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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65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1.17|조회수1,443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65회>



 


씬 1 철원 공역장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무너져 내린 통나무 더미에서 흙먼지가 일고 있다. 궁예가 그 참혹한 광경을 충격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왕건과 복지겸, 그리고 내군의 군사들이 급히 궁예에게 다가와 그를 에워싼다. 온통 부산하다.


왕건 폐하,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복지겸 상하신 데는 없사옵니까, 폐하?

궁예 나는 괜찮아. 어서, 어서 아학사를 구하라! 어서!!


군사들이 대답하고 다가가 통나무들을 걷어낸다. 아지태가 머리와 팔다리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다. 금대가 일순 낭패한 표정을 짓는다. 군사들이 아지태를 일으킨다.


궁예 어떤가? 살아 있는가? 살아 있어?

금대 예, 폐하.. 아직 숨이 붙어 있사옵니다.

궁예 오 그래? 다행이구먼.. 천만다행이야.. 어서 아학사를 안으로 옮기거라. 그리고 속히 의원을 불러라. 어서!

금대 예, 폐하..

은부 폐하, 얼마나 놀라셨사옵니까? 모두가 소신의 불찰이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오소서.


군사들이 아지태를 들쳐 업고 어디론가로 사라진다. 은부와 장일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궁예가 업혀 가는 아지태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싸늘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많은 인부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리고 있다. 내군의 군사들이 줄을 끊었던 인부를 끌고 오고 있다. 인부는 궁예 앞에 와서 꿇린다. 궁예가 그 인부를 본다.

인부는 겁에 질려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다. 궁예가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


궁예 고개를 들라..

인부 ........

궁예 고개를 들라 하였느니라.

인부 .......(마지 못해 고개를 천천히 든다)

궁예 네가 조금 전에 도끼로 줄을 끊었겠다?

인부 ......

궁예 이 일은 아무리 보아도 사고가 아니야!

모두들 ........

궁예 누가 시켰느냐? (사이) 누가 시켰어?

인부 시킨 것이 아니오라...... 일을 잘못하여.....실수를 했사옵니다.......

궁예 실수가 아니라고 하였어. 이것은 고의야. 감히 나를 속이려고 하느냐? 말하거라! 너는 누구이냐? 누가 시켰어?

인부 아, 아니옵니다. 페하, 소인 놈이 그만 실수로.....

궁예 혼이 나야 하겠느냐? 바른 대로 말하지 못할꼬? 내 눈을 똑똑히 보거라. 나는 미륵이니라. 네가 감히 미륵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으냐?

인부 (두려움에) 폐.. 폐하....

궁예 나는 네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느니라. 혼자서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야. 바른 대로 실토한다면 목숨은 살려주마. 말해 보거라. 어서! 어서!!


인부가 당황해 하며 은부를 본다. 그러나 은부는 무섭게 노려보며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가로 젓는다


궁예 어서 말해보라. 누가 시킨 것인가? 아학사를 죽이라고 사주한 자가 누구란 말인가?

인부 .........

궁예 아무래도 아니되겠구나. 말로해선 아니되겠어. 이 자를 압송하라! 임시 행궁에서 짐이 친국을 하리라. 반드시 말을 하게 될것이야. 어서 끌고 가라.

은부 이 자를 끌고 가라!


그러자 장일을 비롯한 내군들이 그 인부를 끌고 두어발자국 갔을까? 갑자기 인부가 몸부림을 치며 그들의 손을 벗어나려고 하다가, 혀를 깨문다. 모두들 놀란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고통스럽게 눈을 부릅뜬 채 쓰러진다.


금대 폐하, 이 자가 혀를 깨물었사옵니다.

궁예 아니 된다. 그렇게 죽게 해선 아니된다. 그 자를 살려라! 배후를 알아야 해. 그 자를 죽게 해선 아니된다.


그러자, 왕건이 달려가 인부의 머리채를 잡아 당기며 본다. 인부는 이미 숨이 끊어져 가고 있다.


왕건 폐하, 숨을 거두었사옵니다.

궁예 (분노로 이글이글 타고 있다)........?

은부 (안도의 한숨)........

궁예 (도리질을 치며) 절대로 단순한 사고가 아니야. 이자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이 일은 누군가에 의해서 치밀하게 계획된 일이야.

은부 .........

복지겸 신이 생각하여도 그런것 같사옵니다. 이자의 신원을 알아보아야 하겠사옵니다. 신라나 백제의 첩자들일수도 있지 않겠사옵니까?

궁예 (도리질하며) 신라나 백제라?....... 허허허, 이곳에 경계가 그토록 허술하단 말이오? 짐과 더불어 아학사나 경같은 중신들이 마음놓고 활보하는 이곳이 그토록 엉성했단 말이오? 그런 것인가? 은장군?

은부 송구하옵니다, 폐하. 신을 벌하여 주오소서.

궁예 .........?

은부 참으로 입이 열개라 하여도 변명할 말이 없사옵니다, 폐하.

궁예 (한 참 보다가) 그렇겠지. 어찌 할말이 있겠는가? 은장군이 어찌 할말이 있겠어?

