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62회>
씬 오장자의 집
집 마당은 온통 잔치 준비로 부산하다. 떡을 치고, 전을 부치고, 그야말로 집안은 온통 시끄럽다. 집사들도 이리저리 오가고 있고, 오다련이 몸소 이것저것 간섭하고 있다.
오다련 이보게, 집사.
집사 예, 어르신.
오다련 손님들만 해도 엄청나게 몰려올 것이니라. 그래도 명색이 서남해의 대부호인 이 오다련의 집에서 하는 잔치이니라. 소홀함이 없도록 하여라.
집사 예, 어르신.
오다련 소는 몇 마리나 잡느냐?
집사 돼지가 오십마리, 소를 열마리나 잡사옵니다. 인근에 백정들이 모두 동원되었사옵니다.
오다련 그래야지. 그정도는 되어야지. 그래야 서남해의 모든 군사들도 고기 냄새 좀 맡을 수가 있지 않겠느냐? 모자라면 더 잡아라. 곳간을 활짝 열고 무엇이든 넉넉하게 하여라.
집사 예, 어르신.
씬 금성관아
관아 어느 곳에 왕건이 도영과 마주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세 가신이 함께 해있다.
유금필 벌써 소문이 떠르르 하옵니다. 금성고을에 있는 백성들 치고 이번 혼사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사옵니다.
능산 그러하옵니다. 다련군 댁에서도 잔치 준비가 한참이라 들었사옵니다.
도영 아버님께서도 워낙 급하시어 일을 눈앞에 두시면 참지를 못하시옵니다.
박술희 어쨌든 폐하께서 혼인을 서두르라 하셨으니 그리하셔야지요. 준비가 다 끝나려면 내일 쯤 되어야 할 것 같사옵니다?
도영 아마도 그럴 것이옵니다.
왕건 물론 폐하의 영이기는 하나 너무 서두르는 것 같소이다. 적어도 혼인이란 양가 집안 모두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 것인데... 일이 참 어렵게 되었소이다. 송악에 계신 숙부님의 허락도 얻지 못하였고, 또한 이 일을 정주에서 알아야 하는데 연락을 드릴 기회 또한 없었소이다.
도영 폐하께서 아시는 일이면 이미 그 분들도 알 것이옵니다. 전후 사정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사람을 시켜 보내시오소서.
왕건 (한숨) 급해요, 모든 게 너무 급히 돌아가고 있소이다.
그런 왕건의 얼굴에서....
씬 송악 왕건의 집 외경
왕평달 (E)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씬 동 집 사랑
왕평달이 왕식렴과 마주해 있다.
왕평달 아니, 폐하께서 조카에게 혼인을 하라고 영을 내리셨단 말이지. 아니 도대체 목포의 오다련이가 누군인데?
왕식렴 말씀올리지 않았사옵니까? 금성의 일을 도와준 그곳의 장자이옵니다. 그리고, 그 따님 도영아씨와 혼인을 한다 하옵니다.
왕평달 그걸 누가 몰라서 묻는 것이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도깨비 같은 혼인이 어디있단 말이냐? 우리는 그 집의 근본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도대체 이렇게 혼인을 하여도 된단 말이드냐?
왕식렴 어찌 하겠사옵니까? 나랏일이 관계되어 있다고 하지 않사옵니까?
왕평달 그래도 그렇지... 정주 유장자와 한 약속은 어찌 한단 말이냐? 굳게 양가가 혼인을 합의했는데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혼례를 올려? 아니 이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드냐?
두사부 .......
왕평달 우리 조카가 결코 이렇게 실없이 행동할 사람이 아닌데,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고. 이게 도대체....
변사부 곧 자초지종을 알려오지 않겠사옵니까?
마사부 소인들도 참으로 당황이 되옵니다만은, 사정을 듣고 보니 또한 이해도 가옵니다.
왕평달 무슨 말들을 하는겐가? 이거 어떻게 얼굴을 들고 정주의 유장자를 본 단 말인가? 허허, 이런... 정주에 가보아야겠구먼. 어찌됐든 가서 일단 사죄를 청해야지. 아니 그런가? 이 사람들아? 응.
씬 정주 유장자의 집 사랑
유장자가 혼자 서성거리며 끌탕을 하고 있다. 계속 한숨을 내쉰다.
유장자 (E)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내용을 들어보니 십분 이해는 가는데 딸아이에게 뭐라 설명을 한단 말인고... 허허, 이것 참.
그때 부용이가 찻상을 들여온다.
부용 아버님, 찻상 대령이옵니다.
유장자 오냐, 거기다 놓거라. (그러면서 한참을 본다).....
부용 왜....... 그렇게 보시옵니까? 아버님.
유장자 그게 저.... 얘야, 그게..그게 말이다. 금성의 왕장군이...
부용 (놀라며) 그 분에게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유장자 글세, 그게.......(하다가).... 금성을 다 함락시켰다는 구나.
부용 그 일은 우리가 다 알지 않사옵니까?
유장자 아, 참 그렇지. 그래. 그렇구나. 그만 가보아라.
부용은 대답하며 돌아서 간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갸웃한다. 허둥거리는 유장자가 오늘따라 이상한 것이다.
