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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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1 지난 회의 그곳
지난 해와 장면이 연결된다.
궁예가 여전히 비구니를 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오랜 침묵이 교차한다.
궁예 제가 기억이 안나시옵니까?... 유모의 손에 눈이 찔려서... 그리고 범교 스님에게서...(안타깝다) 혹시... 세달사라고 들어보셨사옵니까?
그러자 비로소 비구니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비구니 소승은 도무지 알지 못할 말씀이십니다.
궁예 ...........예?
비구니 (눈을 감으며) 오늘의 일도 다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십여년 전의 일을 기억하라 하십니까?궁예 ...............?
비구니 소승은 이미 속가의 일은 잊은지 오래랍니다.
궁예 ........
비구니 인생은 짧고 부처님 만나기는 어렵다 하였습니다. 부질없는 망상에 이끌리지 마시고 수도에 정진 하시구려.
비구니는 문을 닫는다. 궁예는 할 말을 잃었다. 종간은 나즉히 까닭모를 한숨을 쉰다. 신훤과 원회는 더욱 영문을 모를 일이고보니 그저 어리둥절 하고..... 하늘을 보고 한숨을 쉬던 궁예가 드디어 고개를 끄떡이며 돌아선다.
궁예 사형, 가십시다.
종간 ................
궁예 이제 되었습니다. 돌아 가십시다.
그때 목소리가 다시 들려 온다.
비구니 (E) 범교 스님께서 전하라 하십디다.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은 멀고 잠 안오는 이에게 밤은 길다. 작은 번뇌의 끈 하나조차 버리지 못하고서야 어찌 큰 일을 이룬다 하랴, 하셨소이다.
궁예 ....................?
그렇다. 궁예는 비로소 뭔가를 알아들었다. 그렇게 조용히 섰다가 방을 향해 크게 합장을 하며 인사를 드린다.
궁예 스님, 미련한 소승이 이제서야 부끄러움을 알겠사옵니다. 그 말씀을 깊히 새겨 명심하겠사옵니다.
궁예들은 합장을 마치자 그 곳을 조용히 떠난다. 종간들이 묵묵히 따른다.
씬 2 동 암자 안
비구니가 염주를 굴리고 있다.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다.
비구니 나무관세음보살....나무석가모니불....
씬 3 그 암자 근처 산길
이들이 오고 있다. 종간이 나즉히 말한다.
종간 큰 스님께오서 다녀 가셨다 하옵니다.
궁예 예, 스님께서는 어머님을 통해 질책을 주셨습니다. 지난 것들에 연연하여 어찌 큰 일을 하겠는가.....하시고....
종간 어머님께오서도 참으로 훌륭하시옵니다. 이십년을 기다리셨을 아드님을 보시고도 끝내 그 정을 삭이셨사옵니다. 이는 스님께서 대도를 가실 수 있도록 끈을 자르신 것이옵니다.
궁예 ....... 가십시다.
원회 기왕에 일을 다 보셨으니 소인들과 함께 가시오소서. 지금쯤 푸짐한 연회가 마련되어 있을 것이옵니다.
신훤 우리 장군께서는 장사들을 매우 좋아하시옵니다.
종간 이렇게 청을 해오는데 일단 가보시지요?
궁예 그렇게 하십시다.
원회 오늘 성에 가서 아주 판을 벌려보십시다요. 허허허... 사실 저나 여기 동무인 신훤이나 아직까지 상대를 못만났습니다요. 아, 우리가 장사님들한테 그렇게 엎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요? 핫하하하하..
신훤 그래서 세상은 넓다고 하는 모양이옵니다요.
그들 그렇게 걸어가면....
씬 4 산채 외경
산자락을 따라 웅장한 산성이 자리하고 있는 기훤의 산채, 카메라 부감으로 잡으면.....
씬 5 동 산채 안
성루엔 몇몇의 초병이 경계를 서고 있다. 궁예와 종간, 원회와 신훤을 따라 들어서면.... 곳곳에 군막이 서 있고, 농민군들이 무질서하게 왔다갔다 한다.
몇 명의 도적들은 궁예과 종간을 알아보고 곁눈질하며 속삭인다.
그들 그렇게 산채 중앙의 큰 건물로 향하면....
씬 6 동 기훤의 거소 앞
신훤 장군께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궁예 고맙소이다.
신훤과 원회가 앞장서면 궁예와 종간이 뒤따라 들어간다.
씬 7 동 거소 안
약탈한 물건들로 요란하게 치장한 거소 안. 이미 술상이 푸짐하게 마련되어있고 한쪽으로는 여인들이 앉아 궁예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들어서는 이들을 맞는다. 중앙의 좌석엔 기훤이 호피의자에 호기롭게 앉아 있다가 과장스런 몸짓으로 이들을 맞는다.
기훤 허어, 어서들 오시구료.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신훤 기훤 장군님이시옵니다.
궁예 (합장하며) 소승, 선종이라 하옵니다.
종간 종간이라 하옵니다.
기훤 허허허허... 내 수하들에게 들었소이다. 두 분께선 무예가 대단하시다지요? 두사람 어인말씀을.....
기훤 자,...자 ... 앉으시구려.
두 사람 예. (앉는다)
기훤 듣자하니 나의 막료인 여기 신원과 원회가 혼쭐이 났다구요? 핫하하하하...... 천하에 대적할 상대가 없다고 하는 이들인데 임자를 제대로 만난 모양이올시다?궁예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두 분의 무예도 대단했사옵니다.
기훤 암, 암..... 만만치는 안았을겝니다... 그렇구 말구요. 허허허....
원회 아니옵니다, 장군. 이 분들은 가히 천하의 장사분들이셨사옵니다.
기훤 ? 하하.....하,아무튼 반갑소이다. 얘들아 무엇 하느냐? 이 장사님들께 한 잔씩 따라 올리어라.
그러자 여인들이 잔에 술을 따른다. 첫 눈에도 이들은 강제로 끌려 온 여염집 아낙들이 분명해 보인다. 궁예가 여인들을 훑어보자 기훤이 설명을 한다. ??