은부 ...........


궁예의 의심스러운 눈빛이 은부에게 가 닿는다. 은부가 놀라 그 시선을 슬그머니 피한다. 궁예는 한참 은부를 본다. 그 시선에서...


씬 2 공역장의 지휘소 외경


임시로 지어진 막사다. 군사들이 삼엄히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씬 3 동 안


의원이 아지태를 치료하고 있다. 궁예와 왕건, 복지겸, 은부 등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의원이 이내 치료를 마치고 물러선다.


궁예 어떤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의원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되옵니다, 폐하.. 사고의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은 것 뿐이옵니다. 다리가 골절되고 온몸에 타상이 심하긴 하나 목숨에는 지장이 없사옵니다. 한 보름이면 일어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궁예 그런가? 다행이구먼.. 하늘이 아학사를 도운 게야.. 허허허..

은부 .........


그 때 아지태가 신음을 하며 깨어난다.


궁예 아학사... 이제 정신이 좀 드오?

아지태 ......폐...하...?

궁예 나를 알아보겠소?

아지태 ....(미소) 어찌.... 폐하를.... 알아보지 못하겠사옵니까?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고통스럽다)

궁예 그대로 누워 있으시오. 많이 다치셨소이다.

아지태 괜찮사옵니다.. 폐하께서 무사하신 모습을 뵈오니 참으로 안도가 되옵니다.

궁예 허허허.. 그런 일을 당하고도 짐의 걱정부터 하는 게요?

아지태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짐작하고 있었사옵니다. 큰 일을 하다보면 때로는 소인배들이 엉뚱한 일을 저지르는 법이 아니옵니까?

궁예 암, 그것은 나도 짐작한 일이었소이다. 한심한 일이야. 참으로 한심해.

은부 .........

아지태 이보게 의원, 이 사람이 얼마나 다친 겐가? 걸을 수는 있겠는가?

의원 큰 부상은 아니옵니다. 보름정도면 불편하겠지만, 거동은 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아지태 이사람아 보름이라니? 그럴 수는 없지.. 공역이 한창 진행 중인데.. (안간힘을 다해 일어나려 하지만...)
보름씩이나 누워있단 말인가?
궁예 어허.. 그 몸으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

아지태 괜찮사옵니다. 한쪽 다리는 멀쩡하지 않사옵니까? 공기를 제때에 맞추자면 이러고 있을 수는 없사옵니다.

궁예 어허, 그 몸으로는 무리오. 그러다가 상처가 더 악화되면 오히려 일을 더 그르칠 수 있소이다. 우선은 몸을 돌보도록 하오.

아지태 하오나..

궁예 그렇게 하시구료. 그리고 은장군.

은부 예, 폐하..

궁예 경이 책임을 지고 아학사를 각별히 보호토록 하게. 만에 하나 아학사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나는 누구보다도 그대에게 추궁을 하게될 것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은장군이 책임을 지고 주야로 아학사의 신변을 보호하라는 것이야. 책임을 지고 말이야.

은부 예, 폐하.

궁예 은장군이 그렇게만 한다면 아학사는 안전할 수가 있어. 아니그런가, 은장군?

은부 .........

왕건,복지겸 .......


씬 4 궁예의 임시 처소(밤)


궁예와 왕건, 복지겸이 모여 있다. 궁예가 뭔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


궁예 사고가 아니야... 누군가가 아학사를 제거하기 위해 계획한 일이 분명해..

복지겸 낮에도 말씀을 올렸사옵니다만은 적국의 소행이 아니겠사옵니까?

궁예 그렇지가 않소이다. 그렇다면 짐을 노렸어야지 왜 아학사를 노렸겠소? 이는 내부의 소행이오.

왕건 폐하, 누가 감히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사옵니까?

궁예 그들이 누군인지는 언젠가 밝혀지겠지요.

복지겸 내군에서 죽은 인부와 그 주변을 조사하고 있으니 곧 뭔가가 밝혀지기는 질 것이옵니다.

궁예 아니오. 그렇게 쉽게 드러날 일은 아닐것이오.. 이미 그 자는 죽었고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그렇게 묻혀지게 되겠지요. 허지만, 그리 쉽게는 아니될 것이야. 그렇게는 넘길 수가 없지.

왕건 ......?

궁예 이 일을 꾸민 자들은 짐이 추진하고 있는 철원 천도와 개혁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일 게야.

왕건 ............

궁예 아마도 앞으로 더욱 험난한 시절이 다가올 것이야. 그러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 번 시작한 개혁은 중단 없이 계속되어야해, 왕장군.

왕건 예, 폐하.

궁예 나는 이번에 여는 법회를 시작으로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저 미련한 자들의 의식을 모두 바꾸어 놓을 것이야.

왕건 ........

궁예 그래서 나라 전체가 개혁에 동참하는 자리를 만들게 할 것이야. 온 백성과 모든 대소 신료들이 함께 하는 개혁의 자리 말이야.

왕건 .........?

복지겸 ...........

