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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79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1.17|조회수2,748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79회>




씬 1 송악 황궁 대전(밤)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궁예는 눈을 부릅뜨고 아픈 통증을 참고

있다. 그런 궁예를 보는 종간의 표정이 굳어있다.

종간 말씀해주시오소서. 폐하께서는 분명 환후가 깊으시옵니다 .

궁예 물러가라고 하였소이다. 물러가오.

그러면서도 궁예는 흔들리는 자신을 추스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궁예 잠시 피곤했던 것이오. 전의도 별 일이 없다고 하였소이다.

종간 폐하.......

궁예 좀 피곤했던 것이오. 물러가시오.

종간 (마지 못해) 알겠사옵니다,폐하. 그리 말씀하시니, 신은 오늘

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몸 조리를 잘 하시오소서.

궁예 고맙소. 별 일 없을 것이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를 본다. 종간은 무언가를 알아내려 하고,

궁예는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눈에 바짝 기를 넣고 있다.

종간이 얼마 후 예를 올리고 조용히 눈을 내려 깔며 물러간다. 자세를

바로 하고 버티던 궁예가 휘청하며 흔들린다. 다시 가슴에 그 불길한

고동소리가 쿵쾅 거리며 들려온다.

궁예 (E) 뭔가가 있다. 이미 내원도 알고, 그리고 지난 번에는 아

지태도 이것을 알았다. 뭔가가 있다. (사이) 전의도 이 병을

알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병일까? 이것이..... (이를 앙

다물며) 미륵이다. 나는 미륵이야. 미륵에게 무서울 것이 무

엇이 있단 말인가?


씬 2 대전 밖 복도

대전을 나와 서있던, 종간이 한참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가 다시 고

개를 돌려 대전 안쪽을 본다. 그는 아직도 의심스럽다. 다시 두어 걸

음 걷다가 또 돌아서며 다시 대전내관에게 묻는다.

종간 여봐라, 대전내관.

대전내관 예, 내원어른.

종간 앞서 나간 의원은 어디로 갔는가?

대전내관 아마도 황후전으로 간 것으로 아옵니다.

종간 황후전...?

대전내관 예, 내원어른.황후마마께오서 진내관을 보내시어 의원이 나

오거든 보자하신다 하였사옵니다.

종간은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번쩍인다. 그러다가, 생각하고는

내관들과 함께 서있는 내군부장, 금대에게 이른다.

종간 이보게, 금부장.

금대 예, 내원어른

종간 금부장이 황후전으로 가라. 가서 전의가 용무를 마치고 나오

거든, 내전으로 데리고 오도록 하라.

금대 예, 내원어른.

종간은 잠시 더 생각하다가 그대로 가버린다. 금대도 급히 내원 두어

명과 함께 황후전쪽으로 사라진다. 대전내관이 눈을 휘둥그래 뜨며 무

슨 일인가 궁금해하고 있다. 그 눈빛에서....


씬 3 황후전 복도

그 복도에 제조상궁을 비롯하여 상궁들과 진내관이 서있다. 안에서 목

소리가 들려온다.

연화 (E) 한치의 거짓도 없이 아는 대로 말해주어야 할 것이야.

진내관 ..........?


씬 4 동 황후전 안

슬이가 옆에 서있고, 연화가 전의를 추궁하고 있다.

연화 폐하께오서는 목숨을 건지신 이후 계속해 밤마다 통증에 시달

리신다고 뫼시는 측근들에게 들었네. 무슨 병이신가?

전의 ..........(눈치만 본다)

연화 왜 그렇게 괴로워하시고, 아파하시는가?

전의 신은 잘 모르는 일이옵니다. 다만.........

연화 다만 무엇인가? 그대는 의원이 아닌가? 폐하의 옥체를 보존해

올려야 하는 전의일세. 모르다니?

전의 신이 알기로는..... (사이, 눈치보며) 아마도 지난날에 상처

가 덜 나아서 그러시는 걸로 아옵니다.

연화 그대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겐가? 밤마다 잠을 못 주무신

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지 않는가?

전의 그렇기는 하오나.......황후마마, 그것은 폐하께오서 본래의

상처가 깊으신 데다가 여러 가지로 복잡하신 사안에 마음을

많이 쓰시어...

연화 그렇다면 그에 따른 약을 올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탕제로 될 일이 아니옵니다.

연화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답답하구먼...좀 속시원이 말해보게.

전의 지난 번에.......독화살을 맞으신 이후 여러가지로 마음의 동

요가 있으시었고,

연화 그리고?

전의 거듭되는 과로와 마음의 불안정이 겹치시어 아마도 그러하신

걸로 아옵니다.

연화 그러면, 병이 아니란 것인가, 병이라는 것인가?

전의 송구하옵니다. 신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어찌 말씀 드릴 수가

없사옵니다. 용서해주시오소서.

연화 이렇게 답답할 때가 있는가, 무얼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

전의 그, 그....그럴 리가 있겠사옵니다. 신이 아는 것은 모두 말

씀해 올렸사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긴 한숨) 딱하고 한심한 사람이로군. 다시 이르거니와 행여

내게 숨기는 것이 있다면 아니될 것이야.

전의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연화 물러가게.

전의 예, 황후마마.

전의는 눈치를 보며 그렇게 물러간다. 전의가 가고 나서 연화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연화 이봐라, 슬이야.

슬이 예, 황후마마.

연화 저 전의가 아무래도 무얼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 내가 전

해듣기로는 폐하께서 그토록 힘들어 하신다는데 말이다.

슬이 그러게 말이옵니다.


씬 5 동 황후전 밖

막 살았다는 듯이 복도를 뒤로 하여 마당으로 빠져 나오던 전의가 흠?

하며 선다. 금대와 장일, 그리고 내군들이 그가 오는 것을 보며 서있

다.

장일 전의가 아니시오?

전의 예, 예, 장부장 나으리.

장일 내원께서 찾으시오.