기훤 신라 도적들의 처자들이외다. 전리품으로 끌고 왔소이다.
궁예 아, 예....
기훤 오늘 밤 한 잔 하시고.... 긴 밤 객고나 풀어보시구료. 핫하하하..
궁예 아니올습니다. 승려의 신분이옵니다, 장군.
기훤 (마시며) 그러면 어떻소이까? 이건 내 호의 올시다. 손님이 주인의 호의를 거절하면 섭섭한 법이지...... 자, 드시오, 들어요.
이들 모두 술을 마신다. 기훤이 게걸스럽게 마시고 또 잔을 채우며 묻는다.
기훤 헌데 두 분께선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이까?
궁예 서라벌을 거쳐서 어쩌다가 칠장사까지 오게 되었사옵니다. 딱히 갈 곳이 있는 것이 아니옵고 그저 바람과 구름따라 세상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옵니다.....
기훤 허허, 세상공부라.... 그렇다면 그거 잘되었구료. 나와 함께 여기서 사십시다. 여기야말로 할 일도 많고 볼거리도 많은 곳이올시다.
궁예 하오나 저희들은 ....
기훤 글쎄 그렇게 하십시다. 여기는 이 기훤이가 다스리는 왕국이외다.
두사람 .........?
기훤 인근의 땅 백여리가 다 내 땅이올시다. 신라의 도적들을 몰아내고 농민들에게 영토와 자유를 주었어요. 우린 장수가 필요하오. 신라의 도적들과 싸울 용맹한 장수들 말이오신원 그렇게 하시지요? 저희들도 곁에서 뫼시고 싶사옵니다.
종간 스님과 소인은 불제자 이옵니다.... 아직은... 전장에 나설 만한 마음의 준비가 아니 되었사옵니다.
기훤 음........ 딴은 그렇기도 하겠소만.....
신원 정 그러시면 해동할 때 까지만 이라도 이곳에 머물도록 하시지요?궁예 그리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당분간 이 곳에서 신세를 지겠사옵니다.
기훤 허허허허... 좋소이다. 한 번 같이 살아보십시다. 여기 있다가 보면 생각이 달라질게요. 나와 인연을 맺어보십시다. 그리고 천하를 논해보십시다. 핫하하하하... 뭣들 하느냐? 더 따라라, 그리고 풍악을 울려라. 오늘 맘껏 한번 놀아보자꾸나.
여인들이 대답하며 거문고를 켜기 시작 한다. 이들 다시 마신다.
기훤 나는 선종 스님의 한 쪽 눈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강열해요. 아주 강해. 애꾸 눈의 스님이라.... 그리고 천하 제일의 무예라.... 좋지, 좋아. 핫하하하하하..... 우리 모두 영웅이 되어보십시다. 영웅말이오. 자....
이들 마시고 또 잔을 든다. 분위기는 그렇게 흥겨운듯 이어진다.
씬 8 그곳 성안 길
달빛이 밝다. 종간과 궁예가 원회들과 기훤의 또 다른 부장의 안내를 받아 숙소로 들고 있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시중을 들었던 여인 둘이 따르고 있다.
원회 우리 장군이 어떠시옵니까?
궁예 ............ 영웅담을 매우 좋아하시는 것 같더이다.
신훤 잘 보셨사옵니다. 허허허...
종간 헌데 이 처자는.....?
신원 우리 장군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사옵니까? 오늘 저녁 스님께 시침을 드리러 가는 길입니다요.
궁예 허허허. 나는 불제자 올시다.
신원 허허, 글쎄 아무 말씀 마시고.... 자자... 그럼 편히들 쉬시오소서.
거소의 문을 열어주고는 그대로 인사를 하고는 가버린다. 기훤의 부장만이 그렇게 서 있다. 눈치를 보던 여인이 얼른 안으로 먼저 들어 간다. 난처해 하며 들어서는 궁예들.
씬 9 동 궁예의 처소 안
시침온 여자가 안절부절 눈치를 살피며 떨고 있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보고 있는 궁예. 종간은 자못 난처한 빛이다.
종간 어찌하시겠사옵니까?
궁예 그러게 말이오.
여인 ... (계속해 떨고 있다)
궁예 참으로 딱하게 되었네.... (사이)... 허나 우리가 밤을 함께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여인 ............
궁예 그만 돌아가게나.
여인 아니되옵니다.
궁예 아니되다니?
여인 이대로 돌아간다면 소녀는 경을 칠 것이옵니다.
궁예 경을 치다니? 내가 보내주는 것이야. 아무 걱정 말고 돌아가게나.
시녀1 제발......
궁예 허허... 이런..... 처자는 신라 관원의 처자였는가?여인 (끄떡인다).......
궁예 그것이 무슨 죄이기에..... 이런 곤욕을 치루는고....? 가족들은 어찌 되었는가?.... 서방은?여인 이들에게 죽었... 사옵니다.... 어린것들까지 모두.....
궁예 저런..... 여기 있는 이들이 그렇게 하였는가?
여인 예..... 마을을 모조리 불태웠사옵니다.
궁예, 눈을 감으며 엷은 신음을 삼킨다. 그리고 끄떡인다.
궁예 알겠네. 내 장군께 잘 말해줄 것이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게나. 안심하고 어서 돌아가시게.
여인 (불안하다) 하.. 하지만 정말 괜찮겠사옵니까?
궁예 이미 내 방에 들어와 처자의 성의를 다 하고 가는 것이 아닌가? 염려말고 가보게..... 어서.....
여인 예.... 하오면.... 고맙... 사옵니다.
여인이 절을 하고 물러간다. 답답한 표정을 짓는 궁예. 그런 궁예를 보는 종간의 표정은 그러나 다르다. 묘하게 궁예를 본다.
씬 10 동 집 밖
여인이 나와 몇 걸음을 걸었을까, 갑자기 여인은 가슴을 부여 잡으며 공포에 사로 잡힌다. 기훤의 부장이 노려 보고 있다가 서서히 칼을 뽑는다.
