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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77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1.17|조회수2,129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77회>



 


씬 1 철원 시가지


골목마다 찬바람이 휩쓸어가고 있다. 살을 에이는 바람 속에 걸인 같은 백성들의 피폐한 무

리들이 곳곳에 지나쳐 가고 있다. 카메라가 그 길을 쫓어 가면 길가에 쭈그리고 있는 자들과

죽어 있는 시체들도 곳곳에 보인다. 멀리서 한 떼의 군마들이 나타나며 이들을 향해 소리지

르고 있다.

군관1 물러거라! 모두 안으로 들어가라. 저 시체들을 치우거라. 뭣들 하느냐, 서둘러라!

군사들이 대답을 하며 시체들을 치우고 있고, 또 한 켠에서는 백성들을 좁은 골목쪽으로 밀

어부친다.

군사1 너희들의 모습을 폐하께서 보셔서는 아니된다. 안으로 들어가거라. 여기서 없어지거

라! 무엇들 하느냐, 어서!

그 부산함 속으로 잠시 후 염상이 장일과 함께 일단의 내군들을 이끌고 다가오고 있다. 군관

들이 허리를 숙이며 염상을 맞는다.

염상 (찌푸리며 주변을 본다) 곧 폐하께서 이리로 지나가실 것이다. 거리를 깨끗이 치우라

고 하지 않았느냐?

군관1 송구하옵니다. 어디를 가나 모두 이 모양인지라.....

염상이 문득 입을 벌리고 죽어 있는 채 치워지고 있는 어린 시체 한 구를 보고 있다. 그 옆에는

어머니인 듯한 여인의 시체도 보인다.

군관1 (눈치를 보다가) 이곳 철원은 그야말로 아귀지옥이옵니다.

염상 ..........

군관1 식량도 구하기 어려울 뿐더러 역병마저 돌고 있사옵니다.

염상 (한숨을 짓는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단 말인가....

군관1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옵니다. 형편이 이리 된지는 이미 오래 되었사옵니다. (예를 올

리고 물러나며 소리지른다) 저 시체들을 치워라! 어서, 어서 치워라! 곧 폐하께서 오시

느니라. 어서 치워라!

염상 이보게, 군관.

군관1 예, 장군.

염상 그렇다면, 저 거러지와 시체들 말고 도대체 누가 폐하를 맞는단 말인가?

군관1 인근 고을의 장자들과 호족들은 물론 그 가솔들을 모두 강제 동원하여 모아 놓고 있사

옵니다. 저쪽 황궁 쪽으로 가시면, 그들이 새 옷을 입고 폐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염상은 다시 한 숨을 쉬며, 하늘을 본다. 장일도 한 숨을 쉬며, 그런 염상을 본다.

염상 가자.

장일 예, 장군.

염상 그동안 송악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눈 뜬 장님이었구나.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참혹

하게 되었단 말인가.....

그들이 그곳을 벗어나는 동안 군관과 군사들은 계속 소리지르며 그곳을 정리하기에 바쁘다.


씬 2 또 다른 길


그곳도 마찬가지이다. 이곳에는 또 다른 군관과 군사들이 걷기조차 힘든 유랑민들을 내쫓고

있다. 염상들이 다가오며 본다. 시체를 실은 수레들이 계속 지나쳐가고 있다. 염상은 할 말을

잃는다.

해설 철원환도! 고려사절요, 태조 원년 8월의 기록을 보면 이때의 참상이 어떠했는가를 다

음과 같이 적고 있다. ?궁예왕이 참서를 믿고 송악을 버리고 부양으로 돌아와 거처하

며 왕실을 지으니, 백성들이 토목공사에 피곤하고 삼 시의 농사시기를 놓쳤다. 더구나,

기근이 더욱 심하고 질병이 뒤이어 일어나서 집을 버리고 길에서 굶어 죽는 자들이 잇

따랐으니, 한 필의 세포 값이 무려 쌀 닷 되와 맞먹게 되었다뵸箚?하였다. 또한, 삼

국사기 권50에 보이는 궁예전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 ?궁예가 새 서울에 들어가, 관

아와 누대를 새로이 지었는데 그 사치를 극하였다.?위의 두 기록은 모두 궁예가 송악

에서 철원으로 옮길 때의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그야말로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 아

니라 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학계에서도 훗날 궁예 정권이 멸망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철원의 무리한 토목공사의 결과로 보고 있는 이들이 많다. 즉, 궁예는 철원에

황궁을 지으면서, 백성들과 호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수탈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무튼, 궁예는 그렇게 철원으로 입성을

한다.

씬 3 철원 황도


멀리 황궁이 보이고 있다. 옷을 잘 차려 입은 호족, 장자들의 가솔들이 몰려 나와 오고 있는

궁예 일행을 맞고 있다. 염상과 장일 등 내군들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고, 호족들이 다가

오고 있는 궁예를 보며 모두 허리를 숙인다. 궁예가 만족한 미소를 띄우며 그들을 본다.

호족1 황제폐하, 만세!

모두들 (따라하며)황제폐하, 만세, 만만세!

궁예가 말에서 내린다. 신료들이 모두 말에서 내린다. 궁예는 그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며

그를 위해 마련된 황금 마차 쪽으로 가고 있다.

아지태 폐하, 폐하를 위해 마련된 어차이옵니다. 오르시오소서. 백성들에게 위엄을 보여주시

오소서.

궁예 고맙소이다. 마차가 나와 있는 줄은 몰랐구료.

아지태 중원에서도 역대의 황제들은 모두 도성에서는 마차를 즐겨 탔사옵니다. 신라에서도 그

러하지 않았사옵니까?

궁예 경이 그렇다하니, 나는 따를 수 밖에.....

아지태 마땅하고 옳으신 일이옵니다. 어서 오르시오소서.

