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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83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1.17|조회수2,336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83회>





씬 1 철원 야단 법석 장

수많은 인파가 들끓고 있다. 광치나 유천궁을 비롯해 그의 가솔들과

박지윤 부자, 장자1,2 그리고 왕식렴과 유씨,오씨,장수장 등이 보인

다. 더불어 복지겸, 환선길, 홍유, 김락, 배현경 들이 보이고, 강장

자, 백씨 들도 보인다. 오씨의 아버지, 다련군도 보이고, 석총과 허월

을 비롯한 수백명의 승려들이 어우러져 들끓고 있다. 입전, 신방, 임

춘길,천부장 등도 보인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E) 황제폐하 납시오! 황제폐하 납시오!!

소리와 더불어 길이 열리면서, 도열했던 내군들이 군례를 올리는 사이

로 대 미륵인 궁예가 황후 연화와 함께 들어서고 있다. 장관이다. 들

어서고 있는 미륵의 모습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모두 깊이

허리를 숙이며, 지나치는 그를 두려운 듯 본다. 그 뒤로 종간과 은부,

염상,박유,최응, 아지태 들을 비롯한 황궁 사람들이 들고 있다.


씬 2 그 곳

궁예가 마련되어 있는 법단의 법상에 연화와 함께 가서 앉는다. 궁예

가 자리에 앉자, 주술 같은 합창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벩회떪球賻?/P>

홈붅?온 군중이 외우기 시작한 것이다. 웅장하다. 그 소리는 깊은

울림으로 물결을 이루며 가득히 번지고 있다. 그렇게 열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사람들의 면면이 스쳐간다. 궁예의 옆에 서서 이 행사를 주관

하며 보고 있는 종간들. 그리고, 삼엄한 경계를 책임지고 있는 은부,

걱정스러우면서도 이를 감추고 보고 있는 신료들, 기가 막힌 감동으로

입이 헤벌어져서 보고 있는 환선길, 이흔암 들, 그리고 굳게 입을 다

물고 궁예를 노려보는 석총, 걱정스러운 허월 등등의 모습이 계속 지

나친다. 소년 신동 최응은 아무 표정이 없다.

그 위로.

해설 미륵으로써의 궁예, 먼 고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정치와 종교

의 합일체인 제정의 군주로써 등장한 궁예의 예, 우리는 고금

의 많은 역사를 더듬어 보아도 이 같은 일은 쉽게 찾아 볼 수

가 없었다. 이는 궁예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어찌되었던 폭넓

은 지지를 받음으로써 출발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지

금은 그가 오히려 미륵 신앙을 정치수단으로 변형시키고 있지

만,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를 아직도 세상을 구할 미륵, 즉

고통스럽고 살기 힘든 당시의 말세 의식 속에서서 강렬하게

희망을 찾아 이루어 줄 수 있는 구세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다. 그리고, 궁예 또한 그 사실을 길이 보존하면서 확인하

고 싶었던 것이리라. 분위기는 가열되어 터질 듯하다. 뫟회?/P>

니반메홈뮹?더욱 들끓으며 장내를 덮고 있다. 광신도들 같

은 사람들의 열기는 온통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며, 궁예를

향해 주술을 던지고 있다. 궁예는 신이 되었다. 신은 법상에

앉아, 신도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도 따라서 옴마

니반메홈을 함께 열창한다. 황후도 보고 있다가 따라하고 상

궁내관, 종간, 은부들도 모두 따라 한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

을까? 궁예가 높이 두 손을 든다. 그의 황금 법의가 번쩍인

다. 그의 손을 따라 장내가 진정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침묵 속에 가라앉는다. 그리고, 긴장미가 장내를 휘돈다.

궁예 중생들이여! (사이)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중생들이 나 미륵

을 기다렸는가? 나는 또 얼마나 오랜 세월 안타까이 그대들을

보며 오늘을 기다렸는가? 허나, 그대들은 안심하라. 나는 하

생하여 인간세에 내려왔고, 지금 그대들 앞에 있느니라. 내가

그대들을 보호하고, 이끌고 가 저 천상의 낙원에 이를 것이니

라.

종간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리고,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지른다.

종간 대 미륵 부처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모두들 (다 일어나) 대 미륵 부처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만

세!!!

궁예가 다시 좌중을 진정시킨다. 온 대중이 자신을 보고 들끓고 있다.

석총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본다. 그런 석총을 주지와 허월이 걱정

스레 보고 있고, 오씨와 유씨들도 신기한 듯 장내와 궁예를 본다.

궁예 그렇다. 불쌍한 중생들이여 나 미륵은 그대들을 위하여 이 세

상에 왔노라. 따라서, 나는 그대들과 함께 반드시 극락에 이

를 것이니라. 석가모니가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할 것이다.

(사이) 이 법회는 그래서 마련된 것이니라. 중생들이여, 극락

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뿐이다.

신료들 ............(그 면면이 계속 지나치고)

궁예 그대들이 나 미륵에게 동참하여 북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은

성전이다. 성스러운 싸움이다. 극락으로 가기 위한 마군이들

과의 싸움이다. 저 중원을 우리 미륵의 땅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세세토록 영원한 부귀와 영화를 그대들에게 상급으

로 줄 것이니라. 모두 일어나라. 모두 칼을 들어라. 자신의

것을 모두 내 놓아, 이 미륵에게 주어라. 나는 그것으로 극락

을 만들 것이다. 오..... 옴마니반메홈, 오.....옴마니반메

홈.(계속)...........................

주술이다. 궁예는 주술을 외우며, 장내를 이끌어 가고 있다. 신료들과

대중들이 뒤따라 하기 시작한다. 뫟회떪球賻史쮵은 다시 장내를 들

끓는다.