기훤부장 네 년은 장군님의 영을 어겼다.
여인 아, 아니옵니다. 그... 그게 아니오라... 그... 그게....
기훤부장 날 원망 말거라.
그대로 베어버린다. 여인의 찢어지는 비명소리....
씬 11 동 궁예의 처소 안
비명 소리에 시선을 돌리는 그들. 이미 사태를 알아차렸다. 그들 긴장해서 그렇게 얼마간 보고 있는데 잠시 후 기훤의 부장이 기침을 하며 알려 온다.
부장 (E) 두 분께 아룁니다요. 계집이 변변치 못하여 손님 대접을 제대로 못하였사옵니다.
두사람 .........?
부장 (E) 장군의 영을 따라 다른 계집을 올리겠사옵니다.
문이 열리고 다른 여인이 들어 선다. 부장은 얼굴에 아무 표정도 없다. 다시 문이 닫긴다. 역시 여인이 떨며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다.
종간 앞서 나간 처자는 어찌되었는가?........죽었는가?여인1 (끄떡인다)... 쇤네를 살려 주시어요.... 제발... 쇤네를 여.. 여기에...
궁예 나무관세음보살...... 장군이 아니라 도적이로구나..... 어쩌겠느냐? 날이 밝을 때까지 저 쪽에 가서 쉬거라.
여인1 고맙사옵니다. 고맙사옵니다, 스님.
여인 1이 한 쪽으로 가 웅크리고 앉는다.
종간 재미있는 곳이 아니옵니까? 이런 무리들이 사통팔달의 관문이요, 요지중에 요지인 죽주성을 차지 하고 있사옵니다. 천천히 관망해볼만한 곳이 아니겠사옵니까? 허허허....
의미있는 웃음이다. 궁예는 그 웃음을 본다. 아무 말이 없다.
씬 12 예성강 포구 (낮).
여전히 수많은 상선들과 상인들, 그리고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물건들이 하역되거나 실려지고 있는 부산함들이보인다. 그 소란함 속을 뚫고 포구 쪽에서 왕륭들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왕평달과 그 어린 아들 왕식렴, 그리고 여러 군사들이 머리를 숙여 그들을 영접 하고 있다. 강장자와 연화도 그들을 맞는다.
왕평달 (맞으며) 원로에 얼마나 노고가 크셨사옵니까?
왕식렴 숙부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왕륭 그래... 별 일은 없었고?
왕평달 예, 모든 것이 편안 하옵니다.
강장자 일은 잘 보고 오셨는지요?
왕륭 예, 그럭 저럭.. 허어, 연화도 잘 있었느냐?
연화 예, 성주님.
왕륭 우리 며느리감이 그동안 더 예뻐진 것 같구나. 응? 하하하연화 ........ (쑥스러운)
왕륭 자, 들 가십시다.
일행들 움직이기 시작한다. 강장자와 왕륭들이 앞을 섰고 그 주변으로 장수장이며 두 사부들이 함께 가고 있다. 왕륭과 연화들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씬 13 그길
왕륭들이 가고 있다.
왕평달 서라벌 형편은 어떻사옵니까?
왕륭 혼란 그 자체일세.
강장자 상대등 위홍이 죽었다지요?
왕륭 허어, 벌써 여기서도 그 일을 알고 계십니까?
강장자 허허허, 발 빠른 장사꾼들이 전해온 소식입니다. 그 소문이 사실은 사실인 모양이로군요.
왕륭 그렇게 되었지요.
간장자 가뜩이나 어렵게 얽혀 있는 정국인데 더 꼬이게 생겼습니다. 그나마 그 사람이라도 있어서 신라 조정이 명맥이나마 유지해 온 것이 아닙니까?옹륭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들 그렇게 가고 있고....
씬 14 그들의 뒤
왕건과 연화들이 오고 있다.
연화 공자님, 서라벌 궁성이 정말로 그렇게 대단하였습니까? 왕건 그렇지 않구요.
연화 거기서 무얼 구경 하였습니까?
완건 아주 많은 것을 보았어요. 대궐 안에도 들어가 보았고 여왕폐하도 뵈었습니다.
연화 세상에.... 대왕폐하가 정말 여자였습니까?
왕건 예, 그랬어요. 술도 마시고 주사위 놀이도 하였답니다.
연화 폐하하구요?
왕건 예..... (부러운듯 보는 연화에게) 어때요? 우리 한 번 달려보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연화가 끄덕인다. 이들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간다.
왕건 아버님, 잠시 연화 아기씨와 말을 좀 몰아보겠사옵니다.
왕륭 오, 그래? 조심하거라.
왕건이 대답하며 연화와 함께 말을 달려 간다. 장수장과 수하들이 보고 있다가 뒤를 쫓아 간다. 그 어린 한 쌍을 보며 웃는 왕륭들.
강장자 어떻습니까? 그럴 듯한 한 쌍의 원앙이 아닙니까?왕륭 허허허, 그렇습니다. 허허허....
이들 그렇게 가고...
씬 15 어느 강변
억새풀이 무성한 강변 길을 왕건과 연화가 말을 몰아 오고 있다. 멀찍이서 장수장이 그 수하와 이들을 살피고 있다. 이들 어느 쯤에서 말에서 내려 강가에 앉는다.
연화 공자님, 서라벌의 여왕폐하도 저만큼 예쁩니까?
왕건 (묘한 미소)... 그건..... 음.... 그러니까... 여왕폐하는.... 음... 예쁘기는 했는데.... 헌데 그건 왜 묻습니까?연화 우리는 먼 훗날 부부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왕건 .......?
연화 그런데 공자님께서 저보다 더 예쁜 사람을 보고 오셨다면.... 제가 미워 보일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왕건은 놀리 듯 한참을 보다간 심술궂게 웃으며 도리질을 한다.
