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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강론

[2025년 연중 제21주일] 좁은 문 통과하는 비법

작성자여산지킴이|작성시간26.06.15|조회수55 목록 댓글 0

■루카 13,22-30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지금 이 미사에서 여러분들 앞에 보이는 이 성광에는 십자가 보목이 모셔져 있습니다.

여기에 십자가 보목이 3점 계시다 했죠.

두 개는 경당 액자 속에, 하나는 내 서재에 계십니다.

이 성광을 보면 십자가가 있죠.

그 십자가 안에 1.5cm 정도의 2천 년 된 나무 조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쇳덩어리도 2천 년이 지나면 가루가 되죠.

그런데 나무가 뿌리가 있어도 2천 년 동안 사는 나무는 이 세상에 없어,

더구나 이건 뿌리가 없죠.

물론 이 작은 조각들이 예수님이 매달리셨을 때 예수님의 손등을 떠받치고 있던 나무인지,

예수님의 등 뒤에 있는 십자가 나무였는지는 모르죠.

어느 부분인지 몰라요.

그렇지만 저 십자가 나무는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의 성혈이 묻어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보면 나무 밑에 뻘겋게 성혈이 보입니다.

그리고 저 십자가 나무는 십자가 밑에 계셨던 성모 마리아도 봤을 겁니다.

어떤 특별한 진공 상태가 아닌데도 2천 년 동안 저 나무는 나뭇결을 유지한 채 있습니다.

십자가 보목만이 아니라 100분 가까운 성인 유해가 어떻게 나를 통해서 한국에 오시게 됐는지,

그 목적은 뭔지는 아직도 난 모릅니다.

신자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게 뭐냐? ‘신부님들이 저거 어디서 났어요?’

내가 죽은 성인 성녀들 뼈를 모으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죠.

하나하나가 사제 생활 43년 동안에 해외에 나갔을 때라든지 이렇게 찾아오시게 된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저 많은 성인 유해가 왜 한국 땅에 어떤 과정으로 오게 됐는지를 쓰는 것일 겁니다.

배티 가보셨습니까?

제가 대성전 짓고 그다음 박물관 지으면서, 그곳에 성인 유해 전시관을 만들려 했어요.

그러면 그거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 신자들이 다 순례 올 것이다.

그리고 최양업 신부님은 피의 순교를 안 했기 때문에 성인 되는 게 하늘의 별 따기, 하지만

이 많은 성인 성녀가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 시성을 위해서 울타리를 싸서 전구 해 주시면,

그 전구로 시복 시성이 되리라 생각했죠.

지금은 주교님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 주교님 생각은 나와 달랐죠.

‘신부님 뭔 소리십니까? 최양업 신부님 성지에 왜 딴 성인들의 유해가 왜 옵니까?’

나랑 전혀 완전 반대 생각, 이해를 시켜도 아니래요.

다른 성인 성녀에 최양업 신부님이 가린대요.

그 박물관은 최양업 신부님 김대건 신부님이 공부하던 말레이시아 페낭 신학교 모습을 똑같이 만든 겁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만들었죠.

아무튼 오늘 이 미사 중에는, 물론 2층에도 많은 성인 성녀 유해가 계시지만, 이 제대 앞에 십자가 보목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매달렸던 십자가 나무를 헬레나 성녀가 찾은 건 아시죠?

내 유튜브 강론에 들어가면 다 나와요. 찾아서 보세요.

그리고 제 유튜브는 폴더식으로 되어 찾기 편하게 만들었어요.

평일 강론, 주일 강론 가나다 해. 피정 강론, 그리고 구약성서 묵상 폴더로 나뉘어 있어요.

이렇게 들어가서 보면 여러분이 평생 들어도 다 못 들을 분량의 강론이 있고,

특히 제 강의는 어떨 때 큰 효과가 있느냐? 잠 안 올 때.

제 강론 듣고 수면제 끊었다는 교우분 많아요.

아마 제 목소리가 좀 중저음이라 편안하게 잠을 유도하는 것 같아요.

 

오늘 복음 묵상해 봅시다.

 

여러분들 ‘영적 나태함’이라고 하는 단어를 들어보셨습니까?

그게 무슨 의미예요?

다른 말로 ‘영적 게으름’, 무슨 뜻인지 이해되시죠.

그 단어 들으면 그냥 확 와 닿을 거야. 영적 나태함 영적 게으름.

