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KBS대본

[태조 왕건] 28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1.15|조회수1,550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28회>



씬 1 강장자의 집 마당

    지난회의 연결이다. 연화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여전히 왕건을 노려보고 있다. 왕건은 참담한 표정이다.

연화    이것을 운명이라 하는 것이옵니까, 아니면 숙명이라고 하는 것이옵니까?
은부    ......
왕건    ......
연화    그 많은 신료분들 중에서 하필 공자께서 혼례를 주관하는 집사로 오시옵니까? 폐하께서 그리하라 하셨사옵니까?
왕건    받으시오소서.
은부    (보고 있다가) 영을 받아 뫼시오소서. 폐하의 영을 지체하는 법은 없사옵니다.
강장자    얘야, 어서.....
연화    하기는... 많이 생각했습니다.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모두들 어쩔 줄 모른다. 은부는 표정없이 듣고만 있고 왕건은 굳어져 있고 강장자 부부는 벌벌떨고 있다.

연화    사내들이란 결국 이렇게 사는 모양입니다. 약조 따위는 언제든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폐하의 교지라구요? 백성이 되어 그 지엄하신 분부를 어찌 아니 뫼시겠습니까?
왕건    ......
강장자들    (안도같은) .......
연화    이제 이 연화는 죽고 허상만 남았습니다. 송악의 공자께서 옛날에 변하신 것과 같이 신천의 연화도 이제는 없습니다.
교지를 받겠습니다. 은부    무릎을 꿇고 하례 후에 받으시오소서.

     왕건이 교지를 펴고 섰고 연화가 절을 하고 자리에 공손히 앉아 교지를 듣는다.

왕건    (목이 메어 읽는다) 짐은 신천의 강장자에 권하노라. 경의 여식이 만민이 우러러 존경함이 있고 또한 뜻과 예의가 깊다하여 국모의 자질이 있다 하였느니라. 이에 짐은 그 뜻을 받아 황실의 안주인이며 백성의 어머니로 청하고자 하니 짐의 뜻을 사기어 따를 지어다. 이에 그 여식에게 권하니 짐의 예물을 혼례의 약속으로 받아 길일을 택해 입궐 할 것을 명하노라.

     왕건이 읽기를 마치자 떨리는 손으로 교지를 작은 탁자 위에 놓고 또한 예물을 그 위에 놓고 절하고 물러난다. 연화는 예물과 교지는 거들떠도 안보고 원망스러운 듯 왕건을 본다. 왕건은 눈을 내려 깔고 천천히 물러나 그렇게 섰다. 은부가 나선다.

은부    오늘은 참으로 경사스럽고도 기쁜 날이올시다. 폐하께오서 혼례집사를 보내시어 신천의 강장자 따님을 국모의 자리로 청하셨사옵니다. 경하드리옵니다.
강장자    폐하의 칙사분들 이시옵니다. 자 이제 그만 안으로 드시어 쉬시오소서, 얘들아 무엇하느냐? 어서 음식을 준비하지 않고..? 안으로 드시오소서, 어서어서들 드시오소서.
백씨    그리하시오소서.
은부    그러고 싶지만 폐하의 명을 받아왔소이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오이다. 자 왕성주 그만 가십시다.

     왕건은 드디어 은부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을 연화가 보고 있다. 왕건은 차라리 눈을 감는다. 그렇게 돌아서는 그들의 모습이 처절하게 슬로우 모션되면서 디졸브....

씬 2 송악 길

    전령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카메라 앞을 스쳐 멀어진다. 사람들이 그런 전령을 보고 있고...

씬 3 궁예의 대전

 궁예    .......많은 사람들이 거듭 간청하여 허락은 했으나 왠지 개운치가 않소이다. 국혼이라, 허허...그것 참..
종간    백성들을 위해서 이옵니다. 기쁜 마음으로 맞으시오소서.
궁예    물론 그렇기는 하오만.....

     그 때 내관의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관    (E) 폐하, 김락 장군께서 드셨사옵니다.
궁예    들라 하게.

     김락이 급히 김언과 함께 들어와 예를 올린다.

김락    폐하, 가평군에서 급보를 전해왔사옵니다.
궁예    ...? 급보라니?
김락    북원의 양길이 그예 군사를 일으켰다 하옵니다.

     놀라는 궁예와 종간.

종간    양길의 군사들이.......?
김언    선봉군이 이미 가평의 충령산에 이르고 있다 하옵니다. 또한 견훤의 군사와 연계를 도모하는 움직임이 세작들에 의해 포착되었사옵니다.
궁예    견훤까지....?
김락    그러하옵니다. 폐하. 사안이 시급하여 신들이 병부령 관아에서 이리로 달려왔사옵니다.
종간    그예 폐하께오서 서남해의 견훤왕과 만나실 모양이옵니다.
궁예    ....글쎄...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겠소이까? 북원의 양길장군이 온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되는 것은 피하고 싶었는데...
종간    정해진 수순이었사옵니다. 이제는 북원도 마땅히 폐하의 땅이 되어야 하옵니다.
궁예    ......