왕건 연화 아기씨, 그렇지 않아요. 부모님도 그러셨습니다. 이 세상에 연화아기씨만큼 예쁜 아기씨는 없다구 말입니다.
연화 (그제서야 미소)..... 공지님도 그러하십니다. 저의 아버님도 매일처럼 공자님 말씀만 하시는걸요.
왕건 연화 아기씨, 눈을 감아보시겠습니까?
연화 눈을요?
왕건 어서요.
그러자 연화가 살며시 눈을 감는다. 왕건이 품 속에서 비단주머니 선물을 꺼내 가만히 연화의 손에 쥐여 준다. 그러자 연화가 눈을 뜬다..
연화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연화 열어 보세요.
그러자 연화가 그 주머니를 열고 보석 목걸이를 꺼낸다. 그리고 탄성을 지른다.
연화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너무 예쁩니다... 정말 예뻐요.
왕건 연화아기씨에게 드리는 겁니다.
연화 저에게요...?
왕건 예, 그 목걸이를 걸어보세요. 아마 여왕폐하보다 훨씬 더 예뻐보일거예요..
연화 ... (감동)...... (목걸이를 목에 건다.)....
왕건 내 생각이 맞았습니다. 예뻐요. 영화 아기씨는 정말 예쁘십니다.
연화 ..... (그 행복하고 부끄러운....)....
저만큼에서 장수장이 이들을 미소 지으며 보고 있다.
씬 16 송악성 왕륭의 집 외경
강장자 (E)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씬 17 동집 왕륭의 방안
왕륭과 강장자, 왕평달과 한씨들이 애기를 나누고 있다.
강장자 조정과 왕실이 그 지경이고 반란군들이 그렇게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도 뭔가를 강구를 해야.......
왕평달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아니되지요.
한씨 나라 사정이 그토록 심각하옵니까?
왕륭 (한숨을 쉬며) 그렇소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시체들과 걸인들, 그리고 도적들 뿐이었어요.
왕평달 허어, 난리로고... 그렇다면 이미 이 나라엔 주인이 없다는 얘기인데.. 우리 송악도 살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왕륭 뭐 그렇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일세. 신라는 아직도 거대한 제국일세. 여기까지 여파가 미치려면은 몇 년은 족히 걸리겠지.
강장자 그렇다고 뻔히 눈 뜨고 다가오는 재앙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니오이까? 왕륭 그렇습니다. 대비를 해야겠지요. 일단은 주변의 호족들이 힘을 합치고 세를 모아야 겠지요.
강장자 그렇지요. 그래요.
왕륭 그리고 환란을 대비해야겠지요.
한씨 우리 건이가 제 몫을 할때까지만이라도 별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왕륭 이런, 얘기를 했지 않소? 당장 뭐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구요. 조급한 것은 아니지만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런 얘기예요. 차보다도 술이나 한상 차리시구료. 모처럼 사돈 되실 분이 오셨는데...
한씨 예.. (한씨가 나간다)
왕평달 허면 서라벌에서 좋은 기억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겠사옵니다. 에잉..
왕륭 허허허, 뭐 꼭 그런 것은 아닐세. 함께 간 세달사의 중들과도 적지 아니 사연이 있었고... 그리고 우리가 도적들을 만났을 때는 견훤이란 범 같은 장수의 도움도 받았고....
왕평달 예? 견훤은 또 누구 이옵니까?
왕륭 그런 사람이 있네. 우리가 올 때 서남해로 해적들을 소탕하러 떠나는 걸 보았지. 가히 항우 같은 사람이었어. 허허허...
씬 18 어느 산야
냇가를 낀 계곡을 타고 견훤과 그의 철기군 수하들이 오고 있다. 감개가 무량한 듯 주변 산천을 돌아보며 그렇게 가고 있다.
능환 나으리, 참으로 몇 년만에 돌아가는 고향인지 모르겠사옵니다.
견훤 그렇구먼.
추허조 소인 놈은 이 곳이 마음에 들지 않사옵니다. 우리를 쫓아냈던 곳이옵니다.
견훤 ................
능환 누가 우릴 쫓아냈다고 그러느냐? 우리가 스스로 나온 것이지.
추허조 그게 그거 아닙니까요? 그래도 사람들이 우리를 철기군이라고 했습니다요. 수는 적지만 천하무적의 집단이었습니다요.
능환 처음에는 도적놈들이었다. 왈짜 패거리들이거나 천하의 망나니들이었어.. 나으리께서 너희들을 구해주셨다.
추허조 물론 그렇습니다요. 그 이후 우리가 좋은 일을 얼마니 많이 했습니까요? 불한당이란 불한당은 다 소탕하고 도적이란 도적은 다 잡았사옵니다. 억척을 부리는 신라의 서푼짜리 귀족들도 혼을 내굽쇼.
견훤 허허허. 그래서 아버님의 노여움을 산게 아니냐?.. 덕분에 서라벌까지 가서 병정도 되어보았고... 각간 어른을 모셨다. 이렇게 장군도 되었고... 허허허....
추허조 하지만 나으리, 벼슬만 높으면 무얼 합니까요? 군사라고는 우리 철기군 몇 십명이 전부 아닙니까요?견훤 우리 철기군 몇 십명이 썩은 신라군 천명보다 크다. 허조, 네가 할 일이 많다.
추허조 예?.... 헤헤헤... 하긴 그렇사옵니다. 염려 놓으시오소서.
능환 그렇다고 너무 덤벙대지 말거라. 너는 그게 병이야.
추허조 예? 아니, 형님?
능환 나으리는 장군이시다. 그리고 우리도 나으리를 뫼시는 직분들을 갖고 있어. 이제부터는 주군을 뫼시는 위엄을 갖추라는게다.
충허조 그참...... 알았수.
그들 그렇게 얼마를 더 가는데 갑자기 사람들의 표정이 간장하기 시작한다. 능선을 타고 한 떼의 기마병들이 치달려 내려오기 시작 한다. 추허조가 신호를 보내자, 군사들이 방어 태세를 취한다. 그리고 한참을 보다가 가까이 오는 그들을 보고 견훤이 빙그레 웃는다. 대도주금과 능애가 십여명의 수하들을 이끌고 다가와 선다. 추허조 능환들이 인사를 한다.