궁예 돌아가는 대로 그 일들을 속행할 수 있도록 송악으로 재차 전령을 보냈네. 아우는 머지않아 다시 전쟁터로 가게 될 것일세. 아우가 밖에서 제국의 영광을 드러내는 동안, 나는 안에서 만년의 기업을 위한 터전을 마련할 것이야. 나와 아우가 대제국 건설의 최선봉에 서는 것이란 말일세. 그 영광의 자리를 우리 둘이 나란히 가는 것일세. 우리 둘이 말이야..나는 아우만 믿네.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자, 송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세. 이제부터 할 일이 많으이.


씬 5 길(밤)


전령 한 무리가 말을 타고 쏜살 같이 달려가고 있다.


종간(E) 철원에선 아직 소식이 없는가?


씬 6 내원(밤)


종간과 염상이 마주해 있다.


종간 지금쯤 무슨 얘긴가 전해 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

염상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오소서.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옵니다.

종간 답답하구먼... 조용히 잘 처리가 되어야 할 것인데.....

염상 염려 놓으시오소서.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치밀하게 일을 준비했으니 아지태 그 자가 살기는 어려울 것이옵니다.

종간 일이 잘못 된다면 오히려 큰 화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야. 그야말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나.......

염상 잘 알고 있사옵니다.

종간 이번 일마저 실패한다면 달리 손을 쓸 방도가 없네. 철원 천도는 기정사실이 되는 것이고, 나라의 사정은 더욱더 어려워지게 될 것이야. 어디 천도뿐이겠는가? 그 이후의 사정은 한치 앞이 안보이는 세상이 될 것이야.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염상 그렇사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한숨)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구먼..

염상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옵니다만은 아지태는 분명 살아 남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종간 그래야 할것인데.......


종간의 어두운 표정에서 디졸브 되면...


씬 7 황궁 외경(낮)


씬 8 황후전 복도


진내관이 들어서고 있다. 대기해 있던 제조상궁이 그를 맞는다.


제조상궁 어서 오시오소서. 황후마마께서 오래도록 기다리셨사옵니다.

진내관 아뢰어 주시오.

제조상궁 황후 마마, 진내관이 왔사옵니다.

연화(E) 어서 들라 하게.


상궁들이 문을 열어주면 진내관이 안으로 들어간다.


씬 9 동 안


진내관이 들어온다. 강장자와 백씨도 와 있다.


연화 어찌 되었는가?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단 말인가?

진내관 예, 황후마마. 아직까지는 그렇사옵니다. 이렇다 할 소식이 하나도 들어와있지 않사옵니다.

연화 이 일을 어찌하나...... 그 낭자를 어디서 찾는단 말인고?

진내관 대룡부령의 그 따님을 찾는 일은 이제 전국의 고을 수령 방백들과 더불어 내군과 의형대까지 나섰다 하옵니다.

연화 대체 어디에 가 있단 말인가? 살아 있기나 한 것인지..

강장자 처자 하나를 찾는 일에 황후마마도 나서시고, 거기다 나라의 법을 맡아 보는 의형대까지 나섰단 말인가? 그런 일로 그렇게까지 요란을 피운단 말인가? 그것 참..

연화 폐하의 특별한 관심과 영이 계셨사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꼭 찾아주어야하지 않겠사옵니까? 한데 아버님께서는 어인 일이시옵니까?

강장자 아 예, 곧 조회가 있다하여 입궁하면서 잠시 이곳에 들렸사옵니다.

연화 조회라니요? 폐하께선 철원에 가 계시지 않습니까?

강장자 아마도 내원께서 조회를 주재하실 모양이옵니다. 폐하께서 아니계시면 종종 내원이 조회를 보지 않사옵니까?

연화 무슨 일로 조회를 본다 합니까?

강장자 보나마나 세금징수 문제와 공역에 관한 일을 의논하는 자리가 될 것 같사옵니다. 또.. 곧 있을 백제와의 전쟁 문제도 그렇구요.

연화 전쟁을 또 한단 말이옵니까?

강장자 그런 얘기를 들었사옵니다.

연화 나주에서 큰 전쟁을 치른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강장자 삼한이 통일되고 이 난세가 평정되기까지는 전쟁은 계속되지 않겠사옵니까? 어디서 누가 이기든 간에 삼한의 진정한 주인이 나오기까지는 쉴새 없이 싸움이 계속될 것이예요. 아마 이번에도 왕장군이 나서게 될 것 같다던데.....

연화 왕장군이요?


씬 10 왕건의 집 마당


왕평달과 식렴이 관복을 입고 나오고 있다. 오씨와 두 사부가 배웅차 뒤를 따른다.


오씨 조정에 첫 출사를 하시는데 소홀한 점이 없었나 모르겠사옵니다?

왕평달 허허 무슨 소리..? 조카 며느리가 없었더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일이 많았을 게야.

오씨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사옵니다. 한데, 무슨 일로 조회를 연다 하옵니까?

왕평달 요즘 조정에 중대사가 어디 한두 가지인가? 철원 문제도 있겠고, 다시 전쟁을 치른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오씨 허면 서방님께서 출전을 하시게 되는 것이옵니까?

왕평달 글세.. 아마 그리 되겠지. 그 일을 의논하시려고 폐하께서 조카를 데리고 철원에 가신 것이 아닌가 싶구먼..

