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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30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1.15|조회수1,264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30회>



씬 1 대궐 연회장

    풍악이 은은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문무 신료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다. 궁예는 보이지 않고 종간이 연회를 주관하고 있다.

종간    참으로 경사스러운 날이올시다. 이제 국모를 모시니 온 나라에 기쁨과 웃음이 넘쳐나는 것 같소이다.
환선길    모두가 내원님께서 거듭 폐하께 주청을 드린 덕분입니다.
이흔암    아 당연한 말씀이지요. 내원님께서 아니 계셨더라면 폐하께서는 끝내 황후마마를 맞아 들이시지 않으셨을 것이옵니다.
종간    허허.. 무슨 말씀들을...
배현경    이제 강장자 어른꼐선 당연히 신료중 가장 윗자리가 되셨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강장자    고맙소이다. 여러 신료들께서 우리 황후 마마를 여러 차례 천거했다 들었소이다. 그 일은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기억하겠소이다. 자 드십시다. 허허허..

     모두들 그렇게 술잔을 든다.     그 한 쪽의 박지윤과 유장자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왕건을 바라본다.

유장자    왕 장군이 참으로 안돼 보입니다.
박지윤    그러게 말이오. 패서 일대가 떠들석하던 사이가 아니었소이까?
유장자    안타깝소이다. 참으로 안타까워요
 장자1    쉬이... 왜들 그러시오. 그 얘기는 왜....?
박지윤    아, 그만들 ....드십시다...

씬 2 연회장 그 한쪽.

     카메라 왕건 쪽으로 이동하면, 복지겸이 다가와 곁에 앉는다. 그 옆으로 홍유, 김락, 김언, 염상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복지겸    그 동안 국혼도감의 집사를 맡아 고생이 많으셨소이다. 자 내 술 한 잔 받으십시오.
왕건    별 말씀을요.... 고맙습니다.
홍유    듣자하니 곧 수군들의 시찰을 하실 모양이옵니다. 왕장군이 거느리고 있는 수군 말이오.
왕건    예.....
김락    그것이 팔관회가 아니옵니까?
왕건    예, 제사를 겸해서 지낸다 하여 팔관회가 되었소이다.
김언    아하, 그렇게 되었군요. 아무튼 폐하께오서 왕장군에 대한 신임이 대단하신 것 같소이다. 허허허..
왕건    .......
복지겸    앞으로는 연이은 전쟁이 될것이외다. 수군의 힘이 절대적이 되겠지요. 자연히 왕장군의 힘이 크게 요구될 것이외다.
왕건    ........전쟁이란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누구나 똑같은 일입니다
 홍유    황후마마를 뫼신 날이올시다. 이제 우리 폐하께서는 국모님을 뫼셨고 안으로는 장군같은 분을 크게 중용하시니 나라가 크게 안정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참으로 기쁜 날이예요. .

씬 3 대전 외경(밤)

     군사들이 횃불을 밝혀들고 번을 서고 있다.

씬 4 대전

    궁예와 연화가 앉아 있다. 합환주상이 놓여있다. 궁예는 오랫동안 연화의 기품있는 얼굴을 본다. 그러다가 입을 연다. 역시 차갑다.

궁예    이보시오 황후..
연화    ....예, 폐하.
궁예    대례가 끝났으니 솔직히 말하리다. 그대를 맞아들인 건 짐의 본의가 아니었소이다.
연화    .....?
궁예    나라에 국모가 있어야 한다는 문무 신료들의 뜻을 따랐을 뿐이오.
연화    ......?
궁예    짐에게 남녀간의 정을 너무 기대하지 마시오. 연화라 하였소?
연화    ....예.
궁예    연화라.. 연꽃이라.. 좋은 이름이오. 부디 그렇게 사시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가난하고 무지한 백성들과 더불어 그들의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어보시오. 그대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오.
연화    ......?
궁예    아시겠소, 황후...? 자, 이제부터 할 일이 있소...

씬 5 동 대전 앞

    내관들과 궁녀들이 대기해 있다.

연화    (E)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씬 6 동 대전 안

    궁예와 연화가 여전히 마주해 있다. 연화가 염주를 건네 받고 있다.

연화    염주가 아니옵니까?
궁예    그렇소. 짐이 그대에게 주고 싶었던 진정한 예물이오.
연화    .....?

     궁예가 진지하게 향에 불을 붙여 집어든다. 어리둥절해 바라보는 연화.

궁예    자, 황후. 팔을 내시오.
연화    ..... 예?
궁예    연비를 할 것이오.
연화    .....폐하?
궁예    미향이라는 여인도 짐과 연을 맺으면서 연비를 하였소. 그 여인은 보살이 되어 지금은 불도에 정진하고 있소. 그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소, 황후?
연화    .....?
궁예    어서 팔을 내시오. 그대도 보살이 되시오. 백성들 위에 앉아 그들을 호령하는 황후가 되기보다는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안아 주는 보살이 되라고 연비를 시켜드리는 게요. 자...
연화    ......(두렵다).....
궁예    두려워하지 마시오. 자비로운 부처님께 나아가는 의식이오. 내가 미륵이라는 것을 잊었소?
연화    .......
궁예    어서요.

     연화가 싸늘해지면서 팔을 궁예에게 내민다. 궁예가 연비를 한다. 불꽃이 타들어가며 연기가 흩날리고 있다. 연화가 그 고통을 참아 내고 있다. 궁예가 그런 연화를 보다가 웃는다.