전의 아니, 소인을 왜 내원께서 찾으시옵니까?

금대 긴 말 할 거 없다. 이보게, 장부장.

장일 예, 장군.

금대 내원께 앞세워 가라.

장일 어서 앞세워 가라. 갑시다.

전의 아니, 내가 왜.........(앞세워 가며) 아니 내가 왜........

그들은 그렇게 간다. 디졸브 되면.


씬 6 내원

종간이 뚫어져라 전의를 보고 있다. 전의가 어쩔줄 모르며 눈치를 살

핀다.

종간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 너는 알고 있다. 폐하께오서 무

슨 병이신지?

전의 .............말씀 올리신 대로 피곤하시고, 좀 과로하시어

서....

종간 (탁자를 치며) 네 이놈! 살고 싶지 않느냐?

전의 예....

종간 입씨름 할 시간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느

냐?

전의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내원어른.

종간 황후마마께 뭐라고 말씀 올렸느냐?

전의 예, 그저 과로하시고 워낙 피곤하시어서...

종간 나에게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마라. 무엇이냐? (겁을 주며) 폐

하의 병증이 무엇이야? (다그치듯) 무엇이야?

전의 내, 내원어른.....

종간 너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폐하께오서도 말씀을 안하려 하

시었다. 허지만, 나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무엇이냐? 자,

어서 말하거라. 그 병명이 무엇이야?

전의 내원어른, 바른 대로 말씀 올리오면 살려주시겠사옵니까?

종간 ......... ?

전의 살려주시겠사옵니까?

종간 말해보거라.

전의 심통이시옵니다.

종간 심통...? 그게 무엇이냐?

전의 심통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사옵니다. 경계라 하여 깜짝 깜

짝 놀라는 것과 정충이라 하여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대표

적인 증상으로 보옵니다. 이 증상에는 공포와 두려움이 수반

되며 계속될수록 정신의 중심을 잡지 못하옵고....

종간 뭐라?

전의 갈수록 마음이 혼미해지고, 사악한 기운이 침입하여 혼백이

불안하게 되고, 혈기가 적어지게 되옵니다. 즉, 심기가 허약

해지는 것이 옵니다.

종간 (놀라며) 폐하께서는 미륵이시다. 그럴 리가 있는가? 어찌 대

미륵께오서 두려움 따위를 느끼실 수가 있단 말인가?

전의 그때문에 소인이 살려주시기를 청하지 않았사옵니까? 누가 대

미륵이신 폐하께오서 하찮은 소인들이나 걸리는 그러한 심통

에 괴로워하신다고 믿겠사옵니까?

종간 닥치거라, 이놈아!

전의 아, 예....내원어른.

종간 네 놈이 잘 못 본 것이다. 폐하께서는 미륵이시다. 범부들과

는 다른 분이시다. 심약한 인간들이나 걸리는 심통에 걸리실

나약한 분이 아니시다.

전의 하오나, 사실이옵니다. 이 병은 남보다 기가 세고, 담대하고

용맹무쌍한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그 기가 꺾이면서 발생하

는 병이옵니다.

종간 (사이) 이 병은 나을 수가 없느냐? (사이) 병의 증세가 더 할

경우 어찌되느냐?

전의 결국에 가서는 몸이 쇠약해지시며, 육신이 떨리고 발광하여

미치게 되어있사옵니다.

종간 ............ (두렵다) 그리고.....?

전의 조금만 피로하여도 가슴에 통증이 심하게 오며, 안정을 찾을

수 없고, 분수를 지키기가 어려워지옵니다.

종간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오랫동안

그렇게 눈을 감고 있다. 방안에는 두 사람 뿐이다. 얼마를 그렇게 하

고 있었을까? 종간은 한숨을 쉬며, 손짓을 한다.

종간 되었다. 그만 나가보거라.

전의 예, 내원어른. 이렇게 살려보내주시니, 참으로 고맙사옵니다.

종간 그래..... 너는 다시는 황궁에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전의 예, 예. 다시는 얼씬도 않겠사옵니다. 감사하옵니다, 감사하

옵니다.

종간 여봐라, 금부장 있는가?

금대 예, 내원어른.

문이 열린다.

종간 전의를 보내주어라. 밖까지 네가 안내해 가거라.

금대 예, 내원어른.

다시 문이 닫힌다. 종간은 눈을 크게 뜨며 다시 중얼거린다.

종간 심통....심통....? 폐하께오서 심통이라니.....


씬 7 동 대전

궁예가 떨리는 손으로 독주를 잔에 따라 마시고 있다.

궁예 (마시고 나서) 괴이한 병이 아닌가? 이 독한 소주를 넘기고

나니, 통증이 조금 낫구나. 이런 꼴이 있는가? 내가.... 이

궁예가 소주에 나를 의지한다는 말인가? 이 궁예가....

그러다가, 궁예는 마시던 잔을 그대로 탁자에 내려찍으며, 상을 내 던

져 버린다. 그 소리에 놀라 대전내관이 달려 들어온다.

대전내관 폐하.... 무슨 일이 시옵니까? 폐하....

궁예 (노려보다가) 저것들은 다 치우거라.

대전내관 예.

궁예 저것들은 다 치우라 하였다.

대전내관 예, 폐....폐하....

대전내관이 황급히 그것들을 걷고 있다. 그것을 노려 보고 있는 궁예

의 표정에서...

씬 8 황궁 밤 길

전의와 금대가 걸어 오고 있다.

전의 이제 되었사옵니다. 대체 어디까지 오시옵니까?

금대 그래, 이제 그만 가자꾸나. (주변을 보며) 너에게 다시 한 번

묻겠다. 내원어른께 한 얘기를 누구에게 또 한 적이 있느냐?

전의 천....천만의 말씀이옵니다. 소인이 목이 몇개나 된다고, 그

렇게 가볍게 주둥이를 돌리겠사옵니까?

금대 그래, 아주 기특하구나. 잘가거라.

