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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엄 현 옥
밤바람이 차다. 건축물들은 이 시간을 위해 하루를 기다렸다는 듯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빛의 축제 루미나리에(Ruminaria)가 열리는 밤의 호수 공원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성인을 기리는 축제 예술로 시작되었다는 루미나리에는 그 당시에는 전나무 조각에 등불과 촛불을 밝히는 정도였으나 지금은 입체 목조 건물과 다양하고 화려한 조명기술의 예술적 접목으로 이처럼 많은 구경꾼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정교하게 박힌 24만 개의 전구가 발하는 빛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은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에디슨의 전기 발명은 인류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문명의 발전을 앞당긴 것은 물론이고 발전에 비례해 빛은 더욱 밝아졌다. 어둠의 공포와 맞서 기쁨과 안전을 주는 빛의 의미에서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보았으리라. 그러나 이제 빛은 실용을 넘어선 장식으로서의 기능이 지나치게 부각된지 오래다.
어릴 적 유난히도 정전(停電)이 잦았던 시절이 있었다. 예고없이 찾아든 점령군이었던 어둠이 온 집안을 장악할 때면 우린 주르르 한 방으로 모여들었다. 모든 상황은 정지되었고 칠흙같은 어둠은 군주였다. 정전신고를 하는 전화기에 귀를 모으고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거짓말처럼 밝아지는 사위를 보며 언니들과 나는 ‘전기 왔다!’며 소리쳤다. 어둠이 싹 가시던 그 순간은 모든 불안과 두려움의 장막이 걷히는 환희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요즘 정전되는 일은 드물다. 도시 영역의 빛은 점차 확대되고 사람들은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과 그것의 특성에 순응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름대로의 스케쥴에 따라 활동하기에 큰 장애가 없어졌으니 낮에 일하고 밤에 휴식한다는 등식 자체가 사라질 위기다.
이제 사람들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밤이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올빼미 관광이라는 말도 낯익다. 주 5일 근무제의 확산으로 주말을 활용하여 금요일 밤에 일본이나 홍콩 등지로 출발하여 월요일 새벽 도착 후 출근하는 여행상품이다. 날짜로 치면 4일이지만 여행자들이 제대로 자는 시간은 고작 하루 이틀 밤이란다. 숙박비를 줄이고 주로 심야 도심관광을 통해 그곳의 문화와 유행, 신상품 정보 등을 접할 수 있다고 한다. 낮에도 화려하던 신주꾸의 밤거리가 어떤 모습으로 불야성을 이룰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밤을 낮삼아 이국의 밤거리를 기웃거리는 것이 과연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빛이 문제란다. 고급 유리로 마감한 고층 빌딩의 벽면에서 쏘아대는 빛의 반사로 인해 반대편의 사람들은 눈을 뜰 수 없을 뿐 아니라 두통 등 많은 부작용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가로등과 골프연습장 등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이들 주변의 농작물이 제 때에 여물지 않아 수확량 감소가 심각하다는 경우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것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에서도 빛의 피해가 입증된 바 있다.
빛의 피해는 그 정도였으면 좋으련만 을숙도의 철새마저 많이 줄어들게 했다. 사람보다 몇 배 민감한 감각을 가진 새들은 별빛을 보고 방향을 판단하기 위해 주로 밤에 이동한다. 그런데 인근에 들어선 소각장 불빛으로 인한 교란현상으로 새들은 섬을 찾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밤에 울지 않은 매미들도 인공 조명으로 인해 밤을 낮 삼아 운다니 심야의 적막을 뚫고 증폭된 그 소리들로 인한 소음공해도 문제려니와 그들 생태계의 변화도 걱정스럽다.
유흥가의 네온도 인간 교만의 극치다. 하늘을 향해 방향을 바꾸며 빛을 쏘아올리는 현란한 써치라이트가 밤새 호객 행위에 나선다. 빛도 이 정도가 되면 공해와 에너지 낭비를 넘어서 생활을 위협하는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이제 어두운 밤하늘을 찾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껏 사람들은 빛의 이용 측면만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세포 분열의 속도로 확산되는 빛의 과다 사용은 우리에게서 휴식과 밤을 앗아갔다.
사라진 밤하늘을 되찾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강원도 횡성에는 ‘별빛 보호 지구’가 선포되어 밤을 보호하기 위해 불빛을 부분적으로 차단하는 가로등을 설치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광해 방지위원회라는 기구를 두어 빛의 공해를 예방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할 정도로 그것의 심각성에 대처하고 있다. 밤하늘의 별이 사라진 것은 공해 뿐 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밤을 추방해버린 사람들에게 내려질 재앙의 예고가 아닐까.
볕이 잘 드는 휴일 낮, 너무도 환한 거실에서는 어떤 일에 몰두하기가 어렵다. 경험으로 미루어 너무도 환한 실내의 지나친 밝음은 도리어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은 적당한 밝기와 은은함일 것이다.
자고로 넘치는 것이 문제다. 태초(太初)의 빛에서 너무 많이 변해 버린 빛-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라던가. 차고 넘치는 것이 빛 뿐이랴. 관심과 사랑도 지나치면 구속과 부담이 됨은 물론 자칫 그로인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것은 과다한 빛의 폐해와 무엇이 다르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 부족한 듯 비우고 덜 채우는 것이다. 지나친 밝음으로 우리들 마음 속의 별마저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닌지,넘치는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랑을 고갈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마음 한 켠에 ‘사랑유예지구’는 남겨놓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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