대주 (그 인사를 받으며) 오라버니.....
견훤 대주로구나. 행색을 보니 여전하구나. 아직도 사내들과 어울려다니느냐?대주 참 오라버니두... 지금같은 세상에 사내 계집을 따져 무엇합니까?능애 형님, 우리 대주가 지난 몇몇 전투에서는 크게 한 몫 했습니다.
견훤 전투라니?
대주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님도 이젠 장군이 되셨습니다.
견훤 으음?
능애 자, 가면서 말씀드리지요. (능환에게) 능환이 자네도 여전 하구먼.
능환 예, 서방님...
씬 19 그 다른 길
마을들이 보여오기 시작 한다. 그들 그렇게 가며 말을 계속 한다.
견훤 내가 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대주 늘 첩자를 풀어 놓고 있습니다. 서라벌에서 서남해로 가시는 길이시지요?견훤 그래.
대주 영기 장군은 사벌주 성으로갔구요.
견훤들 .......?
능애 우리도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지금은 근변의 몇개 군 현이 우리의 수중에 들어왔습니다.
대주 오라버니가 오셔서 다행입니다. 이제는 아버님을 생각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만 밖으로 떠도시구요.
견훤 ........ (그저 쓴 웃음만)
그런 그네들을 능환이 말없이 보고 있다. 추허조는 무표정이고... 저만큼 견훤의 토성이 보여 온다. 그렇게 가까워 지면서..
씬 20 동 토성안
이곳 저곳에 군막이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농민군들이 움직이고 있다.
씬 21 그중 아자개의 건물 외경
씬 22 동 건물 안
아자개가 중앙에 앉아 있고 견훤이 능환과 추허조를 데리고 인사를 올리고 있다. 그 모습을 계모와 능애 대주들이 보고 있다. 계모의 소생들(이미 성장한)도 자리를 함께 해 있다.
견훤 그간 별고 없으셨사옵니까?
아자개 ...............?
계모 왜 별고가 없었겠나?
이미 분위기는 벌서부터 냉냉하기 시작한다. 대주는 그것이 안타깝다. 견훤도 아자개도 한참이나 말이 없다. 능환들이 눈치를 본다.
아자개 어디로 간다구?
견훤 서남해이옵니다.
아자개 거긴 무엇하러?
견훤 조정의 명을 받고 해적들을 토벌하러 가옵니다.
아자개 해적? 해적이라....
모두들 ...........?
견훤 적을 토벌하러 가는 놈이 군사라고는 네가 데리고 있는 불한당들 뿐이로구나.
능환들 ........?
견훤 이들은 불한당들이 아니옵니다.?
아자개 능환이 이 놈, 다 네 놈 탓이다. 그래도 글줄께나 읽었고 한때 재주께나 있다고 깝죽대더니만... 네놈이... 결국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어.
능환 ...........?
아자개 서라벌까지 가서 한 일이 무엇이더냐? 역적놈들 뒷치닥거리나 하다가 이제는 뭐?.... 해적을 소탕해?견훤 저희는 관군으로서 폐하의 영을 모시고 가는 길이옵니다.
아자개 페하? 폐하는 무슨 페하? 예로부터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였느니라. 이제 다 집어치우고 이 애비를 돕도록 해라.
계모 ...........?
아자개 나도 이제 장군이 되었다. 군사가 수 백이다.
견훤 아버님, 사방에서 도적들이 일어나 서로가 장군이라 하옵니다. 아버님 역시...
아자개 뭐라, 도...도적? (벌덕 일어나며) 이놈- 도적이라니. 이 애빌보고 도적?대주 아버님?
아자개 이놈이 예전 버릇 하나도 못고쳤구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견훤 세상을 넓게 보시오소서. 이 곳은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사옵니다.
땅은 좁고 웅지를 펴기는 어려운 곳이옵니다. 기왕에 도적이 되시려거든 천하를 훔치는 큰 도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한 것이옵니다.
아자개 듣기 싫다, 이놈아. 네 놈이 지금 누굴 가르치려고 들어? 내가 왜 도적이야? 나는 장군이다, 장군.
계모 그만 하시어요. 말을 알아들어야 뭘 어쩌지요.
아자개 휴-. 맏아들이라는 놈이.. 이렇게 속을 썩여서야.... 다시 이르지만 예 있거라. 이 애비는 이제 늙었어. 네 아우들로는 여기를 감당 못해.
계모 왜 못한다구만 하십니까? 언제 믿어 보셨습니까? 그저 맏이만 끼고 도시니.
아자개 부인은 조용히 하세요.
모두들 ............
아자개 그렇게 해라, 애비 말대로 해.
견훤 소자는 좀 더 넓은 곳으로 가보고 싶사옵니다.
아자개 (답답하다).. 아무리 가봤자 여기보다는 못한 법이다. 그리고 너는 백제인의 후손이다, 너의 뿌리는.....
견훤 용서하시오소서. 소자는 가야하옵니다.
아자개 간다고?... (노여움)... 가아?....
견훤 소자가 할 일이 있사옵니다.
아자개 미련한 놈, 그래. 너는 언재나 이 애비보다는 저 능환이 놈 말을 더 들었지... 가거라 이 놈아.. 정히 가려거든 다시는 이 애비를 볼 생각말거라.... 다시는... 네 마음대로 해봐! 견훤 .......
아자개 애비는 조정을 상대로 군사를 이르켰는데 자식 놈은 토벌군 장수란 말이지? 집안 꼴 한 번 좋다.
아자개가 그렇게 나가 버린다. 계모도 따라 나간다. 대주가 어쩔줄 모르며 다가온다
대주 오라버니, 왜 그러십니까? 여기에 계신다구 왜 안하십니까?능애 형님?
견훤 그렇게 할 수가 없구나. 허조야, 내당에 가서 내 집 사람에게 떠날 차비를 하라 일러라.