씬 4 황궁 외경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군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씬 5 동 회의장

    궁예와 제장들이 모여 있다. 종간, 은부, 환선길, 이흔암, 배현경, 홍유, 신훤, 원회, 복지겸, 김락, 김언, 염상, 금대, 장일, 종희 등등이다. 왕건도 그 자리에 참석해 있다.

궁예    모두들 소식을 들으셨을 줄로 아오. 양길이 군사를 일으켰소. 견훤이 양길과 선을 닿고 있다고 하오. 좋지않은 일이오.
제장들    .......
왕건    폐하, 하오나 견훤 쪽은 크게 염려할 일이 아닌 듯하옵니다. 지금 견훤은 양길을 부추켜 폐하와 전쟁을 하게 해 이득을 취하려는 것일 뿐, 전면적으로 우리와 맞서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은부, 종간    (끄덕이고).....
배현경    어차피 북원의 양길과는 분명한 결론을 내야 할 일이었사옵니다. 이 참에 양길과의 악연을 끝내시오소서.
환선길    그렇사옵니다. 이렇게 된 이상 후원에 있는 마님의 거취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어야 할 줄로 아옵니다.
복지겸    ......?
환선길    그 분은 우리의 적 양길의 딸이옵니다. 더이상.. 은혜를 베풀어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궁예    ......?
복지겸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게요? 신상을 보존해 주신다는 폐하의 약조가 있으셨소이다.
이흔암    지금은 형편이 달라졌소이다. 그 아비되는 사람이 군사를 몰아오고 있어요.
종간    복장군은 아직도 양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소이다. 어찌 적의 딸을 두둔하시는게요?
복지겸    허허허, 그래서 지금 이 사람의 충심을 의심하시는 것이오이까?
은부    의심이 갈 만한 말씀을 하고 계시지 않소이까?
복지겸    나는 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오이다.
궁예    그만.. 그만들 두시구려. 옳은 말이오. 짐은 복장군의 충성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소. 약속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오. 그 여인은 불쌍한 사람이오. 절대 해치지 않을 것이오.
복지겸    황공하옵니다, 폐하.
왕건    ........
궁예    짐의 국혼은 전쟁이 끝난 이후로 미룰 것이니 그리들 아시오. 그리고 이번 전쟁의 총사령은 왕건 장군에게 맡길 것이오.
왕건    .......?

     모두들 놀라고 어이가 없다.

환선길    폐하... 아니 어떻게....?
이흔암    왕장군은 전투경험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어인 하명이시옵니까?
궁예    짐은 왕장군을 잘 아오 짐이 알기로 왕장군은 여섯 살 때부터 해적들과 싸웠을 것이오, 아마. 허허허허....
종간    .....(떨떠름한 표정이다)...
궁예    왕장군, 어서 나와 이 지휘검을 받게.

     왕건이 다가가 궁예의 검을 받아든다. 제장들이 모두들 못마땅한 표정이다.

궁예    짐은 그대를 믿네. 짐을 대신해 군사를 지휘하도록 하게.
왕건    신명을 바치겠사옵니다, 폐하...

씬 6 미향의 처소

 미향    뭐라고 하였느냐, 아버님의 군대가 온다고?
월이    예.. 그 때문에 지금 장수들이 모두 모였다 하옵니다.
미향    (무너지듯) 그예... 그예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
월이    마님.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미향    나 때문이니라.. 나 때문에 아버님께서 군사를 일으키신 게야..
월이    ....두렵사옵니다. 이제 마님은 어찌 되시는 것이옵니까?
미향    ......(천천히 도리질을 친다)....난들 어찌알겠느냐?
월이    (공포)....마님....?

씬 7 길

    양길의 세작들이 산 중턱에 숨어서 멀리서 구름처럼 몰려오는 군대를 보고 있다. 그러다가 급히 몸을 숨기며 말을 끌고 사라져 간다.

씬 8 길

    기치창검을 휘날리며 왕건과 제장들이 대군을 이끌고 오고 있다. 종간을 제외한 모든 장수가 출전해 있다. 변사부와 능산, 유금필, 박술희도 보인다.
    
씬 9 산야

    양길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다. 양길과 명길, 사위1,2, 그리고 각 고을에서 온 장수들이 작전지도를 펴놓고 강기슭과 산구릉들을 가리키며 회의를 하고 있다. 그 때 저만치서 세작들이 달려와 양길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군례를 올린다.

