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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92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1.17|조회수2,120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92회>






씬 나주 관아 외경(아침)


씬 동 관아 옥사


능산이 천부장 및 옥졸들을 데리고 먹을 것을 챙겨서 수달이가 있는 옥사로 가고 있다. 그곳에 수달은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다. 마치 참선을 하는 사람처럼... 옥졸이 투입구로 먹을 것을 챙겨 넣어 준다.


능산 이보시오, 수달장군.

수달 .........(미동도 없고)

능산 우리 총사께서 특별히 지시하시어 먹을 것을 후하게 가져 왔소이다. 따뜻한 술과 고기와 밥을 가져 왔으니 드시구료.

수달 ......(여전히 대답이 없다)

능산 이보시오, 수달장군. 비록 어제까지만해도 우리는 적이었소이다. 허나 지금은 아니오. 나 능산 또한 오래전부터 장군을 참으로 존경했소이다. 어찌되었든 먹을 것이나 드시구료.


그러나, 수달은 요지부동이다. 옥사 안을 보던 천부장이 중얼거린다.


천부장 장군, 저쪽을 보시오소서. 어제부터 넣어 주었던 밥그릇이 그대로 있사옵니다.

능산 ......이런 세상에.....

천부장 물그릇도 그냥 있지 않사옵니까?

능산 이보시오, 수달장군. 이렇게 해서 될 일은 아니올시다. 수달장군!


답답한 듯 능산이 한숨을 쉰다. 그러나, 수달의 표정은 오히려 평화롭다.


씬 동 관아 왕건의 처소


왕건이 긴 한숨을 내쉬며 고민에 잠겨 있다. 다련군과 오씨가 함께 앉아 있다가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다련군 이보시게, 사위.

왕건 예, 장인어른.

다련군 무얼 그리 고심하고 계시는가? 수달이는 포기하시게.

왕건 너무도 안타까워서 그러합니다.

오씨 강한 인물을 아끼는 것은 본래 서방님의 좋은 욕심이시옵니다. 하오나 이번에는 상대를 잘 못 고르신 듯 하옵니다.

다련군 그렇고 말고. 수달이가 누구인줄 아시는가? 바로 이곳 출신이면서 한때는 저 견훤왕도 수십 번을 쫓아가 싸우고 풀어주면서 그 마음을 얻었다네.

왕건 들었사옵니다.

다련군 저 수달이는 단 한번도 누구에게 무릎을 꿇어 본 적이 없어요. 그런 수달이가 울면서 진심으로 견훤왕을 받아 들였어요. 그것도 형제로 말이야. 돌아올 장수가 아닐세.

왕건 (한숨) 저런 장수를 다시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듣자하니 곡기까지 끊어 버렸다고 합니다.

오씨 소첩도 저 사람에 대해 오래전부터 들어왔사옵니다. 물론 대단한 장수이옵니다. 하지만 그만 미련을 버리시오소서.

왕건 미련을 버려요?

오씨 물 조차 안 마시고 있다 하옵니다. 그렇다면 이미 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옵니까? 죽기를 작정한 사람을 어찌 마음을 돌리려 하시옵니까?

왕건 아니오,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아야지. 우리에게 저 수달장군만 돌아온다면 군사 십만을 얻는 것보다도 더 큰 힘을 얻게 됩니다.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요. (일어서며) 자, 제장들이 모여 있다 하니 또 나가보아야겠소이다.


왕건이 그렇게 그곳을 빠져나가면 오씨와 다련군이 말한다.


다련군 어려운 일이지. 수달의 마음을 어떻게 돌리나? 저 고집이나 베짱이 어떤 사람인데?

오씨 소문을 들었지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 보옵니다, 아버님.

다련군 네 말처럼 미련을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고 말구.


씬 동 관아 회의장


왕건, 능산, 태평, 배현경, 홍유, 왕식렴, 염상, 김락, 김언, 천부장 들이 모여 있다. 그 중에서 김락이 장계를 왕건에게 올린다. 왕건이 그것을 펴보다가 깜짝 놀란다.


왕건 허허, 이보시오, 김락장군. 이게 무엇이오?

김락 그곳에 쓰여진 그대로이옵니다. 고이도 일대를 평정하다가 오월국과 교신하고 있는 백제군의 사신을 나포했사옵니다.

모두들 ........ (우~ 한다)

왕건 허허, 이건 단순히 문안 편지 같긴 한데.. 어찌되었든 외교문서가 아니오? 그렇다면 백제와 오월국이 오래전부터 외교를 해왔다는 이야기올시다.

배현경 놀라운 일이옵니다. 저 먼 오월국과 교류가 있었다니요?