유장자 알려주기는 주어야 할 것인데...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까? 어이구... 이거 어떻게 이 일을 설명해야 할꼬.... (사이).... 허긴 그래도 어쨌든 우리 부용이가 제 일 부인이 된다 하였어. 체면이야 더 이상 상할 것이 없고..... 또한 이 일은 폐하께서 내리시는 영이시고(도리질하며)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장가를 다른 곳에서 먼저 갈 수 있단 말인가? 아니야. 어허, 이걸 어찌할꼬.... 어허......
그 위로 들려오는 질타한 풍악소리.
씬 금성 오다련의 집
전장에 참여했던 장수들이 모두 모였고, 수많은 호족들이 보인다. 혼례상이 차려져 있고, 이 혼례를 집전하는 집사가 소리친다.
집사 신부 배례!
신부인 도영이 절을 한다. 할 때마다 집사는 일배, 제배를 소리친다. 두 번이 끝나자, 집사는 다시 신랑 배례를 소리친다.
집사 신랑 배례!
이번에는 왕건이 절을 한 번 한다. 우-하는 사람들의 놀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집사 (큰소리로) 합근례-------, 자, 신부는 신랑께 술을 올리시오!
도영은 하님(도와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술잔에 술을 허리를 숙여 예를 올린 후 왕건에게 올린다. 그러면 왕건이 그것을 입에 대었다가 다시 하님을 통해 도영에게 권한다. 그러면, 그것을 도영이 조금 마신다. 또다시 사람들이 우-하며 웃고 있다.
집사 합근례를 통하여 이들이 부부가 되었음을 하늘에 고했소이다! 모두들 이들을 축복해주시오!!
그러자 먼저 오다련이 밤과 대추를 그들 위에 던져 준다.
오다련 떡두꺼비같은 아들 낳고, 내내 잘 살아라!
종례 (역시 밤과 대추를 던지며) 잘들 사시오!
모두들 잘들 사시오!!
이곳저곳에서 밤과 대추가 무수히 날아온다. 닭이 날아오르고, 풍악소리가 겹쳐들면서 사람들의 면면히 스쳐간다.
이흔암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여기 금성에 와서 잔치 술 먹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형님.
환선길 아, 그러게 말일세. 자네나 나나 마누라 떠나 온지가 하두 오래되서 정말 장가를 갔는지 안갔는지 그것조차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이흔암 하하하. 그건 그렇사옵니다.
신랑과 신부가 한쪽 자리로 가고, 처용무가 시작된다. 아악 소리와 더불어 수많은 무희들이 춤을 춘다. 그 한 켠에서 홍유, 김언, 김락 등이 유금필, 능산, 박술희 등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유금필 감격이 무량합니다. 우리 형님께서 비로소 어른이 되시는 것 같습니다. 장가를 가지 못하면, 어른 취급을 해주지 않는 것이 이 삼한의 법도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능산 그렇고 말고요.
박술희 이제 큰 형님께서 혼례를 올리셨으니, 이 몸도 서둘러야겠사옵니다.
홍유 왜요? 또 백제 땅에 가보고 싶으신게로군요? 그 견훤의 누이 생각이 나시는가 봅니다?
박술희 왜 아니겠사옵니까? 오늘따라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김언 이해가 갑니다. 그 마음을 누가 헤아리겠소이까? 아니그렇소이까?
김락 (놀리듯) 아 그렇고 말고요.
이치 이 좋은 날 박술희 부장 눈물 흘리게 하지 마십시다?
종회 하하하. 옳은 말입니다. 이러다가 박부장이 정말 우시게 생겼습니다그려.
박술희 아니, 왜들 나를 가지고 그러십니까? 자, 술들 마십시다. 우리 오늘 취해보십시다. 얼쑤, 얼쑤- (혼자 어깨춤을 추다가) 오늘 기분 좋은데 이 놈이 검무를 한 번 추어보이겠소이다.
박술희가 신이 나서 군사의 창을 하나 빼앗아 무희들이 추는 춤판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검무를 추기 시작한다. 어느새 무희들이 한쪽으로 몰려간다. 사람들이 우하고 보고 있다. 그러자, 유금필과 능산도 뛰어든다.
유금필 우리가 어찌 보고만 있겠는가? 같이 추어보세!
검무가 시작된다. 모두들 이들의 신기에 가까운 무예를 보고 있다. 북소리와 제금소리는 여전히 울리고 있다. 신기다! 곡예에 가까운 이들의 검무가 좌중을 압도하고 있다. 그 위로.
수달 (E) 뭐라고? 왕건이가 장가를 가?
씬 무주성 외경
씬 동 성안
수달이 뻥해서 부장2의 소리를 듣고 있다.
수달 왕건이 그 놈이 내 땅 금성에서 오다련의 딸과 혼인을 했단 말이지? 장가를 갔어?
부장2 예, 장군. 지금 주연이 한창이라고 들었사옵니다.
수달 (가슴을 치며) 어이구, 어이구 가슴이야. 제 놈들이 아주 수달이 가슴에 불을 지르는구먼. 불을 질러. 뭐가 어쩌고 어째? 내 땅 금성에서 장가가고 술판 벌리고 어이구, 어이구. 왕건이 이놈....!