세작    폐하, 궁예군이 오고 있사옵니다. 대군이옵니다.
양길    군사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
세작    족히 3천은 넘을 것이옵니다.
양길    3천? ....궁예가 직접 나왔더냐?
세작    아니옵니다. 왕건이라는 장수가 수장이옵니다.
양길    왕건?
세작    송악의 성주를 지낸 자로 이제 갓 스물을 넘겼사옵니다.
양길    뭐라, 갓 스물? 하하하하.. 환선길이나 이흔암이는 어디에다 두고 그런 애송이를 수장으로 내세웠단 말인가?
사위1    그 자들은 폐하가 두려워 꽁무니를 뺐을 것이옵니다. 폐하의 위용을 잘 아는 자들이 아니옵니까?
양길    그래.. 그랬을 테지...
명길    하지만 궁예 휘하에는 용맹한 장수들이 많이 있사옵니다. 경계를 늦추시면 아니 되옵니다.
양길    그래봤자 왕건이란 아이는 전장에 얼굴 한 번 내비친 적이 없는 애송이가 아닌가? 걱정할 것 없네.. 그보다도 견훤이 지원군을 보내줘야 할 터인데...
사위2    ......
양길    재차 사자를 보내게.. 견훤의 지원군이 와 줘야해.. 그래야 놈들을 확실히 무너뜨릴 수 있어.
사위1    예, 알겠사옵니다.

씬 10 왕건의 군영(밤)

     군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군사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다. 카메라 팬하여 어느 군막에 이르면..

김락    (E)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양길의 군사도 대략 우리와 같다 하옵니다.

씬 11 동 군막 안

    왕건과 제장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왕건    다행히 아직 견훤군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지원군은 없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에 따라서 먼저 지형에 따라 군사의 편제를 나누겠습니다.
모두들    .........
왕건    (지도를 가리키며) 산악쪽 좌군은 환선길 장군을 주축으로 해서 이흔암, 복지겸, 신훤, 원회 장군이 맡으시고, 우군은 배현경 장군을 주축으로 하여 홍유, 김락, 김언, 종희 장군이 맡으십시오. 그리고 소장과 감독관으로 나오신 병부령 은부 장군께서는 중군을 맡을 것입니다.
장수들    .......
왕건    이곳 축령산의 지리를 살펴보건대, 동쪽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서쪽은 작은 강이 흐르고 있소이다. 양길은 군사를 나누어 산악지대부터 공격을 해올 것입니다. 따라서 좌군은 동쪽을, 우군은 서쪽을 각각 맡아 적군의 공격을 대비토록 하십시오.
은부    문제는 과연 적군이 산악쪽으로 먼저 오느냐 안오느냐 하는 것일 터인데.... 왕장군은 그것을 어찌 장담하시는 게요?
왕건    오늘은 달이 아주 밝습니다. 냇가는 개활지가 되어서 달빛에 훤히 드러나게 되어 있지요. 적군은 그리로 선뜻 나서지 못할것입니다. 또 북원에서 이곳까지 오느라 아직 피곤이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당연히 산악지대에 숨어서 아군을 유인할 것이옵니다.
은부    나는 병부령이요. 폐하의 군대를 책임진 사람이오. 이번 전쟁은 양길이라는 골치거리를 해결하는 동시에 한산주와 중원 일부를 크게 장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올시다. 만에 하나 이 전투를 실패하는 날에는 군령으로써 막중한 책임을 묻게 될 것입니다. 그점을 명심하시오.
왕건    패장은 죽음 뿐이옵니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은부    그토록 잘 알고 있으니 다행이십니다, 왕장군? 허허허 (디졸브)

씬 12 동 군막 밖 (밤)

     왕건이 어둠속에 먼 곳을 보고 있다. 그 한쪽으로 좌우 군영이 갈라져 사라져 가고 있다.

변사부    은부 장군이 주군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사옵니다마는.....
왕건    그럴만 하지요. (미소) 하지만 전 사부님과 아우들을 믿습니다.

     왕건의 그 모습에서...

씬 13 양길의 군막 밖

    양길과 명길이 마주해 있다. 모닥불이 타고 있다.

양길    미향이는 어찌 되었을까? 죽지 않고 살아 있을까...?
명길    잊으시오소서. 어차피 죽은 목숨이옵니다.
양길    불쌍한 것.. 이 애비를 얼마나 원망했을꼬....?
명길    ......
양길    이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하네.. 내 딸 미향이를 위해서라도 이겨야 하네..
명길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양길    견훤에게 사자는 보냈는가?
명길    예.. 하지만 너무 기대는 갖지 마시오소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틀린 것 같사옵니다.
양길    그래도 기다려 봐야지.. 견훤이 스스로 군대를 보내준다 하지 않았던가?

씬 14 무진주 성 외경(낮)

씬 15 동 대전

    견훤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박씨가 곁에서 지켜보다가

 박씨    폐하, 차가 다 식겠사옵니다.
견훤    ....오..그렇구만..
박씨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시옵니까?
견훤    아니오, 별 일 아니오. (차를 마시는데)
박씨    북원에 지원군을 보내는 문제 때문이시옵니까?
견훤    ....? 황후가 그걸 어찌 아시오?
박씨    간밤에 북원에서 사자가 온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견훤    아.. 그랬던가요? 허허허..
박씨    어찌 하실 생각이시옵니까?
견훤    일단 돌려보내긴 했는데..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아서...

     그 때 밖에서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폐하, 능환 군사께서 오셨사옵니다.
견훤    들라 하라.

     능환과 최승우가 들어와 예를 갖추고 앉는다.

