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잎의 여자 2
- 언어는 겨울날 서울 시가를 흔들며 가는
아내도 타지않는 전차다-
나는 사랑했네
난장에서 삼천원 주고 바지를
사 입는 여자
남대문 시장에서 자주 스웨터를
사는 여자
보세가게를 찾아가 블라우스를
이천원에 사는 여자
단이 터진 블라우스를 들고
속았다고 웃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순대가 가끔 먹고 싶다는 여자
라면이 먹고 싶다는 여자
꿀빵이 먹고 싶다는 여자
한달에 한두번은 극장에 가고
싶다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손발이 찬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리고 영혼에도 가끔 브래지어를
하는 여자
가을에는 스웨터를 자주 걸치는 여자
추운날엔 팬티 스타킹을 신는 여자
화가 나면 머리칼을 뎅강 자르는 여자
팬티만은 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여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여자
실크스카프가 좋다는 여자
영화를 보면 자주 우는 여자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다는 여자
더러 멍청해지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러나 가끔은 한 잎 나뭇잎처럼
위험한 가지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여자
▶ 글 : 오규원
▶ 사진 : Ilona Pulkstene
▶ 음악 :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 Celine Dion
▶ 낭송 : 지영란
▶ 편집 : 송 운(松韻)
한 잎의 여자 1
/ 오규원
- 언어는 추억에 걸려있는 18세기형 모자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잎의 맑음 그 한잎의 영혼
그 한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듯 보일 듯한 그 한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같은 여자 슬픔같은 여자
병신같은 여자 시집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한 잎의 여자 3
/ 오 규원
- 언어는 신의 안방 문고리를 쥐고 흔드는
건방진 나의 폭력이다.
내 사랑하는 여자
지금 창 밖에서 태양에 반짝이고 있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를 보네
커피같은 여자, 그레뉼같은 여자
모카골드 같은 여자
창 밖의 모든 것은
반짝이며 뒤집히네 뒤집히며 변하네
그녀도 뒤집히며 엉덩이가 짝짝이 되네
오른쪽 엉덩이가 큰 여자
내일이면 왼쪽 엉덩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여자
봉투같은 여자
그녀를 나는 사랑했네
자주 책 속 그녀가 꽂아놓은
한잎 클로버 같은 여자
잎이 세 개이기도 하고
네개이기도 한 여자
내 사랑하는 여자, 지금 창 밖에 있네
햇빛에는 반짝이는 여자
비에는 젖거나 우산을 펴는 여자
바람에는 눕는 여자
누우면 돌처럼 깜깜한 여자
창 밖의 모두는
태양 밑에 서서 있거나 앉아 있네
그녀도 앉아 있네
앉을 때는 두 다리를
하나처럼 붙이는 여자
가랑이 사이로는 다른 우주와
우주의 별을 잘 보여 주지 않는 여자
앉으면 앉은, 서먼 선 여자
밖에 있으면 밖인
안에 있으면 안인 여자
그녀를 나는 사랑 했네
물푸레 나무 한잎처럼 쬐그만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여자
오규원(吳圭原, 1941 ~ 2007)
시인. 경남 밀양 출생.
1968년 “현대문학”에 우계의 시 몇 개의 현상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주로 시의 언어와 구조를 탐구하거나 물질문명과
정치화되어 가는 현대 언어를 비판하는 시를 썼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 이 땅에
씌여지는 서정시(1981) 마음의 감옥(1991)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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