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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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1 지난 회의 그곳
여전히 견훤과 왕륭들이 서로를 보고 있다.
왕륭 각간 위홍 어른께서 보내셨다 하였소이까?
견훤 그러하옵니다.
왕륭 참으로 대단한 무예를 보여주셨소이다. 나는 그대가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견훤 허허허. 어인 말씀을...... 소장은 그저 왕실을 멀리서 보좌해 올리는 하급 군관에 불과 하옵니다.
모두들 그런 견훤을 보고 있는데, 궁예가 한 마디를 거든다.
궁예 어디서 그렇게 놀라운 무예를 익히셨는지요?
견훤 (씩 웃으며) 그야말로 제가 물을 말이올시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그런 무업을 쌓으셨소이까? 석장을 휘두르시는 것이 마치 손오공이 여의봉을 놀리는 듯 하더이다.
궁예 과찬이십니다. 과찬이에요.
왕륭 통성명들 하시지요. 이 스님은 선종 스님이라 하십니다.
송악에서부터 같이 올라왔지요.
궁예 선종이라 합니다. 속가의 이름은 궁예라 합지요.
견훤 궁예라..... 활을 잘 다스린다는 뜻이로군요. 스님과는 걸맞지 않는 이름이신 것 같소이다. 하하하하.
왕륭 이 아이는 제 아들이올시다.
왕건 왕건이라 하옵니다, 장군님.
견훤 하하하. 공자님, 나는 장군이 아닙니다. 장군이란 아주 높은 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들 가시지요. (추허조에게) 허조야, 짐바리들을 호송하여라.
추허조 네에...
견훤 성주님은 소장이 뫼시겠습니다. 가시지요.
그러자 군사들이 대열을
이루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왕륭과 궁예들은 아직도
견훤을 보는 시선이 경이로워 보인다.
견훤은 그렇게 덤덤히 앞서가고......
해설 견훤. 상주 사람이다.
그는 상주의 농민호족인 아자개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부터 담력과 힘이 뛰어났으며 그 사람됨이 대범하고 호탕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그가 얼마나 무예를 좋아하였는가는 그가 그의 아들들 이름에 모두 ‘검’자를 붙인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기록에 의하면 나이 열 다섯에 스스로 이름을 견훤이라 고치고 당시 신라의 서울인 서라벌로 올라와 군인이 되었다. 그가 왜 힘깨나 있는 호족집안의 장자이면서도 아버지 곁을 떠나 군인이 되었는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후의 행적으로 보아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뿐이다.
이들 그렇게 계속해 간다.
왕륭 위홍님께서 이렇게 각별히 신경을 써주시니 참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하기사 그 분은 본래 친절하셔서.......
견훤 친절하시다구요? 아... 예...
왕륭 왕실은 두루 다 편안하시겠지요?
견훤 편안하다면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올리겠사옵니까? 왕륭 .............?
견훤 가시게되면 위홍 어른의 댁에서 묵게되실 것이옵니다.
서라벌의 형편이 그리 밝지 못 하니 유념하시오소서.
왕륭 예, 다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견훤 가시지요.
왕륭 (다시 견훤을 본다) .........
왕륭은 다시 견훤을 본다.
그들 그렇게 가면 종간과 궁예도 그런 견훤을 계속해 본다.
그의 풍채며 뿜어나오는
안광이 역시 예사 사람은 아닌 것이다.
씬 2 서라벌 길
군사들이 길을 정비하고 있다. 여기저기 쓰러진 걸인들하며 모여있는 백성들을 군사들이 쫓고 있다.
길가에 쓰러진 시체들을
치우는 모습도 보인다.
군관 곧 폐하께서 지나가시느니라. 어서 골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까! (군사들에게) 저 시체들을 치워라. 저 걸인들을 보이지 않게 어서 쫓아내라. 군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더러는 끌고가고, 걷어차고, 창으로 밀어내며 길을 정리한다. 이윽고 멀리서 여왕의 행차를 알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소리 물렀거라! 모두...모두 엎드려라. 엎드려라. 폐하께서 납시느니라, 폐하께서 납시느니라.
여왕의 마차가 영기와 그의 호위군사들과 함께 나타난다.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여왕은 위홍과 나란히 마차에 올라있다.
남아있던 연도의 백성들이 모두 길가에 엎드린다.
유유히 그곳을 지나쳐가는 그들.
씬 3 그 마차
위홍 보시오소서, 폐하. 하늘은 맑고 백성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기름져 있사옵니다. 저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오소서.
진성 모두가 숙부의 덕입니다.
위홍 오늘의 백고좌는 아주 훌륭하게 치루어질 것입니다.
마차는 그렇게 길가를 벗어나고 있다. 마차가 지나가자 백성들은 일어서며 웅성거린다.
백성1 백고좌라구? 도대체 누구를 위해 드리는 기도란 말인가? 백성2 부처님께서 잘도 도와주시겠구먼. 퉤! (침을 뱉고) 군관 폐하께서 지나가셨다. 군사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거라.
군사들이 모여 열을 이루고 그곳을 빠져나간다.
분노한 백성들의 표정이
계속해 마차가 지나간 쪽을 보고 있다.
백성1 하늘님은 뭘하시나? 저 더러운 것들에게 벼락이라도 내리시지 않고.
씬 4 산사 외경
절에 문들이 열려있다.
방안에서 멀리 하늘을 보는 도선. 경보가 재촉을 한다.
경보 스님, 많이 지체되었사옵니다.
도선 ............ (대꾸가 없고)
경보 지금쯤 황룡사에 모두들 모여 계실 것이옵니다. 폐하의 영을 받으셨으니 가셔야하지 않겠사옵니까?
씬 5 동 산사 방안
도선 ............그래야겠지.
경보 허면 속히 나서시지요.
도선 그래...... 가기는 가야겠지. 허나 다 소용없는 것을........