씬 3 동 야단법석 외경

겨울 바람이 휩쓸어 가고 있다. 태양도 빛을 죽였다. 법상에 앉은 궁

예의 모습이 아득히 보인다. 들끓는 뫟회떪球賻史쮵 소리들.... 곳

곳에 군사들이 경계하여 서있다.


씬 4 동 야단법석 안

궁예가 다시 진정 시킨다. 장내가 가라앉으면 궁예는 또 이른다.

궁예 들어라, 중생들이여! 먼 길을 가려면, 고단한 법이다. 그러

나, 가야한다. 내 것만 아끼고 지키려 하면, 결국은 그것을

훔치려는 도둑이 생기는 것이다. 너희들의 것을 다 내어놓고,

너희들의 목숨도 다 나에게 맡겨라. 내가 극락으로 인도할 것

이다. 우리는 북으로 간다. 이 삼한을 통일하고, 저 끝없는

대륙에 미륵의 세계를 만들 것이다. 미륵의 세계 말이다!!

궁예가 잠시 쉬며 사람들을 보는 사이, 카메라는 다시 그들의

면면을 훑는다. 환선길은 울먹거린다.

환선길 (이흔암에게) 폐하는 미륵이실세. 보시게. 오로지 우리를 위

해 저렇게 말씀하시네.

이흔암 온통 감동, 또 감동이시옵니다, 형님.

그때, 누군가가 서서히 법상 쪽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한다. 모두의 시

선이 그리로 쏠린다.


씬 5 그곳

인파를 가르며 걸어오고 있는 사람은 석총이다. 그는 궁예 앞에 이르

러 예를 올린다. 궁예가 보다가 묻는다. 종간, 은부들은 벌써 표정이

굳었다.

궁예 그대는 석총이 아닌가?

석총 그러하오이다, 폐하.

궁예 이 자리에서는 폐하가 아니라 미륵이니라. 앞으로는 그렇게

짐을 부르라.

석총 아니올시다. 폐하께오서는 이 나라의 황제이시기는 하나, 미

륵은 거짓이올시다.

궁예가 입을 다물었다. 그 외눈을 크게 뜬다. 황후도 놀라고, 종간,

은부도 여전히 굳어 있고, 신료들은 숨을 삼킨다.

궁예 마군이로구나. 마군이가 왔구나. 이 늙고 불쌍한 중아, 너는

어찌해서 나를 미륵이라 하지 않는 것인고?

석총 소승은 어려서 불문에 들어가 이 나이가 되도록 미륵만 배웠

소이다. 그러나, 폐하 같은 미륵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소이

다.

궁예 네 눈이 까막눈이기 때문이다. 봉사가 되었기 때문이야. 딱한

중이로구나.

석총 딱한 분은 바로 폐하이시오. 폐하께서는 처음은 미륵이셨사오

나, 지금은 그 자리에서 떨어져 나왔소이다. 폐하께서는 부처

가 아니라, 인간이시오이다.

종간 요망한 중이로다. 닥치지 못할까?

석총 할 말이 아직 남았소이다.

궁예 더 말해보라.

석총 폐하께서는 오늘날 거짓을 말하고 계시오이다. 낙원도 없고

극락도 없소이다. 거리에는 굶어 죽은 시체들과 오갈 곳 없는

백성들이 유리걸식하고 있소이다. 조정에는 사악한 간신들만

들끓고 있으니, 어찌 폐하의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막히지

않으리요?

은부 네, 이놈........

아지태 저 자를 끌어내라, 내군들은 무엇 하느냐?

궁예 놓아두어라, 계속 해보거라. 이 마군이야.

석총 본래 옳은 말은 귀가 아프고,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옵니다.

폐하, 미륵은 그만 두시고, 먼저 인간이 되시오소서.

신료들 ................ (모두 긴장해있고)

최응 ............... (담담하게 보고 있고)

석총 거짓 관심법을 버리시고, 간악한 주변을 정리하시오소서. 나

라가 이미 깊이 병들어 있소이다. 백성들은 더 이상 속지 않

을 것이외다. 아직도 요원한 저 북방의 세계를 논하시기 전

에, 먼저 죽어 가는 백성과 나라를 구하시오소서. 그 길만이

살길이외다. 폐하는 미륵이 아니시오이다. 더 이상을 백성들

속이지 마시오소서. 속이지 마시오소서.

종간 끌어내라. 저 미친 중을 끌어내라.

궁예 (웃으며 일어난다) 그렇다. 언제 어느 곳이든 성스럽고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하였다. 그냥 끌어 낼 것이 아니다. 저

자는 지금 마군이의 더러운 입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내군은

무얼 하느냐? 저 입을 철퇴로 으깨어 주어라.

염상 ......... (그저 망설이고 어쩔 줄 모르고 있다)

궁예 내군은 무얼 하느냐?

염상이 머뭇거리는 사이 금대와 장일 등 내군들이 다가간다. 은부가

보고 있다. 그러자, 주지가 튀어나온다.

주지 폐하, 살려주시오소서. 큰스님을 살려주시오소서.

궁예 너는 누구이냐?

주지 큰스님의 제자이옵니다. 미륵부처를 모시는 법상종 산문이옵

니다.

궁예 그랬었구나. 너희들이야말로 가짜 미륵을 앞세워 세상을 어지

럽히고 있었구나. 무엇 하느냐? 저 마군이의 입을 치라고 하

였다.

내군 예, 폐하.

그대로 달려가 철퇴로 입을 친다. 얼굴이 으스러지면서 무너져 내리는

석총. 주지가 나와서 다시 소리친다.

주지 살려주시오소서, 폐하. 폐하......폐하...

승려들 (떼로 나와 엎드린다) 폐하....... 살려주시오소서. 큰스님을

살려주시오소서.