오씨 .....(끄덕인다)....

왕평달 자 그럼 다녀옴세. 식렴아 가자꾸나.

왕식렴 예, 아버님..

오씨 다녀오시오소서.

두 사부 다녀오시오소서, 어르신.


왕평달과 식렴이 그렇게 대문을 나선다.


변사부 헌데 아침부터 집안이 꽤나 분주하옵니다?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오씨 (미소) 그럴 일이 있습니다.

마사부 그럴 일이라니요?

오씨 신료들과 장수들의 부인들을 초대했사옵니다. 서로 인사는 나누고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안사람들이 처신을
 잘해야 바깥 일도 잘 되는 법이지요.
 

그 때 부인들이 들어온다. 오씨가 반색하며 다가가 맞는다.


오씨 어서 오시어요. 자 안으로 드시지요. 저쪽으로 가시어요. 환장군 부인께서도 오시고, 아이고 이흔암 장군 부인이 아니시옵니까? 자, 저리로 드시오소서.


오씨가 부산하게 여러 부인들을 안내하여 안채로 향한다. 두 사부가 너털 웃음을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마사부 아무튼 대단한 여장부가 아닙니까? 송악에 온 지 얼마나 되셨다고.. 허허 그것 참...

변사부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겝니다. 앞으로 참으로 이 집이 부산하게 생겼습니다. 하하하...


씬 11 산사 외경


멀리서 범종 소리가 들려온다. 카메라 다가가면....


씬 12 그 산사 마당


석총이 객사 쪽에서 걸어나온다. 그리고, 열려진 법당 문으로 다가와 안을 들여다 본다. 부용이 눈을 지그시 감고 염주를 굴리고 있다. 간절히 뭔가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석총 허허허, 세상 모든 번뇌를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것 같구먼.

부용 ..대사님..?

석총 그래 부처님께서 답을 주시던가?

부용 모르겠사옵니다. 떨쳐 내려하면 할수록 소녀를 더욱 붙잡는 것이 있사옵니다.

석총 허허허.. 그럴 테지.. 그럴 게야. 마음 하나 잡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지. 그래서 부처님 말씀에 천만 대군을 이기는 것 보다 제 마음 하나 이기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느니라.

부용 ...........

석총 온 나라가 자네를 찾기 위해 떠들썩 하느니..... 많은 상금까지 내걸고 있다더구먼.

부용 ..........?

석총 허허 다 버렸다하더니 그런 것도 아닌 거 같네 그려.

부용 아니옵니다. 소녀는 다 잊었사옵니다.

석총 중노릇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닐세. 선택받지 않고서는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게야. 잘 생각하게. 내 보기에 그대는 이 곳에 오래 있을 사람이 못되는 것 같아.

부용 ...........

석총 (부처님께 합장을 하고는) 수일간 보지 못하게 될 게야. 허월 땡초하고 유람이나 다녀올 참이거든. 허허허..


석총이 그렇게 지나쳐간다. 부용이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다시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씬 13 그 산길


석총과 허월이 산길을 내려오고 있다.


석총 가만히 잘 지내고 있는 사람을 꾀어낸 까닭이 뭔가?

허월 허허 꾀어내긴 누가 꾀어냈단 말인가? 좀이 쑤셔서 안절부절 못하던 사람은 누구신데?

석총 허허 내가 그랬단 말인가? 어쨌든 허월이 자네 덕분에 좋은 구경하는구먼. 단풍이 절정일세 그려.

허월 그러게 말일세. 때가 되니 어김없이 온 산이 옷을 갈아 입는구먼. 오고가는 자연의 섭리란 참으로 정확한 것이거든.

석총 한데 어디로 가려는가?

허월 언제 정해놓고 다녔는가? 천천히 단풍 구경이나 하다가 어디 물좋고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곡차나 마시는 게지..

석총 밤새 그렇게 마셔대고 또 곡차타령인가?

허월 허허허.. 깨치지 못한 늙은 중이 할 일이 무에 있겠는가? 그저 곡차를 벗삼아서 한세상 살다 가는 게지..

석총 듣고 보니 그도 그렇구먼.. 허허허..

허월 (사이) 그나저나.. 법회에는 참석을 하시려는가?

석총 ......내키지는 않지만 내가 가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성화를 당할 것이니 가 보긴 해야겠지. 하지만 부처님의 정법이 아닐세.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일 뿐일세. 백성들의 마음의 눈을 가리려는 술책이아니겠는가?

허월 굳이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한 나라를 다스리자면 그럴 필요도 있는 것이 아닌가?

석총 아닐세. 거짓 미륵이 광기를 부리면 세상은 온통 피로 잠기고 말 것일세. 누군가 막아야 하네. 목숨을 내놓고 그 독선과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야 한다는 말일세.


석총의 그 단호한 모습 위로


해설 석총. 당대 정통 미륵 종단의 회주인 그가 궁예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 일이었다. 궁예가 지금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이 때까지 백성들은 궁예가 미륵이라는 사실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믿음은 궁예의 정권을 유지하는 절대적인 힘이었고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서서히 의심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미륵 종단의 종주인 석총같은 고승에게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씬 14 황궁 정문


신료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박지윤과 두 아들이 들어온다. 저만큼 서성거리고 있던 장자1, 2가 그들을 보고 반색하며 다가온다.