궁예가 마차에 오른다. 백마 네 필이 끄는 황제 전용의 마차이다. 호족과 그 가솔들은 여전히

황제 폐하 만세를 외치며 들끓고 있다. 종간은 말이 없고, 다른 신료들도 모두 표정이 밝지

않다.

은부 폐하를 뫼시어라.

내군들 (복창) 뫼셔라!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신료들이 모두 뒤를 따른다. 호족들이 열화와 같이 환호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저만큼으로 황궁의 위엄이 거대하게 보여져 온다. 손을 흔들며 근위병에 에워

쌓여서 황궁 쪽으로 가고 있는 궁예의 그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씬 4 동 황궁 정문


궁예가 마차에서 내리면, 끝도 없이 도열해있는 황제의 근위병들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올

린다. 궁예와 아지태, 종간, 그리고 광치나 유장자들이 궁예 뒤를 따르며 정전 안으로 들어

서고 있다. 곳곳에 전각의 모습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은 중앙의 정전 뜰로 들어서면, 정전인

포정전(布政殿)이 보인다.

아지태 폐하, 폐하께서 신료들을 불러 조회를 여시는 정전이옵니다. 그 이름을 포정전이라 했

사옵니다.

궁예 알고 있었소이다. 오늘 보니 역시 또 한번 절로 감탄이 나오는 구료. 참으로, 제국의

위엄이 한 눈에 들어 나는 전각이올시다. 아니 그렇소이까, 황후?

연화 그러하옵니다, 폐하. 참으로 웅장하옵니다.

궁예 아학사가 고생이 많았소이다. 그렇지 않소이까, 내원?

종간 예, 폐하. 그러하옵니다.

궁예 아무튼 고생들 많았소이다. 이곳에 와보니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얼마나

웅장한 제국의 황도인가 말이야....허허허.....

아지태 폐하, 이 궁궐 성의 길이만도 십여리가 넘사옵니다. 숫자로 말씀 올리오면, 그 길이가

무려 일만 사천, 사 백 이십일척(4,370미터)이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거처하시는

저곳의 내성의 대전 넓이만도 천 구백 오척(577미터)이나 되옵니다.

궁예 나도 보았소이다. 참으로 제국의 중심으로서는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소이다. 암....헌

데, 법당이 저쪽이든가...?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저쪽 전각으로 드시오소서.

궁예가 발길을 돌린다. 아지태가 안내하며 가면, 신료들이 계속해서 그 뒤를 따른다. 그러자,

궁예가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궁예 쉬지 않고 먼길을 왔소이다. 일일이 나를 따라 올 것은 없으니, 모두들 돌아가 쉬도록

들 하시구료.

신료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내 법당을 돌아보고 나서 대전으로 갈 것이오. 그리고, 곧 정리가 되는대로 날을 택해

조회를 열거라. 아니면, 법회로써 조회를 대신하거나 할 것이오. 광치나는 이를 염두해

두시구료.

유장자 예, 폐하.

궁예 자, 가십시다, 아학사.

궁예와 아지태,종간, 그리고 황후와 상궁 내관들이 뒤를 따른다. 뒤에 남아 있던 유장자와

박지윤 등 신료들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보고 있다.

박지윤 이보시오, 광치나.

유장자 말씀하시구료.

박지윤 이제부터 철원에서 살게 되었구료. 허허, 이제부터 타향살이요.

장자1 저 아학사 덕분에 고향을 철원으로 바꾸게 생겼소이다 그려. 허허....


씬 5 동 황궁 법당


화려하고, 상당히 큰 법당이 마련되어 있다. 마치 대궐의 정전만큼이나 웅장해 보인다. 궁예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그곳에 있던 승려 두어명이 고개를 숙이며 이들을 맞이한다. 궁예가 계

단을 올라가 법당의 문을 연다.


씬 6 동 법당 안


신비하고도 깨끗하게 꾸며져 있는 법당이다. 법상은 있으나, 제불이나 불구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 이른바 궁예만을 위한 법당인 것이다. 모든 것은 금으로 칠해져 있고, 화사한 연꽃등

들이 곳곳을 수놓고 있다. 실내의 분위기는 다분히 환상적으로 보여온다.

궁예 저 법상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료.

아지태 황금을 수십 동이나 들여 부어 만들었사옵니다.

궁예 ....(끄떡인다)

아지태 오로지 이 세상에 홀로 높으시고,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대 미륵 부처님이시옵니다.

이 안을 황금으로 치장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궁예 옳은 말이오. 미륵은 영원한 생명이오, 구원의 상징이외다. 그까짓 황금이 아무리 값

지다 한들 영원한 생명에 비하겠소이까? 이승의 것은 다 헛된 것이오.


궁예는 웃으며, 그 법상에 가서 앉아 본다. 황후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런 궁예를 본다. 종간도

입을 다물었다. 은부도 염상도 그저 그렇게 보고 있다. 아지태만 신이 나서 계속 말을 하고

있다.

아지태 과연 과연, 대 미륵이시옵니다. 그곳에 그렇게 앉아 계시니 마치 이법당이 저 천상의

극락정토로 보이옵니다, 폐하.

궁예 고맙소이다. 마땅히 그리 되어야지. 우리가 이토록 고생하며 황궁을 짓고, 또 목숨을

버려가며 삼한을 통일하려 하고 또, 저 북원으로 가려고 하는 것은 다 이 세상을 불국

정토로 만들기 위함이오. 그대들은 머지않아 보게 될 것이오. 이 미륵인 내가 세우는

참다운 극락정토를 말이오. 내가 반드시 보여 줄 것이야.

웃는 궁예의 모습에서 디졸브되면....


씬 7 황궁 외경(밤)



씬 8 동 대전 복도


내전내관과 내군들이 서있다.


