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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시인의 마음을 따라 걷다 - 열세 명의 시인, 열여섯 편의 삶과 마주하며_예시원(시인ㆍ문학박사)

작성자예외석|작성시간26.06.16|조회수1 목록 댓글 0

 

〈평론〉

 

시인의 마음을 따라 걷다 - 열세 명의 시인, 열여섯 편의 삶과 마주하며

 

예시원(시인ㆍ문학박사)

 

사계를 따라 전국 곳곳의 시인들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오랜 시간을 문학과 함께 걸어왔다.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교류한 시인도 있었고, 먼 곳에 머물면서 작품으로만 마음을 나눈 시인도 있었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작품 세계도 달랐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민한 감각과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읽어내는 통찰력이었다. 시인은 단순히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과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발견해 언어로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문인과 평론가가 존재한다. 그러나 한 편의 시를 깊이 이해하고 그 속에 담긴 정서와 의도를 공감하는 일은 결국 시인의 감성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평은 작품을 재단하거나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어떤 삶의 흔적과 감정을 언어 속에 담아냈는지를 함께 찾아가는 작업이다. 독자가 작품을 읽으며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고 있을까라는 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시는 이미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괴테는 좋은 시란 어린이에게는 노래가 되고, 청년에게는 철학이 되며, 노인에게는 인생이 되는 시라고 말했다. 이번 평론집에 실린 작품들 역시 난해한 언어의 미로보다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진솔한 감정과 통찰을 담고 있다. 남인순의 담지 못한 골짜기는 인간 존재의 깊은 내면을 성찰하게 하고, 박노정의 요천변의 아침여수 여행은 자연과 삶이 만나는 풍경 속에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박경미의 눈을 맞춘다는 인간과 존재의 교감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으며, 박상진의 땅가시나무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생명의 의지를 보여준다.

박선미의 압축은 삶의 본질을 응축된 언어로 담아내고, 박이동의 저울은 인간 내면의 균형과 선택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배성근의 미더덕 까는 여인은 노동의 현장에 깃든 삶의 애환을 보여주고, 고양이가 먹어치운 시는 창작의 고통과 유머를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백성일의 무덤덤한 오월은 세월을 통과한 인간의 담담한 성숙을 보여주며, 백이석의 바람의 빗질뻘배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독창적인 시선으로 풀어낸다.

송선희의 어머니의 안부는 세월과 모성의 의미를 따뜻하게 되새기게 하고, 윤복희의 세월은 어머니의 손과 자신의 손을 겹쳐 보며 삶의 순환과 가족의 유대를 성찰한다. 윤혜련의 발신인은 사계절의 꽃을 하늘에서 온 편지로 형상화하여 시간과 그리움의 의미를 노래하며, 윤효경의 아침이야기 - 여름은 농촌의 평범한 새벽 풍경 속에서 생명력과 희망을 발견한다.

문학은 결국 인간이 품고 있는 허기와 갈증에서 출발한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그리움의 원천이 있고, 잊히지 않는 기억과 돌아가고 싶은 정신적 고향이 있다. 시인들은 그 마음의 본향을 찾아가는 순례자들이다. 때로는 자연을 통해, 때로는 가족과 노동의 현장을 통해, 때로는 자기 내면의 상처와 고독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작은 진실들을 언어라는 그릇에 담아 독자에게 건넨다.

이번 평론집은 필자가 계간 시와늪주간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발표했던 이달의 작가상, 추천작가, 문학상 심사평 등을 바탕으로 다시 정리한 글들이다. 작품을 읽으며 함께 웃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위로받았던 시간들이 이 책의 바탕이 되었다. 혹여 작품의 본뜻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시인들의 너른 이해를 구하며, 그것 또한 문학을 사랑하는 한 독자의 진심 어린 시선으로 받아들여 주시길 바란다.

이 책에 수록된 열세 분 시인의 열여섯 편 작품은 서로 다른 목소리와 색채를 지니고 있지만, 결국 인간과 삶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라는 하나의 강물로 이어진다. 독자 여러분도 이 작품들을 통해 각자의 추억과 그리움, 희망과 성찰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수록된 모든 시인들에게 다시 한 번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도 더욱 깊고 아름다운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담지 못한 골짜기

 

남인순

 

오후 햇살 아지랑이

어깨에 내려앉는 날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노래가 당연한 듯

열리는 입술

 

나지막한 앞산 한 자락

도라지 밭으로 뻗은 등성이

참꽃 빼곡히 수놓던

꽃 피는 산골 내 고향

 

골짜기마다 흐르던

진분홍 노래가 끊기고

고향이 늙어간다

 

나이 든 고향은

더는 참꽃을 피우지 못하는데

 

꽃 피고 새 울 때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걸

담아두지 못한 그 골짜기

기억 속에서만 피고 지는 참꽃

 

남인순의 담지 못한 골짜기는 고향을 떠나 긴 세월을 살아온 노인이 기억 속 풍경을 더듬으며 지나간 시간을 애도하는 서정시이다. 시인은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산골의 이미지를 통해 삶의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되살려내며 깊은 그리움을 드러낸다.

