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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40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1.17|조회수1,504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40회>



 


씬 1 북원관아 연회장


지난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연회장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다. 내관들이 급히 엉망이 되어 텅 비어버린 연회장들을 치우고 있다. 그 한 쪽에서 성주가 얼이 빠진 듯 보고 있다.


성주 어...어떻게...이...이런 일이...세상에......... 대 미륵 부처님이신 폐하께 대어들다니....어떻게 이런 일이......


하녀들과 내관들이 계속 흩어진 그릇들과 음식들을 치우고 있다. 성주는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다. 들려오는 은부의 소리.


은부 (E) 신을 벌하여 주시오소서 폐하.


씬 2 궁예의 처소


궁예가 굳은 표정으로 염주만 돌리고 있고 은부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한 동안의 정적이 흐른다.


은부 소신의 실책이 크옵니다. 진작부터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경계했어야 했사옵니다. 많은 신료들 앞에서 폐하를 욕되게 하였사옵니다. 폐하를 곁에서 뫼시는 내군의 수장으로서 소신의 죄가 참으로 크옵니다. 벌하여 주시오소서.

궁예 .......그대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안타까운 일이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은부 폐하..... 더이상 인정을 두셔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마땅히 일벌백계로 다스리셔야 하옵니다. 북원부인은 폐하의 위엄에 실로 커다란 누를 끼쳤사옵니다.

궁예 ............

은부 폐하, 소신에게 맡겨 주시오소서. 마님을 벌하셔야 하옵니다. 가납하여 주시오소서.

궁예 가여운 사람일세. 불쌍한 여인이야. 이번 일은 그냥 덮어 두게나.

은부 폐하...?.

궁예 아이는... 보살이 낳은 그 아이는 어디에 있는가? 무사히 잘 지내고 있겠지?

은부 명주의 한 사찰에서 잘 모셔놓았사옵니다.

궁예 .......업장이로고... 참으로 무거운 업장이로고...... 나무석가모니불.......


궁예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무섭게 눈빛을 번득이는 은부의 얼굴에서.


씬 3 연화의 임시 처소


연화가 두 손을 잡고 미향을 다독거리고 있다. 미향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다.


연화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지르셨습니까? 어쩌자고......

미향 .........

연화 내원과 병부령은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참으셔야 했습니다. 참으셔야 하셨어요.

미향 (차갑게) 소첩이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사옵니까?

연화 .......?

미향 내원과 병부령은 소첩도 죽이려고 했사옵니다. 허나 그렇게 죽을 수는 없었사옵니다.

연화 오늘은 부인 같지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향 소첩이 죽기 전에 폐하를 깨우쳐 주고 싶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미륵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연화 .............

미향 폐하께서는 사람이길 거부하시는 것일 뿐이옵니다. 광인이시옵니다.

연화 (놀라) 큰일날 소리를 하십니다. 폐하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만 하세요. 그만........

미향 소첩은 아옵니다. 폐하께서는 제 아버님과 일가친척들을 모두 죽이셨지만... (복받쳐 오르는 듯) 소첩은 결코 폐하를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옵니다. (눈물이 어린다) 소첩이 폐하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제 죽음으로 폐하를 바꾸어 놓는 것 뿐이옵니다.

연화 .......(가슴이 아프다)

미향 (독하게) 소첩이 죽어 폐하를 깨우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옵니다. 백 번이라도 죽어 폐하를 깨우칠 것이옵니다. 그렇게 할 것이옵니다. 그렇게.......


연화는 경악스러운 표정이다. 그리고 그 독기서린 미향의 얼굴에서 디졸브 되면...


씬 4 북원성 외경(아침)


을씨년스러운 아침이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은 잔뜩 찌푸려져 있다. 거센 바람에 깃발들이 소리내어 퍼덕거리고 있다.


궁예(E) 미향 보살은 어찌하고 있는가?


씬 5 동 궁예의 거소


궁예와 은부, 왕건이 자리해 있다.


은부 간밤에 황후마마와 함께 있다가 처소로 돌아가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다른 일은 없었는가?

은부 예, 폐하.

궁예 다행이구만. 허허허...

왕건 .......?

궁예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이 많았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다 털어냈으면 좋으련만...

은부 하오나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폐하를 욕보였사옵니다. 소신이 거듭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궁예 놔두게. 짐이 듣지 않은 걸로 하면 그만인 것이야.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이 곳에서 연회를 벌인 것부터가 잘못이었어.

은부 하오나..

왕건 폐하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그 일을 자꾸 꺼낼수록 폐하의 위신에 손상이 가는 일이옵니다.

은부 ..........

