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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23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1.15|조회수1,472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23회>


씬 1 송악성/왕륭의 거소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왕륭이 왕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왕건    아버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이 송악을 버리셨사옵니다. 소자는 그것을 알고 있었사옵니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왕륭    .......(무거운 침묵으로 본다)
왕건    소자의 말이 틀렸사옵니까? ..... (사이) 그렇사옵니까, 아버님?
왕륭    .....(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하..
한씨    .....?
왕건    .......
왕륭    그 동안 이 애비가 너에게 바란 뜻이 헛되지 않았구나. (사이) 됐다.....됐느니라. 이제 미련없이 이 송악을 궁예에게 내줘도 되겠구나.
왕건    .......
왕륭    네가 이미 이 애비의 뜻과, 네가 가야할 길을 알고 있는데 더 이상 주저할 것이 무에 있겠느냐? 그렇다. 너는 이미 너의 갈 길을 확연히 알고 있느니라. 그것으로 되었다. 이제부터는 이 송악을 잊거라. 알겠느냐? 송악보다 더 큰 세상이 너를 기다리고 있느니라. 그것을 알면 된 것이니라.
왕건    어찌 소자가 그것을 잊겠사옵니까?
왕륭    이제부터 이 애비가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구나.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성주님, 칙사 일행이 당도하였사옵니다.
왕륭    그만 일어서자꾸나.. 나가서 칙사를 맞아야겠다.

     왕륭이 일어서고 한씨가 어리둥절해 일어서고 왕건도 따라 일어선다.

씬 2 송악 길

    종간과 은부가 근엄한 모습으로 오고 있다. 많은 군사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종간과 은부 뒤에는 부장들인 김락과 김언, 금대, 장일, 염상 들이 따르고 있다. 연도에 나온 송악의 백성들이 두려움과 호기심에 찬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씬 3 성 앞

    왕평달과 가신들, 그리고 많은 군사들이 도열해 사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들 초조하고 긴장한 모습들이다.

왕평달    (초조해서) 아니 이거 칙사가 성내로 들어섰다는데 형님은 무얼 하시누? 안에 기별은 넣었는가?
마사부    예, 곧 나오실 것이옵니다.
왕평달    ........

     그 때 종간과 은부들이 길목을 돌아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더욱 긴장하는 그들..
    
마사부    궁예의 사자들이옵니다.
왕평달    .....
변사부    (한참 보다가) 아니 저 앞에 오는 사람은.... 예전에 궁예와 함께 보았던.... 그 종간 스님이 아니옵니까?
왕평달    종간스님? ....오 그렇구만. 종간 스님이 맞네... (미소가 번지며) 허허허..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 아닌가?

     이윽고 종간과 은부들이 그 앞에 당도했다. 종간이 말 위에서 한껏 위엄을 갖춰 내려다보고 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왕평달    (허리를 굽히며) 어서들 오시오소서.. 어느 분이 사자로 오시는가 했더니 종간스님이셨습니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허허허..
종간    (말없이 보다가) 이보시오. 나는 대왕폐하의 영을 받들고 온 칙사올시다. 사사롭게 한담을 나누자고 이 곳에 온 것이 아니외다.
왕평달    ....(뻥해) ? 그거야...
종간    송악 성주는 어찌 보이지 않는 게요? 칙령을 아니 받을 작정이오?
왕평달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곧 나오실 겝니다.

     초조하게 뒤를 돌아보면 왕륭과 왕건, 한씨가 나오고 있다.

왕평달    저기 나오고 계십니다.
종간    ........

     왕륭과 왕건이 그 쪽으로 다가왔다.

왕륭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어서들 오시오소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왕건    (허리를 굽힌다).....
종간    ......

     종간과 은부가 말에서 내려 다가온다.

은부    그대가 송악의 성주시오?
왕륭    예, 그렇습니다.
은부    우리는 궁예 대왕 폐하의 칙령을 전하러 왔소이다. 어서 예를 갖추고 칙서를 받으시오.
왕륭    ....예..

     왕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왕륭과 왕건이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러자 왕평달들이 당황하여 머뭇거리다가 함께 꿇어 앉고, 군사들도 일제히 꿇어 앉는다. 종간이 그 모습을 한동안 굽어보다가 두루마리를 꺼내 읽는다.

종간    송악의 성주 왕륭은 들을지어다.
왕륭    .......
종간    짐은 미륵불의 가르침을 따라 고통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제하고, 잃어버린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기 위해 의로서 일어나 나라를 세웠노라.
왕륭들    ......
종간    (계속해) 멀리 명주가 짐의 뜻에 따랐고, 저족, 성천, 부약은 물론이요 금성, 평주, 정주, 신천 등 패서일대의 주군현이 이미 자신들의 땅을 들어 귀부의 뜻을 밝혀 왔노라. 헌데 어찌하여 송악성주 왕륭 그대만이 시일이 지나도록 짐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있는가?
왕륭    ........
종간    (계속해) 나는 그대가 짐이 알지 못하는 깊은 사정이 있어 미루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노라. 허나, 백성과 나라를 위한 일에 어찌 촌각인들 더 지체할 수 있으랴. 이에 짐이 살펴 권하노니 그대는 잘 사귀어 들을 지니라. 짐과 나의 나라에 그대들의 앞날을 맡기고 충성하라. 그것은 곧 백성들의 뜻일 것이니라. 살펴 헤아릴 지어다.

     종간이 두루마리를 다시 말아 염상에게 준다. 염상이 그것을 받아들어 왕륭에게 다가가 건넨다. 왕륭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그것을 받는다.

