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님달님 호랑이동화
호랑이가 어머니를 잡아먹고 그 슬하의 남매까지 잡아먹으려다가 하늘에서 썩은 동아줄을 내려 주는 바람에 호랑이는 죽고 남매는 하늘로 올라가 햇님 달님이 되었다는 이야기죠.
그러나 이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호랑이 이야기를 뒤엎어 놓은 이야기란 점과,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 때라는 것도 고려된다면 이야기의 핵심은 크게 다르게 파악되어야 합니다.
그 호랑이는 한국호랑이라기보다는 한국호랑이의 탈을 뒤집어 쓴 일본의 마수를 형용하는 자들로서 민족의 독립투쟁과정을 표현하는 동화일 수 있고 일본의 앞잡이들인 매국노들을 형용하는 동화일 수 있습니다.
대개 이 동화는 매국노나 친일하던 집 자식들은 들을 기회가 없어서 잘 모른다고 합니다만…….
일단 민족의 고난을 돌파할 기력을 일깨우는 큰 교혼이 암시적으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한편 햇님과 달님은 곧 태극의 상징인 음양을 암시하므로 장차 민족의 장래를 예언한 것일 수 있다고 봅니다만 나의생각의 일부는 하늘에서 동아줄을 내려 주었다는 사대주의적인 냄새가 없이도 않아 섭섭한 구석도 있습니다. 여하간 우리민족의 8.15해방은 우리능력이라기 보다는 절망 속에 허덕이던 중에 우연치 않게 가야말로 하늘이 동아줄을 내려주어 겨우 태극기를 달고 살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니만큼 이 동화에서 풍기는 예언서 같은 의미도 음미할 만합니다. .
떡장수를 하는 어머니가 집에 가는 길에 호랑이를 만났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라는 말에 떡을 주지만 호랑이가 계속 앞질러 가서 떡을 내놓으라는 말에 계속 떡을 내주다가 결국 떡이 다 떨어져 버리는 부분까지는 같습니다.
호랑이는 또 다시 어머니를 앞질러 가서 그녀를 막아섭니다. 이에 그녀는 다른 팔 하나를 내줍니다.
양 팔을 잃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집으로 가는 어머니 앞에 또다시 호랑이가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다리 하나를 주고 놓여납니다. 어두운 밤 험한 산길을 어머니는 깽깽이발로 힘겹게 힘겹게 나아갑니다.
그러나 양 발로 가도 호랑이보다 늦는데 깽깽이발로 가니 오죽하겠습니까. 호랑이는 다시 한 번 그녀를 앞질러 가서 나타납니다. 결국 그녀는 남은 다리 하나도 마저 내 주고 겨우 놓여납니다.
몸뚱이만 남은 어머니는 그래도 안간힘을 써서 버르적거리며 앞으로 계속 기어갑니다. 호랑이는 그런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을 비웃듯 다시 한 번 앞질러 나타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서양문물을 앞질러 흉내 낸 것을 비유한 대목입니다.
그리고는 떡도, 팔도, 다리도 이미 없는 그녀에게 차가운 비웃음을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내놓을 것이 없는 그녀는 절망합니다. 그리고 호랑이는 교활한 웃음과 함께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떡도 없고 팔다리도 없네. 어쩔 수 없지. 잡아먹을 수밖에 없겠는걸."
덥석~ 와그작와그작~ 이렇게 그녀는 호랑이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한 끝에 처참하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이것이야 말로 잔혹한 일본 놈들의 고유한 습성이자 못된 수작을 표현한 것이지요.
어린 시절 이걸 읽었을 때 이 과정의 정경을 상상하니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더군요.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을 훨씬 우월한 위치에서 비웃듯이 가지고 놀다가 급기야는 잡아 먹어버리는 호랑이. 우리네 민화의 호랑이는 멍청하고 순하고 사람에게 잘 속는다지만 적어도 이 녀석만큼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더군다나 이 호랑이는 어머니를 잡아먹고 나서 남매를 잡아먹으러 가죠. 그런데 호랑이가 어머니에게 집을 따로 물어 본 것도 아닌데 남매의 집은 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결국 아무리 봐도 이 호랑이는 홀어머니와 남매가 살고 있는 이 집을 미리부터 범행 대상(…….)으로 찍어 뒀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는 겁니다.
일단 떡을 팔러 나갔다 돌아오는 어머니의 동선을 파악했다가 위에도 적은 것처럼 그 동선을 따라가며 철저하게 농락한 다음 잡아먹고, 그러고 나서는 어머니가 돌아갈 즈음의 시간에 맞춰 집으로 가서는 남매까지 속여서 잡아먹으려 하지요. 그 꾀며 그 잔인성이며, 뭘로 보나 무시무시할 만큼 소름끼치는 녀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호랑이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수수밭에 떨어져 죽게 되거니와, 수라는 곡식 역시 우리민족이 애착을 갖는 방패막이 음식이자 유익한 곡식이라는 점도 의미 있는 대목이지요.
어린 시절의 감상으로 보나 지금의 감상으로 보나 이렇게나 교활하고 잔인한 녀석이 그저 그냥 수수밭에 떨어져 죽는 것 정도로는 좀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던 때가 일제치하입니다
평범스럽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이렇게 까지 잔혹하게 어린마음에비쳐진 것은 일제가 한창 우리민족을 잡아 먹고 나서 다시 중국을 침공하던 중일전쟁이막바지에 이르고 한편 세계대전의 문턱에 다다른 시기인 나의 유아시절이였는데 이대에 등장한 호랑이는 한국적인 후덕한 인상은 간곳없고 그야말로 잔인하기 짝이 없는 흰자질 눈망울을 한 일본 호랑이인 듯하다
대나무 밭에 가만히 숨어서 길가는 사람을 바라보다가 약해 보일 듯 한 사람만 잡아서 먹는 그런 비열한 호랑이였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어렵고 힘든 때를 만난 나의 일생에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안간 힘을 다해 벗어 나려고한 소년시절의 이 햇님 달님과 호랑이 이야기를 연상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정겹고 마음씨 좋은 한국호랑이는 어디로 가고 몰인정한 흰자위 눈깔의 왜놈들 식을 등장시킨 배경을 보면 아마도 극도의 위난에 달한 우리민족이 수난을 겪던 시기에 더 이상은 갈 곳을 잃은 막다른 처지에 처한 때에 생각해낸 지혜로운 자의 위기탈출을 가상한 자립정신을 부어 넣어 준 동화라고 봅니다.
일본이 우리를 야금야금 침략하여 들어오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 효과와 마지막 민족의 정신이자 희망인 아이들, 그 남매를 잡아먹으려고 온갖 꾀를 내어 아이들을 꾀는 모습에서 일본의 야욕을 엿볼 수 있고 지혜로운 아이들이 위기를 탈출학기 위해 묘수를 쓰는 것 등은 매우 지혜로운 교훈적 이야기라 할 것입니다.
아마 독립투사분이 간혹 우리 집을 다녀가시면서 뒷방에서 숨어 지내시다가 저에게 들려주신 이야기였나 봅니다.
이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