부장2 고정하시오소서, 장군. 언젠가 그 땅을 되찾고 혼을 내주면 되지 않사옵니까?
수달 그래야지, 그렇게 해야 하고 말고. 수하들에게 일러라! 금성 일대의 모든 길목에 있는 백성들에게도 일러라. 그곳은 이 수달이의 땅이니라. 우리 폐하의 땅이니라! 곧 수달이가 다시 갈 것이라고 전하라!
부장2 예, 장군. 어찌 백성들이 모르겠사옵니까?
수달 어이구...
씬 오다련의 집(밤)
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의 잔치는 여전하다. 갖가지 곡예들이 선보이고 있다.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곡예사들 참조)
씬 동 집 후원 도영의 방
휘황하게 촛불이 밝고. 두 사람이 합환주를 마시고 있다. 도영은 행복한 표정으로 왕건을 본다.
도영 장군, 소녀의 청을 들어주시어 참으로 은혜가 크시옵니다. 이 몸은 더 이상 욕심이 없사옵니다.
왕건 이미 낭자는 이 사람의 부인이 되었소이다. 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추호도 혼인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소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숙명인 것 같소이다.
도영 어여삐 보시오소서. 하늘의 뜻으로 받아 주시오소서.
왕건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였소이다. 내 뜻과는 달리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어찌하겠소이까? 부인.
도영 예, 장군.
왕건 이미 우리 가문의 사람이 되었으니, 매사를 잘 살피고 또한 우애있게 집안을 이끌어 주기 바라오.
도영 이를 말이옵니까? 이제부터 제 형님이 되실 부용아씨께도 성심을 다할 것이옵니다. 믿어주시오소서.
왕건 이를 말이오. 다 화목을 해야 집안이 편한 법이요. 앞으로도 수많은 전쟁이 나를 기다리고 있소이다. 내가 없는 집안은 모두가 부인들의 몫이오. 그 점도 기억해주시구료.
도영 알고 있사옵니다. 참으로 꿈만 같사옵니다. 사모하던 장군을 제 낭군으로 이렇게 모셨으니 참으로 꿈만 같사옵니다.
왕건 고맙소이다. 이 사람을 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니, 고맙소이다. 자, 이리오시구료.
도영 장군,
왕건이 도영을 포옹한다. 그리고, 이들은 그렇게 감미롭게 얼굴을 가까이 하면서....카메라는 촛불로 팬한다. 디졸브.
씬 정주 유장자 집 외경
왕평달 (E) 이것 참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씬 동 집 사랑
왕평달과 유장자가 마주해 있다.
왕평달 도대체,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유장자 그러게 말이올시다.
왕평달 우리 조카 건이는 그렇게 지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올습니다. 필시 무슨 깊은 연유가 있는 것인데.....
유장자 그렇소이다. 왕장군을 원망하지는 않소이다. 어렵게 빼앗은 금성을 지켜야 하고 그러자면 정략적인 관계가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폐하께서 인정하고 결혼을 하라고 영을 내리신 것이올시다.
왕평달 그렇기는 합니다만은.... 우리로써는 송구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유장자 어찌하겠습니까? 이미 다 저질러진 일이올시다. 그리고, 이번 금성 일은 내가 다 주선을 하였고...... 그러니 할 말도 없고.......
씬 동 사랑밖
부용이 시녀를 시켜 주안을 보아오다가 멈추어 선다.
왕평달 (E) 아무튼, 결례는 결례올습니다. 이 사람이 용서를 대신 구합니다.
부용 ..........?
유장자 (E) 어찌 용서랄게 있겠습니까? 그런 말씀 마시오! 왕장군이 금성에서 도영이라는 낭자와 혼인을 한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되었소이다.
부용 ..(경악한다)...............?
유장자 (E) 문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딸아이를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것이외다. 왕장군은 이미 그곳에서 부인을 얻었으니 말이오.
부용이 경악한다. 충격인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씬 동 집 방안
밖에서 부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왕평달과 유장자가 밖에 귀를 기울인다. 시녀와 함께 들어서며 부용이 묻는다.
부용 아버님.
유장자 (놀라며) 아니, 얘야. 밖에서 듣고 있었느냐?
왕평달 허허, 이런....
부용 그것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왕장군께서 도영낭자와 혼인을 하셨다니요? 어떻게 된 일이옵니까?
유장자 일이 그렇게 되었구나. 그렇지 않아도 내 사정을 이야기 하려고 하였단다.
부용 그렇다면, 사실이옵니까? 왕장군께서 도영아씨와 혼례를 올렸다는 것이 사실이옵니까?
왕평달 아,하...저....... 낭자, 그렇기는 하지만 그게 글세...그게....
부용 어떻게 이럴 수가 있사옵니까? 어떻게....어떻게.......?
울음을 터뜨리며 부용이 되돌아 달려 나간다.
유장자 (당황하며) 얘야, 얘야.....
씬 밤 길
부용이 달려오고 있다. 얼굴은 눈물 투성이다.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중얼거린다.
부용 어떻게 이럴수가 있사옵니까? 믿기지가 않사옵니다. 어떻게...이렇게 될 수가 있사옵니까? 그토록 굳게 언약을 주셨는데...어떻게......
그런 부용의 표정에서........
