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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의 히메유리 34 제III부 제6장 무거운 짐을 메고

작성자河光範|작성시간26.06.14|조회수8 목록 댓글 0

류큐의 히메유리(1987, 요나조 노부코) 34.
● 제III부 제6장 무거운 짐을 메고

하에바루 탈출의 날이 찾아왔다. 군의 표현에 따르면 탈출이 아니라 철수였다. 히메유리(姫百合)의 학도, 간호사, 위생병, 군의관 순으로 탈출하는 계획이었다. 환자가 문제가 되었다. 환자들에게는 철수에 대한 정식 통지가 내려져 있었다. 자기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은 혼자서 철수하라고.

그러나 질병 치료에 대해서는 아무런 약속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환자들에게는 약도 없고, 음식도 없고, 숨을 곳도 없고, 목적지도 없었다. 병원에 소속된 사람들은 마카베(真壁)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 학생들은 마카베에 가고 싶으면 가도 된다고 했다. 환자들에게도 똑같이 말했지만 환자운반에 도움을 받는 것은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중상자에는 종이에 싼 것이 배급되었다.

"만약 적이 가까이 오면 먹으라" 는 명령을 받았다. 하에바루 병원은 환자를 버린 것이다. 해가 떨어지자 철수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홉씩의 쌀을 받았다. 마카베 도착까지의 식량이다. 놀랍게도 친구들은 나를 닮아 모두 욕심이 많았다. 아시미네 선생님이 우리의 큰 배낭이나 짐꾸러미를 보고 놀랐다.

우리 학생들이 출발하는 동안 벙커 안 수술실은 평소처럼 바빴다. 군의관이 부상병에게 수술하고 있었다. 상체가 좋은 예의 간호사가 비틀거리며 지나갔다. 그녀는 수술 중인 군의관 앞에서 직립부동의 자세를 취하며 경례를 했다. "부상을 입었습니다. 벙커 입구에 서 있을 때 파편에 맞았습니다."

그녀는 보고한 후, 미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벙커 입구에 서는 것은 군규를 위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의 부주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상인가. 바닥에 누워라." 군의관은 짜증스럽게 말을 던졌다.

군의관은 부상병을 눕혀 둔 채 침대를 떠났다. 간호사는 명령받은 대로 바닥 위에 누웠다. 군의관은 그녀 위에 웅크리자 힘찬 손으로 간호사의 겉옷을 찢었다. "함포의 파편이라고 생각합니다만..."이라고 그녀는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의 가슴이 숨을 쉴 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였다.

"가위!" 라고 군의관이 조수에게 명령했다. 조수가 끝이 얇은 날카로운 수술용 집게를 군의관에게 건넸다. 군의관은 집게를 끝부분이 반쯤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간호사의 가슴 깊이 꽂았다. 군의관의 손이 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집게를 꺼내 머리를 낮추고, 상처 속을 들여다보고, 손가락을 두 개를 넣고 살을 파고든 쇠조각을 찾았다.

"군의관님, 아파요! 으아악...”라고 그녀가 외쳤다. 그녀가 울부짖는 것도 상관않고, 군의관은 복숭아색 피부를 손끝으로 들어 올려 가슴 깊이 집게로 파고 들어갔다. "아프다! 으, 아파. 으윽...”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할퀴는 듯한 모습으로 하늘을 잡으려 했다.

군의관은 검은 것을 가위 끝으로 잡아서 끌어내어 옆에 던져 버렸다. 조수가 붕대를 군의관에게 건넸다. 간호사는 20여분 후에는 일어나서 벙커 안의 좁은 통로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통행에 방해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 학생들은 통로에 줄을 서서 벙커를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히메유리대의 책임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인원을 조사하여 결석자를 확인해야 했다. 내가 인원을 다 세고 한숨 돌리고 있을 때, 아시미네 선생님이 담요를 세 개 손에 들고 왔다.

"너는 책임자이지. 이 담요는 군의 것이니 하나 메어줘.” 나는 놀랐다. 군의 소유물은 천황 폐하의 것이었고,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무거운 것을 혼자 짊어질 수 있을까. "아시미네 선생님, 도저히 무리입니다" 라고 나는 거부했다.

그러나 아시미네 선생님은 나의 거부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두꺼운 담요를 내 어깨에 걸쳤다. 짐이 적은 세츠코(節子)가 담요를 하나 맡기로 했다. 나머지 한 장은 짐이 가벼운 누군가가 맡게 되었다.

내가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메고 짐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게다가 담요를 목도리처럼 목에 걸고 비틀거리며 좁은 통로를 통해 입구를 향해 걷고 있는데. "오, 대단해!" 라고 누군가가 외치자 모두가 나를 뒤돌아 보았다.