경보 실로 오랜만에 열리는 큰 법회가 아니옵니까? 소용이 없다니요, 스님? 도선 백고좌란 국가의 안태를 기원 하는 것이다. 나라의 임금이 스스로 인왕반야경을 외우며 반야의 지혜를 깨닫고 나라를 평안하게 통치하기를 바라는 법회 이니라. 헌데 법회를 주관하는 임금의 뜻이 다른 곳에 가 있으니, 어찌 허망하다 아니 하겠느냐? 경보 ....하지만 스님, 그래도 이 나라의 고명하신 고승대덕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옵니다.
스님께서 아니 가실 수야 없지 않사옵니까.
도선 허허허. 고승대덕이라....? 가사장삼만 번드르르해서 고승 이고 대덕이더냐? 경보 .............
도선 (일어서며) 천 년의 신라가 오늘날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왕실과 귀족들만을 위해 왔던 중들의 잘못도 적지가 않느니...
가보자꾸나. 어찌 되었든 부처님의 명호를 뫼신 자리이니 아니 갈 수도 없겠고....
경보 서두르셔야 겠사옵니다.
도선 서두를 것 없다. 황룡사는 여기서 지척이다. (나서며) 여기 서라벌에도 너무 오래 있었구나.
그들 그곳을 나선다.
씬 6 황룡사
많은 대소신료들이 들어오고 있다.
곳곳에 군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고 황룡사 그 마당에는 백성들과 귀족, 화랑들로 하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여전히 줄지어 들어서는 승려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 소요는 얼마간 계속되다가 이윽고 여왕의 출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며 물결처럼 갈라진다.
소리 대왕폐하 납시오!
드디어 두 마리의 백마가 끌고 있는 여왕의 마차가 절 마당으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모두들 허리를 숙이며 그 마차를 맞는다.
영기와 군사들이 마차를
호위하여 오고 있다.
성장을 한 위해 금관을 쓴 여왕의 모습, 호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화랑들이 일제히 ‘대왕폐하 만세’를 외치기 시작한다. 그 소리는 온 장내를 압도하며 계속 이어진다.
여왕은 계속 손을 흔들고...
씬 7 동 황룡사 마당
수많은 대신들과 기다리고 있던 승려들이 일제히 일어나 허리를 굽힌다.
여왕은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자리로 가 앉는다.
위홍이 그 옆에 앉으며
다시 모든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여왕.
또 다시 환호가 물결치고 있다.
그 소란이 멎자 여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위홍이
소리친다.
위홍 폐하께서 납시셨으니 의식을 집전하라.
집사 의식을 집전하랍신다!
그러자 큰 대북이 둥둥
울리기 시작한다.
그 소리가 계속 되면서 수많은 궁녀들이 단위에 올라 무수한 꽃가루들을 뿌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백 개의 등을 모신 궁녀들이 단으로 가 그
연등을 걸고 있다.
불상과 보살상, 나한상들이 단 위에 끝없이 배열되어 있고 그 앞에는 숫한 향로에 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인왕백고좌회 의식 참조)
북소리에 이어 승려들의
*인왕반야경 호국품의 불경을 외는 합장 소리들이 온
장내를 덮고 있다.
그 장관의 모습이 계속되고 있고.......
씬 8 성루
서라벌 성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왕륭 일행들.
그 웅장하고 화려한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왕건은 초롱한 눈빛으로
거리며, 사람들을 보고 있다.
왕륭 언제와봐도 이 도성은 참으로 웅장해 보이네.
변씨 그러하옵니다, 주군.
왕륭 하기사 천년의 사직일세.
삼국을 통일한 대국의 도성이 이 만은 해야지.
왕건 궁궐은 어디에 있사옵니까?
견훤 이곳은 관문성이고 저쪽이 월성입니다. 폐하께서 계신 궁성은 용궁이라 하여 저쪽 대로로 곧장 가야하지요.
왕건 (감탄) 이야! 도대체 얼마나 큰 성인가요?
견훤 공자께서 걸어서 보시기에는 며칠은 걸리셔야 할 것입니다. 허허허.
왕건 며칠씩이나요?
견훤 성주님께서는 이쪽 길로 가셔야겠습니다. 각간 위홍 어른댁은 여기서 얼마 아니됩지요.
그제서야 함께 따라왔던
궁예와 종간은 서로 눈짓을 한다. 그리고 왕륭에게
예를 표한다.
궁예 성주님, 이제 그만 저희들도 여기서 길을 달리 잡아할 것 같사옵니다.
왕륭 아니, 여기서 헤어지시게요?
궁예 예. 서라벌에 다 오지 않았사옵니까.
왕륭 허허. 그렇긴 하지만 객관까지는 함께 가서 요기라도 하고 가셔야...
종간 아니옵니다, 성주님. 참으로 큰 도움을 받았사옵니다.
왕건 여기서 가신다구요, 스님?
궁예 예, 공자님.
왕건 (헤어지기 싫다) 조그만 더 있다 가시지 않고.........
견훤 스님들끼리 가실 곳이 있는 모양이지요. 자, 그럼 가실 분은 가시고........
궁예 또 뵐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신세를 오래 잊지 않겠사옵 니다. 편안히 가시오소서.
왕륭 잘 가시오.
견훤 잘들 가시구려.
왕건 기회가 되시면 또 오시어요, 스님들.
궁예 예.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럼...
이들 합장을 한다.
헤어지며 변씨도 인사를
한다.
변씨 조심들 하시구려.
이윽고 왕륭 일행들이 견훤과 함께 위홍의 집 쪽으로
사라져간다.
궁예와 종간이 주변을 돌아본다.
종간 이제 어디부터 가시겠습니까?
궁예 황룡사에서 백고좌가 열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부처님 제자로서 거기부터 가봐야하지 않겠는지요? 종간 (미소)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가시지요.
씬 9 또 다른 길
견훤과 왕륭들이 오고 있다. 막 위홍집쪽으로 들어서고 있는데 걸인패들이 ‘와’하니 달려든다.