궁예 명주로 갈 준비를 하게. 이곳을 떠나야겠어. 아침나절에 출발할 수 있도록 차비를 하게.

은부 ...예.. 알겠사옵니다, 폐하.


은부가 밖으로 나간다. 그 방엔 이제 궁예와 왕건만 남아 있다.


궁예 (한숨) 답답한 일일세. 이럴 땐 혼자인 아우가 부러우이.

왕건 ........?

궁예 사내에게 있어 여인이란 거추장스럽고 괴롭기만 한 존재일세. 혼자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왕건 .......

궁예 그러나 이젠 어쩔 수가 없게 되어 버렸지.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인연을 맺었으니.. 모두가 무거운 짐인 게야. 업인 게야.

왕건 ........


궁예의 자조적인 모습에서.


씬 6 미향의 처소


미향이 넋이 나간 듯 앉아 있다. 월이가 곁에서 근심스럽게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월이 마님...

미향 ......(미동도 없고)....

월이 이제 다시 명주로 떠난다 하옵니다. 어서 차비를 하시오소서.

미향 ......!

월이 마님.....?

미향 명주... 명주라 하였느냐?

월이 예, 마님..

미향 명주.... 그래, 그 곳에 우리 아이가 있을 것이니라. 내 아들 말이야..

월이 ........

미향 지금쯤 많이 컸을 텐데.. 일곱 살이나 되었을 텐데...


미향의 눈에 다시 눈물이 흐른다. 그 때 문이 벌컥 열리고 은부와 금대가 들어온다.


월이 어, 어인 일이시오?

은부 (말없이 위협적으로 다가선다)

미향 ....무엇인가?

은부 큰 실수를 하신 게요. 감히 폐하와 황후마마께서 계신 자리에서 난동을 피우다니.. 착각하지 마시오. 그대는 황후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오. 적도 양길의 딸일 뿐이오.

미향 ........(부르르 떨며 쏘아본다)........

은부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아시오. 살고 싶다면 자중하시오.


그러자 미향이 탁자 위에 놓여진 물을 은부의 얼굴에 끼얹는다.


금대 아니..! (나서려하자)

은부 ......(제지한다)

미향 금수만도 못한 놈..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돌아가신 내 아버님께서 너를 각별히 아껴주셨거늘, 은혜를 어찌 원수로 갚을 수 있단 말이냐?

은부 .....허허허.. 과연 양길의 딸답구려. 그 성깔 한번 대단하시구려.

미향 나가거라. 네 놈과 마주하고 있는 것조차 내겐 치욕이니라.

은부 얼마든지 이 사람은 원망해도 좋소이다. 허나, 폐하와 이 나라에 누를 끼치는 것은 절대, 절대 용납할 수가 없소이다. 아시겠소? 또 다시 지난 밤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 땐 용서치 않을 것이오.

미향 (무섭게 노려보며) 나는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니라. 허나 기억하거라. 내 죽어서도 네 놈을 잊지 않을 것이야.

은부 ......!

미향 .......

은부 허허허.. 알겠소. 그 말씀 꼭 기억하리다. 가자!


은부가 홱 돌아서 밖으로 나간다. 금대가 따라나간다. 미향의 그 표독스러운 모습에서 디졸브되면...


씬 7 산 길


궁예의 순행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명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씬 8 송악 길


염상과 전령들이 말을 타고 황궁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씬 9 황궁 중문


환선길, 이흔암, 복지겸이 그곳으로 나오고 있다. 그때 염상과 전령들이 급히 중문을 향해 뛰어들어 오고 있다.


이흔암 염부장이 아닌가? 북원에서 오는 길인가?

염상 (군례를 올린다) 예, 장군..

환선길 그래... 폐하께서는 무고하신가?

염상 ....예.. 급히 내원 어른께 올려야 할 서찰이 있어... 소장은 이만.....


급히 이흔암 옆을 지나쳐 사라진다.


이흔암 엥?

환선길 허... 뭐가 저리 급하단 말인가?


복지겸이 염상의 뒷모습을 이상하다는 듯 돌아본다. 그 얼굴 위로......


종간(E) 이런 불경스러운 일이 있었단 말인가?


씬 10 동 내원


종간이 서찰을 읽다말고 놀란 눈으로 염상을 본다. 염상이 그 앞에 보고차 와 있다.


종간 여기에 적혀 있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란 말인가?

염상 예, 그러하옵니다. 곁에서 뵙기조차 민망한 일이었사옵니다.

종간 이런 쯧쯧쯧... (도리질을 치며) 그예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구만..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게야.. 그 때 양길이와 함께 정리를 했어야 했는데...

염상 ........