나는 짐에 파묻혀 버렸다. 한증막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더웠다. 코와 입은 담요에 묻혀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나에게 이런 비참한 생각이 들게 하는 아시미네 선생님이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듯 뭔가 글을 쓰고 있는 후지무라(藤村) 부장의 옆을 지나갔다. 그녀는 얼굴을 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잠시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벙커 밖으로 나와 시원한 공기에 닿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달이 없는 밤이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폭탄 구덩이를 조심해. 가장자리가 미끄러우니까.” 적은 오늘 밤은 자는 것 같다. 서둘러 가야지... 최대한 조용히. 하에바루와는 이제 안녕이다. 마카베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하에바루를 떠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언덕 기슭까지 왔을 때 갑자기 함포가 날아왔다. 눈부시게 밝은 빛이 앞으로 올라가려는 눈앞의 언덕을 뚜렷하게 비추었다. 우리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포탄이 떨어졌을 때 몰살을 피하기 위해 흩어지도록 배웠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나는 숨을 곳을 찾아 벙커로 되돌아갈까 도 생각했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했다. 돌아가 본들 뽀족한 수도 없었다. 우리는 지금 하에바루에서 철수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언덕 길을 피하려고 생각했다. 저 길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사람의 무리가 적의 주목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길을 멀리 벗어나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언덕을 절반 정도 올랐을 때 나는 발을 헛디뎌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나는 뭔가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어깨에 메고 있던 짐이 팔꿈치 부분까지 내려와 매달렸고, 그 무게감이 더욱 나에게 부담을 주었다. 큰 작업화는 발에서 벗겨질 뻔했다. 한 걸음 올라가다 두 걸음 미끄러지곤 했다.

가까이에서 또 포탄이 작렬했다. 푸른 빛이 나는 가루가 주변에 흩어졌다. 파란 가루에 닿으면 피부가 짓무른다고 들었다. 무서움 때문에 나는 오히려 용기가 생겼다.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언덕 꼭대기에서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졌지만 도중에 작은 덤불에 걸려 겨우 멈췄다. 숨이 차고 지쳐 있었기 때문에 잠시 덤불 속에 누운 채로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비가 올 거야" 근처에서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 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노부코 씨, 짐을 버려라. 나도 방금 버렸다.” 그 목소리는 마사코(政子)였다. 그녀는 두 손을 벌려 보였다.

"그래, 그게 좋겠어." 나는 마사코(政子)의 의견에 동의했다. 짐 중 하나를 팔꿈치에서 떼어내어 덤불 속에 숨겼다. 두세 달 후 이곳에 돌아올 때까지 그곳에 남아 있기를 바랐다. "비가 올 거야, 분명"이라고 마사코가 말했다. 그와 동시에 차가운 물방울이 땀이 맺힌 이마에 떨어졌다. 라고 느끼는 순간 순식간에 소나기로 바뀌었다.

"빨리, 서둘러" 마사코가 내 배낭을 잡고 나를 끌어올렸다. 서로 손을 잡고 우리는 미끄러운 언덕을 뛰어내려갔다. 언덕 아래에 도착함과 동시에 비가 그쳤다. 아열대지역에 흔한 변덕스러운 5월의 소나기였다. "마사코 씨는 오래 전에 하에바루를 떠났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어?"

"슈리에 있었어. 다시 슈리를 떠나 하에바루로 돌아왔더니 모두 이곳을 떠난다기에 놀라고 있어.” 달이 나왔다. 마사코와 나는 마카베행 친구 일행을 따라잡았다. 시골길은 돌멩이가 많았고 울퉁불퉁했기 때문에 미끄러지지는 않았다. 친구와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소 마음이 안정되었다. 발을 맞춰 함께 걷는 것이 기쁘기도 했다.

