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47회>
씬 1 송악의 대전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있는 궁예를 왕건이 놀라서 보고 있다.
궁예 허허허....이 사람아 뭘 그리 멍하니 보고 있는 게야...?
왕건 .......?
궁예 이보게 아우,
왕건 예........폐하,
궁예 뭔가 이상한가?
왕건 아, 아니옵니다.
궁예 자네 표정이 아주 굳어져버렸어.....?
왕건 어느 누구보다도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폐하이시옵니다....
궁예 헌데....?
왕건 그러하오신 폐하께오서 ...백성들의 고단함을 가벼이 보시는 것 같아...
궁예 뭐라.........백성들의 고단함을 가벼이....?
왕건 폐하, 폐하의 황도는 이곳 송악만으로도 지금은 별 부족함이 없으시옵니다. 폐하께오서 신에게 명하시어 지은지 불과 오륙 년이옵니다. 다시 도읍을 옮기신다 하시면 이는 그야말로 국가의 대사인지라....
궁예 이런...쯧쯧쯔.............. 이보시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에 나는 황제일세. 세상에 백성이 없는 황제도 있다던가? 백성의 아픔과 고통을 모르는 황제는 자식의 어려움을 모르는 아비와 무엇이 다른가....?
왕건 신도 폐하께서 그런 분이신 줄 아옵기에......
궁에 하지만 어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한 집안을 이끌려면은 어버이는 나름대로 식구들과 오래 살아가야 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니되네.
왕건 ...........
궁예 여기는 식구들이 영원히 오래 살 수 있는 집은 못되네. 자네의 터전으로서는 그만인데 국가 만년의 터로서는 좁고 답답하다 그 말이야.
왕건 하오나 폐하......
궁예 자손 대대로 오래 잘 살 곳으로 가야해... 그러자면 잠시의 고단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야. 누가 여기에 불만을 가질 수가 있단 말인가?
왕건 ............
궁예 아지태라는 사람은 많은걸 나에게 가르쳐 주었어. 남의 소리가 무서워서 할 일을 못한다면 언제 대업을 이루어 만대에 전할 수가 있단 말인가....?
왕건 ................?
궁예 자자... 오늘은 내가 이거 사설이 길었네 그려. 이보게 아우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오늘 둘이서 한 잔 하면서 아주 밤을 세워 보세나. 할 이야기가 많아. 아우만 오면은 나는 보내주고 싶지가 않아. 아지태를 가까이 해보게. 두뇌가 비상한 사람이야. 그리고 그.....백제의 금성 얘기도 더 해보세 그려... 아참...새 도읍지 말인데...어디가 좋겠는가 아우 생각은....?
왕건 ..............?
씬 2 내원외경 (해질녁)
군사들이 곳곳에 횃불을 밝히고 있다. 종간과 은부가 내원 그 앞뜰에서 멀리 낙조를 보고 있다.
종간 왕건장군이 아직도 폐하와 함께 대전에 들어있단 말이지...?
은부 그렇다 하옵니다.
종간 (한참 말이 없다가) 아지태는 지금 어찌하고 있는가...?
은부 폐하께오서 국가의 앞날에 대해 연구하라 하시었으니 곧 내원에 배속되지 않겠사옵니까...?
종간 내원이라..? 허허허... 곤란한 일이로군.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더니. 이제는 매일처럼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구먼 그래.
은부 앞으로 그 자를 어찌하실 요량이시옵니까..?
종간 두고 볼 밖에... 그 자가 쓸데없이 함부로 입을 놀리고 다니게 되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조정신료들이 생길 수가 있어. 두루 잘 감찰하도록 하게.
은부 예.
종간 가야할 길이 먼데 이상한 작자가 나타나서 덜미를 잡기 시작하는 구먼 그래. 허어, 이거 참...
그때, 염상이 다가와 은부에게 뭔가를 속삭인다. 이야기를 듣다가 놀라는 은부.
은부 뭣이라...? 황후마마께서...?
염상 예, 장군. 지금 어의가 황후전으로 가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종간 무슨 일인가...?
염상 내원어른, 황후마마께오서 태기가 있으시다 하옵니다.
종간 뭐라.... 황후마마께서...?
씬 3 황후전 외경
제조상궁과 기타 상궁들, 환관이 되어 들어온 진서방 등이 대기해 서 있다.
어의 (E) 틀림없사옵니다. 벌써 꾀나 오래 되었사옵니다.
씬 4 동 황후전 안
진맥을 막 끝내면서 어의가 백씨를 본다. 연화는 무표정하다.
어의 태기가 있으시옵니다. 아마도 신이 보기로는 여섯 달을 넘지 않았나 싶사옵니다마는....
백씨 세상에, 아니.. 그런데도 주변이 이렇게 모를 수가 있나..?
어의 그럴 수가 있사옵니다. 첫 아기씨는 의례 그런 법이옵지요. 그리고...
어의는 말을 머뭇거리고 주변과 백씨를 본다.
백씨 왜 그러시는가..?
어의 아무래도 신이 생각하옵기로는....
백씨 말해 보시게.
어의 태중에 계신 아기씨가 한 분이 아니신 것 같사옵니다.
백씨 그게 무슨 말인가..?
어의 아무래도 아기씨는 두분 같사옵니다. 쌍둥 아기씨 같사옵니다.