종간 결국은 사라져야 할 사람일세. 황후마마께서 태자 아기씨를 생산하시면 북원부인은 물론 그 사람이 낳은 그 아이 역시 사라져야 할 것이야.

염상 이를 말씀이겠사옵니까?

종간 ........(뭔가 생각)


그 때 밖에서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학인1(E) 내원 어른, 소생이옵니다.

종간 들어오시게.

염상 허면 소장은 이만 물러가 있겠사옵니다.

종간 그리하게.


염상이 나가고 학인1이 들어온다.


종간 무슨 일인가?

학인1 토산군에서 참으로 해괴한 일이 생겨 이를 풀이해 달라는 소원이 들어왔사옵니다.

종간 해괴한 일이라니?

학인1 토산군에 사는 최우달이라는 자의 안해가 임신을 하였사온데, 그 집 오이줄기에 참외가 열렸다 하옵니다.

종간 오이줄기에 참외가 열려...? 허.. 참으로 괴상한 일이로다. (눈을 감고 점을 치는듯) 흉사일세. 지극히 불길한 일이야. 나라에 크게 해로운 아이가 태어날 조짐일세.

해설 신동 최응의 출생. 이 때의 일을 고려사 열전 최응편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최응의 모친이 임신하였을 때 그 집 오이 줄기에 갑자기 참외가 맺히므로 이웃 사람이 이를 궁예에게 고하니 궁예가 점을 쳐 ‘생남하면 나라에 이롭지 않을 것이니 절대 키우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부모가 그를 숨겨두고 양육하였다.” 그러나 최응은 어려서부터 5경에 능통하고 문장에 능하여 궁예가 열서너살에 불과한 그를 한림랑으로 삼았는데, ‘이른바 성인을 얻는다 함은 이 사람이 아닌닌가’ 할 정도로 궁예의 신임이 대단했다. 훗날 최응은 미륵관심법에 의해 처형을 당할 뻔한 왕건을 특유의 기지로서 구해내고, 통일 전쟁 당시 왕건의 책사로서 후백제 견훤의 군사 최승우와 더불어 일대 지략 대결을 벌이게 되는 인물이다.


씬 11 완산주 궁궐 외경


박씨(E) 지금 나를 능멸하는 겐가?


씬 12 동 황후전


고비가 와 있다. 박씨가 노기등등해 고비를 쏘아보고 있다.


고비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소첩이 어찌 감히 황후마마를 능멸하겠사옵니까?

박씨 뭐라?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인가? 도대체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허면 어제는 어찌 문안을 오지 않은 겐가?

고비 고뿔이 들어 운신할 수가 없었사옵니다. 대신 시녀를 보내 사정을 아뢰지 않았사옵니까?

박씨 허 이 사람이 그래두!

고비 ......송구하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옵니다.

박씨 그걸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는가? 폐하께서 돌아오시면 폐하의 총애를 믿고 더욱 오만방자해질 것이 아닌가?

고비 아니옵니다, 어찌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박씨 대궐의 법도는 익혔는가? 그 옷차림새는 또 무엇인고?

고비 ........

박씨 쯧쯧.. 하나부터 열까지 도무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구만. 그래서 어찌 폐하를 뫼실 수 있겠는가?

고비 ......

박씨 나가보게.. 자네와 마주 앉아 있으니 숨이 막힐 지경이네.


고비가 일어나 예를 갖추고 밖으로 나간다. 시녀 옥이가 다가와 앉는다.


옥이 참으로 고집이 대단하옵니다. 황후마마께서 그토록 질책하시는데도 잘못했다는 소리가 없사옵니다.

박씨 ......내 꼴이 한심하게 됐구나.. 저런 어린 아이에게 투기나 부리고 있으니..

옥이 .......?

박씨 전쟁터에서는 소식이 없느냐? 지난번 전투에서 크게 패했다고 했는데 다른 소식은 없느냐?

옥이 그런 줄로 아옵니다.

박씨 ...(한숨)......


그 때 천둥 소리가 들려온다.


박씨 큰 비가 오려나보구나..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 태자들이 걱정이구나.. 폐하께서도 너무하시지.. 그 어린 아이들을 전쟁터로 데려가시다니..


박씨의 근심어린 표정 위로 천둥 번개 소리가 계속된다.


씬 13 인서트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천둥 번개는 계속 되고....


씬 14 대야성 부근 견훤의 진영


장대비가 우렁차게 쏟아져내리고 있다. 천둥 번개는 이곳에서도 이어진다. 그 장대비 속에서 군사들이 창검을 움켜쥐고 경계를 서고 있다.


최승우(E) 폐하, 결단을 내리셔야 하옵니다.


씬 15 동 군막


견훤과 최승우가 마주해 있다. 견훤이 침통한 표정으로 묵묵히 앉아 있다. 빗소리가 유난스럽다.


