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41회>
씬 1 명주성 / 미향의 거소 앞
미향의 거소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 시뻘건 화염이 그 밤 하늘 위로 무섭게 치솟아 오른다. 성안의 군사들이 달려나와 당황하여 소리친다.
군사 불이야...불이야.......
그 때 처소로 향하던 왕건이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고는 경악한다. 그곳은 미향의 처소인 것이다. 왕건이 급히 달려간다.
왕건 북원 부인의 거소가 아닌가? 뭣들 하느냐? 어서 불을 잡지 않고! 어서 물을 가져오거라. 어서.......
군사들 예.
군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왕건이 병사의 창을 빼앗아 들고 직접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열려고 한다. 그러나 나무로 막혀 있는 문이 열릴 리가 없다.
왕건 대체 어찌된 일인가? 문이 막혀 있지 않는가?
왕건이 그 문을 부수려 수차례 몸을 던지보지만 소용이 없다. 천정에서 불덩어리 하나가 떨어지며 왕건을 덮쳐온다. 왕건이 피하면..
군사 어서 피하시오소서. 어서.........
왕건 아니 되느니라. 북원 부인께서 저 안에 계시지 않느냐?
군사 쉽게 잡힐 불길이 아니옵니다. 이러다간 장군님마저 위험하옵니다.
왕건 .............(어쩔줄 모르고)
씬 2 동 안
미향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처절하게 죽어가고 있다. 점점 초점을 잃어가는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미향 ...아들아.. 내... 아들.....
그녀의 두 팔이 힘을 잃고 허워적 거린다.그리고 서서히 불길 속에 그 모습이 감추어져 간다. 불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씬 3 그 밖
군사들이 아우성치며 불길을 잡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불길은 더욱 미친 듯 타오르고 있다. 왕건은 처참한 몰골로 망연자실해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은부와 김순식이 각각 그 곳으로 다가온다.
은부 대체 어찌된 일이오?
왕건 ........
은부 오 이런.. 어쩌다가 이런 일이...
왕건 ....(분노의 눈빛으로 본다)....?
김순식 안에 사람이 있소? 북원 부인이 저 안에 있느냐는 말이오?
왕건 ......(무겁게 끄덕인다).....
김순식 무, 무엇이라? (경악하며 은부를 본다)
왕건 너무..... 너무..... 늦었습니다.
은부 ........(어두운 표정으로 도리질을 치고 있다).......
씬 4 연화의 처소
연화가 온 몸을 파르르 떨고 있다.
연화 뭐라? 지, 지금 북원 부인의 처소에 불이 났다고 했느냐?
슬이 예, 마마.. 성안이 온통 난리옵니다.
연화 오 이런... 어떻게 그런 일이... (벌떡 일어서며) 아니 되느니라.. 그리 되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연화가 허둥대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슬이가 그 뒤를 따른다.
씬 5 궁예의 처소 앞
금대가 내관에게 뭐라 얘기하고 있다. 내관이 대경실색한다.
씬 6 동 궁예의 처소 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참선에 들어있던 궁예가 가만히 눈을 뜬다.
궁예 밖에 내관 있는가?
내관(E) 예, 폐하..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온다.
궁예 대체 어인 소란인가? 왜 이리 성안이 시끄러운 게야?
내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불이 났다 하옵니다. 아주 큰 불이 났다 하옵니다.
궁예 불이나다니? 어디서 말인가?
내관 그것이..... 북, 북원 부인의 처소이옵니다.
궁예 (놀라) 뭐라? 보살의 처소에 불이나?
그 경악스러운 궁예의 모습에서
씬 7 다시 그 현장
군사들에 의해 불길이 조금씩 스러져가고 있다. 그 아우성 속에 궁예가 급히 다가오고, 황후와 허월도 온다.
궁예 어찌된 일인가? 도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은부 망극하옵니다, 폐하...
연화 .....(아찔하다)....!
궁예 안에 사람이 있었는가? 미향 보살 말일세.
은부 망극하옵니다, 폐하.. 모두가 행궁의 책임을 맡고 있는 소신의 불찰이옵니다.
궁예 ..............이럴 수가.....이럴 수가....
은부 용서 하시오소서...최선을 다 했사오나....
은부, 더욱 허리를 숙인다. 모든 이들이 말을 잃고 침묵한다. 궁예는 오랫동안 타고 있는 불길을 그렇게 보고 있다.
연화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궁예는 오랫동안 그렇게 사그러지고 있는 불길을 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탄식을하며 한 켠으로 돌아 선다. 그 때 김순식의 부장이 동자승을 데리고 한 쪽으로 다가온다. 동자승은 영문을 모른 채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다. 김순식이 이른다.
김순식 .....(동자승에게) 이리 뫼세게.