그런데 이 영적 나태함은 나이, 신분에 관계 없이 찾아와요.

사제라고 해서 영적 나태함에 안 빠지냐, 아니에요. 옷이 중요한 것이 아니죠.

영적 나태함을 이기려면 영적 긴장을 해야 해요.

그것을 ‘거룩한 긴장’이라 그래요.

이 긴장을 하지 않으면 사제도 수도자도 주교도 교황도 영적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혼수상태’가 의학적으로 뭐죠?

심장은 뛰는데 뇌는 죽어 있는 뇌사를 혼수상태라고 그러죠.

자, 오늘 여러분들 복음 들으셨을 때 어떤 단어가 이렇게 눈에 들어옵니까?

‘좁은 문’ 그렇죠.

오늘 ‘좁은 문’이라는 단어를 주님께서 쓰셨어요.

그러면서 그 말이 나오게 된 계기가, 다른 복음에 보면 유대인 지도급이 뭐라 물었죠?

‘천국 갈 사람들이 많지 않겠죠?’

이 말은 ‘우리 같은 선민 유대인들만 천국 가는 것 아닙니까?’를 확인하는 것이었죠.

유대인들은 오로지 이 지구상 족속들 가운데서 구원받고 천국 갈 수 있는 족속들은 자기네뿐이라 그랬어요.

바로 그것을 에둘러서 천국 갈 사람은 많지 않겠죠 라고 묻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기가 막힌 이 답이 나오죠.

예수님이 열받으셨을 때 명답이 나올 때가 많아요.

베드로 사도가 아주 열받게 했을 때도 명답이 나오고.

나도 신자들이 열받게 하면 내 입에서도 기가 막힌 얘기가 나와요.

그때 예수님은 ‘천국 문은 좁다’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이 천국 문에 대한 것을 쭉 오늘 풀이를 해 주셨죠.

그런데 아무리 좁아도 열심히 잘 산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되잖아요.

아무리 시험이 어려워도 시험 준비를 잘한 사람에게는 문제가 안 돼요.

그러니까 만점짜리가 나오잖아요.

즉, 좁은 문은 준비된 사람한테 문제가 아니라, 준비 안 된 사람

다시 말하면 영적 나태함이나 게으름에 빠져 사는 사람들한테 항상 어려운 문이 좁은 문일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제껏 사시면서 분명히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천국을 가는데

정말 완벽하게 신앙생활을 못 했다고 해도,

나름대로는 그날 그 시간 언제 나를 불러 가시더라도 준비하고 산다는 마음을 가지고

영적 긴장감 속에서 사셨던 분들한테는, 그 좁은 문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교회의 가르침은 이 문을 통과하는 방법을 많이 가르쳐줬어요.

그리고 또 본당 사제들의 강론을 통해서 좁은 문을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무수히 알려줬어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첫 단추는 종합하면 ‘올바른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이죠.

그러면 올바른 영적 예배를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피정 때도 자주 얘기했던 것 중 하나죠.

신약과 구약의 일괄되게 흐르는 천국에 첫발을 내딛는 단추가 3개예요.

그 3개의 단추를 잘 채워야 해요.

이 세 개가 올바른 영적 예배의 가장 기본적인 거죠.

2주 전의 강론은 하늘나라를 가기 위한 것 세 가지를 얘기했어요.

몇 가지라고요? 세 가지.

 

첫 번째, 신약과 구약의 일괄되게 흐르고 있는 좁은 문을 들어가기 위한 올바른 영적 예배를 하는 규칙이 뭐냐?

첫 번째, ‘살아있는 제물을 드려라.’

구약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제물을 바치러 왔죠. 번제물이라 하죠.

내 죄를 갚기 위해서 내가 내 목을 칠 수는 없잖아.

그래서 나 대신에 비둘기라든지 양 같은 번제물을 바쳤어요.

구약의 제사장들은 살아있는 심장이 끓는 제물만 받아들였어요.

죽어 있는 비둘기는 안 받았다 이거예요.

그러면 신약적 의미로 ‘살아있는 제물’은 뭘까요?

살아있는 기도가 있고, 살아있는 봉사가 있어요.

살아있는 순명, 살아있는 봉헌, 살아있는 희생이 있어요.

살아있는 것에 반대는 죽은 기도, 죽은 봉사, 죽은 희생, 죽은 순명이죠.