백씨 뭐라....?
연화 세상에.... 둘... 씩이나?
어의 신이 보기로는 틀림없사옵니다. 참으로 감축드리옵니다, 마마.
백씨 (좋아서)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첫 아기씨인데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아이고 감사하옵니다, 아이고 천지신명님 감사하옵니다, 이렇게 기쁜 일이..... 감축드리옵니다.마마...
연화 세상에..... (충격이다) 세상에... 이 뱃속에 아이가 둘 씩이나...
백씨 이보게 진서방 밖에 있는가...?
진서방 (E) 예, 마님....
진서방이 대답하며 들어선다. 백씨가 수다를 떤다.
백씨 마마께서 태중에 아기씨를 두 분이나 모셨다네.
진서방 예, 마님.
백씨 아, 무엇하고 있는가? 어서 이 사실을 폐하께 알려드리고 신천의 어르신께도 전해 드리게. 아이고, 세상에... 복이 넝쿨 째 들어왔구먼... 나라에 경사가 났어.
진서방이 대답하고 나간 뒤에도 백씨는 좋아 어쩔 줄 모른다. 그러나 연화는 여전히 충격적인 표정이다.
연화 둘... 씩이나.... 둘씩이나... 이 뱃속에....?
백씨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깜쪽같이 몰랐을꼬... 여섯 달이 되었다는데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는가? 하기사 마마께서 입고 계신 그 의복이 넉넉하니 누군들 알 수가 있습니까..? 세상에, 이제부터 몸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그렇구 말구요.....
씬 5 대궐 어느 전각 길 (밤)
순라꾼들이 순라를 돌고있다. 내군들인 염상과 금대가 군사들과 함께 지나쳐 가고 있다.
그 한쪽으로 환관 진서방이 두 명의 수하들과 함께 대전 쪽으로 가는 것이 보인다.
씬 6 동 대전 밖
궁예 (E) 하하하하..... 그러길래 세상은 넓은 것이야. 아, 우리가 청주를 생각인들 했는가...?
씬 7 동 대전 안
궁예와 왕건이 주안상을 앞에 놓고 있다. 궁예는 기분이 좋다.
궁예 그런데 그 청주에서 아지태를 만났단 말씀이야. 그 아지태가 그야말로 바람처럼 나타나서 나를 감동시켰네.
왕건 폐하. 물론 폐하께서는 많은 인재들을 옆에 두셔야 하옵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폐하를 보좌해 올리는 내원어른이나 은부장군 같은 분들을 소홀이 하셔서는 아니되옵니다.
궁예 소홀히 하다니...? 내 출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함께 해온 종간사형인데 내가 어찌 멀리할 수 있겠는가? 그런 걱정은 아예 말게나.
왕건 모두들 아지태 학사의 출현으로 인하여 긴장하고 있사옵니다.
궁예 허허허... 그럴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거침없이 쏟아놓으니 아니 그렇겠는가..? 하지만 아부나 하고 눈치나 보는 사람들 보다야 얼마나 시원시원한가 말이야.
왕건 정말로 도읍을 옮기실 생각이시옵니까?
궁예 그렇다 마다... 지금까지는 말로만 해온 대 북벌정책을 이제부터 현실로 옮기는 게야.
왕건 그 일들을 언제 처리하실 것이옵니까..?
궁예 서두를 수록 좋지.
왕건 하오나 아무리 마음을 그리 굳히셨다 하셔도 잠시 더 사정을 보시오소서. 무리하게 처리하시면 불필요한 오해와 불협화음이 따르게 되옵니다.
궁예 그렇다고 언제까지 기다린단 말인가..?
왕건 딱히 시일을 못 밖을 수는 없사오나 신이 시작한 일을 지켜보신 연후에 하시면 어떻겠사옵니까..?
궁예 아우가 하는 일...? 아, 그 금성을 치는 일 말인가?
왕건 그러하옵니다. 폐하. 만약에 이 일이 성공을 거둔다면 유리한 민심을 기회삼아 폐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보다 쉽게 추진하실 수가 있으실 것이옵니다.
궁예 (한참 생각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구먼.. 하긴 매사 일에는 기회라는 것이 있지. 아우가 그리 간곡히 권하니 한번 생각해 보세나.
그 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내관 (E) 폐하, 황후전에 진내관이 왔사옵니다.
궁예 황후전에서...? 무슨 일인가...? 들여라...
진서방이 (이후 진내관) 들어와 예를 올린다.
궁예 황후전에서 무슨 일로 왔는가..?
진내관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내의원에 어의가 황후마마를 진맥보아드렸사옵니다. 하온데..
궁예 .....
진내관 황후마마께오서 아기씨를 잉태하셨다 하옵니다.
궁예 뭐라...? 황후가..?
왕건 ............?
궁예 그게 정말인가..? 황후에게 태기가 있어..?
진내관 예, 뿐만 아니옵고 어의가 말하기를 황후마마께오서는 쌍둥 아기씨를 가지셨다 하옵니다.
궁예 뭐라...? 쌍둥이...? 쌍둥이란 말인가..?
진내관 예, 폐하... 틀림없다 하였사옵니다.
왕건 ............
