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31회>
씬 1 예성강 포구 (팔관회장)
지난 회와 연결된다. 연화는 계속 왕건을 주시한 채, 어쩔줄 모르고 있다. 왕건은 술잔을 들고 있고 연화는 어쩔줄 모른다.
궁예 하하하. 무얼 그리 망설이시오. (왕건을 향해) 뭐가 그렇게 두렵소, 황후? 어서 잔을 채워주시구려.
연화 .........(술병을 든다. 드는 손이 떨린다)
궁예 그렇지....황후, 따르면 되는 것이오. 별게 아니예요. 허허허허.....
강장자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버렸다. 장내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 앉아있다. 사정을 아는 이들의 면면이 빠르게 지나쳐간다. 연화가 술을 따른다.
왕건 (부복하며) 황후마마, 광영이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
너무 긴장하여 술이 잔을 넘치고 흐른다. 황급히 병을 다시 제자리에 놓는 연화. 주변의 웃음소리가 와 터진다.
궁예 (웃으며) 본래 황후는 정이 많은 사람이오. 그러니 잔이 이렇게 넘치지 않소이까? 하하하.....
모두들 (함께 따라 웃는다)
궁예 (웃다가 강장자 보며) 헌데 장인께서는 어찌 그리 표정이 무겁습니까?
강장자 아, 아니올습니다, 폐하. 그럴리가요?
백씨 ..........
종간 황후마마께서 장수에게 처음으로 하사하는 잔이 아니옵니까? 다소 긴장하신 듯 하옵니다..
궁예 딴은 그렇겠구먼.. 자 왕장군, 무얼 하는가? 어서 황후의 잔을 드시게?
왕건 예, 폐하.
왕건이 술잔을 한 입에 털어넣고 잔을 치운다.
왕건 대왕폐하와 황후마마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궁예 허, 허 고맙소. (장중을 향해) 자, 자. 이제 그동안 있었던 왕장군의 노고를 우리 황후가 치하를 하였소이다. 짐도 참으로 기쁜 바이오. 이제 팔관회를 거행토록 하오.
은부 식을 거행하랍신다.
왕건 의식을 집전하라.
법고가 울리고 궁예의 합장을 신호로 하여 수 많은 승려들의 화려한 바라춤이 시작된다. 더불어 독경이 광장 위로 울려 퍼진다. 팔관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안도하는 종간들과 왕건들의 모습에서......식이 계속 진행되면... 궁예가 왕건에게 이른다.
궁예 왕장군,
왕건 예, 폐하.
궁예 팔관회란 국가의 안녕과 더불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의미도 담고 있소이다. 앞으로는 이 팔관회를 매년 대대적으로 해야겠소. 전쟁이 계속 될 테니까 말이요.
왕건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궁예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야말로 보살행이고 보시행이지. 사내로써는 그 이상의 가치가 없을 것이오. 아니 그렇소?
종간 그러하옵니다, 폐하
의식은 그렇게 한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다. .디졸브되면....
씬 2 다시 그곳 일각
용대 위에서는 승려들의 바라춤이 끝나고 외국뱃사람들이 각기 그들 고유의 복장을 하고 궁예 앞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왕건에게 일제히 예를 올린다. 종간이 찌푸리며 그 모습을 본다. 다른 많은 신료들도 의아해서 본다.
은부 아니...? 저들이 왜 왕장군에게 절을 하는 것인가?
종간 ........
은부 이상하지 않사옵니까? 폐하께서 엄연히 여기 계시온데....
종간 여태까지 해온 관행이라네.
은부 아니, 그래도 그렇지....
왕건 (그들에게) 자, 폐하께서는 저기에 계십니다. 이제는 제가 아니라 폐하께서 절을 받으셔야 합니다.
모두들 ........ (계속 보고 있고)
왕건 폐하, 신 왕건이 폐하께 한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해마다 팔관재가 열릴 때이면 외국의 상인들이 송악 성주에게 하례를 오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사옵니다.
궁예 들어서 알고 있었소.
이흔암 (환선길에게) 일개 송악 성주에게 하례를 하러 온다고..?
환선길 그러게 말일세.. 거 참 신기하구먼....
배현경 어허....... 그러게 말이오...
왕건 (궁예를 향해 계속) 이제부터 이들은 송악이 아닌 폐하께 군신지례를 올릴 것이옵니다. 받으시오소서.
궁예 ........(미소)
왕건 (좌중을 향해) 당나라와 흑수말갈, 대식국, 교지국, 탐라, 일본의 대상들은 들으시오. 나 송악 성주 왕건은 이제 폐하의 신하가 되었소이다. 그대들은 이제부터는 마땅히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는 예를 올려야 할 것이오.
상인들 예.
왕건 차례로 예를 올리시오. (왕식렴에게 눈치를 한다)
그러자 앞에 있던 일본 상인부터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는다.
왕식렴 일본국의 대상이며 선단의 선장인 히로시 사토오미, 대왕폐하께 알현하나이다. 예를 받으시오소서.
일본 상인이 봉물을 바치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나간다. 연이어 다음 상인인 당나라 사람이 예를 올린다.
왕식렴 대 당나라국 상인 장우심이 폐하께 알현하나이다. 예를 받으시오소서.
궁예가 끄덕인다. 종간과 은부가 그 모습들을 보고 있다. 다음 연이 어 상인들의 의식이 계속되고 있다.
왕식렴 대식국 상인 핫셈이 폐하께 알현하고 예를 올리나이다, 받으시오소서. .
종간과 은부가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다. 모두들 신기한 듯 보고 있다.
종희 참으로 놀라운 일이올시다.
염상 그러게 말이오. 마치 자신의 황제를 모시는 신하 같지 않소?