능환    찾아 계시옵니까?
견훤    앉게나.
박씨    신첩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견훤    그러시구려.. (박씨가 밖으로 나가면) 내 지난 밤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약속을 어기는 건 사내들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구만..
능환    폐하?
견훤    적은 수라도 지원군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능환    불가하옵니다, 폐하. 그 일 말고도 시급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옵니다. 완산주를 준비하는 일도 그렇고, 외곽을 정비하고 방어하는 일도 힘에 부칠 지경이옵니다.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폐하. 당초 양길과 궁예를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었사옵니까? 목적을 이루었으니 양길과 가까이 할 이유가 없사옵니다.
견훤    그래도....
최승우    양길도 궁예도 모두가 우리의 적이옵니다. 훗날 언젠가 궁예와 분명 자웅을 겨루어야 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옵니다.
견훤    허허, 양길이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그것 참...

씬 16 양길의 진영 (낮)

     군사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다.

명길    (E) 벌써 사흘이나 지났사옵니다.

씬 17 동 양길의 군막

    양길과 명길, 사위1, 2, 그리고 제장들이 모여 있다.

명길    궁예군이 우리가 있는 산악지대와 강쪽에 이미 포진했사옵니다. 이제 공격의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무엇을 주저하시옵니까?
양길    ....견훤의 지원군이 아직 오지 않았네..
사위1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니옵니까?
양길    ........
명길    서로 비슷한 전투력이옵니다. 그러나 저 쪽은 궁예가 나오지 않았고 우리에겐 천하의 용장이신 형님폐하께서 계시옵니다.
양길    ........
명길    해볼만 하옵니다. 견훤이는 잊으시오소서.
사위2    속히 진격의 명을 내려주시오소서, 폐하..
양길    .......알았네.. 그리 하도록 하세. 견훤없이도 우리는 이길 수가 있어. 이보게 아우?
명길    예, 폐하..?
양길    동쪽은 나와 큰사위가 맡을 테니 서쪽은 자네와 작은 사위가 맡도록 하게.
명길    알겠사옵니다, 폐하.
양길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할 테니 자네들은 일단 싸우지 말고 대기하고 있도록 하게. 우리가 적진을 무너뜨린 이후에 강쪽으로 돌아서 측면공격을 하란 말일세. 알겠는가?
명길    예, 알겠사옵니다.
양길    군사를 정비하라. 기마대는 앞을 서라. 공격하라.

     말고삐를 낡어채며 앞서 달리는 결연한 양길의 모습에서...

씬 18 그 산야 평원

    양길의 군사들이 무수히 몰려온다. 와- 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그예 양쪽의 군사들이 맞붙었다. 경계선으로 놓여진 목책들이 부서져 나가고 치워지고 불길이 사방에서 솟는다. 드디어 칼과 창이 부딪치는 근접전이 이어진다. 궁예군에서는 환선길과 이흔암, 복지겸이 군사들을 독려하며 분전하고 있고, 양길군에서는 양길과 사위2가 놀라운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환선길    (적병들을 베고는) 공격하라! 물러서지 마라! 공격하라!

     그러나 양길의 괴력에 궁예군이 점차 밀리기 시작한다. 양길은 군사들을 풀베듯이 베며 궁예군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양길    궁예는 어디 있느냐? 궁예 그 놈을 데려오너라!

     그러자 신훤이 양길에게 달려든다.

신훤    북원의 적도 양길아, 내 창을 받아라!
양길    오냐, 어서 오너라.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신훤은 양길의 적수가 못되었다. 양길이 검을 들어 내리치는 순간 그 광경을 목격한 원회가 소리치며 달려온다.

원회    조심하게... 신훤이..!

     그러나 이미 신훤이 목이 베이며 말에서 떨어져 죽는다. 원회가 그 모습을 보고 불같이 노한다.

원회    내 이놈을..

     원회가 양길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그 역시 수합만에 쓰러지고 만다. 무서운 괴력이다. 언월도를 마치 젓가락 놀리듯 한다. 다시 달려오는 이흔암을 보며 양길이 벼락같이 소리친다.

양길    이놈, 이 배신자, 이흔암이로구나! 잘 만났다.
이흔암    (흠칫한다).....!
양길    감히 네놈이 나를 배반해? 오늘이 제삿날인 줄 알거라!
이흔암    오냐, 이 어리석은 것아. 어서 오너라.
양길    오냐, 죽어 보아라. 네 처남놈은 어디갔느냐? 함께 죽여주마.

     양길이 전광석화처럼 이흔암을 공격한다. 엄청난 괴력이다. 이흔암이 엉겁결에 양길의 언월도를 받아내지만 이미 기세가 눌려 방어에 급급한다. 연이어 수십합의 공격을 퍼부어대는 양길. 마침내 이흔암의 어깨가 베이고 칼을 놓친다. 그때 환선길이 장팔사모를 꼬나들고 달려온다.

환선길    기다려라! 이 환선길이가 상대해주마.
양길    환선길이 네 놈도 왔구나? 어서 오너라. 이 배신자들.
환선길    네가 모자라서 떠난 것이다. 우릴 원망 마라.

     다시 접전이 붙는다.

