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빛과 그림자

작성자仁哮(장수남|작성시간26.06.14|조회수7 목록 댓글 0

 

늦은 후회

 

 

찬바람이 매서운 그해 십이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오늘따라 더 춥고 쌀쌀한 날이었다. 나는 고층 빌딩이 둘러선 중앙광장에 섰다. 넓은 도로들은 사방으로 뻗어 있었고,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머리 위로는 원형의 고가도로가 서로 얽혀 겨울 햇살마저 가리고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도로와 초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나는 시대의 발전상을 새삼 두 눈으로 실감케 했다.

 

교차로 곳곳에 자리한 작은 교통 섬은 마치 깊은 숲속의 섬처럼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대한 도시의 움직임 속에서도 변함없는 풍경이었다. 나는 길을 찾기 위해 지하 도로 내려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 옆에 몸을 낮추고 양손을 모은 채 엎드려 있었다. 구걸을 하는 나이 좀 들어 보이는 노숙인이었다.

 

경기 침체라는 말이 뉴스에서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노인의 굽은 어깨와 움츠린 몸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걸음을 늦추었다. 그냥 지나치자니 왠지 죄를 짓는 사람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폐 한 장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망설임은 행동이 되지 못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앞을 지나쳤다.

 

반대편 출구로 나와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곳은 서면 로터리 지하상가 롯데 백화점 건물이 지하에서부터 지상까지 모두 얽혀져 나로서는 매우 찾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디. 분명 이곳인 것 같은데 그 길은 아니었다. 방향감각을 잃고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또 다른 출구로 나와 보았지만 역시 아니었다. 몇 번을 오르내리며 헤매다가 결국 처음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계단 옆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순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다. 조금 전까지는 주머니 속 지폐 한 장이 아까워 망설였는데, 이제는 그 노인을 다시 찾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마음은 있었지만 행동이 없었다는 것을.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어쩌면 그것은 스스로를 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선한 마음이란 생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날 나는 복잡한 도시에서 길을 잃었다. 그러나 어쩌면 진짜 길을 잃은 것은 방향감각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인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돌아왔지만, 그 빈자리는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채찍처럼. 그리고 지금도 가끔 묻는다. '그때 나는 왜 망설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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