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빼앗아 가시는 것은, 우릴 더 존귀하게 만들어 우리에게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돌려주시기 위해서다(1)

작성자봄설|작성시간26.06.22|조회수33 목록 댓글 0

딤후 2:20-21, 야고보서 5:11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95 (82)

 

 

어쩐 일인지 모르나,

난 16-17세 소년시절에 예수님을 믿은 후,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 거의 언제나 감동이 임하고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그로부터 요셉이 그리워졌고, 요셉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웬일인지 내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요셉이었습니다.

 

하나님은 17세의 소년 요셉에게서 가혹하게도(?)

모든 것을 빼앗아 가셨으나,

그 후 자비로우신 우리 주님은 그를 정금처럼 만드시고 그에게, 빼앗아 간 것의 몇 십배, 몇 백배로 많은 것을 되돌려주셨습니다.

 

오늘부터 이 주제를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1.

알다시피, 금광석은 단련해야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전한 정금으로 거듭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단련을 받아 순결한 은처럼 변하면,

그는 거룩하고 깨끗하고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변할 때, 주인이 귀하게 쓸 수 있는 좋은 그릇이 됩니다.

 

성경에서 연단의 대명사를 들라고 하면, 욥이죠.

 

물론 욥 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도 그와 비교하긴 어렵지만 다른 종류의 혹독한 연단을 받았고, 다윗도 역시 그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많은 연단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모세는 그들과 전혀 다른 연단의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들은 각각  서로 다른 환경의 연단을 받아서

정금같은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받은 연단의 종류는 달랐으나,

그 효과는 동일했습니다. 거룩하고 순결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는, 지혜가 충만하고 존귀한 사람,

하나님의 기쁨, 사랑, 거룩함과 지혜를 얻어 누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길도 서로 다르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연단의 형태도 상이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모두를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기쁨, 사랑, 거룩함, 지혜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연단의 양태는,

각자에게 가장 잘 맞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 주님 보시기에 가장 선한 방법이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길을 가는데 있어서,

주님이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연단하시는 것에 대해 항상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왜냐하면, "주께서 주신 결말"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분으로서, 우리에게 최선의 결과를 안겨주시며

우리를 존귀한 주의 자녀로 만들어주십니다.

 

 

날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1, 2절)

303 (403)

 

 

2.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서, 야곱에 의해 장자권자로 지명되었습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빌하와 함께 아버지의 침상에 올랐기 때문에, 

장자권을 박탈당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은 야곱을 이어 그 가문의 왕이 될 태자 혹은 세자가 된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이 때문에

형들이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해서 그를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렸지만,

이면적으로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세우실 뿐만 아니라

애굽을 중심으로 한 당대 근동 세계의 구원자로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의 시작이었습니다.

 

요셉의 스토리는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지만,

오늘 우리는 "빼앗아가신 후 연단을 거쳐,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이, 더 크게 되돌려주심"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요셉이 받은 연단에 대해서는 

하도 많이 들어서 누구나 그 이야기가 귀에 익을 것입니다.

 

요셉은 야곱 가문의 장자권자로 지명된 후 무엇을 잃었고 나중에 무엇을 얻었던가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복 형제들의 미움을 받았고, 낯설고 물설고 언어까지 다른 외국, 애굽에 팔려 감으로써, 가족 모두를 잃어야 했습니다.

가족 뿐만 아니라 고향집도, 장자권자의 지위도, 고향에서의 안락한 삶도, 

종들로부터 섬김과 대접과 예우와 존경을 받는 삶, 그리고 물질의 풍요도 죄다 잃어야 했습니다.

 

그의 집은 극히 부유했고,

남녀 하인들도 1천명 내지 3천명 이상으로 아주 많았으며,

장자권자로서의 그의 위세는 당당했습니다.

 

{ 주 1.

야곱이 요셉을 낳을 때 나이 91세 정도였고, 요셉이 태어날 때 그의 할아버지 이삭은 151세 정도였습니다.

요셉이 9살 정도 되었을 때 할아버지 이삭이 160세로 돌아가셨고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를 제치고 그 집안의 장자권자였으므로,

종들을 포함해 이삭의 모든 재산은 아마도 대부분, 에서 아닌 야곱에게 상속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원래 자신이 사들인 수많은 종들 외에 아버지 이삭의 종들까지 물려받았으니,

야곱의 집은 하나의 작은 유목 국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때 이미 1천명 이상의 종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삭에게 상속되었습니다.

 

야곱의 친속 가문 72명이 애굽으로 들어간 후 

출애굽 당시 그들의 순수 혈통한 200여만이 된 게 아닙니다.

이는,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언약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모든 종들과 중다한 잡족들까지 포함된 숫자입니다.

종들은 주인의 소유물이었고,

이스라엘은 일부다처의 풍습으로 많은 자녀를 생산했기 때문에,

고대에 사망율이 높았더라도 별 무리 없이 200 - 300여만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하루 아침에 요셉은

이 모든 부귀와 당당함과 존귀한 지위와 안락한 삶과 가족과 종들과 자기 소유물과 모든 것을 잃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일신의 자유까지 박탈당한 가운데,

혈혈단신, 노예의 몸으로 이집트에 팔려갑니다.

