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21회>
씬 1 명주성 김순식의 처소
지난회의 연결이다. 침묵이 흐른다. 모두들 궁예를 보고 있다. 궁예는 복지겸을 본다. 시선에 불꽃이 튀고 있다.
은부 다시한번 청하옵니다. 주군, 복지겸을 베시오소서.
복지겸 .......
은부 베시오소서.
숨소리하나 들리지 않는다. 시선은 모두 복지겸에게로 향해있다. 복지겸의 표정은 굳었으나,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종간 (보다가 슬며시 나선다) 은부장군의 청은 지극히 옳은 것이옵니다. 우리는 전쟁중에 있사옵니다. 따라서 우리의 적은 마땅히 죽여야 할 것이옵니다.
모두들 ........?
종간 그러나 복지겸 장군은 의지가 굳고 바른 사람인 것으로 아옵니다. 저분의 솔직한 심중을 다시금 듣고 싶사옵니다.
궁예 ........(끄덕인다) 좋소이다. 허면, 나는 이 일에 앞서서 우선 저 두 분 장군께도 묻고 싶은 것이 있소이다. 두 분도 복지겸 장군과 같은 생각이신지요?
궁예의 물음에 이흔암과 환선길이 서로를 본다. 환선길이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무겁게 입을 연다.
환선길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을 물으시니 이제는 대답을 해 드릴때가 된 것 같사옵니다.
모두들 .......
환선길 북원을 떠나기 그 이전부터 우리는 궁장군을 내심 주군으로 뫼시 고 싶어 했소이다.
복지겸 .........?
환선길 우리의 마음은 벌써부터 정해져 있었소이다.
이흔암 그렇소이다. 우리 두 사람은 처남 매부 지간이외다. 궁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일찍부터 있었소이다. 우리는 전장터에 목숨을 맡겨놓은 사내들이외다. 우리도 목숨 아까운 줄을 압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갈길을 정하고 있었다는 것이외다.
복지겸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깊은 침묵을 갖기 시작한다. 환선길이 다시 말한다.
환선길 우리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소이다. 그래서 양길을 떠나 이곳으로 오기로 자원한 것이외다. (궁예에게) 장군, 장군께선 우리의 주군이십니다. 우리의 예를 받으시오소서.
환선길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흔암도 따라 일어선다. 두 사람은 한 쪽 무릎을 꿇고 정중히 군례를 올린다.
궁예 고맙소. 참으로 고맙소이다, 두분.
환선길 소장은 주군께 청하옵니다. 지금, 복지겸 부장은 우리보다도 먼저 양길이란 사람을 잘 읽고 있었던 사람이옵니다. 우리는 복장군과 함께 하고 싶사옵니다. 헤아려 주시오소서.
복지겸 .........
이흔암 복장군, 이미 돌아가도 그대를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소이다. 오 히려 이번일을 막지 못했다고 양길이에게 목이나 잘리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오. 궁장군을 주군으로 뫼십시다.
환선길 그리 하십시다.
종간 .......
복지겸 .......(그 복지겸의 표정에서)
씬 2 동 군영 마당
지금 회의를 하고 있는 그 거소 밖에는 초병들이 삼엄하게 서 있고 그 한켠에 미향의 시녀가 여기저기 눈치를 보다가는 회의장쪽을 보며 미향의 거소쪽으로 사라져 간다.
씬 3 미향의 거소
월이(시녀)가 허겁지겁 들어선다. 미향이 조용히 자수를 뜨다가는 월이를 본다.
미향 왜 그리 허겁지겁인가?
월이 마님, 지금 성주의 군영에서 장수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하옵니다.
미향 (체념처럼) 그런데......?
월이 지금 북원성에서 온 복지겸 장군과 이흔암, 환선길 장군등이 어디로 갈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하옵니다.
미향 ..........?
월이 마님, 양길 대장군님을 배반하자는 그런 회의라 하옵니다.
미향은 댓꾸가 없다. 전혀 표정도 없이 자수를 계속하고 있다.
은부 (E) 이보게 복부장!
씬 4 동 명주성 성주의 처소 (회의장)
회의는 계속되고 있다.
은부 그대와 나는 둘도 없는 동무일세. 자네는 그동안 최선을 다해 자네 의 마음과 의리를 내보였네. 이제 우리와 함께 가세나. 이건 나의 진심이고 처음이자 마지막 청일세.
궁예 (비로소 일어나 다가간다) 복장군, 모두가 복장군을 원하고 있소이 다. 그것은 이 궁예도 마찬가지 올시다.
복지겸 ..........
궁예 이 궁예가 진심으로 청합니다. 나를 도와주시구려.
복지겸은 대답이 없다. 눈을 감은채 한참 댓꾸가 없다가 비로소 눈을 뜨고 조용히 묻는다.
복지겸 은부의 말이 맞사옵니다. 이 몸은 북원으로 간다 하여도 양길 장군에게 죽을 것이고 여기서 고집을 계속 부려도 죽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약조를 해주시겠사옵니까?
궁예 말씀하시구려.
복지겸 이 약조는 장군뿐만 아니라 나의 동무인 은부장에게도 묻는 것입니다.
모두들 .........
복지겸 만약에 백성의 뜻을 저버릴 때는 이 복지겸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원망하시지 않겠사옵니까?
김순식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게요?
복지겸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이 양길 장군이 재목이 아니라 하여 그를 버리고 궁장군님을 뫼시고자 하였소이다. 만약에 훗날 장군께서 양길처럼 되신다면 어찌들 하겠소이까?
모두들 .............
종간 허허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 주군을 양길과 같은 도적으로 보시는 것이오이까?
복지겸 만약을 물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 복지겸이가 어떤 일을 취해도 원망하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약조해 달라는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주군으로 뫼시겠사옵니다.
은부 (신이나서) 지금 주군이라 하셨는가?
복지겸 그렇다네, 나의 약조를 받아주면 그리하겠다고 하였네.
은부 (달려나오며) 고맙네.