황후는 몸을 떨며 보고 있다. 석총이 꿈틀거리며 다시 일어난다. 피투

성이로 중얼거린다.

석총 거짓미륵이시오! 이제 그대의 세상이 다 되었소이다. 이미 다

른 미륵이 일어나 내일의 세상을 준비하고 있소이다. 거짓미

륵이여!! 저주를 받을 것이외다. 하늘의 저주가 있을 것이외

다.

궁예 저 놈을 때려 죽여라!

철퇴가 날아가 석총의 숨 줄을 끊어 놓는다. 주지와 수십 명의 승려들

이 울부짖으며 석총에게 달려드는데, 궁예가 다시 말한다.

궁예 저 놈들도 모두다 때려 죽여라! 밖으로 끌어내어 구덩이를 파

고, 한꺼번에 산채로 묻어 버려라!! 마군이들이다. 법회를 망

치는 마군이들이다. 모두 끌어내어 묻어 버려라!!

은부 끌고 가라. 내군들은 무엇 하느냐? 이 자들을 모두 끌어다 묻

어 버려라.

법회가 아니다. 아수라장이다. 궁예는 그렇게 보고 있다. 신료들은 아

무도 입을 떼지 못한다. 오씨도 유씨도 그리고 다련군도 다 마찬가지

이다. 홍유와 배현경들도 표정이 굳은 채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궁예의 분노한 표정에서 디졸브 되면.....


씬 6 인서트(석양)

거리 저편으로 해가 숨고 있다. 까마귀 떼가 하늘을 덮으며, 몰려들어

울고 있다. 사람은 인적조차 없고.....


씬 7 다시 법회장(밤)

폐허처럼 을씨년스럽다. 빈 법석 위로 삭풍이 모든 것을 휩쓸어 가고

있다. 누군가가 홀로 그 넓고 텅 빈 법회장을 걸어오며 보고 있다. 허

월이다.

허월 무상이로다. 세상사 참으로 무상이로다. 그토록 추앙 받던 석

총도 죽었고, 온 백성이 우러러보던 미륵도 죽어서 가짜가 되

었구나. 그러나, 세상사 모든 것이 윤회하는 것이다. 처음부

터 죽고 사는 것이 없는데, 나는 무엇이 안타까워 아직도 여

기서 서성거리고 있는고...? 나무관세음....나무석가모니

불...

그러한 허월의 표정에서....


씬 8 낙동강 왕건의 군영(밤)

달빛이 밝다. 흰 달빛이 부서지고 있는 강변을 왕건이 태평과 함께 보

고 있다. 간간이 바람소리만 들린다.

태평 주군, 밤바람이 차옵니다. 그만 들어가시오소서.

왕건 이 찬 것이 얼마나 시원스럽고 좋은가? 지금쯤 철원에서는 대

대적인 법회가 열리고 있겠네 그려.

태평 아마도 그럴 것이옵니다.

왕건 (가벼운 한숨) 백제군의 동요가 없는 걸 보니, 별다른 전투는

당분간 없을 것 같네 만은.....

태평 그럴 것이옵니다. 싸울 의지가 있었다면, 벌써 왔을 것이옵니

다.

왕건 그래, 그렇겠지.

태평 무슨.... 걱정이 있으시옵니까?

왕건 아닐세, 걱정은 무슨..... 요즘 따라 왠지 마음이 무겁네 그

려. 그 석총 대사 말일세. 우리 사이는 나의 첫번째 부인과

잠시 인연이 있는 정도인데...... 그런데, 내게 간자를 주고

가셨어.

태평 지금도 그 생각을 하시옵니까?

왕건 자꾸 가슴이 답답하여 그러하이. 그때는 얼떨결에 받았는데,

생각할 수록 두려운 일이 아닌가? 한 분뿐인 미륵이신 폐하일

세. 헌데, 날 보고 미륵의 상징이 되라고 하지 않는가?

태평 (미소) 그저 조용히 때를 기다리시오소서. 오는 운명을 어찌

막겠사옵니까?

왕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네. 간자에 관한 일은 폐하께 아뢰는 것

이 어떻겠는가?

태평 주군, 그것을 말씀드리는 순간 주군께서는 목숨을 잃게 되실

것이옵니다. 아직도 모르시옵니까? 그 간자의 의미를 말이옵

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덕을 잃고, 미륵의 권위를 잃으셨사옵

니다. 그래서, 그것이 주군께 온 것이옵니다.

왕건 답답하이. 왜 자꾸 일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가 말일세. 지

금쯤 석총대사께서 어찌 되셨을지 궁금하이.

태평 글세옵습니다. 목숨을 초개같이 아시는 분이시니, 그 법회에

서 무슨 일이나 없으실지.... ?

왕건 .............?


씬 9 충주 유긍달 별장(온천)


씬 10 동 집 사랑

유긍달이 수인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생각이 많다.

유긍달 곧 집사장이 도착을 할 것이다. 아주 좋은 소식을 가지고 말

이야.

수인 혼례에 관한 일이옵니다. 그것을 폐하와 광치나 어른께 의논

하시는 것보다도 왕장군님께 직접 물으시는 것이 옳지 않겠사

옵니까?

유긍달 허허, 그렇게 말을 해주어도 모르는 구나. 이것은 왕장군 혼

자 어찌해볼 일이 아니니라.

수인 하지만....

유긍달 나도 물론 너의 걱정은 안다. 하지만, 왕장군은 본래 모진 성

격이 되지 못한단다.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너의

혼례는 사실상 어렵게 되어 있어. 그래서, 내가 정공법으로

나선 게야. 알겠느냐?

수인 예, 아버님.

유긍달 지금 철원에서는 큰 법회가 열리고 있다는 구나. 야단법석이

라고 하든가.... 밖에다 단을 만들고 여는 법회야.