금대 영락없사옵니다. 바로 그거예요.
장일 허허, 그것참....
염상 그렇다면 여태까지 송악사람들이 폐하의 흉내를 냈다는게 아닙니까?
종희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금대 참으로 오만방자했겠군요......
씬 3 그 일각
왕평달과 사부들, 유금필, 능산, 박술회들이 있다. 그러나 왕평달 등 왕건가의 사람들은 어쩐지 표정이 밝지 않다.
박술희 허, 허. 왕장자께서는 무슨 일이 있으시옵니까? 이와 같이 좋은 날에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이라니요.
왕평달 아닐세.
변사부 (평달에게) 정말로 송악이 끝나는 것 같사옵니다, 장자어른.
왕평달 그러기에 우리 조카가 말하지 않았는가? 이제 이 송악은 우리 것이 아니라고 말일세. 허허허....옛날에 돌아가신 형님도 그리 말씀을 하셨었지.
박술희는 그제서야 평달의 뜻을 알고 입을 다문다. 능산과 유금필도 착잡하다.
마사부 돌아가신 큰 주군께서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다시 얻는다 하셨습니다. 장자어른께서도 그만 좋게 생각하시오소서
외국상인들의 하례가 계속되는 가운데 천천히 만족한 궁예의 얼굴위로 해설이 깔린다.
해설 팔관회. 나라의 안녕을 비는 법회이자 잔치이다. 왕건 이후의 고려사 덕종 3년의 기록에 의하면 송나라와 여진족, 탐라가 예물을 바치고 이 법회에 참석하는 것이 상례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어찌 이것이 덕종 때만의 일이었겠는가? 고려의 팔관회는 승려였던 궁예가 송악에 도읍한 다음 해에 처음으로 있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루어 보건데 이 행사는 오래 전부터 바닷사람들의 안녕과 기원을 비는 제사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보호해주는 주인에 대한 복종과 믿음의 의식을 전하는 행사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해양제례가 중국에서도 결코 없었던 동아시아 유일의 국제적인 질서였다는 점과 송악 지역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당시의 송악이 각국의 무역상들 위에 크게 군림하였던 바다의 주인이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씬 4 팔관회장 또 다른 곳 (연회장 / 밤)
모든 인사들이 끝났고 여흥이 벌어지고 있다. 악공들의 아악에 맞춰 신명한 외줄타기 묘기가 선을 보이고 있다. 그들 면면 속에서 연화는 여전히 긴장해 있다. 애써 표정을 외면하는 왕건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연화를 종간이 본다. 궁예가 외줄타기를 보며 껄껄 웃다가 종간을 보다 그를 따라 연화를 본다. 연화는 여전히 긴장해 있다.
궁예 아니, 이보시오, 황후? 어디가 편찮으시오?
연화 ........아, 아니옵니다.
궁예 몹시 피곤해 보이시는 구려. 보시오, 줄타기가 아주 기가 막히지 않소?
연화 예, 폐하.
궁예 대단하구먼...저렇게 줄을 잘 탈수가 있는가? 허허허.... 저런 자들을 전쟁터로 보내야 하는 것인데...얼마나 귀신같이 잘 싸우겠는가?
종간 허허허, 전쟁과 놀이는 다르옵니다, 폐하.
궁예 그럴까? 허허허...... 자 이번에는 자랑스런 우리 수군의 배들을 볼까? 가 보십시다.
왕건 밤이 깊었사옵니다
궁예 그게 어떤가..? 밤바다도 보기가 좋지....
그들 모두 함께 일어나면서 디졸브....
씬 5 그곳 포구 바닷가 (배터)
궁예들이 천천히 배를 돌아보고 걸어 나오고 있다. 은부와 내군들이 계속 호위를 하며 따라 붙는다.
궁예 옛날에도 이렇게 큰 배를 본 적이 있었지. 아주 오래전이었어.
종간 그렇사옵니다.
궁예 그때, 참으로 충격이 컸었어. 세상에 이렇게 큰 배도 있는가 하고 말이야.
종간 허허허, 그랬사옵니다.
궁예 나는 그때 이 엄청난 배를 지휘하는 소년을 보았다네. 허허허....그게 바로 자네였어, 왕장군.
왕건 황공하옵니다, 폐하.
궁예 충격은 더욱 컸었지. 자네가 아주 위대해 보이더란 말이야. 근처에 큰 나라들은 다 가보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까 짐이 하례를 받았던 그 많은 뱃사람들 말이야.
왕건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이제 자네는 이 나라의 수군장군이 될 것이야. 삼한의 모든 바다를 우리 것으로 만드세나.
왕건 하명만 하시오소서. 분골쇄신하겠사옵니다, 폐하.
궁예 아, 믿음직스럽네, 참으로 믿음직스러워...
이들 배에서 내려와 포구를 걷는다.
씬 6 그곳 포구길
궁예 송악의 수군은 얼마나 되오?
종간 예, 폐하. 오 백이 조금 웃돈다 하옵니다.
궁예 오 백이라.....?
종간 곧 크게 증원을 해야할 것이옵니다.
궁예 허나, 수가 문제이겠는가? 문제는 병사 하나하나가 얼마나 싸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 송악은 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왕건 그리 보아주시니 황공하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곳의 병사들은 용맹이 뛰어나옵니다. 오래도록 바다에서 단련된지라.....
궁예 짐이 잘 아오. 하지만 내원께서 하신 말도 일리가 있소이다. 앞으로 큰 일을 도모하자면 오 백의 군사는 아무래도 너무 적어. 수천의 병력은 되어야지. 내원과 병부령은 물론이고 왕장군도 그 점을 검토하도록 하오
모두들 예....