복지겸 아직 주군의 대답을 듣지 못하였네.
궁예 (큰 웃음을 터뜨리며) 당연한 것을 가지고 새삼 대답할 게 무엇이겠소? 그렇소이다. 초지일관, 나는 백성을 위해 살 것이외다. 훗날 이 뜻이 흐려진다면 나의 목을 베시구려.
복지겸 그리하겠사옵니다. 분명 약조하셨사옵니다.
궁예 그렇소이다.
복지겸 한가지가 더 있사옵니다.
궁예 말씀하시구료.
복지겸 비록 이 몸이 주인을 배신하고 새 주인을 모시게 되었사옵니다마는 인륜을 저버릴 수는 없사옵니다. 주군께서는 저의 옛 주인의 따님을 부인으로 두시고 계시옵니다. 이분의 훗날을 보장하시겠사옵니까?
모두들 .............................?
궁예 그 여인의 일은 양길이 스스로 만든 것이오. 그러나 그대의 생각은 지극히 옳은 말이오. 그 여인의 신상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 보장하겠소이다.
복지겸 주군, (무릎 꿇으며) 주군의 그 약조를 길이 기억하겠나이다. 절 받으시오소서.
궁예 고맙소, 복장군. 참으로 인재하나 뫼시기가 이토록 어렵구려. 자 일어나시구료. 복장군이 나에게 온 것은 다 하늘의 도우심이요. 이제부터 원대한 우리의 꿈을 실현해 보십시다. 백성들이 꿈꾸는 미륵의 세상을 열어보십시다. 복장군, 참으로 고맙소.
모든 장수들이 다 일어나 다가온다.일어서는 복지겸을 궁예가 얼싸 안는다. 디졸브....
씬 5 동 명주성 성루
성루의 장대(장수들 지휘소) 위에 올라 먼 평원을 보는 궁예와 김순식, 그리고 두 사람의 휘하의 여러 장수들이 함께 해 있다. 군사지도를 보며 두 사람,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다. 그들 시야로 보이는 넓은 성안 마당에는 수천의 군사들이 전투 준비에 부산해 있다. 중장비들과 군사들의 대열이 개미때처럼 오가는 게 보이고, 그들 사이로 뭔가를 의논하는 김순식과 궁예. 그 위로
해설 궁예가 그토록 강직한 복지겸을 얻었다. 복지겸은 심지가 굳고 의리가 바른 사람이다. 또한 문무에 고루 정통하여 양길이 그렇게도 아꼈던 사람이다.그러나 양길이 그릇이 적어 이렇게 궁예에게 빼앗겨버린 것이다. 궁예는 명주를 얻고 또한 복지겸을 얻으면서 다시금 힘을 재정비하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기록에 보면 이때, 명주성의 군사는 삼천 오백이었고 모두 14대로 편제를 나누었다고 되어 있다. (지도가 수파된다) 명주 지역은 동해안을 끼고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부터 위로는 강원도 고성을 지나기까지의 길게 걸쳐지는 매우 큰 땅이었다. 궁예가 비록 지금의 강릉인 명주성을 점령했다고는 하나 주변의 모든 군현들을 다 복종시킨 것은 아니었다. 이들이 군대의 편제를 14대로 나눈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는 군현들을 빠른 시일 안에 한꺼번에 접수하면서 다시 태백을 넘어 옛 고구려 땅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씬 6 그곳 장대 (혹은 성안 회의장)
궁예를 상석으로 하고 김순식을 차석으로 하여 종간, 은부, 복지겸, 환선길, 이흔암, 신훤, 원회, 김언, 종회, 김락, 등이 함께 해 있다.
궁예 우리는 모든 전략을 수립했소이다. 우리의 공격로는 이제부터 열 네 개로 나누어 각 장수들이 목표한 고을들을 접수받게 될 것이오.
장수들 .......
궁예 따라서 우리의 일차적 목표는 철원이 될것이외다.
환선길 어찌하여 이 명주성에 도읍을 정하지 않사옵니까?
궁예 허허허, 비록 명주성이 우리와 뜻을 함께 하고 있으나 그 주인은 아직도 김순식 장군이오.
김순식 아니옵니다. 장군. 이 성은 대장군의 것이옵니다.
궁예 그렇지가 않소이다. 나는 남이 힘들여 이룩한 것을 거져 빼앗지 않소이다. 이곳은 여전히 그대의 땅이오. 이미 그대와 나는 같은 운명이고 한 식구요. 어찌 네것과 내것을 구분하리오?
김순식 이를 말이옵니까, 장군.
궁예 우리의 도읍은 보다 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추진 될 것이오. 철원은 옛 고구려 땅의 상징이요. 또한 들이 풍요롭고 넓소이다. 제국의 기틀을 다질 곳으로는 현재 이 이상 논하기 어렵소이다.
모두 ...........
궁예 이는 종간군사와 의논을 거친 일이니 그리들 아시구료. 이미 모든 군사들이 편대를 나누었고 보급품과 군량미를 확보하고 있소이다. 마지막 준비가 끝나는대로 이제 곧 진격령을 내리게 될 것이오. 종간군사?
종간 예, 장군.
궁예 이제 모두 한 식구가 되었소이다마는 아직도 서로가 낯이 설으니 군사께서 제장들끼리 다시금 인사를 나누게 해 주시구려.
종간 예, 장군.
김순식 (일어서며) 우리의 장수들은 소장이 소개해 올리겠사옵니다. 먼저 장수 김락이올습니다. 창검술이 뛰어난 천하무적의 장수올습니다.
김락 (군례하며) 김락이옵니다.
김순식 이 쪽은 장군 배현경이라 하옵니다.
배현경 배현경이라 하옵니다.
김순식 장군 홍유라 하옵니다.
홍유 홍유라 하옵니다.
김순식 장군 김언이라 하옵니다.
김언 김언이라 하옵니다.
소개가 계속되는 동안 본인들이 일어나 계속해 궁예에게 군례를 올린다. 궁예가 상석에서 이들의 군례를 계속 받고 있다.있다. 그 모습에서....