홍유 바닷길로 따지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니올시다. 여기 황해만 가로지르면 오월국이 아니겠소이까?

왕식렴 그러하옵니다. 바닷길로 따지면 먼 거리가 아니옵니다. 일본국도 그렇고 오월국 또한 그렇사옵니다.

태평 이곳 나주가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옵니다. 이곳이야말로 백제로써는 바다 바깥의 나라들과 교류하는 유일한 곳이었사옵니다. 이 관문이 백제로써는 그만큼 중요한 곳이옵니다. 이것을 우리가 확고하게 빼앗은 것이옵니다, 주군.

김언 군사의 말씀이 참으로 맞사옵니다. 백제가 이곳을 나라의 운명을 걸어가며 되찾으려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옵니다.

염상 이 전란의 와중에서도 오월국에 사신을 교류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백제의 견훤왕은 참으로 그 안목이 넓은 사람 같사옵니다.

왕건 (끄떡인다) 그렇다고 보아야지요. 저 중원은 오랫동안 대 제국인 당나라가 다스려왔소이다. 이제 그 땅이 사분오열되고 오대 십국(五代十國)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큰 당나라가 다섯 나라 열 나라로 찢어졌다는 이야기올시다. 백제는 바로 그 중 가까운 오월국과 벌써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참으로 무서운 사실이오.

해설 오월국! 지도상으로 보면 황해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당시 중원에서 일어난 세력 중 상당히 큰 규모의 나라였다. 서기 907년에 무너진 당나라는 이때부터 절도사들이 그 세력을 바탕으로 흩어지며 많은 나라를 세우는데 오월국은 그 중 하나였다. 백제는 이미 이들과 외교를 하며 후삼국의 통일과 그 훗날까지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왕건은 그것에 대해 놀라고 있는 것이었다.

김언 우리는 백제보다도 북쪽에 위치해있사옵니다. 또한 신라보다도 더 위쪽에서 저들과 가까이 있음에도 전혀 이런 사실을 몰랐다니 안타깝사옵니다, 총사.

배현경 (한숨) 그렇소이다. 신라는 오래전부터 당나라와 외교를 하였고 이제는 백제까지도 오월국과 손을 잡고 있는데 우리 마진은 외교는 그만두고 이루기 어려운 북벌을 준비하고 있소이다. 이 얼마나 시대를 읽지 못하는 것이겠소이까?

홍유 우리 마진의 나라에서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소이까? 허허허. 배장군, 그 이야기는 그만 하십시다. 북벌, 북벌..... 얼마나 답답했으면 장군이나 나나 이 전선을 자원해서 나왔겠소이까?

왕건 제장들은 되도록이면 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삼가하십시다. 물론 폐하께서도 저 중원의 나라들과 싸우기보다는 외교로써 교류를 하는 것이 좋은 줄 아실 것이외다. 허나 나라와 나라 사이는 영원한 친구가 없는 법이올시다.

모두들 ........

왕건 지금쯤 폐하께서는 우리가 다시 보내 올린 장계를 보고 계실 것이올시다. 장계에 올린 내용대로 아직까지 백제가 완전히 이 전투를 포기한 것이 아니올시다. 지금도 이곳과 멀지 않은 저 무진주에서 견훤왕이 전력을 재정비하고 있다 들었소이다. 방심하지 말고 모두 자신들의 소임을 다 해주길 바랍니다.

장수들 예, 총사.


씬 무진주(광주)성 외경


씬 동 성 안


견훤이 안절부절을 못하며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고 있다. 그 옆에 최승우가 공직, 능애, 애술, 신덕 들이 초조해 하며 서있다.


견훤 도대체 어찌 된게야? 상주전선에 나가 있는 장수들은 어찌 된게야?

최승우 여기서 길이 머옵니다. 폐하의 칙령을 뫼셔갔으니 곧 당도할 것이옵니다.

견훤 이럴 수가 있는가? 죽은 군사만 오 백이 넘었다지? 그리고, 다치고 부상한 군사가 천 오백이나 되고? 그렇다면 나머지 삼천 군사는 어디에 있는 것이야? 우리는 오천의 대병을 끌고 나왔어.

모두들 ........

견훤 지금 수달이가 나주의 옥사에 갇혀 있다는 게야. 그런데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 군사를 재정비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군사 말이야.

신덕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물론 군사는 삼천이 남아 있사옵니다. 그러나, 한창 사기가 올라 있는 저들을 넓은 전선에서 공격하기란 불가능하옵니다. 좀 더 시기를 보시오소서.

