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05
씬1. 바다
망망대해에 두 척의 배가 물결을 헤치며 오고 있다. 왕륭들이 타고있는 거대한 상선들이다.
두 배엔 송악의 왕륭을 알리는 깃발들이 무수히 펄럭이고 있다. 가까이 오면.......
씬2. 동 배의 갑판
각 위치마다 선원들이 자리를 잡고 움직이며 배를 나아가고 있다.
왕건이 선미에 서서 여전히 항해를 지시하고 있다. 그 옆에서 선장인 듯한 자가 명령을 복창해 전달한다.
왕건 : 선미를 좌로 틀어라.
선장 : 선미를 좌로 틀랍신다.
명이 전달되자마자 군사들이 수신호용 작은 깃발을 흔들며 그 명령을 확인한다.
그리고 배의 후미에 있던 군사들이 키를 움직이며 방 향을 틀고 있다.
배는 계속해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만족한 듯 보고 있는 왕건 소년.
이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왕륭이 사부들에게 명한다.
왕륭 : 이제 그만 됐네. 항해는 선장에게 맡기고 건이를 오라 하게.
변씨 : 예, 주군.
변씨가 눈짓을 하자 장수장이 달려가 왕건에게 뭔가를 전한다. 왕건이 끄떡이고는 선장에게 업무를 인계한다.
왕건 : 조금 더 가면 해류가 빨라진다고 들었네. 돛폭을 조금씩 내리고 풍향을 조정해야 할거야.
선장 : 예, 공자님.
왕건은 잠시 바다와 하늘을 보다가 다시 덧붙인다.
왕건 : 구름이 좋지가 않아. 바람이 습기를 품고 있는 게 아닌가?
선장 : 그렇사옵니다. 공자님. 날씨를 참 잘 보시옵니다.
왕건 : 매일처럼 아버님과 많은 선장들이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물의 빛깔을 보면 바닷길을 알고 구름을 보면 날씨를 아는 것 아닌가?.
선장 : 그렇구 말구요. 어서 가보시오소서. 성주님께서 찾으시옵니다.
왕건 : 알았네.
왕건이 가면 선장이 웃으며 도리질을 한다. 못 당하겠다는 것이다.
씬3. 그 갑판 어느 곳
하염없이 바다를 보는 궁예와 종간, 저만큼 왕건이 선실로 가는 것이 보인다.
궁예 : 저 왕건이란 소년 말이예요.
종간 : ............?
궁예 : 사형은 저 아이와 나 사이에 좋지 않은 운명이 막고 있다 하였습니다.
종간 : ..........?
궁예 : 운명이라는 것은 결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종간 : 하지만 스님...
궁예 : 새로운 미륵의 세상을 꿈꾸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럴 자신이 없다면 무엇하러 세달사를 떠나왔단 말입니까?
우리들의 운명은 우리들이 하기에 달려있습니다.
종간 : 예...... 스님......
궁예 : 엄청난 경험입니다. 이 바다 말입니다.
궁예는 참으로 충격을 받은 듯 하다. 지나치는 바다와 주변을 마냥 신기한 듯 보고 있다.
씬4. 왕륭의 선실
두 사부와 왕륭, 왕건이 앉아 있다.
왕륭 : 건아.
왕건 : 예, 아버님.
왕륭 : 그만하면 뱃기술은 상당히 익혔다고 할 수 있겠구나.
왕건 : 칭찬해 주시니 부끄럽사옵니다.
왕륭 : 바로 그것이다.
모두들 : ..........?
왕륭 : 칭찬을 받아 으쓱해지는 것은 소인배들이나 하는 짓이니라.
너는 이 배를 탄 이후 줄곧 너의 재주를 자랑하였다. 아니 그러하냐?
왕건 : 아,....아버님? 그런 것이 아니오라..... .........(부끄럽다)
왕륭 : 세상 살아가는 공부의 하나로서 뱃기술을 잠시 익히고 배우라 한 것이니라.
헌데 그것을 재미 붙여 계속해 자랑하려 든다면 결국은 선장의 일을 빼앗는 것이다. 아니 그러하냐?
왕건 : 잘못 되었사옵니다.
왕륭 : 어른노릇 하기가 어려운 것이니라.
왕건 : 예.........
왕륭 : 정말 훌륭한 장사꾼은 먼저 남의 이익을 생각해 준단다.
내것부터 챙기려고 한다면 그것은 길거리의 작은 장사치밖에는 아니되는 것이야.
왕건 : 예. 아버님.
왕륭 : 아무래도 비가 한바탕 오겠구나. (시종에게) 얘야, 저기 저 스님들이 적적하시겠구나. 이리 뫼셔오도록 해라.
시종이 대답하고 간다.
하늘엔 점점 더 먹구름들이 몰려들고 있다. 마씨가 보다가 의미 있게 입을 연다.
마씨 : 주군, 저 애꾸눈의 중 말이옵니다.
왕륭 : ........?
마씨 : 아무래도 그 옛날 우리가 거두어 주었던 그 아이가 틀림없는 것 같사옵니다.
그.... 왜... 신라 조정에서 쫓기던......
변씨 : 어미는 죽고 혼자서 세달사로 갔던 아이 말이옵니다.
왕륭 : (끄떡이며) 나도 낯이 익다 생각하고 있었네.
허나 범교스님께서 우리에게 부탁을 해오셨네. 지난 얘기는 하지 말게.
두 사부 조용히 끄떡인다.
저만큼 궁예들이 오자 왕륭이 일어선다. 궁예들이 예를 올린다.
왕륭 : 허허허...좁은 배 안이라 좀 갑갑들 하시겠습니다. 제 방으로 가서 뭐라도 좀 드십시다.
궁예 : 폐가 지나친 것 같사옵니다, 성주님.
왕륭 : 천만에요, 허허허... 가십시다.
씬5. 왕륭의 선실
선실 창으로 바다 풍경이 지나쳐 간다.
식탁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놓여있다. 군사들이 쉴새 없이 음식을 바꾸어 놓으며 시중을 들고 있다.
두 사부는 빠져 있고 왕륭부자와 궁예, 종간이 마주해 있다.
왕륭이 술울 따라 준다.
왕륭 : 국화주 한 잔 하시지요. 차라고 생각 하시고.....
종간 : 고맙습니다. 헌데...서라벌까지는 얼마나 걸리겠사옵니까?
왕륭 : 글쎄올습니다. 한 닷새....?
왕건 : 나흘이면 충분할 것이옵니다. 날씨는 나쁘지만 풍향이 아주 좋습니다.
궁예 : 아, 그렇군요. 육로로 가려면 보름길이 넘는데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왕건 : 당나라에서 일본국까지 바람이 좋을 때는 열흘만에 간 적도 있었습니다.