씬 7 미향의 거소
미향이 여전히 그 체념같은 모습으로 거의 완성되어 가는 새 한 마리의 자수본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 옆에서 눈치를 보던 월이(시녀)가 더듬거리며 저간의 사정을 알리고 있다.
월이 마님, 계속해 자수만 두시옵니까?
미향 .......(댓꾸도 없고)
월이 밖에 나가 사정을 알아보았사온데.....
미향 .......(계속 댓꾸없고..)
월이 큰일이 났사옵니다. 복지겸 장군마저 북원과는 등을 돌렸다 하옵니다.
자수를 뜨던 미향의 손이 흠칫하며 멈춘다.
월이 뿐만 아니라 환선길, 이흔암 장군들도 모두 은부 장군의 권유에 따라 궁예 장군님께 충성하기로 했다 하옵니다.
미향 (비로소 고개를 들어 월이를 본다) 그렇다면..... 우리 아버님과... 다들 적이 된 것이 아니냐?
월이 그렇다고 할 수 있사옵니다. 마님, 어쩌면 좋사옵니까?
미향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 아니었더냐? 이 모두가 아버님의 욕심이 빚어낸 일이었느니라. 그 욕심 때문이었느니....
미향의 눈에 눈물이 보인다. 눈물을 떨구며 다시 자수에 바늘을 가져간다. 그런 미향의 시선위로 들려오는 양길의 웃음소리
씬 8 북원성 외경 (인서트)
씬 9 양길의 거소
양길이 계속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화려한 용포를 들여다 보며 입이 함박만큼 찢어져 있다. 그 모습을 명길과 사위들이 보고 있다.
양길 하하하하... 정말 그럴 듯 하구나. 이게 용포라는 것이지? 황제가 입는 옷이렸다.
명길 .......
양길 (계속 웃으며) 어디보자. 이게 참으로 금으로 만들었단 말이냐? 신라의 왕들도 이런 왕관을 썼는가? 아참, 내 즉위식에 오기로 되어있는 성주들은 다 어떻게 되었나?
명길 모두 파발을 띄웠으니 달려들 올것이옵니다.
양길 내가 황제가 되는 것인데, 천하에 다 알리고 잔치도 거하게 해야 할 것이 아니냐?
명길 그리 하라고 밑에 일러 놓았사옵니다. 소를 열마리 잡을 것이고 돼지가 백마리, 닭이 이천마리...술을 백섬이나 빚으라 하였사옵니다.
양길 암, 암... 그래야지. 떡도 넉넉히 하라고 해라. 배고픈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야지. 황제가 그만한 인심을 써야지, 아니 그러한가?
명길 (대답이 없다) ......
양길 왜 말이없어? 왜 그런 표정으로 서 있어?
명길 형님?
양길 왜?
명길 아무래도 불안하옵니다.
양길 뭐가?
명길 명주성 말이옵니다. 아직도 전령이 오지 않고 있사옵니다. 궁예는 이미.....
양길 그만하게 그만해. 나는 믿어 지금 이렇게 용포도 왔고 황제가 쓰는 왕관도 왔고 (써보며) 어떤가? 어울리는가?
명길 형님.....?
양길 우리 둘째 사위가 가지 않았는가? 지금쯤 명주에 다 갔을 것이야. 좋은 소식이 올거야. 이번 잔치는 세상이 놀라게 하도록 거창하게 해라. 내가 황제가 되는 날이다. 내가.. 하하하.....
씬 10 명주성 외경
양길의 사위1이 오고 있다. 아무래도 찝찝한 표정이다. 성에 가까워 올수록 몸을 움추리며 성루 쪽을 본다. 누군가 내려다 보고 있다. 그는 김락이다.
김락 지금 오는 그대들은 어디서 오는 누구시오?
사위1 북원에서 오는 양길 대장군의 사자올시다.
김락 뭐라? 양길이의 사자? 양길이의 사자가 궁예 장군님의 성인 이 명주에는 어찌하여 왔는가?
사위1 예? 아니, 저... 궁예 장군님을 뵈려고....
김락 궁예 대장군님은 뭣하러?
사위1 (애원처럼) 서찰을 가지고 왔소이다. 궁장군은 우리 양길 대장군님의 사위가 되십니다. 서찰을 가지고..... 왔사온데....
김락 기다려 보게. 안에 알려드려라.
군사 하나가 안으로 달려가고 사위1과 김락이 마주보고 있다. 험악한 김락의 인상에 사위1은 주눅이 들어 피하고 있다. 디졸브...
씬 11 동 성안 어느 곳
군사들이 수없이 오가고 있고 그 한켠에 군막이 있다. 그 앞에서 세 사람이 군사를 보고 있다.
환선길 뭐라고? 북원성에서 사람이 왔어?
군사 예.
환선길 양길의 둘째 사위라고 하였단 말이지?
군사 예.
이흔암 허허허허.. 명주성에 입성은 하였는데 왜 소식이 없는냐 하는 것이겠지, 아니 그렇소이까, 복장군?
복지겸 ..........
환선길 어찌되었거나 대장군께 알려야 되지 않겠소이까?
이흔암 알리나마나 아니겠는가? 이미 다 틀어진 일이야. 차라리 이번에 온 저 둘째 사위 놈을 죽여서 목을 돌려보냅시다. 우리의 뜻을 확고하게 양길에게 알려주자 이 말이오.
복지겸 그건 아니되오. 주군을 욕먹이는 짓이오. 이 일은 대장군께 알릴 필요가 없소이다. 우리가 가보십시다.
이들이 성루 쪽으로 간다.
씬 12 그 성루
성문 밑에는 여전히 사위1이 성루 위를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 김락과 함께 종간, 은부, 신훤, 원회들이 보인다.
사위1 종간 군사. 오랜만이구려. 나요, 나 모르겠소? 궁예장군의 손윗 동서요. 헤헤헤... 오랜만이오.