궁예 (잠시 멍해 있다가 웃는다) 하하하.... 황후가 아이를 가졌다? 그것도 쌍둥이라고...? 이런 세상에 욕심도 많네 그려. 앗하하하하하.......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이사람아 황후가 쌍둥이를 가졌다네. 내 아이가 한꺼번에 둘 씩이나 생겼다는 게야, 둘 씩이나 말이야, 이 사람아, 핫하하하...........
왕건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궁예 암...축하받을만한 일이네. 그렇고 말고.... 거참 신기하단 말이야...이보게 아우.. 어떻게 남녀가 밤을 지세우고 나면 아이가 생기는 걸까..? 신기하지 않는가..?
왕건 .............
궁예 (다시 미친 듯 웃는다) 이 궁예의 아이가 둘 씩이나 세상에 나온다고 했어...둘씩이나.. 으핫하하하....
씬 8 황궁 외경 (아침)
정전 대문이 열리면서 여러 필의 기마병들이 쏜쌀같이 나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잠시 후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 전령들이 계속해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이다.
씬 9 병부령 관아
새로이 병부령이 된 복지겸과 환선길, 이흔암, 홍유, 김언, 김락, 배현경, 종희 등이 모여있다. 그곳에 박지윤과 장자 1, 2들이 모여 있다.
환선길 세상에, 이렇게 기쁜 일이 있나...? 아니 우리 폐하께오서 황손을 보시게 되었단 말씀이십니까..?
홍유 그렇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감축드릴 일이올시다.
박지윤 벌써 전령들이 사방 각지로 떠났다 하옵니다. 이 경사스러운 일들을 고을 수령들에게 전하여 산천의 신들께 기도드리라 하였다 하오이다.
배현경 그럴만 하지요. 사실 폐하의 보령으로 보아 황손 아기씨가 너무 늦으신것 아닙니까..?
김락 그렇지요... 많이 늦으셨지요. 하긴 뭐.. 명주 어딘가에 있다는 그 옛날의 북원부인의 아드님도 계시기는 하지마는...
복지겸 ............
환선길 (눈치를 보다가) 거, 거, 거.... 쓸데없는 말씀을 왜 또 하시는 겐가..?
김락 예...?
환선길 아 그 아기씨는 이미 잊혀진지 오래오이다. 입 밖에도 꺼내서는 아니되는 이야기예요. 아, 이렇게 답답한 분이 있나...
김락 허허... 불쑥 생각이 나서 그만....
복지겸 ......
박지윤 자... 그 일들은 그만 하시고, 오늘은 전선의 여러 이야기들을 좀 점검해 보십시다.
장자1 그보다도 아지태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한 그 이야기는 어찌 되었소이까..?
장자2 그 이야기도 좀 더 두고 보십시다. 나라 이름을 바꾼다더니 이제는 도읍까지 옮긴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고 있어요.
배현경 예...? 도읍까지 옮긴단 말이오이까..?
박지윤 허허, 이거 참..... 도대체 그 아지태라는 자가 누군데 이렇게 평지풍파를 일으키는고....?
장자2 그 일 때문에 내원어른께서도 걱정이 많으시다 하오이다. 그리고 왕건장군도 그 일로 하여 밤늦게까지 폐하를 알현했다 하오이다. 어찌 되었거나 무슨 말씀이 있으시겠지요.
박지윤 허어, 큰 일이로고.... 참으로 큰 일이야..
그런 복지겸을 환선길과 이흔암이 쑤근거리며 보고 있다. 복지겸의 얼굴은 착잡해 보인다.
씬 10 왕건 집 외경
왕평달 (E) 무엇이라..? 궁 안에 그러한 경사가 있었다..?
씬 11 동 집 평달의 방안
왕평달이 왕식렴, 왕신이 마주보며 혀를 차고 있다.
왕평달 아니 그래, 황후마마께서 아이를 둘 씩이나 가지셨단 말이냐..?
왕식렴 그렇다 하옵니다, 아버님. 벌써 전령들이 전국 유명 사찰과 기도처로 떠나 아기씨에 편안한 출생을 기도드린다 하옵니다.
왕평달 황실의 일이니 그야 그럴수 있겠지... 헌데, 건이 조카는 어디에 있는가..? 황실에서 언제 나왔는가...?
왕식렴 새벽이 다 되어서 돌아왔사옵니다. 조금 취하신 듯 했사옵니다.
왕평달 (생각하다가) 그럴 테지... 건이 조카에게는 황실의 일들이 들으면 들을 수록 불편할 테니까....하지만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논의를 했던 저 백제국 금성 얘기는 어떻게 되었는고...? 그 일때문에 궁궐에 들어갔을 것인데...
왕식렴 지금 그 일을 논의중인 것으로 아옵니다.
왕평달 으응...? 아니 새벽에 돌아왔다면서...?
왕식렴 하지만 후원에서 사부님들과 모두들 모이신 것 같사옵니다.
왕평달 그렇구먼... 그렇다면 우리도 가 봐야겠구먼...
왕식렴 예, 아버님
그들 부자가 일어선다.
디졸브
씬 12 동 집 후원 사랑
왕건을 중심으로 세 형제와 이치, 그리고 두 사부가 함께 해 있다.
이치 폐하께오서 금성의 일을 재가하셨다 하였사옵니까..?
왕건 그렇소이다.
마사부 그렇다면 이미 이 계획은 시작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하겠사옵니다.
