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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분과

2026 글로벌경제신문 시니어 신춘문예대전 시부문 당선작 5편

작성자김응혜|작성시간26.06.12|조회수33 목록 댓글 0

 

가족사진/유성수, 그 많은 똥은 다 어디로 갔을까/정효석, 완장보다 먼저였던 것/안정수, 우리 동네가 참 순해졌다/김인숙, 탯줄을 달고 사는 여자/이창순

 

 

가족사진 / 유성수

 

 

해방되던 해에 태어나

나는

전쟁보다 먼저

가난을 배웠다

사진 한 장은

늘 사치였고

살아내는 일이

기록하는 일보다 먼저였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사진이 없었다

오늘은

아들과 손주 셋이 함께

사진을 찍는 날이다

막내 녀석은

군복을 벗고 돌아와

이제 장가 이야기를 듣는 나이가 되었다

언제 저리 컸는지

내 기억 속에서는 아직도

고무신 끌며

마당을 뛰어 다니던 아이인데

사진사 청년이

조금만 더 웃어보시라 말한다

구겨진 양복 소매를 펴본다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옆에서

넥타이를 다시 매 주었을텐데

찰칵

셔터 소리 하나에

지나간 계절들이 흔들린다

연탄 냄새 묻은 겨울

국수 한 그릇 나눠 먹던 저녁

잠든 아이들 이마를 만지던 밤

먼저 떠난 사람의 뒷 모습까지

모든 시간이

한 장의 사진속으로 들어 온다

나는 안다

아흔을 넘긴 사람에게

다음 봄은

약속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

조금 오래

사진을 바라 본다

언젠가 이 사진 속에서

내가 먼저 늙어갈 것이고

남겨진 사람들은

웃으며 말하겠지

우리 할아버지

저 날 참 행복해 보였다고

나는 가만히

액자를 품에 안는다

마치

내 평생을 안 듯이

 

 

 

그 많은 똥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정효석

 

 

밥그릇과 뒷간을 오가며

목줄에 매어 살아도

배부르고 등 따순

흰둥이입니다

그걸 오랜 삽도 알고 있지요.

하루 두어 번

흰둥이 똥을 떠서

목련 밑동으로 나르는

삽이 방긋 웃습니다

나무 발치 둘레로

똥의 잠자리가 늘어납니다

무딘 삽날이

채 식지 않은 똥이 쉴 구덩이를 파고

흙을 떠서 고루 덮습니다

흰둥이의 묵은 하루가

지상에서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고달팠던 냄새도 따라서

자취를 감춥니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나설 차례입니다

똥이 꽃이 되는 일의 팔 할은

그의 몫이니까요

4월이 오면

흰둥이 뽀얀 귀때기를 빼쏜

꽃송이들이

숭얼숭얼

못 말리게 흐드러질 겁니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똥의 행방은 명료합니다

 

 

 

완장보다 먼저였던 것 / 안정수

 

 

강 인도교가 끊기던 날

아버지는 지붕 위에 올라갔다

지하에는 만삭의 아내와 노모와

아이 넷이 숨을 접어 넣고 있었다

인민군에게 끌려가 등이 꺾일 때마다

기침이 터졌다

완장 찬 사내가 걸음을 멈췄다

이 폐병쟁이를

누가 데려왔느냐

모두 전염시킬 셈이냐

그 사내는 비 오는 날이면

처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

그릇을 내밀고 쓰레기통을 뒤지던

아버지가 쌀을 주고 동냥자루를 채워주던

손을 기억하고 있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는 풀려났고

돌아오는 길

기침이 멎지 않았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 이후에 나는 태어났다

가끔 아버지는

사람 하나가 사람 하나를 살리던

그날을 생각하는 듯

아무도 없는 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우리 동네가 참 순해졌다 / 김인숙

 

 

가랑비가 종일 내려

우리 동네를 살짝 절여 놓았다

 

뾰족한 교회 종탑

네모난 아파트들

자동차가 빽빽한 고가도로

 

굳이 이렇게까지

말랑해질 필요는 없는데

길가 풀잎들마저

흐물흐물해졌다.

 

교회 종탑 위에도

잿빛 아파트 벽에도

가로수와 화단에도

비가 내린다.

 

교회 종탑에 빨간색을 입히고

잿빛 아파트 벽엔 흰색을 칠하고

초록빛 벚나무 잎사귀엔 노란색도 발라보고

빛바랜 라일락 꽃잎엔 보라색을 덧칠해 본다.

 

오토바이 소리도 뜸해진 오후

자동차는 빗물에 목이 잠기고

우산 속에 갇힌 사람들

 

우리 동네가

비 맞고 참 순해졌다.

 

 

 

탯줄을 달고 사는 여자 / 이창순

 

 

창가 밑 웅크린 몸

방에 뿌리내린 탯줄은

어둠 속에 함몰된 꿈이다

 

탯줄이 목에 감긴 채 태어나

어머니와 나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운명일까

공포심은 내 안으로 스몄고

어머니 대신 날 키웠다

 

나는 점점 오지가 되어 갔다

 

방문 앞에 밥상을 놓는 어머니의 한숨

제삿밥을 먹는 기분이다

 

부동산 아저씨의 목소리가 담을 넘은 날

무자비한 손들이 방문을 열었다

앙상한 나의 물건들이 멱살을 잡혔고

이사 트럭에 실렸다

 

원룸에서 식구들은 불편하게 살았다

침묵에 빠진 고뇌가

벽을 넝쿨처럼 올라갔다

 

처음 창문을 열던 날

사과나무가 싱그러웠다

한 입 베어 물면 꿀이 뚝뚝 떨어질 듯

탈출은 저 곳에 있었다

 

손톱깎이에 잘리는 햇빛이 동아줄처럼 내려와

탯줄을 끊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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