최승우 더이상 시일을 끌면 아군의 피해만 더욱 커질 것이옵니다.

견훤 .......

최승우 장마가 시작되고 있사옵니다. 이젠 군량미의 운송조차 어려워질 것이옵니다. 전쟁은 신속 과감함이 제일이고 시일을 끌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그보다 더 큰 해가 없다고 하였사옵니다. 결단을 대리시오소서. 철군령을 내려주시오소서.

견훤 철군이라... 철군.. 이 견훤이가 이깟 변방의 성 하나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등을 돌려야 한단 말인가?

최승우 대야성은 신라의 마지막 보루이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성을 쉽게 공략할 수는 없사옵니다.

견훤 수치스러운 일일세.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최승우 당나라가 하늘처럼 떠받드는 태종 이세민도 고구려의 안시성에서 무릎을 꿇은 일이 있었사옵니다. 백만 대군으로도 함락시키지 못하는 성도 있는 것이옵니다.

견훤 ........

최승우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理)라 했사옵니다. 아무리 때를 잘 만났다 해도 상대편이 좋은 지형을 확보하고 있으면 이길 수 없다는 말이옵니다.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옵니다, 폐하.

견훤 .........천시불여지리라...


그 깊은 고뇌의 눈빛에서..


씬 16 그 군영 일각


능환과 신검, 양검이 마주해 있다.


능환 장마가 시작되려나 보옵니다.

신검 군사들의 사기가 날로 저하되고 있사옵니다. 벌써 여러차례 성을 공략해 보았지만 난공불락이 아니었사옵니까?

능환 아무래도 틀린 것 같사옵니다. 신라를 너무 과소평가했사옵니다.

양검 그런데도 아버님께서는 우리 형제만 나무라시니 참으로 야속하옵니다.

신검 그게 무슨 말인가?

양검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님께서도 어찌하시지 못하는 성이 아니옵니까?

신검 .......

능환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씀을 입밖에 내시면 아니되옵니다. 폐하께서는 두 분 태자님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 꾸짖으신 것이옵니다. 설령 섭섭한 마음이 드시더라도 안으로 삭이시오소서.

양검 .......

능환 모든 잘못은 신에게 있사옵니다. 신이 형세 판단을 잘못한 것이옵니다. 이 능환이도 이제 늙었나보옵니다. 허허허...


능환의 그 착잡한 모습에서...


씬 17 대야성 성곽


군사들이 철통같이 경비를 서고 있다. 장대비는 계속해 퍼부어대고 있고...


씬 18 동 성루


효종과 노장군들이 멀리 견훤의 진영을 바라보고 있다.


노장군1 적도들이 여러날째 아무런 움직임이 없소이다.

노장군2 그만하면 지칠 때도 되었지요. 허허허..

노장군1 성안에 남아 있는 군량미는 얼마나 되오?

효종 오늘과 같은 날을 대비해 충분히 비축해 두었사옵니다. 염려마시오소서.

노장군3 그렇다면 장기전도 가능하다 이 말이구려. 허허허.. 견훤이는 지금 군량미의 운송 때문에 무척이나 고심하고 있을 게요.

효종 아마도 그럴 것이옵니다.

노장군1 적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놔야 할 것이오. 내게 좋은 계책이 있소이다.

효종 .........?


씬 19 산길


견훤의 군사들이 장대비 속에서 군량미를 운송하고 있다. 땅이 질퍽하고 곳곳에 웅덩이가 있어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때다. 어디선가 신라의 군사들이 나타나 일제히 달려온다.


백제군사1 (경악하며) 시, 신라군이다!


그들이 채 전투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신라군이 노도와 같이 밀려와 거침없이 백제군들을 벤다. 백제군들이 일부 저항을 해보지만 너무나 의외의 사태라 도망치기에 급급하다.


백제군관 물러서지 마라. 군량미를 지켜야 하느니라! 우리가 지키지 못하면 전선의 군사들이 굶어죽느니라. 물러서지 마라!


그러나 군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백제군들은 변변히 저항하지도 못하고 뒷걸음친다. 이윽고 군관도 신라군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신라장수 하하하.. 견훤이가 알면 땅을 칠 일이로다! 저 군량미들을 성으로 가져가도록 하라.


신라군사들이 군량미를 실은 말들을 데리고 어디론가로 사라져 간다.


씬 20 견훤의 군막


견훤이 대노해 소리친다.


견훤 뭐라? 군량미를 빼앗겨? 대체 어느 군사들에게?

박영규 대야성의 군사들이었다 하옵니다.

견훤 대야성의 군사라니?