은부    대왕 폐하께오서는 송악이 지금까지 귀부해 오지 않는 것을 매우 섭섭하게 생각하고 계시오.
왕륭    그 점은 무척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나 폐하의 뜻을 거스르고자 그리한 것은 아니옵니다.
종간    허면 무엇이오? 지금까지 시일을 끈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오?
왕건    ......
왕륭    조상대대로 살아오며 피와 땀을 바쳐 일구어 왔던 땅을 바치는 문제올시다. 이 사람이 비록 이곳의 성주이기는 하나 독단으로 결정을 내릴 일이 아니었소이다.
종간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대항할 생각도 있으셨겠구려..?
왕평달    ......?
왕륭    이미 우리는 뜻을 모았소이다. 궁예 대왕 폐하께 이 송악을 들어 바칠 것이오이다.
종간    ........
은부    (끄덕인다)....
왕륭    이제 송악은 대왕 폐하의 땅이오이다. 곧 차비를 차리고 철원으로 가 폐하께 귀부의 뜻을 아뢰겠소이다. 이 점을 폐하께 분명히 아뢰어 주시오소서.
종간    .......

     그런 종간들과 왕륭을 바라보는 왕건의 모습 위로
   
강장자    (E)송악에 칙사가 갔다?

씬 4 강장자의 거소

    강장자와 유금필, 백씨, 연화가 앉아 있다.

강장자    ....군대를 보내지 않고 칙사를 보냈다...? 과연 도량이 넓으신 분이시구만...
백씨    누가... 말씀이옵니까?
강장자    누구긴 누구겠소? 철원에 계신 대왕 폐하지요.
백씨    예?
강장자    그렇지 않습니까? 다른 곳은 다 철원으로 달려가 귀부를 했는데 송악만 끝까지 버티고 있어요. 괘씸히 여겨 힘으로 굴복시킬 만도 한데 오히려 칙사를 보냈어.
백씨    (끄덕이며) 소문으로 듣기에는 무서운 분인 줄 알았는데, 실상 겪고 보니 그렇지가 않은 것 같사옵니다.
강장자    맞는 말씀이오. 우리가 그동안 괜한 두려움에 떨었어요.
연화    왕성주님께서 어찌 하실까요? 참으로 걱정이 되옵니다.
강장자    칙사까지 왔는데 별 수 있겠느냐? (한숨) 고개 한 번 숙이면 그만인 것을...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가 아니냐? 세금을 좀 내긴 해야겠지만.. 우린 예전처럼 장사를 할 수 있고, 또 예전의 지위도 보장받지 않았느냐?
유금필    .......
강장자    어찌 됐건 송악의 영화도 이제 끝이 났구나.. 모르긴 해도 지금까지 버틴 일로 인해 상당한 문책이 따를 것이야.. 진작에 우리와 뜻을 함께 했어야지.. 결국엔 이렇게 될 것을.. 괜한 고집을 부리다가.. 쯧쯧쯧...

씬 5 왕륭의 집 외경

    장수장과 가병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다.

왕륭(E)    그동안 나는 여러차례 이 송악이 사라질 것을 말해왔네.

씬 6 동 왕륭의 거소

    왕륭과 왕건, 한씨, 그리고 가신들이 모두 모여 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왕륭    이 일은 현실로 우리 앞에 왔어. 지금 궁예의 칙사들이 우리를 궁예에게 데려가려고 와 있어. 내일이면 함께 저들과 떠나서 궁예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걸세.
모두들    .......
왕륭    다시 말하자면 오늘 이후로 송악은 사라지고 궁예의 영토만 남는 것이야.
모두들    .....
왕륭    하지만 송악고을은 궁예의 땅이 되었어도 왕씨 가문이 죽는 것은 아니야. 이제부터는 가문의 모든 일은 건이가 맡게 될 것이야.
모두들    .......?
왕건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아버님?
왕륭    이제 때가 된 것이니라. 이 애비가 할 일은 다 끝났느니라.
왕건    하오나...
왕륭    애비는 평생 너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느니라. 너는 우리 가문의 오랜 염원을 이룰 희망이니라. 애비는 너를 믿느니라.
왕건    ......
왕륭    지금부터 나의 말을 잘 귀담아들 듣게. 이제 이 왕씨 가문에 새로운 주인은 내가 아니라 우리 건이가 될 것일세.
모두들    .......(숙연하게들 듣고 있고)
왕건    아버님... 아직 소자는.....
한씨    아버님의 말씀이시니라.
왕건    ......
왕륭    조상대대로 해온 것처럼 나나 건이는 집안의 어른이 아니라 주군의 자격으로서 가문과 그대들을 살펴왔느니... 이점들을 알고있는가?
모두들    예, 주군.
왕륭    그렇다면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주군의 자리를 내 아들 건이에게 전하였네. 그런데 뭣들 하고 있는가? 그대들의 새로운 주군에게 예를 올려야하지 않겠는가? (왕평달에게) 평달이 자네부터
 왕평달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형님. 조카와 숙부사이를 떠나 주군의 예로서 이 자리를 모시겠사옵니다. 주군, 절 받으시오소서.
모두들     절 받으시오소서.
왕건    .......?
왕륭/한씨    .......?

     왕평달과 가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건은 긴장해서 이들을 보고 있다. 왕륭이 고개짓을 하며 재촉한다

 왕륭    건이는 무엇을 하느냐? 군신간의 자리이니라. 어서 정좌하여 예를 받거라.
왕건    하지만 아버님, 소자는 아직 재목이 아니옵니다. 좀더 여유를 주시오소서. 아직은 아니옵니다.
왕륭    허허, 군신간의 자리라 하였느니라. 더는 시간이 없어. 무엇하느냐? 어서 자리를 받지 않고?
왕평달    어서 앉으시오소서.

