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58회>
씬 바닷가 해안
멀리서 장관의 불야성들이 떼로 다가오고 있다. 그 함대들은 점차 가까히 이르면서 장엄한 위용들을 들어내고 있다. 오다린과 도영, 종례들이 황홀한 듯 보고 있다. 엄청난 규모들이다. 그리고 헬 수 없이 많은 배들이 다가오고 있다.
종례 세상에......오장자, 보시구료. 저렇게 큰 배를 보신 적 있소이까?
오달인 ..(대답을 못하고 있다)
종례 고려의 함대예요. 평생 바다를 접하고 살았지만, 저런 배는 처음 봅니다. 세상에! 저 많은 배들이...
오달린도 보고 있다. 그것은 장엄한 그것이다. 함선들은 점점 해안으로 가까이 오고 있다. 도영이 소리친다.
도영 백기를 들어라! 우리가 적이 아님을 알려라!
다시 도영의 소리에 맞춰 군사들이 흰 백기를 펄럭인다. 그 와중에서 드디어 배들이 해안에 이른다. 삽시간에 군사들이 물로 뛰어 내리고, 사다리가 해안과 걸쳐지면서 거대한 배 안에서 기마병들이 달려나온다. 유금필, 능산, 박술희, 들이 부하들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오고 있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구름 떼와도 같다. 사람들이 갈라지면서 고려군은 금방 오다린들이 있는 진지로 물려 든다. 도영은 누군가를 열심히 찾는다. 흙먼지 자욱한 그 군사들 속에서 드디어 누군가가 보여온다. 백마를 탄 왕건이다!
도영 여기옵니다. 장군 여기옵니다!
그때 왕건과 함께 나온 이치가 오다린의 군사들 속에 섞여 있던 도영을 보았다.
이치 장군, 도영아씨 옵니다. 저어기...
왕건도 보았다. 그러나, 부장들에게 먼저 지시를 내린다.
왕건 마군은 이대로 적의 전초 기지를 장악하라! 박술희가 가라!
박술희 예, 장군.
박술희가 일단의 기마병들과 함께 질풍처럼 달려가자, 왕건이 다시 명령한다.
왕건 보군과 공병은 산성으로 향하고, 중군은 관아로 가라! 유금필과 능산이 가라!
두 사람이 대답하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온통 흙먼지와 수많은 말들의 울음소리와 군사들의 함성으로 뒤덮여 있다. 그러면서, 왕건과 이치는 서서히 오다린들이 있는 쪽으로 온다.
도영 (감격이다) 장군, 성공하셨사옵니다.
왕건 고맙소. 낭자. 모두가 낭자 덕분이오.
오다린 오서오시오. 왕장군. 오다린이요.
종례 태수 종례올시다. 먼 바닷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소이다.
왕건 반갑습니다. 두분 덕택에 이렇게 무사히 상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다린 다른 군사들은...?
왕건 우리 상륙군은 지금 크게 세 곳으로 나뉘어 상륙하고 있습니다. 이곳 고하도 외에 목포와 무한으로 상륙을 했습니다. 지금 모두 목표를 금성으로 잡고 진군 중에 있습니다.
종례 고생들 많았소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안내를 하겠소이다.
왕건 고맙습니다.
도영 소녀가 장군을 뫼시겠사옵니다. 따르시오소서.
오다린 왕장군, 함께 가시구려. 우리는 뒷일이 할 것이 많소이다.
왕건 곧 다시 또 뵙겠소이다. 가십시다, 낭자.
도영 뭣들 하느냐? 장군을 뫼시어라!
도영의 명령과 함께 장정들이 앞서 말을 몰아 간다. 이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 뒤로 대군이 뒤따르고 있다. 그 모습들을 오다린과 종례들이 혀를 차며 보고 있다. 군사들이 끝도 없이 몰려 가고 있다.
씬 어느 언덕길
수달이 부장들과 함께 말을 달려와 멈춰선다. 멀리 해안 가득히 고려에서 온 왕건의 대선단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하는 수달.
수달 도대체, 이게 꿈이냐, 생시냐? 저... 저 많은 불빛들이 모두 고려의 수군들이 타고 온 배들이란 말이냐?
부장1 그렇다하옵니다.
수달 내가 뒷통수를 맞아도 이렇게 얻어맞을 수 있단 말이냐! 우리 군사들은 어찌 되었어?
부장1 있는 군사들은 다 끌어 모으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적군을 막아 내기엔 터무니 없이 부족하옵니다.
수달 막아야 하느니라! 막아야 해! 헌데, 적군들은 도대체 어디 어디로 상륙을 했다하더냐? 고하도와 목포로 들어 왔다더니... 여기 영산강 입구까지 와 있지 않으냐?
부장1 상륙 지점이 여러 곳인지라 분간을 하기 어렵사옵니다.
수달 여러 곳이라니? 군사들이 도대체 얼마나 되길래.
부장1 수천이 넘는다 하옵니다.
수달 수... 수천이 넘어?
부장1 급하게 되었사옵니다. 어서 가시어 후방의 군사들로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옵니다.
수달 오냐. 일이 아주 다급하게 되었구나. 가자! 오냐, 이놈들 그렇다고 너희들 마음대론 안될 것이다. 두고보아라! 가자!!
수달과 그 군사들이 급하게 어둠 속으로 달려간다.
씬 해설용 인써트( 영산강 포구)
곳곳에서 상륙하고 있는 여러 장수들의 표정이 각각 떠블되며 스쳐지나간다. 환선길과 이흔암이 군사들과 함께 상륙하며 적군의 수많은 화살을 막고 있다.
환선길 물러서지 마라! 적은 오합지졸이다. 물러서지 말고 공격하라.
이흔암 공격하라, 물러서지 마라!