최승우 은밀히 성 안의 군사들을 밖으로 내보낸 모양이옵니다. 신이 차마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사옵니다.

견훤 이런 이런... 갈수록 태산이구만..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어이구..

최승우 군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옵니다. 더 이상 시일을 끌다가는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이옵니다.

견훤 이런 망신이 있는가? 이런 망신이...

능환 .........

최승우 폐하, 철군할 시기를 놓치면 퇴각을 하다가 적의 기습을 받을 수도 있사옵니다. 결단을 내리시오소서, 폐하..

견훤 ...........

최승우 폐하....?


최승우의 간절한 모습에서 견훤의 고심에 찬 모습으로 이어지며..


씬 21 대야성 외경


효종(E) 하하하.. 수고했네..


씬 22 동 안


견훤의 군량미를 노획한 장수가 와 있다. 노장군들도 배석해 있다.


효종 참으로 수고했네. 적들에게 큰 타격이 되었을 게야.

노장군3 그렇소이다. 이제껏 승승장구하며 전쟁에 이겨보기만 했을 견훤이오이다. 이번에 패배의 쓴맛을 단단히 맛봤을 것이오이다.

효종 모두가 어르신의 계책이 탁월했기 때문이옵니다. 많은 것을 배웠사옵니다.

노장군1 어인 말씀을...

노장군2 옛 신라의 장수들은 참으로 계책이 뛰어났지요. 고구려나 백제보다 군사력이 떨어졌지만 탁월한 계략으로 삼국을 통일로 이끌지 않았소이까?

노장군3 화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소이다. 우리 신라는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았소이까? 헌데 지금의 화랑에게는 그런 것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소이다. 모두 다 썩었어요. 화랑으로서 특권만 누릴 줄 알았지 그 숭고한 정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소이다.

노장군1 왜 아니겠소이까? 화랑의 정신은 여기 효종랑에서 맥이 끊겼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이다. 화랑의 정신을 되살리지 않는 한 신라의 미래는 절망이오이다.

노장군2 이 곳 대야성은 신라의 마지막 등불이오. 이 곳이 무너지고 나면 신라의 천년사직도 끝장이 나는 게요.

노장군1 허나 이 성이 얼마나 가겠소이까? 이번을 무사히 넘긴다 해도 견훤이는 다시금 공격해 올 것이외다. 그리고 북쪽의 궁예도 무시못할 세력이구요.

노장군3 (한숨) 안타깝소이다.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폐하께서는 주색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시니... 폐하께오서 즉위하시던 때의 성총을 되찾으셔야 할 터인데..

효종 .........(안타깝다).....


씬 23 신라의 황궁 외경


자막 : 서라벌 황궁

이곳에서도 비가 내리고 있다. 풍악 소리가 질탕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씬 24 동 연회장


효공왕이 양쪽에 여인들을 끼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악공들이 풍악을 연주하고 있고 기녀들이 그 앞에서 간드러지게 춤을 추고 있다.


효공왕 좋구나.. 좋아..

기녀1 폐하, 이것 좀 드셔 보시오소서.

효공왕 오냐..


효공왕이 기녀에게 음식을 받아 먹는다.


효공왕 오 참으로 맛이 있구나.. 네가 떠먹여주니 더욱 맛이 나는구나. 허허허허..


그 때 밖에서 내관이 아뢴다.


내관(E) 폐하, 대야성에서 전령이 왔사옵니다.

효공왕 대야성에서?

기녀1 폐하, 나중에 들이시오소서. 한껏 취흥이 올랐는데 전쟁터의 이야기를 들으시렵니까?

효공왕 그렇기는 하다만.. 그래두 어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들여보내거라.


전령이 들어와 눈살을 찌푸리며 군례를 올린다.


효공왕 그래 무슨 일인가?

전령 전선의 상황을 보고 드리려고 왔사옵니다. 대야성은 김효종 성주를 비롯하여 노장군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사옵니다. 견훤이 거듭 공격을 해왔으나 이를 격퇴시켰고, 견훤의 후방에서 보급되오던 군량미를 노획하기도 했사옵니다.

효공왕 오 그래?

전령 .....

효공왕 그 견훤이라는 자도 별 것이 아니었구만. 괜히 난리가 난 것처럼 소란을 피운 게야. 가서 전하거라. 이 참에 완산주를 쳐서 짐의 영토를 회복하라고 말이야. 알겠느냐?

전령 ......

효공왕 알겠냐고 묻는데 어찌 대답이 없는 게냐?

전령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효공왕 알았으면 그만 나가보거라.


전령이 대답하고 밖으로 나간다.


