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KBS대본

[태조 왕건] 39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1.17|조회수1,428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39회>



 



 

씬 1 견훤의 본영


지난회와 장면이 연결 된다. 견훤이 아들 신검을 노려보고 있다. 칼을 탁자 위에 놓는다.


견훤 아비의 말이 들리지 않느냐? 이 칼로 명예를 지키라 하였다.

신검 아바마마...

견훤 어서...


그제서야 황급히 두 책사가 다가 붙는다.


최승우 폐하. 전장터에서의 실수는 항용 있을 수 있는 일이옵니다. 책망이 과하시옵니다. 검을 거두시오소서.

견훤 아닐세, 내 이놈을 그냥 둘 수는 없네. 대 백제국 황제의 아들이... 짐의 아들이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어서 목숨을 끊어라.

능환 (다가서며)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어찌하여 이러시옵니까?

견훤 (한숨) 함께 간 장수가 쓰러졌는데 혼자서 도망을 쳐 오다니...

신검 아바마마,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적군의 공격이 워낙 심하였고 아군이 패색이 짙어... 추장군이 소자에게 보고 먼저 전선을 빠지라 하여...

견훤 (와락 역정) 그래서... 그래서 네 놈 혼자 도망쳤단 말이냐...?

최승우 폐하, 아직 추장군이 전사를 한 것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고 있사옵니다. 고정하시오소서.

능환 고정하시오소서, 폐하. 태자마마 또한 최선을 다하여 적진에서 싸웠사옵니다. 추허조가 그곳의 총사였고, 그 총사의 명령을 따라 후퇴하였던 것 뿐이옵니다. 노여움을 거두시오소서.

신검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신은 추장군의 영을 받았사옵니다.


견훤, 아들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눈을 감은 채 한동안 어쩔줄을 모른다.


신검 아바마마.. 용서하여 주시오소서. 신이 다시 나가... 추장군을 찾아보겠사옵니다.

견훤 (한동안 말이없이 돌아서 있다가) 물러가거라, 이 못난 놈아. 네 이름에 검자를 쓴 것이 부끄럽도다. 신검이라...? 신검... 허허, 기가 막힐 일이로다. 썩 나가지 않고 무얼 하느냐, 이놈아...

신검 ....예, 아바마마...


신검이 눈치를 보며 군막을 물러간다. 견훤은 어쩔 줄을 모른다. 군막 안을 서성거리며 불안한 표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견훤 추허조의 본진이 전멸을 당했어. 좌우측의 지원군을 끌고 간 김총이와 수달이도 무너졌어. 이렇게 참담할 수가 있는가...? 단 한번의 전면전에 이 견훤이가 자랑하는 철기군이 궤멸을 당했어. 이럴 수가 있는가...? 저 형편없이 무너져 내린 신라군에게 우리의 정예가 당하다니... 우리의 정예가...


두 책사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다. 특히나 능환의 표정은 진퇴양난이다. 그 때, 군막 쪽의 문이 열리며 피투성이의 추허조가 들어선다.


모두들 ........?

추허조 .... 폐.. 하....

견훤 허조로구나. 네가 살았구나... 허조 네가 살았어, 살아 돌아왔어.

두 책사 ......

추허조 (무릎 꿇으며) 폐하. 죽여주시오소서. 용맹한 폐하의 군대를 모두 잃었사옵니다. 군법으로 다스려 주시오소서.

견훤 아니다. 모든 것이 짐의 판단이 잘못된 탓이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고맙구나. 살아주어서 고맙구나.

추허조 (흐느끼며) 폐하.... 참으로 머리 둘 곳이 없사옵니다, 폐하...

견훤 어떻게 살아왔느냐..? 다들 네가 죽었다고 하였는데... 허조야, 어찌 살아왔느냐...?

추허조 어쩌다보니 목숨을 건졌사옵니다. 허나, 살아있는 것 조차 부끄럽사옵니다.

견훤 아니다, 잘 와 주었다. 다시 해보자꾸나. 저 신라의 조무라기들을 우리 철기군으로 하여 쑥대밭을 만들어 버릴 것이로다. 남은 군사를 재정비하라.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느니라. 다시 대책을 세워 보도록 하라. 전 장수들을 다 모이라고 해.


씬 2 견훤군의 본영 외경


씬 3 동 군막 안


많은 장수들이 비장한 모습으로 모여 있다. 추허조, 수달, 공직, 박영규, 김총 등 제장들이 모여 있다. 모두들 사기가 꺾인 표정들이다.


수달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소이다. 불패를 자랑하던 우리 군대가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다니요?

공직 ....그러게 말이오이다. 신라군이 그토록 강할지 짐작이나 했소이까?

박영규 적이긴 하나 신라의 노장군들은 참으로 대단했소이다. 우리의 계책을 훤히 읽고 있었어요.

추허조 .....(끙 하며 한숨을 토해낸다).....

김총 폐하의 진노가 대단하시다 하오이다.

공직 그러실 테지요.

수달 우리 백제국 최초의 패배예요. 이런 망신이 있나.... 지난밤의 전투에 수천이 죽었어요. 수천....

박영규 이렇게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패인을 따져보고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모두들 .........

박영규 애초부터 잘못된 계획이었소이다. 신라의 저력을 우리가 너무 과소평과했던 게요.

공직 전력을 다해도 어려운 판에 전투 경험이 전무한 태자님들을 동행했던 것도 무리였던 것 같소이다.

수달 이렇게 되고보니 파진찬의 안목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그 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패배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소이다.

추허조 (냉소하며) 왜 아니겠소이까? 속으로 우리가 이렇게 되길 얼마나 바랬겠소이까?