궁예    허허허.. 이제 됐소. 그대는 이제 보살이 되었소.
연화    .......
궁예    피곤할 테니 그만 자리에 드시구려. 다시 말하겠소. 황후는 세속에 사는 남녀의 정리를 기대해서는 아니 될 것이오, 아시겠소? 자 그만 짐은 짐의 방으로 가보리다. 편히 쉬시구려.
연화    .......?
    
     궁예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화는 우두커니 앉아만 있다. 궁예가 사라지고 나자 그녀의 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그런 연화의 모습에서..

씬 7 미향의 처소

    미향이 염주를 굴리며 불경을 외고 있다.

미향    세상 모든 것이 다 덧없도다. 즐거움 속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숨어 있으니, 참 나를 살펴볼 때로다. 실다운 것은 어디에도 없고, 모든 것이 다 공하여 없으니..

     염주를 굴리는 미향의 손이 멈춘다. 뜻모를 한숨을 쉬는 미향.. 그러나 도리질을 친다. 다시 염주를 굴리며 더욱 크게 불경을 왼다.

미향    이 몸이 죽고 나면 몸은 빛깔이 퍼렇게 멍이 들고, 배는 부풀어 오르고 음식조차 삭일 수 없어 피고름만 흐를 것이다. 이 세상 온갖 것 중에 즐겁기만 한 것이라곤 하나 없도다...

     계속해 불경을 외는 미향의 처연한 모습에서...

씬 8 동 내원 외경(밤)

은부(E)    대궐이 참으로 조용하옵니다.     

씬 9 동 안

    종간과 은부가 차를 마시고 있다.

은부    이제야 비로소 황실이 온전한 모양을 갖추게 되었사옵니다. 앞으로 황후 마마께서 대통을 이으실 태자님을 생산하신다면 금상첨화이겠습니다만...
종간    그리 되어야겠지. 허나, 어려운 희망일세.
은부    예....?
종간    자네도 폐하를 잘 아시지 않는가? 그분이 어디 여인이나 탐하시는 분이시던가? (도리질하며) 어려울 게야..
은부    하긴 폐하께서는 아직도 이번 국혼이 마땅치 않으신 표정이셨사옵니다
 종간    ..... 일단 대례를 치루셨으니 폐하께서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은부    소인은 한쪽으로 몹시 긴장을 했었사옵니다. 황후마마와 왕건장군간에 있었던 정혼 사실이 행여나도 들어날까해서.....
종간    .....(끄덕이며) 황후께서 왕장군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지?
은부    예, 소인들이 계속 추적하여 보았사온데... 그런 것 같았사옵니다.
종간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게야.
은부    예..?
종간    신하로써 황후를 가까이 하려 한다는 것은 삼족을 멸하는 대역죄일세. 아니, 구족을 멸할 수도 있지.
은부    ......?
종간    그런 일은 없을 것이야. 허허허.....
은부    ....(끄덕인다).... 후원의 마님은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종간    복지겸에게 하신 약조도 있으시고.. 일단은 두고 보는 수밖에....
은부    답답한 일이옵니다. 양길과 적이 되어 전쟁을 벌인 마당에 적장의 딸을 대궐에 모셔두다니요.
종간    조만간 해결을 봐야겠지. 폐하께오서 하시기 어렵다면 우리가 나서는 수밖에...
은부    ......?
종간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많을 것일세. 폐하의 짐을 덜어들이는 일을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는 말이야.
은부    ....(끄덕이며) 무슨 말씀인지 알겠사옵니다. 결국은 이 은부가 그 일을 대신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시옵니까?
종간    허허허.. 역시 자네는 나와 마음이 통하는구만.. (사이) 국혼이 끝났으니 이제 군사들을 점검하고 남진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일세. 앞으로 군부의 일은 물론이고 이 황실까지 자네가 할 일이 참으로 많을 것일세.
은부    알겠사옵니다. 하옵고 듣자하니 팔관회를 연다고 하옵는데...?
종간    (끄덕이고) 그렇다네. 팔관회란 나라의 안녕을 비는 제사일세. 그것을 기회로 하여 송악의 수군을 한번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야.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야. 자, 신료들이 그것 때문에 와 있으니 가 보아야 겠네.

씬 10 궐 안 회의장 밖

 강장자    (E) 팔관회를 연다 하셨소이까?

씬 11 동 회의장 안

    종간과 강장자, 박지윤, 유장자, 그리고 장자 1,2가 모여 있다.

강장자    송악의 팔관회라면 바다 사람들이 용왕신께 재를 올리고 복을 비는 자리가 아니오이까?
종간    그렇다 들었습니다. 폐하께서 참석하시니 이제는 나라를 위한 기도회가 되겠지요. 듣자하니 송악은 물론이요, 멀리 당나라와 일본국, 탐라국의 상인들까지 찾아와 함께하는 제사이자 잔치라 들었소이다.
유장자    팔관회라고 한다면 용왕제와는 달리 분명히 나라를 위한 제사가 되옵니다. 또한 각국 여러 나라의 많은 바닷사람들이 모여들어 함께 하는 행사이옵니다. 말하자면 그들의 주군과 신하의 예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옵니다.
종간    그래요...? (관심있다) 주군과 신하라...그렇다면 그동안은 누가 주인의 자리에 있었소이까?
유장자    그야, 의당 송악의 성주였습지요.
종간    허어, 그래요..? 그렇다면 왕씨 일족이 주인이자 임금행세를 하였겠습니다, 그려.
유장자    그런 셈이지요. (하다가 입을 막는다) 하, 하지만 임금이란 뜻은 아니고 그저 바닷사람들끼리....
종간    되었습니다, 되었어요, 허허허....
강장자    이제는. 송악이 황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황제이신 폐하께오서 계시옵니다. 옛날과는 그 의식이 달라질 것이옵니다.
종간    마땅히 그리해야지요.
박지윤    (묵묵히 끄덕이고)....
종간    듣고 보니 그 동안은 송악이 사실상 바다의 주인으로 행세를 해왔소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서 이 나라의 주인은 오직 대왕폐하 한 분뿐이오이다. 이번 팔관회는 송악이 다스려온 바다를 폐하께 바치는 군신간의 의식이 될 것이오이다 아주 의미가 있는 의식이 될 것이예요. 아니 그렇소이까?
모두들    예.
    