방패부대들이 앞을 섰고, 그 뒤로 수많은 보군들이 비탈을 오르고 있다. 비오듯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백병전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난투극이다. 연이어 기마대가 달려오고, 전쟁터는 더욱 어지러워진다. 이런 모습들이 계속 겹쳐 지나면서....해설.
해설 대 금성 상륙작전, 또 다른 용어로 신안군해전으로도 불리우는 이 작전은 이렇게 그 막을 열었다. 이 신안군해전은 실록에 두 번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그 한 번은 서기 903년의 일이고, 또 한 번은 909년으로 되어 있다. 후삼국 전쟁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려버린 이 상륙작전은 역사상 삼대 서해안 상륙작전에 속한다. 그 첫 번째가 당나라가 백제정복을 위해 기벌포에 상륙한 것이고, 두 번째가 바로 이 금성상륙 작전, 그리고 세 번째가 근대에 이르러 6.25 전쟁에서 있었던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상상을 뛰어 넘은 대 함대와 병력을 동원한 왕건의 고려수군은 지금의 나주인 금성에 상륙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그 일대를 무인지경으로 휩쓸어 간다. (상륙전 지형도 참조)
씬 금성관아 근처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왕건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다.
씬 동 금성관아
숱한 장애물들이 설치되어 있고, 수달의 군사들이 몰려올 고려군을 기다리고 있다. 수달과 부장들이 먼 앞을 보고 있다. 바람이 극성스럽게 불고 있다.
부장1 장군, 불과 두어 시각만에 고려군이 무인지경으로 바닷가에 있는 우리의 진을 모조리 함락시켰다 하옵니다.
수달 ...
부장1 곧 이리로 대군이 몰려 올 것이옵니다.
수달 우리 군은 전부 얼마나 되느냐?
부장1 산성을 지키고 있는 군사 천여명을 제하고는 이곳에 있는 오백명이 전부이옵니다.
수달 속았어. 까맣게 속았느니라. 종례 이놈에게 속았고, 오다린에게도 속았어. 내 이놈들을 가만두지 않으니라. 아주 불쌍하게 죽여줄 것이니라. 이놈들..
그때, 군사 하나가 소리친다.
군사 장군, 적군이 몰려옵니다!
그렇다. 왕건의 대군이 까맣게 여명이 밝고 있는 능선위로 몰려들어오고 있다.
부장1 지금의 군사로는 이곳 군영을 보존하기가 어렵사옵니다. 저들을 산성으로 유인하여 괴멸시키는 것이 마땅할 것이옵니다.
수달 지금 그럴 경황이 어디 있느냐? 일단 여기서 저들을 붙잡고, 시간을 벌어야 하느니라. 폐하께 전령은 떠났느냐?
부장1 예, 장군. 하지만, 지원군이 언제 여기까지 오겠사옵니까? 이 일대는 모두 종례 태수와 그 반란군들이옵니다.
수달 폐하께서 오실것이니라. 그때까지 시간을 끌어 이곳을 사수해야 하느니라. 폐하면 오시면, 저것들은 상대도 아니될 것이니라.
수달은 주먹을 불끈쥐고 다가오는 왕건군을 보고 있다. 왕건군이 멀리서 다가오다가 멈춰선다.
씬 그 곳 왕건의 진영
왕건이 멀리 군영 앞을 에워싼 수달의 군대를 보고 있다. 날은 이미 다 밝았다. 도영이 왕건의 옆에 함께 서있다.
도영 깃발을 보니 서남해의 수군대장군 수달인 것 같사옵니다.
왕건 .....
이치 함부로 대할 자는 아니옵니다. 견훤 왕이 저자를 토대로 하여 오늘의 제국을 이루었다고 하옵니다.
왕건 우리를 맞는 군사들의 수가 만만치 않은 것 같구려.
도영 하지만, 임시로 끌어 모은 잡군에 불과하옵니다. 별 것 아니옵니다.
이때 박술희가 일당의 군사들을 이끌고 달려와 군례를 올린다.
박술희 주군, 해안의 모든 진지들을 확보했사옵니다.
왕건 수고했네.
박술희 유금필 형님과 능산 형님은 각각 군사들을 이끌고 산성을 향하여 가고 있다 하옵니다.
왕건 다른 장군들은...?
박술희 오면서 보고를 들으니, 환장군이 압해도를 점령한 이후 고이도를 거쳐 무안에 상륙했다 하옵니다.
왕건 다행이로고.
박술희 또한, 배현경, 홍유 장군들이 함평 밑을 지나 목포를 향하고 있다옵니다. 아마도 곧 형님들과 합류할 것 같사옵니다.
이치 금성산성은 천혜의 요지올습니다. 그 산성을 취하지 못하면 금성 관아를 점령한 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옵니다.
왕건 옳은 말입니다. 우선 그러나 백제 수군의 본거지인 저 군영을 빼앗아야 합니다. 여유를 주지 말고 공격하도록 합시다.
이치 예, 장군.
왕건 아, 박부장.
박술희 예, 주군.
왕건 우리의 상륙을 송악에 알렸는가?
박술희 예. 상륙 즉시 쾌속선을 띄워 폐하께 장계를 올렸사옵니다.
왕건 잘하였네. 매일처럼 현왕을 거르지 말고 속속 전하여 올리게.
박술희 예, 주군.
왕건 그렇다면 술희 어떤가? 저 수달을 상대해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가? 선봉을 서게.
박술희 고맙사옵니다. 장군, 진격하오리까?
왕건 가게!
박술희 예! (군사들에게) 나를 따르라! 수달을 잡으러 가자. 가자!
박술희가 이렇게 달려 나간다. 그 뒤로 군사들이 구름처럼 달려 나간다.
씬 그 곳 관아
수달이 부장과 군사들과 함께 몰려 오고 있는 박술희와 군사들을 보고 있다.