장자1 어서 오시오소서, 광치나 어른..

박지윤 일찍들 나오셨구려? 자 들어들 가십시다.


그들 그렇게 사라져 가고, 계속해 환선길을 비롯한 장수들이 들어선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왕평달과 식렴 부자의 모습도 보인다.


씬 15 내원 앞 길


종간이 염상과 함께 나오고 있다. 박유가 반대편에서 오다가 그들과 마주친다.


박유 조회에 가시는 길이시옵니까?

종간 그렇소이다. 요즘 태자마마들을 돌보시느라 바쁘시다 들었소이다만은..?

박유 예.......헌데, 철원 천도 문제로 조회를 여는 것이옵니까?

종간 그 일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사안도 있소이다.

박유 곧 법회도 연다고 들었사옵니다만은......

종간 항상 있어왔던 일이오. 폐하께서는 이 나라의 미륵이 아니십니까?

박유 하지만 소생의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사옵니다. 뭔가 다른 뜻이 계신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종간 허허허.. 다른 뜻이라니?

박유 신료들과 백성들을 정신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단속책이 아니옵니까?

종간 ..........(표정이 굳는다)

박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옵니다. 통제라는 것은 결국에 가서 저항과 반발을 불러오게 되어 있사옵니다. 즉, 순리를 벗어나는 길이 되옵니다.

종간 이보시오 박학사..

박유 예...

종간 내 박학사를 아껴서 하는 말이니 곡해 하지 말고 들으시구려.. 정치에 관한 일은 되도록 나서지 마시구려.. 그런 일은 박학사의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에는 어울리지가 않소이다. 몸을 상하게 된다는 말씀이예요..

박유 ..........

종간 박학사 같은 분을 잃고 싶지가 않아서 하는 말이오. 박학사야 말로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인재올시다. 이 사람만은 박학사의 고견을 경청 하겠소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사람을 도와주시구려..

박유 ..........


그 때 철원에서 온 전령이 달려온다.


전령 내원 어른, 폐하의 영을 받자와 철원에서 오는 길이옵니다.

종간 오, 그런가?

전령 폐하께서 조회의 결과를 알아오라 하셨사옵니다. 그리고 법회 준비를 더욱 서두르시라는 영이시옵니다.

종간 그리고?

전령 폐하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곧 출병을 거행하신다 하셨사옵니다. 그 일에 대해서도 만전을 기하라는 영이시옵니다.

종간 (끄덕이며) 알았네..

염상 철원은 별 일 없는가?

전령 큰 사고가 있었사옵니다.

염상 사고?

전령 예, 폐하께서 공역장을 돌아보시는데 갑자기 통나무 더미가 무너져 내려...

박유 뭐라?

종간 ......?

전령 다행히 폐하께서는 무사하셨사옵니다. 다만 아학사께서... 그 통나무 더미에 깔리시어 중상을 입으셨사옵니다.

염상 주, 중상이란 말인가?

전령 예, 의원의 말로는 얼마간 치료를 하면 일어나실 수 있을 거라 하옵니다.

염상 .......

종간 .......(충격) 알았네.. 그만 가보게.


전령이 대답하고 사라진다.


박유 허.. 그런 일이 있었다니... 하마터면 큰 일이 날 뻔 했사옵니다?

종간 중상이라..... 중상이라...........이런.............


종간의 절망적인 표정에서...


씬 16 조회장


문무 신료들이 가득 모여 있다. 왕평달, 왕식렴, 홍유, 이흔암, 환선길, 능산, 박술희, 유금필, 유장자, 장자1,2, 박지윤, 박수문, 박수경 들이 길게 자리를 잡고 있다. 종간이 들어오자 모두들 일어나 그를 맞는다. 자리에 앉는 종간의 표정은 무섭도록 굳어 있다.


종간 폐하의 영을 받들어 조회를 시작하겠소이다.

신료들 ........

종간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철원 천도는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소이다. 폐하께서 수차례에 걸쳐 철원에 다녀오셨고, 지금도 공역이 한창 진행 중에 있소이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은 철원환도는 기정사실이 되었다는 것이올시다.

모두들 ........

종간 헌데, 아직까지도 그 일에 대해 불만을 품고 마땅히 내야할 세금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니 참으로 한심하고 불충한 일이 아닐 수 없소이다. 재원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소이다.

박지윤 .........?

종간 이 사람도 한 때는 철원 천도에 대해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외다. 허나 폐하께서 결정하신 이상 더 이상 왈가왈부해서는 아니 될 것이오. 폐하께서는 우리의 주인이시오. 그 분이 달라시면 뭐든지 내놓아야 하오. 재물은 물론이요, 목숨까지도 내어드려야 할 것이오. 그것이 조정에서 녹을 먹는 신하된 자의 도리가 아니겠소이까?

신료들 .......