박영규 허..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오, 추장군.

추허조 내가 틀린 말을 했소이까? 싸워보기도 전에 이기기 어렵다고 초를 친 게 누구였소?

박영규 이보시오, 추장군.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는 게요?

추허조 뭐요?

수달 자자.. 그만들 하시구려... 지금 잘잘못을 가릴 때가 아니지 않소이까?

공직 그렇소이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추허조 ..........

수달 그나저나 이찬어른 처지가 난처하게 됐사옵니다. 태자마마들도 그렇구요.

추허조 허 이거야...


씬 4 능환의 군막


신검과 양검이 풀이 죽어있다. 능환 역시 허공만 쳐다보며 씁쓸한 표정이다.


신검 아버님께서는 쉽게 노기를 푸시지 않을 것입니다.

능환 ............

신검 이 일을 어쩌면 좋사옵니까, 사부님.

능환 (한숨처럼) 앞으로 이번 전투를 만회할 기회는 언제든 올 것옵니다. 쓴 약을 드셨다 생각하시오소서.

신검 그렇겠지요? 그렇게 되겠지요?

양검 .........

능환 절망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오소서. 이제 싸움은 시작일 뿐이옵니다. 하옵고 모든 책임이 태자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신의 무능함 때문이었사옵니다.

신검, 양검 ............

능환 소신이 너무 경솔하였사옵니다. 파진찬의 의견을 존중했어야 하는 것이온데....... (허탈한) 허허허. 역시 파진찬은 소신보다 한 수 위인 듯 싶사옵니다.


능환은 웃고 있지만 대단히 허전한 얼굴이다.


씬 5 견훤의 군막


견훤이 최승우와 독대하고 있다. 최승우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울 뿐이다.


최승우 본영 군막에 장수들이 모두 집결해 있다 하옵니다. 어서 납시오소서.

견훤 그저 모이기만 해서야 무얼 하겠는가..?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앞으로 어찌하였으면 좋겠는가? 전세를 반전시킬 좋은 방도가 없겠는가?

최승우 ...........

견훤 말을 해보게..

최승우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퇴각하여 다음 기회를 엿보시오소서.

견훤 뭐라? (탁자를 내려치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짐은 전세를 반전시킬 방책을 물었어. 헌데 퇴각이라니....?

최승우 신라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옵니다. 반면 우리 군사들은 지칠대로 지쳤사옵니다.

견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야.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끝장을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최승우 이미 대세는 기울었사옵니다. 군사를 돌리시오소서. 때로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옵니다.

견훤 기회는 매번 오는 것이 아닐세. 지금이 적기중에 적기야. 궁예는 지금 송악을 떠나 순행길에 올라 있어. 적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우리는 기다렸던 것을 취해야 한단 말일세.

최승우 장수들과 의논해 보시오소서. 기다리고들 있사옵니다.

견훤 자네 대답이 더 중요해. 저들은 지금 모두 지치고 풀이 죽어 있어.

최승우 그럴수록 여유를 가지고 멀리 보시오소서. 곧 장마가 들이닥칠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전세는 더욱 어려워 질 것이옵니다.

견훤 어느 싸움이든 어려움이란 있는 것이야. 계책을 마련해보게. 계책을..

최승우 하오나 폐하......

견훤 이런 수치를 당하다니.....나 견훤이가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 신라의 늙은 장수들이 얼마나 나를 비웃을 것이며 ...궁예가 이를 안다면 얼마나 박장대소를 하고 웃을 것인가......허이구...이런.....


씬 6 죽주 관아 길


십여필의 말을 탄 전령들이 멀리서 다가와 관내로 들어서고 있다.


씬 7 그곳 내아


궁예를 비롯해서 왕건, 유장자, 박지윤 등이 모여 앉아있다. 모두가 은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궁예 뭐라, 백제의 군사들이 대패를 하였다?

은부 그렇사옵니다. 전령들의 보고에 따르면 일천이나 되는 백제군은 힘 한 번 못 쓰고 모조리 전멸당했다 하옵니다.

박지윤 전, 전멸이라 하였소이까?

은부 그렇소이다.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백제가 자랑하는 철기군 본대가 중앙돌파를 하다가 전멸을 했다는 세작의 보고가 올라왔소이다.

왕건 ........ 그렇다면 상당한 타격이 되겠습니다.

궁예 대패라... 견훤이 대패를 했다? 허허, 그것참.... 신라가 아직까지 그런 힘이 남아있었다는 말인가....?

왕건 대야성 전투는 견훤의 군사들이 약했다기 보다는 신라의 투혼이 대단했다고 봐야 할 것이옵니다.

은부 그렇사옵니다. 대야성의 성주 김효종과 노장군들의 활약이 실로 눈이 부셨다 하옵니다.

궁예 적국의 장수들이기는 하나 참으로 그들은 우리들의 귀감이 될 만한 사람들이오.

은부 하오나 그들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사옵니다. 그 정도에서 물러설 견훤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뭔가 새로운 활로를 찾을 것이옵니다.

궁예 신라군사들은 이미 죽기를 각오하였어. 이 세상에 죽기를 각오한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지. 죽음보다 더 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신라의 군사들은 지금 그것을 무기로 하고 있는 것이야.

은부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신라의 승리는 우리가 볼 때 다행한 일인 듯 싶사옵니다. 견훤이 대야성을 쉽사리 접수했다면 결과적으로는 먼 훗날 우리가 그만큼 힘이 들것이 아니옵니까..?

궁예 허허허. 그건 그때의 일이고... 우리는 지금 우리의 길을 가면 그만 일세. 그런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 우리의 진정한 상대는 견훤이 아니라 저 중원대륙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네.