씬 12 예성강 포구

    왕건과 왕평달, 왕식렴 그리고 유금필, 능산, 박술희가 포구를 돌아보고 있다. 장수장과 군사들이 그들을 호위하고 있다.

왕평달    바다를 보니 답답했던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구만..
왕건    아버님 생각이 나옵니다. 아버님께서는 종종 저를 바다로 데리고 나오셔서 그 옛날 장보고 장군의 영광을 들려주시곤 하셨지요.
왕평달    장보고 장군은 대단한 분이셨네. 그 분이 비명에 가지 않고 천하를 얻으셨다면 세상은 참으로 볼만해졌을 걸세.
왕건    그렇겠지요.
왕평달    비록 그 때만은 못하다 하더라도 아직도 우리는 건재하네 그려. 그 누구도 우리의 바다를 넘볼 수는 없지. 암..
왕건    하지만 숙부님...
왕평달    왜 그러는가, 조카?
왕건    이번만은 다르옵니다. 이 송악의 바다는 이제 궁예 대왕의 것이옵니다.
왕평달    그게 무슨 소린가? 엄연히 이 바다는 자네의 것이야. 자네는 우리들의 주군이고. 왜 그렇게 나약한 소리를.....
왕건    팔관회를 주관하라는 명을 받았사옵니다.
왕평달    파 팔관회?
왕건    예, 숙부님. 이제 송악은 끝난 것이옵니다. 이번 팔관회는 그야말로 진심으로 송악을 들어 폐하께 바치는 그런 자리가 될 것이옵니다
 왕평달    아니, 조카?
왕건    섭섭히 생각치 마시오소서. 저는 진심으로 폐하를 존경하고 있사옵니다. 폐하와 저는 결의를 맺었사옵니다.
왕평달    (더욱 놀라) 결의...?
왕건    나는 그분께 모든 충성을 바치기로 맹세하였사옵니다. 실인즉 그것이 아버님의 뜻이옵고, 도선대사님의 뜻이었사옵니다. 자신의 주인에게 충성하라. 그것이 곧 송악을 보전하는 것이고 이 땅을 빛내는 것이다. 그분들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사옵니다.
왕평달    하, 하지만, 조카. 이 송악의 바다는 누가 뭐래도 자네의 것일세. 우리 왕씨 가문의 모든 것인 자네가....
왕건    (말을 막듯이) 폐하의 것이옵니다. 폐하의 것이 곧 저의 것이옵니다.
왕평달    아니, 그게 저.......

     왕평달은 더 이상 말을 못한다. 가신들도 모두 눈치만 보고 있다 왕건은 아무 일이 없다는 듯 먼 바다만 보고 있다.

씬 13 대궐의 뜰

    궁예와 종간이 가고 있다. 그 뒤로 내관들과 궁녀들, 내군 병사들이 따르고 있다.

궁예    팔관회 준비는 어찌 되어가고 있소?
종간    해마다 열리는 행사이옵니다. 왕장군이 차질없이 준비를 할 것이옵니다.
궁예    팔관회는 바다에 재를 지내는 의식이고 또한 성대한 잔치를 열어 화합을 다지는 장이라 들었는데...
종간    사실은 뱃사람들의 축제이옵고, 그들간의 충성맹세의 장이옵니다.
궁예    충성 맹세?
종간    그러하옵니다. 뱃사람들과 무역상들이 그들을 보살펴 주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자리이옵니다.
궁예    그래요? 허면 그들의 주인이 누구였소? 송악에서 계속 해왔다면은 바로 왕건 장군이 되겠구먼... 그런게요?
종간    예, 폐하. 어쩌다보니 지금까지는 그래왔사옵니다마는 이제는 폐하께오서 그 자리에 앉으실 것이옵니다.
궁예    허허허.. 그렇다면 왕건이 저들의 주인이었단 말이지? 다시 말하면 왕이었단 말이야, 아니 그렇소, 내원?.
종간    그렇다고 할 수도 있사옵니다
 궁예    핫 하하하하......재미있구먼, 왕건이 왕이 되어서 저들의 인사를 받아왔다? 저 바닷사람들의 왕이었다..? 얼마나 재미있소이까?
종간    건방진 것이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달라져야 하옵니다. 폐하께서 저들의 주인이 되셨사옵니다.
궁예    과거에는 왕건이 저들의 주인이였지 않소? 짐은 과거를 얘기하는 것이오.
종간    신은 지금의 현실을 말씀드리는 것이옵니다, 폐하.
궁예    음...? (하다가 웃음) 하하하하.... 예민해, 왕건의 이야기만 나오면 내원께서는 아주 예민해진단 말씀이오, 물론, 물론이오. 지금은 누구나 다 짐의 백성이오. 허허허...