씬 황궁 외경(낮)
씬 동 황후전
연화가 백씨, 그리고 슬이가 이야기하고 있다.
연화 (힘없이) 왕장군이 곧 돌아오신다고?
슬이 예, 마마.
백씨 그곳에서 혼인을 올렸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든가?
슬이 그렇다하옵니다 (연화에게) 그리고, 마마, 이곳으로 돌아오시면 정주의 유장자 댁 따님과 또 다시 혼인을 올리신다 하옵니다.
연화 그래......그리 들었다.
백씨 세상에.....그게 무슨 난리인고? 웬 혼인을 그리 복잡하게 한단 말인고? 세상에....세상이 웃을 일이다. 아니 그렇습니까? 마마.
슬이 그렇사옵니다. 놀라운 소식이 아니옵니까? 모두들 왕장군의 일을 신기하고 어리둥절해하옵니다.
연화 그분의 뜻이 아닐것이니라. 그럴 분도 아니시고..... 큰 일을 하다보면 그렇게 얽히고 설켜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하느니라. 허나,
백씨 ............
연화 하긴 이제 그 분도 집안을 책임지고 꾸리셔야지. 그럴 때도 되시었고...
그때 밖에서 제조상궁의 소리가 들려온다.
제조상궁 (E) 황후마마, 대전에서 내관들이 왔사옵니다.
연화 ( 본능적으로 사리며) 무슨 일이냐?
씬 동 밖 복도
대전내관이 다른 내관들을 끌고 와 앞에 서있다. 진내관이 눈짓을 하며 말한다.
진내관 이보시오, 제조상궁. 대전에 말씀을 그대로 전하시구료.
제조상궁 (끄떡이며) 황후마마, 대전내관이 폐하의 영을 받자와 두 분 태자 마마를 뫼시러 왔다하옵니다.
대전내관 (끄떡이며) 마마, 폐하의 영을 받으시오소서.
그러자, 휘장 문이 열리면서 표독스러운 표정의 연화가 그렇게 서있다. 모두들 허리를 숙인다.
연화 나는 지난날 분명 폐하께 이일만은 아니된다 말씀드렸다.
대전내관 마마, 영을 받으시오소서.
연화 (소리친다) 나는 아니된다 하였다.
진내관 황후마마, 고정하시고 폐하의 영을 받으시오소서.
연화 (울먹이며) 이제 갓 돌이 지난 아기를 빼앗아가다니..이 어린 것들이 무슨 공부를 하며 그것을 알아 들을 수 있단 말이냐? 아니된다.
모두들 황후마마.
연화 아니돼. 아기를 내어 줄 수 없다.
제조상궁 황후마마, 폐하의 영은 곧 법이시옵니다. 따르시오소서.
진내관 마마, 그리하시오소서. 어차피 같은 황궁 안에 계실 것이옵니다.
백씨 마마, 그리하시오소서. 멀리가시는 것이 아니라 하옵니다.
연화 (울먹이며) 폐하께서 인정이 계시는 분인 줄 아느냐? 나는 지난 날 북원부인의 일을 알고 있느니라. 오냐, 정히들 그렇다면 태자들을 데리고 가거라. 허지만, 가서 전하라. 매일처럼 지켜볼 것이니라. 밤이고 낮이고 내 아이들은 내가 지킬 것이니라. 그리 전하라.
대전내관 (상궁들에게) 뫼시어라.
상궁들이 두 아기를 안아들고 황후전을 나선다. 제조상궁과 내관들이 그들을 따른다. 연화가 보다가 다시 백씨에게 말한다.
연화 어머님, 폐하께선 피도 눈물도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 내 아이들도 북원부인의 아이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켤 볼 것입니다. 내 아이들을 그렇게는 아니 만들것입니다.
백씨 염려 놓으시오소서.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시겠사옵니까?
연화 모르십니다. 어머님은 아직도 폐하를 모르십니다.
씬 황궁 내전
궁예가 궁성을 짓는 설계도를 수없이 쌓아놓고 이리저리 뒤적이고 있다. 아지태와 은부, 종간이 그 앞에 함께 해있다.
궁예 (설계도 보며) 대단해, 그래 대 제국의 황궁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규모가 참으로 대단하오.
아지태 망극하옵니다, 폐하. 마음에 드신다 하니, 참으로 다행이옵니다.
궁예 들다마다, (계속 보며) 정전은 이렇게 크게 세우고 여러 전각들도 이렇게 우람해야지, 암. 보자........ 황궁을 지켜줄 성곽은......
아지태 바로 거기 있사옵니다.
궁예가 다른 설계도를 집어서 본다. 그리고, 끄떡인다.
궁예 마음에 드오. 성도 이정도는 되어야지. 양쪽으로 산을 끼고 들판을 막아서는 형국이 아주 제자리에 딱 들어있는 것 같구료.
아지태 황공하옵니다.
궁예 자, 기초공사는 시작을 한다고 하였는데, 청주에 백성을 사민시키는 일은 어찌되었소이까?
은부 내군의 군사들을 시켜 청주로 가게하였사옵니다. 하오나, 그곳 백성들이 고향을 떠나 철원으로 가 노역에 참가하게 되니, 모두들 불만이 많을 것이옵니다.
궁예 허, 누가 감히 나라에서 하는 일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단 말이오?