살아 있어야 해요.

아까 영적인 혼수상태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지금 미사 할 때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죠.

그런데 지금 몇 사람 머리는 다른 곳에 가 있어. 눈만 보면 난 알거든.

오늘 미사 끝나고 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아까 박대박이라 했나 김대박이라고 했나?

또 미사 오기 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말씀을 가로막아.

그래서 여러분들이 본당에서 미사 시간 1시간 내내

내 몸은 제대 앞을 바라보고 신부님 쪽을 쳐다보는 것 같지만, 거의 뇌사 상태로 미사를 해요.

어느 신문사에서 통계가 나왔는데 미사 끝나고 나오는 신자들에게 질문했대요.

‘오늘 들은 복음이 뭔 줄 아십니까?’

세상에! 1%밖에 대답을 못 하더래요.

‘오늘 신부님 강론 10분 했는데 어떤 얘기인지 아십니까?’

단어 하나 생각하는 사람이 20%밖에 안 되더래.

그러니 1시간을 앉아 있고 강론을 들었다 해도 그냥 몸뚱아리만 앉아 있는 거예요.

이건 죽은 미사예요.

또 묵주를 들고 기도 해야지 하는데, 귀찮아 그래도 해야죠, 레지오 단원인데.

사도신경까지는 그래도 어떻게 정신 차려서 해요.

이제 환희의 신비 들어가나 보면 그냥 환희스럽지.

그냥 유체 이탈해서 오만 동네 다 돌아다녀.

또 고통의 신비, 이거 내가 한두 번 굴려본 거야, 하며 손은 오토매틱이야. 잘 돌아가.

이건 죽은 묵주기도예요.

구약이나 신약이나 죽은 기도는 하느님이 안 받으세요.

죽은 예물을 안 받는다 이거예요.

봉사도 마찬가지죠.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봉사해야 하는데,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하긴 해야 하겠고 하기는 싫고.

성당 안에서도 성모회 등 일하는 팀들이 있잖아요.

어떤 자매는 땀을 뻘뻘 흘리는데도 얼굴에 기쁨이 쓰여 있어, 힘들어하질 않아.

그런데 어떤 자매는 오만 우거지상하고, 신자들이 반찬 더 달라고 하면 ‘그냥 갖다 드셔’

그러니까 기쁨이 없이 죽은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분란을 일으켜.

꼭 거기서 싸움을 걸고 시비를 걸죠.

그리고 그런 사람 특징이 뭔 줄 알아요?

일은 개떡같이 하면서도 유세는 또 혼자 다 떨어.

지가 다 한 것처럼 폼 잡고 인정받아야 해.

그런데 얼굴을 보면 시체 얼굴이야.

죽은 봉사, 죽은 희생이에요.

순명도 마찬가지죠.

순명하는 거 좋아하는 인간이 어딨어요?

사제는 사제 서품 받을 때 수명 서약하죠.

나는 개인적인 성향으로 볼 때 오야봉 기질이 좀 있어. 누구 말 듣는 스타일이 아니야.

그런데 내 위에 주교가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꼭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교구에서 제일 어려운 일만 터지면 나를 거기로 보내네.

속으로는 더럽죠. ‘하 순명 서약만 아니면! 내가 만만하게 보이나?’

그런데 가서 순명했죠.

그래서 동료 신부님들이 나한테 성격도 그렇고 누구보다도 강한 사제인데

주교님한테 순명하는 거 보면 이해가 안 된대요.

난 한 번도 ‘싫어요’ 소리를 한 적이 없거든.

사지에 몸에 기름을 끼얹고 들어가라 하더라도 ‘네, 들어갈게요.’

다른 신부님이 어떻게 순명을 잘하냐 물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제껏 한 것 아까워서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일단 가면 그 일을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그냥 몇 년 버티면 다른 데로 이동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기적이 일어나더라. 이거죠.

그래서 순명도 피가 도는 살아있는 순명을 해야 합니다.

순명하는 척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결과가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신약과 구약에서 올바른 영적 예배가 되려면 제일 첫 번째 단추가 뭐라고요?

‘살아있는 제물 바쳐라.’

우리 신약적인 의미로는 살아있는 미사, 살아있는 기도, 살아있는 봉헌입니다.

 

 ‘봉헌’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에게 돌려드리는 것’ 그것이 봉헌의 정의예요.