수달 허허, 저기 저 앞에 오는 장수는 해괴하게 생긴 놈이로구나.
부장1 말로만 듣던 박술희란 자 인 것 같사옵니다. 폐하의 누이동생분과 혼담이 있다는 그 자 말이옵니다.
수달 하하하.. 그래. 볼 만한 손님이 왔구만. 오냐, 내가 상대해 주지.
부장1 적군의 부장이옵니다. 소장이 나가겠사옵니다.
수달 그래. 하면 나가 보아라. 단단히 맛을 보여 주어라.
수달의 부장이 달려나간다.
씬 그 곳
상대는 모두 일정한 거리에서 군사들을 멈추었고, 드디어 마주보고 있다. 박술희와 부장이 거리를 두고 마주선다.
박술희 네 놈은 누구냐?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나왔느냐?
부장1 오냐, 버릇없는 박술희란 놈인 것을 알고 나왔느니라. 내가 오늘 너희들에 콧대를 꺽어주마.
박술희 가상하구나. 어서오너라.
두 장수는 서로 말을 달려 나와, 드디어 검투를 벌인다. 무서운 살수들이 오고간다. 그리고 십여합이 넘자 드디어는 수달의 부장이 몰리기 시작한다. 양쪽에서 응원하는 북소리들과 함성소리들이 요란하다. 왕건도 수달도 각자의 진영에서 보고 있다. 하지만, 끝내는 몰리던 수달의 부장이 가슴이 베어지며 말에서 떨어지며 뒹군다. 함성소리는 더욱 요란하고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박술희 하하하. 그쪽에 어지간히 싸울 만한 인물이 없는 게로구나. 또 누구 없느냐?
보고 있던 수달이 중얼거린다.
수달 저런 발칙한 놈 같으니라구. 기다리거라 이놈아.
수달이 달려 나온다.
박술희 하하하. 네가 바로 그 유명한 수달이구나. 어디 한 번 붙어 보자꾸나.
수달 시끄럽다. 이 놈아. 오늘 네놈 제삿날인 줄 알아라. 이야앗-
칼이 번쩍인다. 그야말로 치열한 접전이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섬광이 번쩍인다. 얼마나 싸웠을까, 박술희는 의외로 처음으로 강적을 만났다. 무서운 수달의 힘에 몰리기 시작한다.
수달 헤헤헤. 이놈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산 모양이구나. 어디 맛 좀 보아라.
계속해서 접전이 이뤄진다.
씬 왕건의 진영
왕건들이 보고 있다. 박술희가 위험해 보인다. 그리고, 드디어는 큰 고함소리와 함께 수달의 칼날이 번쩍이고 박술희의 어깨가 베인다. 왕건이 깜짝 놀란다.
왕건 아니 되겠구려. 내가 나가봐야 겠소이다.
이치 소장도 함께 가겠사옵니다.
이들이 함께 달려나간다. 박술희를 베려던 수달이 그들을 보고 다시 달려 온다.
수달 오냐, 한꺼번에 모두 오너라. 다 도륙을 내어 주마.
왕건 네 용맹이 가히 칭찬할만 하도다. 내가 바로 왕건이니라.
수달 왕건이 누군가 했더니 바로 네놈이로구나. 이제보니 어린아이가 아니냐? ... 하지만 만났으니.... 한판 놀아보자꾸나.
다시 접전이 이뤄진다. 그러나 막상막하, 오랜 접전 끝에 수달은 왕건에게 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수달이 말머리를 돌린다. 관망하던 이치가 막아 선다.
이치 어디를 가느냐? 게 섯거라.
수달 비켜서라 이놈,
그 몇 합에 이치도 비틀거린다. 수달이 다시 다라난다 . 왕건이 소리지른다.
왕건 비겁하게 도망가느냐? 더 싸워보자꾸나.
수달 오늘은 이쯤하자꾸나.
왕건 (도망치는 수달을 보다가 명령을 내린다) 이 때다. 전군은 공격하라! 군영을 함락하라.
그리고 드디어 왕건의 많은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가기 시작한다.
씬 그곳 수달의 군영
수달이 군영 안으로 들어가 급히 영을 내린다.
수달 막아라! 저들을 막아야 한다. 화살을 퍼부어라.
부장2 장군, 중과부적이옵니다. 이곳을 버리시오소서.
수달 아니다. 저들을 막아야 한다.
왕건의 군사들은 벌써 군영가까이 다가왔다.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고 사방에 북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드디어는 군사들이 백병전에 돌입한다. 혼란이다. 숱한 사상자들이 즐비하다. 도영도 그런 왕건의 옆에서 적군을 무찌르고 있다. 그녀의 활략이 돋보인다. 그 한 켠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수달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진다. 계속 쓰러지고 있는 것은 자신의 군사들이다. 악에 받쳐 소리친다.
수달 싸워라. 저들을 막아야 한다.물러서지 마라.
부장2 (달려와) 장군,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사옵니다. 피하시오서소. 우리에겐 산성이 남아있사옵니다. 어서요 장군.
수달의 군사들이 하나둘 칼을 버리며 손을 들기 시작한다. 그 혼란속에서 왕건이 소리친다.
왕건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마라! 수달을 잡아라. 수달이 저기 있다.
수달은 드디어 말에 오른다. 그리고, 그 곳을 빠져 나간다. 부장과 몇몇 군사들이 그 뒤를 따른다. 왕건이 계속 소리치고 있다.
왕건 전열을 정비하라. 뒤쫓지 말라. 전열을 정비하라.
아직도 아우성이다. 시체들이 수도 없이 몰려 있다. 왕건과 도영이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도영 수달은 금성산으로 향했을것이옵니다.
왕건 ....
씬 길
수달과 부장들이 달려 오고 있다. 수달이 하늘을 우러러 한탄을 한다.