종간 .......
아지태 폐하의 영에 불만을 품는다면 그야말로 대역죄인들이지요. 청주에 백성들이 그럴 리가 없을 것이옵니다.
종간 하루 아침에 집과 터전을 잃고 객지인 철원으로 끌려가 노역에 투입된다고 생각해보시게. 어찌, 불안과 불만이 생기지 않겠는가? 폐하, 이 일은 다시 한 번 헤아리시오소서.
궁예 이미 다 생각하고 결정한 것인데, 뭘 또 살펴보라는 것이야? 더는 거론하지마오!
종간 .........
궁예 우리 마진국에 새 역사를 시작하는 일이오. 누구도 불만을 가져서는 아니되오. 지금이 첫 시작인데, 벌써부터 그런 소리들이 나온다면 결과가 뻔한 것이오. 나는 분명히 말해두거니와 철원으로 황궁을 옮기는 것에 대해 그 누구든 반대하거나 불만을 드러내면 엄히 다스릴것이오. 내군은 청주의 일을 더욱 독려하라!
은부 예, 폐하.
궁예 그리고, 금성의 왕장군은 어찌되었는가? 그곳에서 혼례가 끝나면 즉시 오라고 하였는데........
종간 그 영을 일찍이 전하였사옵니다.
궁예 모든 것이 뜻대로 잘 되고 있어. 금성도 우리 땅이 되었고, 이제는 백제의 견훤 왕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도 신라를 하루 빨리 도모할 수 있도록 계책을 세워야 하오.
아지태 폐하, 신라는 오래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나라이옵니다. 경계할 것은 무섭게 일어나고 있는 저 백제이지, 신라가 아니옵니다. 신라는 이미 인심을 잃었사옵니다. 그냥 놓아두어도 스스로 무너질 것이옵니다. 문제는 백제이옵니다.
궁예 짐도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 그러나, 우리가 방심하고 있다가 저 견훤왕이 먼저 서라벌을 차지해버리면......
아지태 폐하께서는 결국 삼한을 모두 차지할 것이옵니다. 이미 서라벌은 의미가 없사옵니다. 우리는 그 때문에 철원에 대 제국의 중심을 세우는 것이 아니옵니까?
궁예 음.....(끄떡인다)
아지태 신라나 백제는 왕장군에게 맡기시오소서. 폐하께서는 저 광활한 북쪽 대륙을 보셔야 하옵니다. 지금 발해국 저쪽에서는 이미 거란족이 크게 기운을 떨치고 일어나 당나라와 발해국 양쪽을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사옵니다. 그 거란족의 추장 아율라보기는 한낱 변방에 오랑캐였사옵니다.
궁예 음.....알고 있었소.
아지태 그 아율라보기가 지금 대륙의 주인이 되려 하고 있사옵니다. 아마도 머지않아 페하와 천하의 주인자리를 다투게 될지도 모르옵니다.
궁예 하핫하하하..........나와 패권을 겨룬다? 아율라보기, 제 놈이 이 궁예와 대륙을 놓고 겨룬다? 그것 참 재미있겠군그래.....하지만 나는 이미 황제가 되었고, 제 놈은 아직까지도 이름없는 오랑캐의 추장일 뿐이야. 이보시오,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대 마진국의 황제 궁예가 저들에게 이 기회에 선물을 하사하여 우리의 기개를 보여줌이 어떠하겠소?
종간 어떤 선물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궁예 보검을 한자루 아율라보기에게 전해주십시다. 그리고, 몇 마디 충고를 보내주십시다. 머지않아 우리는 대륙에서 만날 것인데, 그대가 진정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면 그때 대 마진국 황제인 짐 궁예에게 예의를 다하라 이렇게 말이오.
아지태 하하하하. 참으로 호쾌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그렇게 하시오소서. 아율라보기가 정신을 번쩍 차릴 것이옵니다. 하하하.........
아지태도 웃고, 궁예도 덩달아 웃고. 그러나, 종간과 은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들의 그런 표정에서.......
해설 궁예, 그리고 대 마진국, 마진국의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궁예는 드디어 칼을 뽑았다. 청주의 백성들이 철원으로 옮겨지기 시작했고, 철원주변의 모든 백성들이 다 동원되어 황궁과 성을 짓는데 투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국의 호족들에게는 막대한 세금이 부여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성을 짓는 비용의 염출이었다. 궁예의 독재가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궁예는 그 와중에서 거란의 아율라보기에게 마진국의 황제로써 검을 하사한다. 이이른바 대 제국 황제로써의 위엄을 나타내려했던 것이다. 궁예가 검을 전했다는 이 기록은 중국 쪽 역사서에 몇 자가 적혀 있다.
씬 몽타쥬
1. 황궁을 짓는 백성들의 모습이 보여온다. 돌을 나르고, 목재를 나르고, 감독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보여온다.
2. 청주의 백성들이 황토길을 가고 있는 대 이동의 현장이 보여진다. 금대와 장일들이 이들을 호송하고 있다.
씬 황궁 일각
어느 전각 안에 박지윤을 비롯한 문신들과 복지겸이 함께 해 있다.
박지윤 철원에서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고 합니다.
장자1 이미 전국적으로 세금을 독촉하는 관리들이 파견되고 있다고 하옵니다.