몰골들이 말이 아니다.
손을 벌리며 떼거지로 달려들고 있다.
걸인1 먹을 것좀...뭐라도 좀 주시어요.
걸인2 나으리, 뭣좀 주시우. 뭣좀....
왕륭 ...........
견훤 허, 이거 참...가라, 저리들 가라. (군사들에게) 이들을 물리쳐라.
군사들이 걸인들을 떼어놓고 있다. 처참한 모습들이다. 왕건도 아픈 표정이다.
아기를 안은 걸인들, 길가에 헐떡이며 죽어가는 노파, 치워지고 있는 시체들, 길가에 쓰레기를 주워먹는 걸인들........
왕건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다.
견훤 서라벌 어디를 가나 이런 모습을 보실 수가 있사옵니다.
폐하나 귀족들이 다니는 큰 길에서는 그렇지가 않지만 말입니다.
왕륭 .............
왕건 너무도 딱해 보이옵니다.
견훤 하지만 저들을 구해줄 사람은 이 신라땅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왕건 .............
견훤 왕실 창고도 텅 비었습니다. 이번에 치루는 백고좌도 몇몇 귀족들이 추렴을 한 것이지요. 귀족들의 곳간에는 물건이 넘쳐나는데 왕실은 비었단 말입니다.
왕륭 .............?
견훤 이제 다 왔사옵니다. 저기.... 저곳이 바로 위홍 어른의 저택 입지요.
왕건 와....마치 큰 대궐 같습니다?
견훤 허허허. 귀족들 댁이 대게 다 저렇습니다. 허조야, 짐들을 곳간으로 옮겨라.
추허조 네.....
이들 그렇게 가면.....
씬 10 황룡사
수많은 인파가 모여있다. 여전히 의식이 계속되고 있다. 승려들이 합창으로 반야경을 염송하고 있다.
왕실의 악대가 동원되었고 장중한 스님들의 바라춤이 군무를 이루고 있다.
무수한 인파 사이로 궁예들이 모습을 들어내 보인다.
해설 백고좌, 승려 백 명을 법사로 청하여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국가차원의 대단히 큰 불교행사의 하나이다. 호국적 의미가 깊은 것으로서 반드시 국왕이 시주로 하도록 되어있다.
서기 613년 진평왕 35년에 처음 열렸으며 이후, 고려조까지도 계속 이어져 왔으나 몽고의 침략이후, 호국의식에 대한 저들의 경계심으로 하여 단절된 것으로 전해진다.
바라춤과 염불 염송이 끝나고 시주인 여왕이 그의 자리에서 일어나 제단으로 가려 하다가 문득 한 쪽을 본다.
노승인 도선이 그의 제자와 함께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려있다. 그의 가사장삼은 남루하기 그지없고 고승의 품위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도선대사’라는 소리들이 웅성거리며 들려온다.
그는 여왕에게 가볍게 예를 올리고 중앙에 마련된 그의 자리에 가서 앉는 동안, 모든 승려들이 일어나 정중한 예를 올린다.
그 극진한 예를 보고 있던 여왕과 위홍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대신들의 모습도 하나같이 경이롭다. 물론 최치원도...
위홍 (여왕에게) 도선대사이옵니다, 폐하.
진성 나도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희대의 고승이라지요? 위홍 그렇다고 하옵니다.
진성 그렇다면 저 스님으로부터 법문을 주관토록 하는 것이 어떨런지요? 얼마나 법력이 높은지 보아야겠습니다.
위홍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습니다.
진성 (끄덕이며) 집사는 듣거라. 도선대사에게 법문을 청해올려라.
집사가 길게 대답하며 도선의 앞쪽으로 간다.
여왕은 다시 제자리에 앉는다. 집사와 주관하는 승려가 도선 앞에 이르러 합장을 해 허리를 숙이며 목탁을 치고 청법염불을 해올린다. 모든 승려들이 고개를 숙인다. 즉, 법문을 청하는 것이다.
일시에 모든 것이 조용해지면서 도선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석장을 바닥에 세 번 내려친다.
무슨 의미일까? 모두들 본다. 침묵... 침묵이다.......
도선 많은 고승대덕이 이 자리에 계시는데 폐하께오서 이 늙은이에게 먼저 입을 열라 하시니 어찌 영을 따르지 않으오리이까? (사이) 법력과 도력이 높은 스님도 많이 계시고 이 나라에 부처님을 모르는 이, 하나도 없는데 세상이 왜 이리 험난하고 고통스러운지 아는 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들 도선의 말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음을 눈치챈다.
도선 백고좌가 무엇입니까?
한 나라의 군주가 반야의 지혜를 얻어 슬기로서 백성을 편안케 하라는 뜻이 담긴 법회올시다.
위홍 (듣고 있다가) 아니, 저... 저...?
여왕 .............
도선 그런데 소량리의 돌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소이다.
죄없는 성자가 끌려와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굶어죽는 백성들의 시체가 밤마다 도성 밖으로 옮겨지고 있소이다.
백고좌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저들이 모두 불법의 도리는 알았으나 깨닫는 눈이 막혀 있으니 이 나라의 국운이 어찌 편안키를 바라겠습니까? 하늘이 이를 용서하리이까?
위홍 저 자가 지금 법문이라고 하고 있는 겐가?
진성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겝니까?
위홍 법문을 중단시켜야 겠습니다.
도선 (계속) 부처님은 어디에도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지 못하니 이 얼마나 억울하리오.
위홍 그만 되었다. 법문을 그치라해라. 다음 스님을 뫼시어라.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난리들이다.
집사와 주관하는 승려가 급하게 달려간다. 궁예들도 이 모습을 보고 있다.
그러나 도선은 다시 석장을 쾅쾅 친다.
그 위엄에 감히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한다.