씬 9 동 대전 안


궁예가 생각에 잠겨 있다. 그의 탁자 위에는 그가 법회 때 사용했던 황금 비단 옷과 금책이

놓여 있다. 아지태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지태 (E) 철원으로 환도를 하셨사옵니다. 대 제국의 첫걸음을 놓으신 것이옵니다. 새 술은

새 잔에 따르라는 말이 있사옵니다. 일전에도 말씀을 올린 것처럼 폐하의 위엄을 더욱

더 높이셔야 하옵니다.

궁예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다)

아지태 (E) 이제 검소함을 상징했던, 그 소박한 법복은 버리시오소서. 대 제국을 향한 황제폐

하의 모습은 아니시옵니다. 미륵과 대 황제폐하를 나타내는 황금 빛 법의를 입으시오소

서. 모든 것을 화려하고 장엄하게 하실 것이며, 어디를 행차하시든 그 위의를 갖추시오

소서.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폐하를 우러러 뵙도록 하시오소서.

궁예는 그 금빛 법복을 들어 보인다. 그러다가, 금책을 머리에 쓴다. 금빛 안대를 고쳐 쓴다.

그리고, 고개를 끄떡인다. 다시 그 금빛 법의를 들어보는 그의 만족한 표정에서 갑자기 궁

예는 모든 행동을 멈칫하며 밀려오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다. 고통이다. 모든 것이 희뿌옇게

시야가 흐려져 온다. 가슴을 두 방망이 치는 심한 고동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식은 땀이 흐

른다. 그는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쓴다.

궁예 (E) 왜 이러는 게야? 내가 왜 이러는 게야.... 왜 지난 상처가 이렇게 아파 오는 게

야...........

궁예는 계속 식은 땀을 흘린다. 그러다가, 간신히 진정하며 자세를 바로 해 앉는다. 그는 고

통과 불안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찾으려 애를 쓴다. 그 모습에서......

씬 10 황후전


연화와 함께 진내관과 제조상궁, 슬이들이 함께 해 있다.

연화 이곳 황궁이 송악에 있는 그 황궁 보다 몇 배는 넓고도 커 보이는 구나.

제조상궁 이를 말이옵니까? 폐하께오서 그토록 공을 들이시고, 관심을 다하여 지으신 궁이옵니

다.

슬이 법당도 화려하고 근엄하기가 참으로 대단하였사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마지 못 해 )그래...

제조상궁 법당의 법상을 황금으로 입혔다 들었사옵니다.

연화 그래, 그랬다고 했었지.... 허지만, 이해가 안가는 것이 있구나.

제조상궁 무엇이 말이옵니까?

연화 폐하를 맞으러 나온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같이 그렇게 귀티가 나고 좋은 옷들을 입었단

말이냐?

진내관 (눈치를 보다가) 그것은, 저....황후마마....

연화 말해보게.

진내관 앞서 이곳에 와서 폐하를 뫼시기위해 준비한 군사들의 말을 듣자하니.......

연화 말해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진내관 인근 수십개의 군현에서 호족들과 장자들의 가솔들을 모두 강제동원하였다 들었사옵니

다.

연화 강제로.....?

진내관 그러하옵니다. 이미 이곳 철원은 오래전부터 양식이 바닥이 나고, 무서운 질병이 돌고

있었다 하옵니다.

연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진내관 굶어 죽거나, 병이 들어 죽은 수많은 시체들이 길거리 곳곳에 즐비하다 하옵니다. 게

다가, 가뭄까지 극심하여 먹을 물조차 궁하다 하옵고.......

연화 그게 사실인가?

진내관 그렇다하옵니다. 모두들 쉬쉬하며 이를 폐하께 말씀 올리지 않을 뿐이옵니다, 황후마

마.

연화 (너무 기가 막히다) 세상에.....사람들이 굶어 죽고, 병이 들고 시체들이 가득해...?

폐하께서만 모르신단 말이지..?

진내관 그렇다하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이를 어이할꼬....도대체, 이 일을 어떡해.....

그렇게 한 숨 짓는 연화의 표정에서...


씬 11 내군 관아


은부와 염상이 마주해 있다.

은부 이보게, 염부장.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염상 참으로 말이 아니었사옵니다.

은부 뭐가?

염상 곳곳에 시체들이었사옵니다.

은부 ..........(그 말에 아픈 듯 인상을 찌푸린다)

염상 뿐만 아니라, 유리걸식하며 떠도는 유랑민들이 곳곳에 넘쳐 있었사옵고, 역질마저 돌

고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은부 (크게 한 숨) 어쩌겠는가? 한 나라의 도읍지를 짓는 대 역사였다네. 우리가 모르는 많

은 희생들이 있었을게야.

염상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모르고 있었사옵니다. 제가 눈으로 본 현실들은 모두가 참

담했사옵니다.

은부 오늘따라 염부장 답지가 않네 그려.

염상 예?

은부 우리는 폐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사람들일세. 오로지 폐하만을 위해서 말일세.

자네는 내원어른을 자주 뵙지 않는가? 우리도 그 분처럼 사는 것일세. 오로지 주인을

위해서 말일세. 감상은 금물이야.

염상 하오나, 장군......

은부 자네는 할 일이 많은 사람이야. 그런 일들은 그저 모른 척 하세나.

염상 아지태 그 자를 어떻게 하든 죽였어야 했사옵니다.

은부 지난 일이야. 우리보다도 내원어른께서 더 가슴 아퍼 하신다네.




씬 12 내원 외경


그 수많은 어둠 속의 전각들을 보며, 종간이 생각에 잠겨 있다.

종간 (E) 법당에 법상을 황금으로 만들었다 하였다. 저 많은 전각들은 모두가 백성들의 피

와 고통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이곳은 기대와 기쁨으로 넘쳐 있는데, 저 궁궐 밖

에서는 이 시간에도 죽어 가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다. 누가 이 역사를 과연 옳고 정당

하다고 볼 것인가? (사이, 긴 한숨) 문제는 아지태가 아니다. 폐하... 폐하께서 이미

변하신 것이다. 아지태가 아니야.... 폐하 스스로 변해버리신 것이다. 폐하 스스

로..... 신료들도 알고 아지태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것을 폐하께서만 모르고 계신

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씬 13 동 아지태의 집 외경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씬 14 동 집 사랑


아지태와 입전, 신방, 그리고 새로 등장하는 애견과 능달 그리고 임충길이 보인다.