금대는 칼을 뺀다. 전의가 파랗게 질리며 손을 비빈다.

전의 살려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사옵

니까?

금대 자, 잘가거라. 에잇..... !!

전의는 그렇게 눈을 뜨며 쓰러진다. 금대가 중얼거린다.

금대 폐하께오서는 대 미륵이시다. 그래서, 너는 죽는 것이다. 가

자.

금대와 함께 따라왔던 장일과 군사 둘이 황궁 쪽으로 사라진다. 쓰러

져 있는 전의의 시체에서...어디선가 범종 소리가 들려온다.

씬 9 산야 (새벽부감)



씬 10 동 산사

어느 구석 방에 불이 켜져 있다. 새벽 바람소리가 장지문을 흔들고 있

다. 섬돌 위에는 두 켤레의 신이 놓여 있다.


씬 11 동 방 안

주지승이 조실인 석총을 보고 있다. 석총은 작은 옥함을 비단보자기에

소중하게 싸고 있다.

주지 (조심스레 보다가) 큰스님. 무엇을 그리 소중하게 싸시옵니

까?

석총 ...... 그런 것이 있네.

주지 (다시 보다가)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석총 자네 보기에는 무엇 같은가?

주지 잘은 모르오나..... 참으로 귀한 것 같사옵니다만은...

석총 귀하다 뿐이겠느냐?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신(몸)이니라.

주지 (너무도 놀라) 예? 아니, 큰스님 지금 뭐라고 하셨사옵니까?

법신이라니요?

석총 이 법신은 미륵 부처님께서 현신하시어 나의 스승이신 진표

대사님께 내리신 간자이니라.

주지 (더욱 놀라며) 간자? 큰스님, 소승은 말로만 그 간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미륵부처님께서 그 옛날 진표 율사님

께 내리신 것이라 들었사옵니다만은...

석총 그렇다. 이제 때가 되어 그 주인에게 돌려주려 한다.

주지 주인에게 둘려주려 하시다니요? 어느 주인에게 돌려주신다 하

십니까? 그 귀하고 귀한 간자를....

석총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느니라. 이제 때가 되

었어.

주지 .........?

해설 간자(簡子)! 쉽게 풀이한다면, 부처의 상징이며, 증거라 할

수 있다. 진표 율사는 송나라 고승전에도 실려있는 백제 말의

유명한 고승이다. 나이 스물세살에 이르러 혹독한 기도 끝에

미륵을 친견하였는데, 그 미륵으로부터 불경과 수지골(手指

骨,손가락 뼈)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진표 율사는 당시의 어

지러운 세상 곳곳을 누비며 미륵으로써의 사명을 다하며, 백

성들을 구휼하는데 일생을 보냈다. 석총보다는 이백여년이 앞

선 사람으로써 석총은 그의 여러 대를 이은 법제자가 된다.

말하면, 석총은 진표가 후대에 전한 그 미륵의 증거를 지금까

지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이야기는 고려말 찬술

된 왕대종록(王代宗錄) 2권에 실려져 있는 내용이다.

석총 세상에는 수많은 미륵들이 나타나고 또 사라지고 했느니라.

한때는 궁예가 이 삼한의 미륵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 책무를 마치지 못하고, 미륵의 자리에서 지옥으로 떨

어졌으니 이 일을 어이 하겠느냐?

주지 하오면.... 그 주인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미륵을

모시는 법상종의 최고 어른이신 큰 스님께서 도대체 누구를

다시 또 주인이라 하시옵니까?

석총 허허허. 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불문에서는 이 간

자를 맡을 사람이 없고.....

주지 어디로 가려 하시옵니까?

석총 (옥함을 싸서, 품속에 넣고 일어서며) 얼마 안 있으면, 내 소

식을 듣게 될 것이니라.

석총은 그렇게 홀연히 방에서 나선다. 주지가 어안이 벙벙하여 그 뒤

를 따라 나선다.


씬 12 동 밖

산짐승들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석총이 가다말고 돌아서서 말한다.

석총 앞으로는 산문을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라. 자중하고 열

심히 공부하여 불법을 수호하거라.

주지 예, 스님. 헌데, 언제 오시옵니까?

석총 허허허. 다음 생에나 올까.... 언제 내가 세상에 다시 올지

그것은 부처님만 아시지 않겠느냐? 하하하....

석총은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주지가 주변을 돌아보며 나즉이

불호를 외운다.

주지 마치 영영 떠나시는 것처럼 떠나시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지

않는가?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되는 겐가? 나무석가모니

불..... 나무석가모니불....


씬 13 그 산길

여명이 밝아 아침이 되고 있다. 석총이 걸어가며 중얼거린다.

석총 세상사 참으로 덧없고 허망하구나. 그동안 미륵에 참 뜻을 전

하려고 나선지 언 몇 십년.... 어느새 몸은 늙고 해놓은 것

없이 갈 때가 되었구나. (사이, 주변을 돌아보며) 그래도 이

간자를 전할 곳이 있으니, 저승에 돌아가 스승님들을 만나볼

면목은 서겠구나.

석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길을 재촉해 가고.


씬 14 철원 시가지 인서트

무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쳐 간다. 사람들이 웅크리고 지나쳐 오가고,

사이 사이로 군사들이 지나치는 것이 보인다.


씬 15 아지태의 집 사랑

아지태가 서류들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임충길이 함께해 있다.

아지태 날이 몹시 추운 모양일세.

임충길 예, 나으리. 보통 추위가 아니옵니다.

아지태 그래, 허긴... 겨울은 겨울다워야지.

임충길 뭘 그리 보시옵니까?

아지태 조정 돌아 가는 것을 좀 살피는 중일세. (서류 보며) 허허

허.. 그래도, 섭섭하지 않을 만큼 우리 청주인들이 병부와 여

타 관서에 골고루 들어가 움직이고 있네 그려.

임충길 모두가 나으리께서 계시기 때문에 그만큼이나 된 것이 아니옵

니까?