궁예 (감격처럼 바다보며) 바다야...... 삼한은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이 바다를 아는 자는 삼한의 제왕이 될 수 있는 것이야. 그것 모두가 왕장군에게 달려있네. 자네에게 달렸어. .
왕건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는 연신 왕건의 어깨를 두드리며 바다를 보고 있다. 그 두 사람을 보는 종간들의 면면에서......
씬 7 그 일각 (연회장 주변)
수많은 장자들이 곳곳에서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있다. 그 한편에서 박지윤과 유장자, 장자1, 장자2 등이 모여 한담을 나누고 있다. 허월이 함께해 곡차를 마시고 있다.
유장자 참으로 대단한 행사이옵니다. 이 팔관회장이 참으로 어마어마하지 않사옵니까, 대사님?
허월 ...규모로는 이렇게 큰 행사를 처음 보오.
유장자 옛날에도 이 송악은 근처 모든 바닷사람들의 상징이었습니다. 허허허...포구가 제일 컸으니까요. 규모도 그렇고...
허월 도선대사의 말씀이 참으로 일리가 있어. .
유장자 예.....?
허월 송악에 왕기가 있다고 하더니만......
유장자 아, 그래서 폐하께서 천도를 하시지 않았사옵니까?
허월 그런 얘기가 아니라 송악 말이요, 송악. 이 송악이 왕건이의 것이지 어디 폐하의 것은 아니지 않소?
유장자 아니, 스님..(주변 돌아보며) 큰 일날 말씀을...
허월 그대에게도 여식이 있다 들었는데.....
유장자 예, 그렇습지요, 대사님.
허월 송악의 젊은 성주가 배필을 황제에게 빼앗겼다지요?
유장자 (더욱 불안하여) 글쎄, 대사님...
허월 젊은 왕성주가 어차피 다시 혼자가 되었는데.... 기왕이면 그대가 한번 기회를 만들어 보시구려.
유장자 예....?
허월 남들이 채 가기 전에 서두르는게 좋을게야. 저만한 사윗감은 없지 않소.? 허허허......황후만 불쌍하게 되었어....쯧쯧쯧...하기사 궁안에 있는 양길이의 딸도 아니되었고......폐하께서는 여자하고는 담을 쌓으신 분이니 말이오..허허허.....
허월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나쳐간다. 유장자는 묘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저만큼 궁예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유장자는 계속 생각에 잠기고.....디졸브
씬 8 황궁 외경
거대한 황궁의 밤은 순라를 도는 병사들만 보일 뿐 적요하기 그지없다.
씬 9 동 궐안 어느 곳 (후원)
미향과 월이가 텅빈 대궐 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어둠속은 침묵 그 자체일뿐 오가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미향 오늘따라 이 궁궐 안이 죽음처럼 조용하구나.
월이 모두들 팔관회에 갔기 때문에 궐안이 텅 비었다 하옵니다.
미향 팔관회.....
월이 예, 폐하께서도 그리로 납시셨다 하옵니다.
미향 ........
월이 문무신료분들도 다 참석을 하였다 들었사옵니다 그러니 궐안이 조용할 수 밖에요. 대단한가 보옵니다, 그 팔관회 말이옵니다.
미향 ........(연민으로 본다) 너도 답답한 모양이로구나?
월이 아, 아니옵니다. 마님.
미향 왜 그렇지 않겠느냐....? 대궐 후원이라고는 하지만 여기가 어디 감옥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나야, 운이 박복하여 이리 되었지만 월이 너야 무슨 죄가 있을꼬... 참으로 아니 되었다.
월이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마님. 쇤네는 마님만 뵈오면 가슴이 아프옵니다. 이렇게 고우신 분이 어쩌다가 이런 곤경을.....
미향 (처연한 미소) 곤경이랄게 무엇이 있겠느냐..? 다 복이 박해 그런 것이다. 욕심많은 아버님을 만났고...... 그 아버님을 이용해 득을 보려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러다보니 이제 나는 쓸모가 없게 되었고....뭐,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월이 마님....
미향 그래, 폐하께서 다른 것은 다 옳지 않은데 좋은 것 하나는 가르쳐 주셨다.
월이 예....? 그게... 무엇이옵니까?
미향 불경을 읽는 재미란다. 그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어. 그것을 요즘 조금씩 보고 있단다.
월이 .......
미향 나는 그렇게 길게 살지 못할 것이야.
월이 (놀라서) 아니 마님..
미향 북원에 계시는 아버님도 마찬가지 일게다. 그리 오래 못가실 게야.
그런 미향의 얼굴에서....
씬 10 북원성 외경 (낮)
씬 11 동 성안 / 양길의 거소
양길과 애꾸가 된 명길, 사위2가 심각하게 둘러앉았다.
양길 다친 곳은 좀 괜찮은 어떠한가?
명길 ......(애꾸가 된 눈을 만진다)
양길 완전히 한쪽눈이 망가진 모양이로구나.
명길 예, 형님....
양길 (혀를 차며) 어떻게 된게 궁예 그놈처럼 왼쪽눈이 당했단 말이냐, 에잇 쯧쯧쯧......
명길 그 놈을 절대로 그냥 두지 않을 것이옵니다.
양길 당연한 말이다. 이 양길이가 이렇게 쓰러지는 위인은 아니다. 내가 복수를 해줄 것이야. 기필코 그 놈들을 모조리 요절내고 말테다. (사위2를 향해) 내 휘하에 남아있는 각 군현의 성주들에게 파발을 띄우도록 하라. 남은 군사들을 모조리 끌어 모아 다시 한번 놈들을 칠 것이야.
사위2 허나 폐하. 궁예의 군대는 너무도 강하옵니다. 지금으로서는 힘이 벅차옵니다. .
