. 앙신직지장. 공작하묘지는 수혈沙室(모래방)로 내부에 목제 가림판 위치. 주로 1인장에 앙신직지장. 전자는 B.C. 2,000년 부근, 후자는 B.C. 1,800년에 집중. 로프노르지구에서 한진 시기의 고분도 발견됨.
5. 타림분지 남동구
약강과 차말 두 현을 포함한 타클라마칸사막의 동남쪽 가장자리. 찰홍노극묘지와 가와애일극 묘지의 일부 무덤. 연대는 기원후에 해당. 단, 가와애일극묘지의 M1, M3, M5호묘는 이른 시기. 수혈토광에 다인합장묘, 1차장에 앙신굴지장. 연대는 B.C. 7세기 이후 혹은 더 늦음.
발표 PPT를 보니 방형의 수혈유구임에도 불구하고 정방향이 아닌 모서리 부분에 묘도로 보이는 시설이 보여서 특이했는데, (초)대형급, 즉 왕릉급 수혈토광묘가 아니라 일반적인 토광묘에서 묘도가 있는 경우, 혹은 모서리에 묘도가 있는 경우는 처음 봤다. 게다가 아주 양호한 상태의 미라들이 나왔는데, 자료의 수준이 국내랑 많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6. 타림분지 남서구
극리아하 하류와 니아하 유역에 집중. 곤륜산 북쪽의 우전유수 묘지 최근에 조사. 수혈토광묘에 석퇴 혹은 석위. 합장묘와 1인묘 공존. 도기와 청동기 등 확인. B.C. 8~7세기 전후에 조성. 그밖에 극리아하 하류의 삼각주 지역에서 반월형 석겸과 도기가 공반 출토. 니아하 하류에서도 동일한 유적 발견. 후자의 경우 연대는 B.C. 2,000~1,000년 사이로 추정.
7. 파미르고원 구역
타스쿠얼간 타지크 자치현을 지칭. 향보보묘지와 하판지 고분군의 두 유형으로 구분됨. 전자는 지표에 원형 석퇴와 원형, 방형, 장방형 석위를 가짐. 수혈에 측신굴지장. 화장, 1차장, 다인2차장. B.C. 800~500년 전후에 집중. 후자는 연대가 이르며 지표에 석토, 석위석퇴, 석관 등 확인. 앙신직지와 앙신굴지, 俯身屈肢장(고개를 숙여 구부린 몸과 사지를 의미하는 듯). 청동 장식품이 많고 다수의 목기도 확인. B.C. 2천년대 후반에 해당.
8. 이리하계곡 및 주변지구
이리하 및 특극사하 유역의 신원, 소소, 찰포사이, 니륵극현 포함. 니륵극현 궁과극 1호 묘지, 찰포사이 색돈포랍극묘지, 신원 철목리극묘지를 대표로 하는 범위와 소소의 대형토돈묘로 대표되는 범위 2개로 대별됨. 선행 연구자들은 전자를 사카, 후자를 오손의 것으로 비정. 전자는 봉토+봉토 주변의 돌을 두르고, 수혈토광과 수혈편실임. 1인장에 앙신직지가 다수, 2차장은 적음. 후자의 토돈묘는 모두 대형 봉토가 있음. 봉토 아래에 1~4개의 묘실 확인. 수혈토광에 내부에 상이한 규모의 목관, 목곽, 목제 장구 확인. 앙신직지. 전자는 B.C. 500~300년 전후이며 후자는 B.C. 300년 전후임. 궁과극은 최근 연구를 보면 B.C. 1,000년까지 상한 가능. 궁과극과 색돈포랍극은 대체로 유사하지만 연대 차이가 확인됨.
하지만 해당 지역의 고분들은 아직 많이 조사된 것이 아니므로 현재 조사된 고분군을 통해 사카와 오손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그러한 분류도 과거 구소련 연구자들의 생각을 그대로 계승한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특히 B.C. 300년 전후에 사카에서 오손으로 교체+혼합되는 사회적 현상들이 있었다면, 더더욱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9. 알타이지구(환준가르분지)
알타이 체목이체극 무덤이 대표적. 돌덩이를 지표에 쌓아 墓院을 표시. 동일 분포 내에 몇기의 무덤 배치. 수혈석관묘. 1인장에 측신굴지장, 부신장과 2차장도 확인. 가장 빠른 연대는 B.C. 2,000년 혹은 그 이전으로 추정. 계속 발굴 중이고 체목이체극유형 이외의 유형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음
해당 지역은 발굴이 가장 늦게 진행되어 최근에 연구 성과가 축적되기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 주목되는 것은 말을 같이 순장했다는 점인데, 15호분에서는 말 9마리가 순장되어(윗 사진의 확대 부분) 파지릭문화와의 연관성이 언급되었다. (아직 발굴보고서는 나오지 않았다) 신강 지역의 북/동/남쪽은 서로 교류했음이 분명하지만 지역 차이 또한 분명하다. 또한 신강과 신강 이외 지역의 교류도 분명했다고 발표자는 재삼 강조하였다. 발표자가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고분 내에서 같이 출토된 손잡이형 파수부가 달린 청동기 또한 유목문화에서 흔히 나오는 동복과 연결시킬 수 있을듯 했다.
그러면서 발표자는 이번 연구를 통해 환타림분지 지역의 고고학 문화와의 교류 관계, 더 나아가 철기시대 고고학 문화와 실크로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과거 낙양발굴기를 올리면서 실크로드가 중국 학계에서 어떤 위상이 있는지 대강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이번 발표에서도 그런 면모가 보였다) 한대 및 그 이후의 실크로드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한대 이전부터 B.C. 1,000년까지의 실크로드 문화가 필요하다는 부분에서는 약간 무섭다(?)는 느낌까지도 들었다.
암튼, 이번 발표들을 들으면서 단순히 국뽕(?)적인 시각이 아닌 진정한 유라시아 문화라는 거시적 차원 속에서 세계사와 한국사의 교차점을 찾을 필요가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려면 그 지역에 대한 연구자들도 많이 양성되어야 할텐데 그런 연구자들이 거의 없다는 것도 아쉽고, 고구려에 대해 확실하게 연구하려면 나 또한 그렇게 연구를 확대해야 겠다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되었다.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할 외국어의 압박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또한...-.-a) 이렇게 오후 발표들을 들으면서 뒤이어 강인욱 선생님의 마지막 발표까지 경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