시의 전반부에 나타나는 고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시인의 정체성과 감성이 형성된 마음의 원형적 고향이다. 심리적으로 이는 인간이 불안과 상실을 경험할 때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안전한 내면의 안식처로 기능한다.

그러나 한때 진분홍 참꽃 노래로 가득했던 골짜기는 이제 침묵 속에 늙어가고 있으며 더 이상 예전의 생명력을 간직하지 못한다. 이러한 변화는 고향의 노쇠함과 동시에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노년기 자아의 투사로 읽을 수 있다.

특히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걸이라는 구절에는 지나간 시간 앞에서 느끼는 회한과 상실감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이는 소중한 순간을 붙잡지 못한 인간의 보편적 후회를 보여주며, 기억만 남은 현실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진한 페이소스로 형상화한다.

마지막으로 기억 속에서만 피고 지는 참꽃은 현실에서는 사라졌지만 정신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고향의 상징이다. 시인은 잃어버린 풍경을 애도하면서도 기억이라는 내면 공간 속에 다시 꽃을 피움으로써 노년의 슬픔을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요천변의 아침

 

박노정

 

요천변 따라

새벽길 걸으니

 

맑은 기운 가득 차

두 팔 벌려 하늘을 품고

 

땅의 숨결 고스란히 받아

자연과 하나 되어

몸과 마음 활짝 깨어나네

 

정겨운 눈빛

오가는 미소

 

새로운 하루

함께 맞이하니

 

승월교에 핀

아침 햇살 속으로

 

건강과 행복의 꽃

맑게 피어나

 

박노정의 요천변의 아침은 노년의 시인이 일상의 새벽 산책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고자 하는 소박한 희망을 담은 작품이다. 화려한 수사보다 담백한 언어를 통해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음가짐과 생의 긍정성을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인이 새벽길을 걷는 행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심리적 자기 돌봄의 과정으로 읽힌다. 심리적으로 이는 노년기에 중요한 자아 통합의 실천으로, 현재의 삶을 수용하면서도 건강한 미래를 준비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두 팔 벌려 하늘을 품고라는 표현에는 자연과 교감하며 자신을 확장하려는 개방적 심리가 담겨 있다. 이는 노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위축감이나 상실감보다 생명력과 연결감을 선택하려는 긍정적 정서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오가는 사람들의 눈빛과 미소를 통해 공동체 속 소속감과 정서적 안정감을 경험하고 있다. 인간은 타인과의 따뜻한 교류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데, 이러한 일상적 만남은 노년의 외로움을 완화하는 중요한 정서적 자원이 된다.

승월교에 비치는 아침 햇살과 건강과 행복의 꽃은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의 상징이다. 시인은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매일을 새로운 출발로 받아들이며, 노년의 삶을 소멸이 아닌 성장과 갱신의 시간으로 바라보는 건강한 심리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여수 여행

 

박노정

 

영원히 젊고 싶다는 마음 하나

청춘열차에 싣고 여수로 향한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산빛과 들빛

친구들 웃음 속에 작은 봄이 피어난다

 

막 잡아 올린 회 한 점에

소줏빛 파도가 잔을 적시면

 

만선 기쁨의 흥이

저절로 차오른다

 

뱃고동이 푸른 바다 문을 열면

갈매기 날개가 첫 노래를 올리고

 

파도는 등대의 벽에 부서지며

하얀 숨결을 흩뿌린다

 

오동도 언덕에 붉게 선 동백

설렘 한 송이 내 얼굴에 피어나

 

이 순간의 청춘을

오래 기억하라 속삭인다

 

박노정의 여수 여행은 단순한 관광의 기록이 아니라 노년의 시인이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다시 삶의 활력을 찾고자 하는 내면의 여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시의 첫 구절인 영원히 젊고 싶다는 마음 하나에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함께 스며 있다.

청춘열차에 몸을 싣는 모습은 실제 여행인 동시에 잃어버린 청춘을 향한 심리적 회귀의 상징으로 읽힌다. 이는 노년기에 나타나는 회고 과정의 한 형태로, 과거를 그리워하면서도 현재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건강한 적응 욕구를 보여준다.

친구들과 나누는 웃음과 바다의 풍경, 그리고 만선의 흥겨움은 시인에게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삶의 생동감을 회복시키는 정서적 자극이 된다. 인간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존재의 활력을 얻는데, 이 작품은 노년의 외로움과 상실감을 공동체적 기쁨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푸른 바다를 가르는 뱃고동 소리와 등대에 부서지는 파도는 정체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무의식적 열망을 상징한다. 특히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려는 태도는 노년기 심리 발달에서 중요한 자아 성장의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 연의 동백꽃과 이 순간의 청춘을 오래 기억하라는 속삭임은 작품 전체의 정서를 집약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박노정 시인은 여수 여행을 통해 지나간 청춘을 붙잡으려 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새로운 청춘으로 받아들이며, 남은 생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희망과 진한 회한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다.