종간 .........
은부 어쩐일로 오셨소?
사위1 내 동서를 좀 보러 왔소이다. 양길 대장군의 명을 받고 왔소이다. 폐하 말씀이오. 대왕 폐하 말씀이오.
은부 누가 폐하란 말이오?
사위1 은부장께서 폐하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우리 장인어른 말씀이오. 이미 등극식의 모든 준비가 끝났소이다.
은부 하하하하..... 양길이가 황제란 말이오? 누가 시켜준 황제랍디까?
사위1 아, 당신이 폐하라고 ...하지 않았소?
은부 (폭소를 터뜨린다) 가서 그 정신병자에게 전하시오. 내가 잠시 농담좀 하였노라고.
사위1 ............
종간 이제 모든 게 바뀌었네. 그대는 돌아가서 양길 장군에게 전하게. 그나마 가지고 있는 성이라도 잘 보전을 하라고.... 그리고 정신을 차리라고.... 아니면 그 성마져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그때, 복지겸과 환선길, 이흔암등이 그들 옆에 와서 선다. 성벽 아리의 사위1은 이미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사위1 동서를 만나게 해주시오. 궁예장군 말이오.
종간 대장군께서는 이곳의 주인이 되셨네. 큰 성의 주인이 되시오. 아주 바쁘시다네. 그대같은 하급장수들을 만날 시간이 없네 그려.
사위1 아니...저....
종간 가서 양길이에게 전하게, 훗날 시간이 있으면은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하례를 드리라고 말일세.
사위1 (절망적이다. 훑어보다가) 이보시오, 복지겸 장군. 나요, 나 모르겠소? 우리 장군께서는 당신만을 믿고 계시오. 궁예 장군을 만나게 해 주시오.
복지겸 (한참 보다가) 너무 늦었소이다.
사위1 이래서는 아니되오. 우리 장인께서는 그대들만 믿고 계시오.
환선길 돌아가거라. 늦었다고 하지 않느냐?
이흔암 사람들은 너의 목을 베서 성에 걸고 싶다고 하느니라. 허허허... 어떻냐? 목을 주고 가겠느냐, 그냥 가겠느냐?
사위1 .........이럴 수가 없소이다. 그대들은 모두 우리 장인께서 키워주신 무장들이오. 장인께서는 그대들을 믿고 지금 즉위식을 준비 중이시오. 폐하가 되시는 것이외다. 페하말씀이오.
이흔암 지겹구나, 그놈의 황제 소리. 여봐라. 성문을 열어라. 저놈이 아직도 살아 있다고 주둥이를 움직이고 있구나. 어서 성문을 열어라. 저놈 목을 베어야 겠다.
군사들이 대답하며 성문 여는 소리를 낸다. 사위1은 급해졌다. 얼른 말머리를 돌린다.
사위1 알았소이다.... 돌아갈 것이외다. 얘들아 가자.
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복지겸은 아직도 처참한 표정이다. 사위1의 표정이 멀어지고 있다.
씬 13 미향의 처소 외경
월이가 긴장한 표정으로 방안 동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궁예 (E) 우리는 또다시 전장터로 나가야 하오.
씬 14 동 처소 안
궁예와 미향이 마주앉아 있다. 미향은 표정없이 궁예를 보고 있다.
궁예 이번 전장은 꽤나 오래 걸릴 것이오. 철원까지 가려면 얼마나 많은 시일이 걸릴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소.
미향 얘기 들었사옵니다.
궁예 보살,
미향 ........?
궁예 그대의 운명이 참으로 기구하고 각박하구려.
미향 왜 그리 말씀 하시옵니까?
궁예 그대의 아비가 헛된 욕심으로 말미암아 그대를 지옥의 나락에 버렸소이다.
미향 (비웃듯) 장군께선 이몸이 지옥에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옵니까?
궁예 극락과 지옥은 마음 먹기 달린 것이오. 나는 그대가 극락을 보지 못하고 지옥만 보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수가 없구료.
미향 나의 아버님과 결별을 하셨다구요?
궁예 그렇소이다.
미향 결국은 사람들의 예언대로 되었사옵니다. 사람들은 장군께서 잠시 아버님을 이용하고 버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궁예 그대의 아비는 큰 세상을 감당치 못하오.
미향 장군께서는 언젠가는 나는 물론이고....나의 아버님도 죽이실 분이십니다.
궁예 허허허, 나는 사람 죽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소이다. 나는 복지겸 장군에게 약속했소이다. 그대를 보살펴 줄 것이라고 말이오.
미향 소녀는 믿지 않습니다.
궁예 이보시오, 보살.... 어찌 되었든 그대와 나는 인연을 맺었소. 이곳에 머무시구려. 성주 김순식 장군이 잘 돌보아 줄것이오.
미향 ........ 이미 혼자사는 방법을 다 배웠습니다. 누가 도와주어서 사는 줄 아십니까?
궁예 허허, 그렇다면 그것참 잘된 일이오. 훗날 철원성을 공략하게 되면 그때 사람을 보내리다. 열심히 불경공부를 하고 계시구려.
궁예, 껄껄걸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미향이 그런 궁예를 본다. 그리고 애써 눈물을 참다가 갑자기 치미는 구역질을 참는다. 다시 구역질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 놀라며 배를 잡는다.
씬 15 인서트
궁예의 대군이 명주성을 빠져 나가고 있다. 끝도없다. 수천의 군사가 마치 물결처럼 성밖으로 밀려 나가고 있다. 허월과 김순식이 그들을 환송하고 있다. 궁예의 깃발인 '미륵성전 불국정토'의 대기가 앞세워져 가고 있다. 수천여 깃발, 그 공격용 장비들과 기마, 장창, 보병, 세뇌 부대들이 끝도없이 퍼져 나가고 있다.