추허조 (신이나서) 에, 나으리.
댕주 오라버니?
견훤 대주야, 이 오라비는 할 일이 있단다. 그래서 집을 떠나 서라벌로 갔었고 또 서남해로 가는 것이야. 내 머지않아 너희들을 데리러 오마. 물론 아버님도 모셔가고...
대주 하지만.... 신라의 장수가 아닙니까? 이 어지러운 세상에 신라의 장수가 되서 무얼 합니까?견훤 그렇지가 않다. 훗날 다 알게 될게다.
대주는 그러나 안타깝다. 그리고 견훤도 답답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씬 23 다시 아자개의 그 토성
견훤과 그의 처 박씨부인, 하녀들과 아들 신검(7살), 그리고 능환과 추허조, 철기군들이 아자개의 토성을 벗어나고 있다. 몇몇 농민군들이 이들을 보고 있다. 저만큼에서 대주도 안타깝게 보고 있다.
아자개 (E) 떠났어?
씬 24 아자개의 별실
아자개가 참담한 표정으로 묻고 있다.
아자개 그 놈이 그예, 갔단 말이지?
계모소생 예.
아자개 그 놈이... 그 놈이 그예.... 제 처자까지 데리고... 갔어?계모 언제는 부모 말을 들었습니까? 늘 제 멋대로였지.
아자개 어이구....이런 못된 놈이 있나... 이런.. 아니 그래, 애비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오자마자 그렇게 휭 가버렸다구?
씬 25 들판 길
견훤들이 가고 있다. 모두들의 표정은 답답하다. 박씨는 아들 신검을 안고 있다.
능환 나으리, 공자께서 그 동안 많이도 크셨사옵니다.
견훤 (끄덕인다)...
박씨 우리 신검이 벌써 일곱 살입니다.
능환 그렇사옵니까? 허허허....
박씨 아버님께 송구스럽습니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왔어요.
견훤 ......... 다음에 드릴 수 밖에요. 지금은 몹시 격해계시니....
박씨 (한숨) 부자 분의 고집이 너무도 똑 같으십니다. 조금씩만 양보를 하셔도 좋으련만.....
견훤 ............
해설 견훤의 가족. 당시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는 부인이 둘이 있었다. 본처인 상원부인과 계모인 남원부인이 이들인데 상원부인에게서는 견훤과 능애를 보았고 남원부인에게서는 보계, 용계 등 5남과 딸 대도주금을 두고 있었다. 이때 견훤의 생모인 상원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계모가 집안 살림을 맡아하고 있었다. 고집스럽기가 둘다 똑같았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원만하지 못했던 계모와의 사이... 이 일은 훗날 후백제를 건국하는 견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게 된다.
이들 그렇게 가고 있는데 먼지를 일으키며 한 필의 말이 뒤에서 달려 온다. 모두들 돌아보면 그는 능애이다. 그가 가까이 와서 선다.
능애 형님...
견훤 ........아우가 무슨 일인가?
능애 저도 함게 가려고 왔사옵니다.
견훤 함께라니?
능애 허허허, 남아 있어봤자 계모님 눈치나 보고.. 제가 있으면 집안이 편치를 않사옵니다. 가시지요?견훤 아버님은 누가 모시고....
능애 누이동생과 아우들이 있지 않사옵니까?
견훤 (할 수 없다는 듯) 가세.
이들 행열이 다시 움직인다. 그렇게 그 산 길을 빠져 나가면..
씬 26 그 산계곡 어느 곳
높은 산 중턱에서 대주가 사라지고 있는 이들을 눈물을 머금으며 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다시 말을 몰아 돌아 간다. 디졸브 되면서........
씬 27 다시 견훤들이 가는 길(몽타쥬)
시간이 경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견훤들은 석양과 밤길을 지나고 다음 날은 황톳길과 냇가, 벌판들을 지나친다. 하늘 위를 맴도는 한떼의 까마귀떼들, 그 소리들....
어느 마을 들을 지나자 썩어가는 시체들과 불타 폐허가 된 집들이 보여 온다. 그 위로 모질게 스쳐가는 삭풍소리들.
박씨 너무도 딱해 보이옵니다.
견훤 여기 뿐만 아니오. 곳곳이 다 그렇다오. 모두가 도적들의 짓이요. 막아줄 관군도 없고.. 그렇다고 이들을 지켜줄 힘 있는 사람들도 없고...
박씨 지금 가는 곳은 어떤 곳이옵니까?
견훤 서남해요. 아마 거기도 사정은 비슷 하겠지.
박씨 얼마나 더 가야 하옵니까?
능환 아직도 꽤 남았사옵니다.
박씨 ...........?
씬 28 백계산 (밤)
구릉에 쌓인 백계산 자락에 어둠이 깃들고 있다. 오솔길을 따라 경보가 바랑을 메고 올라오고 있다. 그는 옥룡사의 경내로 들어선다.
씬 29 동 옥룡사 마당
경보가 도선의 방 앞에 가서 인기척을 내며 아뢴다.
경보 큰스님, 경보이옵니다.
도선 (E)들어 오너라
경보가 대답하고는 안으로 들어선다.
씬 30 동 방안
도선이 글쓰기에 몰두 하고 있다. 경보가 절을 하고 앉으면...
도선 마을에 다녀 오느냐?
경보 예, 저자에서 양식을 좀 구해 왔사옵니다.
도선 (계속 쓰며) 이 난리통에 양식인들 제대로 구할 수 있었겠느냐... 그래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은 어떻고...?경보 늘 같은 말들이었사옵니다. 도적이 쓸어가고.. 사람들이 죽고..
도선 허허허, 그렇겠지.
경보 상주 쪽에서 오는 장사꾼의 얘기를 들으니 그 쪽은 아주 더한 모양이옵니다.
도선 그래......
경보 큰 도적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옵니다. 난을 진압하러 갔던 영기라는 장수가 도적들에게 패하여 죽음을 받았다 하옵고....
