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시편 37:4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로다."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202 (241)
지난 시간에 우리는 자아의 죽음, 십자가 지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첫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즉 모든 탐욕과 교만, 증오, 음란 등을 십자가 못박아 죽였습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시인하면서 자기 탐욕을 죽이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행위입니다.
둘째, 가정, 직장,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정당한 고난도 자아가 죽는 과정이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행위입니다.
자아가 죽는 과정은
보통 광야를 통과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고통스런 삶이 아니라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입니다.
자아가 죽은 사람은,
참으로 존귀한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은 자아가 죽을 때, 어떤 귀한 은혜가 임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광야를 지나며
자아가 죽으면,
1.
자신의 비전이나 꿈, 어느 방면에서의 성공을 향한 목표가, 자아의 욕망이라는 잘못된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점검하게 됩니다.
잘못된 동기에서 나온 것이고,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중간에 많은 갈등을 겪지만 결국은 과감히 버리게 됩니다.
자아가 죽은 사람은, 성공주의(성공을 자기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는 것)를 버립니다.
자아가 죽은 사람은, 바알신앙을 버립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바알신앙은,
조상들의 하나님이자 자기 민족의 하나님인 여호와도 섬기고, 동시에 이방신인 바알도 섬김으로써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자 했던, 물질주의, 기복주의 신앙이었습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으로 알려져 있었으니까요.
이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고자 한 잘못된 길이었습니다.
성공주의는 현대판 바알신앙이며 우상숭배입니다.
성공주의를 버리면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고 무거운 짐이 사라집니다.
그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게 아니며, 인생을 게으르게 대충 사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삶을 새로운 목표 위에 올려놓고 더욱 알차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공주의와 자기욕망에서 나온 꿈을 포기하면 주님이 진정한 꿈과 참다운 비전을 주십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놀라운 희망과 기쁨과 자유가 있습니다.
이 꿈과 비전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잠 10:24, 28, 시 37:4
자아가 죽기 전에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비전과 꿈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꿈과 비전은, 자아가 죽을 때 진정으로 주의 영광을 위해 아름답게 성취됩니다.
주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아가 죽지 않은 사람은, 오로지 자기 욕망의 충족을 위해 주님보다 그 꿈을 최고의 인생 목표로 삼고 추구합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과의 교제생활, 기도생활을 게을리하며,
하더라도 형식에 치우치고 오로지 일하기에만 바쁩니다.
그리고 마음은 항상 컬컬하고 답답하고 뭔가에 쫓기고 불안하며, 기쁨과 행복이 없습니다.
일이 잘 될 때도, 안 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아가 죽어 오직 그리스도 얻기를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추구할 때,
주께서 주신 비전과 꿈이, 그 목표 아래에, 그 목표에 이바지하도록 정렬되고,
진정으로 아름답게 성취됩니다.
마 6:33
중국의 유명한 전도자 워치만 니는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받아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후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불후의 명작 <영에 속한 사람>을 내놓은 게, 25세 때였습니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그보다 한살 많은 장품혜라는 자매와 사귀고 있었습니다.
워치만 니가 회심한 후, 성령께서는 그에게 장품혜와 헤어지라고 요구하십니다.
당시 장품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였고, 워치만 니의 권유에도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워치만 니는 그녀를 깊이 사랑했죠. 그녀는 대단한 미녀였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다른 것은 다 내어놓을 게요. 순교하라면 순교도 할게요. 그러나 장품혜는 아닙니다. 그녀만큼은 내가 버릴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지속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안 된다. 그녀와 헤어져라. 내가 다른 것은 네게 원치 않는다. 다만 그녀와 헤어져라.”
수많은 고뇌와 갈등을 겪다가 결국 워치만 니는,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자신의 꿈과 사랑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 21살이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1934년 어느 날 상해에서 열린 워치만 니의 집회에서, 워치만 니와 그녀는 극적으로 재회하게 됩니다.