효공왕 자 다시 풍악을 울리거라. 대야성의 짐의 충직한 장수들이 견훤이를 쳐부셨다고 하는구나. 참으로 기쁜 날이로다.. 하하하하....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그의 모습 위로


해설 통일신라. 천년의 사직을 이어온 거목이 서서히 쓰러져가고 있었다. 궁예가 북방을 다 차지하고 견훤이 연일 대야성을 공격하고 있었던 이 때 신라의 효공왕은 이렇듯 술에 취해 음풍농월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씬 25 명주성


궁예의 일행이 명주성으로 들어서고 있다. 백성들이 나와 ‘대왕폐하 만세’를 연호하며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김순식과 허월이 마중나와 궁예들을 맞고 있다. 그들 안으로 향하면


해설 (계속해) 그 즈음 고려의 궁예는 북원을 출발해 명주성에 이르러 있었는데..


씬 26 동 연회장


궁예와 일행들, 허월, 김순식 등이 모여 조촐한 연회를 벌이고 있다.


김순식 폐하, 늦었지만 지난 번 양길과의 전투에서 대승하신 것을 다시금 감축드리옵니다.

궁예 (덤덤하게) 고맙소.

김순식 폐하의 영토가 이남의 충주와 청주, 괴양에 이르렀다 들었사옵니다.

궁예 그 일은 여기 왕장군의 노고가 아주 컸소이다.

왕건 아니옵니다, 폐하.. 소장이 한 일이라고는 군대를 이끌고 성으로 들어간 것 뿐이옵니다. 모두가 폐하의 성덕이시옵니다.

궁예 허허허.. 이렇다니까.. 왕장군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는단 말이야. 하하하..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허월 ........

궁예 우리가 남진을 과감하게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명주가 튼튼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오. 김성주 그대가 없었다면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그 곳들을 얻지는 못했을 게요.

김순식 황공하옵니다, 폐하..

궁예 허허허.. 자 드십시다.


궁예가 잔을 들자 모두들 잔을 치켜든다.


연화 한 가지 성주께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김순식 예, 하문하시오소서, 황후마마.

연화 이 곳 명주에 폐하의 아드님이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북원부인이 낳은 그 아이 말입니다.

김순식 ......!


순간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진다. 왕건은 놀라는 표정이고, 궁예는 여전히 덤덤하다.


왕건 (놀라며.E) 폐하께 아드님이 계셨단 말인가......?

연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까?

김순식 그게.. 저...

은부 .......

궁예 그만 두시구려. 지금 그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닌 것 같소.

연화 폐하의 혈육이면 신첩에게도 자식이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어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궁예 허허허.. 허나 이미 속세와 절연하고 불가에 입문을 한 지 오래요. 굳이 속세의 인연을 다시 들추어서 무엇하겠소?

연화 하오나...

궁예 자 그만 돌아들 가 쉬시구려. 먼 길을 왔더니 피곤하오.

김순식 예, 그리 하시오소서. 그럼 신들은 물러가겠사옵니다. 일어들 나시지요.

연화 .......


모두들 나가고 그 곳엔 궁예와 연화, 은부만 남는다.


연화 폐하..

궁예 그 이야기라면 그만 두시구려.

연화 혈육의 정을 어찌 인력으로 끊을 수 있겠사옵니까? 북원 부인과 만나게 해 주시오소서.

궁예 황후가 나설 일이 아니오.

연화 폐하....?

궁예 돌아가 쉬시구려..

연화 부디 자비를 베푸시오소서. 폐하께서는 자비로운 미륵부처님이 아니시옵니까? ....폐하를 믿겠사옵니다.


연화가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은부 답답한 일이옵니다, 황후마마께서 자꾸 저러시면...

궁예 놓아두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다른 여인 같았으면 투기를 부려도 한참 부릴 일이 아니던가? 나는 황후의 저런 갸륵한 마음씨가 마음에 드네. 과연 일국의 황후로서 갖추어야 할 훌륭한 미덕이 아닌가? 허허허...

은부 그렇기는 하오나....


은부의 착잡한 모습에서...


씬 27 인서트(밤)


비구름이 하늘 가득 몰려 있다. 천둥 소리가 으르렁 거린다. 이 곳에도 비가 내리려는 모양이다.


씬 28 미향의 숙소


미향이 정신이 반쯤 나간 멍한 눈빛으로 무서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시녀 월이가 차마 뭐라 말도 꺼내지 못할 만큼 미향은 변해 있다.


미향 내 자식을 꼭 보고야 말 것이니라.

월이 ......?

미향 이 곳에 내 아이가 살고 있어.

월이 마마...

미향 달리 보낼 곳이 없느니라. 이곳에 있느니라.


그 때 환청이 들려온다.


아이(E) 어머니...