견훤 시기라고 하였는가? 이건 전쟁이야. 언제 좋은 때만 골라서 싸울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 짐의 아우인 수달이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어. 수달이가 말이야.

공직 폐하, 심기가 불편하신 줄 아오나 잠시만 더 시간을 주시오소서.

능애 그러하옵니다, 폐하. 지금은 아니옵니다. 잠시만 더 참아 주시오소서.

견훤 (울분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전쟁은 처음이야. 이런 치욕도 처음이야. 이렇게 아파 본 적도 처음이란 말이야. 아, 수달이를 구해야 하는데..... 저 수달이를 어이할꼬.... 지금쯤 마진의 저 궁예왕이 얼마나 땅을 치며 웃고 있을꼬.... 오, 이런 망신이 있는가? 이렇게 참담한 일이 어디 있는가 말이야?


씬 철원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궁예가 홀로 술을 마시며 생각에 잠겨 있다. 가끔씩 독주를 넘길 때 마다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 궁예를 저만큼 최응이 엿보고 있다가 시선을 피하며 책장을 넘긴다. 궁예는 홀로 생각에 잠겨 있다. 가슴이 아프다. 그는 지금 아픈 것이다. 애써 아픔을 다스리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는 멍하니 초점 흐린 눈을 들어본다.


궁예 (E)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이놈의 병이 나갈 생각은 않고 갈수록 심해져.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니야. (사이) 정신이 불안해지고 머리가 멍해지는 이것이 문제란 말이야.


소리가 들려온다. 초조와 불안을 몰고 오고 정신을 압박해 오는 그 심장의 고동소리가 점점 크게 그를 옥죄여 온다. 그는 독주를 마신다. 그는 두려운 듯 주변을 돌아본다.


궁예 (E) 나는 미륵이 아닌가? 오늘날의 제국을 세운 대 미륵이야. 무엇이 두려워서 내가 이러고 있는가? 허지만 두려워. 모든 것이 다 두려워.


다시 독주를 마시려는데 술병이 비었다. 최응을 본다.


궁예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소주가 다 떨어졌구나. 이제는 하루에 한 두 되는 마셔야 되는가 보다. 내관에게 가져오라고 이르거라.

최응 예, 폐하.


최응이 나가고 궁예는 다시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럽다.


궁예 해낼 수 있을까?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저 북벌을 내가 해낼 수가 있을까? 이런 몸으로....? 어떻게....? 하지만 해야 한다. 나는 해야 해. 이 궁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이 궁예만이..... 허지만 이렇게 아픈 것이 계속되니 어떻게 할꼬.... 이 아픈 것을.......


씬 동 대전 복도


최응이 대전내관과 함께 서있고, 궁녀 둘이 다시 주안상을 들고 오고 있다. 마침 그때 복지겸이 걸어오고 있다가 마주친다.


최응 병부령이 아니시옵니까?

복지겸 오, 원봉성령이 아니시오? 폐하를 알현하려 왔소이다만은....

최응 (대전내관에게) 아뢰시지요.

내관 폐하, 병부령 입시이옵니다. (사이) 폐하, 병부령 입시이옵니다.


씬 동 대전 안


궁예 (아픔을 감추며) 들라....하여라.


최응도 들어서고, 궁녀들이 술상도 가져다 놓고, 복지겸이 예를 올리고 앉으며 장계를 올린다. 궁예가 아픔과 취기를 감추며 본다.


궁예 이건 또 무엇이오?

복지겸 나주 전선에서 올라온 장계이옵니다. (사이) 하온데 폐하, 많이.... 불편해 보이시는 것 같사옵니다만은...

궁예 내가 말이오? 허허허, 내가 왜? 나라가 안정되고 세상이 좋다하길래 낮 술 한 잔 하고 있었소이다.

복지겸 아, 예.....

궁예 (장계 펼쳐보며) 나주라.... 나주에서 왔단 말이지? (정신 차려서 보려고 애를 쓴다) 이게 뭐야? 전선은 정비가 되었는데.... 견훤왕이 아직도 무진주에서 이쪽을 노리고 있다?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허지만 다시 또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복지겸 그렇기는 하옵니다만은.... 총사를 맡고 있는 왕장군이 한동안은 그곳에 머물며 주변을 안정시켜야 할 것 같다고 되어 있사옵니다.

궁예 (생각하다가) 그렇기는 하겠지. 허지만 말이야. 한번쯤은 이곳 황도에 올라와서 짐을 좀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토록 엄청난 대 전과를 거두었는데, 그냥 이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지 않는가?

복지겸 그렇기는 하옵니다만은....