도선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은 중생들 에게는 어리석은대로 근기에 따라 나타내심을 보인다 하셨습니다. 하늘의 대답을, 하늘의 뜻을 살피시오소서, 폐하.
그리고 이 나라의 귀족님들이시여. 모두들 겸허하게 가슴을 치며 뉘우치지 않으면 이 신라에 다시는 불꽃이 지피지 않으리다. (하늘을 보며) 대답하소서, 하늘이시여.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신 대 광명 부처님의 뜻을 아둔한 중생들에게 보이소서.
갑자기 마른 번개가 쉼없이 때려오기 시작한다.
여왕과 귀족들, 화랑들은 물론이고 수 많은 인파가 놀라서 어쩔줄을 모른다. 일진광풍이 일면서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치고 수많은 비둘기떼가 어디선가 날아와 도선의 머리를 맴돌고 있다. ............
씬 11 서라벌 거리
이곳에서도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하늘은 먹구름에 싸였고
천둥번개가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 하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고 있다.
씬 12 위홍의 집
객사 앞에서 그 광풍의
하늘을 보고 있는 왕륭과 그 일행들.
그 놀라운 표정들.
입을 다물지 못한다.
씬 13 옥사
광풍은 더욱 거세지면서
옥사의 벽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옥졸들이 놀라 몸을 피한다. 옥사 안에 들어앉아있던 왕거인이 조용히 하늘을 본다. 천둥번개에 의해 그의 쇠사슬들이 토막나버린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무너진 담을 지나 사라져버린다. 그의 웃음소리가 에코우된다.
씬 14 다시 황룡사
도선이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던 석장을 내리고 서서히 그 자리에서 내려와 인파를 뚫고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비둘기떼도 서서히 도선을 따라가더니 하늘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온통
소란통이다.
그때 우르릉 쾅쾅대며 황룡사의 9층탑이 소리를 내며 한 족으로 무너질 듯 기운다. 비명소리들..
아비규환의 사람들.
위홍 폐하를 뫼시어라...어서, 환궁 하라, 군사들은 무얼 하느냐?영기와 군사들이 달려온다. 여왕이 파랗게 질려 에워 쌓여 나가고 있다.
궁예들은 계속해 본다.
무서운 경험이다.
여왕은 물론이고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다.
그 멍한 표정들에서.......
씬 15 위홍의 집
객관 앞에서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는 왕륭들.
하늘엔 아직도 먹구름이
무섭게 몰려가고 있다.
변씨 기이한 일입니다요. 갑자기 웬 천둥번개가.......? 마씨 정말 놀랬사옵니다.
왕륭 .........
그때 마당의 중문이 열리면서 시녀들을 앞세워 위홍의 처가 들어온다.
왕륭이 일어나 예를 올린다.
위홍 처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도 인사가 늦었습니다.
왕륭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마님.
위홍 처 어른께서는 백고좌 법회에 가 계신지라 조금 늦으실 것입니다.
왕륭 예, 말씀 들었사옵니다.
위홍 처 (왕건을 보고) 어릴 때 한 번 본 것 같은데 많이도 컸습니다.
왕건 인사드리옵니다, 마님.
위홍 처 (미소) 그래, 네가 아주 어렸을 때 보았지. 삼 년 전인가, 모르겠구나.
왕륭 허허허허. 그렇게 되었사옵니다. 그때 한 번 제가 데리고 왔었습지요.
위홍 처 불편한 것이 있으시면 아랫것들에게 말씀을 하세요.
왕륭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님께 올릴 특별한 예물을 좀 가지고 왔사온데.........
위홍 처 오실 때마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편히들 쉬세요.
왕륭 살펴주셔서 고맙사옵니다.
위홍의 처가 다시 돌아
나간다.
왕륭 언제나 아주 자상한 분이시지. 자, 자네들도 피곤할텐데 들어 가 쉬게.
변씨,마씨 예, 주군. 주군께서도 좀 쉬시오소서.
왕륭 그보다도 그 견훤이란 사람 말일세. 차라도 한 잔 하지고 하세.
변씨 예, 주군. 여봐라, 장수장 뫼시고 오너라.
장수장 네에...
장수장이 나간다.
연신 하늘을 보며 고개를 갸웃 하는 왕륭.
씬 16 동 객관 방
왕륭과 견훤이 주안상을 놓고 앉아 있다.
계속 술을 마신다.
왕륭 서라벌이 많이 변한 듯 하오.
견훤 죽음의 땅이 된지 오래이옵니다.
왕륭 ......?
견훤 오시면서 보시지 않으셨사옵니까? 그래도 아마 성주님께서 가져 오신 물목들을 풀어놓으시면 왕실과 귀족들은 개미떼처럼 몰려들 것이옵니다.
왕륭 꼭 이 몸을 원망 하는 것 같소 이다.
견훤 안타까워 해보는 소리입니다요.
왕륭 보아하니 장수중 장수이신데 ...그렇다면 이렇게 암울한 서라벌에서 무얼 기다리시는게요?
견훤 허허허허.....서라벌은 신라의 중심이 아니옵니까? 처음에는 병정이 되어 이 곳에 왔었사옵 니다. 출세간을 한 번 달려보려고 말이옵니다.
왕륭 그런데요?
견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는 왔는데 이것이 아니었습지요.
어찌 해야할까...생각중이옵니다.
왕륭 (끄떡이며) 그래요. 제 아무리 품은 뜻이 크다해도 풀어 낼 마당이 없다면 소용없는 법... 어떻소이까? 이번에 나와 더불어 송악으로 한번 가보신다면....
견훤 허허허, 성주님과 저는 오늘 처음 만났사옵니다?왕륭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오? 대장부 한 번 보면 백 년을 아는 법이라오.
견훤 허허허.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 장사는 저와 어울리지 않아서요왕륭 장사도 장사 나름이 아니겠소?
견훤 어지러운 세상이옵니다.