왕건 그렇소이다.
변사부 그렇다면 정주에 있는 유장자도 참여를 하는 것이옵니까..?
왕건 일단 부탁을 드렸으니 가부간 대답이 있지 않겠습니까...?
유금필 금성의 전력을 분석해 본 결과 저들을 제압하려면 이천의 수군과 백척의 전함이 필요하다 하였사옵니다. 이 엄청난 숫자들이 과연 쉽게 감당이 되오리까...?
왕건 ........... (대답을 못한다)
박술희 감당을 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일단 목표가 섰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니옵니까...?
능산 이천 명의 대병을 끌고 배를 타고 금성까지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옵니다. 과연 쉽게 상륙하여 육지에 끝없이 몰려있는 적들을 다 제압할 수가 있겠사옵니까..?
왕평달 (들어서며) 그거는 그렇지가 않네.
들어서는 평달 부자를 보고 모두들 예를 취한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왕평달 건이 조카가 금성을 목표로 삼은 것은 그만한 지리적 여건을 감안한 것이네.
왕건 숙부님의 말씀이 맞네. 금성포구의 중요성도 중요성이려니와 그곳 천혜의 요새인 금성산성과 영산강 줄기의 병력상황을 모두 알아보고 감안하는 중이네.
능산 ........
왕건 지금까지의 첩보를 분석해 보면 금성의 고을 수령과 호족들은 백제 중앙정부와 갈등이 심하다는 게야.
왕식렴 그렇사옵니다. 후 삼국이 다 마찬가지이옵니다마는... 백제는 지난 번 대야성 전투 참패이후 다시금 대대적인 신라 공략을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그 과정에 소요되는 막대한 군비를 서남해 즉, 금성에 있는 호족들에게 상당부분 다그치고 있사옵니다.
왕평달 말하자면 우리가 노리는 금성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이런 말일세.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하는 것이야. 누가, 흔들리는 저들을 상대하여 우리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왕건은 물론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
능산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천 명의 목숨과 백척의 선박이 바닷 속에 수장될 수도 있는 일이옵니다.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이치 그렇습니다. 첫째는 저들의 사정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저들의 관리들을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또 셋째는 그 큰 전투에 소요될 배들과 군사들을 마련해야 하는 일이옵니다. 그 중 쉬운 것은 하나도 없사옵니다.
모두들 .............
왕평달 (생각하며 왕건을 보다가) 그 세 가지 모두 지금으로서는 해결할 사람이 단 한 사람 밖에 없네 그려.
모두들 ...........?
왕평달 정주의 유장자일세. 그 사람 밖에는 더는 해결할 사람이 없어.
왕건 이미 말씀을 드렸으나 대답을 아니 주셨사옵니다.
왕평달 그 대답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 사람으로서는 전 재산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거는 일이 될 것인데.... 다시 한번 찾아뵙게..
왕건 ............ (끄덕인다)
왕평달 유장자는 어차피 조카에게 호의적이네. 되도록이면 도움을 주려고 할 것이야. 그보다도 문제는 아무리 비밀이라고 해도 이런 일은 폐하 측근에서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 내원의 종간이라는 사람과 군을 지휘하는 병부령 정도는 알아야 할 것이야.
왕건 숙부님 말씀이 옳사옵니다. 허나 그럴 기회가 없었사옵니다.
왕평달 아니야... 그 사람들에게 통보를 해야 해. 잘못 오해라도 산다면 치명적인 상처로 돌아올 수도 있어. 폐하 주변 사람은 내가 입궐하여 만나 보겠네. 자네는 정주로 가서 유장자를 한번 더 만나는 것이 좋겠구먼.
왕건 알겠사옵니다, 숙부님....
씬 13 정주 유장자집 외경
유장자 (E) 무엇이라고...?
씬 14 동 유장자 집 방안
유장자가 자신의 집 집사장과 마주해 있다. 그 한쪽에 부용 모가 앉아있다.
유장자 이보게, 집사장...
집사장 예, 어르신...
유장자 금성이 어찌되었다고..?
집사장 장사차 나가있는 우리 가인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곳 수령과 호족들의 불만은 이제 노골적이라 하옵니다. 공공연히 세금을 덜내기 위해 제물을 감추고 분산한다 하옵니다.
유장자 그래...?
집사장 일전에 그곳 수군을 맡고 있는 수달이라는 장군이 태수 종례라는 사람과 대 호족인 오다린이란 사람을 완산주로 데려간 모양이옵니다.
유장자 헌데...?
집사장 견훤왕이 위로는 커녕 단단히 혼을 내서 돌려보냈다 하옵니다. 아마 앞으로도 막대한 군역을 그곳에서 강제 징수할 모양이옵니다.
유장자 (끄덕이며) 그렇구먼.... 다른 일은 없는가..?
집사장 제게 명하신 백제 수군들의 동태이옵니다마는...
유장자 그래, 그 일은 어찌 되었는가..?
집사장 서남해라고 하면 백제국으로서는 후방에 속하옵니다. 수군들이라고 해도 말만 군인이지 모두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짖거나 하는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이옵니다.
유장자 그렇겠지....
집사장 하지만 금성고을을 둘러싸고 있는 금성산 일대의 산성은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수달의 정예군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하옵니다.