수인 소녀도 소문을 들었사옵니다.

유긍달 이미 인심을 많이 잃은 폐하께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만

드신 법회이니라. 늦었어. 내가 보기에는 지금의 폐하는 너무

실정이 많아. 이젠 사람들이 은밀히 다음 보위들을 생각하고

있을 게야....다음 보위.... 허허허.... 그 속에 왕장군이 있

느니라. 내 사위이고, 너의 낭군이 될 왕장군 말이다.

수인 ........

유긍달 올 때가 되었어. 집사장이 돌아오면 너의 혼례는 결정이 되는

것이다. 음.....

회심의 미소를 짓는 유긍달의 표정에서...


씬 11 왕건의 군영 외경(낮)


씬 12 동 군영 안 회의장

금식과 부장들, 그리고 유금필, 박술희, 능산,윤신달,전이갑,전의갑

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금식 이곳 전쟁은 이제 완전히 일단락이 되었소이다. 백제군들이

숨소리도 없이 조용해요.

유금필 우리도 멀리 첩보병을 보내놓고 있소이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경계를 풀어서는 아니 되겠지요?

금식 허허허, 조심할 때는 해야 할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을 때는

더러 휴식도 취해야 다음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이올시다. 왕

총사께서도 내아에서 책만 보고 계신다고 하옵니다만은....

능산 허허허, 그렇사옵니다. 술과 여흥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니,

시간이 날 때마다 책만 붙들고 계시지요.

박술희 망중한을 즐기신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전선에 나와 책을 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전이갑 사실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일이옵니다.

전의갑 그래서, 왕총사님을 보고 덕장이라고들 하시는 것 같사옵니

다.

윤신달 왜 아니겠소이까? 아무튼 이번 전쟁으로도 다시 한 번 왕총사

의 대명이 천하를 울리게 생겼소이다 그려.

전이갑 아, 덕분에 우리 이름도 따라 올라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능산 그럴 것입니다. 물론, 우리보다는 여기 금식 장군께서 더 이

름이 나시겠지만 말입니다.

금식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우리야 다 똑같이 싸웠소이다. 잘나

고 못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그 철원에

서는 대단히 큰 법회가 열리고 있다지요?

박술희 아마 지금쯤 끝이 났을 것이오이다.

금식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들이 힘들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큰 법

회를 하실 필요가 있으신가....?

윤신달 이럴 때는 그저 그래서 조정에 있는 것보다는 밖에 나와 있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총사 왕장군님도 예외는

아니지요.

모두들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다가, 문득 유금필이 묻는다.

유금필 아, 참.... 이번 전투를 하기 전에 석총 스님께서 왔다 가셨

다고 하든데.... ?

금식 아, 하..그랬었지요. 나도 그 큰스님 이야기를 들었소이다만

은, 왜요?

유금필 아, 아니올시다. 그 옛날 저희 큰 형수님을 뫼실 때 잠시 인

연이 있었지요. 그냥 그래서...허허..

박술희 맞아요. 석총 바로 그 스님이셨습니다. 에잉, 그냥 그렇게 가

셨구먼....

금식 허월 대사하고 같이 오셨는데, 아마도 그 밤으로 바로 떠나셨

다고 들었습니다. 왕총사를 잠시 뵙고 말입니다. 뭐, 궁금한

게 있는 것 같소이다.

유금필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궁금하기는요.

능산 ..........?

금식 그나저나, 곧 좋은 소식이 또 하나 생기게 되었습니다.

전의갑 좋은 소식이라니요? 무엇이옵니까?

금식 글세, 두고들 보십시다. 금방 알게 될테니까 말입니다.


씬 13 왕건의 군영

왕건의 사저이다. 왕건이 투구를 벗어 놓고, 책을 읽고 있다. 한참 책

장을 넘기는데 태평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태평 장군, 태평이옵니다.

왕건 들어오시게.

태평이 예, 대답하며 안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예를 올리고 앉는다.

태평 책을 보고 계시옵니까? 소생이 공부를 방해드렸나 보옵니다.

왕건 방해는, 무슨.... 무슨 일인가?

태평 힘겨운 전쟁이 끝났으니, 온천이라도 가서 즐기시오소서.

왕건 이보게, 온천은 무슨.... 그것보다도 부상당하고 힘든 병사들

에게 먼저 기회를 주세나. 사실 그곳이 무엇인가? 힘든 사람

들이 가서 쉬는 곳이야.

태평 그렇기는 하오나, 주군부터....

왕건 그렇지가 않아. (다시 책을 본다) 아니면, 그대도 가서 좀 쉬

고 오던가...

태평 하하하, 과연 주군이시옵니다. 그리 말씀하실 것 같아, 군사

들의 일부를 쉬게 할 수 있도록 노천욕탕을 준비해 놓으라 일

렀사옵니다.

왕건 (미소) 그거 잘하였네 그려.

태평 병사들을 먼저 쉬게 하였으니, 주군께서도 가시오소서. 아,

그래야 수하부장들이나 소생 같은 사람도 온천 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니옵니까?

왕건 하하, 사람하고는..... 기왕이면 말일세. 아예 충주 온천 쪽

에 야전의원을 만드세. 치료하고 쉬고 하는 그런 후방 의원

말이야.

태평 그리 일러 놓겠사옵니다. 하옵고, 주군과 세 부장님들과 소생

도 갈 준비를 하여 놓겠사옵니다.

왕건 하하, 못 말릴 사람이로고.... 그리 하세나.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장군, 황도에서 전령이 왔사옵니다.

왕건 전령이?

소리 칙령을 뫼셔 왔다 하옵니다.

왕건 칙령이.....?

씬 14 동 밖

전령들이 서있고 세 가신들과 금식을 비롯한 장수들이 도열해 있다.

