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詩集)을 짓다
윤명수
팔릴 가망도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시집을 지었다
그래도 쪽박 차지 않고
신접살림도 차리고
자식도 낳아 길렀다
갈 때 안 갈 때 다 싸돌아다니며
설한풍도 화염 염천도 잘 견뎌 냈다
과연 내가 이래도 되나?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딴에 시집 짓느라 죽을 시간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십 원 한 픈도 방세를 올린적이 없는데
세입자 한 사람 찾지 않는 빈집이다
문득 정신 차리고 뒤돌아보니 그동안 애먼 사람만 숱한
고생을 시켰구나 하는 회한이 밀려왔다
차라리 아파트 공사장에서 비계라도 타보지 그래 이제 와서
그 무슨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
도대체 그 집에는 어떤 작자가 살고 있나 살펴보았더니
뜬구름 잡아먹고 바람 똥이나 싸지르는 한심한 빈 손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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