두사람 : (놀라서) 예 열흘....만에요?
왕륭 : 그렇습니다. 바닷길은 막히는 것이 없으니까요.
바다는 다루기에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 매우 유익하고 좋은 또 하나의 세상입니다.
궁예 : 하긴 송악의 예성강 포구에서도 적지 아니 놀랐습니다. 그 엄청난 객관들과 외국의 선원들하며...
마치 그 곳은 이 신라땅이 아닌 것 같았사옵니다.
왕륭 :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일컬어 국제적이라 합니다. 국제적인 포구는 어디를 가나 다 그렇습니다.
종간 : 부럽사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다니시다 보면 적지 않은 위험도 있으실텐데요.?
왕륭 : 물론 그래요. 다 좋은 것은 아니지요.
때때로 바다의 도적들과도 만나고... 난폭한 불량배들도 만나 목숨을 건 사투도 벌립니다.
종간 : 그러자면 뱃사람들 모두가 상당히 용맹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사옵니다.?
왕륭 : 그렇습니다. 배를 타는 모두가 선원이라기 보다는 군사들입니다.
궁예 : 이해가 가옵니다...... 헌데 이번 서라벌 길은...장사길이신 듯 한데.....
왕륭 : 왕실과 교역을 하러 가는 길입니다. 관무역이라고 하지요. 개인과 개인이 하는 거래는 장사라 하고...
궁예 : 미처 몰랐사옵니다. 그렇다면 관무역을 하러 가시는 것치고는 물건이 많은 것에 비해서
수행군사들이 너무 적어 보이옵니다.
왕륭 : 여기는 신라땅입니다. 폐하가 계신 궁궐로 가는데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자.. 드시면서 얘기들 하십시다. 스님도...드시면서.....
두사람 : 예.
왕건 : 많이들 드십시요.
궁예 : 고맙습니다. 공자님. 여러 가지로 정말 훌륭하십니다.
아랫사람을 부리시는 것하며 이 큰 배를 부리시는 것하며...
왕건 : 너무 칭찬들 마시어요. 그 때문에 조금 전에 아버님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사람은 자꾸 칭찬을 들으면 교만해진다 하셨습니다.
궁예 : 허어..... 이 또한 얼마나 의젓한 말씀이십니까? 핫하하하하하....
모두들 웃는다.
선실 밖은 어느새 어두워 졌다. 천둥소리들이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람소리들......
배도 기우뚱거리며 흔들 거린다.
군사가 식탁에 촛불을 환히 켜 준다. 그리고 바람이 심하자 선실의 창을 닫는다.
식사는 그렇게 계속된다.
씬6. 동 배의 갑판
어둠이 내리고 있다. 엄청난 바람들이 불고 있다.
천둥과 번개 속에서 선원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갑판 위를 오가며 선장의 지시를 듣고있다.
선장 : 돛폭을 내려라. 줄을 감아라. 선수를 틀어라.
갑판 위는 흡사 전쟁과도 같다.
선장의 소리를 받아 복창하며 선원(군사)들은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드디어 갑판 위로 비가 투둑거리며 쏟아지기 시작한다.
어둠속 선원들의 그 부산한 움직임과 몰려오는 천둥소리의 연속에서.......
씬7. 그 배안 밑의 선실
작은 복도가 있고 여러 개의 선실문이 보인다. 위 아래로 향하는 계단들도 보이고 군사들이 오가는 것도 보인다.
창고 쪽으로는 몇 필의 말들이 줄지어 먹이를 먹고 있고 산더미 같은 물건더미들이 한쪽에 쌓여 있다.
씬8. 그중 궁예의 선실
촛불이 밝다. 밖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종간은 의자에 앉았고 궁예는 침상에 비스듬히 기댄 채 심각한 표정이다.
종간 : 무얼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는지요?
궁예 : 지금 우리가 바다 위를 가고 있습니다. 천둥이 울고 폭풍이 오는 것 같은데도 저들은 아주 태평하게 가고 있어요.
강을 건너는 쪽배는 타보았지만 이런 큰 배는 처음입니다.
종간 : 저도 감회가 큽니다 스님. 이만 하니까 이 나라, 저 나라, 겁없이 다닐 수가 있겠지요.
왕륭이란 사람, 역시... 큰 인물이옵니다.
궁예 : 나는 그동안 바다를 너무 모르고 있었어요.
종간 : 그러하옵니다. 바다를 장악하고 다스릴 수만 있다면 이미 천하의 반은 얻었다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궁예 : (끄떡인다) 결국은 바다가 아니라 그것을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겝니다.
저 왕건이 같은 아이 말입니다. 저 아이가 자라나 송악성주의 대를 잇는다면
얼마나 크고 무서운 인물이 되겠습니까?
종간 : ..............?
궁예 : 기억에 새겨 두어야 할 것입니다. 저 송악의 어린 아이 말입니다. 왕건이 말이예요..
종간 : ...............?
씬9. 왕륭의 선실
밖에선 천둥과 바람소리들이 요란하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선실엔 왕륭과 두 사부 그리고 왕건이 함께 앉아 있다.
왕륭 : (차 마시며) 아까 저 스님들이 한 얘기가 마음에 걸리는구먼,
그들 : .............?
왕륭 : 서라벌은 지금 혼란의 극치라고 하였어. 싣고 가는 물건에 비해 군사들이 너무 적게 따라온 것 같아.
마씨 : 놀라운 자들입니다. 저 두 스님 말입니다. 우리의 물건을 보고 군사들의 많고 적음을 간파하고 있사옵니다.
왕륭 : 그야... 그 만큼 서라벌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들은 것이겠지.
왕건 : 저 스님들은 무예도 많이 익혔다고 했사옵니다..
왕륭 : (끄떡이며) 무예는 큰 절에서는 누구나 다 배우는 공부중 하나니라....
변씨 : 하온데 주군, 하필 이런 혼란한 때에 굳이 서라벌로 길을 잡으신 까닭이 궁금하옵니다.
왕륭 : 송악의 백성들과 우리들의 명운을 알아보러 가는 길일세. 서라벌이 비틀거리면 우리 송악도 마찬가지가 돼.
소문을 듣는 것 보다 직접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너무 길이 늦었어.
모두들 : .......
왕륭 : 이번 길은 아주 중요하네.
씬10. 그 밤바다
왕륭의 두 배가 출렁이는 검은 물결을 헤치며 파도를 헤쳐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멀어져 가면....
씬11. 서라벌 거리 (밤)
이곳에서도 천둥과 번개는 요란하게 천지를 떨게하고 있다.