왕건이 투구를 쓰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황제의 영을 듣고 있다. 전

령이 그 영을 큰소리로 전한다.

전령 총사 왕건은 들을 지어다. 짐은 그대가 이룩한 높은 전공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며, 치하하노라. 경은 실추되었던 제국의

위엄을 되살렸으며, 대미륵이고 마진의 황제인 짐의 영광을

드러내었도다. 총사가 이룩한 그 크고도 높은 전공의 뒤에는

충주 장자 유긍달의 도움이 컸음을 짐은 알고 있노라. 그 여

식과 혼례를 올리도록 하라. 국가와 총사를 위해 권하고 싶은

일이니라. 이미 이 일을 총사의 장인인 광치나 유천궁 장자가

알고 또한, 허락하였느니라.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은 충주

장자 유긍달에게도 그 가인을 보내어 함께 전하였느니라. 혼

례를 올린 후에는 황도로 돌아오라. 짐이 심히 보고 싶으니

라.

전령이 읽기를 마치자, 허리를 숙이고 그 두루마리를 왕건에게 전한

다. 왕건이 받고 일어나면, 금식이 떠벌려댄다.

금식 하하하, 왕총사, 감축드리옵니다.

모두들 감축드리옵니다.

왕건 이런.... 이런.....

그런 왕건의 얼굴에서 디졸브.... 유긍달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15 유긍달의 집 사랑

유긍달이 황제가 보낸 서신을 보며, 크게 웃고 있다. 수인도 미소 짓

고 있다. 그 앞에 집사가 앉아 있다.

유긍달 내가 뭐라고 하였느냐? 폐하께서는 허락 하실 것이라고 했다.

내 말대로 되지 않았느냐, 수인아?

수인 (부끄러운 듯) 예, 아버님.

유긍달 이보게, 집사장.

집사장 예, 나으리.

유긍달 같은 시기에 두 곳에 함께 연락을 주셨다고 하였네. 그렇다

면, 지금쯤 왕장군도 이러한 내용을 알게 되었을 것이야.

집사장 아마도 그럴 것이옵니다.

유긍달 하하하, 수인아, 서열이 중요한 것 아니니라. 세번째면 어떻

고 다섯번째면 어떻겠느냐? 문제는 마음이다. 과연, 누가 왕

건 장군의 마음을 잡아두고 이끌어 내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수인 예, 아버님.

유긍달 이제 살았다. 우리 가문도 살았고, 너도 살았고, 그리고 이

충주도 살았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니라. 그 점을 명심, 또

명심하여라.

수인 예, 아버님, 명심하겠사옵니다.

유긍달 이보게, 집사장.

집사장 예, 나으리.

유긍달 아랫것들에게 일러 혼례 준비를 서두르게. 그리고, 왕장군을

온천이 있는 우리 집 별원으로 모시도록 하게. 정중하게 말이

야.

집사장 예, 나으리.

유긍달 하하하.... 아, 이제 한시름 놓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나라가 허락한 혼례이니라, 폐하께서 주선을 하신 혼례야. 이

야말로, 국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하하....국혼이야...


씬 16 철원 황궁 외경


씬 17 동 황후전

황후 연화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 그 모습을 슬이가 딱한 듯 보

고 있다.

슬이 황후마마, 시원한 수정과라도 올리오리까?

연화 아니다.

슬이 무얼 그렇게 생각하시옵니까, 황후마마?

연화 몰라서 묻느냐? 참으로 나는 그 법회에서 도저히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았다. 그 얼마나 참담한 일이었드냐?

슬이 잊으시오소서, 마마. 누구도 그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사

옵니다.

연화 하늘이 얼마나 무서운 벌을 내리시겠는가? 큰스님을 쳐죽이시

고, 그 많은 스님들을.........스님들........생매장하였다

지?

슬이 그만 하시오소서, 황후마마.

연화 몸서리가 쳐져서 그런다. 폐하께서 어디 제 정신이시냐? 왜

사람들은 그런 것을 모르는지 몰라. 어떻게든, 폐하를 안정시

켜들이고 감추시고 있는 저 병을 낫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는

가 하는 말이야?

슬이 내원께서는 ..... 아마도 알고 계실 것이옵니다.

연화 아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속수무책이니라. 방법

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야. 폐하께서는 제정신이 아니시다.

마치, 흡혈귀 같지 않으시더냐?

슬이 마마......?


씬 18 동 황궁 대전

궁예가 잔뜩 굳어 있는 불쾌한 표정으로 종간과 아지태를 보고 있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아지태 폐하, 야단법석의 그 법회는 참으로 민망하였사옵니다. 신들

이 보필을 못한 죄이옵니다. 용서하여주오소서.

종간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혀 드리어서, 참으로 황망하옵니다.

궁예 ..........

아지태 노여움을 푸시고, 어리석은 백성들을 긍휼히 보시오소서.

궁예 나는 미륵이오, 미륵은 그런 일에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아.

아지태 이를 말씀이옵니까?

궁예 그때 그 가짜 미륵의 문도들이 얼마나 죽었는가? 그 가짜중들

말이야.

아지태 석총과 그 절의 주지를 비롯하여 이삼십여명이 죽었사옵니다.

궁예 어떻게......... 산채로 묻었는가? 내가 그리하라고 하였는

데...

아지태 예, 폐하. 모두 산채로 묻어 죽였사옵니다.

궁예 그래야지. 마군이 새끼들이야. (사이) 이보아,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내가 정리해놓으라고 한 글이 있지? 이리 내거라.

최응 예, 폐하.

최응이 그 기록을 가져다가, 궁예에게 올린다. 궁예가 받아 한 번 보

고는 아지태들에게 내민다.

