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사랑 (Maudie, 2017)'은 실화를 바탕으로한다 캐나다 화가 모드 루이스(1903~1970)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 에이슬링 월쉬 감독, 샐리 호킨스와 에단 호크 주연 캐나다 화가 모드 루이스의 진솔하고 욕심없고 따스함에 무뚝뚝하기 이를데없는 남편 에버렛 루이스가 서서히 물들어가고 그 느낌은 영화가 끝나도록 계속된다 선한 모습으로 부부가 함께 물들어가는 분위기로 인하여 나도 모르게 "아름답다 아름답다... " 감탄이 절로 나오고 그림자없는 세상을 그리고 겨울풍경에 단풍을 그려넣고 다리가 세 개인 소를 그렸고...캐나다 노바스코샤 주 -Newfoundland-에 사는 “Moudie모디”는 관절염 arthritic 으로 걷기 불편한 가정부로 일하면서 이기주의적인 생선장수의 좁은 집에서 가장부로 일하게 된다 모디는 자신의 것 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우연히 발견한 페인트로 그림 그리며 두 사람의 결핍된 텅 빈 맘을 채워가는 기쁨과 사랑을 담아가는 투박하고 소박한 집을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바꿔주는 동시에 굳게 닫힌 두 사람의 마음을 여는 상징적 화면언어 '느린 걸음에 속도도 맞추어주며, 손 수례위에도 태워가는 장면' 등으로 감동과 흥미를 강렬하게 전해준다 OST Dear darling, Little Bird는 애잔한 감동을 더해 주며 마지막 자막과 함께 흐르는 앤딩음악 Little Bird는 넘 감미롭다 못해 황홀감에 빠진다
This Little Bird / Marianne Faithfull 영화 평론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제목이 심히 유감스럽다. 영화의 원제는 'Maudie'다. 이를 번역한 영화의 제목은 ‘Maudie(모디)’를 빼놓고 ‘My Love’만 가져왔다. ‘Maudie’는 ‘Maud(모드)’를 사랑스럽게 부르는 별칭이다.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모드(샐리 호킨스)다. 영화의 원제는 ‘모드’란 인물에 관한 영화임을 암시하고 있으나 어찌된 이유인지 이를 번역한 영화의 제목은 이런 중요한 정보를 빼 먹었다. ‘My Love’만을 강조해 흔한 사랑 영화인 것처럼 착각하게 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영화의 최대 결점은 원제를 번역한 영화의 제목임을 알게 된다. 확실히 <모디> 정도가 영화의 제목에 가장 알맞다.
“You need me.”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이보다 간결한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 모드가 에버렛 루이스(에단 호크)에게 던지는 그 말은 단순히 ‘사랑’ 차원에 국한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영화 속 ‘need’란 표현은 인생을 겨냥한다. 그보다 큰 세상을 노려본다. 영화는 가장 울림 있는 방식으로 ‘Need’란 화두를 던진다.
모드는 관절염 환자다. 불편해 보이는 그녀의 거동만 보면 그녀에겐 누군가가 필요해 보인다. 찰스(자카리 베네트)와 이다(가브리엘 로즈)는 그런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모드가 거동이 불편한 와중에도 집 바깥으로 나가는 이유다. 집 바깥에 나간 중 모드는 ‘가정부’를 구한다는 에버렛의 구인 전단지를 본다. 모드가 에버렛의 집을 방문한 첫날 에버렛은 모드를 다리 앞까지 배웅해 주는데, 이 장면을 보면 모드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가 누구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에버렛이다.
에버렛 또한 누군가의 존재가 절실하게 필요해 보인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회색 빛의 그의 집이다. 정리되지 않은 에버렛의 집은 누군가의 부재의 흔적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그의 집의 벽면은 아무런 색채도 갖고 있지 못하다. 즉, 에버렛은 자신의 집에 색을 채워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 색을 채워 줄 인물은 다름아닌 물감과 붓을 든 모드다. 모드는 거듭 붓질로 집을 꾸며간다. 모드가 색을 채운 에버렛의 집은 훗날 전혀 딴 풍경이 되어 있다.
에버렛의 윽박에도 모드는 꿋꿋하게 버틴다. 모드는 집을 청소하던 중 사용되다 만 페인트통 하나를 발견한다. 모드가 페인트 뚜껑을 딴 뒤 페인트를 손에 묻혀 벽에 칠해 본다. 이 장면이 주는 울림은 남다르다. 모드가 처음으로 색이 없는 공간에 색을 채우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손짓이지만 그것은 가슴 깊숙한 곳을 지그시 누른다.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뭔가가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영화가 던지는 ‘need’란 화두를 단순히 두 사람의 사랑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어쩌면 “You need me.”란 모드의 대사는 세상에 대한 예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거동이 불편한 모드의 모습을 보며 홀로는 도저히 자립할 수 없는 예술가의 모습을 상상했다. 모드의 그림 그리기 행위를 조롱하는 이다의 모습을 보면 예술 행위에 대한 세간의 조롱 섞인 시선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모드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폭력을 장애의 문제로 한정 지을 이유는 없다. 그것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겐 실로 익숙한 폭력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묻는다. “밥벌이도 안 되는 예술을 해선 무얼 하냐”
예술은 그 자체만으론 생산성이 없다. 에버렛과 같은 인물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분명 세상에 필요하다. 내게 영화의 서사는 예술이 필요한 이유를 납득시키는 과정처럼 생각되었다. 아름답게 채색되어 가는 화면을 보며 나는 예술이란 세상에 필요한 것이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예술은 어둑한 세상에 색을 채워 간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예술 없는 세상의 삭막함을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아무런 색이 없는 에버렛의 집, 즉, 모드가 에버렛의 집을 처음 방문하는 장면은 그런 삭막함을 보여주고 있을 테다.
영화는 벽면에 걸 만한 액자 그림을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가 이따금씩 펼쳐 보이는 세상 전경은 마치 예술이 세상에 존재해야 함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버렛과 모드가 결혼 직후 초원에서 뛰노는 장면은 이 영화가 펼쳐 보이는 액자 그림 중 으뜸이라 할 만하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결합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삭막한 세상이 ‘예술’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아름다움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인상은 두고두고 남아 감정을 자극한다. 색채가 채워진 자리엔 한 점 흐릿한 티끌도 없다.
단순한 사랑 영화가 아니다. 인생 영화인 동시에 예술 영화이기도 하다. 모드의 대사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You need me.”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 터치 씨네마 A href="https://brunch.co.kr/@cjswognels/259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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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화가 모드 루이스(1903~1970)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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