아지태 (웃으며) 철원 황궁을 보니 감회들이 어떠한가?

임충길 참으로 대단하옵니다, 아학사 어른.

아지태 이곳은 말일세, 거대한 역사의 새로운 중심일세. 폐하께오서는 이 아지태와 더불어 이

곳에서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실 것일세.

임충길 그러하옵니다. 이 황궁과 더불어 아학사님의 대명은 천하에 퍼져 있사옵니다.

아지태 천하를 운영하시는 것은 폐하이시지만, 이 아지태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되네.

모두들 ..........

아지태 그리고, 물론 많은 고을의 백성들이 차출이 되어 이곳에 부역을 왔지만은 끝까지 이

황궁을 지은 것은 우리 청주인들일세. 이것은 청주의 영광이야.

임충길 그러하옵니다, 아학사 어른.

아지태 그대들 또한 모두 청주인일세. 그리고, 내가 추천하여 이번에 관에 들게 되었네. 모쪼

록 내 뜻을 잘 따라서 앞으로 큰 일들을 해주길 바라네.

그들 예, 아학사 어른.

입전 (눈치를 보며) 헌데, 아학사 어른, 그동안 소생과 신방부장이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해왔사옵니다만은........

아지태 음, 말해보게.

입전 실은...... 우리 청주인들의 불만이 아주 크옵니다. 그들은 억울하게 먼 청주에서 이

곳까지 끌려 왔고, 부모 형제들과 헤어져 군인이 되거나 노역에 동원되었사옵니다. 희

생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옵니다.

아지태 이런, 쯧쯧.......희생이 없는 역사가 어디 있는가? 그런 심약한 소리를 하다니 이 사

람들 이거 실망이구먼.

신방 지금 질병과 가뭄이 극심이옵니다. 한 겨울인데도 먹을 물이 부족하옵니다. 그나마 양

식 구경을 하려면.........

아지태 어허, 이런.... 그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못난 사람들 같으니라고.... 자네들은

이 아지태의 사람들이야.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신방 상황이 너무도 어려워.....

아지태 어려울수록 잘 해내야지. 그래서, 내가 자네들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머지 않아, 폐하께서 다시 관직을 조정하실 것일세. 딴 생각들 말고 열심히들

해봐. 그리고, 자네 임부장.

임충길 예, 아학사어른.

아지태 그리고, 능달이.

능달 예, 아학사어른.

아지태 자네들은 군인이야. 아마도 내군쪽에서 일을 보게 되거나, 또 그도 아니면 군과 관련

된 중요 부서에 배속될 것일세. 잘들 해보게나. 청주인들끼리 뭉쳐야 해.

임충길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아지태 많은 백성들이 고생한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이 나라의 새로운 기풍을 일으키

기 위하여 내가 서둘러 한 일이야. 이 나라의 모든 기조를 청주인으로부터 다시 시작하

려고 말일세. 그대들은 그것을 알아야 할 것이야.


씬 15 유장자 집 외경


씬 16 동 집 사랑

낯이 설은 듯 유장자가 이리저리 주변을 돌아보고 있다. 부용모가 낮은 한숨을 쉬며 본다.

부용모 나으리, 뭘 그렇게 보시옵니까?

유장자 글세 말이오. 모든 것이 낯이 설다보니....

부용모 아 그럼 새집으로 왔는데, 어디 쉽게 정이 붙겠습니까?

유장자 그러게 말이오.

부용모 나으리께서는 광치나가 되셨사옵니다. 마땅히 철원으로 오셨으면, 조정에 모임이 있으

실 줄 알았는데 아니 그런가 보옵니다?

유장자 많은 신료들이 그렇게 예상을 했소이다만은, 조회를 바로 여시지는 않을 모양입니다.

폐하께서 곧 하명을 주신다 했으니까요.

부용모 이곳에 와보니, 많은 것들이 송악보다는 형편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백성들도 그렇

고........ 저자거리의 인심도 아주 흉흉하다 들었습니다.

유장자 나도 보고를 받고 있소이다. 생각보다 아주 심각한 것 같아요.

부용모 .......그러게 말입니다. 이럴 때에 큰 벼슬을 맡고 계시니 소첩도 걱정이 크옵니다.

유장자 무어, 벼슬살이야...나 혼자 하는 거 아니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더욱 답답한 것은 아

무도 할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올시다. 그리고, 폐하께서도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

이 되셨고....


씬 17 황궁 외경(낮)


씬 18 동 대전


궁예가 금빛 법복과 화려한 금책을 쓰고 금장 안대를 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런

궁예를 보는 종간의 시선은 한동안 굳어 있다.

궁예 허허허, 이보시오,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아학사도 그렇게 권하였고 해서, 나도 이제 이 철원에 오고부터는 생활을 많이 달리 해

볼 참이오. 아학사는 나를 보고 황실의 위엄을 더욱 엄히 하여야 한다고 했소이다.

종간 예, 폐하.

궁예 그 사람을 가만히 보면, 아주 옳은 소리를 잘해요. 하긴 무어 학식도 충분히 있기는 하

지만, 사람이 현실에 밝아. 현실을 볼 알아야, 정치가 잘 되는 거 아니겠소이까?

종간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탁자 위에 두루마리를 펴보며 끄떡인다) 이것이 내원께서 올린 것이오? (다시 다른

것을 보며) 이것은... 아학사가 올려온 것이고...

종간 ........