     그제서야 왕건은 깊이 눈을 감았다 뜨고는 자리에 가 앉는다. 모두들 엎드려 절을 올린다. 왕건이 이들과 맞절을 한다. 그리고 다시 이들 모두 자리를 잡아 앉는다.

왕건    참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렵고 급박한 때에 어린 제가 아버님의 영을 따라 가문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나는 주군으로서 목숨을 바쳐 이 가문과 우리의 세계를 지키고 경영하는데 신명을 바칠 것이옵니다. 많이들 도와주십시오.
모두들    충성을 맹세하오리다, 주군.
해설    주군. 곧 임금을 뜻하는 말이다. 한 가문의 주인일수도 있지만 한 세력권의 영주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군이란 작은 임금을 뜻하는데 많이 쓰인다. 임금과 신하, 지금 송악 사람들은 새로운 자신들만의 임금을 맞아 목숨을 담보로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

씬 7 길

    종간과 은부, 그리고 왕건 부자와 가신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철원으로 가고 있다. 철원의 궁예군과 송악의 군사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해설    왕륭. 그는 지금 궁예를 만나기 위해 철원으로 향하고 있다. 패서의 다른 호족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궁예에게 무릎을 꿇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그는 지금 궁예와 천하를 놓고 흥정을 벌이러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씬 8 철원성 외경

 씬 9 동 철원성 안 정전

    궁예와 여러 제장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왕륭들이 무릎을 꿇어 절을 끝내고 있다. 궁예가 그들을 내려다 본다.

왕륭    폐하.. 송악 성주 왕륭, 알현이 늦었사옵니다. 하례가 늦은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궁예    아닙니다. 아니예요.. 이렇게 오시지 않았소이까? 어서 일어들 나십시오.

     왕륭과 송악 군사들이 일어난다. 궁예가 다가가 왕륭의 손을 잡는다.

궁예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왕성주께서 오시기를 내내 기다렸습니다.
왕륭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죽 둘러보고는) 낯익은 분들이 다들 오셨습니다 그려.. 참으로 반갑소이다. 반가워요.

     왕평달과 두 사부가 궁예의 환대에 표정이 환해져 있다.

궁예    헌데.. 그 옛날에 어린 아드님은...?
왕륭    건이 말씀이옵니까? 여기 있사옵니다. 이 아이가 건이옵니다.
왕건    왕건이옵니다, 폐하.
궁예    오.. 그대가....? 그 어린 공자가 이리 헌헌장부가 됐단 말인가? 허허허.. 반갑네.. 참으로 반가우이.. 올해 몇인가?
왕건    스물이옵니다, 폐하. (미소)
궁예    스물이라? 가히 청년대장부로다. 참으로 훌륭하게 컸도다. 하하하..... 그 총명한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만.
왕건    황공하옵니다, 폐하.
궁예    좋은 날이로다. 참으로 기쁜 날이로다. 하하하..... 우리가 드디어 만났네 그려.. 이렇게 만났어. 나는 아주 예전에 우리가 처음 보았을 때 그런 말을 했었지. 우리는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다고, 꼭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야, 하하하하.......자 들가십시다. 내 그대들을 위해 후원에 자리를 보아 놓으라 일렀소이다. 가십시다. 모두들 가십시다.

     종간이 그런 궁예와 왕건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씬 10 동 철원성 어느 후원

    정자에 궁예와 종간 그리고 왕륭 부자가 마주해 있다. 은부가 군사 몇을 데리고 저만큼 서있다.

궁예    그래 이보게 건이?
왕건    예, 폐하.
궁예    아직도 송악의 뱃사람들은 바다밖에 먼 나라들을 오고 가는가?
왕건    나라 안의 사정이 어렵다보니 요즘은 좀 힘이 드옵니다.
궁예    그렇겠지, 그럴게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네. 어린 자네가 갑판위에 올라가서 그 큰배를 지휘했었지. 나는 그때 세상에 이렇게 큰 배도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네. 하하하.....

     모두들 따라 웃는다.

궁예    그때, 여기 종간군사는 내게 말하였지. 바다를 아는 자가 천하를 지배한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이까?
종간    그렇사옵니다, 폐하. 분명 그리 말씀드렸사옵니다.
궁예    나를 많이 도와주어야겠네. 송악의 힘이 무엇보다도 필요해. 아니 그렇습니까, 왕성주?
왕륭    무엇이든지 하명만 하시오소서. 이미 신들은 폐하의 신하이옵니다.
궁예    고맙소이다, 참으로 고맙소이다. 자 드십시다.

     그러는 동안 은부의 부장이 들어와 은부에게 뭔가 귓속말을 전한다. 놀라는 은부.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술자리를 한번 훑어 보고는 부장에게 자리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간다.

씬 11 어느 건물 일각

    군사들에게 안내되어 미향과 슬이가 들어서고 있다. 놀랍게도 미향은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이다. 저만큼 은부가 다가오다 이들과 부딪힌다.

은부    마님, 소장 은부이옵니다. 먼길을 오셨사옵니다.
미향    오랜만입니다.
은부    저 쪽으로...

     이들 어느 건물 안으로 안내되어 들어간다.

씬 12 동 건물 안
       
은부    어찌된 일이시옵니까? 마님께서는 명주에 계셔야 하지 않사옵니까?
미향    사정이 그리 되었습니다.

     은부의 시선이 아이에게 꽂힌다.

은부    그 아이는....?
미향    .....폐하의 아드님입니다.
은부    (놀라) 예? 폐.. 폐하의 아드님이란 말씀이옵니까?
미향    그렇습니다.
은부    오 이런..
미향    .....?
은부    이 사실을 누가 또 아옵니까? 폐하의 아드님을 낳으셨다는 사실 말이옵니다.
미향    ....왜 그러십니까?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습니까..?
은부    누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 여쭈었사옵니다.
미향    .... 명주에서 낳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이미 아는 일이지요. 더는 아무도 모릅니다.
은부    (한숨) 참으로 현명하게 처신하셨사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소서. 폐하께서는 손님들을 맞고 계시옵니다.