종간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궁예 북벌에 관한 내용이오. 내가 법회에서 주장한 그 북벌 말이

야.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소이다.

종간 지금.... 부터 준비를 하시는 것이옵니까?

궁예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어차피, 발해는 무너지는 것이

고, 그 위에 거란 말이야. 거기 아율라보기라는 족장이 나보

다 선수를 치고 황제라고 하고 있어.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소이까?

종간 폐하, 물론 그 웅대하신 의지는 아오나, 지금은 나라 사정이

너무도 어려워.....

궁예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너는 오경에 능한 성인이니라. 대학에 있는 치국 편에 마땅한

구절이 있는데 한 번 읊어 보겠느냐?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

어서, 재물은 어떻다고 되어 있느냐?

최응 예, 폐하. 生財有大道(생재유대도)하니, 生之者衆(생지자중)

하고, 食之者寡(식지자과)하며, 爲之者疾(위지자질)하고, 用

之者舒(용지자서)하면, 則財恒足矣(즉재항족의)리라, 하였사

옵니다.

궁예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그것이 무슨 뜻인고?

최응 즉, 재물이 불어나게 하는 데에는 이상적인 방법이 있느니라.

우선, 생산하는 사람이 많아야 하고, 일없이 먹고 노는 사람

이 적어야 하며, 만드는 사람이 부지런하여야 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천천히 아껴서 사용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재물은 항

상 풍족하리라, 하는 뜻이옵니다, 폐하.

궁예 하하하. 너는 어떻게 글을 외우는 목소리 또한 아름답구나.

최응 항공하옵니다, 폐하.

궁예 그렇다. 고금을 통틀어 어느 전쟁이든 나라에서 만들어 뒤를

대주지는 않는다. 한곳을 점령하면, 그곳에서 무기와 식량을

거두어, 더 큰 전쟁을 하고, 땅을 넓힐 수록 더 많은 사람을

모아 더 큰 일을 한다. 과연, 어느 것이 더 나은 방법이겠는

가? 최응이 니가 대답해 보거라.

최응 예, 폐하. 후자가 낫사옵니다. 즉, 큰 땅을 도모하고, 큰 뜻

을 펼치는 것이 더 낫다는 이런 말씀이옵니다, 폐하.

궁예 허허허, (이뻐서 죽겠다는 듯).... 과연, 최응이다. 들으셨소

이까, 내원?

종간 .......

궁예 아시겠소이까, 아학사?

아지태 예, 폐하. 어찌 신이 모르겠사옵니까? 폐하의 의지를 받들어

이 영을 빠짐없이 수행해 올리겠사옵니다.

궁예 그렇소이다. 그렇게 해야 할 것이오.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

하오. 군대를 새로이 편성하고, 그 군비를 마련하고, 적진의

사정을 알아야 할 첩자들을 운영해야 하오. 이는 온 국가가

일어나 일사불란하게 밀고 가야 할 일이오.

종간 폐하, 하오나... 잠시 더 말미를 주시면, 그 준비가 조금은

수월할 것이옵니다. 요 몇 년 내내 가뭄이 겹쳐.....

궁예 최응아, 한 번 더 외워보겠느냐?

최응 예, 폐하. (외우려 하는 데)

종간 (최응의 말을 막 듯) 폐하....

궁예 사형, 언제가 내가 말했소이다. 내가 나 혼자 살자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름지기 사내란 한끼 밥을 위해 사

는 것이 아니라, 한평생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오. 지

금이 바로 그 때이오. (버럭) 사형만이라도 나의 뜻을 알아주

어야 하지 않소이까? 다들 반대해도, 사형만이라도 말이오.

종간 폐하....

궁예 이 북벌에 관한 모든 일은 내봉성령 아학사가 맡게 될 것이

오. 내원께서 도와주시구료. 아시겠소이까, 내원?

종간 폐하.....


씬 19 동 황궁 내원 일각

은부가 염상과 마주 해 있다. 긴 한숨을 지으며, 은부가 말한다.

은부 어려운 세상일세. 너무도 힘겹고, 고통스러워.

염상 .........

은부 이보게, 염부장.

염상 예, 장군.

은부 그동안 자네는 내 밑에서 참으로 많은 일을 잘 해주었어. 이

제 그만 내군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네 그려.

염상 ....... 송구하옵니다, 장군. 알고 있었사옵니다.

은부 언젠가 내원어른께서 충복에 관한 말씀을 해주셨네. 그 역할

을 말이야. 거기에는 이성도 또한 이유도 없다고 하셨지. 헌

데, 자네는 서서히 이성을 찾아가고 있었어. 그것이 자네가

떠나야 할 이유일세.

염상 장군......?

은부 두번째였던가? 자네가 폐하의 영을 받들지 못했던 것 말일세.

염상 장군, 전장터에 나가 적을 죽이는 것은 군인의 당연한 본분이

옵니다. 하오나, 바른 말을 하는 충직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

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사옵니다.

은부 나도 자네 같은 용기가 있었으면, 좋을 걸 그랬네 그려. 인사

조치를 해 놓았으니, 병부로 가게. 그곳에서 자네에게 새로운

직책을 줄 것이야. 고생이 많았네.

염상 장군,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이대로는 아니되옵니다.

은부 그만 하게.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오로지 폐하께

서만이 모르고 계시네. 나는 돌아갈 곳이 이미 없네. 내원어

른과 더불어 그분이 옛날의 참미륵으로 돌아오실 때만을 기다

릴 뿐이야. 그렇지 않으면, 암흑과 죽음만이 우리의 목적지가

되겠지.

염상 장군......

은부 어서, 가보게나. 어서!

염상 장군.......

은부 조심하게나. 많은 신료들이 실은 내원어른의 살생부에 그 이

름들이 올라와 있네. 알겠는가?