쏟아지는 빗속을 여왕의 마차가 호위군사들에 의해 나아가고 있다.
호위군 대장인 영기가 그의 수하들과 함께 여왕을 모셔가고 있다. (견훤 제외)
길가엔 굶주린 백성들이 처마 밑에 비를 피하며 멍하니 여왕의 지나치는 행렬을 보고 있다.
그렇게 카메라 앞을 지나쳐 가면..... 침을 뱉고 뭔가 욕설을 하는 백성들... 돌을 던지는 백성도 보인다.
씬12. 또 다른 길
백성들의 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왕의 호화스러운 마차는 계속해 가고 있다.
젊은 진성여왕의 표정은 교태가 가득해 보인다.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보고 군사들을 본다.
진성 : 왜 이리 길이 늦느냐?
영기 : 노면이 질어서 그러하옵니다, 폐하.
진성 : 소량리 가는 길이다. 이 나라의 각간께서 사시는 곳인데 비가 조금 왔다고 해서 마차가 더디 간다면 잘못된 게 아니냐?
내일 공부에 일러 왕궁에서 각간댁에 이르기까지 모두 돌을 깔도록 해라.
영기 : 예, 페하..
진성 : 그래. 비가 꽤 오는구나. 이런 날은 술마시기가 더욱 좋으니라...
영기 : ............... (계속 가고)
해설 : 진성여왕, 통일신라 51대 왕으로 등극한 여인이다. 궁예와는 이복 남매이며 아버지는 경문왕이다.
옥좌에 앉은지 2년째, 그러나 그녀는 경문왕의 동생이며 숙부가 되는 각간 위홍과 불륜에 빠져
이미 정사를 포기한지 오래였다. 그는 지금도 여왕으로서의 체면 따위는 잊은 채
소량리에 있는 그의 연인인 숙부 위홍의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계속 마차가 가고 있다. 저 만큼 빗속에 누군가가 군사들에게 끌려오고 있다.
가까워지면 여왕이 손을 들어 마차를 세운다.
영기 : 마차를 세워라.
마차가 서면 여왕이 마주 오던 일단의 군사들을 내려다본다.
늙은이 하나가 쇠사슬에 묶여 끌려오고 있었다.
여왕 : 웬 군사들인고?
군사 : 예, 폐하... 대야성에 숨어서 요언을 퍼트리고 있던 왕거인이란 자를 포박해 오는 길이옵니다.
진성 : 그래? ...(보다가) ... 왕거인이라.....? 백성들이 성자라 떠받드는 그 늙은이로구나...........
쇠사슬로 묶어 오다니 가엾구나.
군사 : 하늘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바람과 비를 제 뜻대로 부린다는 은자이옵니다.
만약을 염려하여 단단히 묶었사옵니다.
진성 : 글께나 읽었다는 학인이 백성들을 현혹하고 나라를 비방하였다 들었다.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
거인 : ....(미소만)...
진성 : 날이 밝으면 각간께서 목을 베어 저자에 걸라고 하실께다. 데려 가거라.
마차는 그렇게 가버리고 은자 거인은 미소를 지으며 또 그렇게 끌려간다.
하늘에선 여전히 요란하게 천둥이 때려오고 있다.
왕거인의 그런 모습 위로....
해설 : 은자 거인..... 현자 왕거인을 지칭한 말이다. 왕거인은 이 무렵 세상의 추앙을 받는 대시인이었다.
이때 백성들은 극심한 기아와 계속되는 폭정에 대항하여 곧잘 벽보를 붙여 왕실과 나라를 비난하였는데
삼국사기에 보면 그중 하나의 글은 이러 하였다. “南無亡國 刹尼那帝 判尼判尼?判尼 于于三阿干 鳧伊娑婆訶”
(나무망국 찰니나제 판니판니소판니 우우삼아간 부이바파하) 이것은 다라니경에 은어로서 뜻을 새겨넣은 것이다.
풀이하자면, 진성여왕이 그의 남편 역할을 했던 위홍 등 권신들로 하여금 권력을 마음대로 잡게하더니
결국은 신라를 돌이킬 수 없는 망국으로 몰아갔다는 내용이다.
왕실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당시의 지식인인 왕거인의 소행으로 생각하고 그를 잡아들였던 것이다.
씬13. 어느 산사
이 곳에서도 천둥과 번개는 그 극을 달리고 있다.
마치 하늘이 깨어지는 듯 하다. 쏟아지는 비는 마치 퍼붓는 듯 하다.
그 비 사이로 보이는 절방 섬돌 위에는 세 켤레의 짚신이 나란히 놓여 있다.
들려오는 소리들.
최치원 : (E) 대사님, 다시 한 번 여쭈옵니다. 대답해 주시오소서.
씬14. 동 방안
촛불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도선과 최치원이 마주 앉았고 그 옆에 도선의 제자 경보가 앉아 있다.
최치원 : 이 나라를 어찌해야 하겠사옵니까? ...(사이).. 대답해 주오소서. 이 나라는 어디로 가야 하옵니까?
도선 : ........(눈만 지긋이 감고 있고).......
최치원 : 대답해 주오소서. 대사님....! 대 신라국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이옵니다.
부디 밝은 혜안 으로 살피시어 나라가 살길을 말씀해 주시오소서.
도선 : .........(눈은 떴지만 여전한 침묵)
경보 : .......(오히려 자신이 초조하고)
최치원 : 도선대사님....? 알려 주시오소서. 이 나라와 불쌍한 백성들은 어찌 하오리까?
도선 : ...............
최치원 : 어찌 하오리까?
침묵이다. 도선은 목석처럼 그렇게 앉아만 있다.
계속되는 천둥소리.... 그 무거운 침묵.
해설 : 도선대사와 최치원. 도선은 일찍부터 풍수지리를 공부하여 왕건의 출생과 고려의 건국을 예언했던 당대의 고승이다.
아울러 후삼국통일 이후에도 그의 불교적 사상이 국가의 기본 통치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할 만큼
큰 영향력을 주었던 인물이다. 또한 최치원은 신라말 당에 유학하여 급제를 하고 문명을 크게 떨쳤던 대문장가이다.
이들이 지금 나라의 운명을 두고 만나고 있는 것이다.
최치원 : 페하의 명을 받고 지금 전국의 이름 있는 고승들이 서라벌로 오고 있사옵니다.
피폐한 이 나라의 국운과 백성들의 어려움을 구하기 위해서 백고좌를 열기 위함이지요.
도선 : ....................
최치원 : 소생은 그중 대사님을 뫼시라는 영을 받아 왔사옵니다. 허나 대사님, 그 백고좌에 뫼시기 전에 소생은 먼저 여쭙고 싶사옵니다.