궁예 (다시 한참을 보다가) 두 분께서 올리신 것은 모두 적절하다고 보여집니다. 모든 관서

와 부처들에 합당한 인물들이 골고루 천거가 된 것 같소이다.

종간 황공하옵니다, 폐하.

궁예 그런데 말이오. 여기 수단(水壇: 배들과 수상운수에 관한 일을 맡은 관청)의 책임자는

바꿨으면 좋겠구먼.

종간 .......... 말씀 하시오소서.

궁예 왕건 장군이 지난번에 나주에서 아주 큰 공을 세운 것은 바다에 관한 것을 알았기 때문

이오. 그만큼 이 나라에서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중요하오. 왕장군의 사촌 왕식렴이를

여기에 앉히면 어떨까?

종간 ......... (대답이 없다)

궁예 왜? 마음에 들지 않으시오?

종간 아니옵니다. 그리하시오소서.

궁예 (계속 보며) 아학사가 천거한 사람들도 적재적소에 잘 포진이 된 것 같소이다. 그대

로 하기로 하고.......

종간 하오나, 폐하. 청주인들이 갑자기 조정의 핵심 부처에 너무 많이 들어서고 있는 것 같

사옵니다.

궁예 청주인들은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이다. 마땅히 대접을 해야지요. 그리고, (계속 보며)

장자 박지윤의 두 아들도 이제 제대로 벼슬을 받았고.... 그렇지. 박유는 학자이니 동

궁기실(태자를 교육하고 보좌하는 벼슬)을 겸해 금서성(禁書省: 나라의 도서와 문건들

을 맡아 보는 관청)령을 봉하는 것은 당연하오. 이건 참 잘했소이다.

종간 박유는 참으로 학자 중의 대 학자이옵니다.

궁예 알지요. 그리고, 내 생명도 구해주었고. 암, 좋은 사람이지요. 되었소이다. 일단 각

관청의 벼슬들은 이렇게 정하기로 하고.....


궁예는 두루마리를 치우고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 본다. 한참 보다가 다시 묻는다.

궁예 그동안 내봉성을 맡고 있는 아학사의 보고에 의하면, 이 북쪽이 아주 변화가 극심한 모

양이오.

종간 그렇다 들었사옵니다.

궁예 중원에서는 이미 당나라가 무너지고, 나라는 갈가리 찢어져있다 들었소이다. 내원도

그 얘기를 들었소이까?

종간 예, 폐하. 절도사의 한 사람이었던 주전충이라는 자가 후당을 무너뜨리고 양나라를 건

설하였다 하옵니다. 또한, 거란의 추장 아율아보기도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옥좌에 올

랐다 하옵니다.

궁예 (탁자를 치며) 아율아보기가 황제가 되었어? 그렇다면 중원 대륙이 그자의 손에 놀아

나게 되었구먼.....(도리질을 하며) 안타까운 일이야. 이럴 때에 우리가 북으로 뻗어

가야 하는 것인데.... 그럼, 발해는 어찌 되었소이까?

종간 발해는 급속히 거대해지고 있는 거란과 마주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그 내정이 복잡

하고 피폐하여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틸지 의문이라 들었사옵니다.

궁예 우리가 좀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을 터인데.... 이번에는 우리 전선 좀 살펴 보십시

다.

궁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편다. 그것은 전선의 지형도이다.

종간 충주전선은 조령과 죽령을 백제에 빼앗긴 이후 여전히 대치 중이옵니다. 또한, 백제,

신라와는 동으로는 고창군을 경계로 하고 있사옵니다.

궁예 ........(끄떡인다) 조령과 죽령을 빼앗긴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것이었소.

종간 .........

궁예 허나, 왕장군이 다시 갔으니, 무슨 묘안을 찾을 게요. 그 쪽은 왕장군에게 맡겨 놓고,

다른 장수들을 소환하여 전선을 재배치하도록 하십시다.

종간 예, 폐하.

궁예 거, 환장군이 왜 총사를 맡아 가지고는 그 넓은 전선을 다 내주었단 말인가...? 사람

이 용감하기는 한데, 지략이 모자란단 말이야.

종간 예, 폐하.

궁예 그리고, (두루마리 보며) 이 장수들 말이오. 부장 윤신달과 천부장 이야기인데.....

이 윤신달이라는 사람은 예전 송악에서부터 공이 많았다고 들었소이다. (사이) 병부에

만 묶어 둘 것이 아니라 전선에 내 보내시오.

종간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궁예 기왕이면, 천부장은 환장군이 돌아오면 붙여주고, 장군 윤신달은 왕건에게 보내시오.

부장 전이갑,의갑 형제도 그 옛날에 송악에서 왕장군이 발어참성을 쌓을 때부터 군인으

로써 공이 있었다 하오. 중히 쓰도록 하시오.

종간 예, 폐하. 오늘 이리 자상하시게 짚어 주시고, 말씀을 내려 주시니 신 종간은 참으로

감격 또 감격하옵니다. 역시 폐하이시옵니다. 신은 그러하오신 폐하를 뵈올 때마다 다

시금 어떻게 이 몸을 나라를 위해 바칠까 생각하게 되옵니다.

궁예 허허, 과찬이시오. 황제가 되어서 그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하다가, 궁예는 울컥한다.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통을 참느라 애를 쓴다. 심장이 고동치는 소

리가 들려온다.

종간 왜 그러시옵니까, 폐하? 어디가 편찮으시옵니까?

궁예 (간신히 가슴을 부여 잡은 채) 아니오.......아무 것도.... 아...아니오.

종간 폐하.....

궁예 잠시 가슴이 뻐근해 그러는 것이오. 돌아가보오.

종간 폐하.........?


씬 19 충주 관아 외경


씬 20 동 관아 안


제장 회의가 열리고 있다. 왕건이 다시 중심에 앉았고, 세 가신과 더불어 환선길, 이흔암,

배현경, 홍유, 김락 들이 함께 해 있다.