미향이 환청을 듣고 놀라며 주위를 돌아본다.


월이 마마, 왜 이러시옵니까?

미향 나를.. 나를 부르고 있느니라.

월이 누가 말이옵니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사옵니다.

아이(E) 어머니... 어머니..

미향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이냐? 그래... 에미니라.. 에미가 여기에 와 있느니라.

월이 마마.. 정신을 차리시오소서.

미향 아들아.. 아들아...


아이를 부르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월이가 말리지만 한사코 뿌리치고 밖으로 나간다.


월이 마마.. 마마..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마마..


씬 30 김순식의 거소.


김순식이 고심하고 있다. 부장이 곁에 앉아 있다.


김순식 음... 참으로 난감한 일이로고.. 아무래도 한바탕 큰 소란이 일 것 같구만.. 북원부인이 왔으니 가만 있지는 않을 게야. 게다가 황후마마까지 저러시니...

부장 ........

김순식 폐하의 아드님은 잘 계시겠지?

부장 예, 성주님. 가끔씩 굴산사에 들러 잘 계시는가 확인을 하고 있사옵니다.

김순식 참으로 냉정도 하시지.. 대왕 폐하 말일세. 그래도 혈육인데.. 아드님이신데....

부장 .........


그 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군사(E) 들어가실 수 없소이다.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미향(E) 비키거라.. 내 아이를 찾으러 왔느니라. 비키거라.

군사(E) 아니 된다 하지 않았소. 이 곳은 성주님께서 계시는 곳이오. 이 이보시오.


미향이 실성한 모습으로 뛰쳐들어온다. 군사들과 월이도 따라들어온다.


부장 (벌떡 일어나며)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너희들은 뭐하고 있었느냐?

김순식 놔두게. 자네들은 물러가 있게.

부장 예?

김순식 나가 보란 말일세.

부장 .....예..


미향이 애원하듯 다가선다.


미향 성주님.. 제발 부탁이옵니다. 제 아이를 한 번만, 한 번만 만나게 해주시어요.

김순식 마님의 아드님은 이 곳에 계시지 않사옵니다.

미향 (도리질치며) 아닙니다. 전 다 알고 있습니다. 이 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김순식 ..........

미향 (울며) 성주님... 제발... (무릎을 꿇으며) 이렇게 비옵니다.

김순식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미향 어미가 자식을 보자는 것이옵니다. 그것이 잘못이옵니까? 성주님께서도 자식이 있으실 것이 아니옵니까?

김순식 ............

미향 성주님...


그러나 김순식은 묵묵부답이다. 간절히 애원하는 미향의 그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씬 31 인서트


밤하늘이 번쩍하며 갈라지고 있다.


씬 32 그 밤/김순식의 처소 밖


그리고 하늘이 무너질 듯한 천둥소리. 비는 계속해 쏟아지고 있다. 미향이 군사들에 이끌려 나오고 있다.


미향 이럴 수는 없사옵니다. 이럴 수는.. (그대로 주저 앉으며) 성주님, 성주님...! 내 자식을 보겠다고 하는데 왜 아니 된다고 하십니까? 내 아들을 데려오시오. 내 아들을 데려오란 말이오.


왕건이 그 쪽으로 오다가 그 모습을 본다.


왕건 ......?


씬 33 어느 일각


은부가 놀라고 있다. 금대가 보고를 하고 있다.


은부 뭐라, 북원 부인이?

금대 예, 장군.. 지금 김성주의 처소 밖에서 아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소란을 피우고 있사옵니다.

은부 이런... 폐하께서도 이 일을 알고 계시는가?

금대 아직 모르시고 계실 것이옵니다.

은부 (벌떡 일이나며) 가세.


은부가 앞장서 가면 금대들이 따른다.


씬 34 그 곳 마당


미향이 빗속에서 울며 애원하고 있다.


미향 내 아들을 만나게 해 주시오. 내 아들.. 내 아들...

왕건 마님, 일어나시오소서. 여기서 이러신다고 아드님을 만나실 수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미향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은 내 아들을 꼭 만나고 말 겝니다.

왕건 .....(한숨)....


그 때 은부와 내군 군사들이 무섭게 들이닥친다.


은부 끌어내게.


군사들이 달려가 미향을 붙들어 일으킨다.


미향 놔라. 놔라 이놈들..! 썩 놓치 못하겠느냐? 내 아들을 봐야 하느니라. 내 아들을...

은부 어서 처소로 뫼시거라.


군사들이 발버둥치는 미향을 거의 들다시피 하여 어디론가로 끌고 간다. 김순식이 밖으로 나온다. 은부가 그 쪽으로 다가간다.


은부 소란을 피워들여 죄송하게 됐소이다.

