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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령(李貴齡) 1345(충목왕 1)∼1439(세종 21)

작성시간08.05.05|조회수71 목록 댓글 0

이귀령(李貴齡)  1345(충목왕 1)∼1439(세종 21)

고려·조선조의 문신. 자는 수지(修之) 정부안작(政府案作 汝萬), 호는 계은(桂隱) 시호는 강호(康胡), 고려 말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 주등처 관군만호(靑州等處 官軍萬戶) 등을 역임,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태조 잠저(潛邸) 때의 공으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었다.
1394년(태조 3)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로서 사신(使臣)이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온 뒤 판승녕부사(判承寧府事)·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병조판서(兵曹判書)·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판한성부사(判漢城府)·판좌군도총제부사(判左軍都摠制府事)·변정도감(辨定都監)제조(提調)등을 역임하였는데,  이는 태종15년 을미록에 좌명공신,세종조 배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검교 좌의정겸령 경연홍문관예문관 춘추관 서원관사치사봉조하로 받들었다하며, 세종21년 기미6월6일에 졸하셨다는 기록이 이조실록에 있다.

1415년 검교우의정(檢校右議政)을 거쳐 이듬해 검교좌의정(檢校左議政)이 되었다가 곧 이어 좌의정(左議政) 으로 치사(致仕)했다. 70세에 정계에서 은퇴하신 후 20여년을 장수하시다 94세에 타계하시어 용인 구수동에 안장되셨다.

특히 강호공에 관하여는 그 유명한 팔조호구록(八祖戶口錄)이 있는데 이 호구첩은 조선씨족사에 유일한 기록으로서 고려후기와 이조초기의 몽고의침략과 왜구의 발호등 민족적 대혼란기에도 씨족의 순수성을 입증하는 공인한 자료이다. 이는 강호공에게 시호를 내리기 위하여 강호공의 상계를 명료하게 조사한 바를 기록한 자료로 다른 성씨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것으로 연안이씨 첨사공 족보에 상세한 내용이 있다.이는 연안이씨태자첨사공파의 혈통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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