종간 하지만 이 조정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소이다. 참담하게도 이 자리에있는 신료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대룡부령, 그렇지 않소이까?

유장자 많은 호족들과 지방 수령들이 적지 않은 할당량들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계속해 폐하의 영을 수령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종간 시간이 걸리다니?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오? 자신들의 집안 곳간에는 재물들이 넘쳐나는데 나라 일에 쓴다고 하면 그렇지가 않소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저들에게 시간을 주란 말이오? 재정을 담당하는 분께서 그리 녹록한 생각을 갖고 계시니 일이 진척이 아니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평달 허지만, 내원어른. 생각하시는 것 만큼 모두가 형편이 좋은 것은 아니옵니다. 때로는 형편과 분수에 맞지 않는 책임을 주어 힘들어 하는 자들이 많다 들었사옵니다.

종간 변명이외다. 가난한 백성들도 아무 말 없이 세금을 내며, 온 몸을 다바쳐 공역에 참여하고 있소이다. 청주에서는 무려 일천호가 넘는 백성들이 그곳으로 이주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피땀으로 황궁건설에 임하고 있소이다. 하물며 지역의 호족이며 장자라는 사람들이 변명만 늘어놓아서야 될 일이오이까?

신료들 ...........

종간 다그치시오. 일일이 점고하여 그 의무를 소홀히 하는 자들은 모두 보고토록 하시오. 이제부터는 이 사람이 직접 그 일을 챙길 것이오. 지금까지 안일하게 생각해 왔다면 지금이라도 각오를 새롭게 하시오. 아시겠소이까?

신료들 예...

종간 그리고 병부의 장수들은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하라는 폐하의 영이 계시었소. 만발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시오.

장수들 예.

환선길 이번의 공격방향은 상주가 맞사옵니까?

종간 그렇다 들었소이다. 장수들은 상주 일대의 교통로와 지형을 숙지하는 것은 물론 각 공격로의 설정과 더불어 전략과 전술을 세우도록 하시오.

배현경 이번에는 누가 총사령을 맡게 될 것이옵니까?

종간 왕건 장군이 총사령을 맡게 될 것이오.

이흔암 그렇사옵니까? 이번에도 왕장군이.....

홍유 우리는 오래전에 왕건 장군과 더불어 충주에서 상주와 대치한 적이 있었사옵니다. 왕장군이 총사령을 맡는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김락 그렇사옵니다. 왕장군과 그 부장들인 유금필, 능산, 박술희 같은 장수들은 오랫동안 여기 홍장군과 더불어 충주에 대해 많은 경험을 쌓아 왔사옵니다. 충분히 도모해 볼만하옵니다.

종간 (세 사람을 보며) 그것은 이 사람도 익히 알고 있소이다. 세 분은 지난 나주 전투에서도 상당한 수훈을 세웠다지요?

유금필 송구하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이미 그대들도 장수들의 반열에 서있소이다. 이번에도 왕장군을 도와 좋은 소식들을 전해주시구료.

세가신 예.

종간 마지막으로, 법회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소이다. 이번 법회는 지난 번과는 달리 폐하께서 각별히 공을 들이시는 국가적인 대 행사라 할 수 있소이다. 그런 만큼 각지의 수령들에게 일러 전국의 이름 있는 고승 대덕들을 반드시 참석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오. 한치의 소홀함이 있다면 또한 그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니 그리들 아시오.

신료들 예...


씬 17 송악 포구


석총과 허월이 오고 있다. 저만큼 군사들이 어디론가로 몰려가고 있다.


허월 또 한바탕 난리가 있을 모양이구먼..

석총 겨울은 다가오는데 전쟁이라니.. 백성들은 어찌 산단 말인가....?

허월 그러게 말일세.. 여름내 농사를 짓고 이제 좀 쉴만하니 다시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는구먼...

석총 어느 때가 되어야 이 광란의 세월이 끝이 난단 말인가?

허월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 하지 않던가? 기다려 보세나. 난세를 구할 영웅이 어딘가에서 용트림을 하고 있을 것일세.

석총 옳은 말이네.. 우리야 그저 이렇게 세월만 탓할 뿐이지, 뭣을 할 수 있겠는가? 언젠가는 참미륵이 나타나 이 난세를 정리해주겠지.


씬 18 강변 길


궁예들이 철원에서 돌아오고 있다. 너른 들판에 곡식이 무르익어 황금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다.


궁예 올해도 대풍일세. 들판이 풍성하게도 무르익었네 그려.

왕건 참으로 장관이옵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 것 같사옵니다.

궁예 허허 아우도 그런 생각을 했는가? 나라의 대사를 앞두고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농사가 잘 되었다는 것은 곧 나라의 재정이 풍족해진다는 것이니까..

왕건 .......

궁예 지금 송악에선 군사들이 훈련에 도립되어 있다고 들었네. 송악에 도착하는 대로 아우는 다시 출전을 해야 할 것이야.

왕건 알겠사옵니다, 폐하.

궁예 오래 쉬지도 못하고 또 전선으로 떠나라고 해서 미안허이.

왕건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장수된 자가 전장터가 없으면 어디로 가겠사옵니까?

