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김밥 할머니는 매일 계란말이 한 조각을 남겨두셨다.
길가 아이에게 주려고.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이는 다리 밑에서 일 년 치 계란말이를 꺼냈다.
'나중에 먹으려고' 라며. 하지만 그 나중은 오지 않았다."... Seonhwa
마지막 계란말이
엄마는 김밥 장사였다.
동네 골목 입구, 낡은 포장마차 하나.
아침 6시면 나와서 밤 10시까지 버텼다. 손님이 없어도 버텼다.
엄마의 자랑은 계란말이였다.
계란을 풀고, 당근을 잘게 다지고, 파를 송송 썰었다.
한 겹 한 겹 말아 올릴 때마다 엄마는 미소를 지었다.
"계란말이는 정성이야. 서두르면 망가져."
나는 엄마 옆에서 그 말을 백 번은 들었다.
엄마는 매일 하나를 남겼다.
김밥 한 줄을 싸고 나면, 계란말이 한 조각.
비닐랩에 살짝 싸서, 포장마차 구석에 조용히 두었다.
"엄마, 그거 왜 안 파세요?"
"누구 줄 사람 있어."
"누구한테요?"
엄마는 대답 대신 가게 밖을 바라보았다.
전봇대 뒤.
그늘진 곳에, 조그만 그림자가 보였다.
남루한 옷을 입은 아이. 열두 살쯤. 눈만 반짝였다.
그는 절대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멀리서 쳐다보았다.
하루, 이틀, 일 년.
계란말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엄마가 치우지 않으면, 아이는 가져가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아이는 살며시 다가와 계란말이를 쥐고 사라졌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돌아올 때마다 계란말이가 없어졌으니까.
그리고 엄마는 웃었다.
"먹었나 보다. 내일은 두 개 싸야지."
어느 날, 엄마는 쓰러졌다.
심장마비였다.
포장마차 앞에서, 김밥을 자르던 칼을 손에 쥔 채.
나는 장례식을 치렀다. 울지 않았다. 엄마가 싫어했으니까.
그런데 장례식장에 이상한 손님이 왔다.
작은 아이였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이.
그는 낡은 도시락 통을 안고 있었다.
손이 까맣게 타고, 옷은 해졌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그 도시락 통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나는 도시락을 열었다.
그 안에는 계란말이들이 가득했다.
말라서 까맣게 변한 것도 있었고,
곰팡이가 핀 것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비닐랩에 조심스럽게 싸여 있었다.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25년 3월 4일.
2025년 3월 5일.
2025년 3월 6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 년 내내.
제일 위에는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아이의 흐릿한 글씨였다.
"할머니, 저는 안 먹었어요.
'먹어, 내일 또 해줄게' 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내일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안 오셨어요.
그래서 모았어요. 나중에 할머니랑 같이 먹으려고.
그런데... 나중이 안 왔네요."
나는 그 자리에서 울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그렇게 서 있었다.
며칠 후, 나는 엄마의 포장마차를 정리했다.
구석에 있던 낡은 수첩.
엄마의 글씨.
"오늘도 그 아이 왔다. 계란말이 두 개 싸줬다.
너무 말랐다. 엄마가 없나 보다.
오늘은 아이가 기침을 했다. 감기 걸렸나? 따뜻한 국을 주고 싶다.
혹시 내일 내가 없다면, 누가 저 아이에게 계란말이를 줄까?
그래서 적어둔다. 나는 매일 저 아이의 '내일'이었다.
부디, 누군가 저 아이에게 '오늘'이 되어주길."
나는 수첩을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포장마차에서 계란말이를 말았다.
당근을 다지고, 파를 썰고.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엄마처럼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전봇대 뒤를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도시락을 두었다.
계란말이 두 조각.
쪽지 한 장.
"먹어. 내일도 여기 있을게."
여러분에게 '내일 또 해줄게' 라고 말해주던 사람이 있나요?
지금 그 사람이 없다면, 오늘은 누군가의 '오늘'이 되어주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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