해설 궁예의 출정, 이미 명주를 장악한 궁예는 다시금 철원을 목표로 하는 대장정에 올랐다. 사람들은 그가 명주성을 함락하여 그곳에 도읍을 정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김순식으로 하여금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양길의 기습을 대비케 하고 그 스스로 군사를 나누어 철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들이 목표를 철원으로 잡은 것은 종간의 적극적인 권유에 의해서 였다. 종간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견훤이 옛 백제 땅을 기반으로 일어섯듯이 그들도 명분과 실리를 찾아 일어설 땅이 필요했던 것이다. 철원은 그 적지였다.
양길 (E) 뭐가 어쩌고 어째?
씬 16 북원성 외경
양길 (E) 뭐라?
씬 17 양길의 거소
양길이 기가 막혀서 되돌아온 사위1을 보고 있다. 그 옆으로는 명길과 다른 사위 그리고 각 읍성에서 올라온 축하사절의 여러 성주들이 함께 해 있다. 잔칫상도 거하게 차려져 있다. 그 옆에는 왕관이 준비되어 있다. 그는 이미 용포를 입고 있었다.
양길 다시 말해 보거라.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사위1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 그자들이....
양길 그래, 뭐라드냐?
사위1 이미 다 끝난 일이니 폐하께서 갖고 계신 이 북원 일대의 성이나 잘... (눈치보며) 잘.... 간수하라고 하였사옵니다.
양길 (벌떡 일어나며) 뭐야! 이런 죽일 놈들이...?
그는 극도로 흥분해 있다. 그가 일어서는 바람에 그 앞에 상과 음식이 통째로 흔들리며 쏟아져 내린다. 모두들 공포에 질려 보고 있다.
명길 폐하, 이미 우리가 걱정했던 일이었사옵니다. 그것이 사실로 드러났사옵니다.
양길 ....... 복지겸이, 복지겸이는 어찌 되었느냐?
사위1 이미 궁예와 한편이 되었사옵니다.
양길 환선길이 이흔암이는 어찌 되었느냐?
사위1 그들도 등을 돌렸사옵니다.
양길 이놈들..... (발작처럼) 이 죽일 놈들이... 다 배신하였단 말이냐?
명길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놈들에게 본을 보이소서, 폐하.
양길 (왕관을 집어던지며) 폐하는 무슨 얼어죽을 폐하. 아이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할꼬.... 이게 무슨 망신이야.
모두들 ..........
양길 세상에 믿을 것 없다고 하더니만 이럴 수가 있는게야? 아니되겠다. 이보게 아우.
명길 예, 폐하.
양길 다시 군을 소집하라. 이곳에 모여있는 전 읍성의 성주들은 듣거라. 궁예를 칠 것이니라. 궁예를 칠 것이야. 모두 군사를 모으고 나의 영을 대기하라. 명주로 갈 것이니라. 어우........
명길 (눈치를 보다가) 고정하시오소서. 페하..어치피 엎지러진 물이옵니다.냉정을 찾으시오서.(사위에게) 지금 궁예는 어찌하고 있느냐?
사위 군사를 사방으로 나누어 모든 군현의 성들을 항복받으며 태백을 넘어 철원으로 향하고 있다 하옵니다.
양길 뭐라......태백을 넘어?
사위1 예, 페하
양긱 태백....태백을 넘어 철원?
양길은 넋이 빠진듯 되뇌인다. 그런 양길의 표정에서...
씬 18 인서트
어느 길로 계속해 진군해 가는 궁예의 군대들. 그들 위로 동해안을 지나 태백을 넘어가는 궁예군의 진로가 수파된다.
해설 태백을 넘는 궁예군, 양길은 왜 이렇게 경악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궁예가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태백을 넘어 철원으로 향하는 길은 바로 양길이 있는 북원의 영토 윗 쪽과 맛닿아 있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궁예가 한 번 마음만 먹는다면 양길의 영토를 위 아래로 포위하여 충분히 넘볼 수 있는 일이었다. 한편, 이러한 충격과 놀라움은 양길뿐이 아니었다. 송악이 있는 패서지역 일대도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밀려오는 궁예군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두들 떨고 있었다.
씬 19 예성강 포구(부감)
언제나처럼 상인들과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고 간다. 멀리서 한 필의 파발마가 급박하게 달려와 포구를 지나 멀리 사라져 간다.
상인 웬 병사가 저리도 급히 달리누?
상인1 말 말게, 요즘 이 일대 호족들이 하나같이 난리라네. 미륵군이 온다는거여
상인 미륵군?
상인1 소문도 못들었는가? 미륵군대를 이글고 오는 궁예라는 중이 생불이라는거여. 살아 있는 부처말이여.
상인 생불?
상인1 불과 몇달 만에 태백산 준령을 넘어서 바람처럼 여기까지 왔다는거여. 가는데마다 싸움도 안하고 죄다 성문을 열어준다는궈먼...
씬 20 송악 왕륭의 집 외경
왕륭 (E) 뭐라? 궁예의 미륵군이라?
씬 21 동집안 왕륭의 거소
가신들인 마사부. 변사부, 왕평달과 왕식렴과 한씨가 함께 해 있다.
왕륭 분명 궁예라고 하였는가?
변사부 예, 주군. 명주쪽에 나가 있는 우리 거래처의 상인들이 전해준 소식이옵니다.
평달 궁예라며는.....혹시 그 애꾸눈의 승려가 아닌가? 세달사에 우리가 데려다 주었던 그....
마사부 그렇사옵니다. 다시 확인해본 결과 애꾸눈이 분명하다 하옵니다.
한씨 아니....그 어린 것이 어느새 커서 장군이 되었단 말입니까?
왕륭 으음....어디까지 오고 있다고?
왕식렴 지금 막 금성에 이르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왕륭 (놀라서)금성?
왕식렴 예, 백부님. 명주를 떠난지 다섯달만에 그곳까지 이르렀다 하옵니다.군사도 수천이 넘는다 하옵니다.
왕륭 그 자는 북원에 있는 양길의 부하였지 않은가?
왕평달 아니옵니다. 명주를 점령한 이후 갈라졌다 들었사옵니다.