 

이집트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매입된 요셉은,

특히 돈과 재물과 여자에 대한, 정직과 진실과 순결의 측면에서 연단을 받으며

보디발의 신임을 얻어 약관 23세 무렵에 그 집의 가정총무 즉

집안의 모든 재산과 종들을 다스리는 우두머리가 됩니다.

 

보디발은 왕의 신변을 호위하는 시위대장이었으므로 위세가 당당하고 부유하며 왕의 신임을 받는 자로서,

아마 남녀노소 종들을 적어도 수십 명 내지 수백 명은 거느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들 모두의 우두머리가 된 것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집안 재산과 남녀 종들을 맡기면서, 여종들을 원하는 대로 다루어도 되나,

자기 아내만큼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고 엄명했습니다.

창세기 39:8-9

 

물론, 그가 처음부터 돈에 정직했기 때문에, 그리고 여자들에 대해 순결했기 때문에

보디발은 그를 가정총무로 삼은 거죠.

 

당연히 보디발은 요셉의 집을 따로 마련해주고 요셉은 보디발의 대 저택으로 출퇴근하게 됩니다.

창세기 39:11

 

요셉의 지혜와 총명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지혜와 총명이 없었다면, 가정 총무가 되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불가능하고요.

 

거기서 보디발의 아내에게 순결의 시험을 받았지만

(보디발의 아내가 일부러 시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키고 요셉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가서 애굽의 언어를 단시일에 익히고 애굽의 학문을 부지런히 습득하는가 하면,

매일 모국어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 요셉은 도대체 어떤 시련과 연단을 받았던가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1, 2, 4절)

338   (364)

 

3.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가 되어 

종들 중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몸으로서 살아가고 있을 때 

어쩌면 요셉의 자아가 슬그머니 살아나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가 순결을 지킨 대가로(?) 

인간적으로 말해, 참으로 가혹하게도, 그를 아예 지하감옥에 가두어버리고 맙니다.

 

 

{ 주 2.

요셉이 갇힌 시위대 뜰의 감옥은 지하감옥이었습니다. 

창세기 40:15의 "옥"은 히브리어 "보르"로서 원래 물웅덩이나 구덩이를 뜻합니다. 

이로 보건대 그 감옥은 지하를 파서 만든 감옥이었음이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여러 영역 성경들은, 이를 dungeon[지하감옥] 혹은 pit[구덩이]로 번역했습니다.}

 

주님이 요셉으로부터 최후로 신체적인 최소한의 자유까지 빼앗아 가셨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도 빼앗아가셨습니다.

 

절망과 죽음의 위협 앞에 서지만,

거기서도 요셉은 그 시험을 이기고 이를 살아내었습니다.

 

최후의 절망은 종종, 험난한 연단의 종착점이 됩니다.

 

그 종착점에 다다르자,

자비로우신 우리 주님은 일약 그를 이집트의 총리로 세우십니다.

애굽 왕은, 

지금의 영국이나 일본과 유사하게, 국왕으로서의 신분과 지위만 유지하고

요셉이 실질적인 국가 통치를 수행하게 됩니다.

창세기 41:40-43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된 배경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말을 하지만,

요셉이 철저한 실력으로, 오직 실력으로 총리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모세가 특기할 정도의(창 39:8) 절세미남 요셉의 외모에서 풍기는,

비범하고 총명하고 아름답고 위풍당당하고 헌헌대장부다운 인상은 뒤로 돌리고,

바로의 꿈에 대한, 애굽 전국의 유일무이한 해몽자라는 타이틀을 앞세운다 하더라도,

그 중심에는 

사람들을 감복하게 만드는 놀라운 실력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나의 판단입니다.

 

꿈 하나 잘 풀었다고 하여

뭘 믿고, 갓 30세의 외국인 종을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로 세워요?

 

이스라엘과 고대 근동의 학문에 두루 통달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를 느부갓네살 왕이 여러 질문으로 시험해볼 때

왕은 그들의 지식과 지혜가 온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10배나 나음을 깨달았습니다.

다니엘 1:19-20

 

느부갓네살왕도 다니엘과 세 친구를 철저히 검증해 본 후에

왕실의 환관으로 세웠을진대,

당시 애굽왕이 얼간이가 아니라면,

어찌 일국의 총리, 그것도 왕 대신 전국을 통치하는 최고 권력자를 세우는 이 중차대하고 엄중하고 결정적인 판국에,

요셉이라는 히브리인 청년을 철저하게 살펴보고 검사하고 시험해보고 그의 실력을 검증해보지 않았겠습니까?

 

고대의 나라통치가 무슨 어린애 장난이었습니까?

우리의 성경 이야기가, 비현실적이고 터무니없는 동화란 말입니까?