 

눈을 맞춘다

 

박경미

 

인연은

떠나고 난 자리에

새로이 찾아오는가 보다

 

십 개월 품었던

삼색 같은 가을이

홀연히 제 짝을 찾아 떠나고

 

호피 무늬 삼색 고양이가 찾아와

가만히 눈을 맞춘다.

 

집착할 것도 없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

 

나는 내 자리에 그렇게 있다.

 

박경미의 눈을 맞춘다는 길고양이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 인연과 이별, 수용과 평정의 의미를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시인은 동물의 삶을 관찰하면서도 그것을 인간의 정서와 자연스럽게 겹쳐 놓아, 생명체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시 속에서 떠나간 삼색 고양이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라 소중했던 인연의 상징으로 읽힌다. 심리적으로 이는 애착 대상과의 이별을 의미하며, 시인은 상실의 아픔을 과장하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성숙한 애도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 빈자리에 나타난 호피 무늬 삼색 고양이는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인간의 마음이 상실 이후에도 다시 관계를 맺고 정을 나누려 하듯, 동물 또한 삶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채워가는 존재임을 시인은 직관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특히 가만히 눈을 맞춘다는 장면은 언어를 초월한 교감의 순간으로서 매우 상징적이다. 행동분석에서는 눈맞춤을 상호 신뢰와 정서적 연결의 기본 형태로 보는데, 시인은 그 짧은 시선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의 집착할 것도 없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는 구절은 체념이 아니라 삶의 순환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평정에 가깝다. 박경미 시인은 길고양이 한 마리와의 우연한 만남 속에서 인간의 이별과 만남,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비추어 보이며, 모든 생명은 각자의 자리에서 인연을 만나고 떠나보내며 살아간다는 깊은 통찰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땅가시나무

 

박상진

 

비옥한 부엽토를 지천에 두고

하필 바위틈

살고 싶어 살겠냐만 태어난 곳이니

목마르고 배고파도 살 수밖에

 

몰아친 비바람에 성한 잎 없고

온 몸 멍들어도

그러려니 여기며 살아온 목숨

 

한여름 땡볕에 오죽 목말랐으면

바닷물도 물이라고

까마득한 절벽 끝으로 고개 내미나

 

하늘 향해 허리 펼 날 기약 없지만

바위를 기며 살아도 저승보다 이승

버티고 견디면

언젠가는 촉촉한 단비 내리겠지

 

박상진의 땅가시나무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끝내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나무의 모습을 통해 시인 자신의 삶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인은 땅가시나무의 질긴 생명력을 빌려 고난의 연속이었던 인생을 돌아보면서도 희망만은 놓지 않으려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준다.

시의 첫 부분에서 바위틈에 뿌리내린 땅가시나무는 선택할 수 없는 운명 속에 놓인 인간 존재를 상징한다. 심리적으로 이는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없을 때 그 현실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적응의 상태를 드러내며, 시인은 자신의 삶 또한 그러한 운명적 조건 속에서 견뎌왔음을 암시한다.

비바람에 잎이 상하고 온몸이 멍드는 모습은 시인이 겪어온 상처와 역경의 흔적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러려니 여기며 살아온 목숨이라는 표현에는 고통에 압도되지 않고 삶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회복탄력성이 담겨 있으며, 이는 오랜 세월 고난을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보여준다.

특히 바닷물까지 마시려 절벽 끝으로 몸을 내미는 장면은 생존을 향한 절박한 의지를 상징한다. 이는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본능적 생명력과 연결되며, 시인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희망의 욕구를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버티고 견디면 언젠가는 촉촉한 단비 내리겠지라는 구절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적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박상진 시인은 땅가시나무를 통해 자신의 인생이 비록 고난의 연속이었을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한 삶은 계속된다는 믿음을 보여주며, 인간 정신의 끈질긴 생명력과 긍정의 가치를 깊은 울림으로 전하고 있다.

 

압축

 

박선미

 

그녀가 말이 없어졌다

 

그녀가 말을 잃은 건 엄마를

잃고 서다

횡단보도를 지나는데

제어 못한 부풀어진 속도가

엄마와 그녀를 덮쳤다

말은 안 하는 게 좋고 줄이는 게 좋다던

엄마는 결국 말문을 닫았다

 

엄마의 유품에서

눈물과 집안일로 때가 덕지덕지

묻은 수첩

침 묻혀 삐뚤삐뚤 쓴 가족 이야기에

그녀는 울음만 겹겹으로 쌓였다

 

그녀의 말은 어디로 갔을까

말을 가르쳤던 말을 잃고

질풍노도 같았던 말은 노쇠한

말처럼 어느 구석에서

과거의 더 늙은 말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홀로 우두커니

제 속의 말을 만지는 그녀

처음 자신을 어루만지던 따스한

말이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풀어질 때

누르고 눌러 어순을 잃고 퇴적된

자음 모음이 입술에서 부풀어 오른다

 

박선미의 압축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딸의 상실감과 그 이후의 침묵을 깊이 있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말의 부재는 단순한 언어의 상실이 아니라 삶의 근원을 잃어버린 존재의 공허함을 상징하며, 독자에게 진한 페이소스를 안겨준다.