은부 명심하겠사옵니다.

궁예 이제는 죽주를 떠나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모두들에게 차비를 하라 알리게.

은부 예. 분부대로 시행하겠사옵니다.


씬 8 그곳 관내


연화와 슬이가 산책을 하고 있다. 제조상궁을 비롯한 시종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연화 날씨가 참 화창도 하구나.

슬이 그렇사옵니다, 마마. 이렇게 궁궐을 떠나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지는 듯 싶사옵니다.

연화 그래... 나도 그렇구나. 언제 또 이렇게 바깥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겠느냐? 이번 기회에 실컷 보아두거라.

슬이 예, 마마.. (사이) 하옵고, 마마... 소녀는 폐하께오서 그렇게 대단한 분인 줄 이제서야 알았사옵니다.

연화 .........?

슬이 폐하께서 가시는 곳마다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지 않았사옵니까?

연화 ......... (한숨) 나도 보았느니라. 그럴 수밖에... 백성들은 폐하를 미륵부처님으로 알고 있지 않느냐...? 하기사 차가운 분이시지만 백성들에게 하시는 것은 참으로 부처님 같으시지.

슬이 마마, 이제 죽주를 떠나 북원으로 간다 하옵니다.

연화 북원이라... (한숨)

슬이 왜 그러시옵니까, 마마?

연화 (생각하다가) 북원은 북원부인의 고향이 아니더냐. 부인의 마음에 또 한 번 상처가 도지겠구나... 북원이라....?


씬 9 죽주 관아 근처


미향과 월이가 그곳에서 먼 들녘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미향은 그 벌판을 쳐다만 보고 있다. 바람이 계속 미향의 머리를 쓸고 지나가고, 그녀의 눈에서 곧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다.


미향 이곳 죽주에서 모두들 돌아가셨다는구나.....

월이 .........

미향 아버님도, 숙부님도, 형부들도.... 다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게야.

월이 마님...

미향 세월이라는 것이 참으로 모질기도 하구나. 내 아비와 일가 친척들은 모두 도륙이 되어 저승고혼이 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이러고 살아있구나. 여기가.... 여기가... 내 아버님이 운명하신 곳이란다. 그런데도 이 몸은 이렇게 비단옷 입고... (목이 메이며) 살아 있어.

월이 다 잊으시오소서, 마님.

미향 책을 읽어보니 그런 말이 씌여 있더구나. 모든 것은 지나면... 역사가 된다. 역사가 오래 지나면... 다 낡아서 전설이 된다.... (사이) 그렇겠지...? 우리들의 이야기도 오백 년, 천 년, 만 년이 지나면 전설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 흩어지겠지.

월이 마님....


미향의 귀로 애절한 양길의 환청이 들려온다.


양길 (E) 미향아...... 미향아.......


미향이 깜짝 놀라며 주변을 돌아보다가 환청임을 깨닫는다.


미향 (울먹이며) 아버님.... 무엇이 그리 욕심이 났었사옵니까...? 무엇이 그리 급했사옵니까...? 그까짓 옥좌나 왕관이 무엇이길래... 바람처럼 모두 죽어서 흩어졌사옵니까? 왜 이렇게 소녀의 가슴에 깊은 멍을 드리워 놓고 그렇게들 가셨사옵니까...? (눈물) 소녀도 이제.... 그만 가고 싶사옵니다.... 가고 싶사옵니다.


그때 저쪽에서 멀리서 몇 필의 말이 달려오고 있다. 양길의 환청은 완전히 사라진다. 은부들이 다가와 말에서 내린다. 미향은 전에 없던 독한 표정으로 은부를 노려본다. 은부는 자신도 모르게 흠?한다.


은부 여기 계시었사옵니까? 한참동안 찾았사옵니다.

미향 무슨 일이시오?

은부 폐하께오서 죽주를 떠나신다 하옵니다. 마님께서도 차비를 하시오소서.

미향 월이야, 가자꾸나.

월이 예.


두 여인이 관아 쪽으로 길을 잡는다. 은부는 그런 미향을 보고 있다. 아무래도 뭔가 심상치 않다.


씬 10 길


궁예들의 순행이 계속되고 있다. 궁예와 왕건이 친형제처럼 나란히 가고 있다. 그 뒤 행렬의 마차 안에서는 연화가 발을 걷고 밖을 내다본다. 그러다가 무서우리 만큼 표정이 없는 미향의 모습이 어쩐지 이상하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며 박지윤과 유장자가 뒤를 따르고 있다.


박지윤 참 기묘한 일이에요.

유장자 ..........?

박지윤 폐하와 왕장군 말씀이오. 폐하와 가장 가깝다 하는 내원과 병부령은 왕장군을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있어요. 허지만 폐하께오서는 저렇게 왕장군만 가까이 하시니 ......

유장자 허허허. 글쎄올습니다. 왕장군은 워낙에 출중한 장수가 아닙니까? 폐하께서 아끼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박지윤 그래서 하는 말이외다. 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왕장군을 그처럼 경계하는 내원의 심중을 알 수가 없어요. 내원이라는 사람도 학식이 풍부하고 사리 판단이 아주 냉철하지 않소이까..? 그럼에도 왕장군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않은가 봐요. 왜 그럴까요....?

유장자 글쎄올습니다.... 뭔가가 있겠지요, 허허허....


그들 그렇게 간다.


