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81회>
씬 1 충주 온천(밤)
지난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석총과 왕건이 서로를 강하게 보고 있다.
허월도 표정이 굳어져 이들을 본다. 유긍달부녀도 마찬가지이다.
왕건 아니, 대사님! 지금 뭐라고 하셨사옵니까?
석총 참 미륵을 찾아 왔다고 했소이다.
왕건 누가 참 미륵이라는 것이옵니까?
석총 지금 묻고 계시는 장군이 바로 미륵이시오.
모두들 .........(놀란다).....?
왕건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대사님? 천부당 만부당 하시옵니
다. 어떻게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시옵니까? 이 나라에는 오
로지 한 분의 미륵이 계시옵니다. 바로 황제 폐하 말씀이옵니
다.
석총 그렇소이다. 한 때는 분명 지금의 황제가 미륵이었소이다. 그
러나, 그는 스스로 미륵의 자리에서 내려왔소이다. 인간의 천
박한 야망과 욕심이 그를 미륵의 자리에서 밀어 낸 것이지요.
왕건 큰 일을 하시다보면, 작은 실수는 있기 마련입니다.
허월 왕장군,
왕건 예, 대사님.
허월 석총 대사는 지금 폐하의 일을 말하려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
외다. 오로지 장군을 보려고 온 것이오.
왕건 말씀하시오소서.
유긍달 자, 우선 여기 앉아서 말씀들 하시오소서.
석총 아니올시다, 장자 어른. 그보다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소이
다.
석총은 품속에서 가져 온 옥함(간자)을 꺼내 놓는다. 그리고, 합장하
며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미처 왕건이 어찌해볼 사이도 없이 오채투
지(부처에게 올리는 절 예법)로 절을 올린다.
왕건 (놀라며) 대사님! 왜 이러시옵니까?
석총 장군, 이 옥함은 부처님의 법신인 간자올시다. 즉,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대자대비하신 미륵 부처님의 상징이올시다.
모두들 ..........?
석총 이미 이백여년 전에 소승의 스승이신 자장율사께서는 이 간자
를 제자들에게 전하시며, 오늘이 있을 것을 예측하셨소이다.
이 미련한 중이 그것을 맡아 뫼셔왔으나, 이제 세상과의 인연
이 다 되어 새로운 주인을 찾아 맡기려 하는 것이오.
왕건 대사님, 소장은 한낱 전선이나 지키는 군인이올습니다. 제가
어찌 이 귀한 간자를 받을 수 있단 말이옵니까?
허월 지금은 그러하시겠으나, 훗날의 일을 누가 알리오? 이미 석총
대사가 장군을 믿고 예까지 와서 전하는 것이니, 받구료.
왕건 아니옵니다. 이 귀한 것을 소장이 어찌....
석총 아니오, 이 시대의 구세주는 바로 당신이오. 이미 도선대사께
서 예언하셨고, 그동안 내가 산에 숨어 그대를 보아왔소이다.
그대만이 추위와 굶주림과 공포에 떨고 있는 백성들을 구할
분이시오. 어서 받으시구료. 아니면, 이 자리에서 일어설 수
가 없소이다. 어서!
허월 장군, 받으시구료.
왕건 소장이 어떻게..... 소장이 어떻게......
유긍달 이미 작정하고 오신 큰 스님들이십니다. 받으시구료. 언제까
지 이렇게 큰 스님을 무릎 끓려 놓으실 것이오이까?
왕건 .......... 세상에 이렇게 황망할 때가....
허월 (강하게) 어서 받지 않고 무얼 하시는 게요? 하늘의 뜻을 거
역할 참이오. 어서 받으시오!!
왕건 오, 이 일을 어이할꼬.... 너무도 무섭고 떨려 소장은 어찌
할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하오나, 큰스님들의 뜻이 이러하시
니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들을 아끼라는 소명으로 알고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 뫼시겠사옵니다.
왕건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석총과 맞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 경건하게 석총이 전해주는 그 옥함을 받는다.
모두들 감축드리옵니다.
왕건은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참으로 두려운 일인 것이다.
해설 간자! 미륵을 상징하는 증거. 지금 왕건은 그 옛날 미륵으로
불렸던 진표율사의 법제자 석총을 통해 그 간자를 전해받고
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가? 미륵부처
로 비교되었던 진표율사의 법제자가 그 총체적인 상징을 들고
와 왕건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은 왕건이 즉 세상의 새로운 주
인이라는 사실을 공표하고 인정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 아닌
가?
석총 (일어나서 웃는다) 하하하.... 이제 나의 큰 임무 하나는 여
기서 끝난 것 같소이다. 자, 장자어른.
유긍달 예, 대사님.
석총 다시 또 먼길을 떠나야 하오이다. 우리 두 땡초에게 곡차나
한사발 주시구료.
유긍달 이를 말이옵니까? 얘 수인아!
수인 예, 아버님.
유긍달 이 분들을 다시 자리를 마련하여 안으로 모실 것이다. 어서
준비를 하도록 밑에 일러라.
수인 예, 아버님.
유긍달 자, 들 안으로 가시지요.
안으로 다시 옮기면서.. 유긍달의 상기된 표정에서 길게 디졸브....
씬 2 동 온천 외경(아침)
설경이 아름답다. 아침 해가 눈부시게 산야를 밝히고 있다. 그 산새
소리들.... 태평이 주변을 돌아보며, 별장 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씬 3 동 온천 별장
왕건이 아직 잠들어 있다. 천상의 음악소리가 황홀하게 들려온다. 환
청과 꿈이 어울어 진다. 무지개 빛 구름속에서 구층 황금 탑이 떠오르
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왕건이 올라 앉아 있다. 모든 것이 황금 빛
으로 눈부시다. 왕건이 감탄하며, 그 탑과 무지개 빛 구름들을 한참
동안 보고 있다. 그런 그의 표정이 여러 각도로 보여지다가, 사라진
다.