명길 (탁자를 내려치며) 벅차...? 그걸 지금 누가 모른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항복이라도 하자는 말이냐?
사위2 그런 말씀은 아니옵니다마는......(눈치를 보다가) 폐하. 차라리 견훤에게 한 번 더 사자를 보내시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명길 그것은 아니될 말이야. 견훤이는 이미 틀렸어. 멀리서 우리를 보며 조롱하고 있어.
양길 명길 아우의 말이 옳다. 견훤이놈은 교활해. 우리를 돕지 않을 것이야.
명길 그러하옵니다. 우리끼리 싸우는 것이옵니다. 서두를 것이 아니라 다시 군사를 정비하고 기회를 기다리시오소서.
양길 암... 그때는 아주 끝장을 낼 것이야. 지난번에는 우리가 당했지만 이번에는 달라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 되지 않을 것이야, 견훤이 놈 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 우리끼리 하는 거야. .
씬 12 무진주 관내 길
온 들판이 파랗다. 한참 농사가 진행중인 것이다. 그 푸른 길 어느 곳 쯤에 견훤과 그 일행들이 다가와 멈추어 선다. 능환이 넓은 들을 가리키며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능환 폐하. 올해도 대풍이옵니다. 우리가 지나오는 고을마다 오곡이 모두 풍성하게 익고 있사옵니다.
견훤 다행일세.
박씨 풍년이 든다는 것은 백성들이나 나라를 위해 모두가 좋은 것이옵니다. 폐하의 근심이 조금이라도 덜어 지게 되었사옵니다.
견훤 허허, 그러게 말이요.
능환 이번 길은 두 번째의 순행이시옵니다. 나라의 주인께서 자주 백성들의 살림을 살피시고 인심을 위로하시는 것은 참으로 좋은 정사이시옵니다. 아마도 백성들이 크게 고무될 것이옵니다.
견훤 당연한 일일세. 군주가 되어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모른다면야 그게 어디 군주라 할 수 있겠는가?
그때,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한때의 마필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들 보고 있으면 점차 나타나는 사람들은 최승우들이다. 능애와 군사들이 함께 오고 있다.
능환 사벌주에 갔던 최학사이옵니다.
견훤 .......
잠시 후 그들은 견훤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예를 올린다.
최승우 폐하, 사벌주를 다녀오는 길이옵니다. 순행 중이시라 이리로 왔사옵니다.
견훤 고생들 했네. 군막으로 가십시다.
이들 군막으로 가면.....
씬 13 동 군막 안
견훤 그래, 아버님께서는 뭐라 하시던가?
최, 능애 .........
견훤 표정들을 보니 알만 하구만.. 그래 내 뭐라 그랬는가? 가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 하지 않았나?
능환 .......(한숨)
박씨 (한숨)... 이쯤 하셨으면 못이기는 척 오실만도 하신데..
능애 아무래도 아버님을 모셔오는 일은 포기하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형님 폐하께오서 직접 가시면 혹 마음을 돌리실지 모르겠사옵니다만..
견훤 내가 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역정만 더 내시겠지. 아버님 일은 당분간 잊도록 하세.
박씨 .......
최승우 하오나, 폐하. 이제 머지않아 궁예왕과 폐하의 군대는 불가불 마주치게 되어 있사옵니다. 그렇다고 볼 때, 사벌주의 일은 어떻게 하든 해결을 보아야 하옵니다.
견훤 그렇기는 하지만, 어찌 하겠는가? 자식으로써 아버님을 밀어 낼 수 도 없는 일이고....
최승우 그야 그렇사옵니다마는....사벌주 관내를 완전히 장악하셔야 북진을 계속하실 수가 있사옵니다. 그 방안을 강구해야 하옵니다.
견훤 머리 아프이.... 그 이야기는 그만 하세나. 어쨋든 고생들 많았네.
능애 완산주를 천도하는 일은 어찌되었사옵니까?
견훤 이제 다 되었네. 그래서 이렇게 순행길에 다시 오른 게야. 백성들에게 나라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시키면서 우리의 도읍인 완산주로 간다 하는 것을 알리는 것이지. 이제 다 되었어.
최승우 참으로 다행이옵니다. 완산주라....... 좋은 곳이옵니다. 두고두고 만년 기업의 터가 될 것이옵니다. 폐하.
능환 옳은 말이오, 최학사. 우리가 백제의 재건을 앞세운다면 완산주만큼 좋은 곳은 없을 것이오. 지금 그곳에 있는 추허조가 신이 났답니다. 궁궐을 아주 그럴듯하게 세웠다는 거예요.
견훤 허허허, 추허조는 머리는 나쁘지만 모든지 일을 맡으면 아주 끝장을 보는 성미지. 거 성질만 잘 다스리면 아주 훌륭한 장수깜인데...
능환 허허허... 다 폐하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옵니까? 그나저나 이제는 한시름 놓았사옵니다. 그 큰 공역이 다 끝났다 하니....
최승우 완산주로 천도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을 것이옵니다마는....
견훤 아, 그것은 여러 호족들이 나누어 부담하기로 하였네. 그 중에서도 목포의 장자 오다린이 대부분을 부담하기로 하였지. 그 사람은 아주 부자니까 말이야. 다 걱정할 것 없네. 다 되었어. 허허허... 지금 그 일 때문에 수달이 거기에 남아 있거든...
씬 14 오다린의 집 외경
규모가 대단히 큰 부호집 외경이다. 카메라 판하여 그집 안으로 들어가면..
씬 15 동 집안 오다린의 거소 밖 (정원)
오다린의 딸 오씨가 하녀들에게 다과상을 들이며 가고 있다.
오다린 (E) 참으로 너무 하시는 것 같사옵니다
씬 16 동 집 거소 안
오다린과 종례, 수달이 함께 해 있다. 오다린은 표정이 몹 시 굳어져 있고 종례는 머리를 젖고 있다.