씬 14 그곳 누각

    궁예와 종간이 올라와 궁궐과 시가지를 멀리 내려다 본다.

궁예    송악은 참으로 좋은 곳이요. 이 곳에 도읍을 옮기기를 잘한 것 같소이다. 허허허..
종간    모든 것이 폐하의 복덕이 아니겠사옵니까?
궁예    .....(미소).....
종간    황후마마는 어떠시옵니까? 궁궐 생활에 좀 익숙해지셨사옵니까?
궁예    .......그건 그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고...
종간    폐하?
궁예    나는 그대들의 말을 들어준 것뿐이오. 더 이상 내게 아무 것도 바라지 마시오.
종간    허면 이 나라는 누가 이어간단 말이옵니까? 후사 말씀이옵니다.
궁예    후사라... 꼭 나의 핏줄로 대통을 이어야 한다는 법이 있소이까? 중국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요순은 서로 다른 성씨에게 임금의 자리를 내어주었소. 혹 내가 일찍 죽는다면 이 자리를 내원이 맡으면 될 것이 아니오. 허허허...
종간    천부당 만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폐하. 이 나라에는 폐하께서 계셔야 하옵니다. 폐하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대제국의 꿈을 이룰 수 없사옵니다.
궁예    내원께서는 다 하실 수가 있소. 이 모든 것이 다 그대의 도움이 아니었소?
종간    듣잡기 민망하옵니다, 폐하..
궁예    짐은 짐 개인의 영화 따위에는 관심이 없소. 미륵의 나라를 세우는 것만이 짐의 욕심이라면 욕심이오.
종간    .......

씬 15 황후전

    제조상궁이 절을 올리고 있다.

제조상궁    이제부터 황후마마를 곁에서 뫼실 것이옵니다. 정선이라 부르시오소서.
연화    반갑네.. 궐 안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네. 앞으로 많이 도와주게.
제조상궁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연화    어차피 궐 안엔 궁녀들뿐일세. 자네가 알아서 그네들을 다스리도록 하게.
제조상궁    ...그건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연화    그렇지가 않다니...?
제조상궁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실은.. 후원에 마님이 한 분 계시옵니다.

     놀라는 연화와 슬이.

연화    마님이라니...? 혹시, 북원에 있는 그 양길이라는 사람의 딸이라는..
제조상궁    그러하옵니다. 바로 그 양길의 따님으로 폐하와는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는 분이옵니다. 모두들 그 분을 북원부인이라고 부르옵니다.
연화    ......?

     그 때 연화의 모습 위로 궁예의 말이 스쳐지나간다.

궁예(E)    미향이라는 여인도 짐과 연을 맺으면서 연비를 했소. 그 여인은 보살이 되어 지금은 불도에 정진하고 있소.
연화    혹 혹시..미...향이라는 사람이 아닌가?
제조상궁    예, 황후마마.
연화    .......
슬이    아니 그렇다면 괘씸한 일이 아니오?
제조상궁    ........?
슬이    대궐 안에 있으면서 아직까지 황후마마께 인사조차 오지 않았단 말입니까?
연화    ......
슬이    마마, 쇤네가 당장 그 여인을 데려오겠사옵니다.
연화    놔두거라.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이니라.
슬이    마마...?
제조상궁    .....?
연화    자네는 그만 나가보게.
제조상궁    예, 마마..

     제조상궁이 물러간다.

슬이    마마, 그 여인이 마마를 업신여기지 않고서야 어찌 인사를 오지 않았겠사옵니까?
연화    폐하와 인연을 맺었으면서도 황후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니라.. 양길의 따님이라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컸겠느냐? ...(사이) .우리가 가보아야겠다. (일어선다)
슬이    마마... 아니되옵니다. 마마의 위엄에 손상이 가는 일이옵니다.
연화    위엄이라.... 내가 이 자리가 좋아서 있는 줄 아느냐? 내가 언제 위엄따위나 찾으려고 이곳에 와 있는 줄 아느냐?
슬이    하오나..
연화    잔소리 말고 따라오너라.
슬이    .......예...

씬 16 미향의 후원

    미향이 계속해 불경(미륵경)을 읽고 있다.

미향    미륵부처님의 세계는 깨끗하기 짝이 없는 삶이라 거짓과 아첨이 없는 세계이니라. 온 세상이 오직 평화로워 도둑의 근심이 없고, 도시나 시골이나 문을 잠글 필요가 없나니.. 또한 늙고 병드는데 대한 걱정이나 물, 불로 인한 재앙이 없으며 전쟁과 가난이 없고, 짐승이나 식물로 인한 독과 해가 없느니라. 또 서로 자비스런 마음으로 공경하고 자식이 어버이를 공경하듯, 어미가 아들을 사랑하듯, 언어와 행동이 지극히 겸손하니, 이는 다 미륵 부처님이 자비하신 마음으로 깨우치고 이끌어주시는 까닭이니라.

     미향이 불경을 읽다 말고 한숨을 쉰다.

미향    그렇다면 폐하가 이 모든 것을 이룬단 말인가? 과연 그리 될 수 있을까... 과연....?

     쓴 웃음을 짓는다. 그 때 밖에서 월이가 부리나케 들어온다.