씬 4 동 방(현실)
왕건이 잠에서 깬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선다. 그는 예의
그 옥함을 본다. 그러다가, 도리질을 한다. 다시 그 꿈속에 황금 빛
탑이 지나쳐 간다.
해설 왕건의 꿈! 실록 고려사에 보면은, 이때의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벯쩝뗌?나이가 삼십세 되었을 때에 꿈에 구층 금탑이
바다에 서있었는데, 태조가 그 위에 올라가 있었다.?라
고..... 그리고, 훗날 왕건의 책사이며, 천문과 복술에 밝았
던 훗날의 군사 최지몽은 이것이 반드시 삼한을 통일하게 되
실 것이라는 것으로 풀이하였다고 한다.즉, 황제가 된다는 뜻
이었다.
왕건 개 누구 있느냐?
수인 예, 장군.
수인이 다소곳이 들어선다.
수인 잘 주무셨사옵니까, 장군?
왕건 어떻게 된 것이오? 대사님들은 지금 어디 계시오?
수인 동이 트기 전에 길을 떠나셨사옵니다. 장군께오서는 아버님께
서 독주를 내오시어 드신 이후 곧 잠에 드셨사옵니다.
왕건 며칠 피곤했던 것이 그만 한꺼번에 몰렸던 것 같소이다. 이런
결례가 있는가? 대사님들을 그렇게 보내드리다니....
수인 어차피 바로 길을 떠나시겠다고 하셨사옵니다. 섭섭해하실 것
은 없사옵니다.
왕건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가시다니...
일어나며 왕건은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때 태평의 소리가 들려온
다.
태평 (E) 장군, 태평이옵니다.
왕건 들어오게나.
수인 하오면, 소녀는 물러가겠사옵니다. 잠시 후 필요하시면 온천
욕을 즐기시오소서.
왕건 고맙소이다, 낭자.
수인은 그렇게 나가고, 태평이 예를 취하며 앉는다. 태평이 그 옥함을
담담하게 본다.
태평 장군, 그 옥함에 대하여 지난 밤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사
옵니다.
왕건 참으로 민망하고도, 두려운 일일세.
태평 하오나, 장군. 그것이 바로 세상의 인심이고 또한 장군의 운
명이시옵니다.
왕건 운명은 또 무엇인가?
태평 이 나라에서 미륵을 모시는 종파의 최고 어른이 여기까지 와
서 장군께 그 증표를 올렸사옵니다. 이는 바로 장군께서 미륵
이시고, 또한 훗날 이 나라를 맡으실 분으로 인정하신 것이옵
니다.
왕건 그 무슨 해괴 망칙한 말인가?
태평 그 옥함을 소중히 보관하시옵소서. 그리고, 더불어 이 일은
더 이상 누구도 알아서는 아니되옵니다.
왕건 무슨 소린가?
태평 잘못하면 장군께서 이 나라의 미륵자리를 탐내셨다는 대역죄
인의 오해를 받으실 수도 있는 일이옵니다.
왕건 닥치게! 어찌, 그리 무서운 말을.....
태평 그렇사옵니다. 이는 무섭고도 두려운 일이옵니다. 그러니, 깊
이 간직하시오소서. 누구도 알아서는 아니되옵니다.
왕건 .......(사실 그는 두렵다. 엄청난 일인 것이다. 그렇게 옥함
을 본다)
씬 5 산길
두 노승이 걸어 가고 있다.
허월 산속에 틀어 박혀서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
었네 그려. 언제 그렇게 왕장군을 보아 두었단 말인가?
석총 세상이 다 아는 일일세. 아무튼 어깨가 가벼우이. 이
미 간자는 제 주인을 찾아 갔고..... 이제 남은 일을 마저 해
야겠어.
허월 남은 일이라..... 철원에 법회 말인가?
석총 허허허... 암, 바른 말 해주고 미련 없이 훨훨 떠나야지. 아
참, 날씨 한 번 좋다. 아주 깨끗하고 선명하구나. 눈이 부셔.
허허허.....
씬 6 철원 시가지
승려들과 군인들과 사람들이 지나쳐 간다. 그 한쪽으로 인부들이 건축
자재들을 옮겨오고 있다. 금대와 장일이 그 군사과 인부들을 감찰하고
있다.
금대 서둘러라! 공역을 서둘라는 폐하의 엄명이시니라. 서둘러라.
장일 서둘러라!
씬 7 철원 황궁 외경
씬 8 동 황궁 대전 복도
황후 연화가 제조상궁과 슬이를 대동하고 오고 있다. 진내관들도 그
뒤를 따라온다. 앞에 이르자, 진내관이 이른다.
진내관 아뢰어 주시게.
대전내관 예. (큰소리로) 폐하, 황후마마께서 납셨사옵니다. 씬 9 동 대전 안
궁예가 반듯이 앉아 경전을 읽고 있다가 대전내관의 소리를 듣는다.
궁예 황후가...? 뫼시어라.
그러자, 연화가 들어와 예를 올리고 앉는다.
연화 폐하, 신첩이 문후 여쭈러 왔사옵니다.
궁예 문후는 무슨.... 한 참 경전 좀 보고 있던 참이었소이다. 허
허.... 차 한잔 하시겠소이까?
연화 예, 폐하.
궁예 밖에 상궁 있는가? 차물 좀 들여오너라.
대답과 함께 제조상궁이 찻상을 들여와 따라 준다.
제조상궁 폐하, 녹차이옵니다.
궁예 그래, 녹차는 머리를 맑게 해주고, 정신을 고요하게 하지.