수달 이게 어인일이란 말인가. 천하의 수달이가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부장2 장군, 아직도 우리에겐 금성산성이 있사옵니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한 다음을 기약할 수 있사옵니다.
수달 가자. 폐하께서 곧 오실 것이다. 그때까지는 버티어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그 길을 벗어난다.
씬 강주성
성루에는 여전히 깃발들이 수많이 펄럭이고 있다. 그 앞에 군막들도 그대로 있다.
씬 동 강주성 뒷문
견훤을 필두로 하여 각 장군들과 최승우, 능환을 비롯한 장졸들이 소리 없이 뒷문을 빠져나가고 있다. 그 대열이 끝도 없이 길다.
견훤 참담한 일이야. 철군이란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허이.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대야성에 이어서 두 번째 일세.
능환 우리가 패하여 돌아가는 것이 아니옵니다. 대야성과는 사정이 다르옵니다.
최승우 그렇기는 하나, 이제 이 강주성 또한 걱정이옵니다. 성 앞으로는 신라군들이 버티고 있사옵니다.
능환 그동안 우리가 없어도 잘 지켜온 성일세. 특별히 신검이와 내 아우 능애까지 남겨두었는데 별일이야 있겠는가.
최승우 하지만, 이곳의 병력을 너무 많이 뺀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렇다하더라도 저들이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야. 우리가 이렇게 성 뒷문으로 나가고 있는 것도 아직은 모를 것이고.
최승우 안심할 수는 없사옵니다. 사방에서 첩자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사옵니다.
견훤 우리가 돌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저들과 싸우려고 진을 펴러 가는 것인지 그것까지는 저들이 모를 것일세. 서둘러 가세. 수달이가 그동안 잘 버티어 주어야 하는데.
능환 수달이라면 해 낼것이옵니다. 비록 군사는 적어도 그 용맹이 어디 가겠사옵니까?
견훤 그래야 하는데, 제발 그래야 하는데. 며칠만 꼭 버티라고 전령을 보내라 하였는데, 어찌되었는가?
최승우 그리하였사옵니다. 우리가 도착할 때 까지만 어떻게든 견디라고 말이옵니다.
견훤 금성까지는 얼마나 걸리겠는가?
최승우 빨리 행군을 한다고 해도, 이 군대를 이끌고는 족히 닷새는 걸릴것이옵니다.
견훤 (속이 탄다) 닷새라니..언제 닷새까지 기다린다는 말인가. 수달이가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이 일을 어찌한다
견훤은 속이 탄다. 기도하듯 그렇게 중얼거린다. 숨어서 보고 있던 신라군의 첩자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견훤군이 계속 지나쳐가고.
씬 또 다른 길
견훤의 대군이 그렇게 몰려가고 있다. 어느 쯤에선가 풀숲에서 신라의 첩자 하나가 이들을 보고 있다.
그 시야로 대군은 그렇게 끝없이 가고 있다.
씬 어느 산야
신라군들이 집결해 있다. 대야성에서 보았던 그 노장들이 보인다. 멀리서 첩자가 탄 말이 달려온다. 그리고 가까이와 말에서 내려 군례를 올린다.
첩자 장군, 강주성 안에 있던 견훤 왕이 군대를 이끌고 성 뒷문을 빠져 나갔사옵니다. 저녁무렵이면 저 산넘어 협곡을 지나칠 것이옵니다.
노장1 허허허. 예측대로 꼭 들어맞는구만 그래.
노장2 지금 저들은 금성일이 바쁜 것이오. 이곳 강주 따위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을 것이야.
노장3 그럴것이옵니다. 자, 우리 신라군은 지금부터이옵니다.
노장1 그렇소이다. 우리는 불과 삼천이 채 안되는 군세올시다. 일단은 일만이 넘는 저들의 행로를 끊고 큰 타격을 주어야 합니다.
노장2 백제군은 지금 경황없이 금성으로만 가려고 서두르고 있소이다. 저 협곡에 일천군사를 매복시켜놓았다가 저들이 지나칠 때에 ?습을 한다면 결정적 타격을 입힐 수 있소이다.
노장1 그렇소이다. 그리고 나머지 2천의 군사는 강주성을 공격하여 탈환해야 할 것이오. 마침 서라벌에서 각간 어르신께서 일천의 군사를 더하여 이쪽 근처까지 이르셨다하니 모든 것이 잘 될 것이외다.
노장3 적은 일만이 넘는데 우리는 고작 이삼천의 군사올시다. 계획이 잘 맞지 않으면 형편없이 무너질 수 있소이다.
노장1 (웃으며) 때로는 독 안에 든 쥐가 고양이를 잡는 수가 있소이다. 누가 더 독이 세게 올랐는가 하는 것이 전세를 결정짓는 것이올시다. 저들은 지금 급하고 우리는 여유가 있소이다. 자 군사를 나누어 움직입시다.
두노장 예.
씬 그 협곡
견훤의 군사들이 끝도 없이 줄을 이어오고 있다. 해가 점차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견훤이 그 햇살을 보고 있다.
견훤 왜들 이리 행군이 늦는겐가? 좀더 재촉을 하게. 행군별감은 뭘하는가? 군사들을 재촉해!
군관 예, 폐하. (큰소리로) 서둘러라. 폐하께서 서둘라 하신다. 행군을 서둘러라.
행군별감은 말을 타고 행렬을 지나치가며 계속 같은 말을 하며 지나쳐가고 있다. 군사들은 끝도 없이 계곡 속으로 빨려든다. 최승우가 기분 나쁜 듯 좌우 주변을 둘러본다. 까마귀가 소리내며 날고 있다.
최승우 이 보게 방장군.
방장군 예, 파진찬 어른.
최승우 계곡이 너무 높고 깊지 않은가. 정찰병은 앞서 보냈는가?