 

성경의 기록에는 없지만, 아마도 이집트 왕과 대신들이 요셉을 시험해볼 때,

요셉 역시 그의 탁월한 지혜와 지식을 그들 앞에서 유감없이 발휘했기 때문에,

몹시 감탄하고 탄복한 대신들은, 

국왕이 그를 총리로 세울 때 별 이의를 달지 못했을 것입니다.

 

46살의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까지 해가며 자기 모사로 모셨을 때, 

제갈량의 나이가 불과 26세였지만, 그의 학식과 지혜는 군계일학이었습니다.

나이 30세의 요셉은 그와 흡사한 것 같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신령한 지혜와 성령의 충만함까지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41:38-39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1, 2, 4절)

354   (394)

 

4.

그러나, 이로써 요셉의 모든 시험과 연단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입니다.

 

마지막 시련, 지금까지 받은 13년 동안의 연단보다

더욱 가혹하면서도 달콤한 시련, 훨씬 더 긴 세월의 단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시험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나요?

네, 권세와 풍요의 시험이었습니다 !

 

그것들이 큰 시험거리라는 사실은, 성경의 다른 인물에게서 명확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다룹니다).

 

(1)

그것은 사람들이 시험인지도 모른 채, 두 눈 벌겋게 뜨고서 당하는, 가장 교묘하고 무서운 시험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성도들은 이를 시험 혹은 시련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권세와 풍요가 다가오면,

100이면 100,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 혹은 운이 좋은 것, 또는 자기가 잘난 것으로 인식하지만,

그것들이 가장 무서운 시험과 연단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아채지 못합니다.

 

비천한 자를 하루 아침에 권력자로 세워놓으면,

열이면 열 모두, 극히 교만해져서 죄다 사람이 망가지고 타락하고 무너지고,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듯 변질되어 버립니다. 

 

풍요의 시험도, 그에 못지 않게 혹독합니다.

가난을 견디며 이기는 자가 100명이라면, 

가난 후 갑자기 찾아오는 풍요를, 영적이고 신령한 차원에서 견디며 이기는 자는 1명도 찾기 힘들다는 것이

관찰결과입니다.

 

하루 아침에 일약 대제국의 최고 통치권과 아울러 엄청난 부요를 거저 받은 요셉은 어땠을까요?

그가 망가지고 타락했다는 증거는 성경에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기도에 힘쓰면서 이집트 백성을 충성스럽게 다스리고,

자기 자손들과 이스라엘 백성을 영육간에 잘 기르며

 

이집트 왕실의 진귀한 고서들을 섭렵하고,

자기 가문의 선대 기록들을 참고해 자기 조상들의 역사를 편찬하는가 하면(아마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말년에 자기 유골을 약속의 땅 가나안의 선영으로 가져가라고 부탁했습니다.

창세기 50:21 이하.

 

(2)

이 권세와 풍요의 연단은, 이를 잘 견디고 이기는 자에게 어떤 유익을 줄까요?

그가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지게 만들고,

가난하고 비천할 때보다 하늘에 훨씬 더 많은 상급을 저축하게 해줍니다.

 

그 권세와 재물을 이용해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령한 지혜와 하나님 경외하는 법, 복음을 가르칠 수 있고,

많은 사람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3)

반면에, 권세와 물질의 풍요에 넘어지는 자는,

즉 그것을 이용해 죄악에 빠지거나 재물을 사랑하게 되면,

그것은 그를 아주 멸망하게 하고 그가 천국에 들어갈 길을 막아버립니다.

 

따라서, 가난과 억압과 질고의 연단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

권세와 풍요의 시험입니다.

 

5.

그러므로 풍요와 안락이 찾아올 때,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더욱 경성해서 기도하고 주님을 간절히 찾아야 하며

오직 그리스도 얻기를 목마르게 구하고, 주님을 사모하며 그리워해야 합니다.

 

요셉이 고난 가운데서 뿐만 아니라 권세와 풍요를 얻은 중에서도

그 모든 시험들을 이긴 비결이 무엇일까요?

물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가 늘 주님과 깊이 교제하고 주님을 사모하며 사랑한데, 그 비결이 있었습니다.

기도생활 없이는 고난과 역경 뿐만 아니라 권력과 풍요의 시험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그가 권력과 풍요와 안락한 침실의 시험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고난 중에 놀라운 내공을 길러놓았을 뿐만 아니라,

풍파가 사라진 후에도 힘써 주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 항해는 평생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천과 가난의 시절에 주님을 간절히 찾다가도

권세와 풍요의 때가 오면

주님을 덜 찾고 형식적으로 찾으며

혹은 아예 찾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고난 중에 제아무리 놀라운 내공을 쌓았다 하더라도

그 내공은 어느 새 모래성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권력과 인기와 풍요의 시험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오직 습관에 따라

기도에 힘쓰는 것만이 유일한 승리비결입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364   (482)

 

(요셉이 이집트 총리로 등극한 이후에 주님으로부터 돌려받은 것들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눕니다.)

 

샬롬.

2026. 6. 21.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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