"마카베에 벙커가 있습니까?"라고 아시미네(安次嶺) 선생님에게 물었다. "글쎄, 별로 상태가 확실하지 않지만, 이제 병원에 의지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라고 선생님이 대답했다. 군인 한 소대가 발맞춰 지나갔다. 물웅덩이 한가운데를 지나 주위에 진흙탕을 튕기며 행진했다. 우리보다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전황은 어떻습니까?" 라고 친구 중 한 명이 말을 걸었다. 군인들은 아무 대답도 없이 우리를 멀리 추월해 가버렸다. 바로 건너편에 마을이 보였다. 군인들은 마을 바로 앞까지 가 있었다. 그 순간 뭔가가 폭발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푸른 섬광에 비치는 군인들의 검은 윤곽이 불과 1초 정도 시야에 떠 보였다. 마을은 곧 원래의 고요함을 되찾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하는 것 외는 별 도리가 없었다. 소대가 사라진 곳에 도착했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군인은 한 명도 남김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길가의 어둡고 깊은 골인 패인 곳을 들여다볼까 생각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우리는 계속 걷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길은 군데군데 붐비고 있는 곳도 있는가 하면. 사람이 한 명도 다니지 않는 곳도 있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가재 도구를 높이 쌓은 수레를 끌고 있었다. 수레는 울퉁불퉁한 길을 삐걱거리며 지나갔다. 달거랑거리는 냄비 솥의 소리와 삐걱거리는 녹슨 바퀴 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며 들려 왔다. 남자아이가 큰 짐을 막대기 양쪽 끝에 매달아 메고 지나갔다.

어머니 같은 여자가 아기를 등에 업고 두 손으로 작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왼손의 여자 아이가 울어대자 어머니는 꾸짖으며 그 아이의 손을 거칠게 끌고 갔다. 두세 걸음 뒤에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짐을 하나 덤불 속에 남겨두고 왔기 때문에 조금 홀가분해졌지만, 조금 전의 소나기로 담요와 배낭이 젖어 짐은 그 전보다 무거워져 있었다.

등에 멘 짐이 뒤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뒤로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나는 열심히 걸었다. 한 손에 든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둘로 나누기로 했다. 양손에 하나씩 들면 몸의 평균이 취해져 걷기 쉬워질 것 같아 짐을 나누기 위해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친구들 일행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짐을 다시 꾸리고 보니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외톨이가 되어 나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불안으로 가득 차 지쳐 있었다. 정처 없이 남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섞이는 것은 쓸쓸하고 또 불안했다.

폭탄에 맞아 파괴된 마을 근처에 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 나무는 기적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 있었다. 자랑이라도 하듯 나뭇잎을 가득 매단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그 나무 밑에 군인들이 입을 다문 채 은신하듯이 가만히 앉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무 부근에는 길을 사이에 두고 고랑이 있었고, 그 고랑에 군용 트럭이 머리를 쳐박고 있었다. 운전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군용차는 적의 탐지기에 걸리기 쉬우므로 가까이 있지 말라고 교육하고 있었지만, 괴념치 않고 군인들은 나무 아래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나는 군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트럭 반대편으로 돌았다. 그래고 목에 걸치고 있던 담요를 떼어내어 바퀴의 뒷부분에 던져 넣었다. 언젠가 가지러 올 일이 있을까? 군에 잡히면 총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지쳐서 그런 것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계속 걸었다. 만약 휴식을 위해 앉기라도 한다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묵묵히 앞으로만 걸어 나갔다. 군인들의 행진처럼 물웅덩이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사방팔방으로 튕기며 걸음을 옮겼다. 큰 물웅덩이를 지나며 신발에 물이 들어가 걸을 때마다 질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마치 비오는 여름 밤의 개구리 울음소리와 비슷했다. 나는 점점 더 주위에 신경 쓰이지 않으며 정신없이 그저 계속 걷고 있었다. "이봐요. 이봐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로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눈을 돌리자 땅위를 기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 기어가는 남자를 도우려는 사람은 없었다.

붕대로 부목을 감아 묶은 한 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상체를 두 팔로 지탱하면서 남자는 깊은 물웅덩이 속에서 무릅걸음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물이 허리 높이까지 차 있었다.

그는 상체를 좌우로 어색하게 움직여 나아갔다. 정작 남자는 작은 꾸러미를 끈에 매달아 목에 걸고 있었다. 꾸러미는 그가 한 발짝 나아갈 때마다 가슴 앞에서 덜렁거렸다. 이 남자는 얼마나 기어서 여기까지 왔을까. 그리고 또 도대체 어디까지 기어가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의 삶의 모습을 보고 서글퍼졌다. 살고자 하는 의지 자체에 혐오감을 느낀 것이었다. 이런 몸이 되면서까지 오래 살아서 도대체 무슨 보람이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나에게 그를 비판할 권리가 있을까? 나도 오십보 백보가 아닐까. 이 비참한 여행의 종착역에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왜 나는 이 길을 계속 걷고 있는 것일까. 멈춰 서서 그 남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려고 빠른 걸음으로 그의 곁을 지나갔다. 왼쪽의 어두운 언덕 위에 아련한 빛이 보였다. 태양이 떠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광명이 나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내 안에서 전쟁이 멀어져 갔다. 나는 걸으면서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나카타니가 언덕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맑은 눈을 보았고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기뻤다.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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