이 나라를 어찌 보시옵니까? ....나라를 구할 방도를 알고 싶사옵니다..
도선 : ........
최치원 : 대사님? .....(사이)..... 어찌 말씀이 없으시옵니까? 한 말씀만 주시오소서... 한 말씀만 주시오소서.
도선은 그래도 대답이 없다. 침묵 그 자체가 대답인 것처럼....
씬15. 소량리 위홍의 집
빗속에 대문이 소리나며 열리고 있다. 그리고 여왕 일행들이 들어선다.
영기가 소리 높여 외친다.
영기 : 대왕폐하 납시오,
견훤과 능환, 추허조들이 철기군들과 함께 그들을 군례로서 맞고 있다.
이미 각간 위홍과 그의 처, 그리고 이 집의 가솔들이 모두 우산을 들고 나와 맞으며 머리를 숙인다.
한 켠으로는 노대신들 십여 명이 역시 줄지어 여왕을 맞는다.
위홍 : (다가가며) 우중에 고생이 많으시옵니다. 폐하.
진성 : 어인 말씀이십니까? (대신들 보며) 대신들이 여기까지 와있단 말입니까? (비꼬듯) 대단들 하십니다.
대신들 : 망극하옵니다. 폐하.
위홍 : 국사가 바빠 예까지 달려 왔다 하옵니다. 어여삐 보시오소서.
진성 : 이들만 보면 머리가 아프니 어쩌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숙모님?
위홍처 : ........... (억지로 미소)
진성 : 모처럼 숙부댁에서 좀 쉬려하는데 대신들이 여기까지 오다니......
위홍 : 어서 안으로 드시오소서. 무엇들 하느냐? 폐하를 뫼시어라.
위홍의 소리에 시녀들이 여왕을 모셔간다. 위홍과 여왕이 안으로 들면 노대신들도 뒤따라간다.
뒤따라가던 위홍 처의 표정이 굳어진다. 입술을 깨물며 떨고 있다.
모두들 들어가고 나면 비로소 능환마 추허조가 한 권으로 가서 서고영기와 견훤이 회랑 밑으로 비를 피해선다.
이들 아무 말이 없다.
영기 : 여보게, 우리 군사들에게 요기 라도 좀 시켜주게나. 폐하를 모시느라 아직도 아무것도 못먹였네.
견훤 : 예, 장군님...허조야...안에 일러 음식을 준비해라.
추허조 : 예. (달려가고)
영기 : (방쪽을 보며)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모를 일일세.
견훤 : ...............?
영기 : 상주지방에서 백성들이 떼를 지어 난을 일으켰다는군. 그곳 태수가 죽고 관아가 불탔다는 게야.
그 때문에 노대신들이 여기까지 허겁지겁 온 게야.
견훤 : ...............?
영기 : 예사롭지가 않아. 오다가 보았는데 은자거인을 잡아오더구만....
견훤 : 그랬사옵니까?
영기 : 뭐가 뭔지 모르겠네.
영기가 중얼거리며 한 쪽으로 가면 눈치를 보던 능환이 슬며시 견훤 옆으로 붙어선다.
능환 : 나으리, 아무래도 폐하께오서는 오늘도 여기서 밤을 새우시겠사옵니다?
견훤 : 그러실걸세.
능환 : 상주에서 폭동이 일어난 모양이옵니다요?
견훤 : ..............?
씬15-1. 동집 별실
연회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여왕과 위홍이 상석에 앉았고 노대신들이 허리를 굽혀 서있다. 위홍의 처는 보이지 않는다.
여왕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대신1 : 폐하, 급박한 상황이옵니다. 상주에서 일어난 폭동은 백성들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일으킨 것이라 하옵니다.
사안이 그와 같다면 걱정할 곳이 상주뿐이겠사옵니까?
대신2 : 그러하옵니다. 기근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지 삼 년이 넘었사옵니다. 통촉하시오소서.
진성 : 이보시오들, 여기는 국사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였소이다.
대신3 : 하오나 폐하, 속히 어떤 방안을 내리시어 민심을 수습하셔야 하옵니다.
거리마다 쌓였느니 시체들 뿐이요. 자신의 땅마지기를 버리고 떠도는 자들이 방방곡곡 그 수를 헬 수 없다 하옵니다.
진성 : 그것이 어찌 나만의 죄란 말이요? 각 고을을 책임진 수령들이 세목을 걷어다가 자신들의 배만 채우니 난들 어쩌란 말이요?
위홍 : ........
대신1 : 이제라도 영을 지엄하게 내리시어 부패한 수령들을 단속하시오소서.
떠도는 백성들을 위로하시려면 우선 궁성의 크고 작은 연회를 금하시고 왕궁에서부터 그 본을 보이셔야 하옵니다.
위홍 : ........ (못마땅하다)
대신들 : (함께) 통촉하시오소서 폐하.
위홍 : 왜들 이리 호들갑들이신가? 이래 가지구서야 어찌 폐하께서 잠시인들 휴식을 취하시겠는가?
급한 일이 아니니 물러들 가오.
진성 : 물러들가오.
대신들 : 통촉하시오소서.
대신1 : 한 번 소요가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게 되옵니다. 더구나 그것이 배고픔을 참지 못해 일어난 것이라면
어느 누가 그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오니까? 살펴주시오소서.
위홍 : 어허.... 폐하께 이 무슨 불충들인고? 지방의 작은 소요를 가지고 어찌들 이리 경망스러운고?
나 각간 위홍이 폐하를 대신하여 명하느니라, 물러들 가라. 물러들 가.
대신들 : 폐하.....
위홍 : 여봐라 군사들은 무얼 하는가? 이들을 내쳐라.
그러자 영기와 견훤의 군사들이 들어와 대신들을 끌고 나간다.
대신들이 나가고 여왕은 긴 한숨을 쉰다. 도리질을 한다.
위홍 : 악공들은 무얼 하느냐? 폐하를 기쁘게 해드려라.
대답소리와 함께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무희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위홍이 잔에 술을 가득 따라 권한다. 여왕이 웃으며 안겨들고 역시 잔에 술을 따라준다.
두 사람 술잔을 든다. 천둥은 계속된다.
위홍 : 폐하, 즐기시오소서. 다 잊고 드시오소서. 여기엔 우리 둘뿐이옵니다.
진성 : (한숨) 고맙습니다. 내겐 오직 숙부님 뿐이십니다.
위홍 : 어인 말씀을....
진성 : 숙부님께선 날 왕위에 올리셨고, 또 나의 지아비가 되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 신라와 나 진성은 오직 숙부의 것입니다.