왕건 이곳에 와서 보니, 우리 군사는 고작 천여명 밖에는 아니 남았소이다. 이대로는 공격

은 물론이고 방어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소이다.

환선길 면목이 없게 되었소이다.

이흔암 우리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소이다, 총사.

왕건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어찌 해야 할까가 문제이겠

습니다.

배현경 아무튼, 우리가 여러 가지로 불리하고 군사도 얼마 없다고는 하나 왕장군이 총사로 오

신 뒤로 병사들의 사기가 아주 높아졌소이다. 이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

습니다. 허허허.

홍유 소장도 그리 생각합니다. 왕장군께서 다시 오신 것은 군사 몇 만이 온 것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김락 소장도 그리 생각합니다.

유금필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언제까지 또 얼마나 많은 군사를 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건이옵니다.

능산 그러하옵니다. 황도 철원에서 보충병을 더 데려오던지 아니면, 이곳에서 군사를 해결

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아니되옵니다.

박술희 과연, 황도에서 지금 우리에게 많은 군사를 보내줄 여력이 있겠습니까?

환선길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이외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에게 군사만 더 있었더

라도 저 견훤왕에게 이토록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적은 우리에 갑절이나 되는 군사

를 끌고 왔소이다.

이흔암 암요, 그랬었지요.

왕건 옳은 말씀들이시오. 전략도 중요하지만, 군사의 수도 중요합니다. 어쨌든 이곳은 다시

본관이 책임을 맡게 되었소이다. 세 부장은 남고 다른 분들은 소환령이 내렸으니, 황도

로 가셔야겠습니다.

환선길 허허. 이거 돌아가면 폐하께 무슨 낯으로 뵈어야 할지.... 난감하외다.

왕건 허허허. 누구에게도 실수는 있기 마련입니다. 너무 큰 부담을 갖지 마시고, 편히 폐하

를 뵈십시오. 그리고, 이보게, 유부장.

유금필 예, 총사.

왕건 우리는 이곳에서 군사를 다시금 보충하고 재편해야 할 것이야. 그에 관한 것을 이곳 호

족들과 의논해야겠네. 그래야, 길이 보일 것 같아. 준비하게.

유금필 예, 총사.

왕건 그리고, 박부장.

박술희 예, 총사.

왕건 지난번 상주에 있는 아자개가 그 아들인 견훤왕을 돕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아직 충주에 버틸 수 있다고 들었네. 고마운 일이야. 내가 송악에서 가져온 선물이 있

으니, 곧 아자개를 만나 뵈어야겠네. 그런데, 그 사불성까지 어떻게 간다? 지금은 모두

적지가 아닌가?

박술희 하오나, 총사, 충주의 장자 유긍달과 의논하시면 길이 있을 것이옵니다. 유장자는 사

불성까지 여러 경로를 훤히 알고 있는 이곳의 토호가 아니옵니까?

왕건 그럴테지. 일리가 있는 말일세. 그쪽과 연결을 해보세나.

박술희 예, 주군.


씬 21 사불성 외경


아자개 (E) 왕건이가 왔어?


씬 22 동 성 안


아자개가 계모와 대주, 용개들과 의논하고 있다.

아자개 왕건이가 돌아오고, 다른 장수들은 다 돌아갔다고?

용개 예, 아버님.

아자개 왕건이가 오면 어찌 되는 게야? 다시 또 싸움이 나는 겐가?

대주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님. 이곳의 전력이 막강한데 어찌 저들이 싸움을 다시 청

해올 수 있겠사옵니까? 어려울 것이옵니다.

계모 그래도, 왕건이가 아니냐. 그 사람은 아주 기가 막히다더라. 그 왜, 금성(나주)도 그

사람이 불과 이틀만에 다 빼앗았다고 들었다. 그 법같은 수달이가 꼼짝도 못하고 당했

데요.

대주 이곳은 형편이 다르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립니다만은 우리는 오라버니를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도 살고, 오라버니도 사는 길이옵니다.

계모 그래, 나는 네가 견훤이를 따르고 좋아하는 줄 안다. 하지만, 대주야. 과연, 네 말처

럼 우리가 견훤이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어찌되겠느냐?

대주 어찌되다니요?

아자개 (혀를 차며 도리질) 부인, 그만하시오. 저 아이가 뭘 안다고....

계모 우리가 견훤이에게 고개를 숙이면, 신하가 되는 것이다. 신하가 된 다음에는 그에 명

령을 모두 따라야한다. 죽으라면 죽어야 하고, 또 변방으로 가면 쫓겨 가야 하고. 그걸

아느냐, 대주야?

용개 나도 어머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한다. 형님에게 가면 형님이 우리를 잘해주려고 해

도, 그 주변이 그렇지가 않을 게야.

대주 용개오라버니?

용개 아버님의 말씀이 옳아. 우리는 이렇게 중립을 지키고 있으면 되는 게야.

아자개 암, 암, 내가 그래서 일찍부터 우리가 살 방향을 잘 잡고 있었던 것이다. 보아라, 우

리는 양쪽이 그렇게 싸우고 있어도 이렇게 편안하게 잘 버티고 있지 않느냐? 대주야,

우리는 우리대로 산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알거라.

대주 .........(답답한 한숨).......

그때, 보개의 소리가 들려온다.

보개 아버님, 보개이옵니다.

아자개 엉, 그래 들어오거라.

보개 (들어와서 서찰을 올린다) 아버님, 충주에서 마진국의 장군 박술희가 서찰을 보내왔사

옵니다.

아자개 서찰? 박술희가? 박술희, 박술희 말이지? 서찰은 왜? 아, 직접 오지 않고서..... (받

아서 펼쳐 본다) 허허, 이런. (기분 좋아 웃는다) 이건 왕건이가 보내는 서찰이 아닌

가? 이보시오, 부인.

계모 예, 나으리.