아지태 그야, 그렇지. 허지만, 폐하께서 다 수용을 하신 결과이지.

임충길 (눈치를 보다가) 그야, 그렇겠습지요. 하온데, 나으리.

아지태 왜?

임충길 왜 아직 조회도 없으시고, 법회도 아니 여시는 것일까요?

아지태 조회보다는 법회가 더 급한 것인데, 그것이 여의치가 않은 것

같아. 아마도, 큰 법회를 열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전국에

퍼져있는 고승이라고 하는 그 승려들이 쉽게 모이지가 않거

든.

임충길 폐하의 영이신데, 어찌 오지들 않겠사옵니까?

아지태 허허허, 그게 좀 문제란 말이야. 그 승려들은 폐하를 그리 대

단하게 여기지를 않으려고 한단 말이야.

임충길 예? 누가 감히....

아지태 그러게 말일세. 따지고 보면 사실 지금은 폐하께서 정치와 종

교를 합친 정교일치적 전제주의를 펴고 계시네.

임충길 ..........?

아지태 법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야. 왜냐하면, 폐하께서 유일하고

도 절대적인 신이 되셨기 때문이네.

임충길 과연 그렇사옵니다.

아지태 허허허, 폐하께서는 말하자면 최후의 선택을 하신 게야. 그것

에 대해서 많은 승려들이 보이지 않게 반발을 하고 있는 것이

지.

임충길 그렇다면, 보통 일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아지태 허허허... 그렇지, 보통 일은 아니지. 뭔가 사건이 터지겠지.

이대로 오래갈 수는 없거든. 지금 뭔가가 계속 곪고 있단 말

이야. 곪은 것은 터질 것이고.


씬 16 병부령 외경


씬 17 동 병부령 안

병부령 복지겸과 장수들이 함께 해 있다. 환선길, 이흔암, 배현경, 홍

유, 김락, 윤신달, 전이갑, 전의갑 형제들이 함께 해 있다.

복지겸 환장군께서 또 전선으로 떠나시니, 고생이 많으시겠소이다.

환선길 폐하의 영이십니다. 고생이랄게 무엇이겠습니까?

이흔암 암요, 장수는 그저 전선에 나가야지요.

복지겸 배장군과 홍장군도 늘 쉬지도 못하고 야전에만 나가 계시니,

이 사람이 참으로 미안할 따름입니다.

배현경 허허, 그런 말씀 마시구료. 앞에 이장군께서도 이야기를 하셨

지만, 장수는 그저 전쟁터에 있어야 합니다.

홍유 허허허, 당연하신 말씀이십니다. 소장은 오히려 이곳 황도에

머물러 있으라고 할까봐 겁이 나옵니다?

배현경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허

모두들 허허허....

김락 헌데, 새로운 장수분들을 뵙는 것 같소이다만은.

복지겸 새로운 분들은 아니올시다. 이 분들 모두 여러 전투에서 그동

안 많은 공을 세우신 분들이외다. 소생이 소개를 해 올리지

요. 여기는 윤신달 장군이시고,

윤신달 윤신달 이옵니다.

복지겸 또, 이쪽은 두분이 형제분인데, 전이갑, 의갑 장군들이올시

다.

두형제 인사드리옵니다.

복지겸 이분들은 폐하의 영을 따라서, 각각 상주에 가있는 왕장군과

또 신라 전선으로 가는 환장군에게 배속될 것이외다. 잘들 해

주시구료.

환장군 하하하, 어느 분이 내게 오시려는지 모르지만, 잘해보십시다.

해설 복지겸이 소개하고 있는 이들 세사람! 그 중 윤신달은 파평

윤씨의 시조이다. 일찍부터 문장이 탁월하고, 또한 무예에도

밝아 훗날 왕건을 도와 공을 세워 벽상 2등 공신이 되는 사람

이다. 또한, 전이갑,의갑 형제는 본관이 정선으로써, 이때에

이르러 왕건의 휘하에 드니, 그들이 세운 공은 참으로 많았

다. 상주전선을 비롯해 나주는 물론이고 오랫동안 곳곳에서

평생 왕건을 도왔으며, 끝내 대구 팔공산 동수 전투에서 신숭

겸과 함께 왕건을 구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장수들이다.

복지겸 아무튼 지금은 여러가지로 나라 사정이 그리 밝지가 못하오이

다. 지난 해 농사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질병 마저도 계속 돌

고 있어서...

배현경 이야기 들었습니다.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새로 황궁을 옮겨

왔으면, 좋은 일만 있어야 할텐데, 그렇게까지 어렵다니....

복지겸 그러게 말이외다. 아무튼, 장군들께서 전선으로 가 좋은 소식

을 좀 전해주시구료. 그나마, 모두들 힘을 낼 수 있게 말이외

다.

모두들 알겠습니다, 병부령.

씬 18 왕건의 집 외경


씬 19 동 집 사랑

왕식렴과 두 형수, 그리고 장수장이 함께 해 있다.

유씨 (고개를 끄떡이다가) 서방님께서 전선으로 가신 이후 지금껏

아무 소식도 없사옵니다. 어떻게 이처럼 무심하신지 모르겠습

니다.

왕식렴 허허허, 형수님, 형님은 본래 그런 분이십니다. 전장에 나가

시면 집 생각 따위는 일절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씨 마땅히 그리 하셔야지요. 수천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총사

가 아니십니까?

유씨 그렇기는 하지만서도.....

왕식렴 보나마다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계실겝니다. 이미 환장군이

많은 장졸을 잃고 실패한 전선이옵니다. 그 전선을 다시 일으

키셔야 하니, 얼마나 애로가 많으시겠습니까? 집 생각 하실

겨를이 없으실 것입니다.

오씨 하지만 형님께서는 늘 서방님 생각 뿐이십니다. 어떻게 지내

시는지, 또 별다른 일은 없으신지.... 지난 번에 그 역모 사

건으로 너무도 놀라셔서 말입니다

.