위홍 : 소신은 다만 왕실을 위하여 살고 있을 뿐이옵니다.
진성 : 나의.... 지아비..... (술마시며....교태) 나를 안아주시오.
위홍이 손짓을 하자 악공들과 무희들은 계속되고 있는데 그들과 위홍들 사이로 비단 휘장이 스르르 막처럼 가리워진다.
위홍이 여왕을 안아든다. 그리고 침실로 가면서...
진성 : (안긴 채) 백성들이 우리를 보고 수근거린답니다. 숙부와 조카가 정분이 났다구요.
위홍 : 듣지 마시오소서.
진성 : 여왕은 국법으로 혼인을 못하게 되어있는데 아이가 생겼습니다.
위홍 : 그것도 모르는 채 하시오소서.
진성 : 아아, 어쩌면 좋습니까? 나를 보는 숙모의 눈이 무섭습니다. 하필 숙부와 연분이 나다니요...?
위홍 : 다 나라를 위함입니다. 왕실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폐하, 폐하는 정말 아름다우시옵니다. 페하.....
진성 : 하루하루가 너무도 힘이 드오. 차라리 이름 없는 시골아낙이 되어서 밭이나 갈고 아이나 기르다가
님의 곁에서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위홍 : 일국의 폐하답지 않으신 말씀이십니다. 백성들을 생각 하시오소서.
진성 : 아아, 나는 모르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숙부, 나의 지아비... 나의 부군뿐이오.
위홍 : 폐하, 폐하께서는 정말.... 양귀비의 화신인 것 같사옵니다. 볼수록 눈이 부시옵니다.
진성 : (교태) 모릅니다..... 나는 모릅니다.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숙부.
위홍 : 오, 오..... 폐하.....
그들은 드디어 포개지며 침상에 나뒹군다.
촛불을 끄려고 한다. 천둥소리는 더욱 요란하다.
씬16. 동 밖
위홍의 처가 보고 있다. 방안의 불이 꺼지자 큰 한숨을 쉰다.
여전한 천둥소리..... 저만큼 마당엔 견훤이 부하들과 집을 지키고 서 있다.
위홍 처 : 부처님... 어찌하오리까? ...이 일을 어찌 하오리까? 얼마나 무서운 벌을 내리시려고 이러 하옵니까?
그 한 쪽에서는 여전히 견훤이 무표정하게 울고 있는 하늘을 보고 있다.
씬17. 그 산사 외경
어둠 속에서 비는 줄기차게 쏟아진다. 번개가 소리치며 온 시야를 비추고 간다.
씬18. 동 방안
도선과 경보, 최치원은 여전히 그렇게 마주 앉아있다.
최치원은 여전히 눈으로 묻고 있다. 그러다가......
최치원 : 대사님?
도선 : ...........?
최치원 : 아직도 답을 아니 주셨사옵니다. 이 신라를 어찌 하오리까? 천 년을 버티어 온 사직이옵니다.
도선 : ..............
최치원 : 그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옵니다.
도선 : 은자 왕거인이 잡혀 오고 있다 하였소?
최치원 : 예,
도선 : 그는 이 신라에 마지막 남은 성자지.
최치원 : ........?
도선 : 죄 없는 성자는 옥에 갇히고 임금은 백성이 굶어죽고 있는데도 제 삼촌과 더불어 황음에 여념이 없어....
그대가 하늘이라면 이를 어찌 할 것인가?
최치원 : 대사님? 살길을 알려주시오소서. 대사께서는 천리 밖을 보시는 분이시옵니다.
도선 :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이고 물도 차면 넘치는 것이오. 천 년이라면 적은 세월이 아니지요. 이미 그 기가 다 하였소이다.
최치원 : 예?
도선 : 세상 이치는 언제나 공평한 것이오. 헌것이 가면 새것이 오는 것이라오. 계림황엽(鷄林黃葉)이요, 송악은 청송(松嶽靑松)이라......
최치원 : (놀라) 계림황엽? 그렇다면 계림은 서라벌인데... 이미 낙엽이 되었다는...... 것이옵니까?
도선 : ..............
최치원 : 대사님? 그렇다면 송악은 무엇이옵니까? ......어디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송악의 누가 푸른 청솔이라는 것이옵니까?
경보 : ..............
도선 : 비가 극성이구먼..... 경보야!
경보 : 예, 대사님.
도선 : 손님 가신다. 문 열어드려라.
최치원 : 대사님? ...대사님...? 누구오니까? 송악의 푸른 청솔이 누구이오니까?
그러나 도선은 더 이상 대답이 없다.
절망스럽고 당혹스런 최치원의 얼굴에서.......
씬19. 길 (낮)
언제 비가 왔느냐 싶게 날이 쾌청하게 개어있다.
멀리서 지평선을 가르며 왕륭 일행들이 나타나고 있다. 깃발을 앞세운 군사들과 숱한 짐바리들이 길게 줄지어 오고 있다.
길가에 많은 사람들이 그 행렬을 보고 있다. 그 중에는 사내(도적)의 모습도 보인다.
왕륭은 두 사부들과 함께 앞을 섰고 그 뒤로 왕건과 궁예들이 따르고 있다.
왕건 : 스님, 서라벌은 처음이십니까?
궁예 : (생각에 잠기다가) 처음이라...... 글쎄요. 아주 어렸을 때, 서라벌에 있었다고 합니다만 잘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왕건 : 저도 아주 어렸을 때, 아버님을 따라 한 번 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셈입니다, 스님.
궁예 : 허허허. 그렇군요. 공자께서는 참 좋으시겠습니다.
왕건 : 어째서요?
궁예 : 아버님과 좋은 스승님들을 늘 옆에 두시고 가시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니 말입니다.
공부도 하시고 또 세상도 배우시고..... 쉬운 일이 아니지요.
왕건 : 스님께서도 공부를 많이 하시지 않았습니까?.
궁예 : 저희야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것이 공부랍니다.
왕건 : ..........?
종간 : ..........? (궁예들과 가고 있는 군사들을 표정없이 보고)
궁예 : 그보다도 공자님.... 당나라에도 가보셨다고 하셨지요?
왕건 : 예.
궁예 : 그곳은 어떻든가요? 우리 신라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까?
왕건 : (신이 나서) 예, 그렇구말구요. 저희가 자주 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신라방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신라의 뱃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지요. 아, 그리고 거기도 절이 있습니다.
궁예 : 아, 그렇습니까.
왕건 : 스님같은 분들이 가시면 좋을텐데.....
궁예 : 제가 말입니까? 하하하. 언제 한 번 구경시켜 주시겠습니까?
왕건 : (으쓱해서) 아버님께 말씀드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보시면 아주 좋으실 거예요.