왕륭 궁예가 금성까지 왔다면 철원은 바로 지척인데.....?
왕식렴 그러하옵니다. 궁예는 바로 철원을 노리고 오고 있다 하옵니다. 궁예군을 막기 위해서 인근의 신라군들이 모두 철원으로 집결중이라 하옵니다.
왕륭 허허....이런...?
변사부 신천 백주, 패강진등으로 급히 파발들이 뛰고 있는것으로보아 이미 여러 곳에서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한 것으로 아옵니다.
왕륭 (쓴웃음) 대책이라...허허허허....이미 그른 일이야.....이곳 패서 지역은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어.... 아무도 궁예를 당하지는 못해.
강장자 (E) 뭐라고...? 사방에 길이 다 끊겨?
씬 22 강장자집 외경
사병(가병)들이 긴장하여 곳간과 대문쪽을 지키고 있다.
강장자 (E) 길이 끊겼다?
씬 23 동집 강장자의 거소
거소 앞에서 연화와 슬이가 안의 소리를 듣고 있다. 그녀들도 심각하다.
씬 24 동집 거소 안
강장자 아니...저 태백 넘어 명주에 있다는 궁예가 벌써 이 근처에까지 와서 길을 다 막아?
백씨 그게 사실인가 진서방?
진서방 그러하옵니다. 우리 와 거래하는 장사꾼들의 입소식이니 믿을만 한 것이옵니다.
유금필 대안을 세우셔야겠사옵니다.
진서방 대안......?무슨 수로 우리가 대안을 세우겠는가....? 군사가 있나....변변한 성이 하나 있나.....?
백씨 다른 곳의 사정들은 좀 알아보았는가?
진서방 모두가 집안과 가병들을 단속하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유금필 ..............? 송악에서는 어찌하고 있는가?
진서방 그곳은 아직까지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아옵니다.
강장자 이미 궁예의 대군이 금성까지 왔다면 송악인들 별 수 있겠는가? 그예, ...그예 ...일이 닥치는구먼...그러니까...이런 날들을 대비해서 그토록 혼사를 서둘렀구마는.....이리저리 피하기만하더니...
백씨 어쩌실 것입니까? 일단 송악과는 그래도 연락을 취해보아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강장자 휴우......이것 참.... 어쨋든 이보게. 금필이 , 일단 가병들을 모아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토록 하게.
유금필 예, 장자 어른.
강장자 진서방은 주변 동정을 좀 더 알아보고 송악의 사정도 살펴보게. 쯧쯔쯔.....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왕성주는 그 늙은 중만 믿고 건이를 세달사에 숨겨두고 있으니...이런 답답한.....
씬 25 동 거소 밖
연화가 듣고 있다가 표정이 굳어진다. 옆에서 하녀 슬이가 걱정스레 묻는다.
슬이 난리가 일어나는 모양이네요?
연화 .....
슬이 세달사에 건이공자께서는 이 일을 알고 계실런지요?
연화 마굿간으로 가자.
슬이 예?
연화 세달사로 가 봐야 겠다.
슬이는 뻥해서 보는데 연화는 벌써 마굿간쪽으로 가고 있다. 슬이가
다시 연화를 부르며 뒤따라 간다.
슬이 아씨, 아씨..?
씬 26 길
연화와 슬이가 말을 몰아오고 있다.
슬이 아씨, 갑자기 세달사는 왜 가시옵니까?
연화 그곳에 가신지 벌써 몇 달이 지났느니라. 이미 도적들이 가까이 오 고 있는데도 공자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시지 않느냐?
슬이 하지만...
연화 이제는 아니되겠다. 대체 무슨 연유로 그곳에 숨어 계시는지 이제는 내가 알아야 겠다.
그녀들 그렇게 달려 사라진다.
씬 27 세달사 외경
범종소리가 들려온다. 카메라 가까이 가면서 디졸브.
씬 28 동 암자 외경
그 모습으로 멀리 폭포와 주변의 산 구릉들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보여온다. 카메라 가까이 가면서 엄청난 폭포 쏟아지는 소리, 그 곁에 도선이 마치 열반에라도 든 듯 참선에 잠겨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다시 빠져 암자로 향하면서 도선의 목소리 에코우
도선 (E) 보이는가...? (사이) 무엇이 보이는가?
왕건 (E) 산천이 보이옵니다. 하늘과 땅이 보이옵니다. 강과 바다가 보이옵니다.
도선 (E) 하늘과 땅이 보이고 산과 바다가 보인다 하였느니.... 허면 그곳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고?
씬 29 동 암자 안
왕건이 참선에 들어있다. 그의 감은 눈 밖으로 숱한 산구름과 안개들이 스쳐가고 있다. 그리고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고통과 신음으로 어우러지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모든 것들이 BIZ 되면서....
왕건 보이옵니다. 사람들이 보이옵니다.
도선 (E) 다 보았다면 이제 네가 할 일이 무엇이냐?
왕건 저들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도선 (E) 가서 무엇을 할 것이냐?
왕건 저들을 구하겠사옵니다.
도선 (E) 저들을 구하기 전에 먼저 그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느니... 이제 나는 그대에게 사람보는 법을 가르킬 것이니라. 내가 준 도선비기를 보게. 그곳에 사람을 헤아리는 비결이 있느니.... 보이는가?
왕건 보이옵니다. 다 보이옵니다.
도선 (E) 허허허. 그렇다면 이제 되었느니... 그 많은 것들을 어찌 단 몇 달에 모두 이를 수 있겠는가? 이제 비기를 보는 법을 알았으니 그것으로 된 것일세. 두고두고 익혀서 정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게나. 이제 시작이니라. 그대에게 세상으로 나아갈 때가 이르렀느니라. 허허허....
비로소 왕건이 환청과 환상에서 깨어나 방안을 휘 둘러본다.
도선 (E) 이제 내 할 일이 다 끝난 것 같구먼... 우리의 인연이 이제서야 모두 끝난 것 같도다. 허허허......