김순식이 동자승을 데리고 궁예에게 다가간다. 동자승은 놀란 눈으로 불타고 있는 미향의 처소를 바라보고 있다.
동자승 (허월에게) 불이....불이..났사옵니다.
궁예 ...............?
동자승 불이옵니다.......대사님, 불이옵니다
허월 그런 것 같구먼요..... 이 쪽은 대왕폐하십니다.
궁예 ....(이미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 보았다)
김순식 폐하... 신의 아버님 절에서 맡고 있었던 ...그..아기씨옵니다.
궁예 ......(충격) 이 아이가... 그 아이란 말인가...?
모두들 궁예와 동자승을 바라본다.
허월 어서 인사를 드리세요. 대왕폐하십니다.
동자승 .......... (허리를 깊이 숙여 합장을 한다)
궁예 (눈빛이 흔들린다) ....오....법명이 무엇인고?
동자승 효선이라 하옵니다.
궁예 효선이라.. 효선... 네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동자승 (천진난만한) 예. 주지스님께서 일러주셨사옵니다. 어머님은 관세음보살님이시고 아버님은 미륵 부처님이시라 하셨사옵니다.
궁예 (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래......그랬구먼.....미륵과 관세음보살이라.....
동자승 ..........?
연화도, 왕건도, 은부도 모두 동자승에게 시선이 쏠린다. 그러나 궁예는 애써 냉정을 되찾으며 시선을 거두고 다시 불길을 보다가 멀리 하늘을 본다.
궁예 (탄식하듯) 업이로고..............무진번뇌로다. ..데리고 가게...
김순식 뫼셔 가거라.
허월 자, 폐하께...다시 인사를 드리시지요.
동자승 예....
동자승이 합장을 한다. 궁예가 도리질을 한다. 동자승이 부장에게 이끌려 그 곳을 벗어나려 하는데 불을 끄며 안으로 들어가던 군사들의 소리가 들려 온다.
군사 시신이 한 구 있사옵니다. 북원부인 마님 같사옵니다.
모두들 놀라서 안을 본다. 궁예는 절망적으로 눈을 감는다. 연화는가슴을 부여잡으며 다시 눈물을 닦는다. 웅성거리는 소리들과 함께 군사들이 불에 타다가 만 미향의 시신을 비단으로 덮으며 끌어내오고 있다. 그예 황후가 흐느낀다. 은부가 떠나기를 재촉한다.
은부 폐하, 황후마마와 함께 어서 이 곳을 떠나시오소서...보실 일이 아니시옵니다.
궁예 아이부터 여기를 떠나게 하게............
동자승 누가 죽었나보옵니다. 대사님...누가 죽었나보옵니다....?
궁예 어서 데리고 가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는가?
궁예가 소리치자 김순식의 부장이 급히 동자승을 데리고 간다. 동자승은 가면서도 여전히 부길에 눈이 가 있다, 궁예도 천천히 긴 한숨을 터트리며 발길을 돌린다. 돌아서 가는 궁예의 뒷모습을 보는 왕건의 안쓰러운 표정에서....
씬 8 궁예의 처소외경
씬 9 동 처소 안
궁예가 홀로 술을 마시고 있다. 침통한 표정이다. 도리질 치며 술잔을 들이킨다. 그 허전하고 외로운 모습에서..
씬 10 연화의 처소
연화가 떨며 울고 있다.
연화 그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너무도 가엾지 않느냐?
슬이 ......
연화 그 아이를 보았느냐? 아무것도 모르는 그 천진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구나.. 제 어미가 불에 타 죽은 줄도 모르고....누가 죽었느냐고 묻고 ....있었어....(눈물 닦으며) 얼마나 아이를 보고 싶어 했느냐?
슬이 (역시 눈물)...
연화 ...........비정한 일이다. 너무도 가여워....
씬 11 김순식의 처소 외경
허월(E)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구나.
씬 12 동 안
허월과 김순식이 마주해 있다.
허월 잘못 보앗어.
김순식 어인...말씀이시옵니까, 아버님?
허월 아무리 그래도 인연을 맺은 사이인데..... 어찌 그게 죽일 수 있단 말이냐?
김순식 죽이다니요...? 사고였사옵니다. 아버님.....
허월 그 여인을 그리 몰아간 것이 누구라더냐? 폐하께서 조금이라도 인정을 베푸셨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니라.
김순식 폐하께서는 일국의 황제이시옵니다. 어찌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실 수가 있겠사옵니까?
허월 지나친 처사였느니라..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서야 어찌 참미륵이라 할 수 있겠느냐?
김순식 아버님?
허월 알고 있느니라. 신성한 미륵부처이고 동시에 신성한 황제임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려면 여색도 멀리 해야하고 자식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게야.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가리워질 일들인가.... 한 소식 얻어서 깨달았다는 사람이...대범하게 자신을 들어내지 못하고 감추려 하다니....어리석은 일이다.