환선길    (이흔암에게) 여기는 내가 맡을테니 자네는 어서 피하게.
이흔암    ...아, 알았소, 형님...

     이흔암이 되돌아가고 양길의 공격이 매섭게 이어진다.

양길    이 놈, 이 금수만도 못한 놈아. 네가 나를 당할 수 있단 말이더냐? 이놈이 오늘은 제법 배포가 있구나.
환선길    .......

     사실이다. 환선길도 상대는 아니다. 양길은 마치 삼국지의 여포와도 같다. 천하의 용장 환선길도 그만 기가 죽어 양길을 막아내지 못한다. 환선길이 당황하여 말머리를 돌린다.

양길    이놈... 어딜 도망가느냐? 환선길 네 이놈!!

     그러자 궁예군이 일제히 당황해 뒷걸음질을 친다. 양길이 그 광경을 보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다.

양길    하하하하.. 이 놈들아, 잘 보았느냐? 내가 양길이니라. 공격하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베거라!

     진군의 북소리와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요란해진다. 양길의 군사들이 뒷걸음치는 궁예군을 무참히 도륙하고 있다.

씬 19 그 한 쪽 계곡

    복지겸이 지키고 있다가 다가오는 양길군에게 무수한 화살과 돌덩이를 퍼붓는다 그제서야 주춤하는 양길군. 양길이
 손을들어 군사들을 제지한다.
복지겸    쏴라. 쏴라......! 돌덩이를 굴려라!
사위1    네 이놈 복지겸........! 네 놈이로구나. 네 놈은 믿었건만.....
복지겸    다 당신의 욕심 때문이오. 당신의 욕심이 이렇게 만든 것이오. 쏴라, 양길을 잡아라! 무엇들 하느냐, 양길을 쏴라!

     화살이 비오듯 쏟아진다. 양길의 군사들이 수없이 쓰러진다. 어쩔 수 없이 양길은 말머리를 돌린다.

양길    퇴각하라, 이제 그만 되었다. 잠시 물러나 다시 진을 세우라. 모두들 퇴각하라.

씬 20 왕건의 진영 (새벽)

     산능선 위에서 전투태세를 갖추고 왕건과 은부, 그리고 변사부, 유금필, 능산, 박술희 등이 말 위에 올라 전선 쪽을 긴장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양길의 군사가 계곡에서 물러나 다시 전열을 정비하는 것이 보인다. 그 기세가 자못 왕성해 보인다.

은부    아직도 여전하구먼....양길이의 무예솜씨는 천하제일이야. 머리만 좀 있었다면 대단했을 것이야.
왕건    ....과연 중원의 장군답습니다. 대단해요, 대단하옵니다.
은부    그렇다고 구경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오?
왕건    ...그러게 말이옵니다. 이보게, 능산이?
능산    예, 장군.
왕건    박술희와 함께 우리 군사를 이끌고 나가도록 하게.
능, 박    예, 장군.
능산    (뒤를 돌아보며) 군사들은 나를 따르라!

     능산과 박술희가 비호처럼 달려나가면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내달린다.

은부    아니 왕장군, 저 사람들은 누구요? 성을 짖는데 참여했던 일꾼들이 아니오? 저들을 내보내서 어쩌겠다는 게요? 환선길 장군도 당해내지 못한 군사들이오.
왕건    두고 보십시오. 볼만 하실것이옵니다.
은부    아무리 그래도.. 저런 이름없는 장수들을...
왕건    허허허...

씬 21 그 산야 벌판

    능산과 박술희가 각각 청룡언월도와 철퇴를 휘두르며 복지겸이 있는 계곡을 지나 양길 쪽으로 다가간다.

능산    모두들, 앞으로 나아가라!
    
     그러자 저만큼에서 보고있던 양길도 다시 군호를 내린다.

양길    저 놈들이 또 죽고싶어 오는 모양이다. 쳐라!

     함성 소리와 함께 기세 오른 양길의 군사들이 와 지쳐 나간다.

박술희    (무인지경으로 양길군을 친다) 이놈들...! 내가 박술희이니라! 양길이가 누구이냐? 어서 오너라! 나와 한판 해보자꾸나.

     능산이 한쪽으로 지쳐나가고 또 그 한쪽으로 무시무시한 외모의 박술희가 돌진해 오자 사위1과 양길의 군사들이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그러나 박술희는 사정없이 양길의 군사들을 철퇴로 내리친다. 그리고 드디어 사위1과 접전이 붙었다. 박술희는 그야말로 장비가 환생한 듯 엄청난 괴력을 보여준다.

사위1    (당황해) 네, 네 놈은 누구냐?
박술희    곧 죽을 놈이 알고 싶은 것도 많구나. 왕건 장군의 부장 박술희니라..

     기합 소리와 함께 철퇴를 휘두른다. 마침내 사위1이 머리에 철퇴를 맞고 낙마하여 죽는다. 양길이 보고 눈이 둥그레진다. 복지겸도 놀란다. 대단한 무예인 것이다.

박술희    으하하하.. 자 이번에는 누구인가? 양길은 어디에 있는가?