장자2 앞으로 우리들은 어찌되는 것이옵니까?
강장자 어찌되기는요? 페하의 영을 따라 있는 재산들을 다 내어놓고 황궁을 지어야지요.
유장자 백성들에게도 세금이 부과되고 있습니다. 전쟁을 하러 군역으로 나가거나 아니면 일을 하러 공역으로 가거나 그거 아니면 돈을 내야 합니다. 인심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습니다.
복지겸 다 각오한 일이 아니었습니까? 참고 견디어 내야지요.
유장자 이 사람이 걱정하는 것은 백성들입니다. 지금이야 폐하께서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시니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불만들이 터지게 되어있다는 것이올시다.
박지윤 그렇고 말고요.
박수문 소인이 알기로는 이번에 금성이 우리에게 넘어 온 이유도 지금과 비슷하다 들었사옵니다.
박수경 그러하옵니다. 견훤왕이 군비를 마련하느라 강압책을 썼다가 세금에 시달리던 호족들이 돌아선 것이 아니옵니까?
강장자 허허.. 그렇다면 그 일과 폐하를 비교하는 것이오? 이런 무례들이 있는가?
유장자 사실이 그렇소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을 지금부터 대비하자하는 자리올시다. 그리 억누르기만 해서는 어찌 이야기가 되겠습니까? 견훤왕과 금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소이다. 그 점을 생각하자는 것이예요.
씬 백제 황궁
씬 동 고비의 방
승평부인, 고비가 아기를 어르며 웃고 있다. 그 모습을 견훤이 그저 그런 시큰둥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고비 폐하, 우리 왕자가 막 걸으려 하옵니다. 보시오소서, 폐하.
견훤 그럴 때도 되었지. 벌써 두 살이 넘지 않는가?
고비 그렇사옵니다, 폐하. (이상한 듯 본다) 폐하, 어디가 불편하시옵니까?
견훤 불편하기는...그저 요즘은 매사 통 되는 일이 없어서......
고비 금성 일은 잊으시오소서. 자꾸 생각하시면, 용체를 상하시옵니다.
견훤 그게 그리 쉽게 잊어져야지? 답답해, 너무 큰 타격을 입었어.
고비 ............?
씬 동 황후전
박씨가 혀를 차며 시녀 옥이를 보고 있다.
박씨 때가 어느 때인데, 황도로 돌아오시어서 내내 그 승평부인의 방에만 계신단 말이냐?
옥이 ..........
박씨 글세, 승평부인 그것이 늘 문제란 말이야. 전장터로 나가시기 전에도 그것이 이리저리 폐하를 꾀어 심기를 흐트려 놓더니만 지금도 또 그래. 요물이로다. 요물이야...
옥이 그러게 말이옵니다, 황후마마. 신료분들이 대전으로 들고 있다하는데도 폐하께서는 나오실 생각을 아니하신다 하옵니다.
박씨 그러니 큰 일이 아니냐? 언젠가 저것이 큰 경을 칠 것이야. 큰 화근이 될 것이야.
씬 다시 동 고비의 방
아기가 걸으려다가 쓰러지고, 계속 반복한다. 고비는 깔깔 웃지만, 견훤은 시무룩하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내관 (E) 폐하, 신료분들이 대전에 입시해 계시옵니다.
고비 폐하, 신료분들이 와 계신다 하옵니다.
견훤 그래, 가보아야겠지.
고비 힘을 내시오소서. 폐하께오서 우울해 하시면, 나라 전체가 가라앉사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럴테지. 내 힘을 내기는 내야겠는데 그럴 만한 일이 통 보이지를 않으니 말이야. 내 다녀 옴세.
고비 예, 폐하.
견훤이 그렇게 나간다. 내관이 허리를 숙이다. 디졸브.......
씬 동 대전
견훤과 더불어 최승우, 능환 그리고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능예, 신검과 양검, 추허조, 박영규, 공직, 김총, 방장군 들이 모여 있다.
견훤 무엇 좋은 소식들이라도 있는가?
모두들 ..........
견훤 모든 전선이 다 정비되어서 큰 걱정거리는 없다고 들었고......
최승우 폐하, 지금 고려국이 나라이름을 바꾸고 황도를 옮기려고 대대적인 공역을 서두른다 하옵니다.
견훤 (그제서야) 그게 무슨 소린가? 나라 이름을 바꿔? 왜?
최승우 자세히는 모르오나, 오랫동안 써왔던 고려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마진이라 하였다 하옵니다. 마진이란 대 동방국이라는 뜻이 옵니다.
견훤 동방국? 대 동방국? 그건 또 무슨 소린고?
능환 이 삼한을 뛰어 넘어 저 북방의 대륙을 뜻하는 것이옵니다.
견훤 허..... 궁예왕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공직 이미 나라 이름을 바꾸었사옵니다, 폐하.
박영규 뜻 밖의 일이 옵니다. 고려는 저 북방의 패서인들이 주로 나라의 요직을 담당하고 있사옵니다. 헌데, 고려의 정신을 송두리채 버리고 마진국이라한다하니......이야말로 정치적인 부담이 아주 큰 모험이 아니겠사옵니까?