씬 13 다시 그곳 후원

    여전히 주연이 계속되고 있다. 자리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궁예    어릴 때의 인연도 인연이지만 송악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왕건    .......
궁예    그동안 수많은 전쟁을 겪어오면서 나는 두고두고 송악을 잊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우리눈에 보였던 송악은 그야말로 작은 왕국이었어요.
종간    그러하옵니다, 폐하. 지금도 인근의 많은 지역들 중에 가장 풍요롭고 군사들이 가장 훈련이 잘 된 곳이 송악이옵니다. 또한 인심이 후한 곳도 역시 송악이옵니다.
왕륭    과찬이시옵니다.
궁예    그렇지가 않소이다. 나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역시 우리가 본 송악은 정확했어요. 우리가 열고자 하는 미륵의 세계가 모두 그러해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왕륭    거대하고 큰 미륵의 세계를 여시는데 어찌 그것이 쉽게 되겠사옵니까, 폐하? 하오나 폐하께서는 이미 신라국의 국토를 토막내어 버리셨고 옛 고려의 영토를 도모하셨사옵니다. 앞으로도 하실일이 태산처럼 많으시옵니다.
궁예    (끄덕인다) 갈길이 멉니다.
왕륭    폐하께서는 분명 이보다도 훨씬 큰 대 제국, 모든 삼한을 통일하시는 대 군주가 되실 것이옵니다. 그리하시자면 그에 걸맞는 도읍지와 위엄을 세우셔야 하옵니다.
종간    ........?
왕륭    소신이 오래 머물러온 송악은 도읍지로서 아주 적합하옵니다. 그 옛날 도선대사께서 한 나라의 중심이 설 곳이라고 예언하신 곳이옵니다.
왕건    ........(놀라서 왕륭을 보다가 이내 침착해 진다) .....
종간    ......?
궁예    허허, 그렇소이까?
왕륭    송악은 산과 강과 바다와 그리고 들판이 고루 어우러져 있는 곳이옵니다. 또한 삼한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사옵니다 이곳에 도읍을 정하시오소서.

     종간이 한참 왕륭을 살피듯 보다가 한마디 뱉는다.

종간    조금 전에 도선대사 말씀을 하셨습니까?
왕륭    예.
종간    그렇다면 계림은 황엽이고 송악은 청솔이란 뜻이 그것이었습니까? 송악에 왕도를 세운다 그말이었습니까?
왕륭    그러하옵니다. 바로 그것이옵니다.
종간    (한참 말이 없다가) 왕성주께서는 모든 걸 사실대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도선대사의 예언이라면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대왕폐하께서 오실 것을 알고서 하신 말씀 같소이다. 폐하, 왕성주의 말을 가납하시오소서. 이 철원보다는 분명 의미가 있을 것 같사옵니다.
궁예     (술을 마시며 생각한다) 송악이라.... 송악이라....?
왕건    폐하, 그리하시오소서. 송악에 폐하의 황도를 세우시오소서. 다행히 성은 크고 넓으며 궁궐로 쓸 건물들이 상당히 구비되어 있사옵니다.
궁예    송악이라... 그렇게 말씀들을 하시니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자 들 드세요. 오늘은 많이 늦었으니 그만들 가서 쉬도록 하시지요.
왕륭들    예, 폐하.
    
     생각하는 궁예와 종간의 얼굴에서... 디졸브

 씬 14 철원성 내 (인서트)

     어둠이 깊게 배어있다. 순라를 도는 군사들이 보여온다. 그중 어느 건물의 불빛이 밝다. 장수장과 군사들이 그 방을 지켜서 있다.

씬 15 동 건물 안

    촛불이 일렁거리고 있다. 왕륭부자와 왕평달 부자 그리고 두 사부가 함께 해 있다.

왕건    아버님, 소자는 아까 깜짝 놀랐사옵니다. 도선대사님의 말씀을 하시다니요?
왕륭    우리를 믿게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종간이란 사람의 눈은 쉽게 속일수가 없다. 그 자는 이미 도선대사며 송악의 일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어.
왕평달    아니, 형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송악에 궁예의 도읍지를 세우라 하시다니요?
왕식렴    그러하옵니다. 백부님. 일부러 불러들일 필요야 없지 않사옵니까?
왕륭    모르는 소리. 기왕에 충성을 보이려면 겉과 속을 다 믿게 해야 한다. 이미 우리가 송악을 내어주었는데 더 잃을 게 무엇이 있겠느냐?
     궁예를 믿게 해야 한다. 송악을 황도로 삼게 하고 그곳에 큰 터전을 마련케 해야 한다. 진정한 주인이 누가 될 것인지는 훗날 세월이 말해주겠지.
마사부    주군의 말씀을 알 것 같사옵니다.
변사부    그러하옵니다. 일단은 송악을 번창하게 하고 송악의 모든 인심을 쏠리게 하는 것은 훗날을 위해 나쁠 것이 없다고 보옵니다.
왕륭    모두가 우리하기 나름이니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칼날 위에 서있는 것이야. 그것을 깨닫게 되면 결코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두들    .......
왕륭    궁예는 우리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아. 특히나 그 종간이란 사람은 우리가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를 보는 느낌이 좋지가 않았어.

     긴장한 왕륭의 표정에서........

씬 16 철원성 종간의 거소

    종간과 은부가 마주해 있다.