자, 드십시다, 황후.
연화 예, 폐하. (조금 마시고 나서) 신첩이 들으니, 폐하께오서 요
즘 밤 잠을 깊이 못 드신다 들었사옵니다.
궁예 음음(도리질한다) 누가 그런 소리를...? 그렇지가 않소이다.
잠 잘자고 있소이다.
연화 많이 편찮으시옵니까?
궁예 아프지 않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괜찮아요. 그래, 황후께서는
좀 어떻소오이까?
연화 신첩이야 별다른 일이 있겠사옵니까? 폐하, 정말 괜찮으시옵
니까? 신첩이 듣기로는 가슴이 아프시다고....
궁예 하하하, 전에 한 번 그런 일이 있었지. 지금은 아니야.
연화 여러가지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사옵니다. 밖에서는 야단에
법석을 만드는 공역을 시작하였다고 들었사옵니다.
궁예 아마도 내원이 주관을 하고 있을 게요.
연화 조회 도중에 조당에서도 신료 한 사람이 죽었다고 들었사옵니
다만..
궁예 (아주 인자하게) 그랬소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지. 내
가 관심법으로 가만히 보니, 온통 머리 속에 마군이가 꽉 차
있었어요. 내 그래서 편하게 해줄려고 그런 것이었지.
연화 ........(너무도 기가 막히다) 허지만, 그렇게 사람을....
궁예 음음, 사람이 아니라 마군이라고 하지 않소? 황후도 내가 지
은 경전을 시간 날 때마다 자주 보시고, 공부 많이 하시구료.
그렇게 되면, 황후도 나처럼 관심법을 배우게 될 수 있을 게
야. 하하하.. 관심법이 얼마나 신통하고 재미있는지 황후는
잘 모르실 게요. 자, 차 드십시다. 들어요.
궁예는 차를 마신다. 연화는 그저 그렇게 어쩔 줄 모른다.
씬 10 동 내원
종간이 올라온 여러가지 장계들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은부에게 보고
를 듣고 있다. 염상과 박유가 앉아 있다.
은부 이미 이곳 황도인 철원에 많은 승려들이 집결하고 있사옵니
다.
종간 (계속 보며) 그나마 다행이로군 그래. 법석을 짓는 일은 잘
되고 있나?
은부 예, 내원어른. 서두르라 일렀사옵니다.
종간 그래야지, 폐하께서 그 어떤 일보다도 독촉하고 지켜보시는
일일세. 특히나, 미륵부처를 모시는 법상종의 승려들은 빠짐
없이 오도록 해야 할 것이야.
염상 그 일도 서두르고 있사옵니다. 군사들을 절마다 보내, 강제로
끌어 내고 있사옵니다.
종간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 석총인가 뭔가 하는 중도 오는가?
염상 수소문하여 찾고 있사옵니다.
종간 와야해! 와서 모두 대미륵이신 폐하의 법회를 보아야해.
그러면서 종간은 다른 보고서를 바꾸어 읽는다.
종간 (끄떡이며) 왕건장군은 상주에서 백제군을 곧 공격하겠다는
구먼. 그곳의 장자 유긍달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게야.
그리고, (또 바꾸며) 장수 윤신달과 전이갑,의갑 형제는 전선
으로 갔고, 환선길 장군도 신라와의 접경지대에서 승전을 계
속한다는군. 암, 그래야지. 포로들을 많이 잡았는데, 이리로
올려 오겠다는구먼 그래. 그들 관리는 염부장이 병부령과 상
의해서 하게.
염상 예, 내원어른.
종간 이건 또 무엇인가? 음..... (유심히 본다) 허, 이런 일이....
박유 왜 그러시옵니까?
종간 이것 좀 보시오, 박학사. 나이 열네살의 천재 신동이 있다는
구료. 이름은 최응이라고 하는데, 사서오경을 줄줄 꿰며 학문
은 모르는 것이 없다는 구료. 열네살이라는 게요. 열네살....
박유 허, 그렇사옵니까?
종간 재미있군 그래. 한 번 폐하께 말씀드려 보자고 해야겠네 그
려. (장계 건네며) 박학사가 한 번 알아봐주시구료. 최응이
라...최응이라.....
종간 아무튼, 이 일은 박학사가 좀 알아봐주시면서, 그 금강산 도
인도 더불어 찾아주시구료.
박유 폐하 때문이시옵니까?
종간 그렇소이다. 아무래도 환후가 예사롭지 않으시오. 그 도인이
라면 어떻게 한 번 더 손을 써볼 수 있을 텐데....
박유 쉽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그 도인이 애써 숨고자 한다면, 찾
을 방안이 없사옵니다.
종간 꼭 좀 알아봐주시오. 어디 의지할 곳이 없소이다. 의원들이
고칠 병이 아닌 것 같소이다. 나는 그것이 안타까워요. 의원
들이 고칠 수 없다는 그것이......
씬 11 황궁 내봉성 전각
아지태가 일을 보고 있다. 뭔가 쓰기도 하고, 전문들을 확인하고, 정
리도 한다. 입전과 신방, 임춘길이 서 있다.
아지태 오, 다 되었네. 다 되었어. 어서들 오게나. 자, 들 앉게.
그들 예.
입전 일이 아주 바쁘신 모양이옵니다.
아지태 내가 하는 내봉성의 일은 사람들을 다루는 일일세. 시골 구석
까지 벼슬아치들이 가 있지 않는가? 사람들 쓰는 일은 바로
국가의 대사일세. 그게 무너지면 나라가 휘청거려.
임춘길 이를 말이옵니까?
신방 야단에 법석을 만드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하옵니다.
아지태 하하하, 그럴테지. 내원 그 사람이야 폐하의 영을 받으면, 이
유를 달지 않고 밀어부치는 사람일세. 그만한 충성심이 없지.