월이    마님.... 마님....(숨이차서) 황후마마께서 오고 계시옵니다.
미향    .....?
월이    지금 황후마마께서 이곳에 오시옵니다.

씬 17 동 방 밖

    연화와 슬이가 막 문 앞에 당도하고 있다. 환관들과 궁녀들이 허리를 숙이고 서 있다. 월이가 막 방에서 나와 다급하게 허리를 숙이며 연화를 본다. 슬이가 앙칼지게 쏘아 붙인다.

슬이    뭐하고 있는가? 황후마마이시다. 듣자하니 이곳에 북원부인이 계신다 하였다. 왜 나와 예를 갖추지 않는가?
월이    ......송구하옵니다, 황후마마. 워낙 갑자기 오셨는지라 경황이 없어...
연화    북원부인은 어디 계시는가?

     그때서야 방문이 열리고 미향이 나와서 연화 앞에 선다. 전혀 흔들림이 없고 처연한 표정이다.

미향    황후마마께서 어인 왕림이시옵니까? 인사가 늦었사옵니다. 미향이라 하옵니다.

     그리고 절을 올린다. 연화가 미소지으며 다가가 일으킨다.

연화    이러지 않아도 됩니다. 일어나세요. 그대를 꾸짖으로 온 것이 아니오. 더더욱 인사를 받으려 온 것도 아닙니다.
미향    .......?
연화    차 한잔 주시겠습니까, 북원부인? .

     서로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에서...

씬 18 다시 방안

    연화와 미향이 마주해 있다. 월이와 슬이가 서로 견제를 하며 힐끔 본다.

연화    부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양길 장군의 따님이시라지요?
미향    .......?
연화    그 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미향    .......
연화    어제 폐하를 뫼셨습니다. 참으로 차가운 분이셨습니다. 그 동안 그대가 겪은 고통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습니다.
미향    ........?
연화    나를 편하게 대하세요. 나는 황후의 몸으로 이 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황후가 다 무엇입니까? 이 자리는 따지고 보면 부인의 자리가 아닙니까?
미향    ....그렇게 생각하시옵니까, 황후마마?
연화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부인.
미향    그리 말씀해주시니 소첩도 할 말이 없사옵니다. 어쩌면 이런 제 신세가 몹시 불편해 보이실 터인데....
연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궐에 부인 같은 분이 있다는 것이 나에겐 위안이 됩니다. 제게도 동무가 필요합니다. 우리 함께 잘 지내십시다.
미향    ......?
연화    어차피 부인이나 나나 타의에 의해서 운명이 바뀌어진 가엾은 인생들입니다. 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누구를 믿고 살겠습니까? 앞으로 동기간처럼 서로 도와가며 지내도록 하십시다.
미향    ........
연화    ......(미소, 손을 잡으며)..... 부인 그렇게 사십시다.

씬 19 예성강 수군 관아

    팔관회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중앙에 큰 단이 세워졌고, 수많은 깃발들과 채색천이 그 곳을 뒤덮고 있다. 왕건과 왕평달, 그리고 그 아들 식렴과 왕신의 새로운 얼굴이 보인다. 또한 두 사부, 세 결의형제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인부들의 작업을 독려하고 있다. 그 때 종간이 부장들을 이끌고 들어온다. 평달이 그를 보고 달려와 조아린다.

평달    내원이 아니시옵니까? 어서 오시오소서. 이 곳까지 어인 걸음이시옵니까?
종간    (둘러보며) 고생들이 많소이다. 거의 다 되어가는 것 같구려..?
평달    보시는 그대로이옵니다.

     왕건과 가신들이 다가온다.

왕건    어서 오시오소서.
종간    수고가 많소이다. 폐하께오서 참으로 기뻐하실 것이오이다.
왕건    ........
종간    이정도 준비를 하려면 적지 아니 경비가 소요되었을 터인데.. 하여간 송악의 재력은 대단한 것 같소이다.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요. 허허허...
평달    다 장사 덕분이지요. 폐하께오서 나라를 안정시키시니 장사길이 다시 트이고 있사옵니다.
종간    그래요? 요즈음 송악의 장사는 누가 하고 있소이까?
평달    이 아이들이 맡아보고 있사옵니다. 소생의 아들 식렴이라 하옵니다.
왕식렴    왕식렴이옵니다,
왕평달    이쪽은 얼마전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제 두 번째 아들 왕신이라 하옵니다.
왕신    왕신이옵니다. 내원어르신...
종간    (끄덕이고) 왕씨 가문에는 참으로 인재가 많은 것 같습니다. 허허..
왕건    ......

     종간들이 돌아서려는데 그 때 허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허월    팔관회라.. 참으로 볼만 하겠구만..
종간    (반색하며) 허월 스님이 아니시옵니까? 아무런 연통도 없이 어인 일이시옵니까?
왕건들    ......?
허월    내가 언제 연통따위를 돌리며 다니는 사람이던가? 팔관회를 연다기에 그 먼길을 구경좀 하려고 왔네 그려. 허허허..
종간    허허허.. 잘 오셨사옵니다. 왕건장군, 인사 올리시지요. 명주성의 큰 성주님이신 허월스님이십니다.
왕건    ......?
허월    큰 성주는 무슨..? 이미 버린지 오래인데...
왕건    처음 뵙겠사옵니다. 소장은 왕건이라 하옵니다.
허월    왕건? 왕건이라, 왕건... 이 곳 송악의 성주였던 왕륭의 아드님이 아니신가?
왕건    그러하옵니다.
허월    음 그렇구만... (왕건을 유심히 본다)
왕건    .......
허월    (다시 종간에게) 이 곳 송악으로 도읍을 옮긴 건 잘한 일일세. 도선대사도 이 곳을 새로운 나라가 세워질 명당으로 보지 않았던가?
종간    그리 말씀하였다 들었사옵니다.
허월    헌데 도선은 결국 자신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가버렸어.