도선 저런...... 애꿎은 사람만 잡았구나.
경보 그리고 각간 위홍을 시종하던 견훤이란 장수가 이 쪽 서남해로 부임해 오고 있다고 들었사옵니다마는....
도선 견훤.........?
경보 예, 스님.
도선 (생각하다가) 그렇겠지. 그렇게 되어야 되겠지. 그게 돌아가는 이치이지.
경보 (무슨 소린지 의하해 하다가).... 무슨 말씀이시온지....?도선 그런 것이 있다.
경보 스님께선 지금 비기를 적으시나 보옵니다.?
도선 ....... (미소)
경보 시국이 어찌 될 것 같사옵니까? 스님의 비기엔 어찌 나와 있사옵니까? 궁금하옵니다.
도선 이놈아... 네 눈은 어디 두고 남의 눈으로 보려 드느냐? 답답한 놈.... 훗날 너도 알게 될 것이니라.
해설 도선비기(道詵秘記). 당시의 예언서이다. 도선이 지었다하여 그렇게 불리우는 책이다. 이 책은 주로 풍수지리와 그에 대한 영향력으로 생기는 결과들에 대해서 폭 넓게 씌여진 듯하다. 그러니까 도선은 첨단의 문명이 발달한 현재까지도 우리주변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그 풍수지리를 이 땅에 소개하고 활용하게 한 장본인인 것이다. 고려사의《훈요십조 訓要十條》편에 보면 태조 왕건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려의 사원은 모두 도선이 산수의 순역을 점쳐서 정한한 것이다. 도선이 정한 곳 이외에는 절대로 절을 짓지 말라, 나라의 근심거리가 생길까 우려된다.” 태조가 얼마나 그를 신임하였으며 존경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제자 경보는 지금 그 도선비기를 통해 세상의 궁금증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도선 경보야
경보 예, 큰 스님.
도선 천 년의 제국이 큰 변동을 시작 하고 있는 게다. 이 쪽 서남해에도 하나의 큰 도옵이 설 것이니라.
경보 예?
도선 북 쪽에도 그렇고 여기 남쪽에도 그렇고, 이제 그 주인들이 제 땅을 찾아서 가고 또 오고 있는 것이니라.
그런 도선의 깊은 생각 위로 떠불되며 지나치는 왕건의 여러가지 모습들..........
씬 31 왕건의 인서트
변사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장수장과 송악성의 무장들을 이끌고 말을 달리며 무예연습에 열중하는 왕건, 무장들과 활도 쏘고 검술을 연마하고 창술을 익히기도 한다. 그런 여러 모습들이 겹치며 지나친다. 흡족해 하는 변사부의 미소. 뭔가를 연거퍼 수하들에게 지시 한다.... 격렬한 훈련이다. 숱한 무장들이 왕건의 상대들이 되어 부딪히며 지나쳐 간다. 왕건의 그 강인한 표정에서...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며 끄떡이는 왕륭과 왕평달, 그리고 마사부들... 다시시 하늘을 보는 왕륭의 깊은 상념의 표정에서 천천히 디졸브 되면....
씬 32 기훤의 산채 외경(부감)
씬 33 동 성안
기훤과 그의 부하들이 노략질해온 물건들을 성 안으로 들여오고 있다. 여러 가지 약탈한 물건들과 함께 어린 소녀들과 부녀자들, 신라군 포로들이 끌려 오고 있다. 성안 마을을 지나가다가 문득 한 곳을 보는 기훤, 부상당한 병정들이 궁예의 처소 앞에 몰려 있는 것이 보인다.
기훤 왜들 저 난리들인가?
기훤부장 선종이란 스님이 의원 노릇을 하고 있다 하옵니다. 기훤 의원?
기훤부장 예, 장군
원회 산에 있을때 의술에 관한 것도 공부를 한 모양이지요.
기훤 허, 무예가 출중하다하여 이 곳에 있게 하였는데 싸울 생각은 아니 하고 의원이 됐어?원회 본분이 승려이니 어쩌겠사옵니까? 우리에겐 의원도 필요하니 좀 더 두고 보시지요?기훤 무슨소리? 지금은 의원나부랭이나 다쳐서 쓸모 없는 병신들은 필요가 없다. 싸울 장수가 더 소중해. 알아듣게 일러주어라.
원회 예.
기훤 허허허, 내가 내려준 계집은 잘 데리고 있는가?
원회 그런 모양이옵니다.
기훤 핫하하하하. 그렇지. 계집은 좋은거지... 자 오늘도 수확이 많았다. 가서 실컷들 즐기도록 하라.
부장들과 수하들이 대답하고 흩어진다. 신원과 원회가 서로를 보고 궁예쪽을 본다.
씬 34 그곳 궁예의 거소
몰려든 환자들로 북적거린다. 궁예가 침을 놓고 종간은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며 치료한다. 궁예에게 내려진 여인이 이들을 돕고 있다. 궁예는 장정 하나를 보내고 다시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은 또 다른 장정을 보며 치료를 한다.
궁예 이런, 발이 다 썩어 가는구만. 어쩌자고 이대로 두었는가?장정 약이 있어얍죠. 의원도 없굽쇼.
궁예 상처가 덧 난데다가 동상까지 걸렸지 않나? 즛쯔..... 조금 참게. 아플 게야.
궁예가 환부의 고름을 짜낸다. 장정이 죽는 소리를 낸다.
궁예 고름을 닦아내고 근을 뽑아버려야 하네. 아니면 발을 잘라야 해.
한참 치료를 해주고 피걸래를 치운다. 장정이 부축되어 나간다.
궁예 상처가 큰 데다가 너무 기력이 쇠했네 그려. 어디 가서 오가피라도 구해서 푹푹 끓여 한 며칠 마시게나. 원기가 돌게야.
다른 환자를 다시 받고 있는데 신원과 원회가 옆에 와 앉는다.
궁예 어서들 오시구료. (환자의 눈을 보다가) 부황이 들었구만. 못먹어서 생긴 병이야.