언제든 말씀만 하시지요. 꼭 말씀 드려서 같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궁예 : 고맙습니다, 공자님.
궁예는 왕건의 총명함에 더욱 빠져들며 관심을 보인다. 왕건도 그런 궁예가 싫지 않은 표정이다.
씬20. 동 그곳
앞서가고 있는 왕륭과 두 사부들이 가끔씩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왕륭에게 이른다.
마씨 : 저 스님과 공자께서 아주 가까워 지셨습니다.
왕륭 : .......... (미소만)
변씨 : 공자를 이리 뫼셔올까요, 주군?
왕륭 : 허허허. 놓아두게. 상대는 스님들이 아니신가. 구태여 막을 게 뭐가 있겠나.
그들 그렇게 가고 있다.
씬21. 계속 그곳
왕건과 궁예는 대화가 끊이지를 않는다. 종간은 그저 덤덤히 보고만 있다.
궁예 : 일본국에도 가보셨다고 하셨는데, 주로 무슨 물건을 가지고 가시는지요?
왕건 : 물건이야 따지자면 아주 많습니다. 일본국은 우리보다 많이 뒤져있는 나라이니까요.
궁예 : 어허, 그렇군요.
왕건 : 주로 모전들을 가져갑니다. 외국에서는 모전을 양탄자라고 부르더군요.
궁예 : 아하....!
왕건 : 금은세공품과 대식국에서 가져 오는 유리 그릇들도 있지요. 소금과 비단도 있고 동경도 있고.......
또한 인삼도 있습니다. 사기 그릇도 있구요. 사향과 우향도 있습니다.
궁예 : 대단하군요. 어찌 그것을 다 기억하십니까?
왕건 : 저는 꼭 아버님과 함께 물목들을 조사하거든요.
궁예 : (끄덕인다) 결국 장사를 배우시는 거군요.
왕건 :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그런 것보다는 사람을 다루는 장사를 해야한다고 늘 말씀하십니다.
궁예 : ..........?
왕건 : 저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지만 아버님의 말씀이 지극히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잘 다스리면 그들이 모든 것을 나 대신 다 해주지 않겠습니까.
궁예 : .......... (기가 막히다) 그렇습니다. 공자께서는 참으로 영특하십니다.
왕건 : 저도 스님이 참 좋아 보이십니다. 선종 스님이라고 하셨지요?
궁예 : 그렇습니다. 속가의 이름은 궁예입니다. 활을 잘 쏜다는 뜻이지요.
왕건 : 좋은 이름입니다.
종간 : (그들을 보다가) 서라벌에 들어가기 전에 객관에서 하루 묵는다는 것 같습니다, 스님. (멀리 보며) 객관이 다와가는 모양인데요.
종간이 말하는 사이로 서라벌의 상인 하나가 허리를 굽히며 다가와 왕륭에게 예를 올리고 있다.
상인 : 또 뵙사옵니다, 성주님.
왕륭 : 오, 박대상이 아닌가? 마중까지 나와주니, 고맙네.
상인 : 어인 말씀을...... 객관에 자리를 보아놓았사옵니다. 가시지요.
왕륭 : 그리하세.
이들이 가면........
씬22. 객관 (큰 주막)
마당에선 군사들이 실어온 짐바리들을 정리하고 있다. 부산한 군사들의 모습이 보이고 변씨와 마씨들이 이들을 단속하고 있다. 변씨 짐은 저쪽으로..... 군사들은 세 곳으로 나뉘어 철저히 번을 서야할 것이다. 한쪽은 주군을 뫼시고 한쪽은 이 객관을 경계하여라. 나머지 너희들은 짐바리를 지켜라. 장수장 예. 씬 23 동 객관 안 큰 객관인지라 집안에도 마당들이 보인다. 여주인(주모)이 하녀들을 시켜 찻잔과 먹을 것을 들이고 있다. 그 한쪽으로 왕륭과 왕건, 그를 마중온 상인들이 큰 방으로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얼마쯤 뒤에 궁예와 종간이 하녀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고 있다. 하녀 두 분 스님은 이리들 오시어요. (가며) 이 방을 쓰셔야 겠습니다. 종간 그리하세.
씬24. 동 집
궁예들의 방 두 사람이 방에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마련되어 있는 차를 잔에 따라 마신다. 종간 도성 안에 들어가시면 어디로 가실 참이옵니까? 궁예 모든 것을 버리러 여기에 왔습니다. 종간 (보면) ........... 궁예 이곳에서 나의 불행한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맺어졌으니 이곳에서 풀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종간 무엇을 푼다하십니까? 궁예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려한 자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러 왔습니다. 종간 용서라고 하셨습니까? 궁예 사실..... 버려야할 과거들이 오랫동안 제 가슴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노였고 또..... 원한이었습니다. 종간 ...........? 궁예 분노와 한을 가지고 있는 한, 미륵의 세계를 꿈꿀 수는 없습 니다. 종간 용서가 쉽겠사옵니까? 궁예 이미 그리 결심하였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나를 파멸로 몰아넣고 나라를 훔친 저들을 말입니다. 저들은 제 누이이고, 저의 숙부입니다. 한 번쯤은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눈으로 보아야만 모든 것을 털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종간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다 버리고 지우시오소서. 신라라는 썩은 고목나무 위에 미륵의 새싹을 피우시오소서. 궁예 .......... 씬 25 동 객관 외경 (밤) 군사들이 짐바리들을 지키고 있다. 사내(도적)가 주변을 살피며 집안으로 들어선다. 많은 짐들을 탐욕스럽게 보는 사내. 씬 26 동 객관 안 마당 사내가 들어와 주변의 눈치를 보면 저 만큼 주모가 나와 뭔가 눈치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잠시 소곤거린 후 집안 동정을 엿보고 사내는 다시 사라진다. 이윽고 주모도 사라지고 저 만큼 왕륭의 방이 보여 온다. 씬 27 동 객관 왕륭의 방안 왕륭 부자와 길에서 만난 상인이 함께 식사를 끝내고 있다. 왕륭 그래, 요새 서라벌 사정은 어떠한가? 상인 (한숨) 입으로 다 담기 어렵사옵니다. 왕륭 .........? 상인 길거리 도처에 굶어죽은 시신 들이 넘쳐나옵니다. 