그 때 다시 천둥소리가 계속해 들려온다.
허월 마른 번개가 치는구나. 하늘도 슬퍼하시고 노하신 모양이다.
김순식 .......
허월 그 아이는.....?
순식 다시 굴산사로 올려 보냈사옵니다.
허월 .....비정한 일이다. 에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아비가 한 나라의 제왕인 줄도 모르고.. (한숨처럼) 하기사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편이 더 낫겠지.. 초부로 평생을 살다가 가는 것처럼 자유로운 인생은 없지.
도리질 치는 허월의 착잡한 표정에서..
씬 12 인서트(낮)
다시 비가 쏟아지고 있다.
씬 13 궁예의 처소
궁예가 연거퍼 술잔을 넘기고 있다.
내관(E) 폐하, 왕장군께서 오셨사옵니다.
궁예 아우가...? 들라 하게.
왕건이 들어온다.
왕건 ....폐하....
궁예 자 이리 앉아. 술 한 잔 받게.
궁예가 자신의 잔을 왕건에게 주고 술을 따라준다.
왕건 (잔을 받아만 놓고) 폐하.. 얼마나 상심이 크시옵니까?
궁예 가슴 아픈 일일세. 아직도 믿기지가 않으이........
왕건 성심을 굳건히 하시오소서, 폐하.
궁예 나는 알고 있었네...그 보살이 머지 않아 죽으리라는 것을.....많은 사람들이 그 여인이 살아있는 것을 원치 않고 있었거든..
왕건 ..............
궁예 허긴... 혁명을 꿈꾸는 사내에게 오는 여인들이란 모두가 비극으로 끝이 나게 되어있어.
왕건 ..........
궁예 어서 마시고 한 잔 주게나.
왕건이 술잔 비우고 궁예에게 잔을 건넨다. 궁예가 다시 술을 벌컥 마신다.
궁예 .......나는 생과 사를 초월하였네. 각고의 공부 끝에 깨달음을 이루었고 도의 경계를 넘어 미륵이 되었네.... 그러나.. 그러나... 미륵의 경계 그 안 쪽에는 ....여전히.. 인간이 존재해 있었네. 피가 끓고 심장이 뛰는 인간 말일세.
왕건 .......?
궁예 (취기가 도는 듯 하다가) 황후를 보아야겠네. 생각해보니...죽은 보살이나 황후나....모두가 내게서는 안해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였지. 그 래도 내가 서방이고 사내인데 말이야......그렇지 않은가...? 나는 황제 이전에 저들의 서방이란 말일세......아니 그런가...?
왕건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오늘 밤은....황후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왕건 .............................
궁예 밖에 내관 있는가?
내관 (E) 예..폐하
궁예 황후를 오라하라. 어서 이리로 오라고 해.
내관 예, 폐하.
내관이 들어와서 다시 영을 받아 나간다. 궁예는 거듭 마신다.
궁예 인간이 말일세....인간 이상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야...(왕건을 보다가) 이보게 아우....... 황후 말일세. 아우 보기에는 어떠한가...?
왕건 .......?
궁예 아름답지 아니한가...?
왕건 ........
궁예 얼굴도 아름답고 ...마음도 아름다워....아무 것도 내게 바라지 않아...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말이야..... 죽은 보살은 그렇지 않았어. 많은 것을 갖고 싶어했었지....실은 그럴만도 했네.....(사이)....... 그 아비의 땅과 기업을 내가 빼앗았고...또 내 자식을 나았어...
왕건 폐하,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오나...도리가 없는 일이었사옵니다.
궁예 아니야.....좀 더 내가 인간답게 살갑게 해주었다면 그렇게까지 허망하게 죽지는 않았을게야.....이제 황후까지 그리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이드네....내가 미륵이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하다는 것을...오늘은 말해주고 싶네. .아우....어떤가...?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폐하께오서는 이 나라의 지존이시옵고 미륵이시옵니다. 산은 영원히 그리 믿고 있사옵니다.
궁예 허허허.....마음에 없는 소리 말게.아우만은 솔직해야 해...
왕건 폐하......?
씬 14 연화의 처소 앞
상궁들이 대기해 있다.
연화 (E) 어찌 되었는가?
씬15 동 안
연화가 제조상궁에게 묻고 있다.
연화 시신은 수습하였다더냐?
제조 예, 마마.. 인근 절로 옮겨가 화장을 하고 있다 하옵니다.
연화 .....그리 되었구나.. 끝내 가는 길마저 그렇게 외롭게 떠났구나.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던 아드님도 보지 못하고...화장은 어디서 한다더냐?
제조 그 아드님이 계시는 절에서... 다비중이라 들었사옵니다..