저는 저대로 생각한 것이 있사옵니다. 불러주셔서 잘 마셨사옵니다.
왕륭 한 잔 더 하시지 않고.....
견훤 각간 어른을 뫼시러 가봐야지요. 허면 ...쉬시오소서.
견훤이 예를 올리고 나간다. 왕륭 홀로 잔을 들이킨다.
왕륭 인물이로다. 인물이야.
마치 살아 있는 한 마리 범같지 아니한가?
씬 17 동 객관 밖
견훤이 능환과 군사들을
이끌고 막 문을 벗어나고 있다.
능환 나으리, 송악 성주라는 사람이 나으리를 마음에 크게 두셨나 보옵니다? 별도로 불러 술을 청하니 말이옵니다?견훤 가세.
견훤, 한번 더 객관쪽을
보고는 추허조와 애상, 군사들을 이끌고 사라진다.
씬 18 대궐안 뜰
바람이 극심하게 불고 있다. 궁녀들과 시위 무사들이
오가고 있다.
씬 19 동 대전 안
여왕이 아직도 창백한 표정으로 떨고 있다.
밖 바람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려온다.
진성 두렵습니다, 숙부.
위홍 무엇이 두렵사옵니까?
진성 도선대사가 수 많은 대신들과 화랑들이 있는 곳에서 나와 숙부를 책망했습니다?위홍 그렇지가 않습니다. 책망이 아니라 잘 해보자는 것이었사옵니다. 본시 백고좌 법회란 그런 것이옵니다. 진성 황룡사의 탑이 기울어 졌습니다.
위홍 날씨 탓이옵니다. 또한 오래 손을 보지 않아서 그럴만도 하구요. 진성 황룡사의 9층탑은 우리 신라를 지켜주는 보물중 하나입니다.
위홍 괜한 기우십니다. 목공을 시켜서 수리를 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진성 왕거인이란 자도 스스로 쇠사슬이 풀어져서 제발로 옥문을 나갔다지 않습니까?위홍 잊으시오서. 군사들을 풀어 다시 잡아드리면 될 일이옵니다.
진성 아닙니다. 그냥 두시어요. 무섭습니다. 모든 게 두렵습니다, 숙부. 위홍 안심하시오소서.
천 년을 버티어 온 이 나라이옵니다.
삼국을 통일 하고 또한 당나라도 물리친 대 신라국이옵니다. 무엇이 두렵사옵니까? 진성 (한숨) 그래요.... 나는 숙부만 믿습니다. 믿을 곳이 없습니다.
위홍 머루주를 한 잔 드시오소서. 그리고 푹 침수를 드시오소서. 아침이 되면 다 좋아지실 것이옵니다.
진성 ......(아직도 공포 같은)....?
위홍이 어서 술을 마시라고 손짓하면 여왕이 마지못해 술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위홍이 아이를 어루듯이 토닥거려 준다.
그러면 무너지듯 기대어
오는 여왕. 울고 있다.
위홍이 그 눈물을 닦아준다.
위홍 이런... 낙루를 다 하시옵니까? 허허허...폐하답지 않으시옵니다.
위홍, 그런 여왕을 더욱
안아 주는데......
씬 20 도선의 산사
주변 길(밤)
이곳에서도 바람은 심하게 불고 있다.
궁예와 종간이 오고 있다. 멀리 불빛이 보인다.
종간 저어기 저 곳인 모양입니다.
궁예 (끄떡이면) .......
종간 낮에 황룡사에서 그런 난리가 있었는데...... 무사할지 모를 일이올습니다.
궁예 많은 눈들이 지켜보고 있었소이다. 쉽게 옥에 가둘만한 어른은 아니지요. 불빛이 밝은걸 보니 계시는 모양입니다.
이들 그렇게 걸어간다.
저만큼 그 산사의 불빛
에서....
씬 21 그 산사 외경
씬 22 동 방 안
타오르는 촛불 아래 도선이 염주알을 굴리며 생각에 잠겨있다. 그 맞은 편에 경보가 차를 다려 올리며 조용히 묻는다.
경보 스님...?
도선 ...........?
경보 낮에 황룡사의 일 말이옵니다... (사이) 소승은 참으로 두렵고 놀라워서 어쩔줄을 몰랐사옵니다.
도선 ...........?
경보 어쩌면 그렇게 바람과 천둥 번개를... 마음대로 부리시는 지요?도선 (차를 한 모금 마시다가) .....쯔쯧쯧.... 그것이 그리도 신통하더냐?경보 예, 너무도 놀랍고...두려워서...
도선 도를 알고 깨닫게 되면 태산도 옮기느니라. 그런 것들은 다 순간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니...마음에 담아놓을 필요 없다...
경보 예..... 스님.
도선 날이 밝는대로 떠나도록 하자 꾸나. 이곳은 이제 그 기운이 다 하였어. 경보 많은 사람들이 스님께 앞으로의 세상을 물었사옵니다.
소승도 실은 궁금하옵니다.
도선 어제를 생각해 보고 오늘을 보면 알 것 아니냐? .....시산 혈해가 될 것이니라. 시체의 산이 쌓이고 피의 바다가 될 것이야. 경보 고통받는 백성들은 어찌하옵니까?
도선 그래도오는 세월은 피할 수 없다.
두 사람 마음이 무겁다.
차를 두어 모금 마시다가
도선 객손님이 오는구나.
경보 .....?
도선 가서 데려 오너라.
경보 밖으로 나가면......
씬 23 동 산사 마당
어둠 속에 궁예와 종간이 막 다가오고 있다.
그들 서로 합장을 한다.
궁예 도선대사님을 뵈러 왔습니다만...
경보 안으로 드시지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들 .........?
이들 도선의 방 앞에 이르러 신을 벗고 안으로 든다.
씬 24 동 방안
그들 도선에게 절을 하고 앉는다.
도선 대사님, 소승은 선종이라 하옵니다. 여기 함께 온 분은 같은 사문의 사형 종간 스님이라 하옵니다.