여왕은 제 숙부와 놀아나기에 여념이 없고 귀족들은 실권을 쥐고 있는 각간 위홍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떨기에 급급하옵 니다. 왕륭 .......... (한숨) 상인 천지가 아수라 지옥같습니다. 지방의 조세는 그곳의 귀족들이 먹어치우고 지금 왕실의 창고는 텅 비었습니다요. 왕륭 딱한 일이로군. 상인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이 서라벌이 어떤 곳입니까? 집으로 따지면 무려 십팔만호가 가까운 거대한 도성이올습니다. 이 도성이 지금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리 오래 못 갈 것이옵니다. 왕륭 그렇게까지...... 상인 여왕은 조회도 보지 않고 소량리에 있는 각간 위홍의 집에 주로 가있다 하옵니다. 상주에서도 농민들의 폭동이 일어났고 왕실과 지방의 연락은 거의가 끊긴 상태라 하옵니다. 왕륭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답답한 한숨을 내쉰다. 왕륭 자네들도 어렵겠구만. 상인 저희들이야 그래도 성주님께서 배려해주시는 덕으로 장사를 하며 끼니는 거르지 않사옵니다. 왕륭 허허..... (한숨만) 상인 지금 머무시는 이곳도 안심할 곳이 못되옵니다. 곳곳에 도적들이 큰무리를 지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사옵니다. 왕륭 알겠네. 그만 건너가 쉬게. 밤이 늦었구먼.. 상인 예. 그럼 편히 쉬시오소서. 상인이 예를 올리고 나간다. 왕륭은 다시 한숨을 쉰다. 왕륭 일이 생각보다 중하구나. 왕건 ........... 씬 28 위홍의 집 외경 (밤) 군사들의 경계가 철통같다. 여왕의 마차가 서있다. 씬 29 동 집안 역시 군사들이 안에도 지키고 있다. 역시 견훤과 영기의 모습 들이 보인다. 집안 별실 쪽에는 불빛이 밝고 여전히 음악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그 어느쯤에 위홍의 처가 한숨을 쉬며 방쪽을 보고 서있다. 씬 30 동 별실 안 여왕과 위홍은 술이 거나했다. 화려한 군무가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서로 술잔을 먹여주며 연신 웃어대고 있다. 진성 숙부...... 위홍 예, 폐하. 말씀하시오소서. 진성 왕궁으로 돌아가기 싫습니다. 위홍 그래도 가셔야하지요.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진성 차라리 숙부께서 옥좌를 맡으시지요? 위홍 큰 일 날 말씀을 다 하시옵니다. 신은 그저 폐하를 모시는 것 만으로 족하옵니다. 진성 (한숨) 한시도 편할 날이 없으니 그곳이 어디 왕궁이라 하겠습니까? 차라리 감옥이 낫겠습니다. 위홍 지존의 자리는 그런 것이옵니다, 폐하. 자, 한 잔 더 하시오소서. 진성 여기 오는 길에 왕거인을 보았습니다. 호호호. 쇠사슬을 주렁 주렁 끌고 오는 걸 보았습니다. 위홍 하하하하. 그랬습니까?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현혹한 자입니다. 마땅히 목을 잘라야 지요. 진성 그 자는 성자라 합니다. 무서운 일이라도 생긴다면...... 위홍 폐하보다 더 무서운 분은 이 세상에 없사옵니다. 신하들에게 영을 내려 지금 백고좌를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이 나라에 덕이 높은 고승 백 분을 모셔서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입니다.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옵니다. 진성 고맙기도 하셔라. 다 숙부의 덕입니다. 위홍 어인 말씀을...... 그 보다도 폐하, 이것을 보시오소서. 위홍은 책으로 만들어진 향가집인 삼대목을 올린다. 위홍 삼대목이올습니다. 향가집 말입니다. 재미있고 즐거운 노래들을 모아놓은 것이옵니다. 진성 어머나..... 이것이 벌써 다 되었습니까? 위홍 그렇구 말구요. 폐하의 심기를 위로해 드리고저 대구화상과 소신이 편찬한 것이옵니다. 해설 삼대목. 진성여왕 2년에 만들어진 신라의 향가집이다. 향가집이란 즉 요즘의 대중가요라 할 수 있다. 삼대목의 삼대라는 것은 신라의 상대, 중대, 하대를 뜻한 것이고 목이라는 것은 그것들을 분류한다는 뜻이다. 그 내용들은 찬가, 기원가, 주가, 민요 등 다양할 것으로 보이지만 본문이 전하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자세한 것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역사상, 문헌상으로 기록된 최초의 노래집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홍 자, 폐하. 악공들에게 이 노래를 켜도록 하시오소서. 한 번 들어보시오소서. 오늘은 이 노래들과 함께 마음껏 드시고 내일은 황룡사로 납시어 백고좌를 주관하소서. 진성 숙부께서 다 하시는 일입니다. 나는 노래나 듣겠습니다. 위홍 아 폐하, 또 있사옵니다. 지금 송악에서 그곳의 성주 왕륭이라는 자가 진기한 물건들을 가지고 오는 중이라 하옵니다. 폐하께서 마음에 드실 보화들이 많을 것이옵니다. 진성 숙부의 배려가 늘 고맙습니다. 위홍 가만 가만.... 여봐라 밖에 누가 있느냐? 잠시 후, 가무가 멈추면서 대답 소리와 함께 영기와 견훤이 들어선다. 위홍 궁성 밖에 있는 객관에 송악에서 온 왕륭이란 사람이 도착하였을 것이니라. 내일 날이 밝으면 가서 마중하여 데려오도록 하라. 두 사람 예. 위홍 도적들이 궁성 밖까지 들끓는다하니 잘 데려오거라. 두 사람 예, 각간 어른. 그들이 물러가고 위홍은 다시 악사들에게 손짓을 보낸다. 다시금 음악소리가 커지며 무희들이 율동을 시작한다. 위홍이 여왕을 포옹하며 애무같은 그 표정에서...... 위홍 아무 것도 걱정마시오소서. 이 숙부만 믿으시오소서. 그리고 내일 당당하게 백고좌에 나가시오소서. 가서 폐하의 위엄을 보이시오소서. 하하하하하. 참으로 오늘 술맛이 달구나. 하하하하하하. 씬 31 황룡사 길 (다음 날) 대로변에 백성들이 무수히 서성거린다. 화랑들과 문무대신들이 길을 메우며 가고 있다. 계속 가고 있는 승려들의 모습도 곳곳에 보인다. 뭔가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백성1 도대체 무슨 일이랴? 백성2 오늘 황룡사에서 백고좌가 열린다하지 않는가. 스님 백 분이 오신다는 거여. 백성1 그럼, 그 암탉도 나오겠구먼. 백성2 대왕폐하 말인가? 백성1 대왕은 무슨 대왕인가, 암탉이지. 