내 것의 일부를 떼어서 헌금 내고 미사 예물 내고 꽃동네 내보내고 이게 아니라,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에게 돌려드리는 게 그게 봉헌의 정의에요.

하느님은 거지가 아니에요. 적선하듯이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죠.

애초부터 내 건 없어요.

머리끝에서 발가락까지, 머리카락 하나 손톱 하나 내 것이 어디 있어요? 그렇죠?

자식이 내 거야? 하느님 거잖아요.

두 사람 몸을 빌려서 하느님이 세상에 만든 거잖아요.

봉헌의 의미가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에게 되돌려 드린다’라는 이 생각이 뿌리박혀 있으면

하느님에게 인색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개신교 같으면 신자 수가 100명이 안 돼도 교회를 짓는단 말이야.

그런데 천주교는 수천 명 신자가 있어도 성당 하나 지으려면

신부가 전국 돌아다니면서 모금해 와야 하고 얼마나 힘들어.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에게 돌려드린다고 생각하면 기쁘게 봉헌이 되는데, 이거 아까운 거야.

이거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또 봉헌의 원칙은 뭐냐?

죽으나 사나 십일조가 맞아요.

개신교 신자들이 극성이라 십일조, 그게 틀리고 우리가 맞는다?

우리가 틀린 거예요.

사제들이 돈 얘기를 안 하고 원칙을 가르쳐야 해요.

십일조라는 것이 돈만의 십일조는 아니죠?

시간의 십일조, 몸뚱아리의 십일조, 물질의 십일조.

십일조도 여러 가지예요.

내 인생 70년, 80년 동안에 적어도 10분의 1에 해당하는 그 시간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해.

그게 시간의 십일조입니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2시간 이상은 하느님에게 봉헌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루 시간의 십일조고 한 달의 십일조가 있고, 이게 바로 시간의 십일조예요.

또 육신의 십일조도 있잖아요.

내가 내 몸 움직여서 봉사할 수 있잖아요.

하다못해 성당 가서 화장실 청소라도 할 수 있고 성당 마당에 있는 풀이라도 뽑을 수 있어.

오늘 가기 전에 여기 잡초 뽑고 가는 것도 큰 십일조예요.

그 대신 주의할 것은 꽃을 다 뽑아놓고 잡초라고 그러지 말고요.

어떨 땐 내가 뽑으라고 해놓고도 아주 불안해.(웃음)

물질의 십일조. 말 그대로 내 수입의 10분의 1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해.

개신교 신자들이 십일조 해서 망한다면 십일조 계속하겠습니까?

십일조 했더니, 세상에! 축복이 더 많이 와.

개신교 교우들은 그 체험을 하는 거야.

봉급을 타든 뭘 타든 딱 10분의 1을 은행에서 신권으로 바꾸어 봉투에 준비해.

이건 내가 손대면 안 돼. 이건 하느님 것!

하느님이 10분의 1 나한테 봉헌하라 하셨거든.

예수님도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이거 이거도 같이 해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봉헌에 대해서만큼은 성경 말씀대로 사는 건 천주교 신자들이 아니라 개신교.

우리가 큰아들인데 모범을 못 보이고 있어요.

우리가 큰 집이잖아요. 큰 집이면 베풀어야지.

그리고 동생들에게도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되는데 오히려 동생들은 부모 봉양을 열심히 해.

그런데 장자면서 지금 주머니에 들어오는 거 안 내놓으려고 그러잖아요.

자기 것으로 알고 유산만 노리고 있고, 안 된다는 얘기죠.

‘살아있는 제물을 바쳐라.’ 뜻을 아시겠죠?

살아있는 미사, 살아있는 봉사.

여러분들은 성당에 가서 성수를 찍을 때

‘주님 오늘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내 머리로 듣고 가슴으로 느끼고 의지로 밀고 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미사 중에 영적 나태함이나 혼수상태나 뇌사에 빠지지 않도록

주님 저를 깨어서 이 성전에 머물게 해 주십시오.’

묵주 기도할 때도 ‘주님 오늘 이 묵주기도가 내 생애 마지막 묵주기도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결국에는 살아있는 제물을 바치려면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야 해요.

그날 하루하루가, 내가 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내가 드리는 이 묵주기도가 내 생애 마지막 묵주기도라는 마음으로,

내가 오늘 영하는 이 성체가 내 생에 어쩌면 마지막으로 나한테 찾아오시는 주님의 몸이다, 하는 마음,

이게 바로 종말론적인 삶이거든.