왕식렴 (미소지으며) 어찌 제가 두 분 형수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형님은 잘 해내실 것입니다. 폐하는 물론이시고 온

나라가 믿고 있는 형님이 아니옵니까? 기다려 보시오소서.


씬 20 충주 관아 외경


씬 21 동 관아 안

왕건과 세 가신, 그리고 금식과 그의 부장 둘이 모여 있다. 이른바 회

의 중이다.

왕건 (지형도를 보며) 금식 장군이 제안하신 작전은 아주 적절하다

고 보여집니다. 적의 숫자는 우리보다 많습니다. 또, 유리한

지역들을 가지고 있소이다. 정면돌파는 상당히 어려울 것 같

아요.

금식 허허허, 이 사람의 의견을 신뢰해 주시니, 고맙사옵니다, 장

군.

왕건 어인 말씀을... 또 하나 애로 사항은 우리 군대가 사기가 많

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올시다. 지난 번에 워낙 당해놔서....

금식 그렇사옵니다. 군대의 사기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미 기

가 꺾이면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히 애를 먹게 되어 있지

요.

유금필 헌데, 적진을 교란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계산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금식 뭐, 그렇게 어려울 것 없소이다. 백제군의 공직 장군이나 방

장군 같은 사람들은 주변 상황이 지리적으로 어둡소이다. 우

리는 그 약점을 찌르고 들어가 단번에 전세를 뒤집어 버릴 것

입니다.

능산 일리가 있습니다. 소장도 금장군의 말씀이 옳다고 봅니다.

박술희 허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너무 깔봐서는 아니됩니다. 공직 장

군 같은 사람은 소문을 듣자하니, 상당히 신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금식 하하하, 물론 그렇다고 합디다. 그러나, 뒤에서 벼락처럼 들

이치는 데는 속수무책일 겝니다.

왕건 그렇게 시원스럽게 말씀을 하시는 금장군을 보니, 마음이 든

든합니다. 헌데, 과연 매사가 그렇게 생각대로 잘 풀릴지....

금식 물론, 그렇사옵니다. 방법을 더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옵니

다. 문제는 시간이옵니다. 적이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군사를 저들 뒤로 가있도록 할 수 있느냐? 바로 거기에 우리

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왕건 음..... (끄떡인다)

금식 분명한 것은 충주는 장자 유긍달님의 영지이라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소장의 군대는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토착민들이옵니

다. 그만큼 유리하다는 것이옵니다.

왕건 압니다.

금식 사실, 그 유장자님의 명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소장은 이곳에

아니왔을 것이옵니다. 허허허...그 점을 꼭 아셨으면 하옵니

다.

왕건 어찌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금식 ?, 그렇다면 소장이 거느리고 있는 군대를 한 번 보시겠사옵

니까?

왕건 좋은 말씀이십니다. 보고 싶습니다, 금장군.

금식 그러면, 가시오소서. 허허허....우리가 가면 유장자 어른께서

도 그리로 나오실 겁니다.


씬 22 유긍달의 집 외경


씬 23 동 집 사랑

유긍달이 나들이 차림으로 그의 딸 수인을 보며 말하고 있다.

유긍달 지난 번에도 말을 하였다만은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는 나름대

로 각자의 방법이 있다.

수인 .........

유긍달 삼한이 찢어져 서로가 주인을 노리고 있는 안개 같은 형국이

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청주와 더불어 백제와 마진, 양쪽의

경계에서 눈치를 보아야 하는 입장이야.

수인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유긍달 우리는 누군가를 택해야 한다 그 말이다.

수인 그 분이 바로 왕건 장군이시옵니까?

유긍달 그렇다. 나는 너를 그 왕장군에게 보내려고 한다.

수인 그 분에게는 이미 두 분의 부인이 계시옵니다.

유긍달 허허허... 물론 그렇다. 아마 앞으로도 부인은 더 많이 생길

게다.

수인 예?

유긍달 지금은 연분을 따지거나, 남녀 관계의 정을 생각할 겨를이 없

구나. 오로지, 어떻게 하면 서로가 살 수 있는가, 하는 그 계

산 뿐이다. 철저한 계산 말이다.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보장해주는 길이 된다. 내 말 뜻을 알겠느냐?

수인 예, 아버님. 하오나....... 그 분이 과연 아버님의 뜻을 따르

겠사옵니까?

유긍달 십중팔구 그리 될게다.

수인 .........?

유긍달 즉, 유리한 영지를 찾아 주는 조건으로 우리의 장래를 보장해

달라는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너 하나로 인해 우리 가문의

장래를 약속해 달라는 것이지. 사실, 왕장군의 지금 두 부인

도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하는 것을 내가 들은 적이 있다. 너

도 그리 생각하거라.

수인 집안을 위한 일이옵니다. 그리고, 또한 왕장군을 위할 수 있

는 일이라 하옵니다. 소녀가 어찌, 따르지 않겠사옵니까?

유긍달 그래, 그리 이해해주니 고맙구나. 과연 이 유긍달의 딸 수인

이로다.

수인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아버님?

유긍달 너도 실은 왕장군이 그리 싫지는 않은 것 같다만은.....

수인 (부끄러운 듯) 소녀가 어찌 싫고 아니 싫고를 따질 수 있사옵

니까? 그저, 모든 것을 운명으로 알겠사옵니다, 아버님.

유긍달 허허허.... 하긴, 이 험한 세상에 그만한 지아비감이 또 어디

있겠느냐? 암, 그렇고 말고.... 자, 왕장군이 온다고 하니 나

가 보아야 겠지. 너도 함께 가자꾸나.

수인 소녀가 말이옵니까?

유긍달 암, 가까이 할수록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 허허....


씬 24 산야 혹은 충주

어느 고을

금식이 왕건과 세가신과 함께 그의 군사들을 사열하고 있다. 정규군이

아닌지라, 사냥꾼 혹은 농민군들 차림이다. 그들이 말을 타고 지나칠

때마다 환호하는 열기들이 대단하다.