종간 종간이라 하옵니다.
결재일이 끝나 만행중이옵니다.
도선 그래..... 만행이라...
(궁예를 한참 보다가) ....너는 외눈박이로구나. 애꾸야.
궁예 예. 어쩌다가 한 쪽 눈을 잃었사옵니다.
도선 .......... (끄떡인다)
궁예 세달사의 범교스님께오서 대사님을 찾아뵙고 세상의 이치와 소승들의 앞날을 여쭈라 하셨사옵니다. 도선 허허... 범교스님도 한 백 년 사시더니... 노망기가 드셨나보구나. 모두들 ..........?
궁예 대사님, 고견을 들려주시오소서. 중생들의 신음소리가 천지를 진동 하고 있사옵니다.
도선 ..........?
공예 일러 주시오소서. 어디로 가오리까?
도선 도적놈이 이미 도적질을 나섰는데 나보고 무얼 또 이르라는 것이냐? 그들 ...........(놀라서 본다)....?
궁예 천하를 훔쳐 백성들에게 되돌리고자 하옵니다. 이것도 도적이라 하겠사옵니까?종간 ..........?
궁예 미륵의 세계를 열어 고해의 바다에 연꽃을 피우려 하옵니다. 어느 길로 가면 빨리 이르오리까? 도선 한 쪽 눈으로 세상을 살다보니 천지가 반쪽으로 보이는 모양이로구나.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거라.
궁예 어찌 욕심이라 하시옵니까? 허면 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누가 구할 것이오니까?도선 나 없이 안된다는 것이 바로 욕심이니라.
궁예 ............?
도선 말해주랴...? 너의 앞 날 말이다.
그들 .....(긴장)...?
도선 석가모니께서도 많은 업을 다 닦으신 연후에 부처님이 되셨느니라. 너 또한 아직 남은 업이 많으니 이를 어이 할꼬?궁예 .........(미소).......어렵다는 말씀이오니까?
도선 뜻은 이르겠으되........ 복이 박하니 천하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종간 뜻을 이루옵니까?
도선 물러들 가거라. 말장난 할 때가 아니니라.
종간 스님께서는 도선비기라는 앞날을 예측하는 비서가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사실이온지요? 도선 미련한 것들 같으니...
대범한 척 하면서도 속물들이로구나. 그런 것이 있는들 어떠 하며, 없다면 또 어쩔 것이냐. 감히 미륵을 운운하더니 재목들이 아닌게로구나.
궁예 송구하옵니다. 대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소승이 앞날이 훤희 보이는 듯 하옵니다.
도선 그만 물러들 가거라. 쉬고 싶구나.
궁예 또 뵈올 날이 있으오리까?
도선 아마도 그럴 날은 없을 것이니라.
궁예 좋은 세상이 오면 반드시 찾아 뫼시겠사옵니다.
도선 그럴 일 없을 것이니라.
어서들 가봐.
궁예 절 받으시오소서.
그들, 절을 올린다.
‘흠’하며 한숨을 쉬는 도선의 표정에서......
씬 25 동 산사 밖 길
궁예와 종간이 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밝다.
궁예 우리가 본 그대로입니다. 도선대사는 신승입니다.
하늘이 낸 스님이에요.
우리가 할 일을 보고 계셨습니다.
종간 스님께서 뜻을 이룬다하셨습니다. 천하를 얻으신다구요.
궁예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도 하셨습니다.
종간 큰 스님들은 대개 다 그러시지요. 온갖 부귀영화나 권력을 아주 우습게 아시지 않습니까? 이제 어디로 가시련지요? 궁예 갈 곳이 있습니다. 내친김에 일을 다 보려고 합니다.
씬 26 도선의 방
도선이 침묵에 잠겨있다. 경보가 그런 도선을 빤히 보고 있다.
도선 볼 사람은 다 보았구나.
경보 .........
도선 천지를 뒤흔들 용들이 서라벌에 다 모여있어. 묘한 우연이로다.
경보 ..........?
도선 바랑은 다 꾸렸느냐?
경보 예, 스님.
도선 그럼 떠나자꾸나. 손님들이 또 올 것 같은데 아직 만날 시기가 아니고....... 우리도 가자.
경보 예, 스님.
씬 27 위홍의 집 후원
(객관 옆)
왕륭과 두 사부가 밤하늘을 보고 있다.
왕륭 황룡사의 탑이 기울었다고....?
두 사람 예.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왕륭 민심이 흉흉하겠군. 서라벌이 생각보다도 심각해....(사이) .... 내일 이곳 상인들을 만나 기로 했던가? 마씨 그렇사옵니다.
왕륭 그 일들은 자네가 처리하게나.
마씨 예.
왕륭 그리고 도선대사께서 계신 곳에 상황을 좀 알아보게.
변씨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왕륭 자네들은 그 견훤이란 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변씨 가히 걸물이옵니다. 저희들의 용맹으로도 감당키 어려운 자인 것 같았사옵니다.
왕륭 아까운 사람이야.
두 사람 .............
씬 28 서라벌 궁성
문이 열리고 군졸들의 군례를 받으며 위홍의 마차가 빠져나오고 있다.
견훤이 그를 호위해온다. 그들은 곧 궁성 곁을 지나고 서라벌 대로로 들어선다. 위홍의 표정은 편치가 않다.
위홍 (한참을 가다가) 송악의 왕성주가 도착했다고....? 견훤 예.
위홍 (다시 말이 없다가) 물건은 많이 실어왔드냐?
견훤 예. 그런 것 같았사옵니다.
위홍 때 맞추어 잘 왔구만.
궁성에 필요한 것들이 많을터 인데....(한숨) 혹시 오늘 백고좌에 대해서 들은 말이 없느냐? 견훤 소인은 아무 것도 들은 바가 없사옵니다.
무뚝뚝한 견훤을 위홍은
찡그리며 본다.