방장군 예. 별 이상이 없다 하옵니다.
능환 아, 이쪽만 해도 우리 백제의 영역인데 어떤 군사들이 올 수 있겠나. 폐하께서 서둘라 하시네. 어서들 가세.
그렇게 얼마나 더 갔을까? 천둥같은 소리와 함께 절벽과 다름없는 비탈에서 큰 바윗덩어리가 굴러 내려오기 시작한다. 견훤과 제장들이 급히 피하는데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노장1 하하하. 이 보아라. 견훤 도적이로구나. 네가 그토록 보고싶어하는 신라의 충직한 신하들이니라. 맛을 보아라. 뭣들 하느냐. 견훤을 잡아라. 저들을 싹 쓸어 버려라.
삽시간에 아비규환이다. 비오듯이 바윗덩어리들이 양 옆에서 쏟아져 내린다. 미처 어찌해 볼 도리들이 없다. 추허조와 박영규가 견훤에게
붙어 선다.
박영규 폐하, 복병이옵니다. 피하시오소서.
추허조 어서 피하시오소서. 저들은 소장이 맞겠사옵니다. 어서 피하시오소서.
손을 써볼 도리가 없다. 협곡은 좁고 돌은 사정없이 계속 굴러내린다. 삽시간에 시체가 산을 이루기 시작한다. 견훤은 당황해 피하고 있고 장수들이 군사들을 모아 비탈을 오르고 있다.
공직 뭣들하느냐? 올라가 저 놈들을 막아라. 저들을 막아라.
그러나 이번에는 화살과 통나무들이 굴러 내려온다. 정신이 없다. 이들은 그렇게 무참히 때로 죽어가고 있다. 견훤은 경악해서 보고 있다. 그런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씬 강주성
노을이 지고 있다. 허장성세, 군막들은 모두 비어있고 깃발들만 나부끼고 있다. 그 성루에 신검과 능예가 서서 성밖을 보고 있다.
신검 숙부님, 믿기지가 않사옵니다. 금성에 일말이옵니다.
능애 그러하옵니다. 우리 백제 땅의 중심부에 적이 들어오다니, 생각인들 할 수 있겠사옵니까?
신검 아버님께서 서라벌 도모하시려던 꿈이 이번으로 두 번이나 깨어졌사옵니다.
능애 어쩔수 없는 일이지요. 전쟁은 늘 변수가 있는 법이옵니다. 그나저나 이곳에 병력이 너무 적은 것 같아 걱정이옵니다.
신검 금성의 사정이 워낙 급박하니 어찌하겠사옵니까?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 하며 해가 지고 있는 먼 산을 보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진다. 신검이 소리친다.
신검 숙부님, 저기를 보시옵소서.
능애 (보다가 놀란다) 적군이옵니다. 신라의 군사들이옵니다.
성밖 가득히 산야를 타고 군사들이 이동해오는 것이 보인다. 두 사람은 표정이 굳었다.
능애 그렇사옵니다. 태자마마. 신라와 고려가 지금 우리 백제를 금성과 이곳 강주를 통해 협공하고 있사옵니다.
신검 예?
능애 전투준비를 해야겠사옵니다. 적군이옵니다. (큰소리로) 적군이 몰려온다. 소라를 불어라. 북을 쳐라. 적군이 온다. 어서 폐하께 전령을 띄워라! 신라군이 성을 공격하고 있다고 아뢰어라.
북소리가 울린다. 소라소리가 울고, 군사들의 행보가 빨라진다.
두 사람은 여전히 표정이 굳어 있다.
씬 그 성 밖 들판
어둠이 내리고 있다. 신라군들이 서서히 이동해 오고 있다. 지휘장수는 효종이다. 노장2,3과 부장들이 에워싸고 있다.
노장2 지금 우리 군사 일천명이 백제의 대군을 협곡에 몰아 넣고 도륙하고 있사옵니다.
효종 알고있소이다.
노장2 아마도 엄청난 타격을 입었을 것이옵니다.
효종 그렇게 되겠지요. 이제는 저 강주성을 다시 되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서라벌에 달려온 것이올시다.
노장3 영을 내려 주시옵소서. 성안에 군사라고 해야 우리와 수가 비슷하옵니다. 해볼만하옵니다.
효종 좋소. 공략합시다. 고려의 왕건이 우리에게 훌륭한 선물을 선사했습니다. 하하하. 자, 전군 공략하라.
노장2 공략하라!
그 내려 앉는 어둠 속으로 신라군들이 몰려 가고 있다.
씬 그 곳 강주성
드디어 이들은 가까워졌다.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치열한 접전이다. 사다리가 세워지고 군사들이 오르고 화살이 수없이 교차된다. 능애와 신검이 목이 터져라 독전하고 있다.
능애 적을 막아라. 성안에 적을 들여서는 아니 된다. 적을 막아라.
신검 무엇들 하느냐? 적이 저쪽으로 기어오르고 있다. 저쪽을 막아라.
어둠이 내렸다.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불화살이 날고 성안에는 불이 번지기 시작한다. 불을 끄라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고, 군사들은 아우성이다. 치열한 공방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부장하나가 달려나오며 소리친다.
부장 장군, 적병을 헬 수도 없이 많사옵니다. 도대체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사옵니다.
능애 어두워서 많아 보이는 것 뿐이다. 막아라. 막아야 한다!
부장 보시오서소. 저쪽 성곽이 무너지고 있사옵니다. 폐하께 원군을 청해야 하옵니다.
능애 이미 전령을 앞서 보냈느리라. 막아라. 폐하께서 오실 것이니라. 죽기를 다해 막아라. 막아라!