씬 11 황궁 외경


씬 12 동 내원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내원에서 승려들과 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종간이 소리 없이 그곳으로 들어온다. 모두들 일어나 종간에게 인사를 올린다. 종간이 자신의 자리로 가 앉는다. 승려 하나가 뭔가 글을 적은 것을 종간에게 올린다. 종간이 본다.


종간 (한참 읽고 나서) 좋소이다. 중원에 대한 분석이 아주 날카롭게 정리가 되어 있구려. 고생 많이 하셨소이다.

승려 어인 말씀을...

종간 중원 대륙도 우리 삼한과 같이 사분오열되어 새로운 국가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소이다. 아직은 우리와 먼 거리에 있으니 좀 더 지켜보기로 하십시다. 안타까운 일이야.... (기록 보며) 그 거대하고 찬란했던 당나라가 이렇게 힘없이 무너지고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리다니... 역사가 변하는 과정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는 것 같소이다.

승려 ......

종간 우리가 지금 모여 이렇게 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과거의 제국들이 어떻게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는가 하는 것을 알고 깨닫기 위해서요. 특히나 근래에 들어서 중원의 역사는 우리 삼한과 아주 흡사하게 흘러가고 있소이다. 그 점을 세세히 살펴 원인과 결과를 살펴주기 바라오.

승려 예, 내원어른....


승려가 제자리로 가고 종간은 다시 자신의 글을 살펴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학인 하나가 다시 자신의 글을 가지고 와 올린다.


종간 (보다가) 오, 수고하시었소. 이것은 백제와 신라의 사정들을 정리한 것이구려.

학인 예, 내원어른...

종간 삼한이 모두 전쟁 속에 휘말려 있소이다. 조금의 방심이 국가를 위협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의 비밀과 사정을 알아 낸다는 것은 천군만마를 얻는 것보다 더 큰 위력이 있소이다.

학인 .........

종간 (계속 보다가) 적국에 나가 있는 세작들의 보고도 보고지만 이것을 판별해 내는 능력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내원의 학인들께서는 그 점을 유의해야할 겝니다. 적국의 정치는 어찌되어 가고 있는가? 어떤 인물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움직이는가?.... 그 사상이란 무엇인가? .... 체제는 어찌되어 있는가? 이러한 것들이 깊이 지적되고 살펴져야 할 것입니다.

학인 예, 내원어른...

종간 당나라의 것이든 신라의 것이든 또 백제의 것이든 그 나라의 좋은 제도와 법은 모두 골라내시오. 그래서 우리 고려의 법으로 만드는 겝니다.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릴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모든 학문적 이론을 우리 내원이 만들어야 해요.

학인 알겠사옵니다,


그때 밖에서 종간의 내원에 속한 황내관이 들어온다.


황내관 내원 어른, 지금 강장자께서 도착하셨다 하옵니다.

종간 강장자 어른께서....?

황내관 예...

종간 알겠네.


종간이 보던 서류들을 접어두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씬 13 종간의 방 근처


강장자와 백씨가 막 오고 있는 종간을 보고 있다.


종간 어서들 오시오소서.

강장자 아이구,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이..이렇게 몸소 나와주시다니요..

종간 두 분께서는 황후마마의 부모님이시옵니다. 당연히 나와 맞아야지요. (백씨에게) 자, 대부인께서도 저 안으로 드시지요.

백씨 예.


씬 14 종간의 방


이들이 들어와 앉고 내관이 마실 물과 차를 놓고 나간다.


종간 (차를 따다르며) 연통도 주시지 않고 이곳까지 어인 행보이시옵니까?

강장자 폐하께서 멀리 나가 계시니 여러 가지로 궁금하고.....해서 들렸사옵니다.

종간 허허허...그러셨사옵니까?

강장자 (둘러보며) 폐하께오서는 지금 어디쯤 가 계시는지요?

종간 죽주(안성)를 떠나 북원(원주)으로 향하고 계시다 들었사옵니다.

백씨 벌써 그렇게 멀리들 가셨사옵니까?.... 혹 황후마마께서 불편한 것이라도 없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종간 시종들이 잘 보필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염려 놓으시오소서.

백씨 그렇기는 하겠지만.... 먼 길 떠나시는 것이 처음이신지라............

강장자 부인, 쓸데없는 걱정일랑 그만 두시구려. 폐하께서 곁에 계신데 무엇이 염려스럽단 말이오.

백씨 그렇기는 하오나............

종간 강장자님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폐하께서 계시고 수종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사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오소서. 그보다도....(눈치를 보다가) 이 사람이 걱정스러운 것은 황후마마와 폐하 사이에 아직도 후사가 없다는 것이옵니다.

백씨 ............

강장자 ............

종간 폐하께서는 지나치시다 할 정도로 불가의 계율을 지키고 계시옵니다. 그것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백성의 어버이로서는 너무도 경직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다른 일에는 만사가 대범하시고 여유가 많으신 폐하께서 황후마마에 관한 일은 그렇지가 않으시니....

백씨 저희들도 그 일은 안타깝습니다....어떻게 해야 할지....

종간 좋은 계기가 있어서 행여 황손이라도 보신다면 폐하의 생각은 물론이요 이 궁궐과 나라사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일이옵니다. 황후마마께 잘 말씀을 드려주시오소서.

강장자 그야 이를 말씀이옵니까? 이렇게 늘 생각해 주시는 내원어른의 은혜가 참으로 크시옵니다.

종간 허허허....무슨 말씀을......그리고 또 한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강장자 말씀하시지요?

종간 황후마마께서는 후원의 마님과 가까이 지내신다 들었사옵니다. 서로가 지체가 다르고 입장이 다르옵니다.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옵니다. 두 분께서도 아시겠지만 그것은 황후마마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일이옵니다.