김순식 ......(착잡하다)....

왕건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아이를 만나게 해 주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려운 일이란 말입니까?

은부 아니될 말이오. 그 아이는 묻혀져야 할 사람이오. 이제 다 잊혀져 가는데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킨단 말이오?

왕건 자식과 생이별을 한 어미의 마음도 헤아려야지요?

은부 장차 분란의 소지가 될 사람이오. 황후마마께서 태자 아기씨를 생산하시면 다 사라져야 할 것들이란 말이외다.

왕건 .......


그 때 허월이 다가온다.


허월 야심한 밤에 웬 소란들인가?

은부 오셨사옵니까?

허월 이제 비가 그치나 보구먼.. 들어가세.

김순식 예, 아버님..


허월과 김순식이 들어가고, 그 자리에는 왕건과 은부만 남는다.


은부 왕장군의 눈에는 이 사람이 지옥에서 온 야차같이 보일 게요.

왕건 .......

은부 허나 누군들 이런 일이 좋아서 하겠소이까? 하지만 황실과 이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는 누군가 이런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오. 나는 이 나라와 폐하께 목숨을 맡긴 사람이오. 그 분을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목숨을 내놓을 수 있소이다. 왕장군은 그렇지 않소이까?

왕건 ...........

은부 가세.


은부와 수하들이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보다가 왕건이 안으로 들어간다.


씬 35 동 안


허월과 김순식, 왕건이 마주해 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허월 허... 참으로 딱한지고... 나무 관세음 보살...

김순식 어찌하면 좋겠사옵니까, 아버님?

허월 ........

왕건 인륜의 일이 아니옵니까? 만나게 해 주시지요.

김순식 허나 폐하께서는 아무런 답이 없으셨소이다.

왕건 폐하께서 직접 지시를 하실 수는 없는 일입니다. 허나 굳이 말리지 않으신 걸 보면 허락을 하신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김순식 하지만....(한숨)

허월 왕장군의 말이 맞네.. 폐하께서는 미륵이실세. 이런 일은 이미 넘어서신 분이란 말일세.

김순식 허면....?

허월 아이를 데려오게. 그 여인이 가엾지 않은가?

김순식 ........


씬 36 인서트


짙은 먹구름 사이로 달이 모습을 드러낸다.


씬 37 황후의 거소


연화와 시녀 월이가 마주해 있다.


연화 답답한 일이구나.. 아이를 만나게 하는 것이 무에 어려운 일이시라고...

월이 .......

연화 참으로 비정한 처사이니라.. 사내들의 세계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 어미와 자식간에 생이별을 시켜 놓다니..


연화의 착잡한 모습에서..


씬 38 궁예의 거소


궁예는 참선에 들어 있다. 왠지 불길한 예감에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바깥쪽을 바라보면...


씬 39 미향의 거소 안


미향이 몸부림을 치며 발광하고 있다.


미향 아니된다. 이럴 수는 없느니라. 문을 열어라! 어서!


문을 쾅쾅 치며 소리친다.


씬 40 동 밖


군사들이 방문을 큰 나무로 막고 있다. 안에서는 미향의 발광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나오고 있다. 월이가 발을 동동구르며 울고 있다.


미향(E) 어서 문을 열지 못하겠느냐? 내 아들을 보러 갈 것이니라! 어서 문을 열어라! 어서!


그러나 군사들은 아랑곳 않고 문을 봉쇄하고 월이를 끌고 사라진다. 월이가 끌려가며 발버둥친다.


월이 마님.. 마님...!


씬 41 동 안


미향 이놈들아.. 어서 문을 열어라.. 내 아들... 내 아들을 만나야 하느니라.. 내 아들...


그러다가 미향이 그대로 주저 앉아 통곡을 한다. 다시 환청이 들려온다.


아이(E) 어머니... 어머니...

미향 ......? 아, 아들아.. 에미니라. 에미가 여기 있느니라. 어디 있느냐? 어서 나와 보거라.

아이(E) 어머니.. 어머니...

미향 아들아.. 아들아...


미향이 실성하여 방안을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황촛대를 쓰러뜨린다. 불은 휘장에 옮겨붙으려 삽시간에 번져나간다. 그러나 미향은 전혀 개의치 않고 아이를 부른다.


미향 아들아.. 어디 있느냐? 이 에미가 보이지 않느냐?

아이(E) 어머니.. 어머니..

미향 아들아.. 아들아..


방안 전체에 불길이 치솟는다. 미향은 이제 완전히 실성하여 울부짖는다.


미향 아들아.. 아들아.....!


불길 속에서 절규하는 미향의 그 처절한 모습에서.. (*)











첨부파일 태조왕건40.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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