 

두 번째로 올바른 영적 예배가 되려면 ‘흠집이 없는 제물을 바쳐라.’

구약의 제사장들은 짐승들을 데리고 오면 검사를 해요.

비둘기 깃털이 빠져 있으면 퇴짜, 염소 뿔이 부러져 있으면 퇴짜.

다 흠집이 나 있어서.

그러면 신약적인 의미로 흠집이 없는 제물이란 무슨 뜻일까?

두 가지예요.

첫째는 우리는 죄를 지으면 우리 양심에 이렇게 금이 가죠.

일본말로 하면 기스가 나요. 그렇죠.

그래서 항상 미사 전 사제들은 어디서 기다려요?

그 흠집을 제거해 주려고, 그래서 깨끗한 영혼으로 제단 앞에 나가게끔 고백소에서 기다리죠.

그래서 ‘흠집이 없는 제물을 바쳐라.’ 하는 것은 성사를 통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헌을 하라는 말입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하느님에게 한평생을 드릴까~ 말까, 드릴까~ 말까, 하니까,

하느님도 얘한테 축복을 줄까~ 말까, 줄까~ 말까, 그러다가 간대요.

 

흠집이 있는 제물은 죄의식을 얘기해요.

죄를 지으면 죄의식이 생기잖아요.

개신교 신자들은 죄지으면 어떻게 해결해요?

그냥 방에 들어가서 통성기도 하면서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실컷 울지요. 속이 후련하고 죄 사함을 받은 것 같아.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정말 내가 받았을까?

죄 사함을 받았다는 보증서가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은 뭔가 귀로 듣고 오감을 통해야만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도 아셔.

그래서 고백소에서 예수님이 사제의 입을 가지시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하나이다’ 하는 소리를 우리 귀에 들려주시죠.

심리학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위대한 심리학자라 해요.

 

세 번째 ‘직접 예물을 들고 제단 앞에 나와야만 올바른 영적 예배다.’

‘직접 예물을 들고 와라.’

풀이하면 냉담자들이 아무리 속으로 ‘나 하느님 사랑해’ 떠들어봐야 소용없다는 거예요.

냉담하는 남편이 성당 가는 와이프한테 ‘나 대신 헌금 좀 내고 와’ 돈을 줬어.

그 남편 대신에 헌금을 집어넣었어.

하느님 그 돈 안 받아.

그 대신 나는 받지 칼같이 챙기지. 돈 주는데 왜 안 받아.

 

간단히 얘기했지만 천국 좁은 문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그랬죠.

첫 번째, 기억하십니까?

우리 신약식으로 풀이하면은 살아있는 미사, 살아있는 기도, 살아있는 순명, 살아있는 희생, 살아있는 봉헌을 해라.

기쁘게 봉헌하고, 기쁘게 미사하고, 기쁘게 순명하고, 영적 기쁨 상태에서 하는 것이 바로 살아 있는 제물의 의미예요.

두 번째 뭐라고 그랬어요? ‘흠집이 없는 제물을 바쳐라.’

우리 살다 보면 죄짓잖아요. 죄 안 짓고 어떻게 살아,

그거 어디서든 해결해야 해요?

개신교와는 다르게 우리 천주교는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죠.

그거 인간이 만들었어요? 신부들이 우리 한번 만들어 볼까, 해서 만든 거예요?

그거 어디 나와요? 성경에 나오잖아요.

베드로 사도한테 네가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내가 풀어줄 거고 이 땅에 매여 있으면 하늘에서 그냥 매여 있을 것이다.

사죄권을 줬잖아요. 천국 문에 들어갈 열쇠를 주셨잖아요.

세 번째는 직접 예물 들고 나타나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의 희생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공부 안 하고 컨닝해서 어쩌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천국은 컨닝해서 돈 써서 여행으로 가는 나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멘

 

그리고 오늘 또 예수님 그런 얘기 하셨죠?

‘천국은 부르심을 받는다고 해서 가는 나라가 아니다.’

반드시 선택받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 얘기는 지난 목요일 복음 마지막에 나왔던 얘기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적다.

세례받은 사람이 많이 있더라도 그중에서 천국 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는 말이죠.

그 소리 들으면 여러분들 안 무서워요?

나는 잠도 못 자요.