     모두들 놀란다.

왕건    .....? 스님,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가시다니요? 도선 대사께서... 입적하셨다는 말씀이옵니까?
허월    그렇네만.. 한데 왜 그리 놀라는가? 도선 대사를 잘 아는가?
왕건    .........예. 그분께서 대체 언제, 어디서....?
허월    바로 얼마 전에 백계산 옥룡사에서 숨을 거두었다지, 아마?
왕건    .....?

     왕건의 침통한 모습 위로.

해설    도선. 통일 신라 말의 고승으로서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출신으로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선종 출신으로서도 알려져 일찍이 도를 이루었고 깨달음의 세계를 열어 선풍을 드날렸던 사람이다. 오래 전 왕건의 탄생을 예견했으며, 또한 그의 앞날과 고려국의 건국을 예언하였던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도선은 눈을 감을 무렵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씬 20 인서트   

     도선이 앉아서 숨을 거두고 있다. 제자들이 그의 임종을 보고 있다. 제자들 중에는 옥룡사 주지가 되는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도선    왜들 그리 슬픈 표정들인가? 슬픔들을 거두어라. 인연을 타고 왔다가 인연이 다하여 가는 것이 떳떳한 일이거늘.. 무얼 슬퍼할 것이 있단 말이냐? 삶과 죽음은 다 같은 것이니라. 허허허허....

     도선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임종에 든다. 그 모습에서...

해설    도선이 임종을 한 것은 왕건의 아버지 왕륭이 숨을 거둔지 일년만인 서기 898년, 단기로는 2431년 3월의 일이었다. 왕건으로서는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정신적 스승마저 잃어버린 꼴이 되었다. 당연히 충격이 컸던 것이다. 한편 견훤은 도선이 백제 땅 옥룡사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통탄해 마지 않는데....

씬 21 길

    견훤이 행차를 하고 있다. 능환과 박씨, 신검 형제들이 함께 가고 있고, 김총과 수달 등이 군사들을 이끌고 뒤를 따르고 있다.

견훤    도선 대사께서 열반에 드셨단 말인가? 그것도 옥룡사에서...?
종례    예, 그러하옵니다.
견훤    허...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있는가? 지척에 두고서도 그 분을 뵙지 못했다니..
능환    워낙 신출귀몰한 분이 아니시옵니까? 폐하와는 인연이 닿지 않은 모양이옵니다.
견훤    그래도 그렇지 내 나라에 계시는 것도 몰랐다니.. 자네들은 그 동안 뭘했단 말인가?
신료들    .......
박씨    폐하께오서도 불도에 관심을 가져보시오소서. 그러면 저절로 스님들이 몰려들 것이옵니다.
견훤    황후 말씀이 맞소이다. 우리도 스님들을 공경해야 할 것이오.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야.

     그 때 저만큼 소금을 제련하는 곳이 보여온다.

종례    폐하, 이제 다 왔사옵니다. 지난번에는 그저 지나치셨사옵니다만 오늘은 잘 보시오소서. 저 곳이 장자 오다린의 염전이옵니다.
견훤    .....그렇구먼, 정말 대단한 곳이야... 끝이 안보이는구먼.. 소금이야 말로 황금보다도 큰 것이야, 하얀 황금이야. 허허허.....

씬 22 동 소금 제련장

    커다란 소금가마가 곳곳에서 끓고 있다. 이른바 화염을 제련하는 곳이다. ('섬으로 흐르는 역사' 참조) '대왕 폐하 납시오!'하는 소리와 함께 견훤 일행이 들이닥친다. 일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견훤을 맞는다. 오다린이 달려와 고개를 조아린다.

견훤    아아.. 계속 일들을 하게..
오다린     어서 오시오소서, 폐하.
견훤    이것들이 다 소금을 굽는 가마요?
오다린     그러하옵니다, 폐하..
견훤    소금을 굽다니 참으로 놀랍구려.. 소금 한 줌을 얻는데 이렇게 많은 공력이 들어가다니 비싼 것은 당연하지.
오다린    그러하옵니다, 폐하.
견훤    하지만, 비싼 만큼 이득도 상당히 많다고 들었는데...?
오다린    ......(못마땅하다) 예, 그것은.....
견훤    허허허, 그만큼 나라에 충성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오, 오장자. 열심히 하도록 하오,
오다린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폐하?
견훤    (신검에게) 잘 보거라. 소금은 이렇게 여러 공정을 수없이 거쳐서 얻어지는 것이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일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라.
신검    .......예, 아바마마...
해설    소금, 이때만해도 소금은 밭에서 일구어 내는 일반 천일염이 아니었다. 이때의 소금은 화염이라고 하여 흙을 쌓고 위에 갯물을 부어 뻘에 섞여있는 소금덩어리를 녹여내고 그것을 다시 가마솥에 끓여서 얻는 복잡한 공정을 거쳤던 것 같다. 아마도 훗날 태조의 제 2 황후가 되는 장화왕후 오씨의 집안은 당시 하얀 황금으로 불리웠던 소금재벌 집안이 아니었나 추측하는 이도 있다.
견훤    황금보다도 귀하다는 소금이오. 소금은 오장자를 믿으면 될 것같고... 이제 남은 것은 농삿일과 해외에 팔고 사들이는 무역에 관한 것인데...
능환    그러하옵니다. 그 또한 우리 영토 안에서 많은 철이 생산되고 있사옵니다. 크게 걱정하실 것이 없사옵니다.
종례    농사도 그러하옵니다. 서남해 일대가 얼마나 비옥한 들판이옵니까? 지난 해도 대풍을 이루었사옵니다.
견훤    그거야, 마땅히 그리 되어야지.
수달    이제 도읍을 옮기고 최학사가 사벌주에 계시는 아자개님만 뫼셔올 수 있다면 더 이상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견훤    .....(어두워진다).....
박씨    최학사가 과연 아버님을 뫼셔올 수 있을지...
견훤    기대하지 마시오. 아버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도리질을 치는 견훤의 모습에서...