유장자 그렇겠지.... 수달이라는 이름이 있지 아니한가..? 수고했네, 가 보게...
집사장 예, 어르신.. 하온데, 이번 일은 관심이 많으시옵니다마는....?
유장자 허허허... 그럴 일이 있네. 아무래도 큰 일 하나를 벌려야 할 것 같아서..... 아마도 불원간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생길 게야.
집사장 그러하시옵니까..?
유장자 적당한 시일에 상세히 말해 줌세.. 나가 보게.
집사장 예, 어르신....
집사장이 나가고 유장자는 생각에 잠긴다. 그런 유장자를 보고있다가 부인이 묻는다.
부용 모 나으리... 그 일을 결정하셨사옵니까..?
유장자 그 일이라니..?
부용 모 왕건장군이 도움을 청한 일 말이옵니다.
유장자 (끄덕이며) 아무래도 그래야 될 것 같소이다.
부용 모 위험한 일이 아니옵니까..?
유장자 물론 그렇지요. 어차피 이 시대에는 모든 것이 다 위험하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길이 끝까지 사는 길인가, 그걸 보고 따라 가야지요. 지금은 그 길이 왕건장군 쪽이오.
부용 모 너무 쉽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가운이 걸린 일이옵니다.
유장자 가운 뿐이 아니오. 목숨까지도 걸어야 할 일이오. 아마 어쩌면 왕장군은 벌써 폐하와 이 문제를 끝냈을 것이오. 지난 번에 내가 꽤 호의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주었거든...
그때, 부용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부용 (E) 어머님, 다과상이옵니다.
부용 모 들여오너라.
부용이 들어와 차를 따르고 과일 접시를 놓는다. 부용 모가 계속해 말한다.
부용 모 헌데, 나으리... 황후마마께서 회임을 하셨다는 것이 사실이옵니까..?
부용 ............?
유장자 그렇다고 하더이다. 사실인 모양이오. 아주 잘된 일이오.
부용 모 잘 되다니요...?
유장자 왕건장군이 이제는 철저히 옛 생각을 잊어버릴 것이란 말이오. 다른 곳에 시집가서 아이까지 낳았는데 무슨 미련이 남겠어요. 또 그래야만 하구요.
부용 모 (이상한 듯) 나으리께서는 왜 그리 왕장군 얘기만 나오면 신경을 세우십니까..?
유장자 몰라서 묻소이까..? 어차피 우리 집과 인연을 맺어야 할 사람이오.
부용 모 나으리... 아주 그렇게.....?
유장자 그렇소이다. 그렇게 해야겠어요.
부용 ............?
그때, 밖에서 집사의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사 (E) 나으리... 손님이 오셨사옵니다...
유장자 손님이..? 어느 분이 오셨는고..?
씬 15 동 방 밖
집사가 아뢰고 있다.
그 옆에 광치나 박지윤이 아들 둘과 함께 서 있다.
집사 광치나 박장자 어른께서 오셨사옵니다.
방 밖으로 나오던 유장자가 놀라서 보며 웃는다.
유장자 허허, 이런... 귀한 분이 오셨는데 결례를 했습니다. 자, 이쪽 별채로 드시지요...
박지윤 퇴궐 중에 술한잔 생각이 나서 들렸습니다, 하하하하...
이들 그렇게 바깥쪽으로 가면....
씬 16 동 집 사랑
박지윤과 유장자가 마주해 있다. 술잔이 오가고 있다.
박지윤 아지태가 듣자하니 내원어른께 혼이 났다고 하더이다.
유장자 허허허... 궐안의 소문은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지태라는
사람이 그렇다고 해서 무안을 당할 사람도 아니고, 허허, 그것 참....
박지윤 도대체 앞날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소이다. 그 자가 무엇인데 홍두께처럼 나타나서 나라 이름을 바꾸어라, 도읍을 옮겨라 이러쿵 저러쿵 한다 하니...
유장자 그래서 하는 말씀이옵니다마는... 저는 불안한 장래를 위해서 어느 한 곳에 투자를 좀 할까 합니다마는....
박지윤 어느 곳에요...?
유장자 왕건장군 말입니다.
박지윤 아, 왕장군... 지난번에도 그 말씀을 하셨지요...
유장자 지금 왕장군이 폐하의 밀명을 받아 큰 일을 추진하고 있소이다. 우리는 왕장군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광치나께서도 뜻이 있으시다면 동참을 하시지요.
박지윤 동참이라... ?
유장자 우리 패서계에 많은 호족들이 있지만 과연 누굴 내세우겠습니까..? 바로 왕장군이올시다. 우리들은 늙어서 아무 것도 못해요.
박지윤 그건 그래요.
유장자 깊이 묻지 마시고 이 사람을 한번 따라 주시지요. 상당한 재물을 좀 부담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허허허... 왕장군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일입니다.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일이구요.
박지윤 허... 그렇습니까..?
씬 17 황궁 외경
궁예 (E) 이보시오, 황후....?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소..? 허허허... 그렇게도 부끄러웠단 말이오..?
씬 18 동 황후전 안
궁예가 연화를 보며 웃고 있다. 백씨와 강장자도 웃고 있다.
궁예 황실의 대를 이을 적자가 생겼소이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짐에게 그 걱정을 말해주었어요. 하지만, 나는 잘 몰랐소이다.