오다린 물론, 이 사람이 목포 제일의 부호이기는 합니다마는.. 이것은 좀... 심한 것 같사옵니다. 아니 날 보고 완산으로 천도를 하는 비용을 거의 다 내라는 것과 같지 않사옵니까?
종례 정말 좀 부담이 심한 것 같기는 합니다마는....
수달 허어, 이렇게들 원.... 다 폐하를 위해서 하는 일이올시다. 우리 서남해의 장자들이 그래도 뭔가 보란 듯이 폐하를 위해 일한번 해보자는 것이예요.
오다린 그래도 옛날에는 전쟁이 없어서 그런대로 장사가 되었소이다. 허나, 지금은 달라요. 곳곳에 길이 막혀서 예전처럼 물건을 팔 수가 없으니... 기껏해야 바다 밖으로 조금씩 내 보내는 것인데.... 이만한 환도 비용을 대라고 한다면....(도리질) 이거 너무 심하옵니다.
그때, 오씨가 하녀에게 다과상을 들리며 들어오고 있다.
오다린 어, 거기 놓거라. (두 사람에게) 내 여식이올습니다.
수달 허어, 내 일찍이 오장자께서 부인을 잃으신 후 따님만 의지하고 사신다 들었는데...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오다린 허허, 예예.. 얘야 어른들게 인사 올려아. 이쪽은 수달 장군님이시고 이쪽은 금성태수이신 종례님이시다.
오씨 인사드리옵니다.
수달과 종례가 인사를 받는다. 수달이 요모조모 오씨를 뜯어본다.
수달 허어, 보아하니 참으로 참한 처자올시다. 뛰어난 미인입니다 그려..
오다린 허허, 그리 봐주시니 고맙사옵니다. 얘야, 그만 나가 보거라.
오씨 예...
오씨가 나가고 오다린은 방금 가져온 찻상에 차를 따라준다.
종례 따님을 보니 이제 혼기가 꽉 찬 듯한데.. 어디 혼처는 정했소이까?
오다린 두루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자, 차들 드십시오.
수달 아무튼 내가 이야기 한 그 정도의 비용은 오장자가 부담을 하시구려. 오장자야말로 목포는 물론이고 이 나주 일대의 최고 갑부가 아니시오이까? 그만은 하셔야지...
오다린 휴우.... 머리가 다 아픕니다. 그래도 대왕폐하께서는 호걸이시고 인정이 많다 들었는데... 이렇게 등골이 휘게 하시다니...
수달 어허...(찻잔 놓으며) 오늘날 오장자께서 이만큼이나 장사를 할 수 있는게 다 누구의 덕이오? 바로 폐하의 덕이 보살핌이 있어서 버티는 것이 아니오? 이렇게 속이 좁아서야 원....
종례 그렇기는 하지만 이 사람이 생각해도 오장자의 부담이 좀 과합니다. 수천 수만이 이동하는 천도올시다. 그 비용의 절반이나 혼자 부담한다는 것은....
수달 다 정해진 일이오. 그것이 또한 폐하께 잘 보이는 것이고 충성하는 일이오. 그대로 하시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서둘러야 합니다. 곧바로 천도길에 오를 것이오.
오다린 허, 이것 참...
수달 송악에 천도를 한 궁예도 그 비용은 모두 송악 사람인 왕건이라는 젊은 장수가 다 대었다고 합니다. 송악에 왕건이 있으면 서남해에는 오장자가 있는 것이오, 그렇게 생각하시구려... 허허허....(디졸브)
씬 17 송악 왕건의 집 외경
씬 18 동 집 정원
장수장이 수하들을 이끌고 집안을 경계하고 있다.
능산 (E) 주군, 폐하께오서 수군을 대폭 늘리라 하셨다면서요...?
씬 19 동 왕건의 거소 (회의장)
왕건이 가신들과 함께 모여 있다.
능산 언제부터 그리 하시는 것이옵니까?
왕건 ...........그건 나도 모른다네. 곧 새로운 영이 계시겠지.
능산 그렇다면 얼마나 더 늘린다 하시는 것이옵니까?
왕건 그걸 지금 병부령 안에서 논의 중에 있다네..
유금필 수군을 대대적으로 육성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주군의 위상이 그 만큼 높아지는 것이 아니옵니까?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사옵니다.
박술희 나쁘다니요? 이 나라에서 바다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소이까? 모두들 우리 주군의 위용을 한층 우러러 볼 것인데요... 수군이라. 하하하....예전에는 생각도 못해본 일이옵니다. 우리야 땅만 알았지 바다를 생각이나 했사옵니까?
변사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옵니다. 수군을 크게 늘린다는 것은 그만큼 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배를 만들게 되면 또한 바다에 익숙한 병사들을 모집해야 하옵니다.
왕평달 그건 그러하이.. 오히려 큰 짐이 될 수도 있어요.
왕식렴 하지만 짐이 될 때 되더라도 이 일은 결과적으로 수군의 총책이신 형님의 힘을 확장하는 일이 될 것이옵니다. 저는 기회가 왔다고 보아지옵니다.
마사부 그렇습니다. 이것은 기회입니다.
왕평달 하지만... 그 많은 배들을 어떻게 만들며 바다에 익숙한 병사들을 또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왕건 일단, 폐하를 알현하게 될 것이옵니다. 어찌되었든 저에게 대책을 물을 것이니 함께 의논해 보아야지요.
유금필 지난 팔관회 때에 폐하께서는 몹시 흥분하신 것 같아 보였사옵니다. 바다에 대한 기대가 아주 대단해 보이셨습니다.
