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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pitaph upon Husband and Wife Who died and were buried together Richard Crashaw
TO these whom death again did wed This grave 's the second marriage-bed. For though the hand of Fate could force 'Twixt soul and body a divorce, It could not sever man and wife, Because they both lived but one life. Peace, good reader, do not weep; Peace, the lovers are asleep. They, sweet turtles,註1 folded lie In the last knot that love could tie. Let them sleep, let them sleep on, Till the stormy night be gone, And the eternal morrow dawn; Then the curtains will be drawn, And they wake into a light Whose day shall never die in night.
죽어서 합장된 부부의 비문(碑文) 크래쇼
죽어서 다시 맺어진 이들에게 이 무덤은 두 번째 부부의 인연입니다 비록 운명의 손길은 이들의 혼과 몸을 갈라 놓을 수 있었건만 지아비와 지어미의 관계를 끊지는 못 하였습니다 이들은 오직 일심동체, 한 삶을 살았기 때문 조용 하시라, 비문을 읽은이여, 눈물을 삼켜주세요 조용히 하세요, 이 부부는 잠자고 잇습니다 이 정다운 원앙부부는 서로 꼭 껴안고 누어 있습니다 사랑만이 맺어줄 수 있던 마지막 인연 속에…, 이들을 잠들게 하세요, 계속 잠들게 하세요 폭풍우 몰아치는 밤이 지나고 영원한 아침 새벽이 틀 때 까지…, 그러면 커튼이 올려지고 이들은 아침 동녘 햇살에 깨어 날것입니다 이들의 생애는 절대로 어둠 속으로 저물지 않을 것입니다.
리차드 크래쇼 Richard Crashaw, 1612 ? – 1649) 영국의 시인. 캠부릿지 대학 졸업 후, 1643년 크롬웰의 청교도 혁명 때 대륙으로 피신할 때 까지 연구원으로 있었음. 청교도 목사의 아들이지만 1646년 카톨릭으로 개종하였습니다. <노트> Turtle:(古語) Turtledove (암수가 사이 좋은 산 비둘기) 여기는 鴛鴦이라고 번역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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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명인들의 묘비명:월간 중앙 4월호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는 묘비에 “우물쭈물 살다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happen)”
★헤밍웨이(1899~1961)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Pardon me for not getting up)”.
★ 이탈리아 극작가 존 게이(1685~1732)는 “인생은 농담이야. 모든 것이 그것을 말해주네.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죽어서야 알겠구나(Life is a jest. And all things show it. I thought so once. But I now know it)”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출판업자 벤 프랭클린의 시신이 여기 벌레의 먹이로 누워 있다. "
★걸레 ‘미치광이 중’ 중광 스님의 묘비명은 “괜히 왔다 간다”.
★공자(BC 551~479)는 “지는 꽃잎처럼 현자는 그렇게 가는구나”.
★ 베토벤(1770~1827)은 창작활동 중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가장 고통스러워 “천국에서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프란시스 베이컨(화가, 1909~1992) 아는 것이 힘이다
★에밀리 디킨슨(시인, 1830~1886)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