강장자 아, 예 폐하....
궁예 그러나, 지금은 다르오. 황후가 내 아이를 그것도 둘씩이나 한꺼번에 가지고 있다니, 이야말로 경사가 아니고 무엇이오..?
백씨 그러하옵니다, 페하. 경사 중에 경사이옵니다.
궁예 조짐이 아주 좋소이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어요. 새 아이가 곧 태어날 것이고, 나라도 새롭게 변할 것이오.
강장자 그렇사옵니까..? 참으로 기쁘옵니다, 폐하.
궁예 하하하, 그렇습니다, 장인... 아무튼 이보시오, 황후..
연화 예, 폐하.
궁예 무엇이든지 잘 자시고 편히 자야하고 그리고 건강하고 훌륭한 아이를 낳아야 하오. 아시겠소..?
연화 예, 폐하.
궁예 헌데... 모두들 즐겁고 기뻐하는데... 어째서 황후는 그리 표정이 어둡소이까..? 어디 편치 않소이까..?
연화 아니옵니다.
궁예 건강하시오. 자고로 세상에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지. 암... 허허허허... 그리고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으시오. 백제의 견훤왕은 아들이 둘인데 벌써 그 아들들을 데리고 전쟁터로 다닌다는 거예요. 얼마나 보기가 좋은 일이오...? 이제 나도 부러울 게 없게 되었구려 아니 그렇소, 황후...? 핫하하하...
씬 19 백제궁 외경
견훤 (E) 이보게 이찬..?
씬 20 동 대전
최승우와 능환, 박영규, 공직, 추허조, 수달이 함께 해 있다.
견훤 지방에 내려간 아이들은 잘 하고 있는가..?
능환 예, 폐하. 두분 태자마마는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그 위용이 갈수록 대단하시다 하옵니다.
견훤 그랬으면은 오죽이나 좋겠는가..? 자네는 늘 거 그 아이들 얘기만 나오면 과장을 해서 얘기하는 통에 말씀이야...
능환 그런 것이 아니오라....
견훤 에잉.... 어려, 아직들 너무 어려... 이번 전투에도 데리고 가야겠어. 가서 담력을 키워줘야지...헌데, 하나같이 전선이 왜 다 그 모양인가..? 뭐, 좀 좋은 소식이 없으니 말이야.
추허조 본격적인 큰 전투가 없어서 그렇사옵니다. 다시 친정에 나서시오소서, 폐하.
견훤 그래야 하겠어. 이대로는 어느 세월에 다 이룰 수 있겠는가..? 답답한 일이야..
공직 그 동안 우리는 군비와 군사들을 정비하느라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우려 왔사옵니다. 그리고 군사들은 모두 의기충천하여 폐하의 영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견훤 암, 오래 쉬었지. 군사들이 정비되었으면 다시 신라땅을 도모하세나.
박영규 해볼 만 하옵니다. 북쪽의 고려는 일단 소강상태 그대로 두시오소서. 허약한 신라를 누를 때 아주 눌러 놓아야 하옵니다.
견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할 게야. 지난 번 대야성 꼴이 나지 말고...
수달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이번만은 목적하신 바를 이루실 것이옵니다.
견훤 어차피 천하는 짐과 고려의 궁예왕이 겨루게 되어 있어. 그러자면 신라를 빨리 해치우는 쪽이 승자가 되는 것이야. 이번에야말로 추수가 끝나면 대병을 동원해서 한번 몰아쳐 보세나.
최승우 예, 폐하... 강주(진주)와 의령, 궐성(삼청)을 지나 대야성을 우회해서 합포(마산)를 넘어서면 서라벌이 지척이옵니다.
견훤 그렇지, 그럴 것이야. 헌데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대야성을 우회해서 가..? 옆으로 그냥 지나쳐 가자는 말이지..?
최승우 그것이 아군에 백번 유리하옵니다.
견훤 에이그.. 그놈의 대야성 생각만 하면은 ...... 하여튼 이번에는 총력을 기울이게. 단숨에 서라벌까지 들어가야 할 것이야.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자, 오랜만에들 만났으니 우리 후원에 승평부인에게 가서 한잔 어떻겠는가..?
능환 폐하, 그곳에는 아니 가시는 것이....
견훤 왜....?
능환 승평부인께오서 지금 황후전에 들어계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견훤 황후전에..? 아니, 승평부인이 거기는 왜....? 에잉...
박씨(E) 듣자하니 회임을 했다지?
씬 21 황후전 안
박씨와 고비가 마주해 있다.
박씨 (비꼬듯) 황실이 날로 번창해 가는구먼. 이 나라 사직을 위해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아니 그런가?
고비 ...예, 마마
박씨 아주 큰 일을 한게야. 어린 나이에 용하기도 하지. (냉소적으로 웃는다)
고비 ........
박씨 허나, 폐하의 혈육을 잉태했다고 해서 절대 방자하게 굴어서는 아니될 것이야. 내 자식들과 견주려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될 일이고.
고비 이를 말씀이겠사옵니까, 황후마마..
박씨 사람이란 제 분수를 알아야 하는 것이야. 자네가 비록 폐하의 승은을 입어 수태까지 했다고는 하나 엄연히 황후인 내가 있고, 적자인 태자들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야. 알겠는가?