신방 많은 백성들이 조그만 공역에도 힘이 들어 하고 있사옵니다.
아지태 암, 나도 알아. 다시 말하면, 모두들 지쳐 있는 것이지.
신방 헌데, 그 법회에서 폐하께서는 무얼 말씀하시려고... 그토록
강하게 서두르시는 것이옵니까?
아지태 (잠시 생각하다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논의 될 것일세. 분
명 아주 중요한 것이 있지.. 아주 중요한 일.....
그들 .........?
씬 12 또 다른 전각
유장자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지윤과 더불어 장자1,2, 박수문과
수경, 복지겸, 강장자, 왕식렴 들이다.
유장자 내원께서 궁궐 밖에 법석을 만드는 일을 주관하고 계시오이
다. 야단법석 말입니다.
박지윤 이미 황궁 안에 잘 지어 놓은 대 법당이 있습니다. 왜 또 그
렇게, 밖에다가 법회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소이다.
장자1 아무래도 황궁 안에 법당은 한계가 있어서 그런 것 같소이다.
좀 더 크게 의식을 집전하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장자2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엄동설한
에 공역을 일으킨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소이다.
강장자 폐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입니다. 우리 신료들이 이러쿵 저
러쿵 말 할 자격은 없소이다. 아니그렇소이까? 누가 폐하께서
하시는 일을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할 수 있겠습니까?
유장자 그렇긴 하지만...백성들이 워낙 힘들고 피곤해해서 하는 말씀
들이지요.
강장자 백성들이란 황제폐하의 물건인 것이오. 죽으라 하면 죽는 것
이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것이고, 또 쓸 때는 갔다 써야 하
는 것입니다. 소모품이라 이 말씀이예요.
모두들 .......
왕식렴 아직도 처처에 굶거나 얼어 죽는 백성들이 많이 있다 들었사
옵니다. 그들에 대한 근본적인 구제 방법이 있어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만은....
강장자 본래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고 하였어요. 하늘이 비를
주지 않고 땅이 곡식을 주지 않는데 무슨 재주로 그들을 구합
니까?
박수문 하오나, 바로 그 백성들이 전선에 나가 싸움을 하고 바로 그
백성들이 황궁을 짓고 바로 그 백성들이 농사를 짓사옵니다.
그들을 구할 노력을 조정에서 보여야 합니다.
장자1 그렇소이다. 전국에서 걷어 올리는 세목과 세금의 일부를 풀
어서 죽어가는 백성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보옵니다.
박수경 허나, 그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고 있사옵니다. 많은 무리
를 하여 관리들이 호족들을 다그치고 있사오나, 예정된 세금
은 뜻대로 잘 아니되옵니다.
유장자 (긴 한숨) 그럴 것이오. 모두가 어려운데 세금인들 쉽겠소이
까? 그러나, 아직도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나라 살
림은 어렵소이다. 또, 폐하께서 계속 법회를 주관하실 것인
데, 그에 따른 엄청난 비용들도 마련을 해야 하고, 이것 참
일이 많소이다. 일이 너무 많아요.
씬 13 왕건의 집 외경
씬 14 동 집 사랑
두 여인이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씨 많은 큰 스님들이 이곳 황궁으로 오고 계신다고?
오씨 예, 형님. 오죽하면 바깥에다 법단을 마련하겠사옵니까? 아주
큰 법회를 여시는 모양이옵니다.
유씨 불교 행사를 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게 억지로 강압해서 모임
을 만들어서야....
오씨 이번 법회에는 모든 관료들의 부인들도 다 참석을 하라는 영
이 내려졌다 하옵니다.
유씨 세상에.... 얼마나 크게 하시려고 그리 하시는가? 그럼, 우리
도 가야 겠네 그려.
오씨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답답했는데,
한 번 가 보십시다, 형님.
유씨 가는 것이야 뭐가 그리 어렵겠는가? 다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
서 말일세. 서방님께서는 전선에 나가 계시는데 우리만 아무
걱정없이 이렇게 편히 지내는 것이 죄스러워서 말일세.
오씨 (미소) 참으로 언제 보아도 형님께서는 마음씨가 여리고 고우
십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이만한 다행이 어디있사옵니
까? 정국이 불안하고 계속해서 어렵사옵니다. 이럴 때는 조정
에 계시는 것보다도 오히려 전쟁터가 나을 것이옵니다.
유씨 그럴까?
오씨 아마 서방님께서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 것이옵니다.
유씨 .......(끄떡인다)
씬 15 충주 유긍달의 집
씬 16 동 집 사랑
유긍달이 생각에 잠겨 있다. 그는 이미 뭔가 서찰에 쓰기를 마치며,
붓을 놓는다. 그 앞에 유긍달의 집사가 대기해 있고, 수인이 보고 있
다.
유긍달 (서찰을 접어 봉투에 넣는다, 두 통이다) 잘 듣게. 이 중 하
나는 광평성에 어른이신 광치나 유천궁 장자께 가는 것이고,
또 이것 하나는 바로 황제폐하께 올려지는 장계이니라. 알겠
느냐?
집사 예, 어르신.
유긍달 말을 달려 빠른 시일 안에 전해 올려야 할 것이다.
집사 예, 어르신, 그리 하겠사옵니다.
유긍달 왕장군은 금식장군과 더불어 곧 전투에 돌입을 할 것이다. 그
리고, 수일내에 그 전투는 완료가 될 것이야. 그 이전에 이
서찰의 내용이 전달되고 비답을 받아야 할 것이니라.
집사 염려 놓으시오소서. 서두르겠사옵니다.
유긍달 그럼, 가보아라.
집사 예, 어르신.