여기저기서 수없이 떨어지면서도 신라군들은 계속해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신검은 저쪽에서 능애는 또한 그곳에서 이미 성을 올라오는 적군들을 베어 쓰러뜨리느라고 정신이 없다. 화살이 날아와 능애의 눈에 꽂힌다. 능애는 그 화살을 꺽어 버리고 여전히 소리친다.
능애 막아라! 이 성을 내어주어서는 안된다. 막아라!!
불길, 온통 불길이다. 신라군들은 꾸역꾸역 점차 몰려 들고 있다. 곳곳에서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다.
씬 산길(밤)
강주성의 전령이 급히 달려 지나치고 있다. 사라지면.
씬 견훤이 있는 그 협곡
시체로 산을 이루었다. 협곡은 그렇게 시산혈해가 되었다. 견훤이
넋을 잃고 이미 신라군이 빠져나간 그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견훤 이럴 수가... 이렇게 허망하게 당할 수가... 도대체 얼마나 죽었는가?
추허조 족히 삼사천은 전사를 한 것 같사옵니다.
견훤 삼사천?... 군에 삼할을 잃었단 말인가.
최승우 폐하, 적병은 이미 물러갔사옵니다. 위엄을 갖추시오소서.
견훤 오... 믿기지가 않는 구나. 믿기지가 않아..... 내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아.
능환 폐하, 앞 뒤 사정을 살펴보니 틀림없이 고려는 신라와 배후에서 협공을 펴고 있사옵니다. 서두르시오소서. 금성으로 빨리 가야 하옵니다.
견훤 그리하세. 이번 일 만큼은 하늘이 우리를 돕지 않는 것 같구려. 수달이도 그렇고 우리도 이 꼴이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령하나가 급히 달려와 멈추며, 말에서 내려 군례를 올린다.
전령 폐하, 강주성에서 달려왔사옵니다. 강주성의 운명이 풍전등화이옵니다. 태자마마께서 응원군을 청하옵니다. 지원군을 주시옵소서.
견훤 (기가 막히다) 지원군... 지원군을 달라. 이보시게,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당해도 철저히 당하고 있구만 그래. 지원군을 달라하네. 순식간에 삼사천이나 군사를 잃은 우리에게 지원군을 달라는 것이야.
공직 강주성에 사정이 지금 어떠한가?
전령 적군의 수는 끝도 없사옵니다. 오래 지탱하기가 어렵사옵니다.
추허조 군사를 돌려 지원을 해야지 않겠사옵니까?
견훤 우리가 간들... 이미 성은 떨어졌을 것이야.
박영규 그렇다고 그대로 버리실 것이옵니까?
견훤 두 마리 토끼를 다 쫓을 순 없느니....너는 돌아가 태자에게 이르거라. 이미 전세가 기울었다면 성을 버리고 짐에게 오라 이르라.
전령 예, 폐하.
전령이 그렇게 돌아간다. 견훤이 하늘을 보며 울부짖는다.
견훤 이럴수가 있는가! 이렇게 참담히 무너질 수 있는가! 이 견훤이가 이렇게 당할 수가 있는가. 참으로 이 견훤이의 최악의 날이로구나.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어서들 가세. 금성이라도 구해야하지 않겠는가?
최승우 폐하의 영이시니라. 전열을 정비해라. 행군별감은 행군을 서둘러라.
망연자실이다. 견훤은 그렇게 먼 어둠 속을 보고 있다. 그 위로 함성소리들이 들려온다.
씬 동 강주성 밖
성밖 저만큼에서 눈을 잃은 능애가 신검과 함께 상처투성이의 장졸들을 이끌고 성을 보고 있다. 그 어둠 속에서 신라군들의 기쁜 함성이 계속되고 있다.
씬 동 성 안
효종이 노장1,2,3과 장졸들과 더불어 계속 환호하고 있다.
효종 이 얼마만인가? 우리는 강주를 되찾았느니라. 그리고 견훤군의 수 많은 적도들을 죽였느니라. 대 신라의 명예를 되찾았느니라.
군사들 와!! (함성)
효종 지금쯤 금성도 쑥밭이 되었을 것이니라. 견훤이가 아마도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 고려의 왕건이가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었도다. 하하하.
노장1 각간 어른, 반대로 생각할 때 왕건이라는 장수는 참으로 무서운 자가 아니옵니까? 이번 전략을 눈금 보듯 보고 있었사옵니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그 자를 없애야 할 것이옵니다.
효종 이를 말이오. 고려에 그런 장수가 있는 한, 우리가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없을 것이오. 다음에 만나면 기필코 그 목숨을 빼앗아야 하오.
씬 금성 군영
이미 왕건의 군사들로 질서가 잡혀있다. 곳곳에 햇불이 타오르고 있다.
씬 동 군영 안
왕건과 상처를 동여 맨 박술희, 도영, 오다린, 종례, 이치 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그들 앞에는 지형도가 놓여 있다.
도영 이곳에서 지금 수달이 가 있는 금성 산성까지는 삽십여리가 좀 넘사옵니다. 그곳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이 금성을 함락시켰다 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왕건 알고있소이다. 낭자. 그 때문에 지금 우리 장수들이 그 산성과 대치해 있소이다.
이치 전령의 보고에 의하면 환장군과 배장군, 홍장군들이 이미 해안을 평정하고 무안성을 함락시켰으며, 목포와 함평 근처까지도 다 평정하였다 하옵니다.
왕건 영상강을 따라 금성에 이르는 일대를 다 함락시켰다니, 일단은 목표의 반은 이루었다 할 수 있소이다. 그러나 역시 저 산상이 문젭니다. 수달이라는 장군 보통이 아니었소이다.
오다린 잘 보셨소이다. 지독한 사람입니다. 한 번 성이 나면 세상 다 소용이 없죠. 지금쯤 이를 갈고 있을 것이옵니다.
종례 그럴 것입니다. 산성을 빼앗자면 적지 않은 피를 흘려야 할 것이옵니다.