고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박씨 상주 아버님과 폐하께서 왜 저토록 사이가 나빠지신 줄 아는가? 다 둘째 시어머니 때문일세. 아버님께서 둘째 시어머니만 편애하시어 폐하와 능애 서방님을 멀리하신 게야.
고비 ........
박씨 하지만 나는 그런 꼴을 못보네.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절대 그런 일은 용납할 수가 없어.
고비 ..........(두렵다)
박씨 나라를 안정시킨다고 해서 난 기꺼이 자네를 받아들였어. 헌데 그런 자네가 분란의 불씨가 된다면 그냥 두고볼 수는 없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고비 예, 마마...
박씨 폐하께서 모든 장수들을 이끌고 또 다시 전장으로 나가실 것일세. 그렇다면 이 황궁은 내가 어른이야, 그렇지 않은가..?
고비 예, 마마....
박씨 우리가 잘 지내야 하지 않겠는가..?
고비 예, 마마, 그...그렇사옵니다.
두려움에 떠는 고비와 날카로운 황후의 모습에서.
씬 22 오다린의 집 외경
씬 23 동 오다린의 거소
종례와 오다린이 마주해
있다.
도영(오씨)이가 주안상을 보아주고 있다.
오다린 수달 장군이 다시 황도로 갔다지요?
종례 그렇소이다. 또 군사를 이르킨다는 거예요. 우리 처지가 참으로 한심하게 되었소이다. 이리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 격이 아니오이까?
오다린 그 그게 무슨...? 이리는 누구고, 호랑이는 또 누구오이까?
종례 그렇지 않소이까? 신라가 싫어 견훤 대왕을 따랐지만 그 때보다 나아지기는 커녕, 다 빼앗기고 이젠 빈털털이가 될 운명이오이다.
오다린 ..........
종례 폐하는 우리가 바라던 그런 분이 아니올시다. 우리가 기다린 장보고 장군의 후신이 아니예요.
오다린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들 모두 그런 긍지 하나로 지금껏 살아왔는데.. 모든 게 허사올시다.
도영 태수님, 찬은 없지만 많이 드시오소서.
종례 허허허...그래... 너는 장삿일 거드랴, 집안일 보랴, 참으로 바쁘겠구나. 이렇게 이쁜 처녀가 사내들이 할 일을 다 맡아 하니, 허어, 참....
도영 아니옵니다, 태수님.
오다린 하긴 이 아이도 이젠 시집을 보낼 때가 되었는데... 중매쟁이만 넣으면 한다하는 집안의 자제들은 모두들 도망쳐버리니...
종례 허허허... 그럴 수밖에...그야말로 도영이는 소문난 여장부가 아니오이까..? 그러니 연약한 젊은이들이 감당이 되겠소이까..? 허허허....
도영 소녀는 이만...
도영이가 밖으로 나간다.
종례 참으로 딸자식 하나는 잘 두셨소. 열 아들 부럽지 않은 아이올시다.
오다린 어인 말씀을... 하긴 저 아이가 사내아이가 할 몫을 다 한답니다. 어지간한 일은 나도 저 아이에게 대부분 의논을 하는 편이지요. 사실 사내아이로 키웠습니다 그려... 허허허..
종례 헌데, 그래도 용하십니다. 아직도 염전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그래도 소금가마니는 쉬임없이 밖으로 나가니 말이올시다.
오다린 살자니 이곳저곳 거래를 유지할 수 밖에요. 백제니 고려니 사실 우리가 무얼 압니까..? 그저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하지 않겠소이까..?
종례 지난 번에 들으니 송악 사람들과도 거래를 한다 하시던데요..?
오다린 정확히는 송악이 아니라 정주 사람이지요. 유장자라고 송악의 왕씨 만큼이나 대상이지요. 허허허... 실은 그 사람 고려 조정에서 벼슬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종례 그렇소이까..? 그런 사람과 거래를 해도... 괜찮겠소이까..?
오다린 장사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소이까..? 그나저나 고려도 요즘 시끌시끌 하다 하더이다.
종례 왜요....?
오다린 청주 사람 아지태인가 뭔가 하는 자가 나타나서 그쪽 조정이 시끌버끌 하답니다.
씬 24 송악 황궁 외경
아지태 (E) 또 뵙사옵니다, 내원어른....
씬 25 내원
아지태와 종간이 서로를
빤히 보고 있다.
아지태 이곳이 이 나라의 학인들이 머물며 나랏일을 의논하는 곳이라 하여 왔사옵니다. 널리 가르침을 주시오소서.
종간 그대같이 훌륭한 사람을 내 어찌 가르친다 하겠는가..? 아무튼 같이 지내게 되어서 반가우이.
아지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이 아지태도 실로 반갑사옵니다. 제가 앉을 책상은 어디이온지요..?
종간 빈 곳이 많으니 적당히 앉으시게나. 그리고 한 가지 일러둠세. 이 곳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관장하네. 나를 거치지 않고 폐하께 직보를 드리는 것은 앞으로는 삼가해야 할 것이야.
아지태 이미 드린 말씀이 많아 그 뒤처리가 필요하옵니다. 그것도 직보를 해 올려야 하는지요...?
종간 혼자서 날뛰다가는 좋지 않은 결과가 올 것이라는 것이야.