내가 신부로 살았는데 만일에 천국 못 가면 이거 얼마나 쪽팔릴까?

 

오늘 예수님이 ‘천국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응답의 문제’라고 그러셨어요.

세례받은 지 60년 됐다고 해서 그 어영부영 산 60년이 천국 가는 증표가 아니라는 거죠.

세례받고 6개월 만에 죽었어도 그동안 뜨겁게 살면 하느님은 그 사람을 선택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세례받고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느냐, 유아 세례받았느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응답하고 살았느냐의 문제이다.

먼저 불리었다고, 세례받은 지 오래됐다고, 구교 집안이라고, 우리 집안에 순교자가 있다고,

우리 집안에 신부 수녀가 몇이 나왔다고,

내가 성지 바로 옆 동네에서 산다고 해서 천국 가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배티 성지 옆에서 산다고 천국 가는 게 아니라 이거야.

얼마나 ‘구체적으로 변화되고 열매를 맺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죠.

변화되고 열매를 맺어야 해요.

이게 바로 성실한 응답이에요.

여러분들 중요한 얘기 잊지 마세요.

신앙생활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하는 거예요, 머무를 수가 없어요.

신앙생활에 정지 상태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퇴보, 이 두 가지가 신앙생활이에요.

아무리 브레이크를 걸어도 뒤로 가게 돼 있어요.

신앙생활은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올 1년을 뒤돌아보니까 뭐야, 작년보다 훨씬 더 내가 신앙적으로 뒤로 밀려 나가 있는 느낌.

산에 등산하는 사람이 어떻게 돼요?

앞으로 가지 않으면 뒤돌아서서 ‘아이고 힘들어’하며 포기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죠.

올라가던 자리에 서서는 못 올라가요.

올라가지 않으면 다시 뒤로 내려와야 해요.

등산하려고 목표를 정했다면 목적지까지 올라가야 해요.

아무리 다리가 저리고 돌덩어리처럼 힘들고 허리가 꺾어져도 올라가야 해요.

또 묘하게 일단 올라가고 나면 기분 좋아요.

밑에 구름이 보이고, 내가 올라온 길 보면 뿌듯하고 장하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내려갈 때는 힘 안 들이고 내려가잖아요.

신앙도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뒤로 퇴보예요, 서 있을 순 없어.

등산하는 사람과 같이 정상을 향해 전진해야만 되죠.

그런데 오늘 예수님 그런 얘기 하셨죠?

‘이 세상에서 천국을 발견 못 하면 죽어서도 천국을 못 갈 거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맛보기로 천국과 연옥과 지옥을 느끼게 해 주세요.

아침에는 천국의 마음으로 나왔지만, 어느새 마음이 답답해, 이게 연옥이야.

그러다가 저녁에 집에 가서 싸움이 일어나 소리 지르고 난리, 이건 지옥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이 천당과 연옥과 지옥의 맛을 다 보고 있어요.

지금 여러분들은 어디 오신 거예요? 천국에 당연히 왔죠?

이 천국의 맛을 오늘 저녁에 돌아가면 마귀들은 어떻게든

이 천국의 향기를 풍기고 오는 사람을

연옥을 통해서 지옥으로 떨어뜨리려고 별짓을 다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항상 피정 끝나고 마지막 강복 주기 전에 어떤 얘기 합니까?

‘여러분들이 여기 피정 오느라고도 준비를 몇 달 동안 하셨지만,

이 동네 마귀들도 몇 달 동안 저녁에 모여서 비상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저 김 신부 얘기 듣고 기뻐 날뛰고 나오는 인간을 어떡하면 하나씩 죽일지 작전을 짜고 있다.

그러니까 아파트 문 열고 딱 들어서면서 남편이 시비를 걸고

‘이놈의 여편네 봐라, 어디 갔다가 이제 와?’ 하더라도

‘아 여보 미안해. 빨리 밥 해 줄게’ 하면서 쉽게 넘어가야지,

누가 시비 건다고 해서 같이 싸우면 오늘 피정 때 받은 은혜는 시궁창으로 다 빠지는 거다.

마귀는 그런 방법으로 지옥의 맛을 보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여자 얘기를 끝으로 강론을 끝내겠습니다.

정말 구두쇠 할머니가 있었다고 그래요. 정말 못되게 살았어.

돈은 많은데, 그 많은 돈을 남겨놓고 죽었어요.