그 때 워치만니는, 장품혜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당시의 유명한 사립대인 연경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의 상황에서는 매우 드물게 영문학 석사학위까지 받은 후였습니다(당시의 석사는 교수급임), 그녀는 영어에 능통했으며 연경대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였다고 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됩니다.
자비로우신 우리 주님은 장품혜를 워치만 니에게서 빼앗아간 게 아니라,
그녀를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자 영어에 능통한 수재로 만들어 놓고, 그 둘을 결합시키셨던 것입니다.
그 후 그녀는 워치만 니의 저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등, 그의 큰 조력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아가 파쇄당해, 자기 욕망이나 꿈이나 어떤 것을 버려야 할 때, 그 때는 그것이 슬픔이고 상실이고 고통일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자비로운 주님이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30배, 60배, 100배, 천배로 되돌려 주십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369 (487)
2.
자아가 죽은 사람은, 자기 견해, 자기 생각, 자기 관점을 내려놓고 주님의 견해, 주님의 뜻, 주님의 관점 즉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롬 12:2
자기 견해가 주님 앞에서 죽은 사람은,
남이 무슨 견해를 말할 때, 그것이 명백히 비성경적이지 않은 이상,
그 견해를 함부로 반박하지 않고 항상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수용하려 합니다.
논쟁을 벌이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주장, 자기 견해가 강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어느 주제에 대해 대화를 시작하면
거의 논쟁으로 비화됩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화목과 서로사랑을 해치는 매우 무서운 요인입니다.
자기 견해를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더라도, 항상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반박하지 말며,
남을 나보다 나은 사람, 나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고,
빌립보서 2:3
서로사랑과 화목을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나 가나안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246 (221)
3.
자아가 죽지 않으면
우리의 영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자아의 욕망이 심령을 사로잡고 있으면, 신령한 은혜들이 가로막힙니다.
세인들이 추구하는 것들은,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이고, 우리가 천국으로 가져가지 못할 것들이며,
그것들을 추구하면, 우리의 영원한 기업, 재산이 되시는 그리스도와 천국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평생동안 자아의 욕망을 추구하다가,
영혼은 구원받았지만 천국에 가져갈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다면,
이는 얼마나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입니까?
그러나 자아가 죽으면, 우리의 신앙인격은 정금처럼 빛나고 아름다워지며 순결해집니다.
욥 23:10
또한 우리는 주님이 사용하시기에 좋은, 깨끗한 그릇이 됩니다.
딤후 2:20-21
더 나아가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불이익, 배척, 질시, 핍박, 고난을 당할 때, 이를 견디고 주를 따른 사람은 하늘에서 큰 상을 얻게 됩니다.
마 5:11-12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14 (511)
4.
자아가 죽으면 우리의 비전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며 그 비전에 따라 살게 됩니다.
즉, 자아가 죽은 사람은, 그리스도 얻기를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그리스도 얻기를 삶의 목표로 추구하도록 돕는 자가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자아의 죽음은 하나님나라의 확장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5.
자아가 죽으면,
매사에 내게서 그리스도의 뜻, 그리스도의 계획, 그리스도의 기쁨, 사랑, 거룩함이 나타나므로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주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아름답게 성취됩니다.
이사야 43:7
요셉의 자아가 감옥에서 완전히 죽었을 때,
그는 이집트백성과 그 근방 여러민족들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자아가 광야에서 사울에게 쫓겨다니며 죽었을 때,
그는 이스라엘 왕이 되어, 수많은 백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다윗이 왕궁의 안락한 침실에서 주님과의 교제를 게을리하며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삼하 11:2), 그의 자아는 속에서 꿈틀거리고 일어납니다.
결국 그는 크나큰 죄들을 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아는 항상 죽여야 하고, 이를 위해 주님과의 교제에 늘 힘써야 합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95 (82)
샬롬.
2026. 6. 14. 초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