아자개 하하하하. 이 서찰을 보시오. 왕건이는 여전히 예의가 밝아. 그저 깎듯이 날보고 상부

라고 하고 있구먼. 박술희와 함께 찾아 뵙고 싶데요. 아,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게야. 인

사 말이야.

계모 인사를 오겠다는 걸 어찌 말리옵니까, 나으리? 더군다나, 박술희 장군도 온다면서요?

아자개 그럼, 그럼, 그럼..... 아, 선물도 전해 주고 싶데요, 나한테. 요즘 젊은 장군들이 이

렇게 싻수가 있다니깐 그래. 얼마나 예의가 밝은가 말이야? 암, 오라고 해야지. 나도

그 왕건이가 한 번 보고 싶었다고. 암, 암..... 지금은 옛날보다 이곳으로 오는 길이

어렵기는 하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왜 못 와? 암, 오라고 해!

그렇게 낄낄거리며 기분 좋아하는 아자개의 모습에서....


씬 23 전주 황궁 앞


견훤이 최승우와 추허조, 두 태자, 김총, 능애, 박영규 등 장수들을 데리고 오고 있다. 능환과

부인 박씨, 고비, 수달, 지훤(새로 등장), 최필(새로 등장), 애술(새로 등장), 신덕(새로

등장) 들이 상궁 내관들과 더불어 길게 늘어서서, 이들을 맞고 있다. 그들이 황궁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서는 모두들 허리를 숙인다.

모두들 폐하, 어서오시옵소서.

견훤 허허허. 오랜만이 구료들.....

박씨 폐하, 승전보를 전해듣고 있었사옵니다. 그 높으신 공을 치하드리옵니다.

고비 신첩도 폐하의 전승을 감축드리옵니다.

견훤 고맙소이다. 큰 승리였습니다. 아주 보람있는 전쟁이었어요.

능환 온 나라에 이미 폐하의 그 큰 공덕이 알려져서 만 백성들이 폐하를 칭송하고 있사옵니

다.

수달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견훤 고맙네, 이게 어디 나 하나만의 공이던가? 여기 파진찬과 장수들이 다 열심히 싸워준

덕이지....... 자, 들어들 가십시다.

그들 열려진 황궁 정전 문안으로 들어간다.

씬 24 동 대전 안


견훤이 제장들과 둘러 앉아 있다. 능애, 능환, 추허조, 최승우, 두 태자, 박영규, 수달, 김총,

지훤, 최필, 애술, 신덕 등도 함께 해 있다.

능환 폐하, 폐하께서 전쟁에 임해 계시는 동안 다른 전선에서 뛰어난 공을 세운 장수들을 신

이 불러 올렸사옵니다.

견훤 어, 그거.... 내가 전선에서 이찬의 장계를 받았네 그려. 바로 이들인가?

능환 그러하옵니다, 폐하.

수달 여러 곳의 전투지에서 이들이 세운 공은 말로 다 하기 어렵다 들었사옵니다. 특별히,

장수들 중에서 가려 뽑아 올렸사오니, 인사를 받으시오소서.

지훤 신은 지훤이라 하옵니다. 현재 무주성을 맡고 있사옵니다.

견훤 암, 무주는 중요한 곳이지. 수달 장군과 잘 협조를 해야겠구먼.

지훤 이를 말이겠사옵니까, 폐하?

최필 장군 최필이옵니다.

애술 장군 애술이옵니다.

신덕 장군 신덕이옵니다.

능환 폐하, 이들 중 특히 신덕 장군은 그 용맹함과 무예가 워낙이 출중하여 크게 쓰실 곳이

있을 것 같아 천거해 올렸사옵니다.

견훤 계속되는 전쟁일세. 그리고, 전선은 너무도 넓어. 그대들이 각 방면군의 총사를 맡아

서 잘해주어야 할 것이야.

모두들 예, 폐하.

견훤 그리고, 아무래도 이 기회를 잘 발전시켜서 금성을 꼭 되찾아야 하는데 말이

야........ 이번에 김총 장군도 아주 컸어요. 일선이남의 십여 군현도 모두 함락을 시

켰단 말이야.

김총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조령과 죽령에는 공장군과 방장군이 가있고, 이제 이 금성을 되찾아야 하는데...

수달 금성의 전투는 꼭 신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옵소서.

견훤 이를 말인가? 아우가 해야지. 그리고, 역시 전쟁에는 짐이 나가는 것이 옳을 것 같아.

내가 나가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단 말이야.

최승우 이를 말이옵니까? 폐하는 대 백제국의 상진이 아니시옵니까?

견훤 암..... 이보게, 수달 아우, 금성 전투를 기다리세. 나도 참여를 할 것이야.

수달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그리고, 그 마진국의 궁예왕 말인데.... 철원으로 갔다고?

능환 그러하옵니다, 폐하. 철원에 상당한 규모의 황도를 짓고 옮겨갔다 하옵니다.

견훤 마진국의 내부사정이 아직도 매우 나쁘다지?

능환 그러하옵니다. 좋을 리가 있겠사옵니까? 엄청난 공역을 해냈으니, 백성들이 고단한 건

당연한 것 아니옵니까?

견훤 허허허, 내가 한 번 겪은 실수를 궁예왕도 하고 있구먼 그래. 우리가 금성을 잃었던 것

도 사실은 무리를 해서 전쟁 준비를 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궁예왕이 나와 똑같은 실수

를 하고 있어, 이런...쯧쯧..


씬 25 나주 관아 외경



씬 26 동 나주 관아 안


오다련과 김언, 종회가 함께 모여 앉아 있다.

오다련 황궁이 철원으로 옮겨졌다 하오이다. 그리고, 그곳 철원은 사정이 아주 어렵다고 들었

소이다.

종회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도대체, 송악에 그냥 있으면 되었지, 그 황도는 무엇하러 지었

단 말입니까?

김언 숱한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다련 그러게 말입니다.