왕평달 허허허.. 누구나 다 그렇게 되지 특히나 폐하께서는 이미 철원으로 오실 때부터 이 송악을 아주 눈여겨보고 계셨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야. 폐하께서는 오래 전에 이 송악과 바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계셨어. 그것을 지난번에 다시 확인하신 게야. 허어, 아무튼 또 바빠지게 생겼네, 그렇게 되겠어.
씬 20 황궁 외경
씬 21 동 성안 대전
궁예가 송악주변의 지도를 보고 있다. 바다와 예성강 그리고 임진강이 표기된 지역도이다. 아주 관심있게 차근차근 뜯어보는데 소리가 들려온다.
내관 (E) 폐하, 내원어른께서 드셨사옵니다.
궁예 (고개를 들며) 드시라하게.
종간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예를 올린다.
종간 폐하, 무얼 그렇게 열심히 보고 계시옵니까?
궁예 허허허, 이걸 보시오. 우리 황궁이 있는 송악 주변의 지도요. 모두가 바다와 그럴 듯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여기 예성강도 그렇고 또 임진강도 그렇고..... 이 임진강을 타고 쭉 내려가면 한강이 연결되어 있어요. 그리고 더 밑으로 바다를 끼고 내려가면 견훤왕이 있는 서남해예요. 다시 쭉 돌아서 올라가면 신라의 황성이 있는 서라벌이고 이거야 말로 신기하지 않소?
종간 허허허, 그러시옵니까? 그런 일들이야 예전에도 폐하께서 다 알고 계시던 것이 아니옵니까?
궁예 그렇기는 하지만 지난 번 팔관회에서 예성강 포구를 보고 난 이후 짐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소이다.
종간 그 일은 병부령에게 영을 내리시지 않았사옵니까?
궁예 자, 내원께서도 앉으시구려. 이걸 보세요.
궁예, 지도를 바짝 밀어준다.
궁예 일찍부터 우리는 이 송악성과 바다를 연결해서 생각해 왔소이다. 이제 우리는 그런대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이제부터예요.
종간 ........
궁예 이제부터 시작이란 말이오. 신라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요. 우리 위로는 멀리 발해가 있지만 싸울 상대는 아니고.... 그렇다면 문제는 견훤왕이란 말이오. 불가불 우리와는 부딪혀야 해요. 그렇다면 바로, 왕건이 같은 바다의 장수들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야.
종간 그러하옵니다, 폐하. 실은 좀 늦은 감이 있사옵니다. 이제부터라도 서둘러서 군사를 조련하고 전투선을 크게 증강시켜야 하옵니다.
궁예 그래, 그래야지..... 허허허..... 어디서 오시는 길이요?
종간 내원에서 오옵니다.
궁예 내원이라....... 이제 사형께서는 아주 그곳에 눌러 사실 작정이신 모양이오?
종간 허허허, 그렇사옵니다. 내원이란 곳이 무엇이옵니까? 궁궐 깊숙이 있는 방이란 뜻이 아니옵니까? 그런 깊은 방에서 할 일이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신도 요즘에는 독서 삼매에 빠져 있사옵니다.
궁예 독서라.... 그거 좋은 것이지...
종간 중원대륙의 역사는 오래 전부터 우리 삼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사옵니다. 신은 요즘 그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사옵니다.
궁예 짐도 예전에 한번 훑어 본 적이 있소이다. 한번 빠져들면 끝도 없지. 아주 재미가 있어.
종간 그러하옵니다. 가장 강력한 중원의 제국이었던 진나라 얘기를 보면 바로 우리들의 현실과 아주 비교가 잘 되옵니다. 진나라를 세운 진시황제 이야기나 또 그 진시황을 태어나게 한 천하의 장삿꾼 여불위에 이야기나 밤을 세워 읽어도 끝이 없사옵니다. 허허허.....
궁예 그렇지, 그래요... 한신과 장량의 이야기는 또 어떻고..거기다가 항우와 유방 이야기가 들어오면 이야기는 점점 점입가경이 되지.
종간 그러하옵니다. 그래서 말씀이옵니다마는..
궁예 말해보시오.
종간 나라를 부강케 하고 땅을 넓히는 데는 많은 인재를 모아야 하고 그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해야 하옵니다. 앞으로는 싸움터의 장수들도 중요하지만 학문이 깊은 유생과 학인들을 모아 신이 있는 내원에서 국가 정책을 연구하게 할 것이옵니다.
궁예 그거 좋은 생각이오. 당연한 이야기지...
종간 또한 왕건장군으로 하여금 수군을 크게 중흥시키는 외에 폐하를 모시는 주변을 더욱 든든히 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내군장군 은부에게 몇몇 장수들을 새로 붙여주어서 황궁의 경비를 엄히 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궁예 그거야 뭐.... 내원의 마음대로 하시오.
종간 염상장군을 은부에게 붙이겠사옵니다.
궁예 그리하세요.
종간 많은 승려들을 불러 내원의 일을 돕도록 하겠사옵니다. 이 시대의 승려들 만큼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도 드무옵니다.
궁예 그것도 그리 하세요.
종간 그리고 또 한가지 더 아뢰올 것이 있습니다마는..... 서남해의 견훤왕이 두 번째로 순행길에 다시 올랐다 하옵니다.
궁예 .......
종간 조만간 완산주로 도읍을 옮긴다 하옵는데, 그 이전에 백성들에게 자신의 위용을 한번 더 알리려는 것이지요. 생각하기에 따라서 임금과 백성 사이에 신뢰를 돈독히 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사료되옵니다.
궁예 ............?
종간 페하께오서도 언젠가는 순행길에 한번 오르시오소서. 그러실 때가 된 것 같사옵니다.