연화 세상에........... 세상에.....
다시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 때 밖에서 상궁의 소리가 들려온다.
제조상궁(E) 마마, 대전 내관이 왔사옵니다.
연화 .....? 들이게.
내관이 안으로 들어온다.
연화 무슨 일인가?
내관 폐하께서 찾아 계시옵니다.
연화 폐하께서..?
내관 예, 속히 뫼셔오라는 분부가 계셨사옵니다. 어서 가시오소서.
연화 ........?
연화의 의문의 표정 위로 허월의 소리가 들려온다.
허월(E) 폐하께서는 지금 어찌하고 계신다더냐?
씬 16 김순식의 처소
김순식과 허월이 마주해 있다.
허월 홀로 계신다더냐?
김순식 아니옵니다. 왕장군과 함께 계신다 하옵니다.
허월 왕장군과?
김순식 예.. (잠시 사이) 아버님, 우리도 폐하께 가봐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위로의 말씀이라도 드리는 것이....
허월 놔두거라... 공연히 번잡하기만 할 것이니라. 무엇하면 술이나 한동이 보내 드리거라.
순식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허월의 깊은 한숨에서
씬 17 궁예의 처소 앞(해질녘)
연화가 내관, 상궁들과 함께 다가온다.
내관 폐하, 황후마마께서 오시었사옵니다.
궁예(E) 드시라 하게.
씬 18 동 안
왕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화를 맞는다. 연화가 왕건을 보고 뜨끔한다.
왕건 어서 오시오소서, 황후마마.. (궁예에게) 허면 신은 이만 나가보겠사옵니다.
궁예 (이미 만취한 채) 아니야 아니야.. 함께 마시세. 우리 셋이 말이야.. 왜, 불편한가?
왕건 ...그런 것이 아니오라...
궁예 황후라 생각치 말고 그저 형수라 생각하고 편히 대하게. 그래야 황후도 편할 것이 아닌가? 아니 그렇소, 황후?
연화 ........
왕건 ........
궁예 자 황후도 한 잔 받으시구려.
궁예가 연화에게 잔을 따라준다.
궁예 황후의 상심이 클 것 같아 불렀소이다. 그동안 돌아간 미향 보살과 친동기간처럼 지내시지 않았소?
연화 ......
궁예 딱한 일이오. 그렇게 허망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소?
연화 너무하셨사옵니다.
궁예 .......?
연화 자식을 보겠다는 어미의 바램이 그리 잘못된 것이었사옵니까?
궁예 .....그럴 수밖에 없었소이다. 아이를 위해서 그리했던 것이오. 어미가 그러했듯이 축복받지 못한 인생이었소.
연화 그래도 한번쯤은 만나게 해줄 수도 있지 않았사옵니까?
궁예 글쎄........황후께서는 아직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시는구료. 아이를 위해 그리 했다고 하지 않았소?
연화 아이의 일도 그러했지만...북원부인이 폐하를 얼마나 사모하였는지도폐하는 모르시옵니다.
왕건 ........!
궁예 그건 그런 것 같소...내가 너무 몰랐소이다...하지만.......(자조적으로) 목숨을 버릴 만큼 그런 것인줄은 몰랐소이다....
연화 .......?
궁예 나는 여지껏 인간의 감정따위는 부질없는 망상이라고 치부해 왔소. ...헌데... 헌데.... 그렇지가 않은모양이구료. 오늘밤 나는 황후와 있고 싶소.
왕건 .........................
궁예 아우에게도 그렇게 말을 했소...오늘은 황후와 지낼 것이라고 말이오. 미륵이 아닌 인간이 되어보겠다고 말이오.
연화 ........?
순간적으로 연화는 왕건을 본다. 놀라고 참답한 모습으로...왕건은 시선을 외면한다.
궁예 인간이 되어보는 것이야, 인간 말이야....
허탈하게 웃는 궁예의 모습에서
씬 19 동 밖(밤)
왕건이 궁에의 처소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비는 계속해 내리고 있다. 까닭모를 긴 한숨을 토해내며 밤 하늘을 본다. 궁에의 소리가 들려 온다.
궁예(E) 자 이리 가까이 오시구려. 어서요.
왕건이 떨쳐내려는 듯 빗속으로 향한다.
씬 20 동 안
연화가 파르르 떨며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궁예를 바라보고 있다.
궁예 지금 떨고 계시는 게요?
연화 .....폐하,
궁예 무엇이 그리 무섭소이까? 나는 황제고 그대는 황후요. 그리고 우리는 부부올시다. 남녀가 만나 몸을 섞고 부부가 그 인연을 맺는 것은 당연한 것이오.
연화 ........
궁예 자 이리 가까이 오시구려..