추허조 아니 궁예왕이 그런 대로 잘 나가고 평탄한 나라를 왜 갑자기 그렇게 들쑤셔 놓는 것일까요?
최승우 뭔가가 있기는 있사옵니다. 아지태라는 묘한 학자가 궁예왕 옆에 붙어서 온 조정을 흔든다 들었사옵니다. 아마도, 그 영향력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 같사옵니다.
능애 아지태가 도대체 누구이옵니까?
견훤 그런 사람이 있어. 허지만 그래도 그렇지, 궁예왕이 누구인가? 누구 한 사람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릴 사람이 아니야. 짐은 궁예왕을 잘 알아. 결코 그렇게 할 사람이 아니지. 오히려, 궁예왕이 아지태라는 인물을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능환 어떻게 말이옵니까?
견훤 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어보면, 때때로 혼자서 모든 것을 다 밀어 부치기는 어려울 때가 있어. 그럴 때에 누군가의 힘이나 이용할 상대가 필요하게 되지.
최승우 (미소) 그러하옵니다, 폐하. 아마도 궁예왕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대륙을 도모하는 생각 말이옵니다. 그야말로 무모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희대의 영웅이 아니면 꿈꾸기 어려운 목표가 아니겠사옵니까?
견훤 그렇지..그렇고 말고... 궁예왕은 능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야.
김총 대단하옵니다. 그 꿈이 말이옵니다.
방장군 허허허. 건방지게 대륙은 무슨 대륙이옵니까? 폐하께서 머지않아 궁예왕을 잡아 무릎 아래 꿇리실 것이옵니다.
능애 그렇사옵니다. 폐하, 이제 어느 한쪽으로 고려국, 아니 마진국이라고 하였든가요? 저 나라를 밀어 부치시오소서. 금성의 일을 설욕해야 하옵니다.
견훤 (도리질하며) 아니야, 서두를 것은 없어. 충분히 휴식을 하고, 충분히 준비를 하고 어느 곳으로 갈까를 정한 뒤에 다시 강력히 밀어 부치는 게야. 충분히 계산을 하고 말이야. 서두를 것 없어. 그보다도 저 금성..... 수달이가 저 금성을 꼭 되찾아야 하는데 말이야.
씬 금성관아 외경
씬 동 관아
왕건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환선길, 이흔암, 홍유, 김언, 김락, 이치, 종회, 유금필, 능산, 박술희, 오다련 등이 모여 있다.
왕건 폐하께서 이곳에 두 명의 주둔 장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송악으로 돌아오라고 명하셨습니다.
모두들 ............
왕건 그동안 금성 일대의 모든 군현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고, 또한 지역의 장정들이 스스로 방어력을 갖추었습니다. 이제 안심을 해도 될 것 같아, 주력군을 남겨놓고 우리는 폐하의 영을 따라 황도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환선길 이곳은 그러면.....누가 남아서 지키고 다스릴 것이옵니까?
왕건 백성을 다스리는 금성의 태수는 나총례 장자께서 사의를 표해오셨기 때문에 나의 장인이 되신 다련군께서 맡게 되실 것입니다.
오다련 어려운 직무를 맡게 되었소이다. 폐하의 은혜에 참으로 큰 감사를 올리옵니다.
왕건 그리고, 그동안 서남해의 군영을 맡게 될 장수로는 장군 종회와 김언, 두분이 될 것이외다.
두사람 황공하오이다, 장군.
왕건 이곳의 사정은 백제 전체가 눈독을 들이고, 노리고 있는 만큼 한시도 긴장을 풀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종회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리를 믿으시오소서, 장군.
김언 믿으시오소서.
왕건 어찌 믿지 않겠소이까? 다른 장수분들은 또 다른 많은 전장터가 기다리고 있소이다. 모두 함께 일단 송악으로 돌아가십시다.
일제히 예.
씬 금성 포구길
왕건이 도영과 함께 장수들을 거느리고, 뱃터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오다련과 종례 등이 이들을 환송하고 있다. 배에 오르기 전 오다련이 딸을 타이르고 있다.
오다련 이젠 너는 왕씨 문중의 사람이 되었느니라. 가서 잘 하거라. 뱃길로는 그리 먼 길이 아니니 내 자주 너를 보러 가마.
도영 예, 아버님.
오다련 송악 사람들은 가문도 훌륭하거니와 그 뿌리와 내력이 깊은 사람들이다. 모쪼록 오씨 집안의 품위를 잘 지켜 전하도록 해라.
도영 이를 말이옵니까? 염려 놓으시오소서.
오다련 왕장군! 사위라고는 하나 나는 장군이 아직도 어렵구료.
왕건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장인어른.
오다련 아무쪼록 딸아이를 잘 부탁하오. 아이가 워낙 기질이 방대하고 사내처럼 크니 그 점도 헤아려주시구료.
왕건 이를 말이옵니까? 자, 그럼...
북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이 모두 배에 오르고 있다. 왕건과 도영도 장군들과 배에 오른다. 그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선장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선장 선미를 틀어라! 배를 출항시켜라!
소리 배를 출항시키랍신다.
북소리는 더욱 요란하다. 거대한 배가 서서히 포구를 빠져 나가고 있다. 오다련 등은 그렇게 회한에 찬 눈빛으로 보고 있다. 그 배가 점점 포구에서 멀어지고 있다.