왕건 (놀라서) 대사님.....? 끝이 나다니요? 대사님?
왕건이 암자 방문을 연다.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밖으로 나간다.
씬 30 그 폭포
왕건이 달려온다. 아무도 없다. 도선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왕건이 다시 그 주변을 향해 소리쳐 부른다.
왕건 대사님, 도선 대사님? 대사님.....
그러나 대답은 없다. 왕건의 소리만 메아리쳐 되돌아 온다. 왕건은 비로소 도선이 떠났음을 깨닫게 된다. 그 섭섭한 표정에서
씬 31 산길
도선이 가고 있다. 가면서 홀로 중얼거린다.
도선 삼한의 역사가 이제부터 다시 씌어질 것이로다. (한탄하듯) 허나 어찌하랴, 비록 선택은 받았으나 때는 아직도 멀고 길은 너무도 고단하겠구나. 나무관세음보살....
그렇게 천천히 걸어갈 때 저만큼에서 연화와 슬이가 다가오고 있다. 이윽고 그들은 가까워지고 연화는 그렇게 도선의 곁을 지나 계속 간다. 그러다가 연화는 얼마쯤 가서 다시 말을 멈추고 되돌아 본다.
연화 아니.... 저 스님은 혹시.. 도선대사님이 아니신가?
슬이 ........
연화 (한참보다가) 가자.
그들은 다시 달려간다. 도선이 가다말고 그제서야 돌아보며 중얼거린다.
도선 안타깝구나... 어느 누가 정해진 하늘의 섭리를 깨랴. 그대들은 연분이 아닌 것을.. 쯧쯧쯧..... 아름다운 꽃이 피눈물에 잠기겠구나. 나무 관세음보살.....
도선은 그렇게 휘적거리며 산길로 멀어져 간다.
씬 32 그 폭포 근처
왕건이 먼산을 보며 그렇게 서 있다. 그때 연화들이 멀리서 달려와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자 얼굴에 밝은 꽃이 환하게 핀다.
왕건 연화 낭자....
연화 그동안 안녕하셨사옵니까?
왕건 여기까지 어떻게....
연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사옵니다. 결례인줄 알면서도 왔사옵니다.
연화는 말에서 내려, 두사람 곧 가까이 서고 슬이는 저만큼 기다려 선다. 그들 자연스레 함께 걷는다.
연화 오다가 늙은 스님을 뵈었사옵니다. 오다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도선대사님 같사옵니다마는....
왕건 그랬소이까? 어디서 보셨소이까?
연화 산문 밖에서였사옵니다.
왕건 그랬구려, 인사도 없이 가시다니.... 맞습니다. 그 분이 도선대사십니다.
연화 그동안 무슨 공부를 그리 하셨사옵니까?
왕건 그냥 세상사는 공부였사옵니다. 대사께서 떠나셨으니 이제 곧 송악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연화 모두들 궁예군이 가까이 왔다고 난리들이옵니다.
왕건 ......... 궁예, 궁예군이 와요?
연화 벌써 금성에 이르렀다 하옵니다.
왕건 (놀라서) 금성까지요?
연화 그들은 미륵군이라 하여 군사들이 수천이라 하옵니다. 사람들은 모두 궁예가 곧 금성을 치고 철원을 함락시킬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왕건 ..........?
연화 그렇다면 우리 신천이나 송악도 저들에게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옵니다.
왕건 그렇게 되었구려.
연화 소녀는 알고싶은 것이 있사옵니다.
왕건 ..........말씀하시구려.
연화 새로운 지배자가 오면 우리의 운명은 어찌될지 아무도 모르옵니다. 도대체 왜 우리의 혼사를 미루시는지 알고싶사옵니다. 무엇 때문이옵니까?
왕건 내가..... 내가 모자라기 때문이오. 아버님께선 내가 좀더 어른스럽고 단단히 선 뒤에 혼례를 올려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연화 아닙니다. 소녀는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사옵니다. 송악성주님께서 우리 두사람의 인연을 달가와 하지 않고 계시옵니다.
왕건 아니오, 낭자. 그럴 리가요?
연화 그럴 것이옵니다. 소녀는 물론이요 저희 부모님들도 그렇게 느끼고 계시옵니다. 무엇때문이옵니까? 너무도 답답하고 화급하여 이렇게 달려왔사옵니다.
왕건 연화낭자, 그런건 절대로 아닐 것이오. 날 믿으시오. 우리는 서로 믿기 때문에 지금껏 참아온 것이외다.
연화 공자님이야 믿지만.... 송악성주님은 아니시옵니다. 지금 적들이 사방으로 밀려오고 있사옵니다. 헌데 우리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왕건 다 내 잘못이오. 하지만 이번에 돌아가면 내 분명하고 확연하게 대답을 받아내리다. 우리가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은 패서일대가 다 아는 일입니다. 누구도 우리의 일을 막지 못해요. 날 믿으시오, 낭자.
연화 공자님.... 지금껏 기다려왔사옵니다. 아니 믿으면 누굴 믿사옵니까?
그들 손을 잡는다. 포옹한다....
연화 하지만 불안하옵니다. 무섭사옵니다. 궁예라는 승려가 대군을 몰아오고 있사옵니다. 이러다가 우리의 운명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옵니다. 왕건 그렇지 않을거요. 궁예라는 사람은 내가 잘 압니다. 좋은 사람이었어요. 무서워할 것 없어요. 우리에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씬 33 길 (인서트)
궁예의 대군이 수기인 불국정토 미륵성전의 대기와 함께 수천의 깃발을 휘날리며 중장비를 이끌고 끝도없이 몰려오고 있다. 궁예를 중심으로 하여 장수들 종간, 은부, 배현경, 홍유, 신훤, 원회, 복지겸, 환선길, 이흔암, 김락, 김언, 종회들이 보인다. 그들이 그렇게 지나쳐 간다.
씬 34 어느 벌판
견훤의 부하 전령들이 벌판을 달려 사라지고 있다. 그 아득한 흙먼지 뒤로하면.....
