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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작성자仁巖/영기|작성시간15.11.11|조회수979 목록 댓글 0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가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마라

셩낸 가마귀 흰빗츨 새올세라

淸江(청강)에 죠히 씨슨 몸을 더러일가 하노라.


< 위 시조의 현대어 표기 >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들이 너희 흰빛을 시샘하나니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 정몽주가 함흥에 있는 이성계를 문안차 가려는데 정몽주의 어머니가 전날 악몽으로 집 밖에서 가지말라고 말릴 때의 시조로 정몽주는 끝내 병문안을 하고 돌아왔다. 훗날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자객(刺客) 조영규의 철퇴에 맞아 죽습니다.

 

가곡원류 정몽주 어머니가 쓴 시(詩)


뜻 = 겉은 까마귀 같은 간신, 소인배들이 모여 다투는 곳에 백로 같이 순결하고 강직한 자들은 가지 말아라.

성이 난 까마귀들이 새하얀 너의 몸빛을 보고 시기하고 미워할 것이니
청강에서 기껏 깨끗이 씻은 너의 결백한 심신(心身)이 더럽혀질까 걱정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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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근묵자흑(近墨者黑)(검은 것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자신도 검게 물든다.)]

 

한자성어랑 같은 뜻으로 쓰이는 이 시조는...

 

[애당초 검은 것들을 호기심에서라도 들여다보거나 가까워질 생각을 하지말라. ] - 성경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보면 그 심연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 될것이다.] - 독일 니체 명언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게 많습니다.

 

뜻은 조금씩 다를지는 몰라도...

 

[결국 검은 것(악)은 가까이 상대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도 어느새 인가 검게 물든다는 거죠.]

 

애초에 그것을 피하라는 뜻으로...

 

알기 싶게 뉴에이지적으로 이해하자면...

 

[비흡연자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흡연하는 곳에 가서 떠드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피게 되는 경우...]

 

라고 비교해야될까요?...으음?

 

아니면...

 

[일베 관종자들에게는 관심도 주지 말지니라? 상대를 할수록 이기는 자 없고, 너마저 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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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시]

 


가마귀 검다하고 백로(白鷺)야 웃지 마라

것치 거믄들 속좃차 거믈소냐

것 희고 속 거믄 즘생은 네야 하노라


[이직(李稷)의 시조 중에서]

 

[백로가 나쁜쪽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도 간혹있던데...]

 

그것은 밑의 이직(李稷)의 시조쪽입니다.

 

저 밑에 시조는 고려가 망했을때 거기 가담한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 사이를 이야기한 것으로...
 
고려가 망하자 고려 유신들은 절의를 지키며 초야에 묻혀. 망국의 한과 새 왕조의 가담한 자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던졌다.
이에 새 왕조에 가담한 이들은 자기 합리화와 정당성을 작품으로 나타내었다.

작자는 고려유신의 한사람으로서 새 조선조에 개국공신으로 벼슬을 하였다.

[두 왕조로 섬긴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한것은 "충신은 불사이군" 이라는 정신에 입각하여 자신의 처신이 바른것만은 아니라는것을 밝히려 했고.
속마저 검은것은 아니라고 함으로서 자신의 양심은 부끄럽지 않은것을 강조했다]

 

[자신의 결백과 상황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직(李稷)이 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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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직(李稷)의 시를 보지 않더라도...

 

만화나 소설처럼 절대적인 [악]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 어떤 사람이 흑(까마귀) 인지 白鷺(백로)인지 아무도 모르겠죠.

 

현대는 악마가 천사처럼 보이고, 천사가 악마처럼 보이는 회색의 세상 이니까요.

 

[검은 것을 가까이 하지말라고 해도, 무엇이 검은 것인지 구별해줄 안경이 없으니까요...]




이직(李稷)의 행장(行狀)

1362(공민왕 11)~ 1431(세종 13).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우정(虞庭),

호는 형재(亨齋). 정당문학을 지낸 조년(兆年)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문하평리(門下評理) 인민(仁敏)이다. 고려말의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의 조카이다.

1377년(우왕 3) 문과에 급제한 후, 경순부주부·사헌지평·성균사예·예문제학 등을 역임했다.

1392년(태조 1) 조선 건국에 참여한 공로로 개국공신 3등이 되고,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

1393년 도승지·중추원학사에 임명되었으며, 7월에는 권중화(權仲和) 등과 함께 음양산정도감(陰陽刪定都監)의 일을 맡아보았다.

1397년(태조 6) 대사헌이 되었으며, 이후 서북면도순문찰리사(西北面都巡問察理使)·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삼사좌사·지의정부사 등을 지냈다. 태종을 추대한 공로로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었으나 곧 마가(馬價) 문제로 성주에 안치(安置)되었으며, 명나라에 사은사로 갔다온 뒤에도 양천현(陽川縣)에 안치되었다.

1402년 참찬의정부사·대제학을 거쳐, 1403년 판사평부사(判司評府事)가 되어 계미자(癸未字) 주조를 관장했다. 그뒤 이조판서·동북면도순문찰리사·찬성사·대사헌을 거쳐 1408년 다시 이조판서에 임명되었고,

1410년 천릉도감제조(遷陵都監提調)로서 경원부(慶源府)에 가 덕릉(德陵)과 안릉(安陵)을 함흥부(咸興府)로 옮겼다.

1412년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414년 우의정이 되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15년 충녕대군(忠寧大君)의 세자책봉에 반대하다가 탄핵을 받아 성주에 안치되었다.

1422년(세종 4) 딸이 태종의 비가 되자 풀려나 도제조(都提調)로서 〈신속육전 新續六典〉의 편찬작업에 참여했다.

1424년 영의정이 되었으며, 이듬해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26년 좌의정이 되었다가 다음해 사직했다.

1428년 기자(箕子)의 사당에 비를 세울 것을 주장했으며, 상정소제조(詳定所提調)로서 〈육전〉 5권, 〈등록 謄錄〉 1권을 올렸다.

저서로는 〈형재시집〉이 있다. 성주 안봉서원(安峰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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