백씨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사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차례 이야기를 드렸사옵니다마는.....

종간 허허허...이 사람이 두 분께 너무도 많은 짐을 드리는가 보옵니다. 허허허..

강장자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후마마를 저 자리에 올리시고 또 세세히 보살펴 주시는 내원어르신이옵니다. 저희는 머리를 풀어 신을 삼아 올려도 모자라는 은혜를 입고 있사옵니다.

종간 허허허. 그리 말씀을 주시니..오히려 이 사람이 송구스럽사옵니다. (사이) 요즘 신천의 장사일은 어떠하신지요? 혹시...우리 내원에서 도울 일은 없겠사옵니까?

강장자 중차대한 나라일을 보시는 분께 그런 소소한 것으로 신경을 쓰게 해드려야 되겠습니까? 하하하. 다행이도 다시 송악 포구의 상권이 크게 살아나고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은 없사옵니다. 우리 신천이야 송악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어서요.

백씨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송악은 예전보다 더 융성해지는 듯 싶사옵니다.

종간 다행입니다. 그것은 나라의 살림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지요.

강장자 이렇게 빨리 송악의 상권이 다시 커질줄은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지요. 사실 송악은 이 황궁을 지으면서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기울어졌었사옵니다.

종간 ................?

강장자 이곳이 이 나라의 중심인 황도가 되었지마는 사람들의 인심은 여전히 왕씨 가문을 떠나지 않는 듯 싶사옵니다.

종간 그것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인심이 왕씨 일가에게 있다니요?

강장자 그게 저.. 그냥...사람들이....그렇다는 것이옵니다. 다른 뜻은 아니옵고....

종간 이 나라의 주인도, 송악의 주인도 오직 한 분, 대왕폐하뿐이옵니다. 신하가 되어 황제의 권위나 위엄을 뛰어넘어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그것은 곧 반역이나 대역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옵니다.

백씨 ....세상에....?

강장자 (어쩔줄 모르며) 제... 제가..그만 말 실수를 하였사옵니다. 별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옵고... 허허.


종간이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그런 표정에 강장자와 백씨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만다.


씬 15 송악 포구


예성강 포구의 전경이 보여온다. 한눈에도 그곳이 대단한 성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지역의 상인들과 외국의 상인들이 어울려 흥정을 붙이는 모습이 이채롭다. 변사부와 마사부가 그 모습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돌린다.


씬 16 그곳 예성강 객관


왕신이 뭔가를 열심히 적어내려가고 있다. 왕평달은 그 옆에서 서서 물목의 책자를 보며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챙겨주고 있다. 마사부와 변사부가 안으로 들어선다.


왕신 두분 사부님이 아니시옵니까?

왕평달 어서들 오시게.

변사부 공자님이 요즘 아주 바빠 보이시옵니다?

왕신 예, 장사일을 배우느라........

마사부 식렴공자께서 하실 일을 대신 맡으셨으니 적은 일이 아닐 겝니다.

변사부 (평달에게) 포구가 상인들로 발 디딜틈이 없사옵니다. 아무래도 객관들이 모자랄 듯 싶습니다.

왕평달 그야 더 지으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허허허.

마사부 이곳에 물건을 대려는 상선들로 바닷길마저 막힐 지경입니다. 옛 주군께서 살아계실 때의 영화가 다시 살아나는 듯 하옵니다.

왕평달 그런 것 같으이.....

마사부 이제는 어르신께서 송악을 움직이시는 실질적인 어른이 되셨습니다.

변사부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어르신의 노고이십니다. 고려의 모든 무역중심이 이제 어르신의 손에 들어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왕평달 허허.....그렇지가 않네. 송악의 상징은 내가 아니라 조카일세.

두사부 ...............

왕평달 나나 자네들이나 이제 많이 늙었어. 우리들의 주군인 조카를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재물을 모으고 훗날 크게 쓸 수 있도록 준비를 하여 두는 것이 내 의무일 뿐이야. 그래서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는 것이고....

마사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어르신...

변사부 헌데 식렴 공자께서는....?

왕평달 허허허...마침 요즘 식렴이는 매우 바쁘다네... 그 아이 나름대로 할 일이 많아....알지 않는가...?


씬 17 객관 일각 식렴의 거처


왕식렴이 어느 상인과 더불어 애기를 나누고 있다..그 옆에 장수장이 함께 해 있다.


왕식렴 (고개를 그떡이며) 자네는 이번에 어디 어디를 거쳐 왔는가?

상인 당나라와 거란을 지나 발해까지 다녀왔사옵니다. 그리고 백제의 금성을 거쳐 왔습지요

왕식렴 수고가 많았구먼 그래 돌아보니 어떠하던고?

상인 당나라는 아무래도 얼마 가지 못할 것 같고...

왕식렴 허어 , 결국 그렇게 되었는가? 나도 얘기를 듣고 있네마는... 발해국은 요즘 어떠한가?..

상인 발해국도 관리들이 부패하고 썩어서 그 넒은 땅덩어리가 온통 지리 멸렬이라 하옵니다. 역시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하옵니다.

왕식렴 허....가는 곳마다 난리일세 그려. 거란은..?

상인 거란만은 다르옵니다. 야율아보기라는 장수가 부족들을 통일하고 대군을 조련시켜 발해와 당나라로 진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옵니다. 거란이 일어선다면 중원은 그야말로 엄청난 태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옵니다.

왕식렴 그렇구먼.....잘 들었네. 우리는 오랫동안 바닷사람들로서 무엇보다도 의리를 목숨처럼 알고 오랜 세월을 살아왔네.

상인 그랬습지요.