장정1 신라놈들과 싸우다가 허리를 다쳤습죠. 그 후로는 양식을 받지 못했어요.
종간 어째서?
장정1 싸움을 할 수 없었으니까요.
신원, 원회 ..........(답답하다.)
궁예 사형
종간 예.
궁예 두어됫박 남아 있는 우리 그 양식이라도 내주시구료.
신원들 ...........?
장정1 아, 아닙니다요. 이렇게 봐주시는 것만도... 황송한데...
궁예 지금 안 먹으면 죽어요. 우리야 다시 구해 먹어도 되고... 아니면 한 두끼 굶어도 되고....
종간이 구석에서 양식 자루를 통째로 내어 준다. 장정 1이 어쩔 줄 모르며 받는다. 거듭 미안해 하며 그렇게 나가면...
궁예 싸움터에서 돌아오시는 모양이요?
신원 예.
신원 의술은 언제 그렇게 배우셨사옵니까?
궁예 한 세월 산에서 살자면 기초는 배우는 법이지요. 딱한 군사 한사람 봐주다보니 삽시간에 이렇게 몰려들 들었어요.
두사람 .................
궁예 이 성의 사정을 알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신라의 성이나 영토가 아니라 백성들입니다. 싸우다가 다친 수하들을 이리 하고 있으니...백성들이야.......
원회 (한숨) 예, 실은 우리도.... 그래서 좀.. 답답합니다요.
신원 하지만... 천하의 장사님들께서 이렇게 사람들 잔병이나 보아주고 세월을 보내실 수야 없질 않겠사옵니까?궁예 지금이야 이 일이 급하니 어쩌겠소?
기원 우리 장군께서는 두분이 함께 출병하시기를 바라십니다.
궁예 하긴..... 밥 값은 해야겠지요
멀리서 또 다시 풍악 소리가 들려 온다.
종간 또 잔치가 벌어진 모양이올시다?
두사람 ........
종간 난세에는 자칭 영웅들이 많이 일어 납니다. 두 분이 좀 딱해보이십니다. 허허허....
두사람 ..................
씬 35 미다부리정 가는 길(바닷가)
견훤들이 가고 있다. 견훤이 먼 시야를 살피고 있다.
능환 나으리, 이제 다 와가는 것 같사옵니다.
견훤 .... (끄떡인다)
그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저만큼에서 몇 필의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이들 쪽으로 다가 온다. 가까이 와서 서면 그들은 애상과 그 수하들이다.
애상 (군례를 올리며) 나으리, 지금 오시옵니까?
견훤 그래, 애상이로구나. 미리 와서 고생 많았구나. 이 곳의 사정은 좀 알아보았느냐?애상 예,추허조 보나마나 도적놈들이 판을 치고 있겠지?
애상 그러하옵니다. 도적 치고는 아주 큰 도적이 버티고 있사옵니다.
능환 어떤 자들이냐?
애상 수달이라고 하는 해적이옵니다.
능환 수달?
애상 예, 서남해의 호족들은 물론이고 금성의 태수와 무주의 도독까지도 마음대로 움직이는 자라 하옵니다. 위세가 대단하옵니다.
견훤 ..............?
애상 이 곳의 모든 밀무역을 관장하고 있는 자이온데... 사사로히 많은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고..
견훤 그리고?
애상 나으리께서 가시는 미다부리정(무주의 군단)군사들까지도 제 수족처럼 부리고 있사옵니다.
견훤 관문이 얼마나 남았느냐?
애상 바로 지척이옵니다.
견훤 가자.
애상 (이들 가며) 우리가 가는 미다부리정은 말 뿐이옵니다. 군사도 별로 없고 있다고 해봐야 수달의 부하나 다름이 없사옵니다.
견훤 .......?
해설 미다부리정. 당시 신라의 각 주에 하나씩 있었던 지방주둔군 편제인 10정중 무주에 속해 있던 군단의 이름이다. 견훤이 서남해로 갔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보아 아마도 이곳에 소속되지 않았나 보여진다. 그리고 이 곳은 견훤이 나라를 세우는 최초의 발원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씬 36 동 미다부리정 관문
산자락을 배경으로 한 웅장한 규모의 미다부리정 관문이다. 몇 명의 군사들과 수달의 사병들이 성문을 지키고 있다가 다가오는 견훤들을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다.
수문장 어디서 오는 군사들이오?
추허조 대왕폐하의 명을 받고 이곳에 부임하시는 견훤장군이시오.
수문장 하하하하... 그러시오이까? 그렇다면 서라벌에서 오셨겠소이다? 능환 이런 무례한 자를 보았나. 일개 수문장이 감히 어른께서 부임을 해오시는데 이런 말버릇을 보았나? 수문장 하하하하... 장군이라... 대단한 벼슬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수달 나으리께서 손님들이 오시면 잘 해드라라고 말씀을 내리셨지요.
견훤 허허허, 그랬는가? 너는 신라의 군관이냐, 아니면 수달의 졸개이냐?수문장 수달 나으리 쪽이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지요..
견훤 허허허... 그래? 여봐라, 허조야.
추허조 네, 나으리.
견훤 이 자가 제 스스로 도적의 수하라 했으니 어쩌겠느냐? 당장 이 자리에서 참하여 그 목을 성루에 걸어라.
수문장 뭐라? 내 목을 벤다고? 핫하하하... 내 목을 벤다? 내 목이 떨어지기 전에 먼저 장군의 목이 떨어질 것이외다.
견훤 뭣들 하느냐. 어서 시행하라...
추허조 영을 뫼시어라.
철기군들 예!
철기군들이 빠른 동작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수문장을 나꿔 챈다. 수문장의 수하들이 칼을 빼들려고 하지만 철기군들의 서슬에 어쩔 줄을 모른다. 비로소 수문장은 사태가 심각한 것을 깨닫는다.
견훤 무엇들 하느냐? 베어라.
태산처럼 버티고 서 있는 견훤의 표정에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