금식 장군, 정규군이 아닌지라 군복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하

옵니다.

왕건 그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문제는 군대의 사기올시다. 과연,

대단한 군사들입니다.

금식 그렇게 칭찬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이들은 모두 앞으로 장군의

훌륭한 예하부대로써 싸울 것이옵니다.

왕건 참으로 고맙고 든든 하오이다.

금식 군사들의 사기가 오르는 이유가 있소이다. 그것은 유장자께서

아낌없이 가산을 풀어 절대로 굶어 죽는 자가 없도록 하신 데

서 비롯되신 것이올시다. 아무나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왕건 볼수록 감탄이 나오고, 들을 수록 참으로 존경이 가오이다.

금장군께서도 그렇거니와 유장자 어른 또한 예삿분이 아니올

시다. 참으로 느낀 바가 많습니다.

금식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사옵니다. (한 곳을 가리키며) 허

어, 마침 저기 장자 어른께서 오시옵니다.

유긍달과 그의 딸 수인이 말을 타고 가까이 오고 있다.

왕건 그렇군요. (유긍달에게) 장자어른, 어서 오시오소서. 그렇지

않아도, 마침 장자 어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참이옵

니다. 낭자도 오셨구려?

수인 예, 장군. 고생이 많으시옵니다.

왕건 고생은요?

유긍달 허어, 왕장군, 헌데 이 사람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그리 많이

하셨소이까?

왕건 들을 수록 존경스러운 이야기를 여기 금장군께서 해주셨습니

다.

유긍달 허, 무슨 말씀을...금장군, 자네는 무슨 말을 하였길래 이토

록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가?

금식 있는 사실만 전해 올렸사옵니다, 어르신.

유긍달 허허, 사람 하고는.... 자, 저리들 가십시다. 가서 뜨거운 차

라도 한 잔 마십시다.

그들 한쪽으로 가면...


씬 25 그 한쪽 어느 군영(야외)

휘장 안에서 이들이 선 채로 뜨거운 차를 큰 잔으로 마시고 있다. 그

리고, 그들은 탁자 위에 놓여져 있는 지형도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

다.

유긍달 여기 금장군도 이야기를 하였지만, 금장군은 잘 훈련된 정예

특수병들을 샛길을 이용해 적의 후방으로 침투 시킬 모양입니

다. (지형을 지휘봉으로 가리키며) 조령과 죽령으로 가는 길

은 험준한 산맥 이외도 두어 곳 지름길이 있소이다. 금장군,

설명해 드리게나.

금식 예, 어르신. (또 다시 가리키며) 지금 백제의 공직 장군은 이

곳 조령 쪽에 포진해 있고, 방장군이라는 자는 여기 죽령 쪽

에 있사옵니다.

왕건들 ........(끄떡인다)

금식 조령 계곡은 지금 눈이 쌓여 모두들 안심하고 있사온데, 이럴

때가 바로 병력을 이동시키기가 아주 적격이옵니다.

왕건 힘은 들겠지만, 옳은 말씀이오.

금식 이쪽 여기 주흘산 자락과 회향산 사이에 길이 험난하지만 이

용할만하며 금천과 소야천으로도 군사를 변복하여 투입시킬

수 있사옵니다.

유금필 군사를 넘길 수는 있겠으니, 문제는 앞서 금장군께서 이야기

하신것처럼 어떻게 시간을 버는가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금식 (한숨) 그렇습니다. 그것이 지금 분명하게 대답이 나오지 않

아서, 걱정이올시다. 어떻게 저들의 눈과 귀를 잡아 두는가,

하는 그것 말입니다.

왕건 시간은 짧고, 군사는 많이 넘어야 하고..... 그리고, 적들이

몰라야 하고..... 허허, 답답한 일입니다. 묘책이 없을

까....

유긍달 묘책이라....? 시간이 문제인데, 시간.....시간이라....

모두들 .......

아무도 말이 없다. 선뜻 명쾌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금식 좀 더 방안을 찾아 보겠사옵니다. 찾으면, 나오지 않겠사옵니

까?

그때, 눈치를 보다가 유금필의 곁에 붙어 있던 태평이 슬며시 나서며,

허리를 굽히고는 한마디 한다.

태평 장군님, 소인이 한말씀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모두들, 그런 태평을 본다. 남루한 옷차림에 볼품 없는 병졸인 것이

다. 금식이 찡그리며 몰아 부친다.

금식 허허, 버릇 없는 자로구나. 어른들이 말씀을 하시는데....

왕건 .........이자는 누구인가?

유금필 소장이 부리는 군졸이옵니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끼어드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유긍달 아니다, 무슨 말인지 어서 해보거라.

태평 예, 장자 어른. 소인이 옆에서 뵈오니, 아무것도 아닌 일로

어른들께서 걱정들을 하시는 것 같아....

왕건 아무것도 아니라니...?

태평 적진을 공격하는 일로 모두들 고민하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적을 뒤에서 공격하는 일이란 말하자면, 기습이 아니옵니까?

왕건 그런데...

태평 시간을 끌 일이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손자가 쓴 병법을 참고

하시오소서.

유긍달 손자가 쓴 병법?

태평 (노래하듯) 備前則後寡(비전즉후과)하고 備後則前寡(비후즉전

과)라. 備左則右寡(비좌즉우과)하고 備右則左寡(비우즉좌과)

라.

왕건 (태평과 함께 합창하듯 외운다) 無所不備(무소불비)면 則無所

不寡(즉무소불과)라. 寡者(과자)는 備人者也(비인자야)니 衆

者使人備己者也(중자사인비기자야)라.

그런 두 사람을 모두들 뻥해서 본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왕건은 이미 무릎을 친다.


왕건 그렇다. 바로 그것이야.

유금필 주군,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왕건 적의 힘을 분산하자는 것일세. 아군의 행동을 적에게 감추고,

우리를 숨긴 채 재빨리 공격하자는 것일세.