시의 첫 부분에서 어머니의 죽음은 한순간의 사고로 제시되지만, 그 충격은 딸의 내면에 오랫동안 지속되는 심리적 외상으로 남아 있다. 심리적으로 이는 사랑하는 대상을 갑자기 잃었을 때 나타나는 애도 반응의 한 형태로, 충격 이후 감정 표현 자체가 위축되는 침묵의 상태를 보여준다.

유품으로 남은 수첩은 어머니의 삶과 사랑이 압축된 기억의 저장소로 기능한다. 삐뚤삐뚤 적힌 가족 이야기를 마주한 딸은 억눌러 두었던 감정을 다시 경험하게 되며, 눈물은 미처 끝내지 못한 애도의 과정이 현재진행형임을 드러낸다.

시인은 어머니를 말을 가르쳤던 말로 형상화하며 인간 존재의 근원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박선미 시인의 입장에서는 애착 대상의 상실을 의미하는데, 언어와 정서를 함께 배웠던 존재가 사라졌을 때 자아의 일부 또한 함께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에서 입술 위로 부풀어 오르는 자음과 모음은 침묵 속에 퇴적된 그리움이 다시 말이 되어 나오려는 순간을 나타낸다. 박선미의 시는 어머니를 향한 회한과 그리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새로운 언어로 되살아나는 과정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의 깊은 심리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울

 

박이동

 

먹물같이 번져가는 어둠 속

짓누른 어깨만큼 한숨은 세월을 풀칠하고

 

밉다가도 품에 안겨오는 무게로 올라가는 눈금은 행복의 수치가 아닌가 싶다

 

모두가 무거운 짐을 싫어하지만

체구는 작지만 사양 없이

누구에게나 몸을 선뜻 내주며 돕는다

 

숙명처럼 조여 오는 번뇌로 고독한 것들

부르지 않아도 그대 앞에 달려왔다

 

내 품에 안겨오는 그대 몸이 그리워

지칠수록 은은한 빛으로 자리를 내어준다

 

침목의 틀에서도 사랑의 무게를 달며,

 

박이동 시인의 저울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저울을 의인화하여 인간 존재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투영한 작품이다. 시인은 무게를 재는 도구인 저울에 자신의 삶과 감정을 겹쳐 놓음으로써, 세월이 짊어지게 한 고단함과 인간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저울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시인의 자아가 머무는 심리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심리적 관점에서 저울은 타인의 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인의 이상적 자아를 상징한다. “누구에게나 몸을 선뜻 내주며 돕는다는 표현은 타인의 고통과 부담을 외면하지 못하는 공감 능력과 이타적 성향을 보여주며, 이는 저울이라는 대상에 자신의 성격적 특질을 투사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저울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에는 관계를 향한 깊은 애착 욕구가 담겨 있다. 저울은 무게가 올라올 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얻듯이, 시인 역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자 한다. “내 품에 안겨오는 그대 몸이 그리워라는 구절은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드러내며, 저울은 외로움을 견디는 자아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읽힌다.

박이동 시인은 삶의 고통과 번뇌를 단순히 고난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저울은 끊임없이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은은한 빛을 내어준다. 이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타인을 위한 배려와 이해로 승화시키는 성숙한 심리 상태를 보여주며, 고통을 통해 더욱 깊어진 인간적 품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저울은 무게를 재는 사물을 통해 사랑과 책임, 관계와 존재의 의미를 성찰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저울에 자신의 삶을 투영함으로써 인간이 짊어진 무게가 단순한 짐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타인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따뜻한 시선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미더덕 까는 여인

 

청암 배성근

 

바닷바람이 손등에 소금처럼 내려앉고

비릿한 향이 하루를 여는 새벽,

여인은 앉아 작은 우주를 하나씩 연다

 

미더덕 속살을 가르는 칼끝에

파도는 아직도 출렁이고

바다는 손안에서 조용히 숨을 쉰다

 

껍질은 벗겨지고 살은 드러나지만

그것은 해체가 아니라

숨겨진 시간을 꺼내는 일

여인의 손은 거칠어도 따뜻하여

바다의 기억을 다치지 않게 한다

 

한 알, 또 한 알 까낼 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그녀의 침묵은 가장 깊은 언어가 되어

파도보다 먼저 하루를 건너간다

 

휘어진 허리는

평생을 담아온 삶의 무게리라

그 굽은 곡선마다 파도와 바람과

사라지지 않는 기다림이 얹혀 있다

 

그녀는 오늘도 허리를 펴지 않은 채

세상을 조금씩 벗겨내며

다시 살아낼 힘을 건져 올린다

청암 배성근의 미더덕 까는 여인은 바닷가 마을의 평범한 노동 풍경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인은 미더덕을 까는 여인의 모습을 단순한 생업의 현장으로 바라보지 않고, 세월과 노동, 인내와 사랑이 축적된 삶의 상징으로 형상화하며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존중의 마음을 드러낸다.