궁예 허허허,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네. 허나 어쩌겠는가? 세월은 짧고 할 일은 많고 그리고.....갈 길은 멀고도 험하니 말일세. (주변을 돌아보며) 그러고 보니 나라를 세운 지도 벌써 십여년이 다 되어가는구먼... 돌이켜 보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렇게 되었단 말이야.. 허허허...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는데, 나는 아직도 이렇게 바쁜 길을 걷고 있네 그려.

왕건 .......

궁예 아지태 그 사람을 만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네.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나는 송악의 작은 땅에 안주하고 말았을 게야. 삼한의 통일도, 대제국의 역사도 한낱 꿈에 그칠 뻔했지.

왕건 .........

궁예 하루 빨리 삼한을 통일해야하네. 그리고, 우리는 북으로 북으로 뻗어 올라가야해.

왕건 ........

궁예 내 생전에 그 꿈을 이루고 싶으이........그 옛날에 광개토대제처럼 말일세. 중원대륙으로 달리고 있는 것을 상상해보게. 생각만해도 얼마나 가슴이 벅찬 일인가? (중얼거리듯) 내 생전에 이루고 싶으이....아우와 함께 저 끝없는 대륙을 달리고 싶단 말일세.

복지겸 참으로 장쾌한 웅지시옵니다. 반드시 이루실 것이옵니다.

왕건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폐하.

궁예 하지만 우린 아직도 이 삼한의 영토 싸움에서 지지부진하고 있어. 신라는 이미 그렇다하고, 결국은 백제의 견훤왕과 나의 싸움인데 말이야. 생각해보면 견훤왕도 분명히 이 시대의 영웅일세. 그 사람도 맨주먹으로 백제라는 거대한 왕국을 일으켰어.

왕건 그러나, 진정한 삼한의 주인자리는 결국 폐하께서 이루실 것이옵니다.

궁예 하하하. 고맙네, 아우. 그러나, 아마 견훤왕도 나처럼 그 자신이 삼한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야. 아니그렇겠는가? 허허허......그래, 결국은 우리 둘이야. 언젠가는 그렇게 만나게 되겠지...암.


씬 19 완산주 황궁 외경


견훤(E) 뭐라, 북군이 다시 군사를 준비하고 있어?


씬 20 대전


견훤과 대신들이 모여 있다.


견훤 다시 우리와 전쟁을 하겠다는 겐가?

최승우 세작들의 장계를 보니 송악 일대에 군사들이 집결 중이고, 군량미 와 군수품을 대대적으로 징발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견훤 (탁자를 내리치며) 오냐, 얼마든지 오너라. 이번엔 반드시 금성의 원수를 갚아줄 것이니라.

공직 헌데 이번에는 어느 곳으로 내려온다고 하오이까?

최승우 아직 거기까지는 파악이 되지 못했습니다. 육로를 타고 내려올 것이 분명하다면 웅주나 상주 쯤이 되지 않을까 예측해볼 수 있겠습니다만은...

추허조 아마도 웅주로 내려올 가능성이 클 것이외다. 금성 전투에 참여한 이치라는 자가 다시 웅주로 돌아와 있다 하옵니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어서가 아니겠사옵니까?

김총 소장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산세가 험한 상주보다는 평야지대인 웅주 쪽을 택할 것이옵니다.

박영규 하지만 웅주는 이곳 완산주와 가깝고 인근에는 공직 장군의 매곡성도 있소이다. 지리적으로 우리에게는 이롭고 적국 마진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곳이올시다.

견훤 어디로 오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지난 번 금성 일이야 마진국의 수군에게 허를 찔린 것이라 하겠지만, 이번은 달라. 우리에게는 정예 철기군과 잘 단련된 군사들이 있어. 파진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최승우 북군의 움직임은 허장성세이옵니다. 나라 안의 사정이 복잡해서 백성들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려는 술책일 것이옵니다. 그저 지켜만보시오소서.

방장군 허, 그게 무슨 소리요? 지켜만 보다니? 적이 오는데, 지켜만 본단 말이오이까?

견훤 방장군은 가만 있어. 파진찬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봐야지. 계속해보게. 나라 안의 사정이 복잡하다? 뭐가,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최승우 황궁을 짓는 일은 대역사이옵니다. 듣자하니 지금 마진에서는 지방의 수령 방백들과 호족 장자들을 계속 다그치는 모양이옵니다. 궁예왕이 무리수를 두는 것 같사옵니다.

견훤 (끄떡이며)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려.

최승우 그리고, 궁예왕이 철원으로 환도를 서두르고 나라 이름을 바꾼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사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궁예왕은 신라 경문왕의 아들임이 틀림없사옵니다.

견훤 궁예왕이 신라 경문왕의 아들이라?

최승우 예, 궁예왕이 어머니라 부르며 만났다는 옛 칠장사의 늙은 비구니 스님은 경문왕의 후궁이었다 하옵니다.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능애 그렇다면... 지금 신라의 효공왕은 궁예왕의 조카뻘이 되겠구먼..? 허허.. 폐하, 참으로 놀라운 소식이옵니다.