집사는 서찰을 받아 들고, 그곳을 빠져 나간다. 수인이 볼이 상기되어
아버지인 유긍달을 본다.
유긍달 (미소 지으며) 다 잘 될 것이다.
수인 그 서찰에 뭐라고 쓰셨사옵니까?
유긍달 하하하, 너를 시집보내겠다고 쓴 것이니라. 광치나 유천궁 장
자는 왕장군의 큰 장인이시다. 그 분에게 이해를 구하고, 도
와달라고 하였다.
수인 예?
유긍달 그리고, 또 한통은 폐하께 청원한 것이다. 왕장군은 앞으로도
계속해 많은 부인을 얻어야 한다고 권해 올렸다. 나라를 위해
서 말이다. 너도 그리 알고, 앞으로 왕장군이 아무리 많은 부
인을 보더라도 절대로 투기하거나, 시샘하지 말아라. 알겠느
냐?
수인 예, 아버님.
유긍달 지금은 전국시대이니라. 전쟁으로 밤낮이 지고 새는 때야. 살
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강자를 찾아 의탁하는 것이다. 왕장군
은 강자이니라. 세상이 그를 인정하고 있지 않느냐? 그 큰 스
님들이 간자를 전해 올리는 것을 보았느냐?
수인 예, 아버님.
유긍달 우리는 왕장군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혼사를
매듭지어야 한다. 잘 될 것이다. 잘 될 것이야. 씬 17 왕건 군영
왕건이 세 가신과 금식과 태평과 마주해 있다. 그들은 지형도를 보고
있다. 윤신달과 전이갑,의갑 형제가 함께 있다.
왕건 이번에 우리 전투에 새로이 보직을 받아 온 장군들이외다.
윤신달 부장 윤신달이라 하옵니다.
전이갑 부장 전이갑이라 하옵니다. 이쪽은 제 아우 의갑이올습니다.
전의갑 전의갑이옵니다.
왕건 허허허, 모두가 역전의 맹장들이올습니다.
금식 보기에도 아주 듬직해들 보이십니다. 자, 그럼 얘기를 계속하
겠습니다. (지형도 가리키며) 설명드렸다 싶이 지금도 소장의
군사들이 적진 속으로 들어가고 있사옵니다. 곧 전투가 계시
될 것이옵니다.
왕건 이미 잠입한 수가 얼마나 되오?
금식 족히 다 합치면, 천여명은 넘을 것이옵니다.
왕건 후방의 몇 곳으로 분산할 요량이시오?
금식 조령쪽에는 장군의 군사들을 보내시오소서. 소장은 죽령 쪽만
맡을 것이옵니다.
왕건 (끄떡이며) 새로이 나의 군사가 된 여기 태평은 지난 번 견훤
왕이 그 전략을 다시 쓰자고, 하고 있소이다. 죽령을 치면서,
조령의 군사들을 끌어내어, 매복지에서 궤멸시키자는 것이오.
금식 소장도 동의하옵니다. 저들은 우리가 똑같은 전략을 쓰는 것
에 대해서 아마도 비웃으며 믿지 않을 것이옵니다. 즉, 매복
군을 숨겨 놓는 것에 대해 방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
이옵니다.
태평 바로 그 점을 노린 것이옵니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조령을
그냥 지나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오
면, 곧바로 그곳도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옵니다.
박술희 허나, 그렇게 쉽게는 아니 될 것이야. 그곳에 공직장군은 예
삿사람이 아니야.
금식 허허허, 조심성이 많을수록 우리에게는 더 도움이 되는 전략
이옵니다. 문제는 죽령 쪽에 방장군이라는 자가 이 겨울에는
전투가 없을 것이라면서, 모든 경계를 풀고 있다는 사실이올
시다.
능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번 전쟁은 아주 쉬운 전투가 될 것입니
다. 게다가, 여기 술희 아우를 좋아하는 사불성의 아자개가
있사옵니다. 그쪽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는 이상 우리는 잘 될
것입니다.
금식 자, 오늘밤이 중요하옵니다. 왕장군님의 군대도 이 밤으로 저
산준령을 모두 넘어야 하옵니다. 지금 적들은 방심하고 있습
니다. 오늘 밤 뿐이옵니다.
왕건 알겠소이다. 내 아우들과 이미 의논이 끝났소이다.
씬 18 산 길
왕건과 세 부장이 군사를 통솔해 옮기고 있다. 어둠 속으로 보이는 그
들의 보행은 끝이 없다. 높고도 험한 산 구릉들이 그들의 시야를 막으
며, 거대하게 보여 지고 있다.
씬 19 또 다른 길(부감)
험한 산 계곡으로 군사들이 이동해 가는 것이 보인다. 금식이 그 계곡
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금식 이보게, 부장.
부장1 예, 장군.
금식 우리도 재를 넘세나.
부장1 예,
금식 내일은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질 게야. 저 백제놈들이 기
절초풍들을 할 것이야. 그리고, 그 태평이라는 자 말이야. 사
람이 빈틈이 없어, 왕건 장군은 말 그대로 진흙 속에서 진주
를 주었어.
부장1 그러게 말이옵니다.
금식 자, 우리도 가세.
부장 예, 장군.
그들 그렇게 계곡으로 이동하면서.... 어둠이 내리고 있다.
씬 20 죽령(밤)
멀리 방장군의 성이 보인다. 일당의 금식의 부하들이 어둠 속에서 서
로 수신호를 하며 사라진다. 그 어둠 속으로 금식의 군사들은 수없이
이동하고 있다. 성의 경계병들은 창을 아무렇게나 놓고, 졸고 있다.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씬 21 동 성 안
방장군이 부장들과 둘러 앉아 술동이를 동이 채 들어 마시고 있다.