심리적으로 볼 때 시인은 여인에게 자신의 내면을 투사하고 있다. “숨겨진 시간을 꺼내는 일이라는 표현은 미더덕 속살을 드러내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어쩌면 시인 자신이 지나온 세월과 기억을 더듬어 꺼내는 무의식적 자기 탐색의 과정일 수 있다. 여인의 손끝에서 드러나는 시간은 곧 배성근 시인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자 기억의 결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시인은 노동을 통해 인간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는 성향을 보여준다. 거칠고 굽은 손과 허리에서 고단함만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사랑과 책임, 희생의 의미를 읽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타인의 삶을 외형이 아닌 내면의 역사로 바라보는 공감적 세계관을 반영하며, 시인이 가진 따뜻한 인간애의 근원을 보여준다.

특히 그녀의 침묵은 가장 깊은 언어라는 구절은 시인의 심리적 특성을 잘 드러낸다. 말보다 삶의 태도와 행동 속에서 인간의 진실을 발견하려는 성향이 나타나며, 소박한 이웃들의 묵묵한 삶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관조적 시선이 엿보인다. 시인은 침묵 속에 감춰진 감정과 이야기를 읽어내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제목 미더덕 까는 여인은 한 여인의 노동을 노래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지속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배성근 시인은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 있으며, 그들의 굽은 허리와 거친 손마디 속에서 자신의 지나온 시간과 세상을 향한 애정을 함께 읽어내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여인을 바라보는 시선인 동시에 삶을 견디며 살아온 시인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따뜻한 심리적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고양이가 먹어치운 시

 

청암 배성근

 

고양이는 시를 읽지 않는다

밤새 붙들고 있던 원고를

앞발로 밀어 바닥에 떨어뜨릴 뿐이다

나는 한 줄을 찾기 위해

사전을 뒤적이고

고양이는 한 마리 벌레를 찾기 위해

창가를 뒤적인다

새벽 두 시

겨우 건져 올린 문장 하나가

모니터 속에서 물고기처럼 번뜩일 때

녀석은 하품을 하며

키보드 위를 건너간다

문장은 낯선 기호들 속으로 흩어지고

나는 한동안

그 폐허를 바라본다

이상하게도

애써 다듬은 문장보다

고양이 발바닥이 남긴 흔적이

더 오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서

아침이 오자

원고는 반쯤 사라지고

고양이는 햇살 한 장을 베고 잠들었다

빈 화면 앞에 앉아

먹혀버린 시를 생각한다

어쩌면 시란

끝내 지켜낸 문장이 아니라

한 마리 고양이가 지나간 자리에서

조용히 털어내는

흰 수염 한 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청암 배성근의 고양이가 먹어치운 시는 표면적으로는 고양이와 시인의 일상을 다룬 작품이지만, 심층적으로는 창작의 고뇌와 자아 탐색의 과정을 담아낸 심리적 기록물에 가깝다. 불면의 새벽, 시인은 원고와 씨름하며 자신 안의 고민과 갈등을 마주하고 있고, 고양이는 그러한 내면세계를 비추는 또 하나의 자아로 등장한다.

심리적 관점에서 고양이는 시인의 무의식이 투사된 상징적 존재로 볼 수 있다. 시인이 한 줄의 문장을 찾아 헤매듯 고양이도 벌레를 찾아 창가를 뒤적이는데, 이는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시인과 고양이는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내면을 나누어 가진 분신처럼 읽힌다.

특히 고양이가 키보드 위를 지나가며 문장을 흐트러뜨리는 장면은 창작 과정에서 경험하는 불안과 자기 부정의 심리를 상징한다. 어렵게 완성한 문장이 한순간 무너지는 경험은 완벽한 작품을 향한 욕망과 그것이 좌절되는 현실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며, 시인은 그 폐허를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과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시인이 무너진 문장보다 고양이 발바닥이 남긴 흔적에 더 오래 시선을 머문다는 것이다. 이는 논리와 통제의 영역보다 우연과 직관, 무의식이 남긴 흔적 속에서 더욱 진실한 창조의 원천을 발견하려는 심리를 보여준다. 고양이는 시인의 억압된 자유로움과 본능적 감각을 대신 살아내는 존재로 기능하며, 시인은 그 모습을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흰 수염 한 올은 이 작품의 심리적 핵심을 상징한다. 시인은 시란 애써 붙들어 지켜낸 문장이 아니라 삶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흔적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창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존재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인다. 결국 고양이가 먹어치운 시는 고양이를 통해 자신의 불안과 욕망, 창작의 고독과 자유를 투영한 작품이며, 시인이 새벽의 적막 속에서 자기 자신을 추적해 나간 내면 성찰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무덤덤한 오월

 

백성일

 

세상은 다시 초록의 함성을 지르고

꽃들은 제 이름을 외치느라 분주한데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 같다

 

뜨거운 가슴이 식은 것이 아니라

유난한 계절에도 속지 않을 만큼

세월의 경험이 두꺼워진 것이다

 