모두들 .....?

왕건 후방으로 우리 정예의 특수부대를 보내면서, 여러 곳을 동시

다발적으로 공격하는 것이야. 여유를 두지 말고,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뒤흔들어 중심을 깨버리는 것이지. 전광석화처럼

아주 빠르게 끝장을 보자는 것이야. 옳은 말이야. 일부는 그

렇게 등뒤를 치면서 정신을 빼고, 우리의 주력군은 그 헛점을

찔러 단번에 들어가는 것이야. (감탄하듯) 그래, 그렇게 간단

한 것이었어. 그대는 누구인가?

태평 소인은 태평이라 하옵니다.

왕건 태평?

태평 예, 장군.

해설 태평! 염주(지금의 연안군)사람이다. 태평은 이때만해도 군졸

로써 유금필의 휘하에 있었는데, 이때 왕건에게 발탁이 된

다. 그는 본래 당시 유학을 했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향인 염주가 궁예군에게 함락되면서 군졸로써 편입되어 지

금에 이르렀던 것이다. 왕건은 그를 만나면서부터 비로소 용

이 물을 만나듯 큰 힘을 얻게 된다. 태평은 역사의 기록에 보

이기를, 서사를 두루 섭렵하고 사사에 밝았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대단한 학문을 했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왕건 그대의 이름이, 태평이란 말이지?

태평 예, 장군.

왕건 어찌된 일인가? 도대체, 어떻게 그대 같은 인물이 군졸로써

묻혀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유부장 어떻게 된 것인가?

유금필 소장도 몰랐사옵니다. 워낙 말이 없이 뒤만 따라 다니는지라.

왕건 하하하, 이렇게 기쁜 일이 있는가? 진흙 속에서 진주를 얻었

구나. 진주를 얻었어...하하하........

유긍달 그런 것 같습니다. 장군을 위해 참으로 이만한 복이 어디 있

겠소이까? 이 사람이 오늘 한 잔 낼 터이니, 모두 우리 집으

로 가십시다.

왕건 고맙습니다. 자, 가세, 태평. 반갑네 그려. 정말 반가워.

태평 황공하옵니다, 장군. 과분한 칭찬을 받으니, 몸둘 바를 모르

겠사옵니다.

왕건 아닐세, 아니야. 반가우이, 참으로 반가우이... 그대는 답답

했던 내 눈을 뜨게 해주었어. 그대 말대로 할 것일세. 그대로

할 것이야.


씬 26 아자개의 사불성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27 동 성 안

아자개가 술을 마시며 웃고 있다. 유리잔을 신기한 듯 이리저리 본다.

기가 막히다.

아자개 부인, 이것 좀 보시구료. 이게 유리래요. 유리...황금 보다도

더 투명하고 큰 보물이라지 않습니까?

계모 정말, 보기에도 아주 좋아 보입니다.

아자개 이것으로 술을 마시니까, 그냥 술이 술술 제 멋대로 넘어가는

구료. 하하하. (마시며) 자, 부인도 한 잔 드시구료.

계모 예, 나으리. 참으로 왕건 그 사람은 생각할수록 예의가 바르

고, 너무도 사내다운 장수이옵니다.

아자개 그러니깐 박술희 같은 사람이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겠소

이까?

계모 그러게 말이옵니다. 호호호.

아자개 자아, 마십시다, 마셔요.

그들 그렇게 기분 좋게 술을 마시는데, 보고 있다가 대주가 말한다.

대주 아버님, 지금 마진군의 동태가 심상치가 않사옵니다. 그들을

그렇게 믿고 계실 때가 아니옵니다.

아자개 또, 왜 그러느냐? 또 왜 그래? 너는 지난 번에 너희 오라비

말도 아니 들었느냐? 우리는 견훤이를 도울 필요도 없고, 또

왕건이를 오해할 필요도 없어요. 그저 이렇게 적당하게 사는

것이다. 너는 왜 그렇게 마진에 장수들을 싫어하느냐? 그 사

람들 우리에게 정말 잘해 주고 있다. 아니 그러하냐?

대주 견훤 오라버니 보다는 그들이 더 경계의 대상이옵니다. 너무

믿지 마시오소서. 저들은 분명 언젠가는 그 약속을 깨고 이

성을 도모하려 할 것이옵니다.

아자개 아니다, 아니야. 그렇게 하려면 벌써 그랬지. 대주 네가 있는

한은 절대로 박술희나 왕건은 그렇게 안할 것이야. 부인, 듭

시다. 이 머루주 맛이 정말 기가 막혀요. 다음에 박술희에게

더 보내달라고 해야 겠어요.

계모 그러게 말이옵니다, 호호호.


씬 28 동 조령 전선(어느 성)


씬 29 동 성안

공직과 방장군이 함께 전선의 지형도를 훑어 보고 있다. 방장군이 시

큰둥하다. 약간 술이 취해 있다.

방장군 아, 장군, 뭘 그렇게 염려하시옵니까? 이곳은 끄떡 없사옵니

다.

공직 그렇지가 않네. 왕건이 다시 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방장군 그까짓 왕건이...뭐가 그리 걱정이옵니까? 이미 조령과 죽령

의 모든 전선은 우리가 장악하고 있사옵니다.

공직 왕건이를 가볍게 보지 말게나.

방장군 걱정 말고 술이나 한 상 내주시오소서. 저 놈들은 이제 다시

는 이곳에 얼씬 거리지 못할 것이옵니다. 내년 삼월 눈이 녹

을 때까지는 우리는 그저 술이나 마시면 되는 것이옵니다. 제

놈들이 어디로 올 것이옵니까, 오기를....

공직 아닐세, 자만은 금물이야. 내 말을 명심하게나.


씬 30 전주 황궁 외경


씬 31 동 황궁 대전

견훤이 박씨와 고비, 신검, 박영규, 어린 금강(5세 정도)이 함께 해

있다. 푸짐한 음식상을 앞에 놓고 있다.