씬 바다(인서트)
왕건의 배가 대선단을 이루어 돌아가고 있다. 다시 디졸브되면....
씬 무진주 성 외경
수달 (E) 뭐라? 왕건이가 송악으로 돌아갔어?
씬 동 성안
수달이 고개를 외로 꼬며, 부장2에게 묻고 있다.
수달 저놈들이 얼마나 수달이를 우습게 보길래, 마음놓고 가버려?
부장2 설마, 대비책을 세우지 않고 그냥 갔겠습니까?
수달 그거야 그렇겠지. 허지만, 왕건이 돌아갔다고 하지 않느냐? 도대체 누가 그럼 금성에 남아 있단 말이냐?
부장2 장군 종회와 김언이라는 자라 하옵니다.
수달 종회와 김언?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인데... ?
부장2 궁예왕을 따라 수없이 많은 전선을 누빈 경험 많은 장수들이라 하옵니다.
수달 흥, 그래?
그때 밖에서 부장3의 소리가 들려온다.
부장3 (E) 장군, 손부장이옵니다.
수달 들어오너라.
부장3이 왠 낭인 두 명을 데리고 들어선다. 수달이 그들을 본다.
수달 이자들은..뭣하는 자들이냐?
부장3 그 옛날 북원의 양길의 밑에 있다가 지금은 주인 없이 세상을 떠도는 자들이옵니다.
수달 헌데..?
부장3 천하를 떠돌다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금성의 소식을 듣고 장군을 뵙기를 청해왔다 하옵니다.
수달 나를 왜?
낭인1 장군, 금성의 일을 들었사옵니다. 지금 마진국이 된 옛날의 고려는 우리의 철천지 원수이옵니다.
수달 그래서..?
낭인1 소인 밑에는 수십명의 목숨을 함께 하는 수하들이 있사옵니다. 거두어주신다면 궁예와 그 수하들을 부수는 일에는 언제든 뛰어 들 각오가 되어 있사옵니다.
수달 음...... (생각하며) 그래..?
낭인1 필요하실 때가 있으실 것이옵니다. 소인들은 저들 마진국에 대하여 많은 정보도 가지고 있사옵니다.
수달 음.....
낭인1 거두어주시오소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주군, 양길 장군의 원수를 갚고 사내답게 죽고 싶은 것이 소원이옵니다.
부장3 장군, 헛말을 할 자들은 아닌 것 같사옵니다. 거두어 쓰시오소서.
수달 양길의 옛 부하들이라......허허허, 오래 전에 잊혀진 양길이라는 이름이 오늘 아주 새롭게 들리는 구나. 그래, 그때 너희들은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지. 기특하구나. 주인의 원수를 갚겠다?
낭인들 허락해주시오소서, 장군.
수달 이보게, 손부장. 거두어주게. 훗날 할 일들이 있을 것 같구먼.
부장3 예, 장군.
낭인들 참으로 고맙습니다, 장군.
수달 .......... 궁예왕에게 원수를 갚겠다? 기특하구먼, 정말 기특해.
씬 송악 황궁
궁예 (E) 이것이 모두 다 철원의 일을 염려하는 글들이란 말인가?
씬 동 대전
궁예와 종간, 은부, 아지태, 박유가 함께 해있다. 많은 장계들이 올라와 있다. 찌푸리며 보는 궁예.
궁예 내가 분명히 조정에 경고를 내렸을 것인데...
종간 신료들이 폐하께 진언을 드리는 것을 막으셔서는 아니되옵니다.
궁예 허지만, 나는 이 일에 관해서는 누구든 반대를 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소.
박유 폐하께서는 많은 백성들의 어버이시옵니다. 무릇 어버이 되시는 분께서 자식된 백성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신다면 이야말로 어찌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라 하시겠사옵니까?
궁예 뭐라?..
모두들 ........
박유 지금까지 폐하께오서는 이 나라의 대 미륵으로써 많은 백성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셨사옵니다. 미륵 부처가 누구시옵니까? 달리 풀이한다면, 희망 그 자체가 미륵이 아니시옵니까?
아지태 건방지구나, 박학사. 이곳은 대전일세, 감히 폐하께 지금 그 무슨 불경인가? 목숨이 몇 개나 되는가?
박유 하하하. 목숨이라고 하였는가? 물론, 목숨은 하나 뿐일세. 허나, 옳은 말을 위해 그 하나를 던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는가?
궁예 (한 참을 보고 있다가)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 그말이렸다?
박유 옳은 일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면 그렇사옵니다.
궁예 하하하. 오랜만에 아주 대단한 인사 하나를 만난 것 같구먼그래.
박유 .............
아지태 ..........
종간 (보고 있다가)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궁예 허허허. 두렵지 않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 그렇다면 죽어 보겠는가? 그래 보겠는가?
박유 .........(그래도 당당하다)
궁예 그렇지 않아도 이번 철원의 역사에 있어서 너무나 말들이 많아. 누군가는 본보기로 하나 희생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종간 폐하..
궁예 그 희생을 박유 그대가 맡겠다 그말이지? 그대가 말이야?
그런 궁예의 위압적인 표정에서.....스톱모션.
< 62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