왕식렴 이곳에 사정이 급박하여 우리 송악은 근자에 들어 바다 밖의 여러 나라들을 오가지 못하고 있네. 자네들이 우리 송악을 대신해주어야 겠네.

상인 이를 말씀이옵니까요? 그리 해얍지요. 헤헤헤... 송악의 젊은 어르신 왕건 공자님께서 여기 고려국의 큰 장군이 되셨다지요?

왕식렴 그 때문에 우리는 나라 안 밖의 많은 소식들이 필요하다네. 참 이번에 금성을 지나왔다고 하지 않았는가? 뭐 들은것 좀 있는가?

상인 예. 아무래도 대야성에 가 있는 견훤왕의 전투가 오래 갈 것 같다 들었사옵니다. 싸움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어서 시간이 갈수록 견훤의 백제군이 불리하다 하옵니다. 아직도 신라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옵니다.

왕식렴 허허허...천 년을 버티어 온 제국일세. 쉽게 무너지겠는가...수고 하였네. 가서 쉬게나...(금덩이를 주며) 자, 이것은 나의 성의이니 받아두게

상인 아이구...공자님 뭐 이런 것 까지..... 아무튼 다시 송악이 번창한 것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옵니다. 헤헤헤........그럼..


상인이 절을 하고 나간다. 식렴이 장수장에게 이른다.


왕식렴 신라군이 백제군을 잡고 시간을 끌고 있다 하니 순행을 떠난 폐하와 형님께는 다행스러운 일이야. 저들이 저러고 있는 동안은 근심이 없게 되었으니 말일세.

상인 그렇사옵니다.

왕식렴 장사꾼들의 정보는 대부분 정확하고 맏을만한 것들일세. 장수장 자네가 수하들과 뱃사람들을 잘 풀어서 작은 소식 하나도 소홀히 말고 모으도록 하게.

장수장 예 공자님.

왕식렴 이 혼란 속에서 정보라는 것은 바로 목숨과도 같은 것일세. 건이 형님을 위해 우리가 그 일을 대신 해야해.

장수장 예, 공자님.


생각하는 식렴의 얼굴에서...


씬 18 북원 초입길


궁예와 왕건의 일행들이 북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 입구에서 북원성의 성주가 군사들과 함께 기다리고 서있다. 궁예들이 다가오자 성주는 큰 절로 궁예를 맞는다.


성주 어서 오시오소서. 폐하. 신은 북원성의 성주이옵니다.

궁예 반갑소. 수고가 많소이다.

성주 황공하옵니다, 폐하. 이제부터는 소신이 폐하를 뫼시겠사옵니다.


성주가 눈짓을 하자 군사들이 궁예를 호위한다. 그들 그렇게 북원성으로 들어간다.


씬 19 북원성


궁예와 왕건이 그곳 관아의 내아로 들어서고 있다. 궁예는 그 예전의 일들을 떠올리듯 이곳저곳으로 눈길을 돌린다.


궁예 참으로 감회가 새롭소이다. 벌써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려.

은부 소신은 폐하께서 이곳 북원으로 오실 때의 기억이 생생하옵니다. 헐벗고 굶주린 수많은 백성들이 구름처럼 폐하의 뒤를 따르던 모습이 말이옵니다.

궁예 그랬었지.

은부 지금은 불귀의 객이 되버린 양길은 그런 폐하의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사옵니다. 결국은 소신에게 속아서 간과 쓸개까지 모두 내어주지 않았사옵니까? 하하하.

궁예 참으로 보기드믄 용장이었는데..... 그릇이 너무 작았어....

왕건 용장임에는 분명했사옵니다. 상당한 장수였사옵니다.

은부 그런걸 보면 하늘이 참으로 공평한 것 같사옵니다. 양길은 힘은 뛰어났지만 머리가 없었어요. 거기다가 욕심과 꿈은 컸고.....

궁예 그만들 하세. 비록 양길이 우리와는 비극적으로 끝이 났지만 험담을 해서는 아니될 것이야. 분명한 것은 오늘의 우리는 양길이란 인물이 있어서 이루어진 것일세.

은부 ............

궁예 인간은 누구나 욕심과 꿈이 있는 법일세.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참고 자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지. 자, 여기까지 오느라 모두들 지쳤을 것이네. 어서 가서 쉬도록들 하세...


그들 모두 성 안으로 들어 간다. 디졸브 되면.....


씬 20 북원성 관아 길


성주의 안내를 따라 궁예들이 성안 관아 길로 들어오고 있다. 길 곳곳에 불에 탄 폐허들이 잡초와 어우러져 즐비해 보인다. 궁예가 찌푸리며 유심히 그것들을 본다.


궁예 관내 마을들이 왜 모두 이 모양들인가...?

은부 ...............?

성주 지난 양길의 난 때 모두 불태워져서 그렇사옵니다.

궁예 .....................?

은부 두 번 세 번, 폐하의 화친제의를 거절한 양길이었사옵니다. 인정을 둘 때는 한량이 없으시지만 그것을 거절할 때는 어떤 결과가 오는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성안을 불태우고 양길과 그 수하들의 일가를 모조리 도륙했었사옵니다.

미향 .....?


미향이 입을 앙다문다. 은부가 말을 하다말고 미향을 보다간 헛기침을 날린다. 그런 그들을 황후가 본다. 궁예는 여전히 혀를 차고 있다. 궁예는 여전히 혀를 차고 있다.


궁예 지나쳤어..... 적장이 죽었으면 되는 것이지 ...마을들을 불태울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 가족들은 또 왜.......