아지태 허허허... 내원어른께서 무서운 분이라는 것은 온 나라가 아는 일이옵니다. 삼가 조심하겠사옵니다. 그럼... 음.... 어느 자리가 비어있는고...? 옳지 저기가 비었구먼...
아지태가 구석에 빈 자리로 가서 보따리에 싸들고 책들을 주섬주섬 풀어놓고 있다. 종간이 날카롭게 보고
있다.
그때, 은부가 복지겸과
왕평달을 데리고 다가온다. 왕평달이 허리를 깊게 숙이고 예를 올린다.
왕평달 내원 어르신... 그간 편안하셨사옵니까..? 왕평달이옵니다.
종간 허허, 왕장자께서 어쩐 일이시오..? 복장군까지..?
왕평달 오랫동안 적조하여 찾아뵈었사옵니다.
종간 고맙소이다. 자, 저 쪽 내 방으로 가십시다.
종간이 한번 더 아지태를 쏘아 보다가는 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간다.
씬 26 종간의 처소
종간 (찻잔을 마시다 말고) 금성을 친다했소이까..?
왕평달 그러하옵니다. 마땅히 조카가 와서 아뢰어야 할 것이나, 워낙에 이 일을 은밀히 한다 하여 제가 여기 병부령 어른부터 만나 모시고 왔사옵니다. 불원간 시간을 한번 내어주시면 그때 저의 조카 건이가 어르신을 뫼시고 충분한 말씀을 드리겠다 하셨사옵니다.
종간 ............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보시오, 병부령..?
복지겸 예, 내원 어른.
종간 듣고보니 이야말로 하늘과 땅이 놀랄 대 기획이로구려. 백제 땅 안에 고려의 깃발을 세운다.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소관도 이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놀랐사옵니다.
종간 아무리 극비 중에 극비라 하나 군사의 통수권자인 병부령도 모르고 또, 폐하를 가장 가까이 보고하는 이 종간이도 모르다니...
복지겸 그 일을 지금 여기 왕장자가 보고를 드리러 오지 않았사옵니까...?
종간 마땅히 왕장군이 와야 하는 것이 아니오..?
복지겸 비밀을 요하다 보니 기회를 마련치 못한 것 같사옵니다. 그리고... 왕장군이 곧 내원어른을 뫼신다 하지 않사옵니까..?
종간 그렇다면, 그쯤 해 두십시다. 아무튼 대단한 모험이오. 허나 잘못하여 일을 그르친다면 왕장군의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그런 일이겠구려.
복지겸 ............?
왕평달 ............?
씬 27 유장자 집 외경
(밤)
씬 28 동 집 마당
부엌 한 쪽에서 부용이가 주안상을 보고 있다.
별채 방 쪽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부용이는 설레는 눈빛으로 그 쪽을 본다.
유장자 (E) 어차피 주사위가 이미 던져졌네 그려.
씬 29 동 집 방안
유장자와 왕건이 마주해 있다
유장자 나는 자네에게 내 모든 것을 걸기로 하였네.
왕건 그리 말씀해 주시니 참으로 이 몸 몸둘 바가 없사옵니다.
유장자 세상이 시끄러워 백성들은 고단하네. 누군가가 나타나 이 일을 해결해 주어야 해.
왕건 우리 폐하께서 계시지 않사옵니까..?
유장자 물론일세. 그러나, 그 분을 도와 하루빨리 이 난세를 타개할 위대한 호걸이 있어야 하네. 바로, 왕장군 자네같은 사람 말일세.
왕건 부끄럽사옵니다.
유장자 수십 척의 배를 앞으로 만들어야 하네. 그것도 병사들과 말과 군수품을 싣자면 전함의 규모가 대단히 커야해. 또한, 이 천명의 수군을 별도로, 그것도 극비리에 훈련시키자면 나라에서 제대로 하기가 어려울 게야. 그 모든 비용을 내가 맡겠네...
왕건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너무도 무리한 것을 말씀드려....
유장자 허허허... 왕장군 자네 아버님은 자네 하나를 세우기 위하여 송악 전체를 모험에 거신 분일세. 그것이 바로 송악 상인들의 엄청난 배포지.. 난 상인으로서 그런 점을 아주 존경한다네...
왕건 무슨 말씀이시온지....?
유장자 나도 자네를 위해 이 정주의 모든 것을 다 걸어볼 참일세. 어떤가..? 만족하겠는가..?
왕건 너무도 고맙사옵니다. 하오나... 저는 아직까지도 모르는 것이 있사옵니다. 어르신께서 왜 그리 파격적으로 저를 도와주시는지...무엇때문이시옵니까..? 과분하고 미안하여 얼굴을 들 수가 없사옵니다.
유장자 재물이나 명예는 바람같은 것일세. 다 사라지는 것이지. 그렇다면 살만큼 산 나같은 늙은이는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나는 딸 하나 뿐일세..
왕건 ............?
유장자 어떤가... 왕장군? 내가 바람이 있다면 그것하나 부탁하고 싶네. 내 딸아이를 보살펴 줄 수 있겠는가..?
왕건 예....? 아니, 어르신...?
유장자 조건부는 아니네. 어차피 이 정주의 모든 것은 이미 자네 것이야. 부탁이네. 내 딸아이를 보살펴 주겠는가..?
<47회 끝> (08.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