왕건 그래도 해내야 합니다. 지금 강주에 있던 견훤의 대군이 금성을 향해 방향을 돌렸을 것이옵니다. 그들이 오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하옵니다.
박술희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장수들이 산성 밑으로 집결하고 있사옵니다. 이곳은 이 분들에게 맡기시고 그 곳으로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영 옳은 말씀이시옵니다. 왕장군께서는 그 곳으로 가셔야 하옵니다. 가셔서 이 금성 공략을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그리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자, 이 밤으로 그리로 가십시다.
왕건이 일어선다. 모두들 따라 일어선다.
오다린 드디어 왕장군께서 이 곳 금성의 역사를 바꾸셨소이다. 천하가 장군을 칭송할 것이외다.
왕건 듣기 거북한 칭찬이시옵니다. 이 모두가 소장의 힘이 아니라, 우리 황제 폐하의 덕이시옵니다.
오다린 그야 그렇겠지만...
도영 어서가시지요. 장수분들이 기다리고 계실것이옵니다.
왕건 그리하십시다. 낭자. 그럼, 다시 또 뵙겠소이다.
왕건과 박술희 등이 그 곳을 빠져나간다. 오다린이 왕건의 그 모습을 혀를 차며 보고 있다.
오다린 과연, 우리 도영이가 본 눈이 틀림이 없소이다. 왕건 장군은 장부 중에 장부올시다 . 어쩌면 저렇게 풍채가 넉넉하고 사려가 깊어 보이는지.... 허허허. 헌데 아직도 총각이랍니다. 혼자라는 것이예요.
씬 밤길
왕건이 가고 있다. 햇불들을 받쳐들고 많은 군사들이 호종하고 있다. 도영이 왕건 옆에 나란히 붙어 가고 있다.
왕건 우리가 금성을 공략하는 일은 낭자가 아니계셨다면, 아마도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도영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사옵니다. 하온데 소녀는 한가지 의문이 있사옵니다.
왕건 무엇이 말입니까?
도영 이곳을 어렵게 취하기는 하셨으나, 과연 백제국의 한 가운데에 들어 있는 이 땅을 어떻게 유지하실 것인지요?
왕건 사실, 그것이 더 큰 걱정입니다. 우리는 바다로 밖에는 이 곳을 오갈 수 없소이다. 과연, 어찌 지킬 것인지...
도영 호호호. 그러실 것이옵니다. 하오나....방법이 의외로 그리 어렵지 않사옵니다.
왕건 어렵지 않다니요?
도영 이 곳에 믿을 만한 연고를 마련하면 될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영원히 서로 배반하지 않을 깊은 뿌리를 두는 것이옵니다.
왕건 그야... 낭자와 아버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도영 과연, 언제까지 그것이 지속되겠사옵니까? 사람이란 한치 건너 두치라고 시간과 세월이 지나면 굳은 약속도 언젠간 흐려지는 법이옵니다. 그렇게 생각 안하시옵니까?
왕건 그야...
도영 자, 그 일에 관해서는 훗닐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고, 어서 가지지요. 많이들 기다릴 것이옵니다.
씬 금성 산성
어둠 속에 산성의 외경이 보여온다.
씬 그 곳 성루
수달이 풀 죽은 표정으로 어둠속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부장2,3과 함께 해 있다.
수달 폐하께서 이리로 오고 계신다고?
부장2 예, 장군. 방금 전에 전령이 그렇게 전해 왔사옵니다. 앞으로 사나흘은 더 소요가 될 것이라 하옵니다.
수달 사나흘이라.. 지켜야지. 그때까지는 지키고 있어야지.
부장3 군사가 오백도 채 아니되옵니다. 그때까지 견디겠사옵니까?
수달 견뎌내야지. 이 성마저 잃는 다면 무슨 면목으로 폐하를 뵐 수 있겠는가? 모두들 정신 바짝 차리라 하게.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야. 폐하가 오실 때까지는 어떻게 하든 이곳을 지켜야 해!
씬 밤길
견훤과 그 일행들이 계속해 밤길을 재촉해 오고 있다. 그들도 하나같이 기운이 없는 표정들이다.
견훤 도대체 금성까지 가는 길이 왜 이리 멀단 말인가?
최승우 성심을 굳건히 하시오소서. 수달장군은 꼭 폐하를 기다릴 것이옵니다.
견훤 그래야 할 것인데... 금성 산성을 내어주면 사방이 산맥으로 가로 막혀서 다시는 그곳을 되찾기가 어려워지네. 그렇게 되면, 나라 밖으로 통하는 바다도 잃고, 또 우리 영토안에 적군이 와 있으니 늘 배후가 걱정이 되고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닐세.
능환 일이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아, 수달이 누구이옵니까? 폐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사옵니까?
견훤 (도리질하며) 지금쯤 신라의 김효종이나 고려의 궁예왕이 얼마나 짐을 비웃고 있을 것인고.... ?
그들은 그렇게 지나쳐간다. 그 위로 들려오는 궁예의 웃음소리.
씬 송악 황궁 외경
씬 동 황궁 대전
궁예가 전령이 보내오는 장계를 접으며, 크게 웃고 있다. 그 앞으로 병부령 복지겸과 종간, 은부, 아지태, 박지윤, 유장자, 강장자 부부, 그리고 황후인 연화가 함께 해 있다.
궁예 이것보라구. 해냈어! 드디어, 해냈어. 우리 군대가 드디어 백제 땅의 중심 깊은 곳에 짐에 깃발을 꽂았단 말이야.
모두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궁예 아아, 기쁘도다. 살다보니 이런 일이 다 있군 그래. 꿈 같던 그 계획이 현실이 되었네 그려.
종간 모두가 폐하의 큰 은덕이시옵니다.