     박술희가 말머리를 돌려 달려가면..

씬 22 다른 쪽

    양길과 능산이 벌써 접전을 벌이고 있다. 용호상박이다.
     그 때 박술희가 달려온다.

박술희    형님..
능산    어서 오게.
박술희    이 놈, 내 철퇴도 한 번 받아보아라!

     박술희도 능산과 함께 양길을 공격한다.

양길    (당황해) 실력들이 대단하구나.. 네 놈들은 누구냐?
능산    왕건장군의 부장들이다. 듣던대로 대단하구나.

     언월도를 힘차게 내리친다. 이제 양길은 방어에 급급한다. 두 명이 한꺼번에 덤비자 양길이 그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그러자 이번에는 양길을 뒤쫓아 도망치는 군사들이 수없이 죽임을 당한다. 신이나는 박술희와 능산들...

박술희    네 이놈 게 섯지 못하겠느냐?
능산    그만두게. 양길이 도망치면 쫓지 말라는 영이 계셨어.
박술희    예..?
능산    주군의 영일세. 저 뒤에는 양길의 중군이 버티고 있어. 잘못하면 매복에 걸린다네.

     그때, 보고있던 복지겸이 계곡쪽에서 달려나온다.

복지겸    그만 추격하시오. 그 이상은 산을 넘지 말라는 총사령의 영이 계셨소이다.
박술희    그냥 밀어부치면 양길을 잡을 터인데...
능산    주군의 영이라 하였네.
박술희    .....하 참...(입맛을 다시며 양길이 도망간 쪽을 바라본다)

씬 23 왕건의 군막 외경 (낮)

     군사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다.

왕건    (E) 적군을 물리치기는 했으나 아군의 피해도 상당합니다.

씬 24 동 군막 안

    은부와 환선길, 이흔암, 복지겸, 유금필, 변사부, 능산, 박술희 등이 작전회의를 하고 있다. 긴장된 분위기다.

왕건    신훤 원회 장군을 비롯해서 대략 3,4백의 군사를 잃은 것 같소이다.
은부    (환선길과 이흔암을 본다)......
환선길    .....지원군이 늦은 탓이오. 제 때에 투입이 됐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요.
박술희    뭐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놓으니까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거요?
환선길    (발끈해) 뭐라?
박술희    아 경우가 그렇지 않소이까?
이흔암    이런 자를 보았는가? 하급 군관 주제에 장수를 욕보이려 해?
박술희    내가 틀린 말을 했소이까?
왕건    그만하게. 윗사람에게 어찌 그런 불손한 언사를 한단 말인가?
박술희    ...(뻥해) 예...?
왕건    환장군께서 너그러히 이해해 주십시오. 아직 상명하복의 체계에 익숙치 않아 그렇습니다.
환선길    ..험.. 그래도 그렇지 감히...
은부    지금 양길의 군사가 동쪽 강변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소. 아마도 전면전으로 해보자는 것 같은데...
왕건    동쪽 강변은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전면전을 펼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지요.
복지겸    그렇다면 우리도 병력을 이동시켜야 하지 않겠소이까?
왕건    그리 해야겠지요. 참으로 볼만한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양길은 이미 마음의 평정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승부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지요.
은부    ..........?

씬 25 동쪽 강변 (해질 녘)

     양길의 군사가 전열을 재정비하고 도열해 있다. 그 반대편에 왕건을 비롯한 궁예군도 무수한 깃발을 휘날리며 결연한 모습으로 나와 있다. 노을 속에 해가 지고 있다.

양길    저기 백마에 올라 있는 저 애송이가 왕건이라는 자인가?
사위2    그런 듯 싶사옵니다.
양길    ...내가 너무 방심했어. 천하의 이 양길이가 보도 듣도 못한 애송이들에게 당하다니...
명길    환선길과 이흔암을 상대하느라 힘이 소진하셨사옵니다. 이번엔 이 아우가 나가 형님 폐하의 수치를 씻어드리겠사옵니다.
양길    (끄덕이고)...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야. 예사 놈들이 아닐세.
명길    염려마시오소서. 그럼..

     군례를 올리고 앞으로 몇발자욱 나아가 소리친다.

명길    궁예의 졸개들은 듣거라! 젖비린내 나는 아이를 총사령으로 보내다니 참으로 가소롭구나. 너희들 중에 쓸만한 장수가 있다면 나와보거라. 이 명길이가 상대해주마. 어서 나오너라!

     반대편의 왕건 진영이 술렁거린다.
    
박술희    아니 저, 저 놈이? 장군, 소장을 보내주시오소서. 이 철퇴로 저 자를 지옥으로 보내겠사옵니다.
왕건    (미소) ...아닐세.. 이번엔 유부장이 나가도록 하게.
유금필    예, 장군. 고맙사옵니다.