씬 23 사벌주 외경

 아자개(E)    이놈아, 또 무엇하러 온게냐?

씬 24 동 아자개의 처소

    최승우와 능애가 와 있다. 아자개와 계모, 그리고 대주도금이 그들을 보고 있다.

아자개    견훤이 그 놈이 보낸 게냐? 나를 데려오라고?
능애     우선 절부터 받으시오소서.

     능애와 최승우가 절을 한다.

아자개    그대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누구인가?
최승우    최승우라 하옵니다.
아자개    최승우? 최승우? 그대가 정말 최승우란 말인가?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아자개    (도리질) 안됐구만... 그래 그대같은 대학자가 갈 곳이 고작 견훤이밖에 없었단 말인가?
최승우    대왕폐하는 능히 삼한을 재통합하실 영웅이시옵니다. 그 분을 만난 것을 소인은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아자개    영웅은 무슨...? 명석한 학자라더니 그렇지도 않은가 보구만..
최승우    허허허..
능애    아버님, 이제 그만 저희들과 함께 가시오소서. 형님 폐하께오서 아버님이 오시기만을 학수고대하고 계시옵니다.
아자개    나는 가지 않을 것이야. 대체 몇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느냐?
최승우    지금 완산주에는 궁궐이 세워지고 있사옵니다. 그곳에 들어가시면 어르신께서는 태황제가 되시는 것이옵니다.
아자개    태황제? 거 말은 그럴 듯하구만..
최승우    저희와 함께 무진주로 가시오소서. 백제의 주인이 되실 대왕폐하를 인정하셔야 하옵니다. 어르신께서는 이 성밖에 없지 않사옵니까? 북으로는 양길과 궁예의 세력이 강성하고 아래로는 아직 신라가 있사옵니다. 만일 그들이 공격을 해오면 이 성의 힘만으로는 감당키 어려울 것이옵니다.
아자개    그건 자네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야..
최승우    합치셔야 하옵니다. 그리하면 대제국을 이룰 수 있사옵니다. 대제국이옵니다.
아자개    ........
계모    입에 발린 소리옵니다. 듣지 마시오소서. 큰 아이가 이 곳 사벌주가 욕심이 나서 그러는 것일 것이옵니다.
대주도금    어머니...?
아자개    돌아들 가게.. 나를 데려가려거든 그 놈더러 직접 오라고 해.
대주도금    아버님, 어찌하여 큰 오라버니를 믿지 못하시옵니까? 그 분이 남이옵니까? 아버님의 장손이 아니시옵니까?
아자개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니라. 그만 하거라.
대주도금     아버님....?
계모    너는 이 에미의 말보다도 오래비의 말을 더 믿는단 말이냐? 우리가 무진주로 가보거라. 니 오래비는 당장에 나와 너희들을 죽일 것이니라..
능애    정말 너무하십니다. 어찌하여 우리 형제들과 아버님을 이토록 갈라놓으십니까?
계모    뭐라? 나으리 저것 보십시오. 눈을 부릅뜨고 저를 처다보는 것을 보시오소서.
아자개    네 이놈, 에미에게 말버릇이 그게 무엇이냐? 썩 물러가거라.
능애    아버님...?
아자개    썩 물러가래두!
능애    ......
최승우    .......(한숨)......

씬 25 길

    최승우와 능애가 오고 있다.

최승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두 부자께서 화합을 하시면 천하가 눈앞인 것을.. (도리질을 친다)....
능애    그러게 헛걸음이 될 거라 하지 않았소이까?
최승우    .....이대로는 안됩니다. 뭔가 특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소이다.
능애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최승우    훗날 커다란 우환거리가 될 겝니다. 단순한 부자간의 의리의 문제가 아니올시다.
능애    ........?

씬 26 아자개의 처소

    아자개가 홀로 생각에 잠겨 있다.

아자개(E)    견훤이와 합친다...? 음.... 견훤이가 무진주와 강주, 그리고 완산주를 도모했겠다..? 거기에 이 곳 상주를 더하면 그야말로 삼한의 절반이 아닌가? 태황제라 태황제.. 내 아들 견훤이가 진정 삼한을 다스릴 영웅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도리질을 치며) 아니야. 아니야.. 견훤이는 견훤이고 나는 나야.. 내자의 말이 맞아.. 공연히 분란만 일으키는 일이 될 게야.. 견훤이와 나는 따로 서로 떨어져 사는 게 좋아.. 함께 살아봤자 큰소리밖에 더 나겠는가? 그나저나 황궁을 짓는다...? 그 놈이 제법 하긴 하는구만...