은부    송악의 도읍을 정한다 하셨습니까?
종간    (끄덕이며) 모를 일일세. 이 이야기는 왕륭이란 사람이 꺼낸 것이야. 나도 언젠가 도선대사의 예언이란 것을 들은 적이 있었네. 새로운 제국이 송악에 그 중심을 세운다는 것 말일세.
은부    헌데 그 이야기를 왕륭이란 사람이 권했단 말이옵니까?
종간    그러게 말일세. 의외였어. 송악 사람들은 그 속을 알 수가 없는 사람들이거든.... 송악 얘기만 나오면 걱정이 되는 게 있어. 폐하께오서 송악에 대해서만은 평상심을 잃고 계시니...
은부    그건 군사님도 마찬가지옵니다. 송악에 대해서 너무 경계를 하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종간    그렇지가 않네.. 왕륭의 아들 왕건과 폐하는 극생살의 운일세. 언젠가는 서로가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게야.
은부    ....!
종간    어떻게 하든 송악의 힘을 눌러야 하네.. 내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일단 송악의 도읍을 정하는 것은 좋은 일일 것 같아. 동시에 부자간을 서로 떼어놓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좋은 방법이야.
은부    (끄덕인다)
종간    왕륭을 이곳 철원과 가까운 금성 태수로 불러들이는 것일세. 왕건은 아직 어리고, 왕륭이 없는 송악은 이빨빠진 호랑이와도 같을 것일세..
은부    ........좋은 생각이십니다. 송악일은 그렇게 하시고.....(눈치를 보다가) 폐하의 아드님일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종간    .........폐하께서 마님의 처소로 가셨다고 했는가?
은부    예, 그런 것으로 아옵니다마는....
종간    .....악연이로고....
은부    어차피 길게 이어질 인연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종간    맞는 말일세.. 마님은 황후감이 아니지. 양길의 따님이 아닌가?
은부    세상에 더 알려지기 전에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종간    .........(끄덕이며 생각한다)

씬 17 궁예의 거소

    미향이 아이를 안은 채 궁예와 마주해 있다.

미향    폐하의 아드님입니다.
궁예    ....(담담히 본다) 아들이라....허허허...이 중에게 아들이 생겼다?
미향    반가워하시지 않을 줄은 알고 있었사옵니다. 하지만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옵니다.
궁예    공연한 일을 했구려 보살, 보살은 명주에 있는 편이 더 낳았을 것이오..
미향    ......(눈물이 솟는다) 참으로 매정하시옵니다. 혈육을 보시고도 어찌 미동조차 하시지 않사옵니까?
궁예    이래서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인연은 만들지 말라 하였던 것이오. .......아이가 가엽게 됐구려. 그대의 허망한 욕심이 결국은 한 어린 생명을 태어나게 했고 고해의 바다로 나오게 만든 것이오.
미향    .......
궁예    그러나 이젠 아무 것도 돌이킬 수가 없게 됐소. 이게 다 업이라는 것이오. 참으로 안되었구려.
미향    안되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궁예    곧 알게 될 게요.
미향    .......(공포)......

씬 18 길
   
     왕륭일행들이 돌아가고 있다. 모두들 표정이 밝지가 않다. 평달이 묻는다.

왕평달    좀 이상하지 않사옵니까? 하루를 자고 났는데도 아무런 영이 없사옵니다. 그냥 돌아가는 것이옵니까?
왕륭    글쎄, 곧 무슨 말인가 해 오겠지.
왕건    소자가 보기에는 명령은 궁예 대왕이 내리지만 모든 대소사는 종간이란 사람이 하는 것 같았사옵니다.
왕륭    잘 보았어. 지금쯤 우리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정해 놓았을 것이야. 수 삼일내에 어떤 영이 내려오겠지.

     그들 그렇게 사라져 가고.....그 위로

 궁예(E)    저들 부자를 떼어놓으라?

씬 19 궁예의 대전

    궁예와 종간이 마주해 있다.

궁예    왕륭이란 사람은 이미 너무 늙었소이다. 어디로 보내라는 것이오.
종간    송악은 저들이 말한대로 도선대사가 예언한 대 제국의 도읍지이옵니다. 왕륭 부자는 오래전부터 송악을 이끌어온 사람들이옵니다. 저들을 함께 놓아두는 것 보다는 서로 떨어져 있게 하는 것이 여러 모로 타당할 것 같사옵니다.
궁예    허허. 군사께선 아직도 저들을 믿지 못하고 계시는구려...
종간    왕륭은 늙었다 하나 꾀가 많은 사람이옵니다. 이곳 철원 근처로 불러들이시어 곁에 두고 살피시오소서. 그리고 왕건은 그대로 송악에 남아있게 하여 폐하께서 머무실 황성을 건설하게 하시오소서.
궁예    ......허어... 그렇다면 왕륭성주를 어디로...?
종간    마침 근처 금성태수의 자리가 비었사옵니다. 그리로 보내시오소서.
궁예    너무 오지가 아닌가?
종간    송악과 폐하께서 계시는 이곳 철원의 중간지점이옵니다. 적당한 거리이오니 그리하시오소서.
궁예    (한참 생각하다가 끄덕인다) 군사의 뜻이 정 그렇다면 그리 하십시다. 이참에 왕건이라는 젊은 성주의 진면목도 좀 보기로 하고.....
종간    망극하옵니다... 하옵고 폐하...
궁예    말씀하시구려..
종간    마님께서 데려온... 아드님 말씀이옵니다.
궁예    .......
종간    그일은 소신에게 맡겨주시오소서. 폐하께오서는 세상이 다 아는 미륵의 현신이시옵니다. 백성들과 나라를 위해 당분간은 소신이 이 일을 맡아서 처리하겠사옵니다.
궁예    (한참 생각한다) 딱한 일이오. 잘못된 인연하나가 이토록 꼬리에 꼬리를 물어오는구려. 그 일은 나도 군사의 생각과 같소이다. 그리해 주시구려. 지금은 그런 일에 연연할 때가 아니오.
종간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오면 모든 일을 일으신대로 처리하겠사옵니다.