그러다가 피식 웃는다.
위홍 네가 수하들을 이끌고 내게 온지도 꽤 되었지?
견훤 ............
위홍 그래, 너와 너의 수하늘은 참으로 대단한 자들이다. 내가 알지.이제 좋은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어야 겠구나. 내 그렇지 않아도 군부에 너의 이야기를 해 놓았느니....
견훤 황공하옵니다.
위홍 허허허,내게 충성한 자들은 다 그 보답을 주었느니라. 기다려 보거라.
견훤 (마지못해) 예, 각간 어른.
그들이 그렇게 가고 있다. 어느 만큼을 지나갈 무렵, 그들을 보는 두 스님들이 있다. 도선과 경보이다.
그들의 모습이 멀어지면...
경보 스님, 각간 위홍이 아니옵니까?
도선 그런 모양이다.
경보 궁성에서 나오는 모양이옵니다.
도선 그렇겠지. 어서 가자꾸나. 백계산 옥룡사까지 길이 한참 이다.
경보 예, 스님.
그들도 그렇게 멀어진다.
씬 29 인써트
달빛이 교교하다.
달무리가 구름에 지나쳐
간다.
씬 30 위홍의 집
위홍과 견훤이 도착하자
대문이 활짝 열리며 가복들이 나와 마중을 한다.
위홍이 가복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고, 이어 견훤도 뒤이어 들어
간다.
그 모습을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궁예와 종간이다.
그들이 모두 들어가 대문이 닫히면 궁예와 종간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언가 암묵의 약속이다.
씬 31 집안
위홍이 들어가면 위홍처가 나온다. 위홍 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 아무 말이 없다. 부부간에 냉냉함이 감돈다.
위홍 처 먼 곳에서 손님이 와계십니다.
위홍 알고 있어요.
옆에 있는 집사를 보며....
위홍 왕성주를 별실로 드시라해라.
집사 예, 각간 어르신!
집사가 왕륭이 묵는 곳으로 가고 위홍, 별실쪽으로
가면 뒤따르는 위홍 처.
씬 32 그 별실
중앙에 탁자가 놓여있고, 양쪽으로 의자가 놓여있다. 위홍이 들어오면 위홍의 처가 뒤따라 들어온다.
위홍이 피곤에 지친 듯
중앙의 의자에 앉으면 위홍의 처는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본다.
위홍 처 (서서 보며) 부군...!
위홍 (자르듯) 피곤하오. 차나 내오 시오.
위홍 처 도리에 어긋나니 피곤도 하실테지요.
위홍 또 무슨 말이 하고 싶은게요?
위홍 처 황룡사 탑이 기울었다지요. 백고좌가 엉망이 되었구요.
위홍 부인!
위홍 처 그래도 나라를 위해, 왕실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하시겠습니까? 폐하와 부군께 하늘이 벌을 내리신게지요.
위홍 감히 폐하를 욕되게 하는 말을 어디서 함부로 뱉으시오? 체통을 지키시오.
위홍 처 체통이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부군께선 폐하의 숙부이십니다.
위홍 어린 조카가 오직 숙부인 나만을 믿고 있어요.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지키려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국이오.
위홍 처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게 안 보이십니까? 부군께서는 이 몸의 부군이시지 조카의 부군이 아니십니다.
위홍 이런.....! (노여움에) 이런.... 그만 두지 못하겠소.
위홍 처 (격노) 부군...!
위홍 (고개 외면하고).........
집사(E) 어른신, 성주님께서 드셨사옵니다.
위홍 안으로 뫼시어라.
위홍 처 하늘을 두려워 할 줄 아십시오. 지금 천륜을 범하는 죄를 짓고 계십니다. 아시겠습니까? 천륜의 죄 입니다.
위홍의 처 날카롭게 쏘아보고 밖으로 나간다.
뭔가를 말하려다가 그만
한숨 쉬는 위홍.
씬 33 그 밖
왕륭과 왕건이 서있고, 위홍의 처가 굳은 얼굴로 나온다.
왕륭은 왕건이 인사를 하면 고개 인사하고 가버리는
위홍의 처.
왕건의 손에는 비단으로 싼 선물 상자가 들려 있다.
씬 34 동 접견실
위홍이 왕륭과 왕건을 맞는다.
위홍 (짐짓 반갑게) 오... 왕성주, 어서 오시오.
왕륭 각간 어르신, 그 동안 평안하시었사옵니까?
위홍 암, 암. 이 서라벌과 나 김위홍이는 늘 편안합니다.
왕륭 제 자식놈이옵니다.
왕건 건이라 하옵니다.
위홍 건이라....? 왕건이겠구먼.
왕건 예, 어르신.
위홍 예의범절 똑 부러지는구먼. 자, 자... 들 앉으세요.
위홍이 중앙에 앉으면 왕륭이 안고, 그 옆에 왕건 앉는다.
왕륭 (비단상자를 앞에 놓으며) 지난 번 당나라에 갔을 때 갖고 온 것이옵니다. 당나라 황실에서 쓰는 순금 다기이옵니다.
위홍 (감탄하며) 때마다 귀한 진상품을 잊지 않으니 고맙소. 폐하께오서도 왕성주의 진상품은 여간 맘에 들어하시는 게 아니오.
왕륭 기쁘게 받아주시니 더 바랄 것이 없사옵니다. 고마움은 소인이 더 간절하옵니다. 외국과의 크고 작은 무역이 다 폐하와 각간 어르신의 덕이 아니시옵니까?위홍 (흐뭇한) 그야, 뭐 그렇기는 하지만서두..... (말을 돌리며) 송악도 다 편안하지요? 왕륭 폐하와 어르신께서 계시는데 어찌 아니 그렇겠사옵니까? 위홍 암, 편안들 해야지. (왕건을 보고) 참으로 총명하게 생겼소이다.
왕륭 고맙사옵니다.