씬 27 완산주 공사현장

    축성 작업이 한창이다. 추허조가 인부들을 바라보며 목청이 터져라 외쳐대고 있다.

추허조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하겠는가? 왜 이리 동작이 굼뜨는 게야? (혀를 차며) 에이 변변치 못한 것들 같은니라구..
신강    너무 채근하지 마시오. 그렇다고 공사가 빨리 되는 것도 아니고.. 인명만 상할 뿐이예요.
추허조    아 답답하니까 그렇지요. 큰소리를 치고 왔는데 예정된 기일을 한참이나 넘기고 말았소이다.
신강    우리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까? 사정을 말씀드리면 폐하께서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실 것이오이다.
추허조    어쨌든 이 추허조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소이다. 무슨 낯으로 폐하를 뵙는단 말이오?

     추허조의 난감한 표정에서...

씬 28 순행길의 군막 외경
   
     그 한쪽으로 노천에 있는 광석을 채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능환과 종례, 수달들이 그 인부들을 보고 있다.

종례    땅을 파는 광산이 아니라 노천에 흩어져 있는 광석을 모아 철을 얻는 다고 합니다. 이른바 노천 광산이지요.
능환    (끄덕이며) 땅 위에 돌들을 주어 철을 얻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야.
수달    옛날에는 당나라에서 상인들이 건너와 저 쇠들을 전량 사갔다고 하옵니다.
능환    그럴테지. 철은 귀한 것이니까. 이번 순행길은 볼거리가 많네그려, 역시 폐하께서는 자주자주 궐 밖에 다니시면서 많은 것을 보셔야 한다네...허허허...

씬 29 동 군막 안
   
     박씨와 신검(17세) 양검(16세) 형제, 그리고 딸 아이(14세), (10세)가 함께 있다. 이들 다과를 함께 하고 있다. 견훤이 한숨을 쉰다.

박씨    웬 한숨이시옵니까?
견훤    갑자기 아버님 생각이 나는구려. 아이들이 자라며 뭘 보고 배울지 참으로 걱정이오.
박씨    ........
견훤    아버님 문제만은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소. 한 나라의 임금인데도 안되는 일이 있구려..
박씨    폐하께서 먼저 굽히시오소서. 아버님을 모시는 일이옵니다.
견훤    내가 말이오? 그렇다고 아버님이 내 말을 따르실 것 같소? 그럴 거라면 내가 왜 아니 갔겠소? 임금이 가서 또 허탕을 치면 그 얼마나 백성들이 비웃을 것이오. 에잇, 답답한 일이야.....차라리 나도 궁예처럼 머리나 깎고 중이나 될 걸 그랬나봐.
박씨    그래도 그 사람은 부인이 둘씩이나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견훤    ....그야 그렇겠지만서도......

씬 30 예성강 길

    궁예의 장엄한 행렬이 오고 있다. 궁예와 황후 연화가 나란히 오고 있다. 내군의 갑사들이 궁예와 황후 주위를 철통같이 경계하고 있다. 궁예가 다가오면 연도의 백성들이 엎드려 절을 한다. 그 대단한 위용에서....디졸브 되면..

씬 31 팔관회장

    문무신료들이 가득 모여 있다. 백성들도 나와 있고, 외국의 상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송악의 군사들도 질서정연하게 대기해 있다. 모두들 궁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궁예의 행렬이 모습을 드러낸다.

은부    대왕 폐하 납시오!

     자리에 있던 문무신료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황제를 맞는다.     왕건이 나아가 궁예를 맞는다.

왕건    어서 오시오소서, 폐하.
궁예    (미소) 수고가 많으셨네.
왕건    어서 오시오소서, 황후 마마..
연화    ......
왕건    폐하의 수군이옵니다. 보시오소서.

     왕건의 안내를 받으며 궁예와 황후 연화가 정렬해 있는 수군들 앞에 선다.

왕건    (군사들에게) 황제 폐하께오서 납시었소, 모두 충심으로 폐하를 받드시오.

     그러자 군사들이 일제히 충성을 바치는 연호를 외쳐댄다.

군사들    충! 충! 충!

     궁예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손을 들어 군사들의 연호에 화답한다. 궁예와 연화가 수군들을 사열하며 지나쳐 단 위에 올라 자리에 앉는다. 장자들도 일제히 자리에 앉는다. 환호는 그때까지 이어진다. 궁예가 다시 손을 들자 환호가 멈춘다. 왕건이 반 무릎을 꿇고 군례를 올린다.

궁예    참으로 오늘의 팔관회가 대단한 법회임을 알겠소이다. 이보시오, 황후?
연화    예, 폐하...
궁예    저 왕장군을 잘 기억해 두시오. 이 나라 제일의 장수요.
연화    ...예..

     강장자와 백씨는 그 말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궁예    자, 황후. 왕장군께 술 한 잔 따라 주시구려.
연화    예?
궁예    무에 그리 놀라시오? 황후가 장수에게 술을 하사하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오이다. 아니 그렇소이까, 내원?
종간    ..그렇사옵니다, 폐하. (의미심장하게 왕건을 본다)
왕건    ........
연화    .......
궁예    아 어서요.

     긴장된 모습으로 바라보는 강장자와 백씨.. 왕건이 술잔을 든다.
     왕건을 바라보는 연화의 모습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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