그들 그렇게 그 곳을 지나쳐 관아로 들어 간다. 미향은 여전히 안면 근육을 떨고 있다.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씬 21 동 북원성 관아 외경(밤)


씬 22 동 관아 안


시녀와 노비들이 음식상을 나르느라 분주하게 오고 간다. 그 위로 황후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연화 (E) 아무래도 북원부인이 예사롭지가 않은 것 같구나,


씬 23 연화의 처소


시녀 슬이가 연화의 치장을 돕고 있다.


연화 (동경을 이리 저리 보면서) 오던 길에 보니 영 딴 사람처럼 보였어.

슬이 늘 그런 분이 아니시옵니까? 너무 마음쓰지 마시오소서.

연화 가족들과 일가붙이들이 모두 죽어나간 곳이야, 그런 고향에 돌아왔으니 심사가 오죽하겠느냐? 너무도 안되었구나.


그 때 소리가 들려온다.


제조상궁 (E) 마마, 정선이옵니다. 페하께오서 잠시후 연회에 참석하시라는 전갈을 보내셨사옵니다.

연화 알고 있느니라. 북원에 도착을 하였으니...... 이곳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어야 하겠지. 알고 있으니 가보거라.

제조상궁 예.

연화 북원부인도 함께 가야할 것인데.....


연화는 여전히 화장을 계속하며 불안해 한다.


씬 24 동 관아 어느 건물 일각


미향이 시녀 월이와 함께 잿더미가 되어 있는 건물들을 보며 옛 자취를 더듬고 있다.


월이 저기가 마님의 아버님이신 양길 대장군께서 계시던 곳이옵니다.

미향 ............

월이 저기는...마님께서 계시던 곳이옵고....

미향 ............(미향은 이미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다)

월이 이 곳을 불태우고 마님의 일가를 모두 죽이도록 명령한 사람은 내원의 종간어르신이라 하옵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참으로 소름이 끼치옵니다.

미향 ...............(드디어 눈물이 흐른다.)


미향은 눈물을 흘리며 다 타버린 나무조각 하나를 집어 오랫동안 보고 있다. 그리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 한다.. 월이도 슬픔에 고개를 돌린다.


월이 마님.........고정하시오소서......

미향 어쩌다 이리 되었단 말인고....어쩌다 이리들 되었단 말인고....다들 그렇게 죽었는데 왜 나만 이렇게 살아있단 말인고...왜....?

월이 마님....고정하시오소서..


씬 25 궁예의 임시 처소


궁예와 왕건, 은부 ,그리고 여러 장자들이 성주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


궁예 나는 죽주에서 북원으로 와서 곧바로 석남사로 갔었네. 백성들과 함께 밭고랑을 일구고 병자를 치료해 주며 세월을 보냈었네.

왕건 그 과정은 신도 들었사옵니다. 페하의 자비하심이 하도 소문이 나서 전국의 백성들이 소문을 듣고 구름처럼 몰렸다 들었사옵니다.

은부 허허허...그랬지요. 그랬구 말구요. 모두들 미륵부처님을 친견하려고 얼마나들 몰려들던지....

박지윤 지금도 폐하의 그 때 일은 이곳 백성들이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하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석남사가 지난 양길의 난 때 함께 불에 타버렸다고 하니.....

궁예 허...그렇소이까.....그거 섭섭하게 되었구먼....

성주 폐하, 북방의 일은 어찌 되었사옵니까? 하루가 다르게 폐하의 영토가 달라지고 있다고 들었사온데......

유장자 허허허.. 그렇소이다. 환선길 장군과 이흔암, 복지겸 장군이 먼저 다녀왔고 지금은 홍유 장군, 배현경 장군, 김락, 김언 장군이 그 넒은 북방 일대를 무인지경으로 달려가고 있다 하오이다. 머지않아 발해까지 이를 것이오.

성주 발해까지 말이옵니까?

궁예 허허허....발해국도 고구려의 후손이요. 언젠가는 짐의 영토가 되어야 하지 않겠소?


궁예가 호기롭게 웃는다. 이흔암, 환선길, 복지겸, 홍유, 배현경, 김락, 김언들의 장쾌한 모습들이 지나쳐 스쳐간다.


궁예 우리는 고려요. 마땅히 고구려의 옛 땅을 찾을 의무가 있소이다. 발해는 고구려의 땅을 가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짐이 반드시 찾을 것이요. 자, 한잔들 하십시다.


궁예는 술을 마시다 말고 웬지 안절부절 못하고 자꾸 밖을 기웃거리는 연화를 본다.


궁예 아니...황후께서는 왜 그리 자꾸 밖을 보시오? 누굴 기다리시오?

연화 북원부인께서 아니 오신 것 같아..

궁예 그러고보니.... 후원의 보살은 보이지 않는구려.

은부 분명히 저녁 연회가 있음을 알려드렸고 ...다시 내관을 보냈사옵니다마는.....


씬 26 동 관아 일각


마향이 여전히 어둠속에서 먼 곳을 보고 있다. 월이가 재촉을 하고 있다.


월입 마님, 그만 가셔야 하옵니다. 저녁 연회에 참석하라는 영이 있었지 않았사옵니까? 많이 늦었사옵니다.

미향 ..............

월이 마님.....?

미향 연회라......무엇이 즐거워 연회에 간단 말이냐? 내 가족들 ...내 혈족들이 다 죽어나간 이 땅에서 무엇이 기쁘다고 희희낙낙 한단 말이더냐.....? 더군다나 저들이 바로 내 아버님과 형제 들을 죽인 자들이 아니냐?

월이 마님......? 제발 잊으시오소서. 이제 지난 날은 잊으시오소서.