연화의 손을 끌어당겨 잡는다. 연화의 팔뚝의 연비자욱이 드러난다.
궁예 그래.. 연비를 했었지.. 난 그대에게 보살이 되라 일렀는데 내 스스로 그 말을 거두게 되었구려..
연화 .......
궁예 지난 번 죽주에서 황후가 여인으로 보여 참으로 당혹스러웠다오. 내 안에 남아 있는 욕망의 찌꺼기를 한없이 자책했소이다. 허나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소이다. 내 마음가는 대로 행하고 싶소이다.
연화 ........
궁예 가까이 오시오. 황후..
연화 ........
궁예의 눈에 연화의 모습이 미향의 모습으로 보인다.
궁예 ........! (읊조리듯) 보살....
궁예의 눈에 물기가 어린다. 미향의 모습은 다시 연화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궁예가 연화를 끌어 안는다. 연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연화(E) 공자님.. 다 끝났사옵니다. 이제 소녀는.... 폐하의 여인이 되옵니다.
..폐하의 여인이 되옵니다.
절망적으로 눈을 감는 연화의 모습에서.. 궁에의 애무는 천천히 이어진다. 디졸브 되면..............
씬 21 그 방 외경(밤)
불이 꺼진다. 천둥번개가 무섭게 쳐대고 있다.
씬 22 왕건의 처소
왕건이 착잡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이키고 있다. 유장자가 함께 자리해 있다.
유장자 폐하께서 황후마마와 합방을 하셨다 들었네.
왕건 ........
유장자 당연하 일이네. 저분들은 부부이시고....백성과 신료들이 다 아는 황제와 황후이시네.
왕건 그렇사옵니다.
유장자 이제 자네도 새로운 여인을 만나야 할 터인데..........
왕건 ..........
유장자 모름지기 사내란 안해를 얻고 가정을 이뤄야 비로소 주변이 안정되고 바깥 일도 잘 할 수 있는 것일세.
왕건 걱정해 주시는 것은 고맙사옵니다만....
유장자 (도리질을 치며) 허허허.... 자네 고집도 그러고보면 대단하이...한 여인을 위해서 지키는 의리가 대단하이.....
왕건 ...............?
유장자 이미 혼기가 지나도 한참이나 지났네.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게. (한숨) 그나저나 송악을 떠나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구먼..
씬 23 송악/황궁외경(낮)
종간(E) 뭐라, 북원 부인이 죽어?
씬 24 동 내원
종간이 금대의 보고를 받고 있다. 염상도 함께 자리해 있다.
종간 아니 어쩌다가 그리 되었단 말인가?
금대 북원부인이 발광하여 처소에 가두어 놓았는데 그만 실수로 불이 났사옵니다.
종간 일부러 그리한 것은 아니고?
금대 아, 아니옵니다. 폐하께서 순행중이신데 어찌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자초하겠사옵니까?
종간 음... 그예 그리 되었구먼.. 참으로 안됐네 그려..
금대 .......?
종간 불쌍하게 죽은 영혼일세. 국가적인 차원에서 위령제를 지내 주어야할 것이야.
염상 예? 어인 말씀이시온지?
종간 그 여인이 사라지길 바랬던 것은 이 나라 사직을 위한 충정의 발로였네. 그 여인이 싫어서가 아닐세. 더구나 이 일이 알려지면 백성들이 혹 잘못된 생각을 품을 수도 있네. 만백성에게 폐하의 자비로우심을 보여야 할 것일세.
염상 예..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종간 황도는 물론이고, 각지의 수령들에게도 이와 같은 뜻을 전하도록 하게. 위령제를 지내고 사십구제가 끝나기까지 금주령을 내리도록 하게.
염상 예, 분부대로 시행하겠사옵니다.
종간 .........
씬 25 송악길
내군의 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나와 사방으로 퍼져 사라진다.
씬 26 신천/강장자의 집
강장자와 백씨가 마주해 있다.
백씨 북원 부인이 죽다니요? 어떻게... 순행 중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옵니까?
강장자 그러게 말입니다. 허 참...
백씨 세상에.. 끔찍하기도 하지.. 불에 타 죽다니...
강장자 어쨌든 우리 황후마마를 위해서는 다행스런 일이긴 합니다만....
백씨 예?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죽은 사람을 두고 그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옵니다.
강장자 뭐 그렇다는 말씀이지요. 험.. 신료들 모두 위령제에 참여하라는 영이 내려왔소이다. 어서 차비를 하세요.
백씨 위령제라니요?
강장자 북원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지요. 내원께서 그리 명하셨다 합니다.
백씨 내원께서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옵니다. 차갑고 냉정하기로 소문난 분이 아니옵니까?
강장자 글쎄요.. 나도 그게 좀 이상하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오라고 하니까 가봐야겠지요.
백씨 ........