씬 20 왕건의 집 외경


씬 21 동 집 사랑

광치나 유천궁이 유씨와 오씨, 왕식렴, 다련군과 마주 앉아있다.

유장자 법회가 끝난 이후로 온 조정이 더욱 얼어붙었네. 지금쯤 다시

조회를 여실만도 한데.... 그런 말씀도 없으시고....

왕식렴 법회가 그렇게 끝이 났는데, 어찌 조회를 열지 않으시겠사옵

니까? 분명히 대소신료들을 부르실 것이옵니다.

다련군 어디를 가나 그 법회 이야기이옵니다. 승려들이 생매장 된 그

이야기 말이옵니다.

유씨 지금도 온 몸이 떨리옵니다. 믿어지지가 않사옵니다.

오씨 저도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어떻게 그렇게 무지막지하실 수

가 있사옵니까?

다련군 나주에서 올라와 딸아이의 얼굴도 보고, 법회도 보고, 겸사겸

사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속히 내려가 봐야겠사옵니다, 광치

나 어른.

유장자 실망이 크셨을 겝니다.

다련군 실망만 아니라 도대체 하나 같이 믿겨지지가 않아서....

유장자 그 법회 이야기는 그만 하십시다. 그보다도 오늘 이 사람이

중요한 말을 할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유씨 대체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시옵니까, 아버님?

유장자 (한참 뜸들이며) 에..... 뭐, 그렇게 쉬운 이야기는 아니

고.....

다련군 아, 무얼 그리 힘들어하시옵니까? 말씀하시오소서.

유장자 우리 두 사람의 사위이기도 하고, 또 여기 두 아기들의 남편

이기도 한 왕건 장군에 관한 일이올시다.

오씨 (의아해 하며)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어르신?

유장자 그렇다네.

유씨 무슨 일이옵니까?

왕식렴 무슨 일이시옵니까?

유장자 이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그것을 모르겠네. 허

나, 나는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고, 허, 이것 참.....

다련군 아, 말씀하시오소서.

유장자 폐하께서 영을 내리셨소이다. 충주의 장자 유긍달이 이번 전

투에 도움이 컸는데, 그쪽에서 혼인을 원하니 그 청을 들어주

라고 말이올시다.

그 말에 모두들 크게 놀란다.

유장자 페하께서 영을 내리시었고, 나 또한 관계된 사람으로써 허락

을 하였소이다. 이제 남은 것은 여기 당사자들의 뜻이예요.

허긴 뭐, 폐하께서 이미 재가를 하셨는데, 누가 반대를 할 수

있겠소이까만은....

다련군 허, 허, 세상에.... 나도 충주 이야기를 들었사옵니다. 허지

만, 이렇게 까지 되다니....

유씨 서방님께서 어찌 한마디 말씀도 없으시고,

유장자 이건 왕장군의 일이 아니라, 유긍달 장자가 폐하께 청해 올린

것이야.

오씨 세상에.... 세상에 이런.....

유씨 (눈물 글썽이며) 어떻게 또... 혼례를 올리신다는 말씀이옵니

까, 아버님?

유장자 그 사람 뜻이 아니다. 나라의 뜻이야. 나라의 뜻 말이다. 모

두 그렇게 알아야 하는 것이야.


씬 22 왕건의 군영 외경


씬 23 동 내아

왕건과 태평, 세가신이 함께 해 있다.

유금필 어차피, 폐하의 영이 떨어지셨사옵니다. 그리고, 방금 전 유

긍달 장자께서 사람을 보내 주군을 청하셨사옵니다.

왕건 또 한 번 난처하게 되었네. 웬 여난이 이리도 몰려든단 말인

가?

박술희 헤헤헤. 이 아우도 주군처럼 한 번 되어 봤으면, 좋겠사옵니

다. 이건 도무지 속병만 끙끙 앓고 있으니....

능산 허허, 주군께서 말씀하시는데 눈치 없는 소리하고는....

태평 하하하, 박장군님의 그 어려움은 이미 소문이 난 것 아니옵니

까?

유금필 그나저나, 혼례날을 잡으려고 주군을 청하신 모양이온데, 어

찌하실 요량이시옵니까?

왕건 어찌 한다기 보다도.... 철원에 있는 부인들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그것이 더 걱정일세.

태평 폐하께서 보내오신 말씀대로라면 이미 마님들과도 이 혼사에

관한 의논이 끝이 난 것 같사옵니다. 광치나 유장자 어른께서

도 주선을 하셨다고 되어 있지 않사옵니까?

유금필 그래도, 섭섭하실 것이옵니다. 자세한 내용과 더불어 위로의

말씀을 전하시면 어떻겠사옵니까?

태평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닙니다. 어차피, 도둑 장가를 가실 수

는 없는 일이 아니옵니까? 마님들에게 말씀 올리시오소서.

왕건 ......... (끄떡이며, 한 숨) 그리 함세.

태평 이번 일로 끝이 날 일은 아니옵니다. 아마도, 더 많은 여인들

과 사건들이 주군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것은 주군

께서 그만큼 이 시대의 영웅 중 뛰어난 분으로 보이시기 때문

이옵니다.

왕건 허허, 그만 하게. 그건 변명일세. 지금은 그저 모든 것이 난

감하기만 허이. 난감해.....


씬 24 유긍달의 집 외경

열려진 마당 안으로 가솔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씬 25 동 집 사랑

유긍달이 금식과 마주 앉아 웃고 있다.

유긍달 일이 여기까지 오기에는 그대의 공이 아주 컸네, 고맙네.

금식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장자 어른? 그만큼 어르신의 덕이 크셨

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유긍달 왕장군을 온천에 있는 내 별원으로 뫼시고자 하였네. 곧 올

것이야. 혼례 준비도 서둘러야 하겠고.....