방장군 (취해서) 내가 말이야. 옛날에 수많은 전투를 치루었지만, 이
렇게 재미없는 전장터는 처음이야.
부장1 그렇사옵니까?
방장군 (마시며) 우리가 이곳에 올 때도 너무 쉽게 왔어. 전쟁이란
어렵게 땅을 빼앗아야,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거든.
부장2 그렇사옵니다.
방장군 어디 재미있는 일 좀 없을까? 이거 술 마시는 일 빼고는 도통
할 일이 없어. 마시게. 아, 들 마셔.
부장들 예, 장군.
방장군은 술을 마시면서, 닭다리를 우악스럽게 뜯고 있다. 그런, 그들
의 모습에서....
씬 22 산 길
개천을 따라 길게 이동해 오고 있는 군대들이 어둠 속에서 보인다.
왕건과 세 가신과 태평들이다. 숲속에 숨어서 공직의 군사들이 이들을
보고 있다가 놀라서 몸을 사린다.
왕건 자, 이쯤에서 우리는 두 전부장과 함께 내처 죽령으로 갈 것
일세. 이보게, 금필이.
유금필 예, 주군.
왕건 여기 술희와 함께 윤부장과 오백에 군사를 줄 터이니, 조령으
로 가게. 중간에 매복해 있다가 만약에 백제의 공직장군이 계
획대로 군사를 이끌고 죽령으로 향하거든 무찔러 버리게.
유금필 알겠사옵니다, 주군. 자, 윤부장 그리고 술희 가세.
두사람 예.
왕건 조심들 하게. 자, 능산이 가세.
능산 예, 주군. 서둘러라! 이른 아침까지는 죽령에 도착을 해야 할
것이다. 서둘러!
왕건과 능산들은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보고 있던 유금필과
박술희도 시선을 교환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위로 달빛이
눈부시게 희다.
씬 23 그 길(새벽)
왕건과 능산, 그리고 태평이 달빛 속에 군사들을 이끌고 가고 있다.
달빛 가득히 내려 깔린 개천가는 겨울 바람 소리가 극심하다. 엄청난
추위가 몰아치고 있는 새벽인 것이다.
능산 대단한 추위이옵니다, 주군.
왕건 그러게 말일세. 죽령까지는 아직 길이 꽤 남았는데...
태평 허지만, 이 추위에 감사해야 할 것이옵니다. 백제군들은 이
추위 때문에 모두들 방심하고 있사옵니다. 우리가 이미 저들
의 경계권에 들어왔는데도, 감시 초병 하나 없지 않사옵니까?
능산 (돌아보며) 이번 전투는 참으로 예감이 좋사옵니다.
왕건 이 전투가 승리로 끝난다면, 모두가 태평 자네 덕일세.
태평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주군? 이렇게 헤아려 살펴주신 것만도
이 태평이 평생에 은혜가 될 것이옵니다.
왕건 잘해보세.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내 옆을 떠나지 말게.
태평 황공하옵니다, 주군. 오늘밤은 아주 의미 있는 날이 될 것이
옵니다. 저 백제의 견훤왕이 내일 아침이면 간담이 서늘해져
있을 것이옵니다. 하하하.....
씬 24 전주 백제 황궁(새벽)
이곳에서도 겨울 바람 소리가 높다. 카메라 천천히 다가가면, 가위가
눌리는 듯 견훤의 잠꼬대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씬 25 동 황궁 고비의 방
견훤이 잠자리에서 가위에 눌려 신음하고 있다. 카메라가 그 의식 속
으로 들어가면.
씬 26 동 견훤의 의식(꿈 속)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자개의 웃음소리이다. 견훤과 아자개가 서로
를 노려보며 마주해 있다.
아자개 이놈 견훤아, 어림도 없지 이 사벌주 일대를 내어 달라고?
견훤 아버님, 소자는 백제의 황제가 되었사옵니다. 도대체, 언제까
지 이 자식을 그렇게 버러지 보듯 하실 것이옵니까?
아자개 황제라고? 그래서, 날 보고 너한테 굽신 거리라 그말이냐?
견훤 아버님만 도와주시면, 소자는 그 사벌주를 발판으로 하여 조
령과 죽령을 지나고, 청주와 충주를 훨씬 넘어서 저 마진국을
단숨에 도모할 것이옵니다. 그야말로 대 제국의 진정한 황제
가 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아자개 하하하.... 치워라, 이놈아. 나는 너를 황제라고 아니 본다.
너는 견훤일 뿐이야. 다시는 얼씬도 하지 말거라, 이놈아.
다음에 네 놈이 사벌주에 얼씬거리면 (칼을 빼들며) 목을 베
어 버릴 것이야.
견훤 아버님.
아자개 이미 나는 네 애비가 아니다. 너의 계모도 널 싫어하고, 이복
동생들도 널 싫어한다. 나도 그렇고. 알겠느냐? 다시는 얼씬
거리지 말거라, 다시는... 알겠느냐, 이놈아? (칼을 휘두르
며) 예끼, 이놈아.
견훤 아버님.... (피하며) 아버님.... 너무 하시옵니다. 아버
님....
견훤은 그렇게 피한다. 화롯불이 쓰러지며, 옮겨 붙고 휘장에 불길이
솟기 시작한다. 견훤은 도망치고, 아자개는 쫓아간다.
아자개 어딜 가느냐, 이놈아? 어딜가....?
견훤 아버님, 아버님.....
씬 27 현실
견훤이 허우적거리며, 헉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한동안 심호
흡을 한다. 고비가 놀라서 보고 있다.
고비 폐하, 왜그러시옵니까? 악몽을 꾸셨사옵니까?
견훤 .......(생각이 많다)
고비 폐하....
견훤 아버님 꿈을 꾸었어. 사벌주의 아버님 말이야.
