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
제목: 정지문 너머에 두고 온 봄날, 그리고 동상( 東 上)의 동무들
계절의 푸르름이 짙어가는 유월의 어느 날, 참으로 오랜만에 발걸음이 고향의 향기로 향했다. 내 고향 완주 동상초등학교 제32회,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구석이 몽글해지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오늘 모임의 자리는 어린 시절 단발머리에 수줍어하던 여자 친구가 어엿하게 운영하고 있는 한 식당이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뛴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름진 눈가와 희끗희끗해진 머리칼 속에서도, 영락없는 그 옛날 코흘리개 동무들의 눈빛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식사가 차려지고 술잔이 오가는 사이,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아득한 시절의 사투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얘, 너 '정지문' 기억나냐? 겨울이면 칼바람이 들이치던 그 부억 문 말여."
"기억나고말고. 어머니가 몰래 감춰둔 찐 고구마며 개떡이 그 '부억 벽장' 속에 다 들어있었는디..."
입안에서 감도는 '정지'라는 시골 사투리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난하고 투박했지만, 아궁이 의 부지갱이 뒤적이는 그 불빛처럼 따스했던 우리들의 유년 그 자체였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렵고 고생스럽던 시절이었다. 배고픔이 일상이었고, 추위가 친구였던 그 시절, 우리는 참 많이도 헐벗고 굶주렸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그 고생담을 눈물이 아닌, 깊은 위로와 껄껄거리는 웃음으로 버무려내고 있었다. "자네, 참 잘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네", "그래, 자네도 참 장하네" 서로에게 건네는 투박한 덕담 속에 지나온 모진 세월이 눈 녹듯 씻겨 내려갔다.
점심을 마치고 나서는 길, 이번에는 초등학교 여자 후배가 운영한다는 아담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향긋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나누는 담소에는 식지 않는 웃음꽃이 가득 피어났다. 나이를 잊은 채 까르르 웃는 소리가 카페 안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잠시 7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렇다. 거울을 보면 우리 초등 동무들은 이제 모두 일흔을 넘겨 완연히 늙어가는 처지다. 거칠어진 손과 굽어진 등은 세월의 훈장이라지만,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비록 몸은 늙어갈지언정, 고향 친구들 앞에만 서면 우리의 정신연령은 여전히 책가방을 메고 동상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던 그 10대 소년, 소녀로 돌아간다.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이고, 젊음이다.
헤어지는 길, 서로의 손을 꼭 맞잡으며 마음속으로, 또 입 밖으로 간절한 소망을 외쳐보았다.
"친구들아, 늘 건강하고 몸 관리 잘해서 다음에 건강한 모습으로 또 만나자.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높아도, 이 나이엔 몸 건강한 게 최고의 행복이더구나."
지나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지는 나이라지만, 내 고향 동상초등학교 32회 동무들이 있기에 나의 남은 여정은 결코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나눈 따뜻한 온기를 품고, 다시 올 그날을 기다려본다.
우리 멋진 동무들, 모두 화이팅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