강장자 그러하옵니다. 우리 부부, 황후전에 잠시 들렸다가 이 기쁜 소식을 접하였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백씨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박지윤 역시 왕건 장군이옵니다. 끝내 그 어려운 일을 완수했사옵니다.
복지겸 아직 금성을 다 함락시킨 건 아니옵니다.
유장자 그렇기는 하나 그곳에 상륙을 한 이상 모든 것은 다 잘 마무리가 될 것이옵니다.
은부 이제 폐하께서는 백제의 중심에 고려의 땅을 일구셨사옵니다. 삼한 백성 모두가 놀라고 또한 두려워 할 것이옵니다.
궁예 앞으로는 고려가 아닐세.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질것이야.
그 말에 함께 있던 신료들이 모두 놀란다.
박지윤 그것이... 어인 말씀이시온지...
궁예 허허, 이런. 광치나께서는 연세가 높으셔서 가는 귀가 드셨나보오이다. 나는 지금 이 제국의 이름이 고려가 아니라고 하였소이다.
모두들 .....
궁예 잘 들으시오. 나는 일전에 나라의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소이다. 그것이 기억이 안나시는 모양입니다?
박지윤 그... 것이 아니오라... 그만 신이 당황하여...
궁예 무엇이 당황할 것이 있단 말이오? 이 제국이 더 발전하기 위하여 나라 이름도 바꾸고 도읍도 옮기고자 하였소이다. 지금 나는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 알겠소이까?
박지윤 아, 예. 폐하.
종간 ....
연화 갑작스럽게 어려운 말씀을 하시니 당황하시지 않겠사옵니까?
궁예 허허 이런...이보시오 황후, 무엇이 어려운 말이란 말이오? 광치나께서 이리 답답하신 것은 다 나이 탓이오. 세월 탓일게야.
박지윤 ..... 소,...송구하옵니다 폐하.
궁예 이보시오. 아학사.
아지태 예, 폐하.
궁예 내가 뭐라고 하였소? 왕장군은 잘 해낼 것이라 하지 않았소. 자, 더 볼 것 없소이다. 철원으로 갈 준비나 하시구려.
아지태 예, 폐하.
궁예 (다시 장계를 보며) 상륙을 끝내고 지금 서남해의 군영을 향해 공격중이다? 하하하. 내일이면 또 다른 승전보가 날아 오겠구만. 백제의 견훤왕이 지금쯤 정말 볼만할 것이야. 하하하. 암, 이 기회에 끝장을 내라고 해야지.. 금성은 우리 땅으로 확실히 해 두어야 해! 암.
씬 금성 산성
수달이 여전히 어둠속을 보고 있다. 그러다가 눈을 크게 뜬다. 하나 둘 먼 어둠속으로 불 빛이 살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부장3이 소근거린다.
부장3 장군, 적군이 공격을 해 올 모양이옵니다.
수달 어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야.
부장2 적병은 수천이라 하옵니다.
수달 숫자가 무슨 소용인가? 나는 수달이야. 그리고, 우리는 성안에 있고 저 놈들은 성 아래에 있어. 전투를 준비하라 이르라. 뜨거운 물과 기름을 준비하고 돌과 화살들을 있는 대로 다 동원하라 이르라.
부장2 예, 장군.
수달은 표정이 굳어져 있다. 어둠 속에 불빛은 자꾸 늘어나고 있다. 그 수달의 표정에서.
씬 동 성 밖 왕건의 진영
어둠 속에서 수 많은 군사들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왕건과 장수들이 모두 모여 있다. 환선길, 이흔암, 배현경, 홍유, 유금필, 능산, 박술희 등과 종회, 김락, 김언 등이 영을 기다리고 있다. 도영이 그 한쪽에서 보고 있다.
왕건 우리는 저 성을 빠른 시일내에 함락하지 않으면 아니되오. 만약에 견훤왕이 저 수달과 만나고 합류하여 이어진다면 우리의 금성공략은 실패로 돌아갈 공산이 크오이다. 이 밤에 결단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홍유 영만 내리시오서소. 장군.
환선길 제아무리 날고 기는 수달이라고 하여도, 그야말로 우리에 갇힌 꼴이 아니오이까? 이 밤 안으로 함락을 시켜 버리겠소이다.
이흔암 암요. 영을 내려 주시오. 장군. 본관이 앞을 서리오리다.
배현경 아니올시다. 이 번에는 소장이 서야 하겠소이다.
김언 이번만은 소장에게 주시옵소서. 기필코 해내겠사옵니다.
김락 아니올시다. 소장을 앞서게 해주오소서.
왕건 하하하. 너무들 수달을 가볍게 보는 것 같소이다. 내가 상대해 보았는데 여간한 장수가 아니였소이다. 이번에 선봉은 홍유 장군이 한 번 서보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홍유 고맙사옵니다. 장군. 선봉을 맡겨 주시니 은혜를 잊지 않겠사옵니다.
왕건 작, 그럼 홍장군이 선발대를 이끌고 앞서 나가시구려.
홍유 예, 장군. 기필코 수달의 목을 가져오겠나이다. 자, 나를 따르라. 성을 공략하라.
홍유가 소리치며 말을 달려나간다. 군사들이 와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간다. 왕건이 보고 있다. 그리고, 어둠 속에 높이 솟아 있는 그 성을 본다. 그 왕건의 표정에서.
씬 그 산성안
수달이 오고 있는 왕건군을 보고 있다. 대병이다. 사방천지가 횃불로 덮여서 성으로 달려오고 있다.
수달 오너라. 이놈들아. 나는 수달이니라. 내가 너희들에게 수달이의 참 모습을 보여주마. 어서들 오너라, 오너라 이놈들아.
주먹을 불끈 쥐는 수달의 독한 표정에서 스톱모션이 걸리면서.
< 제 58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