고비 나쁜 꿈이셨사옵니까?
견훤 좋을 턱이 있는가? 아버님에 관한 기억은 도무지 좋은 게 없
어. 아무래도 사벌주가 이상해. 생전에 안꾸던 꿈을 꾸다니
말이야.
그때, 새벽을 알리는 먼 사찰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불길하게 그 범종
소리를 듣고 있는 견훤의 표정에서
씬 28 죽령 산야
날이 밝고 있는 그 흰 새벽으로 왕건의 군사들이 길게 냇가를 따라 눈
발을 보고 있다. 그곳 저멀리로 산성의 모습들이 희끗거리며 보여온
다. 여기서도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금식이 왕건을 보며 고개짓을
한다. 이들의 부대가 만난 것이다.
금식 장군, 우리 본군은 벌써 여기까지 와 있고, 앞서 보낸 전초병
들도 이미 삼삼오오 저들의 성벽 가까이 가서 시간을 기다리
고 있사옵니다. 새벽의 종소리를 신호로 하기로 하였으니,
이제 곧 공격이 시작될 것이옵니다.
왕건 (끄떡이며) 조령에서도 우리 군사들이 이미 매복이 끝났을 것
이오이다.
종소리는 계속된다. 드디어, 금식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리킨다. 멀
리 성쪽 곳곳에서 불화살이 하늘로 솟고 있다. 그리고, 곧 곳곳에 불
길이 번지기 시작한다.
금식 공격이 시작되었사옵니다, 장군. 우리 본군에도 영을 내리시
지요?
왕건 좋소이다. 전군, 공격하라! 공격하라!!
능산 공격하랍신다. 좌우군, 공격하라. 본군도 성을 점령하라!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씬 29 그곳 죽령 방장군의 성
이미 곳곳에 불길이 솟고 있다. 방장군의 부장들이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한다. 그들은 졸립고, 술에 취해 있다. 본대에 앞서 기습해 온 금
식의 부장과 군사들이 이미 성루를 오르며 군사들을 짚단처럼 베고 있
다.
부장1 어떻게 된 것이냐?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이야?
부장2 (달려오며) 적군일세. 적군이야. 기습을 받고 있네. 왕건의
군사들이 쳐들어왔어. 기습이야.
방장군이 황급히 갑옷을 챙기며 달려 나오고 있다.
방장군 무엇이냐? 무엇이 어떻게 되었느냐?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부장1 왕건이가 쳐들어왔사옵니다. 사방이 적병이옵니다.
부장2 장군 저쪽을 보시옵소서.
방장군이 보다가 너무도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왕건의 군사들이
끝도 없이 새까맣게 몰려 오고 있는 것이다.
방장군 막아라. 성문을 닫아 걸고, 화살을 쏟아 부어라.
군사1 (달려오며) 피하시오소서. 성문은 밤새 열려 있었사옵니다.
방장군 무슨 소리야? 성문이 열려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거
도통 술이 깨어야 말이지....
함성 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바로 눈 앞에서 금식과 왕건의 군사들
이 떼로 몰려 온다. 곳곳에서 백병전이 벌어지고, 불길이 솟고, 군사
들이 수없이 죽어가고 있다. 방장군은 믿어지지가 않는다.
부장1 장군, 피하시오소서.
방장군 허, 이럴수가 있나? 저들이 언제 저 험한 곳을 지나쳐 왔단
말인가? 저들이 어떻게.....?
부장1 장군, 어서....
부장1이 방장군을 끌고 가는 사이에, 부장2는 다가오는 금식의 부장들
과 접전을 버린다. 그리고, 그 중 전의갑 형제의 칼을 맞고 절명한다.
저만큼 능산도 맹활약을 보이고 있다. 방장군과 부장들은 그 사이에
그곳에서 빠져나가고...디졸브 되면....
씬 30 인서트
성안 곳곳에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시체들 사이로 왕건과
금식이 들어오고 있다.
왕건 그만하라, 중지하라! 죄 없는 병사들은 죽이지 마라. 성은 함
락되었다. 죽이지 마라.
함성소리다. 수많은 함성들이 승리를 알리고 있다. 왕건이 손을 흔들
며 그들 곁을 지나쳐 가고 있다.
태평 이렇게 만족할 때가 아니옵니다, 지금 도망치고 있는 방장군
의 뒤를 쫓아서 곳곳의 전투진지들을 모두 점령하고 군량미
창고들을 또한 접수해야 하옵니다. 끝까지 쫓아 궤멸을 시켜
버리시오소서.
금식 옳은 말이옵니다. 소장이 쫓겠사옵니다. 군사들은 나를 따르
라!
금식이 소리치며 앞서가면, 숱한 군사들이 그를 따른다. 보고 있는 왕
건, 능산, 태평, 전이갑,의갑 형제들의 표정에서....
씬 31 조령 공직의 성 안
자막으로 조령성임을 알려 준다. 놀라는 공직의 목소리가 들린다.
공직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왕건의 군대가 죽령으로 갔어?
공부장1 예, 장군.
공직 아니,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부장1 이미 이삼일전부터 소수의 군사들로 무리를 지어 죽령 길을
넘었다 하옵니다.
공직 뭐라? 그들이 모두 얼마나 된다고 하느냐?
공부장1 눈에 들어난 군사들만 족히 이천은 된다고 들었사옵니다.
공직 이천...? 그들이 모두 지금 방장군이 있는 쪽으로 갔다 이말
이냐?
공부장1 예, 장군.
공직 이거 큰일 났구나. 방장군은 평소의 수비가 걱정이었다. 왕건
이 친히 왔고, 군사가 그정도라면 보나마나 어려운 싸움일 것
이다. 이 일을 어이할꼬....