종회 이곳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왕장군이 떠나신 이후 도대체 보급품도 엉망이고, 우리

군대가 자는지 먹는지 어떻게 되는지 관심들도 없고......

오다련 전국이 모두 그렇다 하니, 불만을 내놓을 수도 없고...

김언 왕건장군이 다시금 조령에 와있다 들었습니다.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고, 또 와있다 하

니 딱한 생각이 듭니다. 죽도록 충성만 하다가 남의 음해나 받고.....

종회 그러게 말이외다. 조정이 지금 말이 아닌 것 같아요. 도대체, 왕장군 같은 사람을 죽

이려 했다니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 사람들을 믿고 우리가 전장에 나와있다는 것

자체가 허망한 생각이 듭니다.

오다련 그럴수록 자중들 하셔야지요. 이 사람도 아주 혼이 났었습니다. 왕장군이 내 사위올시

다. 반역이니, 뭐니 소환되어 갔을 때는 그저 아득합디다. 지금이야 이렇게 한숨을 놓

치만 말이예요. 아, 내 딸은 생과부가 될 뻔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씬 27 철원 왕건의 집 마당


마당에 장수장과 하인들이 오가는 것이 보인다. 송악과는 달리 정갈한 대갓집의 풍경이다.


씬 28 동 집 사랑


오씨와 유씨가 왕식렴이 마주해 있다.

오씨 이번에 도련님께서 수단의 책임자가 되셨다 들었습니다, 감축드립니다.

유씨 그러게 말입니다. 도련님도 큰 벼슬을 하시니, 집안의 광영입니다.

왕식렴 아니옵니다, 두 분 형수님. 이 모든 것이 건이 형님의 후광이 아니겠습니까?

유씨 그게 아닙니다. 나라에서 필요하여 바다를 잘 아는 도련님을 그 부서의 책임자로 부르

신 것이옵니다.

오씨 왜, 아니겠습니까? 그럴수록 모든 것은 자중하시고 잘해주시어요.

왕식렴 이를 말이옵니까? 형님이 모함을 당했다가 다시 전선으로 가시고, 아버님과 두 분 사

부님은 억울하게 먼 곳에 가 계시옵니다. 항상 우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아옵니다, 형수님들.

유씨 그러면 되었습니다. 그런 사정들을 알고 계신다면 그만큼 준비도 하고 계시겠지요?

오씨 암요....... 헌데, 도련님 왜 아직 조회를 열지 않는 것일까요? 이곳 황도에 온지 꽤

되었지 않습니까?

왕식렴 열기는 열겠지요. 새로운 수도에 왔는데 어찌 조회를 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조회

보다도 법회를 먼저 열 것 같사옵니다. 법회에 대한 준비들이 아주 부산하다 들었사옵

니다.

오씨 (가벼운 한숨) 사람들이 아주 말이 많았습니다. 나라 사정은 어려운데 그토록 법회를

크게 열려고 하시다니....


씬 29 황궁 외경



씬 30 황궁 대전


금빛 법복 차림의 궁예가 아지태와 마주 해 있다.

아지태 법회를 여신다 들었사옵니다, 폐하.

궁예 그렇소이다. 그것은 바로 경이 권한 것이 아니오?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이곳에서 천하가 다시 시작되고 있사옵니다. 폐하의 위엄도 다시 더 크

게 부각되어야 할 것이옵니다. 대 미륵의 위엄 말이옵니다.

궁예 내가 말은 안하고 있지만은, 이 황궁이 서기까지 백성들의 희생이 참으로 컸을 것이

오.

아지태 큰 역사의 기록 뒤에는 반드시 희생이 있었사옵니다.

궁예 (끄떡인다) 그렇기는 하지만.... 백성들이 많이 고단했을 거요.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지는 않지만은, 나는 알아.

아지태 그런 것은 기억하지 마시오소서. 이제부터는 모두 폐하의 그 손안에 모든 것을 틀어

쥐셔야 하옵니다. 이곳에 오시기전 송악에서 보여주셨던 것처럼 폐하께 얼마나 무서운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셔야 하옵니다. 그래야만 나라가 바로 서고, 대 제국의 꿈을 여

실 수 있사옵니다.

궁예 경은 여전히 내게 힘을 주는 구료. 이곳에 오기전부터 신료들이 나를 피하고 있는 것

같소이다. 물론, 그렇겠지. 내가 달라지고 있는데, 저들이 모른다는 것은 아니되지.

내가 변하듯이 저들도 다 변해야 한단 말이오. 암, 변해야지. 모두가 변해야지... 시

간이 너무도 없단 말이야. 시간이 없어.

아지태 뜻대로 하시옵소서. 폐하께서 주인이시옵니다.

궁예 시간이 없어. 시간........ 그리고, 법회를 빨리 좀 준비해주시구료. 조회보다는 법회

가 더....... (갑자기 아파지며) 그.... 급해.

갑자기 말을 멈추며 궁예는 다시 가슴을 움켜 잡는다. 엄청난 고통이다. 의식이 흐릿해지는

것을 다시 바로 잡으려 한다. 그 고동 소리가 들려온다. 아지태가 표정이 굳어지며 본다.

아지태 왜 그러시옵니까, 폐하? 폐하?

궁예 .......... (노려보듯 고통을 참고 있고).....법회 말이야, 법회....

아지태 알겠사옵니다, 폐하......하오나, 정신차리시오소서. 폐하..폐하...

궁예의 시선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흐릿해 온다. 의식이 자꾸 흐려지는 것이다. 고통이다.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아지태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지태 폐하, 폐하 정신차리오소서. 폐하....... 폐하..............밖에 누가 있느냐? 어서,

폐하를 뫼시어라. 어서!

궁예 .................?

그런 궁예의 부릅뜬 눈에서....... 스톱모션

< 77회 끝>








첨부파일 태조왕건77.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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