죽어 수호천사가 앞으로 살 곳을 안내하는데, 으리으리한 저택을 지나가.

‘아 저기가 내가 살 땐가 보다.’

그런데 그냥 지나가.

그리고 지나갈수록 집이 점점 작아지는 거야.

‘내 위치 정도 되면 그래도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맨 나중에 저 끝에 나무 판때기 몇 개로 비만 가리는 집인데 살라는 거야

내가 왜 여기서 사냐고 그랬더니 수호천사가 뭐라고 그랬겠어요?

‘나는 당신이 집 지으라고 올려다 준 재료만 가지고 이 집을 지었을 뿐입니다.

하늘에 보화를 당신은 이거밖에 못 쌓은 겁니다.

당신은 나무 판때기 썩은 거 세 개밖에 안 올렸고

그것으로 당신 살 집 지어놓은 거니 찍소리하지 말고 들어가’

자, 그러니까는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는 뜻이겠죠.

 

‘좁은 문’이라고 하는 것은 늘 깨어 있는 사람, 준비된 사람한테는 두려운 문이 아니에요.

하지만 늘 죄 속에서 헤매고, 하느님의 아들딸 노릇을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시험 준비 안 된 사람이 시험지 받아보면 덜덜 떨리듯이 똑같을 거예요.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세 가지의 올바른 영적 예배를 바쳐야만 한다.

두 번째는 흠집이 날 때마다 망설이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미루지 말고 고백 성사를 보자.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너 그거 죄도 아니라며 자꾸 흠집을 합리화시키게끔 만들지만,

그 마귀 소리 듣지 말고,

고백소는 두려운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 만나는 장소이고 나를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장소라고 하는 것,

축복의 장소라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두려움을 없애야죠.

고백 성사 보는 거를 두려워하면 안 돼요.

세 번째는 정말 병원에 입원해서 아니면,

나이가 들어 정말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아니면,

내가 내 두 다리로 걸어서 직접 봉헌해라.

그래서 꽃동네 가면은 큰 바위에 뭐라고 적혀 있어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고 그랬죠.

그 표현 가지곤 부족해요.

내가 내 두 다리로 성당 문턱을 넘어설 수만 있어도 그건 주님의 은총이에요.

내가 내 이 두 손가락으로 묵주 알을 넘길 수 있어도 그건 주님의 은총이에요.

맞죠?

 

그래서 우리는 정말 감사할 게 너무 많아요.

제가 눈이 이제 많이 좀 시원찮아요.

황반변성 때문에 운전하는 것도 좀 불편하고 책을 일단 잘 볼 수가 없어.

잘 안 보이니까 좋은 건 있어, 다 이뻐 보여.

전에 선명할 때는 누가 주근깨가 몇 개 있는 것이 다 보였는데, 이제는 다 이뻐.

이게 나이가 들어 나사가 풀리는 과정이겠죠.

사실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할 때는 새로운 것을 얻을 때보다 무언가 잃어버릴 때가 많아요.

건강했던 그 건강이 잃어버려, 잘 보이던 눈이 갑자기 침침해지고 어두워져 잘 안 보여.

그럴 때, 아, 내가 왜 눈에 대한 감사를 한 번도 안 하고 살았을까.

시력을 잃어버리니까 이제야 감사할 마음이 이제야 드네.

우리 손가락 다 움직여지잖아요. 그렇죠?

언젠가 이거 못 움직일 날 올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내 손에 묵주를 놓고 넘길 수만 있어도 그건 주님의 축복이에요.

내 눈으로 성서 책을 넘기면서 성경 구절을 읽어? 저 지금 책 못 봐요.

두 줄 읽으면 다 이렇게 깨져버려.

눈이 이렇게 되고 난 다음에 제일 힘든 게 책을 못 보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 그래도 눈 잘 보일 때 성경 열심히 읽으세요.

영적 독서 같은 거 하시고요.

귀 잘 들릴 때, 요즘 얼마나 좋아 유튜브에 훌륭한 신부님들 강론 얼마나 많이 나와 있어요.

들으라 이거예요. 잠 안 올 때만 듣지 말고요.

 

우리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천국 문을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신 것,

또 이곳에 머무는 동안 수많은 성인 성녀의 전구로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치유의 은혜, 구마의 은혜 그리고 또 믿음의 은혜 주실 것을 믿으면서,

거룩한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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