견훤 모처럼, 이렇게 모여 저녁을 함께 하는 구먼. 이것이 얼마만

인가? .

박씨 그렇사옵니다. 참으로 오랫만이옵니다.

박영규 양검, 태자님께오서 함께 계시지 못하여 아쉽사옵니다.

고비 그러게 말이옵니다.

견훤 너무 어리기 때문에 지방을 돌면서 군무를 좀 익히고 오라 하

였어.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아서 말일세. 신검이도 마음을 단

단히 먹고 더 군무를 열심히 배워야 할 게야.

신검 예, 아바마마.

견훤 (술을 마시며) 그래, 가끔씩은 이렇게 모든 부산함을 잊고 가

족들이 모이는 기회도 있어야 하는 것인데, 별로 그렇지가 못

했어.

고비 앞으로는 자주 자리를 주시오소서. 황후마마와 태자마마를 뫼

시고 저녁을 함께 할 수 있다니, 신첩은 참으로 감격이 벅차

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래, 그래. 이게 다 승평부인이 기회를 만든 것이

아닌가? 암, 그래야지. 가족간의 화합은 노력하기에 달린 것

이야. 황후도 승평부인을 잘 대해주시구료. 아무래도, 어려운

것이 많을 터인데....

박씨 (못 마땅해서) 예, 폐하. 그렇지 않아도, 잘해주고 있사옵니

다. 어서 드시오소서.

견훤 허허, 그래, 그래...


씬 32 동 궐 안 어느 전각 안

최승우와 능환, 추허조, 수달, 김총, 지훤, 애술, 최필, 신덕 들이 모

두 모여 있다.

최승우 폐하께서는 지금 모처럼 대전에서 황후마마와 저녁을 함께 하

시는 것 같사옵니다.

능환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모쪼록 황궁이 편안해야 나라도 편

안한 법일세.

수달 지난 번 폐하께오서는 금성을 되찾는 말씀을 하셨사옵니다.

이제 군사를 준비해야하지 않겠사옵니까?

추허조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이제 금성을 도모해야지요.

김총 우리는 그동안 적지 않은 영토를 이미 확보하였사옵니다. 이

제부터는 금성을 되찾는 일을 국가의 우선과제로 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지훤 금성을 공략하는 데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옵니다.

최필 저희들에게 그 준비를 맡겨 주시옵소서.

애술 그렇다면 선봉은 소장이 서게 해주시오소서.

신덕 아니옵니다, 소장에게 주시옵소서.

수달 (탁상을 치며) 무슨 썩어 빠진 소리들을 하고 있는 게야? 그

금성은 수달이의 몫이야. 이 수달이의 몫이란 말이야. 누가

감히 선봉을 달라 했는가?

모두들 .......(조용하다)

수달 선봉을 서고 싶거든, 이 수달의 목을 베고 서란 말이야. 알겠

는가? 감히 어디서 헛소리들을 하고 있는 게야?

최승우 수달장군, 젊은 장수들이 한 번 해 본 소리가지고 뭘 그러시

오? 그렇소이다. 그곳을 탈환하는 것은 장군의 몫이외다. 아

무도 나설 수 없고 말고요....

능환 이번에는 철저히 준비를 해서, 다시는 옛날처럼 망신을 당해

서는 아니될 것이야.

최승우 물론 그렇지요. 사실, 공격을 할 때가 서서히 오는 것 같소이

다. 올라온 장계를 보면, 지금 마진국은 나라 사정이 말로 다

하기 어렵다 하옵니다. 지난 농사도 망쳤거니와, 곳곳에 질병

이 돌고 가뭄까지 겹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자신이 미

륵이라 하며 대대적인 법회를 준비하고 있다 합니다. 그러니,

인심이 흉흉할 수 밖에요. 준비 할 때가 되었어요. 충분히 생

각해 볼만합니다.


씬 33 철원 황궁 외경(밤)


씬 34 동 대전

궁예가 아지태와 종간을 보고 있다. 관심법으로 그들을 본다. 그리고

는 한참만에 눈을 뜨고, 고개를 젓는다.

궁예 (긴 한숨) 도대체, 하나같이 마음들이 안맞아. 마음들이...

두사람 .........

궁예 이 나라는 미륵의 나라야. 내가 나라를 세웠고, 백성들에게

부처의 세계를 가르치고 있어. 그런데도, 이곳 철원에 와서는

도무지 되는 것이 없어.

아지태 폐하, 큰 법회를 열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이 또한 소요되는

것이옵니다.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시옵소서.

궁예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이오? 예전에는 이러한 적이 없었어.

내가 관심법으로 가만히 보니, 이 나라에 가장 큰 역할을 담

당하는 두 분이 맞지를 않아서 그래.

종간 ............

궁예 비록 관직은 없지만, 많은 신료들이 나 다음으로 내원을 꼽고

있소이다. 그런데, 왜 아니될까?

종간 송구하옵니다, 폐하.

궁예 여기 아학사와는 서로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되고 있어요. 그게 아니되고 있어!

종간 .........

궁예 아학사는 내봉성령에 불과하오. 내봉성이란 인사를 담당하는

것일뿐 큰 힘이 없어. 이번 법회건은 아무래도 내원께서 다시

맡아 주셔야 겠소이다.

종간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궁예 옛날 같지가 않아. 백성들이나 승려들이나 다 똑같애. 몰아부

치시구료. 몰아부쳐요.

종간 예, 폐하.

궁예 이자들이 그냥 놓아두면 한없이 짐을 우습게 안단 말이야. 내

가 영을 내렸는데, 도대체 왜들 꾸물거리는 거야?

종간 .........

궁예 이건 우선 신료들부터 문제가 있어. 조회는 나중에 열려고 했

는데, 아니되겠어. 조회 먼저 여시오. 신료들을 다 불러 모으

시오. 내가 관심법으로 좀 보아야 겠소이다. 관심법 말이요,

관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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