그때, 또 다른 보고가 들어온다.
공부장2 (다가와 부복한다) 장군, 조령 관문 쪽에 나가있던 초병의 보
고이옵니다.
공직 말하라.
공부장2 왕건의 깃발을 앞세운 일단의 군사들이 조령을 넘어 우리 성
밖 협곡으로 지나쳐 갔다 하옵니다. 아마도, 우리를 노린 매
복인 듯 싶사옵니다.
공직 뭐라? (생각하다가) 매복이라니? 우리를 치러 왔으면, 전투를
하자고 할 것인데, 왜 매복을 한단 말이냐?
공부장1 아마도, 우리가 죽령을 돕지 못하도록 선수를 치고, 위장술을
쓰는 것 같사옵니다.
공직 위장술이라.....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저들이 죽령을 치면서
동시에 우리 조령까지 군사를 보내기는 어렵다. 그만한 여력
이 없을 것이야. 매복군이란 그대의 말처럼 우리를 속이려는
위장술이 분명하다.
공부장2 그렇사옵니다, 장군. 틀림 없사옵니다. 저들의 기본 목적은
죽령이옵니다.
공직 그렇다. 지난 번 폐하께오서도 그러한 작전을 쓰시었다. 조령
을 속이면서 죽령을 얻으셨지. 어리석은 자들이구나. 이미 폐
하께서 쓰신 전략을 또 쓰다니.... 군사를 소집하라. 최소의
방어병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죽령으로 가야 한다. 가서 방장
군을 도와야 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 어서 서둘러라.
두부장이 군례를 올리며 달려나간다. 공직도 투구를 집어 들고 검을
차며, 나갈 차비를 한다.
씬 32 다시 죽령 근처 길
아침이 밝고 있다. 방장군이 부장1과 패잔병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한숨을 쉬며 하늘을 본다.
방장군 참으로 허망하구나. 귀신들도 아니고, 그놈들이 어느새 그렇
게 다 몰려왔단 말이냐?
부장1 저들은 왕건과 충주의 장군 금식에 군대라 하옵니다.
방장군 조령쪽에 원군을 청하러 전령을 보냈느냐?
부장1 이미 그쪽에서도 알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때, 뒤쪽에서 한필의 말이 달려와 군례를 올린다.
전령 장군, 급보이옵니다.
방장군 무엇인가?
전령 성밖에 있는 곳곳의 주둔지와 군량미를 둔 창고들이 모두 점
령되었다 하옵니다.
방장군 뭐라?
전령 뿐만 아니라, 충주 장군 금식이 장군을 생포하겠다고 뒤를 쫓
아오고 있다 하옵니다.
부장1 장군, 어서 피하시오소서. 놈들이 끝장을 보려고 하는 것 같
사옵니다. 어서요, 장군.
방장군 도대체 어디까지 도망을 쳐야 한단 말이냐? 이런 망신이 있는
가, 이런 망신이...가자.
그들 그렇게 다시 달려간다.
씬 33 조령 또 다른 전선
산길이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공직과 그 군사들이 오고 있다.
공직 내가 그토록 누누이 일렀건만, 방장군은 내 말을 듣지 않았
어. 왕건이 이천이 넘는 대병을 이끌고 갔다면, 방장군은 틀
림없이 화를 당했을 게야. 급하구나. 어서들 서둘러라, 급하
다.
공부장1 장군께서 서둘라 하신다. 서둘러라, 서둘러라!
그러나, 공부장2는 주변을 보고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공부장2 장군, 아무래도 주변 분위기가 이상하지 않사옵니까? 그 옛날
에도 바로 이 근처에서 우리 군대가 홍유와 김락의 군대를 궤
멸시켰사옵니다.
공직 의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한번 정했으면 서둘러야 하는 것이
군의 작전이다. 빨리 가자. 서둘러라.
씬 34 그 일각
유금필과 박술희가 보고 있다.
박술희 형님, 기가 막히지 않사옵니까? 그 태평 군사 말이옵니다. 정
말로 적장 공직이 이리로 들어서고 있사옵니다.
유금필 그러게 말일세. 제대로 걸려 들고 있네 그려.
박술희 공격영을 내리시옵소서.
유금필 아니야, 조금 더 기다리게. 더 가까이 완전하게 들어온 후
에....
그들은 그렇게 보고 있다.
씬 35 그곳
공직의 군사들이 완전히 협곡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러면서, 비로소
공직도 무언가 좋지 않는 것을 예감한다. 그들의 머리위로 수많은 통
나무들이 밧줄에 묶여 허공에 떠있는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다. 공부장1이 놀라서 소리친다.
공부장1 장군, 저어...기....
공직 매복이다. 정말 매복군이 있었구나. 주변을 잘 살펴라. 조심
하라.
그때 소리가 들려온다.
유금필 공격하라. 적장 공직이 저기 왔다. 한놈도 살리지 말고 모두
죽여라!
공직 피하라, 매복군이다. 피하라.
박술희 공격하라.
통나무들이 수없이 떨어져 내린다. 바위가 굴러 내리고, 화살이 쏟아
지고, 공직의 군사들은 맥없이 쓰러져 간다. 공직이 어쩔줄 모르며 칼
을 빼들며 소리지른다.
공직 피하라. 길을 뚫어라. 전초 부대는 길을 뚫어라.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라. 어서......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 완벽하게 갇힌 그들은 말과 군사들이 쓰러
져 가고 있다. 화살 하나가 날아와 공직의 어깨에 박힌다. 그러나, 공
직은 계속 독전한다.
공직 길을 뚫어라.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라. 길을 뚫어라!
그렇게 소리치며 말을 달려 도망친다. 그리고, 그렇게 급히 돌아보는
노장 공직의 당황한 표정에서.....
< 81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