씬 20 미향의 거소

    그 때 금대, 염상, 장일이 군사들과 더불어 문짝이 부서져라 들어선다. 미향이 불안한 듯 아이를 껴안으며 그들을 쳐다본다.
    
미향    무슨 일들이오?
금대    마님.. 폐하의 영이시옵니다. 아기씨는 유모를 붙여 편안한 곳으로 뫼시라 하셨사옵니다.
미향    그.. 그게 무슨 말씀이오? 그럴 리가 없소.
염상    폐하의 영이시옵니다.
미향    아니되오. 그럴 수는 없소. 폐하의 영이라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금대    영을 따르시오소서. 얘들아!
미향    .......? (공포)
장일    예
 염상    뭣들 하느냐? 아기씨를 뫼셔라.


     대답과 동시에 병사들이 아기를 뻇어든다. 미향은 뻇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미향    아니되오, 아니되오...... (아이를 뻇기고) 아이를 돌려주오, 아니되오....아니되오...

     미향이 쓰러지며 울부짓는다. 슬이도 어쩔줄 모른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예를 올리고 황망히 그곳을 빠져 나간다.

미향    아니된다. 아니된다.......

씬 21 북원성 외경

 양길    (E) 뭐, 뭐가 어쩌고 어째? 대-왕?

씬 22 동 양길의 거소

    양길이 대노해 있다.

양길    궁예 그 놈이 철원에 들어가서 대왕을 칭했단 말이야?
사위1    그러하옵니다. 패서 일대의 많은 호족들이 앞다투어 모두 궁예에게 귀부를 했다 하옵니다.
양길    죽일 놈... (이를 간다) 내 그 놈을 반드시 죽이고야 말 것이야. 전투 준비는 어찌 되어가는가?
명길    각 고을의 성주들에게 영을 내려놓았사옵니다.
양길    서두르게. 한시가 급하네..

     그 때 밖에서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폐하, 무진주의 견훤이 사자를 보내왔사옵니다.
양길    뭐라, 견훤이? 들여보내라.

     신강과 곰치가 들어와 군례를 올린다.

신강    소장은 견훤 대왕폐하의 명을 받고 온 사자 신강이라 하옵니다. 폐하께오서 이 서찰을 대장군께 전해드리라 하셨사옵니다.
양길    ....? 읽어봐.

     사위2가 서찰을 받아다 읽는다.

사위2    북원의 장군 양길은 보시게.
양길    (듣다가) 뭐... 뭐?.... 보시게? 이런...
사위2    (읽다말고) 예?
양길    나도 폐하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런 경망한.... 계속 읽어봐.
사위2    (눈치보며) 예, 폐하. (또 읽는다) 근자에 듣자하니 그대의 수하 장수였던 궁예가 그대를 배신했다는 소문을 들었노라. 궁예는 본시 떠돌이 중으로서 그대가 거두어 목숨을 보존해주고 장수가 된 자임을 알고 있는바, 그 깊고 큰 의리를 헌신짝처럼 버렸으니 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비록 나의 영토 안의 일은 아니나 의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써 짐은 이를 용서키 어렵노라. 그대가 원한다면 언제든 그대를 도와 궁예를 벌할 뜻이 있노니. 만약에 불의를 벌할 생각이 있거든 짐에게 청하라. 도와줄 것이니라.
양길    ......견훤이 나를 돕겠다? (코웃음 치고) 이 양길이가 그리 가엾어 보였단 말이지...?
신강    .....폐하께오선 진심으로 장군을 돕고자 하시옵니다.
양길    필요없다 하여라. 저는 짐이고 황제인데 나는 장군이라고? 이보아라, 신강이라고 했느냐?
신강    예, 장군
 양길    이놈아 나도 폐하라 했느니라. 나 또한 30여개의 읍성을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니라. 견훤의 도움 따윈 필요없다고 전하거라.
명길    형님... 조금 더 생각을 하신 연후에...?
양길    견훤이란 놈은 지난번에도 나를 비장으로 삼은 자야. 내가 도움을 받게 되면 정말로 비장이 되어버릴 것이야. 그래도 받으란 말인가? 썩 물러가거라.
신강    .......

     양길의 노기등등한 모습에서..

씬 23 길

    견훤이 추허조, 김총, 최승우, 수달 등의 제장들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오고 있다. 견훤의 모습은 무장의 갑옷이 아니라 대왕의 풍모를 갖췄다. 환관들이 일산을 들었고 박씨도 함께하고 있다. 어느쯤 가다가 견훤이 묻는다.

견훤    지금쯤 북원에 신강이 당도했겠지?
능환    아마 그럴 것이옵니다.
견훤    양길이 우리의 호의를 받을까?
능환    본시 줏대가 없고 의심이 많은 소인이옵니다. 아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보낼 것이옵니다.
견훤    하하하... 그러니 그 모양이 아니겠는가?

     그 때 저만치서 종례가 오다린(40대)과 함께 군사들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

수달    저기 종례 장자가 오고 있사옵니다.
견훤    .....?

     종례들이 다가와 예를 갖춘다.