추락하는 화려한 꽃잎을 이미 보았기에

그저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에

조용히 눈길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무덤덤함은 무관심이 아니라

오월의 소란함을 묵묵히 품어 주는

삶의 커다란 그늘이다

 

무덤덤한 오월 - 노년의 관조와 삶의 통합

 

이 시는 팔순을 넘긴 노년의 화자가 삶의 절정과 쇠락을 모두 경험한 뒤 도달한 심리적 평형 상태를 보여준다. 온 세상이 초록의 함성으로 들끓는 오월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감정의 소멸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과하며 형성된 내면의 안정감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말하는 잔잔한 호수는 노년기 자아가 획득한 정서적 통합의 상징이다. 심리적으로 이는 외부 자극에 즉각 반응하던 젊은 시절의 자아를 넘어 삶 전체를 수용하는 관조적 자아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뜨거운 가슴이 식은 것이 아니라라는 표현은 노년의 무덤덤함에 대한 중요한 해명이다. 이는 열정의 상실이 아니라 수많은 기대와 좌절을 경험한 뒤 얻어진 현실 수용 능력이자 삶에 대한 깊어진 통찰의 결과로 읽힌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추락하는 꽃잎보다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에 시선을 두는 태도는 일상 주변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서 비롯된다. 노년의 시인은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존재들의 움직임 속에서 생의 본질을 발견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 또한 차분히 정리하고 마무리해 간다.

마지막 연에서 무덤덤함은 무관심이 아닌 삶의 커다란 그늘로 승화된다. 결국 이 작품은 팔순의 시인이 망중한의 시간 속에서 세상의 소란을 품어 안으며, 사물과 계절을 관조하는 시선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통합하고 완성해 가는 성숙한 자아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바람의 빗질

 

백이석

 

볕이 초록을 얹어

아이의 웃음처럼 해맑고 싱그러워

너울너울 춤춘다

 

보리밭 샛길로 열린 하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서로의 몸을 비벼댄다

 

풋풋한 청춘이 타오르나

하늘과 맞닿았나

보릿대가 누워버렸다

 

훠이~ 훠이~

속 타는 주인맘도 모른 채

창공의 종다리 찌이지크 찌이지크

 

바람이 빗질할 때마다

나날이 영글어가는 이삭이

꽃봉오리 타고 일렁이고

 

거친 살점 훑어내니

사타구니 콕콕 찌른다

까끄라기는 보리의 추억이다

 

이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보리밭의 풍경을 단순한 자연 묘사에 머물게 하지 않고, 종다리의 울음과 보리의 몸짓 속에 시인의 내면을 이입시킨 점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영(projection)과 투사(identification)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시인은 보리밭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종다리가 되고, 종다리는 다시 시인의 자아를 대신 노래하는 존재가 된다.

훠이~ 훠이~ / 속 타는 주인 맘도 모른 채 / 창공의 종다리 찌이지크 찌이지크라는 구절은 현실의 노동과 자연의 자유가 대비되는 장면이다. 보리농사는 주인의 근심을 품고 있지만, 종다리는 인간의 걱정과 무관하게 하늘에서 노래하고 있으며, 시인은 그 종다리의 시선에 자신을 겹쳐 놓음으로써 현실의 무게를 잠시 벗어난 자유로운 자아를 경험한다.

보리밭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로의 몸을 비벼대는 모습은 청춘의 집단적 무의식을 연상시킨다. “풋풋한 청춘이 타오르나 / 하늘과 맞닿았나 / 보릿대가 누워버렸다는 구절은 성장과 열망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의 황홀감과 동시에, 그 열정이 결국 자연의 순환 속에서 숙명처럼 눕게 되는 삶의 원형적 과정을 상징한다.

또한 바람이 빗질할 때마다 / 나날이 영글어가는 이삭이 / 꽃봉오리 타고 일렁이고라는 표현은 봄의 보리 이삭을 노래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을 들녘의 벼 이삭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계절의 경계를 넘어 생명의 성장과 결실이라는 원형적 이미지를 환기시키며, 현재의 봄 속에서 미래의 가을을 동시에 바라보는 시간의 중첩 효과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의 까끄라기는 보리의 추억이다라는 시구는 특히 심리적 의미가 깊다. 사타구니를 찌르는 까끄라기는 단순한 촉각적 경험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남겨진 기억의 흔적이며,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삶의 상처와 닮아 있다. 결국 이 시에서 바람의 빗질은 보리의 몸을 다듬는 자연의 손길인 동시에, 시인의 내면을 스쳐 지나가며 기억과 성장의 흔적을 일깨우는 심리적 빗질이라 할 수 있다.

 

뻘배

 

백이석

 

뻘배는

아침마다 갯벌에 엎드려

잠투정하는 애기 같아

눈 비벼가며 기지개 켜제

 

갯벌은

뻘배의 오래된 이불 같고,

진흙은 바다에서 띄운 편지지라

 

뻘배는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꿈을 끌고 간다.

 

노 대신

게 집게발이 반짝거리고

조개 한 바구니가

오늘 바다 일을 대신한다.