백고좌 암만하면 무엇하나? 제정신이 옳바라야지. 백성2 대단하구먼. 화랑들하고 높은 벼슬아치들이 다 모이는 모양 일세. 계속해 그 행렬들이 지나쳐가고 있다. 그들 반대편으로 한 떼의 군마가 지나쳐가고 있다. 그들은 견훤과 그의 군사들이다. 그들 어디론가 멀어져 가면....... 씬 32 들판 길 왕륭의 일행들이 오고 있다. 그들은 민가를 벗어나 들판길로 접어들고 있다. 왕륭과 상인이 앞에 섰고 그 뒤로 두 사부와 장수장 왕건, 그리고 궁예와 종간들이 따르고 있다. 상인 성주님, 오늘따라 서라벌은 아주 바쁜 날이옵니다. 왕륭 어째서....? 상인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연다 하옵니다. 왕륭 허어, 볼만할 것일세 그려. 상인 그렇긴 하겠습니다마는 꼴불견도 많을 것이옵니다. 타락한 화랑들이 젊은 여왕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볼거리를 다 보일테니까요. 왕륭 허허. 그들 그렇게 이야기하며 간다. 궁예와 왕건은 여전히 재미있게 동반을 하고 있다. 궁예 도성에 들어가시면 왕궁 구경도 하시겠습니다. 왕건 그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폐하도 뵙게될지 모르 지요. 그들 그렇게 가는데 앞을 섰던 왕륭과 상인들이 말고삐를 낚아챈다. 상인 성주님, 저기........ 그들 앞으로 무수한 도적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말을 탔고 병장기도 갖추었다. 좌우로 포위하듯 조여오는 도적떼들. 변씨 (급히 소리치며) 도적들이다! 군사들은 대열을 갖추라. 왕륭 ...........모두들 당황하지 마라. 도적들은 더욱 조여온다. 적어도 백여명에 가까워 보인다. 거기에 비해 이들은 이삼십명에 불과하다. 궁예와 종간도 재빨리 경계 태세를 취한다. 이미 군사들과 도적들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어느새 소년 왕건도 검을 빼어들었다. 저만큼 사이를 두고 도적의 괴수가 소리 지른다. 괴수 듣거라. 나는 이곳의 장군, 마석두이다. 있는 것을 그 자리에 놓고 모두 무릎을 꿇어라. 왕륭들 ............ (그러나 모두 전투 태세다) 괴수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나는 장군이라 하였느니라. 모두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아니면 모두 목을 벨 것이다. 왕륭 장군이라는 자가 어찌 도적질 이란 말이냐? 경을 치기 전에 썩 물러가거라. 괴수 그래도 말귀를 못 알아 듣는 구나. 얘들아! 맛을 보여주거라. 저 자의 목부터 베거라. 왕륭의 가리키며 소리 지르자 삽시간에 전투가 벌어진다. 변씨 주군을 뫼셔라. 여기저기서 말들이 달리고 칼과 칼이 부딪친다. 금세 그곳은 혼란의 장으로 변한다. 변씨 (싸움) 공자님을 보호하라. 장수장 예. 그러자 장수장과 군사들이 왕륭과 왕건의 앞을 막아 선다. 치열한 접전이 계속된다. 송악의 군사들은 훌륭하지만 그러나 중과 부적이다.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서도 왕륭과 소년 왕건은 군사들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열심히 싸운다. 궁예와 종간도 석장을 휘두르며 도적들을 눕히고 있다. 괴수 저 자가 수령이다. 저 놈부터 죽여라! 괴수의 명에 의해 도적들은 집중적으로 왕륭과 왕건쪽으로 몰려든다. 왕륭들의 숫자가 줄고 있다. 점차 형세가 불리해진다. 변씨 주군, 어서 피하시오소서. 이쪽은 제가 맡겠사옵니다. 어서 피하시오소서, 어서! 치열한 접전이다. 변씨의 무예도 놀랍고 궁예와 종간의 솜씨도 놀랍지만 그러나 적은 너무나도 많다. 위기의 순간이다. 괴수 하하하하. 미련한 것들.... 어서 싹 쓸어버려라. 대단한 물건들이다. 저것은 모두 우리 것이니라. 그때다. 저 만큼 먼지를 일으키며 서라벌쪽에서 군마가 달려오고 있다. 그들은 견훤과 철기군들이다. 추허조과 애상이 견훤과 함께 오고 있다. 왕륭이 그들을 본다. 견훤 이놈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코 앞에 도성이 있는데 웬 노략질이란 말이더냐. 괴수 ........ (뻥해서 보다가) 너는 웬 놈이냐?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구나. 이리 오너라, 이 애송이야. 견훤 오냐, 이 도적놈아. 허조야! 추허조 예, 주군 견휜 가서 상대해 주어라. 주허조 예. 추허조가 괴수쪽으로 달려간다. 도적들이 앞을 막아서지만 그러나 놀랍다. 도적들은 몇 초를 받지 못하고 모두 목이 잘린다. 눈부신 검술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괴수가 나선다. 그러자 견휜도 달려가 괴수를 맞는다. 건휜 네 이놈... 네놈은 내가 맡으마. 괴수 오냐.. 받아랏! 치열한 접전이 이어진다. 추허조는 구경만 하고 있고, 이윽고 견휜은 그 괴수를 베어 떨어트린다. 와- 함성이 일어나나낟. 견훤 도적의 괴수가 죽었다. 나머지도 모조리 목을 베어라. 그리고 무인지경이다. 마치 춤추듯 그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풀이 베어지듯 도적들이 죽어나간다. 좌충우돌....... 견훤과 함께 온 추허조와 능환과 그의 군사들도 무섭게 싸운다. 여기에 힘입어 변씨와 궁예들도 크게 분발한다. 이윽고 도적들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왕륭이 그런 견훤을 멍하니 보고 있다. 왕륭 뿐만 아니다. 모두들 놀란 눈으로 견훤의 위용을 보고 있었다. 그 견훤이 서서히 말머리를 돌려 왕륭의 앞으로 다가와 군례를 올린다. 왕륭 고맙소이다. 대체 누구신지....? 견훤 소장은 각간 위홍님께서 보내신 견훤이라 하옵니다. 왕륭 견훤? 견훤 그러하옵니다. 견훤이옵니다. 그런 견훤의 얼굴에서... 해설 드디어, 드디어 견훤이 그 이름을 들어냈다. 견훤, 지금은 이렇게 서라벌의 이름 없는 장수로 그 모습을 나타내 보이지만 그가 누구인가? 훗날의 백제국을 복원하여 그 임금 자리에 오르는 견훤. 그 사람이 아닌가? 후삼국의 영웅들인 어린 왕건과 궁예와 견훤, 이들 세 사람이 드디어 이렇게 만나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첫 상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