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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交河) 노씨(盧氏) 성씨의 역사

작성자이준용|작성시간09.11.20|조회수1,106 목록 댓글 3

교하(交河) 노씨(盧氏) 성씨의 역사

 

시조 노오(盧塢)는 당(唐)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고

신라로 건너온 도시조(都始祖) 노수(盧穗)의 둘째 아들로서

교하백(交河伯)에 봉해졌다.

 

《교하노씨세보(交河盧氏世譜)》에 의하면

신라 말의 후손 노강필(盧康弼)이

기계(杞溪: 지금의 경상북도 영일)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장산(章山)으로 옮겼다가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통합삼한개국공신(統合三韓開國功臣)으로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올라 선성부원군(宣城府院君)에

봉해져서 교하(交河)로 복관하였다고 한다.

 

후손들이 노오를 시조로, 노강필을 일세조로 하고

교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본관 연혁

 

교하는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坡州市) 교하·탄현면(炭縣面)

지역으로 고구려에는 천정구현(泉井口縣), 굴화(屈化), 또는

어을매관현(於乙買串縣)이라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교하군으로 봉성현(峰城縣: 坡州)을

관할하였고, 1018년(현종 9) 양주(楊州)에 병합되었다.

1394년(태조 3) 한양군의 심악현(深岳縣)·원평현(原平縣)과

부평군(富平郡)의 석천향(石淺鄕)을 교하현으로 통합, 관할하다가

1687년(숙종 13) 파주군으로 폐합되었다.

 

이후 1731년(영조 7)에 파주군에서 분리되어 교하군으로 승격하였다가

1914년 파주군에 폐합되었다.

선성(宣城)·원정(原井) 등의 별호가 있었다.

 

주요 세거지

강원도 금화군 원화면 추의리

뿌리(족보)공원의 교하 노씨 탑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교하노씨는 16,561가구 총 53,203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상 교하 노씨 대종회 자료 중에서)

 

창성군 3남 균의 아들이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노한으로 공숙공파조이고,

손자가 대제학 영의정 노사신으로 후손들이 청양, 서울, 파주, 강화, 김포,

부여, 달성, 목천, 공주, 보령, 부안, 장성, 여수 등 각지에 살고 있다.

 

참고로 노사신은 1476년 영돈녕부사가 되었고,

1482년 선성부원군(宣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485년 영중추부사로서 진휼사 겸 호조판서가 되었다.

 

1487년 명 효종(孝宗)이 즉위하자 등극사(登極使)로서

명에 다녀왔다.

이듬해 우의정·영안도체찰사(永安道體察使)가 되었다.

1492년 좌의정을 지내고, 1495년 영의정이 되었으나

과거시험에 처족을 합격시켰다는 탄핵을 받아 물러났다.

 

부여에는 문광공 사신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문장공 사신의 7세손 세해는 부여에서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룡동으로 옮겨 살았고

노태우13대 대통령은 세해의 10세손이다.

 

우리나라 盧씨들은 결국 한 집안이다.

심지어 중국의 盧씨들도 한국의 盧씨들과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노태우 대통령은 교하노씨이고, 노무현 대통령은

광산(광주)노씨로 알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중국 범양(지금의 북경일대)에 살다가,

안록사 사사명의 난을 피해 한반도로 피신을 한 뒤

뿌리내리게 되었다.

 

당시 9형제가 왔는데 광산노씨가 첫째,

교하노씨가 둘째집안이 된다.

사실 두 대통령이 본관은 다르지만 결국은

한 집안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노주현씨 등, 연예인 스포츠 선수들

가운데 盧씨 성을 가진 분들(노주현, 노현희, 노사연,

노정윤, 노상래, 노장진... 기타 등등) 각 분들의

본관은 잘 모르겠는데, 만약 魯가 아닌 盧씨 성을

가졌다면 다 같은 한 집안이라고 해도 된다..

 

사실 전국의 노씨들 다 합해도 김해 김씨보다 적은..

16,561가구에 총 53,203명이 살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교하노씨 이외에도 광주노씨

풍천 노씨 곡산 노씨 등이 있으나 결국은 거슬러

올라가면 한 뿌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율곡 이이선생의 부인은 곡산 노씨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게 능욕을 피하기 위해 율곡의 묘소까지

도망을 와서 결국 그곳에서 칼로 자결(자진)을 한다.

 

후손들이 자결을 한 곳에 묘를 쓰니 역장이 되어 버렸다.

즉 율곡선생의 묘 바로 위에 노씨 부인의 묘를 쓴 꼴이 된 것으로 이는

사례를 찾기 힘든 역장의 한 예이다.

 

아래 사진은 율곡선생의 묘 뒤에서 본 정경이다.

맨 앞에 보이는 것이 곡산노씨의 묘로 전체의

모든 묘 중에서 가장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아버지 이원수공과 어머니 신사임당의 묘는

한참 아래에 있다.

언제 시간이 나면 법원리에 있는 자운서원을

방문하여 확인을 해보시기 바란다.

 

이미지 전체보기
이이선생 묘소 뒤에서 내려다 보았다.
부인 곡산 노씨 묘 바로 아래가 율곡의 묘소,

 

 

 

노사신의 글씨, 〈근묵〉에서,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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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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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준용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1.20 무지개 누님!!!! 어떻게 만족하실만한 답이 되었는지요???
  • 작성자무지개 | 작성시간 09.11.23 꺄~~~아~입이 딱벌어져~다물어지지가.않네.....요 ...준용님 애많이 쓰쎴습니다..고마워요.감샤함이다....아버지로 부터 노가집안에 대해서는 노사신 때부터 들은것이 전부였는데. 그웃대부터도 알게되어새삼 놀랍습니다.교하노씨에 대해서 어린시절 핵꼬 댕길적에 관심이 쪼깨 있었을뿐 그후론 세파와 더부러 함깨 하다보니 성씨뿌리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이제는 자신있게 말할수가 있어요.언제한번 내집에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 멍멍탕~내리다 ) 술은 .양주.쌔주.매실주.복분자.맥주.탁주.술은 입맛대로 골라먹을수 있읍니다. 코가 삐~뚜러지두록 맴놓고 마셔봐요 우리집은 노땅 둘이사는데 항상 오픈 돼있어요............
  • 답댓글 작성자이준용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2.08 하하~~~ 나는 소주 한 병이면 그냥 그걸로 땡합니다.... 혹 궁금하신 것 있으시면 더 문의하세요. 족보?? 좋지요 예전에는 족보 뒤지느라 남산 도서관과 서초동 도서관에서 밤새는 줄도 몰랐으니까요... 호적?? 으~~음 이건 개인 정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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