 

물이 오면

뻘배는 말없이 일어나

이제 가자, 허벌나게

파도한테 등을 맡긴다.

 

뻘과 물 사이,

그 좁은 길에서

뻘배는

어른처럼 하루를 건넌다.

 

이 시에서 뻘배는 단순한 어선이 아니라 삶을 짊어진 인간 존재의 상징으로 읽힌다. “갯벌에 엎드려 잠투정하는 애기 같아라는 표현은 노동의 도구인 뻘배를 유아적 존재로 의인화함으로써, 인간 역시 자연의 품 안에서 성장하는 연약한 생명체임을 암시한다.

심리적으로 뻘배는 시인의 자아가 투영된 대상이라 수 있다. 시인은 뻘배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겹쳐 놓고 있으며,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꿈을 끌고 간다는 구절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인간의 무의식적 생존 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갯벌은 뻘배의 오래된 이불 같고, 진흙은 바다에서 띄운 편지지라는 시구는 뛰어난 은유와 환유의 수사가 결합된 대목이다. 갯벌은 어머니의 품 같은 무의식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진흙은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기억과 삶의 메시지로 전환되면서 독자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물이 오면 뻘배는 말없이 일어나라는 장면은 인간의 적응 본능과 성숙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융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개성화 과정과도 닮아 있는데, 시련과 정체의 시간을 견딘 자아가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존재의 각성을 상징한다.

마지막의 뻘과 물 사이, 그 좁은 길에서 뻘배는 어른처럼 하루를 건넌다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 상징을 완성한다. 뻘과 물의 경계는 삶과 꿈, 현실과 이상,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이며, 그 사이를 건너는 뻘배는 결국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모두의 초상을 보여주는 존재가 된다.

 

어머니의 안부

 

송선희

 

여름 이면

샤아아~

바람 소리로 사람을 쉬게 하고

이따금 지나가는 마음까지

토닥여 준다

 

여든을 넘긴 어머니는

그 앞에 서서

자기 삶을 보는 듯

밤새 안녕하셨느냐 묻고

준비해온 소주 한잔

뿌려 올린다

 

,,고마워요... ,,

바람 스치는 잎새가

흔들리며 속삭인다

말보다 깊은 인사 처럼

 

 

송선희의 어머니의 안부는 단순히 나무 앞에서 안부를 묻는 장면을 그린 시가 아니라, 먼저 떠난 어머니를 향한 팔순 노모의 깊은 그리움과 회한을 담아낸 애도(哀悼)의 시라 할 수 있다. “밤새 안녕하셨느냐 묻고라는 구절에는 죽음으로 단절된 관계를 마음속에서 다시 이어 보려는 인간의 원초적 그리움이 배어 있으며, 이는 애착 대상의 상실 이후에도 지속되는 심리적 유대의 표현이다.

시 속의 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어머니의 내면에 살아 있는 외할머니의 상징적 대리물이다. 여든을 넘긴 노모가 나무 앞에 서서 소주 한 잔을 뿌리는 행위는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사랑과 그리움을 의례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상실의 아픔을 견디고 정서적 안정을 얻으려는 치유의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시 전반에 흐르는 페이소스는 절제된 언어에서 더욱 깊게 드러난다. 시인은 통곡이나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바람 소리와 흔들리는 잎새를 통해 그리움을 우회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오히려 세월이 켜켜이 쌓인 슬픔의 무게를 더욱 절실하게 전달한다.

셋째 연에서 고마워요라고 들려오는 잎새의 속삭임은 실제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노모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심리적 대화로 읽힌다. 이는 떠난 이를 마음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로 간직하려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이며,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상실은 부재가 아니라 내면의 현존으로 바뀌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감동적인 이유는 한 사람의 사적인 추억을 넘어 인간 생애 전체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시간을 따라 흘러가면서도 끝내 잊지 못하는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과정이며, 송선희 시인은 흔들리는 잎새와 바람의 언어를 통해 그 오래된 그리움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가장 따뜻한 기억임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다.

 

세월

 

윤복희

 

내 손이

언제 엄마 손을 닮았을까

 

보조개처럼 고왔던 손마디

솜사탕처럼 말랑하던 시간이

세월에 닳아

 

거북등 같던 엄마손이

내 손등 위에 올라와 있다

나도 엄마처럼

천천히

저물어 가나 보다

 

윤복희의 세월은 딸이 자신의 손에서 어머니의 손을 발견하는 순간을 통해 자아 정체성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심리적으로 이는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으로, 세월 속에서 형성된 내면의 자아상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보조개처럼 고왔던 손마디솜사탕처럼 말랑하던 시간이라는 표현은 젊음과 행복했던 기억을 상징한다. 이는 과거의 긍정적 경험을 현재의 시점에서 회상하며 정서적 안정감을 얻으려는 회귀적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거북등 같던 엄마 손이 내 손등 위에 올라와 있다는 구절은 시의 핵심적 이미지이다. 실제로는 자신의 손이 늙어가는 모습이지만, 시인은 어머니의 손을 투영하여 세대를 이어온 삶의 흔적과 운명적 닮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노화에 대한 두려움보다 수용의 태도가 강하게 나타난다. 심리학자 에릭슨이 말한 자아통합의 단계처럼 화자는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고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성숙한 자기 이해에 이르고 있다.