종례    어서 오시오소서, 폐하.
견훤    오랜만이오. 함께 온 분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종례    소개해 올리겠사옵니다. 이 사람은 금성에서 크게 소금전을 하는 호족 오다린이라는 사람이옵니다.
오다린    (고개를 숙이며) 오다린이옵니다.
견훤    (흐뭇하게 보며) 소금전이라....? 아주 좋은 장사를 하시는구려.
오다린    황공하옵니다. 폐하. 오래전부터 폐하의 대명을 흠모해 왔사온데 이렇게 뵈오니 영광이옵니다.
견훤    아, 무슨 말을.. 고맙구려..
수달    오장자의 소금은 삼한 땅 아니가는 곳이 없사옵니다. 그야말로 대 부호이옵니다.
견훤    허어, 그렇구려. 나는 지금 나의 땅을 모두 순행하는 중이오. 보게되어 반갑소이다. 가십시다.

     그들 다시 길을 가기 시작한다. 오다린은 뒤로 처지고 최승우와 견훤이 이야기를 나누며 간다.

최승우    폐하께오서 백제의 복원에 뜻을 두시니 곳곳에 숨어 있던 인재들이 폐하께 달려오는 것 같사옵니다.
견훤    (끄덕인다) ........허어, 그래요?
최승우    전령들의 보고를 접해보니 이미 완산주에는 신라 관료들이 없다하옵니다. 여러 도적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무리를 이루고 있는 모양이옵니다.
능환    주인이 없는 곳이 된 모양이옵니다. 그곳으로 우리 장수들을 보내시면 어떻겠사옵니까?
견훤    서두를 것 없네. 천천히 우리의 땅을 다 더듬어 올라가면서, 인심을 한번 살펴보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야.
추허조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비워둔다면 그것도 아니될 말이옵니다. 소장을 보내주시오소서. 가서 성을 깨끗이 치워놓겠사옵니다.
견훤    서두를 것 없다고 하였느니라. 어서들 가자.
최승우    폐하, 이번에 양길이에게 간 우리 사자가 비록 시원한 대답을 갖고오지 못하더라도 그쪽과의 유대는 지속하셔야 하옵니다. 적의 적은 우리편이란 말이 있사옵니다.
능환    그러하옵니다. 그나마 양길이가 있기 때문에 궁예가 우리 쪽을 넘보기 어려운 것이옵니다. 이번에 송악도 무릎을 꿇었다 하옵니다.
견훤    송악이...? 그 왕륭이란 사람이 말인가?
능환    바로 우리가 서라벌에서 보았던 그 송악의 성주 말이옵니다.
견훤    허허, 그렇게 되었는가? 묘한 인연이로군... 그때, 송악 사람들은 궁예와 함께 오지 않았던가?
능환    그리 했사옵니다. 이제 서로의 처지가 바뀌어 임금과 신하 사이가 된 것이옵니다.
견훤    허어, 그것 참....

씬 24 송악성

 왕평달(E)    형님이 금성 태수라니요? 이런 경우가 있사옵니까?

씬 25 동 왕륭의 거소

    왕륭과 왕건, 가신들이 모여 있다. 왕륭이 궁예에게서 온 교지를 접는다.

왕평달    다른 곳은 다 그대로 보존해 주면서 어찌 우리 송악만 이리 대한단 말이옵니까?
왕륭    생각하고 있던 일이야. 어차피 송악은 이제 건이가 새 주인이 되었어. 나야 어디로 가면 어떤가.
변사부    하오나..
왕륭    내 걱정은 말게. 자네들은 새로운 주군을 충심으로 모시면 되는 게야.
왕건    ....... 아버님.....?
왕륭    어찌 되었든 이제부터는 궁예와는 군신간이다. 신하를 칭했으면 그 예와 본분을 다해야 한다. 지금부터는 그 분은 하늘처럼 뫼셔라. 내 말을 알겠느냐?
왕건    예, 아버님.
왕륭    나는 금성 태수로 가고 너는 이곳의 성주가 되어 성을 쌓고 궁궐을 지으라는 영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바란대로 된 것이다. 남은 일은 너의 일이다. 매사를 신중히 처신하도록 하여라.
왕건    예, 명심하겠사옵니다. 아버님.
왕륭    부인 가십시다.(마사부에게) 차비를 차리게.. 곧 떠날 것일세..

씬 26 동 밖

    왕륭과 한씨, 왕건, 왕평달, 왕식렴들이 나오고 있다. 군사들이 대기해 있고 말 두 필이 서 있다. 왕륭들 말위에 올라있다.

왕평달    형님, 부디 몸 조심들 하시오소서.
왕륭    우리 내외 일은 걱정하지 말게나. 건이 일이나 잘 돌보아 주게. 많은 일들이 자네 어깨에 달려있어.
왕평달    이를 말씀이옵니까?
왕식렴    백부님, 부디 건강을 지키시오소서.
왕륭    허허허. 고맙구나. 너도 이제 크게 네 몫을 할 나이가 되었다. 송악의 새 주인을 도와 큰일 한번 해보거라.
왕식렴    예, 백부님.
왕건    아버님. 어머님, 몸 조심 하시오소서.
한씨    몸 조심하거라..
왕륭    자 들 또 보세. 해가 짧아. 어서 길을 뜨세나.
마사부     출발들 하여라.

     대답소리와 함께 군사들이 앞을 선다. 드디어 왕륭일행들이 송악고을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가다가 한씨가 되돌아 본다. 눈물을 훔친다. 왕평달 부자와 가신들이 그렇게 숙연히 보고 있다. 왕건도 침묵으로써 모든 것을 삼키고 있다. 그렇게 그들의 모습이 멀어진다.

씬 27 신천 강장자의 집 외경

 강장자    (E) 왕성주가 금성태수로 갔다?

씬 28 동안

    백씨와 연화가 자리해 있다.