그때 어둠 속에서 내관이 달려 온다.


내관 아이구 여기 계시었사옵니까? 얼마나 찾았는지....

미향 ...........

내관 폐하께오서 찾아계시옵니다. 어서 가시오소서. 모두들 모이신지 오래이옵니다마님.

미향 그래... 폐하께서 찾으신다니 가봐야겠지. 어찌 황제가 부르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는가...?


미향의 눈은 초점이 없다. 내관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다. 미향은 보란 듯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다.


씬 27 연회장


연회자리가 무르익고 있다.


궁예 오늘따라 술맛이 아주 독특하구료. 자, 이번에는 어느 분을 드릴까...그렇구먼... 황후께서 짐에게 한 잔 따라주시구려.

연화 예, 폐하........... (술을 따른다)

궁예 알 수 없는 일이오. 황후의 얼굴은 언제 보아도 그늘에 가려 있구려. 항상 근심을 안고 사는 분 같소이다.

왕건 .........

연화 그렇게 보이시옵니까? 신첩은 아무렇지도 않사옵니다.

궁예 허허허....그 마음을 내가 어찌 모르리오. 궁궐생활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요. 답답하고 어렵고...황후라는 자리의 무게가 사람을 괴롭히고 지치게 하는 것이지... 그래서 순행길에 함께 온 것이 아니요? 훨훨 한 번 날아보라고 말이오.

연화 어찌 모르오리까...

궁예 앞으로는 한 나라를 순행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제후국들을 순행하는 자리가 있을 것이외다. 중원의 당나라 보다도 더 큰 땅을 가지고 말이오. 그 때도 같이 가십시다. 핫하하하


그때 내관의 소리가 들려 온다.


내관 (E) 폐하, 북원부인께서 드시옵니다.

궁예 북원부인...?허허....어서 드시라 하여라...


문이 열리고 미향이 들어와 앉는다. 황후는 그런 미향을 불안 하게 살핀다, 은부도 그렇다. 미향은 예사롭지 않은 표정인 것이다.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궁예 이보시오 보살. 지금 막 황후의 얘기를 하고 있었소이다. 궁궐생활이라는 것이 답답하고 힘이 든다는 것 말이오. 그래서 순행길에 함께 나와 답답함을 풀고 있으니 그 기분이 어떠한가 하고 말이오.

미향 ................(비웃음같은)

궁예 보살은 어떻하시오?

은부 북원부인 마님께서도 그러하실 것이옵니다. 황후마마와 무엇이 다르겠사옵니까?...아니 그렇사옵니까...마님...?

궁예 더 큰 영토를 만들어 제후국들을 순행하자고 하였소. 그러자면 몇 달 몇 년씩 길 위에서 세월을 보내게 되겠지. 아니 그렇소 보살?


여전히 미향은 대답이 없다. 은부가 묻다가 표정이 굳어 진다. 미향이 자신을 보고 실실 웃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그런 미향을 본다. 황후가 얼른 나선다.


연화 부인....?

미향 은부장군께선 아주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페하께서도 그러하시구요?

모두들 ............?

미향 살아있는 부처시고 미륵이신 페하라 하셨사옵니다.... 페하, 페하께서는 정말로 미륵이시옵니까?

궁예 ........(비로서 굳어진다)

은부 (당황하며) 허....이런....이런..불손한....?

미향 제후국을 순행하신다구요? 그러자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하옵니까? 도대체 어떤 미륵이시길래 그토록 피를 좋아하시옵니까?

은부 보시오소서 마님...?

궁예 ....?

미향 이곳 북원은 소첩의 아비와 혈족들이 비명속에 죽어간 곳이옵니다.수많은 억울한 영령들이 울부짓으며 우리 위의 구천을 맴돌고 있사옵니다.

왕건 ........?

박지윤 허, 이런 .....

미향 이런 곳에서 술이 넘어가며 흥이 나옵니까? (독이올라 소리친다)가면을 벗으시오소서. 폐하께서는 미륵이 아니시옵니다. 미륵이시라면 이렇게 몰염치하지 않사옵니다.

궁예 ............

미향 (상위의 음식들을 쓸어버리며) 장인이 쌓아놓은 자리를 빼앗고 의리와 인륜을 저버리는 미륵도 있사옵니까?

궁예 허허허...보살이 마시지도 않고 취한 모양일세.

은부 뭣들 하느냐. 어서 저 북원부인을 밖으로 뫼셔가거라.

미향 저 울음소리들이 들리지 않사옵니까? 내 아비의 울음소리, 숙부와 일가들의 울음소리들 말이옵니다.

궁예 ....................?

미향 그리고 또 있사옵니다. 내 아들은 어디다 버렸사옵니까? 어미를 찾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사옵니까? 원귀들과 불쌍한 어린것이 울고 있는데 여기서 술이 목에 들어가시옵니까?


내간과 내군들이 달려와 미향을 붙들어 끌어 내려 한다. 황후는 어쩔줄 모른다. 미향의 저항은 의외로 거세다.


미향 놓거라. 놓지 못하겠느냐. 나는 이미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니니라. (발광하듯) 살려놓으시오.내 아버님을 살려 놓으시오. 내 숙부도 살려 놓고 내 일가들도 다 살려 놓으시오. 살려 놓으시오. 내 아이를 데려다 주시오.

은부 이런, 발칙한........무엇들 하느냐 어서 끌어내라.

미향 살려 놓으시오. 다 살려놓으시오. 어서 살려 놓으시오.


미향이 끌려나가며 그렇게 절규하는데서 카메라는 스톱모션 된다. (*)











첨부파일 태조왕건39.txt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