백씨의 불안한 모습에서..
씬 27 황궁 어느 전각
복지겸의 얼굴이 비통 그 자체다. 환선길과 이흔암은 끌끌 혀를 차고 있다.
이흔암 북원 부인께서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더이다. 더구나 폐하의 위엄에 누를 끼치었고.... 해서 처소에 감금을 하였던 것인데.... 일이 그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라 하오.
환선길 뭐.. 안된 일이기만 하지만 내원의 걱정거리 하나는 줄었겠구먼.
이흔암 ....형님?
환선길 그렇지 않은가? 북원 부인은 이 나라 황실에 눈엣 가시와 같은 존재였어.
이흔암 (헛기침) 형님도.... 참......... (복지겸의 눈치를 보며 옆구리를 찌른다)
환선길 아니 왜 남의 옆구리는 찌르고 그러는가?
복지겸이 말없이 일어선다.
이흔암 아니, 어딜 가시는 거요, 복장군?
복지겸은 대꾸없이 천천히 그들에게서 멀어져 간다.
씬 28 동 황궁 길
복지겸이 침통한 표정으로 오고 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저 먼 하늘을 바라본다.
복지겸(E) 부디... 편안한 곳으로 잘 가시오소서. 소장이 끝내 마님과의 약조를 지키지 못했사옵니다. 이 복지겸이를 원망하시오소서.
그런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 모습에서.
씬 29 왕건의 집 외경
씬 30 동 안
왕평달과 식렴, 신 형제, 마사부, 변사부들이 모여 있다.
왕평달 그렇게 비참하게 가다니... 참으로 안됐네 그려..
마사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 아니옵니까? 자식도 빼앗기고, 생부 양길이 지아비가 되시는 폐하께 목숨을 잃었고, 결국엔 그렇게 생을 마감했사옵니다.
변사부 그러게 말입니다. 꽃다운 나이에 안됐습니다 그려..
왕식렴 명주의 사정이 말이 아니겠사옵니다. 형님께서 가 계신데 걱정이옵니다.
왕평달 조카에게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 (사이) 그건 그렇고 다른 곳의 사정은 어떠하더냐? 충주와 백제를 다녀온 장사치들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왕식렴 충주는 그대로 유금필 부장들이 잘 지키고 있다고 하옵고, 백제 역시 대야성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하옵니다. 모든 것이 소강상태이옵니다.
왕평달 나라 안이 이토록 어수선한데 그나마 다행이구나.. (일어서며) 자 그럼 일어들 나세나. 위령제를 연다하니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 일어서며..
씬 31 어느 절
순행길에 동행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문무 신료들이 가득 모였다. 스님들이 불경을 외는 소리가 장내에 가득하다. 종간이 향을 사르고 제단에 절을 하고 있다. 숙연한 종간의 모습에서....
씬 32 명주성 외경
궁예(E) 위령제라...
씬 33 동 안
궁예를 비롯해 연화와 은부, 왕건, 장자들, 그리고 김순식, 허월 등이 나오고 있다.
궁예 돌아간 미향 보살을 위해 위령제를 지낸다?
김순식 그러하옵니다. 온 나라 고을의 수령들이 북원 부인의 죽음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하고 기도회를 갖고 있다 하옵니다. 내원께서 그리하라 하셨다 하옵니다.
궁예 (묵묵히 끄덕인다) .......
연화 그게 사실입니까? 내원 그 사람이 정말 위령제를 열라고 했단 말입니까?
김순식 ....예.. 황후마마..
연화 (도리질을 치며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믿기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은부 (헛기침) 폐하, 떠나셔야 할 시각이옵니다.
궁예 (끄덕인다).....
허월 이제 내령군으로 가신다구요?
궁예 예..
허월 그곳 내령군에는 부석사라는 오래된 절이 하나 있사옵니다. 가시는 길에 꼭 한 번 들러보시오소서.
궁예 ....부석사라? 거긴 어째서요?
허월 가보시면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궁예 ....알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지요. 부석사라.. 부석사... 자 가십시다.
그들 밖으로 향하면...
씬 34길
궁예들의 순행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궁예와 연화가 나란히 다정한 모습으로 가고 있다.
궁예 (다정하게) 이보시오 황후, 계속되는 여정이오, 곤하지 않소?
연화 괜찮사옵니다.
궁예 안색이 좋지 않아보이는구려. 마차로 가야 할 것을 그랬나보오이다..
연화 아니옵니다. 괜찮사옵니다.
궁예 정말 괜찮겠소이까?
연화 예....
왕건은 묵묵히 가고만 있다. 유장자가 그런 왕건을 보고 안쓰러운 표정이다.
씬 35 충주 관아 외경(밤)
박술희(E) 뭐라? 사십구재동안 술을 먹지 말라?