씬 35 인서트 (무진주 성)
견훤 (E) 무어라? 궁예가 금성으로 향하고 있어?
씬 36 동 대전
견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신료들을 보고 있다.
견훤 허허... 기가막힌 일이로다. 아니, 명주성을 얻은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뭐가 어쨰? 벌써 태백을 넘고 금성으로 가고 있어?
능환 그렇다 하옵니다, 폐하. 전방에 나가있는 전령의 보고이옵니다.
견훤 허허... 아니, 그 애꾸눈 궁예가 미륵이 어쩌고 한다더니 정말 하늘에서 날개를 달고 내려왔단 말인가? 어느새 그 험한 태백 준령을 넘고 그 많은 성을 지나 동해에서 서해로 갔단 말인가?
최승우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거의 전투가 없었다 하옵니다. 그야말로 거의 피를 흘리지 않고 바람처럼 날라간 것이옵니다.
추허조 허, 말도 안되는 일일세. 그 많은 성들이 싸움 한 번 안하고 모두 열렸단 말입니까?
수달 대단하긴 정말 대단한자인 것 같사옵니다. 하기사 명주성이, 그 큰 성이 글쎄 스스로 문을 열었다 하지 않사옵니까?
종례 이렇게 된다면 궁예라는 자의 영토가 우리 땅보다도 더 커지는 것이 아니옵니까?
견훤 그렇게 되겠지....
최승우 이제부터는 궁예도 경계를 해야 하옵니다. 머지않아 언젠가는 우리와 부딪히게 될 것이옵니다.
견훤 그렇겠지.
최승우 우리는 북상을 하고 있고 궁예는 서해까지 완전히 이르게 되면 다시 남하를 시작할 것이옵니다.
능환 (끄덕이며) 그렇게 될게야.
최승우 그렇다면 지금부터 궁예를 꺾을 계책을 세워야 하옵니다.
견훤 저렇게 멀리 있는데 어떻게?
최승우 (미소를 지으며) 힘 안들이고 제어를 하는 방법이 있사옵니다. 양길이를 이용하시오소서.
견훤 양길이?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궁예는 양길이의 그늘을 벗어났사옵니다. 다시말하면 배신을 한 것이 되겠지요. 양길이는 지금쯤 이를 갈고 있을 것이옵니다.
능환 좋은 생각일세. 그를 충동질해서 궁예를 건드리게 한다면 볼만하겠구먼 그래.
최승우 양길은 지금 궁예의 영토 가운데 끼여있사옵니다. 그것도 아주 큰 세력으로 말이지요. 재미있는 일이 아니옵니까?
견훤 그렇겠구먼.
최승우 양길이를 부추기면서 우리도 빨리 완산주를 취해야 할 것이옵니다. 그래서 보다 확고한 제국의 건설을 대외에 알리셔야 할 것이옵니다.
견훤 옳은 말이야. 그렇게 하세. 우선 먼저 양길이에게 사자를 보내도록 하세. 정말 볼만할 게야.
견훤의 그 미소에서..
씬 37 북원성 외경
양길 (E)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게야? 불가하다니?
씬 38 동 양길의 거소
수많은 휘하장수들과 사위, 명길 등을 두고 분노한 양길이 소리지르고 있다.
양길 나를 배신한 놈이야. 그놈을 치자는데 왜 불가하다는게야?
명길 고정하시오소서, 폐하. 우리의 군사력으로 지금 궁예를 치는 것은 어렵사옵니다. 궁예 그놈은 지금 명주를 후방으로 하고 계속 북상해서 저족(인제), 고성을 지나 태백을 넘어서 금성을 지나고 있다 하옵니다.
사위1 그러하옵니다.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고 있는 것이옵니다.
양길 그런데...?
명길 아래로는 명주, 삼척, 울진까지 궁예의 부하가 된 명주성주 김순식이 수천의 군사로 우리를 노리고 있사옵니다.
사위2 잘못하면 아래위로 적을 맞게 된다는 말씀이옵니다.
양길 (분해서) 그렇다고.... 그렇다고 이대로 저놈이 무서워서 이대로 눌러앉아 있어? 이 양길이가 말인가?
명길 폐하, 조금더 시간을 가지고 관망을 하시오소서. 어쩃든 그곳에 아직도 조카인 미향이가 있사옵니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사옵니다.
양길 그렇지, 내 딸 미향이가 그곳에 있지. 어이구... 내 딸, 이 일은 또 어떻게 하는고....?
명길 궁예는 철원을 목표로 하옵니다. 잠시 더 지켜보시오소서.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사옵니다, 폐하.
양길 집어치워라, 그놈의 폐하소리. 아이고...아이고, 분해라. 이 일을 어이할꼬, 이 일을 어떻게....
씬 39 길
궁예의 대군이 그렇게 가고 있다. 카메라 가까이 조여들면 그 엄청난 행렬속에 궁예로 잡아든다. 그들 그렇게 가고 있다.
종간 장군, 이제 곧 철원이옵니다.
궁예 .......
종간 견훤은 이미 남쪽에서 나라를 세웠사옵니다. 이제 장군의 차례이옵니다. 옛 고려땅을 장군께서 다시 세우시는 것이옵니다.
궁예 ....... 고려땅이라...
종간 그러하옵니다. 그 땅 위에 제국을 부활하시고 대왕폐하가 되시는 것이옵니다.
궁예 대 고려라, 대 고려? 허허허... 그것이 우리가 이룰 제국의 이름이란 말이오? 대 고려, 대고려라? 하하하
그러한 궁예의 모습에서 스톱모션되면서
해설 고려, 고려라는 나라 이름은 일찍부터 씌여졌다. 본래는 고구려라고 하였으나 장수왕 이후 부터 고구려가 고려로 불리워진 것이다. 중국에서 외교문서를 주고 받을 때 고구려를 고려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다. 이제 사라진 그 이름을 궁예가 복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21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