궁예 필요하다면 그리 하십시다. 허나 지금은 쌓인 일이 많소이다. 저 북쪽도 평정해야 하고 당장 수군을 보강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 일들을 마무리짓고 나서 다시 논의해 보십시다.
종간 예, 폐하.
궁예 (다시 지도를 보며) 왕건이가 잘 해 낼게야. 이 수군만 보강이 되면 우리 군대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어. 이건 왕건이의 몫이야. 허허허..
종간 ........(보다가) 황후마마는.... ?
궁예 황후전에 있겠지요
종간 자주 함께 하시오소서. 신이 뵈오니 황후마마께서는 폐하를 너무 어려워하시는 것 같았사옵니다.
궁예 뭐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허허허.... 그보다도 내원께서는 어찌하실 작정이시오? 평생 혼자 사실 것입니까?
종간 예....? 아니, 폐하. 신이야말로 옷만 바꿔 입었지 틀림없는 부처님의 제자올습니다. 어찌 여인을 보겠사옵니까?
궁예 그래서 내가 그토록 반대했던 것이오. 결국은 장가를 갔지만 말이오, 허허허....
계속 지도를 본다. 그런 궁예를 보는 종간의 미소에서...
씬 22 황후전 외경
밖에는 궁녀들이 대기해 있다.
씬 23 동 황후전 안
연화가 무료한 듯 수를 놓고 있다. 옆에서 슬이가 보고 있다.
슬이 황후마마, 무슨 수를 놓으시는 것이옵니까?
연화 봉황이란다... 천년을 산다는 길한 짐승이지.
슬이 무엇에 쓰시려 하옵니까?
연화 (한숨) 글쎄다.... 나도 모르겠구나.
슬이 예....?
연화 누구를 위해서 수를 놓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저.... 그저 놓는 것이지... 이것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이 궁중 생활을 어찌 해 나갈 수 있겠느냐..?
슬이 ......
연화 후원에 사람을 보내라 일렀는데 어찌 되었느냐?
슬이 궁인이 간지 꽤 되었사옵니다. 곧 오시겠지요.
연화 딱한 사람 같으니라고.... 다 똑같은 운명들이야... 다과상이나 봐 놓거라.
슬이 예, 마마.
씬 24 황궁 길
전각 사이를 돌아 미향이 월이와 함께 오고 있다. 궁녀들이 허리를 숙이며 그들을 인도해 가고 있다.
월이 마님, 황후마마께오서 적적하신가 보옵니다.
미향 .......
월이 그러니까 이렇게 마님을 뫼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미향 그러시겠지. 그분인들 어찌 답답하시지 않겠느냐?
월이 폐하와 황후마마께오서는 지금까지도 단 한반도 방을 함께 쓰시지 않았다 하옵니다.
미향 너는 참 많이도 아는구나.
월이 다 왔사옵니다. 황후전이옵니다.
씬 25 황후전 앞 복도
미향들이 들어와 선다. 제조상궁이 아뢴다.
제조상궁 황후마마, 후원에 계시는 북원부인께서 드셨사옵니다.
연화 (E) 뫼시어라.
씬 26 동 황후전 안
미향들이 들어와 예를 올린다. 연화가 반갑게 맞는다.
연화 어서오세요, 부인. (수를 치우며) 하도 적적해서 수를 놓고 있었답니다. 후원에서 무얼하고 지내셨습니까?
미향 불전에 기도를 올리고 있었사옵니다.
연화 저런, 언제까지 그러실 참입니까? 바깥 바람도 좀 쏘이고 이 황후전에도 좀 놀러좀 오시고 그리하세요.
미향 마마의 은혜가 참으로 크시옵니다. 고맙사옵니다.
연화 무슨 말씀을... 우리는 자매처럼 살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향 고맙사옵니다.
슬이가 다과상을 들여온다. 그리고 다시 물러간다.
연화 좀 들어보세요, 부인.
미향 예, 마마.
연화 (한참 보다가) 부인께서는 언제가 제일 좋으셨습니까? 이 대궐에 오기 전에 말입니다.
미향 (쓸쓸한 미소) 글쎄올습니다...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나옵니다.
연화 쯧쯧쯧...
미향 아마도 옛날에는 잠시 그런 날들도 있었을 것이옵니다. 그것이.... 북원에 있었을 때인가... 그랬을 것이옵니다. 시집가기 전 처녀때 말이옵니다.
연화 그랬겠지요. 그때는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을 생각이나 하셨겠습니까? 한때는.... 이 사람도 그랬습니다. 늘 무지개 빛 같은 날만 나를 기다리는 줄 알았지요.....
두 여인 쓸쓸히 웃는다.
연화 차좀 드세요
미향 예, 마마.
연화 나는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폐하같은 분과 부인께서는 어찌하여 합방을 하실 수가 있었습니까?
미향 예....?
연화 이해가 안갑니다. 아기도 있었다고 누군가에게 들었습니다마는....
미향 예...
연화 어디에 있습니까? 왜 이 궐안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미향 (눈물) 저들이 빼앗아 갔사옵니다. (목이 메어) 저들이... 훌륭하게 키워준다 하면서 어디론가 데리고 가버렸사옵니다.
연화 저런 세상에.... 어떻게 그럴수가... 왜 그런 짓을 했단 말입니까?
미향 훗날을 두려워해서이옵니다. 저는 적장인 양길이라는 분의 딸이옵니다. 그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니까요....
연화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얼마나 보고 싶을꼬.
미향 (울며) 그렇사옵니다. 다른 욕심은 하나도 없는데 아이를 보고 싶은 욕심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소녀를 괴롭히옵니다. (울며) 보고 싶사옵니다. 내 아기가 보고 싶사옵니다. 그 미련은 어쩔 수가 없사옵니다, 마마.