강장자    그예 이리 될 줄 알았어.. 내 뭐라 했소?
백씨    큰 일이옵니다. 이제 우리 연화의 혼사는 어찌한단 말이옵니까?
연화    ......
백씨    나으리.. 나으리께오서 어떻게 해 보시오소서. 그래도 혼인 얘기는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강장자    이런.....? 초상집에 가서 외상값을 달라는 격이지..? 송악이 쑥때 밭이 되었는데 지금 무슨 혼사 이야기를 한단 말이요. 그리고... 사정이 많이 달라졌소이다. 우리도 생각을 좀 해봐야겠소..
백씨    ....? 생각을... 해보시다니요?
강장자    왕성주가 금성태수로 간 이유가 무엇이겠소? 다른 곳은 다 기존의 지배권을 보존해 주었는데 송악만 그렇게 됐소이다. 궁예 대왕이 송악을 괘씸히 여기는 것이 아니겠소?
백씨    .......?
강장자    궁예 대왕의 눈밖에 난 것이오. 왕성주는 금성으로 내어쫓고 왕건이는 성과 궁궐을 세우라 하였다는 구려. 우리 고을의 장수 유금필이도 송악으로 불려갔지만 생각해보시구려. 그게 쉬운 일이겠소? 궁궐을 짖는다....? 허.... 이렇게 되면 끝난거요. 송악은 거덜이 났다 이말씀이요.
연화    ......?

씬 29 송악

    수많은 인부들이 돌과 목재를 나르고 있다. 왕건이 그들을 독려하고 있다.

왕건    목재는 저 쪽으로 옮기도록 하게.. 그리고 석재는 이 쪽으로...

     그 때 저만치서 유금필이 인부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변사부    신천의 유금필이 아니옵니까?
왕건    .....?
유금필    안녕 하시옵니까, 성주님?
왕건    어서 오시오.
유금필    이번에 송악성의 새로운 성주가 되셨다고 들었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왕건    고맙습니다.
유금필    우리 신천 고을도 송악의 황성을 짖는데 참여하라는 명을 받았사옵니다.
왕건    알고 있습니다. 여러 고을이 모두 참여할 것입니다.
유금필    왕성주님께서 금성태수로 가셨다 들었사옵니다마는...
왕건    그렇게 됐습니다.

     그 때 저만치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그 쪽을 바라보는 왕건과 유금필.

유금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옵니다?
왕건    ......?

씬 30 동 일각

    거한 두 명이 장수장과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오고있다. 능산과 박술희다.

박술희    도대체 관아가 왜 이리 먼가? 성주님을 뵙겠다 했는데 성주님은 어디 계시는가?
장수장    다 와 가느니라. 조용히 하지 못할까?
능산    허허허... 저분이 성주님이신 모양일세.

     왕건이 다가오면서 모두들 허리를 숙이자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능산이 너털 웃음을 웃는다.

왕건    무슨 일인가?
장수장    성을 쌓는 인부들을 모집 중에 있었사옵니다. 쓸만한 자들 같길래 축성의 인부가 되라고 하였사온데....
왕건    하기 싫어하는 자들을 뭣하러 억지로 데려온단 말인가?
장수장    인력이 달리는 지라....
박술희    이자가 힘께나 쓰는 자 같사옵니다. 마구잡이로 우리를 몰고왔사옵니다. 허허허....이런 세상에
 변사부    닥치거라. 생긴 것은 산도적같이 생긴놈이 말이 많구나. 성주님 앞이니라. 예의를 차리지 못할고?
박술희    예의라? 허허... 그대는 또 누구인가?
변사부    이자가 그런데......?
박술희    허어.... 보아하니 몸매무새가 꽉 잡힌 것이 검술께나 익힌 것 같구려.
변사부    ........?
박술희     우리도 먼 길을 무료하게 오던 참이었소이다. 우리와 잠시 여흥을 즐기실수 있겠소이까?

     그런 박술희를 유금필이 미소를 지으며 본다. 그러다가 왕건을 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왕건도 미소를 짖는다.

왕건    그러다가 다치면 어찌하려고 그러는가?
박술희    소인이 할 소리옵니다. 성주님.
왕건    그렇다면 변사부님, 어떻습니까? 잠시 대접을 해 주시지요.
변사부    허허허, 이것 참.... 괜찮겠는가?
능산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예의가 지나치신 것 같소이다. 기왕에 즐기기로 한 여흥이니 빨리 보았으면 싶사옵니다마는....

     왕건은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본다. 예사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왕건    그대들은 어디서 오는 사람들인가?
능산    성주님, 여흥부터 즐기고 나서 이놈들의 이름을 아뢰어 올리는 것이 어떨런지요?
왕건    그렇게 하세. 자 사부님, 한수 보여 주십시오.
변사부    예, 성주님.
능산    이보게 술희, 여흥을 돋굴려면 제대로 한번 해보게나.
박술희    이를 말이겠습니까, 능산이 형님.
    
     박술희, 등에 찬 검을 뽑아 든다. 변사부도 서서히 칼을 뽑는다. 검과 검이 서로를 겨누자 순식간에 그곳엔 긴장감이 감돈다. 서로의 눈빛을 노려보며 호흡을 가다듬는 그들...

해설    능산, 지금의 이름은 능산이지만 훗날 왕건을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고려조 최대의 충신으로 불리우는 신숭겸, 그 사람이 이 사람이다. 또한 지금 검을 들고 변사부를 놀리고 있는 이 사람은 박술희, 이 사람 또한 왕건의 마지막 유언을 받아챙길만큼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모두가 왕건에게 있어서는 훗날 삼한을 통일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호걸들이다. 이들이 오늘 이렇게 그 첫만남을 갖고 있는 것이다.
                                 (23회 끝)

















첨부파일 태조왕건23.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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