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포서국민학교 친구들에게 —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안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번 휴가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거리와 초여름의 풍경을 바라보니,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떠나는 길목에 서면 언제나 그렇듯, 지나온 시간들과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이 하나둘 마음속에 떠오릅니다.
이번 한국 방문 동안 부모님 산소를 찾아 인사를 드렸고, 고향 영산강의 강바람도 다시 만났습니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길도 걸어 보았고, 몇몇 오랜 친구들과는 반가운 재회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가장 크게 남는 것은 만난 친구들보다 만나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70년, 영산포서국민학교 제22회 졸업생으로 함께 교정을 누비던 친구들.
그 시절 우리는 미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교실 창밖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던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때로는 함께 장난을 치며 웃었고, 때로는 선생님께 꾸중을 들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평범했던 하루하루가 훗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은 학교 건물도 사라지고 교정의 모습도 변해 버렸지만,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영산포서국민학교는 아직도 그 시절 그대로입니다.
운동장 한쪽의 흙먼지 냄새와 쉬는 시간의 웃음소리,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향하던 친구들의 뒷모습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바래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오면서는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옛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서로의 살아온 세월을 들으며 손 한번 맞잡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마다의 삶이 있고, 각자의 일정이 있다 보니 결국 많은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채 뉴욕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쉬움이 큽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의 마음이란 참 이상합니다. 만나지 못했기에 오히려 더 자주 생각나고, 얼굴을 보지 못했기에 더욱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정이라는 것은 거리와 시간이 아니라 마음속에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에 따라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살이는 늘 그러한 것 같습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 것이 인생의 순리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한 번의 만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크게 남습니다.
그래도 아쉬움은 희망을 품고 있기에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년 5월, 부모님 제사를 모시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게 되면 그때는 더 많은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영산포서국민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어린 시절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행복일 것입니다.
친구들아.
우리는 어느덧 인생의 긴 강을 건너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는 고향에 남아 있고, 누군가는 타향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먼 나라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웃고 뛰놀았던 어린 시절만큼은 모두의 마음속에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 믿는다.
부디 모두 건강하기를 바란다.
몸도 마음도 평안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서로의 삶이 따뜻하기를 기도한다.
오늘 나는 아쉬움을 가방 한편에 담아 뉴욕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 만날 날에 대한 희망 또한 함께 담아 간다.
어쩌면 진정한 우정은 자주 만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서로를 잊지 않고 그리워하는 마음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까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뉴욕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영산포서국민학교 제22회 졸업생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재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