미향은 계속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연화가 측은하게 본다.
연화 자식을 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부모가 되어 어찌 아니 그렇겠습니까? 조금만 참아 보세요. 나도 한번 알아 보겠습니다.
미향 그리 해주시겠사옵니까, 마마?
연화 알아보십시다, 차근차근 한번 알아보십시다.
미향 고맙사옵니다. 고맙사옵니다, 마마.
끄덕이는 연화의 얼굴에서.... 디졸브.
씬 27 예성강 포구
은부가 염상, 금대, 장일 등을 데리고 왕건 및 그 가신들과 함께 포구를 돌아보고 있다.
은부 폐하께서는 병부령인 이 사람에게 수군 증강을 위한 특명을 내리셨소이다.
왕건 이야기 들었사옵니다.
은부 모자라는 배들은 송악 이외에 나가 있는 여러 포구에서 증발해 올 것입니다. 그것을 전선으로 수리하는 거예요.
왕건 예.
은부 또한, 오백의 수군을 이천으로 증강하는 영을 받았소이다. 이 문제만은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오. 아무래도 왕장군께서 그 간의 경험을 살려 해주셔야 겠소이다.
왕건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곧 군사를 모병하고 훈련에 들어가겠사옵니다.
은부 훈련에 필요한 군자금은 걱정하지 마시오. 폐하께서 나라의 모든 힘을 기울여 수군에 충당하라는 영을 내리셨소이다. 나라 안의 많은 장자들이 기꺼이 동참할 것이외다.
왕건 폐하의 황은이 참으로 크시옵니다.
은부 (바다보며) 바다라.... 폐하께서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시는 이유를 소장도 이제야 알았소이다. 이처럼 중요한 것을 다들 모르고 있었다니, 허허허.... 이보시오, 왕장군?
왕건 예. 장군.
은부 참으로 왕장군은 폐하의 은총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겠소이다. 육지의 전투에 나가면 그곳대로 공을 세우고 또 바다에 관해서는 독보적으로 혼자만이 이 세계를 알고 있으니.... 부럽소이다.
왕건 어인 말씀을...
은부 허허허... 그럴수록 겸손하셔야 할겝니다.
왕건 ........
은부 사람이 뛰어나 보이면 나도 모르는 적이 많이 생기는 법이오. 이 은부라는 사람은 그럴 때 가장 답답하단 말입니다.
왕건 명심하겠사옵니다.
가신들 ..........
은부 암요, 명심해야지요. 그래야하고 말고... 이건 처음이자 마지막인 충고올시다. 많은 이들이 왕장군을 또 다른 눈으로 보고 있어요. 조심하시구려.
왕건 예, 장군.
은부 바다라...참 좋은 곳이야, 바다는....
왕건 .........
은부 우리 세작들이 알아 온 정보에 의하면 서남해의 견훤왕이 완산주로 들어갔다고 하더이다.
왕건 아, 그렇사옵니까?
은부 군사들이 조련되는 대로 폐하께서는 아마도 대대적인 전투령을 내리실 겝니다. 어쩌면 왕장군이 다시 선봉이 될 지도 모릅니다. 이제 곧 견훤군과 싸우는 전투 말이오.
왕건 아, 예...
은부 기대가 되지 않소이까? 이제 견훤군과 싸운단 말입니다. 신라야 얼마 안가서 무너질 것이고, 견훤과 만나는 거예요. 허허허허.....견훤이 완산주로 간다... 보통 일은 아니지. 이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란 말이오.
멀리 바다를 보는 그런 은부의 표정에서...
씬 28 완산주 성문
견훤들의 행렬이 길게 성문을 통과하고 있다. 성안으로 접어들면 백성들이 구름처럼 운집하여 함성을 지르며 견훤들을 맞고 있다. 견훤이 왕후 박씨와 두 아들 두 딸들과 함께 신료들에게 에워싸여 성루쪽으로 가고 있다. 수천의 깃발들이 펄럭이고 북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드디어 견훤은 말에서 내리고 추허조, 능환, 최승우, 신강, 김총, 수달, 종례, 오다린, 능애들에 에워싸여 성루에 오른다. 백성들과 장졸들의 수는 그 끝을 헤아릴 수가 없다. 이미 단은 깃발로 뒤덮여 있고 그곳에 견훤이 선다. 계속 함성이 들 끓는다.
소리 만세! 대왕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견훤은 계속해 그 만세소리를 듣고 있다. 아주 만족한 듯 손을 흔든다. 여기저기 다 손을 흔들어 보인다. 함성은 더욱 들끓는다. 어느쯤에서 견훤은 그들의 소리를 제지한다.
견훤 (좌중을 둘러보며) 짐의 백성들은 들으라. 나 견훤은 오늘 대 백제국의 만년대계를 위하여 이 곳 완산주로 입성하였느니라.
소리 와.... 대왕폐하 만세! 만만세!.......
견훤 (다시 소리를 제지한다) 짐이 무진주에서 이곳 완산주로 옮겨온 이유는 옛 백제국의 부흥과 복원을 위해서 이니라.
백제국의 복원이니라. 소리 와...... (함성)
해설 백제국. 견훤이 공식적으로 백제국의 재건을 발표한 이 일은 서기 900년, 단기로는 3233년의 일이었다. 견훤이 백제국의 재 건국을 발표한 것은 그가 무진주를 얻어서 대왕을 칭한 이후 무려 8년만의 일이었다. 이때만해도 궁예는 스스로 고려라는 국호를 안에서만 불렀을 뿐 역시 대외에 공표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국 안에서 견훤이 유일하게 궁예에 앞서 한 나라의 독립적인 국호를 발표한 것이다. 백제국, 견훤의 백제국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31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