공직 그러하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마진국 백성들에게는 상당히 큰 충격이 아니겠사옵니까?

최승우 바로 보셨습니다. 바로 그 점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신라의 황손이 옛고구려 땅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사옵니다. 그것이 알려진다면 궁예왕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것은 물론이요, 호족들과 백성들이 동요하게 될 것입니다. 저들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옵니다.

능환 허허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소문을 퍼뜨린다고 무너질 저들이 아닐세. 헛소문이라고 잡아 떼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그런 얕은 술수보다는 정공법을 택해야 하네. 저들을 무너뜨릴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군사를 몰아 쳐들어가는 것이야.

추허조 거 말씀 한 번 잘하셨사옵니다. 궁예가 신라의 황손이건 뭐건 우린 우리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옵니다.

수달 그러하옵니다. 무조건 싸워야 하옵니다. 싸워서 기필코 금성의 복수를 하겠사옵니다.

최승우 병법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 했소이다.

추허조 허.. 그 답답한 소리 좀 작작 하시구려.. 아 싸우지 않고 어떻게 이긴단 말이오?

견훤 아 조용.. 조용들 하게.. 일단 저들이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니 전군에 동원령을 내리도록 하고, 또 파진찬의 이야기도 경청할 필요가 있어. 좀 더 주시하고 궁예왕의 과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게.

최승우 예, 폐하..

견훤 ...........


씬 23 송악 길


궁예 일행이 오고 있다. 저만큼 황궁이 보여 온다. 종간과 염상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 궁예들이 그리로 다가오면...


종간 폐하, 어서 오시오소서.

내군들 어서 오시오소서.

궁예 ......(묵묵히 말에서 내린다)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그만 집으로 돌아가 쉬도록 하게. 제수씨 찾는 일도 궁금할 테고 하니...

왕건 알겠사옵니다.

궁예 병부령도 그만 돌아가시구려..

복지겸 예, 폐하..

궁예 들어들 가십시다.


궁예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왕건과 복지겸이 보다가...


왕건 괜찮으시다면 소장의 댁으로 모실까 합니다. 전쟁에 대해 이런 저런 의논드릴 것도 있구요.

복지겸 그러시지요. 이렇게 헤어지기도 섭섭한데 잘 되었소이다. 실은 나도 왕장군에게 드릴 말씀이 있었소이다.

왕건 자 그럼 가시지요.


그들 그렇게 사라져 가면...


씬 24 동 황궁 안


궁예들이 안으로 들어선다. 황후와 상궁, 내관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


황후 다녀오셨사옵니까?

궁예 그간 별고 없으셨소?

황후 예, 폐하.. 안으로 드시오소서.

궁예 가십시다.


그들 다시 안으로 향한다.


씬 25 동 대전


궁예와 연화, 종간들이 앉아 있다.


궁예 제수씨를 찾는 일은 어찌 되었소? 아직도 소식이 없소?

연화 예.. 아무래도 시일이 걸릴 듯 하옵니다.

궁예 허... 큰일이구먼.. 대체 어디에 가 있길래.. 어쨌든 고생이 많았소, 황후..

연화 망극하옵니다.

궁예 그리고 이보시오,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지난 조회는 어땠소이까? 전령에게 보고를 듣기는 하였소만...

종간 철원 천도에 대한 제반 사안에 대해 의논을 모았사옵니다. 아직까지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호족들을 엄히 추궁했사옵니다.

궁예 잘하셨소. 그렇지 않아도 철원 공역장에 재원이 부족한 것 같았는데.. 법회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오?

종간 그 또한 논의가 있었사옵니다. 전국 수령들에게 영을 내려 이름 있는 고승 대덕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불러 모으라 하였사옵니다.

궁예 (끄덕이고) 이번 법회는 아주 성대하고 장엄하게 치룰 것이오. 재정을 아끼지 말고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오. 비단 승복도 필요할 것이고, 선남선녀도 대동할 생각이오. 그리고 무엇보다 제단을 웅장하게 지어야 할 것이오.

종간 하오나 폐하... 지금은 전쟁 중이옵니다. 그리고 철원으로 황궁을 옮기는 데도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 실정이옵니다.

궁예 정신을 뜯어 고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오. 나는 이번 법회를 통해 제국의 위대함을 다시금 대내외에 보여줄 생각이오.

종간 폐하께서는 지금까지 검소하게 법회를 여시었사옵니다. 그런 폐하의 모습이 백성들로 하여금 폐하를 따르게 했사옵니다.

궁예 지금은 그 때와는 다르오. 이번 법회는 대제국의 문을 여는 행사라 하지 않았소?

종간 폐하, 감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한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시오소서.

궁예 .......초심?

종간 그러하옵니다, 폐하.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시오소서. 백성들의 형편을 헤아리셔야 하옵니다.

궁예 뭐라? 처음이라... 처음...? 허허허허, 그래요? 그래서, 그렇게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래서 아학사를 죽이려 했던 것이오?

종간 ...........

궁예 그런 게요, 내원?

종간 .....폐하?


종간을 노려보는 궁예의 그 무서운 눈빛에서....


< 65회 끝 >




첨부파일 태조왕건65.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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