     그대로 말을 몰아 뛰쳐나가는 유금필. 저편에서도 명길이 달려나온다. 이윽고 장검이 요란하게 부딪친다. 그리고 다시 수합이 이어진다. 막상막하의 대결이다. 왕건과 양길이 각각의 진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왕건은 미소를 띄우고 있지만 양길은 내심 초조하다. 그들의 표정이 말해주는 대로 결국 유금필의 검이 명길의 얼굴이 칼날에 베인다.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싸는 명길. 다시 유금필이 지쳐 들어오자 그러자 양길과 사위 2가 소리를 치며 달려나온다.

양길    뭣들 하느냐, 저들을 막아라!

     양길이 소리치며 급히 나가자 군사들도 유금필을 막아선다. 그 사이 피투성이의 명길이 군사들에게 보호되어 그들 진영으로 도망쳐 버린다. 이렇게 되니 자연히 양길군의 패배다. 양길과 여러 양길의 성주들이 전면으로 다 나선다. 일대 큰 접전이 벌어진다. 능산, 유금필, 박술희는 물론이요, 배현경과 홍유도 거침없이 적을 베고 있다. 그 참혹한 전쟁터를 굽어보고 있는 왕건. 곁에 있는 김락과 김언에게 뭔가 지시를 내리자 김락과 김언이 일군의 병사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은부가 그 모습을 의아해 보고 있다. 양길이 이리뛰고 저리뛰며 분전하고 있지만 전세는 겉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다.

양길    (도리질을 치며) 아니되겠어.. 이러다 전멸하게 생겼구나.. 퇴각하라! 전 군은 총 퇴각하라!

     양길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사위2와 살아 남은 양길의 군사들이 양길을 따라 도주한다. 궁예군이 그들을 쫓는데 퇴각의 북소리가 울린다. 그러자 일시에 추격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왕건    멈추어라! 전군은 전열을 정비하고 퇴각하라!
은부    이보시오, 왕장군. 어찌하여 퇴각 명령을 내리는 게요?
왕건    (미소) 걱정마십시오. 저들의 퇴로에 이미 우리 군사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은부    ......?
왕건    ........

씬 26 그 근처 산 속

    양길이 사위2와 함께 패잔병을 이끌고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다. 얼굴을 싸맨 명길이 신음하며 군사들에게 부축되어 가고 있다.

양길    이보게 아우, 괜찮은가?
명길    견딜만하옵니다.
양길    참패를 당했네. 완전히 당했어. 대체 여기가 어디 쯤인가?
사위2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이제... 축령산을 막 벗어나는 것 같사옵니다.
양길    그렇구만... 호구는 벗어난 모양이다.

     말을 멈추고 한숨을 돌리는데 갑자기 사방 숲속에서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어나 활을 쏘아댄다. 양길의 군사들이 무참히 쓰러진다.

사위2    매복군이옵니다, 폐하?
양길    (당황해) 이, 이런 낭패가... 어서 피하라. 대항하지 말고 이 곳을 빠져나가라.
    
     그 때 화살 하나가 양길의 팔에 꽂힌다.

사위2    폐하?
양길    ....괜찮다. 어서..
사위2    활로를 열겠사옵니다. (어디론가 달려간다)
김락    퇴로를 봉쇄하라!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그러나 사위2와 양길이 가로막는 궁예군을 베고 가까스로 그 곳을 빠져나간다. 김락과 김언이 달려왔지만 양길은 벌써 저만큼 멀어져가고 있다.

김언    안타깝게 됐소이다. 다잡은 범을 놓쳤어요.
김락    이만 하면 됐소이다. 더는 쫓지 말라는 명이 있었소이다. 쥐도 궁지에 물리면 고양이를 뭅니다. 쫓아봐야 이득이 없다고 하였어요.
김언    그것도 왕건장군의 지시였소이까?
김락    그렇소이다.
김언    믿기지 않는 일이예요. 그 사람은 처음부터 이번 전투를 손바닥 보듯이 꿰뚫고 있었어요. 허...

     그들 말을 되돌린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

씬 27 왕건의 군막 외경
   
씬 28 동 군막 안

    왕건과 제장들이 모두 모여 있다. 분위기가 숙연하다.

왕건    양길을 사로잡지는 못했지만 우린 결국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김락    장군께서는 어떻게 양길이 달아나는 길목까지 보고 계셨소이까?
왕건    가평 일대의 산천과 지세를 일찍부터 살펴 놓았습니다. 여러 갈래의 퇴각로가 있었지만 양길이 북원으로 돌아가려면 유일하게 선택할 길을 거기밖에 없었지요.
배현경    그렇다면 이 전투는 처음부터 양길이 도망을 친다는 전제하에 시작을 한 것이겠습니다?
왕건    그런 셈입니다. 허허허....

     모두들 왕건을 따라 그제서야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은부는 두려운 듯 뚫어져라 왕건을 바라본다.

복지겸    겸손하게 말씀은 하시지만 병법과 지리에 달통하지 않고서는 그런 계책을 내실 수가 없지요. 폐하께오서 왕장군께 지휘를 명하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소이다.
왕건    과찬이십니다. 우리도 희생이 컸습니다. 오래전부터 주군을 뫼셨던 신훤과 원회 두 장군이 전사한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지휘를 맡은 사람으로써 깊은 책임을 느낍니다.