씬 36 동 관아 정자
송악에서 온 전령이 영을 전하고 있다. 유금필, 능산, 박술희가 자리해 있다. 그들의 앞에는 가벼운 술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박술희 나 이거야 원... 아, 북원부인 초상하고 술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전령 내원님의 엄명이시옵니다. 이를 어길시에는 중죄로 다스리겠다고 하셨사옵니다.
박술희 에이...참 내 이거....당분간은 이걸로 마지막이구먼 그래.....
박술희가 허겁지겁 고기와 술을 입에 우겨넣는다. 산 두거비와 굼틀거리는 뱀을 겁질을 벗겨 생으로 먹고 있다.
능산 이보게, 체하겠네.. 천천히 들게.
유금필 (인상을 찌푸리며) 허.. 식성 한 번 고약도 하지. 두껍이와 뱀을 어찌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전령 ...(놀라)....?
박술희 거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 줄 아십니까? 헤헤헤.
전령이 눈이 휘둥그래져 보고 있다. 그런 박술희의 모습 위로.
해설 박술희. 생긴 것만큼이나 식성 또한 괴팍했던 것 같다. 고려사 열전 박술희 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는 육식을 좋아하여 비록 두꺼비와 개미라도 모두 먹었다." 아마도 박술희의 이런 식성은 그 시대에도 꽤나 특이하게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해설이 흐르는 동안 박술희는 어느새 그 고기들을 다 비워버렸다.
유금필 하여간 대단하구만.. 눈 깜짝할 새 다 비우다니.. 허허허..
능산 (못말리겠다는 듯 도리질을 친다)
박술희 (갑자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능산 잘 먹고나서 웬 한숨인가?
박술희 아무 것도 아닙니다.
유금필 또 견훤의 여동생이 생각난 게로구먼.. 하여간 병일세 그려..
박술희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그 여인이 눈에 어른거려 미치겠사옵니다. 꼭 한 번만 더 봤으면 원이 없겠건만...
그 때 상인 차림의 사내 둘이 그 쪽으로 다가온다.
박술희 오... 때마쳐 오는구만.. 어서들 오게나.
첩자1 다녀왔사옵니다.
박술희 그래, 상주의 사정은 어떠한가?
첩자1 별다른 일은 없었사옵니다. 다가오는 칠월 칠석이 아자개의 생일이라 하여 그 준비에 여념이 없는 듯 하옵니다.
박술희 (반색하며) 그래? ....오... 아자개의 생일이라?
박술희가 묘하게 웃는다. 뭔가 또 일을 버릴 생각인 것이다.
능산 견훤의 군대는 상주에서 아주 물러난 것인가?
첩자2 예, 백제의 모든 군사들이 대야성에 집결해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유금필 견훤이 꽤나 애를 먹는 모양이구먼.. 전 군사력을 총동원하고도 아직까지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다니... 대야성의 신라군이 그리도 대단하단 말인가?
씬 37 대야성 부근 견훤의 진영(밤)
곳곳에 횃불이 밝다. 병사들이 도처에서 신음하고 있다. 물을 애타게 찾으며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씬 38 견훤의 군막
견훤과 제장들이 회의를 갖고 있다.
견훤 갈수록 태산이구먼.. 이제 전염병까지 돌다니....
최승우 일단 물을 끓여 먹으라고 군사들에게 지시를 했사옵니다만...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사옵니다.
견훤 .......(침통하다)......
능환 .....폐하, 이제 더는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철군을 하시오소서.
추허조 아니 형님?
능환 가만 있게.. (다시 견훤에게) 폐하, 소신의 그릇된 판단으로 폐하의 군대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사옵니다. 지금으로서는 철군을 하시는 것이 그나마 남은 군사들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사료되옵니다.
견훤 .........
모두들 견훤에게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견훤 (마침내 침통하게) 철군이라.....철군이라....천하무적이라는 이 견훤이의 철기군이 신라군에게 패해서 물러간다....그대들은 어찌 생각 하는가......?.
그러나 제장들은 말이 없다. 참담한 표정들이다.
견훤 말들을 해보게....어찌 대답들이 없는가?
추허조 (울먹이며) 폐하... 억울하옵니다.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사옵니다.
견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야, 이대로 물러갈수는 없어, 하지만....하지만 어쩐단 말인가.....모두들 의욕이 꺽이고 칼을 잡은 손에 힘이 떨어졌으니 어찌 싸울 수가 있단말인가.....
추허조 (통곡하듯) 폐하.........
견훤 .......이보게 이찬..
능환 예, 폐하..
견훤 물러가도록 하세 . 이번 전쟁은 우리가 졌네.
모두들 폐하......망극하옵니다.
견훤 그리고...이찬.