금식 하하하.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이 온 충주 지방이 떠들썩하게

생겼사옵니다.

유긍달 그렇겠지. 이 유긍달의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일세. 그리고, 천

하의 장군 왕건이 장가를 가는 것이야. 시끄럽지 않다면, 섭

섭한 일이지. 암, 섭섭하고 말고.....

금식 그러고 보면, 오늘의 이 경사가 실은 모두 견훤이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견훤왕 말이옵니다, 하하하...

유긍달 왜, 아니겠는가? 견훤왕이 그만큼 땅을 내주고, 선물을 주었

으니, 다 이렇게 일이 잘 풀린 것이지, 암, 그렇고 말고. 하

하하...


씬 26 전주 황도 외경


씬 27 동 황궁 대전

견훤이 초췌한 표정으로 고비가 들고 온 약사발을 들어 마시고 있다.

그 옆에서 박씨가 한숨을 쉬며, 보고 있다.

박씨 왜 그렇게 옥체가 상하시도록 화를 내셨사옵니까?

견훤 .........

고비 약을 좀 드시니 어떻사옵니까? 좀 낫사옵니까?

견훤 낫고 말고 할 것이 어디 있소이까? 잠시 노여움이 과해서 피

가 솟구쳤던 모양이오. 그만 물러들 가시오. 파진찬이 와 있

을 것이오.

박씨 몸이 그러하신데 또 일을 보시옵니까?

견훤 나는 황제요. 나랏일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하겠소이까?

(큰소리로) 밖에 내관 있느냐? 파진찬을 들라 하라.

내관 (E) 예, 폐하.

견훤 어서들 가보오.

박씨와 고비가 대답하며 나가면, 최승우가 들어선다.

최승우 폐하, 좀 어떠시옵니까?

견훤 괜찮네. 잠시 좀 감정이 격했던 것이지, 뭐.

최승우 여유를 가지시오소서. 폐하께서 옥체가 상하신다는 것은 곧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옵니다. 수만의 장졸을 잃는 것보다도

폐하께서 잃으신 건강 하나가 더 큰 손실이옵니다.

견훤 고맙네. 헌데, 내 생각할수록 열이 받쳐 올라서 말일세. 어떻

겠는가, 파진찬? 저 상주 말이야.

최승우 어찌하시다니요?

견훤 밀어 부쳐야 하지 않겠는가? 중요한 시기마다 우리의 목줄을

잡아 당기니,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공격을 하면 어떻겠

는가?

최승우 예?

견훤 진나라의 시황제는 결국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죽였어.

최승우 폐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견훤 그렇게까지 하자는 것은 아니고, 저 성만은 우리 것을 만들고

싶네 그려. 얼마나 중요한 요지인가? 그런데, 이렇게 늘 당하

고만 있으니...

최승우 세상은 그러하신 폐하를 아름답게 보실 것이옵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아자개님께서는 망령이 드신 것이옵니다. 그리

헤아리시오소서.

견훤 맞아, 망령이야. 망령이 드셨어.... (다시 화가 난다) 그래

도, 그렇지. 우리의 장수들, 도대체 어떻게 그리들 못나 터졌

단 말인가? 왕건이 하나에게 그토록 절절 맬 수 있단 말인가?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이미 우리는 여러 번에 걸쳐 왕건이라는 인물

에 대해 잘 알게 되었사옵니다.

견훤 왕건이는 군사가 얼마 없었어. 그런데, 충주의 인심을 얻어

그곳 군사를 앞세워 왔어. 그것도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저

험한 조령과 죽령의 산맥을 넘어 왔단 말이야. 저 방장군 저

놈이 술을 마시는 그 시간에 말이야...아이고.....

최승우 노여움을 푸시오소서. 우리측 잘 못이기보다는, 궁예왕이 정

말로 좋은 장수를 두었사옵니다. 그것은 궁예왕의 복이옵니

다.

견훤 그래? 그건 부정할 수가 없네 그려. 궁예왕은 정말 좋은 장수

를 두었어.


씬 28 철원 황궁 외경

씬 29 동 대전

궁예가 기록을 살피고 있다. 최응이 영을 기다리고 있다.

궁예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사람들이 너를 보고 신동이라고 한다. 나는 너를 성인이라고

부르지.

최응 황공하옵니다, 폐하.

궁예 지난 번 법회 말이다. 너는 어찌보았느냐?

최응 모두들 대 미륵이신 폐하를 우러러 뵙고, 두려워하였나이다.

마땅한 일이 아니옵니까?

궁예 나는 많은 사람을 죽였어. 특히, 석총 같은 중들 말이야. 무

섭지 않더냐?

최응 그렇지 않았사옵니다. 폐하께오서는 만고에 이름을 남기실 대

제국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시옵니다. 그것을 반대하니, 죽어

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궁예 그래? 사람들은 내가 계획하는 북벌을 시기가 좋지 않다고 하

는데....

최응 안전하고 편한 시기를 따진다면, 언제 그토록 큰 일을 이룰

수 있겠사옵니까?

궁예 그렇지, 그렇지. 너는 참으로 성인이다. 하늘이 내리신 성인

이야. 그렇고 말고.... 어린 너는 내 마음을 아는데, 왜 모두

들 그런지 모르겠다.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맑은 녹차를 마시고 싶구나. 달여오너라.

최응 예, 폐하.

궁예 그리고, 조회를 열 것이다. 광평성에 일러 광치나에게 조회를

준비토록 하라.

최응 예, 폐하.

궁예 내가 다시 한 번 저들에게 북벌의 중요함을 깨우쳐 줄 것이

야. 암, 가르쳐야지. 미련하고 어리석어 모르고들 있는데, 가

르쳐주어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 83회 끝 >




첨부파일 태조왕건83.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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