나도 엄마처럼 천천히 저물어 가나 보다라는 마지막 고백은 소멸의 슬픔이 아니라 생의 순환을 받아들이는 평온한 성찰이다. 윤복희 시인은 어머니의 손과 자신의 손을 겹쳐 놓음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한 모성의 계승과 인간 존재의 연속성을 따뜻하고도 깊이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발신인

 

윤혜련

 

개나리 명자꽃 앵두꽃

꽃잎 편지를 쓰고

나는 벤치에 앉아 시를 쓴다오

 

발신인이 누구인지 아는 목련은

환히 웃으며 하늘을 보네

 

백일홍 구절초 코스모스

봄 여름 가을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삼동공원 사계

 

아주 먼 겨울 나라

그 어느 별을 지나왔을 주목나무도

숨겨둔 사랑의 징표였을까

눈송이 사이 맺힌 열매 붉기도 하구나

 

그곳에 가면 언제나 그랬듯

동화되었던 풍경 스치는 얼굴

끝내 다하지 못한 말은 여백에 담아

지나가는 구름에 띄우느니...

 

세월은 덧없이 흘러간대도

 

 

*삼동공원: 창원시 대원동 소재 공원

 

윤혜련의 발신인은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을 하늘이 보내온 편지로 형상화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심리적으로 꽃은 무의식이 보내는 정서적 메시지의 상징이며, 화자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읽어내고 있다.

발신인이 누구인지 아는 목련은 환히 웃으며 하늘을 보네라는 구절은 대표적인 의인화 기법이다. 목련의 웃음은 자연 속에 내재된 신비로운 존재와의 소통 욕구를 반영하며, 인간이 지닌 초월적 세계에 대한 동경과 믿음을 투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봄의 개나리와 명자꽃, 여름의 백일홍, 가을의 구절초와 코스모스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전하는 상징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는 인간이 지나가는 계절 속에서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기억을 재구성하는 심리적 과정과 맞닿아 있으며, 자연과 자아의 동일시를 보여준다.

아주 먼 겨울 나라와 붉은 열매를 품은 주목나무의 이미지는 억압된 그리움과 오래된 사랑의 기억을 상징한다. 특히 눈 속에서도 붉게 빛나는 열매는 무의식 깊은 곳에 간직된 애정과 생명력을 드러내며, 상실을 견디게 하는 희망의 원형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끝내 다하지 못한 말은 여백에 담아 지나가는 구름에 띄우느니라는 대목은 이 시의 미학적 정점을 이룬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여백과 구름에 실어 보내는 모습은 부재와 기다림의 정서를 승화시키는 시적 장치이며,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관계와 기억을 이어가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 소망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다.

 

아침이야기 - 여름

 

윤효경

 

새벽안개

들녘을 감사 안으면

이슬이 풀숲에 내려앉고

엉컹퀴 꽃은 이슬로 아침 세수를 한다

 

풀을 베는 농부 손등에

이슬이 떨어진다

풀잎이 흔들린다

 

몰아 내쉬는 숨길에

안개가 흩어지고

옮겨 놓는 발자국 끝에 어둠이 흩어져

아침이 깨어난다

 

지게 등에서 아침이 웃는다

 

윤효경의 아침이야기 - 여름은 농촌의 새벽 풍경을 통해 생명의 순환과 노동의 가치를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시인은 새벽안개와 이슬, 엉겅퀴 꽃을 의인화하여 자연을 살아 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이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감정을 이입하는 심리적 투영의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생명에 대한 경외와 친밀감을 드러낸다.

엉겅퀴 꽃은 이슬로 아침 세수를 한다는 표현은 대표적인 의인화 기법이다. 꽃이 세수를 한다는 이미지는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인간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자연 속에 존재하는 순수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재생 욕구와 희망의 감정을 자연에 투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농부의 손등에 떨어지는 이슬은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노동을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처럼 다가온다. 시인은 농부의 삶과 자연의 움직임을 하나로 연결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공존 관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은 고된 현실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려는 무의식적 의지가 자연 풍경에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안개가 흩어지고 어둠이 흩어져 아침이 깨어난다는 구절은 자연의 변화인 동시에 인간 내면의 각성을 상징한다. 심리적으로 이는 무의식의 불안과 혼란이 걷히고 새로운 의식과 희망이 떠오르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은 인간 정신의 성장과 회복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지게 등에서 아침이 웃는다는 표현은 이 시의 주제를 집약하는 의인화이다. 아침의 웃음은 가난한 농촌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농부의 낙관적 삶의 태도를 상징한다. 윤효경 시인은 자연에 대한 투영과 의인화를 통해 고단한 삶을 초월하는 생명력과 창조적 의지를 노래하며, 독자에게 따뜻한 위안과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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