능환 예. 폐하
견훤 그 동안 파진찬과 소원하게 지낸 것으로 알고 있네. 그대들은 대 백제국의 두 기둥일세. 의견이 좀 다르다고해서 서로 반목한다면 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화해하도록 하게.
능환 모두가 소신의 덕이 부족한 탓이옵니다. (최승우에게) 이보게, 이 사람의 옹졸한 처사를 용서하게나. 자네의 말을 경청해야 했네.
최승우 어인 말씀이옵니까? 소생도 책임을 깊히 통감하고 있사옵니다.
능환 고마우이..
견훤 됐어.. 그럼 된 게야. 이번 전쟁의 실패는 짐이 무리한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야. 잘못은 짐에게 있는 것이야. 그러니 더이상 잘잘못을 따지지 말게. 알겠는가?
장수들 예, 폐하..
견훤 기왕에 철군을 결심했으니 속히 서두르도록 하게. 부상자와 병이 난 군사들부터 수레에 실어 완산주로 향하도록 하게.
장수들 예, 폐하..
여전히 착잡한 견훤의 모습에서..
씬 39 길
견훤군이 완산주로 되돌아가고 있다. 견훤의 표정도 어둡고, 군사들도 어깨가 축 쳐져 의기소침해 있다. 서라벌을 도모하겠다고 당당히 출병하던 때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해설 견훤의 철군. 욱일승천의 기세로 승승장구하던 견훤은 대야성에서 생애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았다. 이후로도 견훤은 대야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공격을 감행하지만 그 때도 역시 실패에 그치고, 그의 나이 환갑이 되어서야 비로서 대야성을 함락하게 된다.신라의 자존심은 참으로 끈질기고 오래 갔던 것이다. 한편, 궁예는 이 때 지금의 영주인 내령군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씬 40 길
서산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다.
궁예 견훤이 철군을 했다? 허허허.. 천하의 견훤이도 안되는 것이 있구먼 그래.
은부 그러게 말이옵니다. 하하하
왕건 장마라는 악재까지 겹쳤으니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옵니다.
궁예 그래.. 하늘마저 천년의 명맥을 지켜온 신라일세. 너무 만만히 본 것이 화근이었구먼.
그 때 저 앞에서 내령군 태수가 군사들을 이끌고 달려오고 있다.
내령태수 어서오시오소서, 대왕 폐하. 신은 내령군의 태수 박 식이옵니다.
궁예 오 그렇소?
내령태수 가시오소서. 신들이 뫼시겠사옵니다.
은부 어서 앞을 서시오.
태수가 대답을 하며 궁예들을 이끌고 간다. 얼마쯤 가다가 궁예가 옆의 황후를 보고 나서 왕건에게 슬며시 말을 건다.
궁예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나는 이제야 사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워 가는것 같네 그려.
왕건 무엇이 말씀이시옵니까?
궁예 나는 ...어려서 버림을 받았고, 늘 쫒겨 다녔었네. 그리고 어쩌다가 자네 집까지 이르렀고 거기서 내 유모가 죽었어....승려가 되어서는 사사로운 일체의 정은 버리라 배웠지...그리고 나라를 이르키고 오늘에 이르도록 너무 바빳어... 허나 아우를 다시 만나고 또 황후를 얻게 되니 이제서야 사람의 정을 알게 되었단 말일세.
왕건 ....그러시옵니까?
궁예 암....그랬다네. 그러니 그게 공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왕건 하긴 그러하옵니다.허허허
궁예 황후는 참으로 좋은 사람이야. 아름다운 외양만큼이나 마음 씀씀이 또한 그러해.
왕건 .......소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연화 ......(비로서 이들의 얘기를 듣데 된다.)..
궁예 자네도 장가를 가게. 역시 혼자보다는 둘이 있는 것이 그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는 것 같네. 아니 그렇소 황후.....?
연화 ............(괜시리 얼굴이 붉어지고)
궁예 허허허.....내 아우에게 안해가 생긴다면 적어도 황후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인데...... 아니 그런가....?
두 사람 .....(서로를 본다)......?
궁예 안된 일이야. 신천과 송악은 바로 이웃인데 사람 잘 보는 그대의 부친이 어째서 이런 안해깜을 그냥 두었을꼬....?
그러자 두사람은 바짝 긴장 한다. 은부도 예사롭지 않은 듯 궁예를 본다.
궁예 그렇지 않은가?
왕건 ................
궁예 만약에...만약에 말일세. 아우가 먼저 황후를 알고 인연이 되었다면나는 무척이나 섭섭했을 것이야..
왕건 폐하...어찌 그런 말씀을...........?
궁예 사람의 질투는 자신을 태우고 천하를 천하를 태운다 하였던가...? 하하하하핫핫....
두사람 ...........................?
은부 .............
계속되는 궁예의 웃음에서...
(41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