     왕건은 진정으로 애통한 표정을 짖는다. 장수들은 다시 숙연해진다. 끝까지 그런 왕건을 지켜보는 은부의 표정에서...

은부    (E) 무서운 젊은이다. 종간군사가 그토록 경계를 한 이유를 알 것 같구나. 한참 혈기가 방자한 저 나이에.... 마치 육십이 넘은 노장수처럼 많은 장수들을 이끌고서 이번 전투를 지휘했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씬 29 산길

    서서히 동이 터오고 있다. 양길과 사위2, 그리고 명길이 만신창이가 되어 오고 있다. 그들 뒤를 따르는 군사는 수백에 불과하다.

양길    살아 남은 군사가 얼마나 되는가?
사위2    ....수백기에 불과하옵니다.
양길    수백? 오... 어쩌다가... 어쩌다가 내가 이리 되었단 말인가? 그런 애송이에게 내가 이렇게 무참히 당하다니..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명길    고정하시오소서..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하였사옵니다. 후일을 기약하시오소서, 폐하.. 꼭 이번 일을 갚아줄 것이옵니다.
양길    (그러나 한숨만...) ..... 내 신세가 왜 자꾸 이렇게 되어가는지 모르겠구먼....

씬 30 송악 황궁길

    연도에는 백성들이 가득히 환호하고 있다. 왕건을 중심으로 하여 숱한 장졸들이 개선하고 있다. 지나쳐 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씬 31 동 송악 황궁 정문

    궁예와 종간이 내군들을 거느리고 정문 계단 위에 서 있다. 궁예는 아주 들뜬 표정이다.

궁예    하하하.. 짐은 왕건이가 해낼 줄 알았소. 과연.. 왕건이야..
종간    .......
궁예    모두들 걱정을 했었지. 하지만 짐은 일찍부터 왕건이란 재목을 보았어요. 내원께서도 그렇지 아시지 않소이까?
종간    예, 폐하.
궁예    허허허, 왜 이리 개선이 늦는고....?
종간    이미 황도에 다 들어섰다고 하옵니다. 하오나 폐하? 야전의 장수를 맞는데 이렇게까지 몸소 나오실 필요까지야.....
궁예     무슨 소리... 북원의 강적을 물리친 큰 전투였어요. 어, 저기 오는구먼.. 보시오. 저기 들어오고 있어.

     황도의 성에서 아득히 수많은 군마가 먼지를 일으키며 오는 것이 보인다. 궁예의 표정이 기쁨으로 일렁거린다. 디졸브.....

씬 32 그 황궁 길

    왕건과 군사들이 황성 가까이 이르고 있다. 황성의 의장병들이 늘어서 있고 그 황성의 정문 위에 궁예가 종간과 함께 내군들을 거느리고 서 있다. 왕건들은 점차 더 가까이 온다. 그리고 이윽고 서로 마주쳤다. 장수들이 일제히 궐 대문 밖, 말에서 내린다. 왕건이 궁예에게 가까이 이르러 한쪽 무릎을 꿇고 궁예를 향해 군례를 드린다.

왕건    폐하.. 신 왕건, 폐하의 영을 받자와 양길을 격퇴하고 돌아왔사옵니다.
궁예    ....... (너무도 기쁘다. 그 미소...)
왕건    비록 승리는 하였사오나 폐하의 소중한 장수를 둘이나 잃었사옵니다. 삼가 군법의 지엄함을 받겠사옵니다, 폐하.
종간    ............?
궁예    이미 전령을 통하여 전선의 소식을 다 들었노라. 가슴아픈 일이기는 하나 전투에 어찌 희생이 없을 수 있으랴. 그대는 참으로 큰 군공을 세웠도다. 그리고 여러 장수들에게도 짐은 치하를 내리노라. 모두들 참으로 잘 싸웠노라.
왕건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일제히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은부가 그런 왕건을 보고 있다. 그러다가 자신이 흠칫 놀란다. 종간도 그런 왕건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굳어있다. 하지만 궁예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이 역력하다. 천천히 걸어 내려가 왕건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그 손을 잡는다.

궁예    모두 일어들 나오. 이번 전투의 모든 공은 여기 총사령을 맡았던 지휘장수 왕건장군의 것이오. 짐은 이 왕장군을 잘 아오. 앞으로 왕장군은 대 고려국의 막중대사를 책임질 큰 대들보외다.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짐은 이미 십여 년 전에 그대를 보았어. 그리고 내 사형인 내원에게 말했었지. 그대같은 사람을 꼭 얻고 싶다고 말이야...
모두들    .......
궁예    그 소원이 이루어졌어. 그대는 짐에게 왔고 믿음을 주었어. 우리는 그 옛날 고구려가 저 넓은 중원을 얻었던 것처럼 천하를 도모할 것이야. 그대와 짐이 있으니 어찌 가능하지 못할 것인가?

     궁예가 다시금 왕건의 어깨를 다잡으며 감격같은 모습으로 왕건을 보고 있다.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28회 끝>













첨부파일 태조왕건28.txt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