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14 (511)
누가복음 9장 23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5장 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은혜의복음 7색 감사기쁨찬양기도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이라는 요소를 다룰 때,
자아의 죽음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삶과 사역에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요소인,
자기십자가 지기 즉 자아의 부인, 자아의 죽음에 대해 좀 더 나누고자 합니다.
탐욕적인 자아가 파쇄당하고 죽지 않으면, 주님의 일도 세속적인 자기영예, 자기영광, 자기성공을 위한 것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현상입니다.
위대한 대장부이자 훗날 제국의 임금이 된 니므롯은 자기권세와 자기영광을 위해, 하늘 높이 탑을 쌓고 그 탑 위에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하나님을 잘 예배하자고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을 비롯한 원로들은 물론,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신뢰하고 그를 따라 바벨성과 바벨탑을 열심히 쌓았습니다.
니므롯은 원래 위대한 전사에다 외견상 훌륭한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이 먹혀들었을 것입니다.
창 10:9 참조.
그러나 그의 내면은, 자기욕망과 세속애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를 구경하려고 하늘의 하나님이[이 땅에 태어나시기 전의 성자하나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곳에 내려오실 정도였으니, 그 대역사가 얼마나 크고 웅대하고 굉장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5
그러나 그 대역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세위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니므롯의 자기영광, 자기제국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으므로 하나님이 이를 무산시켜버렸죠?
노아시대 대홍수 이후 하나님의 간절한 뜻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으나,
바벨성과 바벨탑 건설의 주도자 니므롯은, 끝까지 그곳 바벨에 남아 성 쌓기를 끝내 완성하고 거기서 왕이 되며 그 후 자기 영토를 계속 넓히면서 성을 쌓았습니다. 창세기 10:10-12.
자아탐욕의 죽음은 주님의 나라, 주님의 교회, 주님의 일을 세워나아가는데 있어서, 그러므로 너무나도 절실하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건입니다.
우리는 니므롯과는 전혀 다른 동기로 전혀 다른 나라를 세워나아가야 합니다. 니므롯은 자기영광을 위해 자아의 탐욕으로 자기제국을 세워나아갔으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아가야 합니다.
니므롯이 자아의 탐욕과 인간적 열심으로 각지에 성들을 건설하고 자기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면, 우리도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교회들을 세워나아갈 수 있습니다.
1.
자기십자가 지기 혹은 자기부인은 날마다 고통 중에, 고난 중에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했죠?
또한 누구나 순교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아가, 자기의 역량, 재능, 지성, 자기의 타고난 모든 좋은 것들을 부인하고 죽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엡 5:29 참조.
일보 더 전진해, 물질적, 경제적인 어려움, 육체의 질병, 인간관계의 고통, 일의 고됨 등등 외적인 고난들 그 자체는 자기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존재합니다.
그럼 그들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있나요?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405 (458)
2.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자기 부인은 무슨 뜻인가?
십자가는 예수님이 처형당한 형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죽으라는 뜻입니다.
자기 부인도 같은 뜻입니다.
자기 십자가 지기 = 자기 부인.
“날마다”라는 수식어가 붙었죠?
그러므로 이는 순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순교가 요구될 때는 순교해야 하지만),
매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즉 자아의 탐욕을 죽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일 2:16
음욕에 사로잡힌 마음, 자기 눈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마음, 높아지려는 마음, 세상 사람들이 자랑거리로 삼는 것들을 삶의 목표로 추구하는 마음 등등,
이것은 죄다 자아욕망의 문제입니다.
3.
우리의 그런 것들 즉 자아의 욕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사실상 이미 죽었습니다.
갈 2:20.
나의 혈기성, 음란성, 교만, 세상의 돈과 명예와 권력에 대한 탐욕, 미움과 증오 등이 주님의 십자가에서 처리되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죽어야 합니다. 모순이죠?
원칙적으로 죽었어요.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는, 죄성이 아직 우리 심령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러므로 매일 나의 탐욕적 자아나 죄성은,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고백하며
또한 매일 죽여야 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것이 자아의 죽음, 자기십자가 지기, 자기부인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280 (338)
4.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신앙의 덕을 위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전적 이익을 얻고자 불의와 불법을 저지르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국가, 사회, 학교, 회사, 기타 어떤 직장, 단체, 모임 그리고 가정에서, 부당한 박해와 불이익을 당할 때,
이를 피하고자 세상에 순응하거나 굴복하거나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순결한 신앙을 지키며 견디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행위입니다.
벧전 2:19
이 경우의 고난은, 우리가 “자기 십자가”라고 지칭할 수 있습니다.
순교를 당해야 할 때, 이를 피하지 않는 것도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성공주의, 세상에의 영합주의, 타협주의, 구차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한 심령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를 위해서 피할 수 없이 당해야 할 고난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자기 잘못 때문에 사회나 직장이나 어느 곳의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당할 때,
이를 십자가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벧전 2:20
“겟세마네 동산의 주를 생각할 때에 내게 주신 십자가 사양할 수 있을까
나를 항상 버리고 주를 따라 가겠네.“
457 (510)
5.
대개 자아의 죽음, 광야의 연단을 거치며 이루어집니다.
자아의 욕망과 죄성은 너무나도 끈질기므로
하나님께서 불같은 시련을 주실 때 처리됩니다.
그렇지 않고 순탄하게 자아를 처리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다윗도, 요셉도, 모세도, 다니엘도, 광야의 이스라엘도 모두 광야의 시련을 거치며 연단을 받고 자아의 욕망이 죽어갔습니다.
광야를 지나며
6.
그러나 광야를 지나며 자아가 죽어가는 과정은, 음울하고 힘겹고 고통스런 삶이 아니라 항상 기뻐하는 삶입니다.
천국 소망 때문에 기뻐하고
성령으로 기뻐하며
이 땅에 사는 동안, 먹고 마시고 기뻐합니다.
자아의 죽음은 나의 영적 성장이므로 우리는 또한 기뻐해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 자아의 죽음에 대해 계속 이어서 나눕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272 (330)
샬롬.
2026. 6. 7. 초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