위홍 (왕건을 보고) 이 다음에 벼슬 한 자리 크게 하게 생겼소, 그려.
왕륭 아직은 어린애이옵니다.
위홍 그래, 외국의 사정은 어떠하오?
왕륭 다들 어렵사옵니다. 당나라도 그렇고 발해국도 그렇고....... 아무리 다녀보아도 우리 신라국만한 나라가 없사옵니다.
위홍 (그 말에 안심하는) 암, 그럴게요. 모두들 대국이라 하지만 그네들 역사를 보세요. 하나같이 이삼백년을 못 넘기고 길어야 사오백년이올시다. 우리는 천 년의 역사에요. 천 년....! 왕륭 물론이옵니다.
위홍 그런데도 조정의 늙은 대신들은 나라의 작은 우환을 가지고 과장되게 이러쿵저러쿵 민심을 오도하고 있어.
왕륭 ..........
위홍 그래, 뭐 그 이야긴 그만 하기로 하고...... 한 잔 하십시다.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멀리 대문쪽에서
들려온다.
술잔을 들다가 돌아보는
위홍.
씬 35 그 대문 앞
궁예와 종간이 추허조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추허조 이 오밤중에 누굴 뵙겠다는 거요?
궁예 각간 어른을 뵌다하지 않소.
추허조 스님들이 대체 무슨 일로 이 밤중에 어르신을 뵙겠다는 것이오? 궁예 어허... 긴이 드릴 말이 있다 하지 않았소.
추허조 밝은 날 다시 오시오.
지금은 아니되오.
궁예 지금 만나뵈야 한다고 하였소.
추허조 (성을 내며) 아니 된다니까요.
그때 집안에서 대문을 연다. 거기 견훤과 십여 명의
수하들이 서있다.
견훤 웬 소란들이냐?
그러다가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견훤 아니, 선종 스님이 아니시오?
궁예 그렇습니다. 견훤 장군이시군요.
견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시었소? 이 밤중에 말입니다.
궁예 각간 어르신을 뵈러 왔습니다.
견훤 날이 밝으면 오시지요.
손님이 와 계십니다.
궁예,종간 ...........?
견훤 뭣하면 객관에서 하루 쉬고 내일 만나시오.
궁예 그럴 형편이 아니외다.
나는 오늘 꼭 만나야겠소이다.
견훤 ....아니 된다고 하지 않소이까.
궁예 만나야 된다고 했소이다.
견훤 ...(노기) 나와 싸우자는 것이오?
종간 아주 긴이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런 것이오.
싸우자는 게 아닙니다.
견훤 (명령조로) 내일 오시오!
견훤이 돌아선다.
그러자 궁예가 막아서는
군졸들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선다.
군사들 둘이 비틀거리며
물러난다.
추허조와 애상이 그들을
막는다. 견훤 돌아본다.
노기를 띄운다.
견훤 이 자들이 그런데......
궁예 우리에게도 오늘밖에는 시간이 없소이다. 이해하시구려.
그대로 석장을 휘두르면
군사들 두어 명이 나가
떨어진다.
그러자 추허조와 애상이
검을 뽑아든다.
견훤이 이들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선다. 칼을 뺀다.
견훤 아무래도 나와 맞서야 겠소이다. 지난 번 보아하니 무예솜씨가 대단들 하더이다.
자 정 그렇다면 나를 넘고 가 보시오.
그대로 칼을 빼면 드디어 궁예의 석장과 접전이 붙었다. 궁예의 석장은 무쇠이다. 참으로 볼만하고 치열한 접전이다.
열 수, 스무 수를 넘어도 판도는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얼마를 싸웠을까 결론이 나지 않는 가운데 안채에서 누군가 걸어나오며 묻는다.
위홍 처 웬 소란들이냐? .....멈추어라. 웬 소란인고...? 그러자 그들 비로소 사이를 띄이고 각자의 무기를 걷는다. 위홍 처가 다가온다.
견훤이 예를 올린다.
견훤 마님, 불청객이옵니다.
위홍 처 ......... (궁예를 본다)
견훤 한사코 어르신을 뵌다하여 내일 오라 일렀습니다만......
그러나 이미 위홍 처의 눈은 궁예를 계속해 보고 있다. 알아본 것이다.
그 애꾸눈을... 위홍 처의 입술이 떨고 있다.
그리고 표정은 공포처럼
변해간다.
궁예는 미소를 짓고 있다. 모두들 그런 위홍 처와
궁예를 번갈아본다.
위홍 처 그... 그대는.... 누구신가...?
궁예 궁예라고 하면... 아시겠사옵니까?
위홍 처 (떨며) 궁예.....?
그때 궁예가 위홍 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른 쪽을 본다. 막 별실쪽에서 나온 위홍과 왕륭들이 저 만큼 선다.
견훤과 수하들이 모두 예를 올린다.
궁예들은 그렇게 빤히 위홍을 본다.
위홍 (아직도 궁예를 모르고)
웬 소란이 이리 큰가?
궁예 그럴 수 밖에요.
모두들 ............?
궁예 이십 년만에 죽어도 잊지 못할 원수 하나가 찾아왔으니 어찌 소란이 크지 않겠습니까? 위홍 ............?
견훤 ............?
그제서야 위홍은 어둠 속에 서있는 궁예의 얼굴을 자세히 본다. 위홍 처도 그렇게 떨며 위홍을 보다가 다시금 궁예를 본다.
궁예 궁예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는지요?
위홍 .............. (궁예를 본다)
궁예 하기야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나서 모른다 하실 수도 있겠사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위홍 ...............
모두들 ..............?
궁예 이 궁예를 아시겠습니까, 모르 시겠습니까?
위홍 .......궁.... 예.......?
비로소 위홍의 안면 근육이 파르르 떤다.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의
표정이 의문에 싸인다.
냉소를 짓고 있는 궁예의 표정에서.........
(끝)(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