궁예 전령을 급파하시오. 그리고, 그 수달인가 뭔가 하는 포로를 데리고 즉시 올라오라고 하시오. 또, 왕장군과 특히 공이 많았다는 태평과 능산이라는 장수도 오라 하시오. 그 동안은 다른 장수가 좀 지켜도 될 일이 아니겠소이까?

복지겸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궁예 (장계 보며 미소) 그래, 나는 이 왕건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세상만사가 아주 편해진단 말이야. 이쯤해서 어떨까 저 늙은 대신들을 그만 쉬게 하고 왕건이가 시중을 맡으면 어떨까?

최응,복지겸 ........?

궁예 내 말이 어때?

복지겸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장군이야 능히 그런 재목이옵니다만은 전선의 상황이 아직도 여러 곳에서 어려우니 그것이 걱정이옵니다.

궁예 나라 살림이나 바깥의 싸움이나 그건 다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야. 왕건 아우는 능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고.... 아무튼 이보시오, 병부령.

복지겸 예, 폐하.

궁예 나주에는 전령을 보낼 것이 아니라 경이 직접 다녀오시구료. 가서 공을 치하하고 함께 오시구료. 아시겠소이까? 그것이 내가 아우에게 보내주는 성의라는 것을 말씀해주시구료.

복지겸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리 전해 올리겠사옵니다.

궁예 허허허, 너무 못 보았어. 조금만 떨어져도 보고 싶어, 그 아우는 말이야. (하다가 또 가슴이 아프다)

두사람 .......?

궁예 그만 가봐. 다들 나가 봐.


복지겸과 최응이 대답하며 얼른 그 자리를 나간다. 궁예는 한동안 그렇게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


궁예 (절규처럼) 아니돼. 이래서는 아니되는데.... 아니되는데....


씬 황후전


연화가 놀란 눈으로 진내관을 보고 있다.


연화 병부령이 전선으로 떠났어?

진내관 그러하옵니다. 아마도 왕건장군을 뫼시러 간 듯 하옵니다.

연화 나주전선이 회복되었다니 왕장군이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겠지. 하지만 나라의 국방을 맡아보고 있는 대신을 거기까지 보낼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진내관 폐하께서는 아마도 왕장군에 대해 형제분의 우애를 보여드리려고 그리하신 것 같사옵니다.

연화 (생각하다가) 요즘 들어서는 하루 종일 독주를 드신다면서?

제조 그리 듣고 있사옵니다, 마마. 아마도 환후가 조금씩 더 깊어지시는 것 같다 하였사옵니다.

슬이 듣자하니 수라청에서 조금 전에도 어주상이 다시 올라갔다 하옵니다. 오늘 벌써 세 번 째라고 들었사옵니다.

연화 (한숨)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단 말인가? 이렇게도 방법이 없단 말인가? 이 나라에 그렇게 용한 의원이 없단 말인가?

진내관 그보다도 황후마마, 더 걱정스러운 일은 마마의 아버님이신 강장자 대부어른께오서..... 공개적으로 내봉성령 아학사와 자주 어울린다는 것이옵니다.

연화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진내관 나라의 형편이 어렵고 백성들과 신료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옵니다. 이럴 때에 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하고 있는 분들이 특별히 어울린다는 것은 남들의 눈에 드러나는 것이 되옵니다.

연화 당연한 이야기이지. 도대체 아버님이 언제부터 그리되셨단 말인가, 왜?

진내관 한 번 살펴서 은밀히 물으시오소서, 황후마마. 자뭇 염려스러운 일이옵니다.

연화 ......... 그래, 아버님께서 말이지.


씬 아지태 집 외경(밤)


씬 동 집 사랑


아지태, 강장자가 마주해 있다. 임춘길도 그 옆에 앉아 있다.


아지태 병부령이 나주전선으로 떠났다고 하였는가?

임춘길 예, 어르신.

강장자 아니, 거기는 왜요?

임춘길 폐하께서 특별히 저들의 노고와 공을 치하하시고 폐하의 마음을 전하시기 위해서라고 하였사옵니다.

아지태 이러다가는 정말로 왕장군의 세상이 될 것이오. 우리들이 좀 더 준비를 앞당겨야 하겠소이다.

강장자 어떻게요?

아지태 폐하의 환후는 이미 돌이킬 수가 없소이다. 그런데 왕건이가 폐하 대신 모든 것을 챙기기 시작했소이다.

강장자 아니되지요. 그건 절대로 아니되지요.

아지태 나는 지금 폐하께 나라 안의 많은 기구를 바꾸고 또한 군의 체제도 바꾸자고 할 참이외다. 물론 지금 우리 청주인들의 많은 수가 조정 곳곳에 들어가 있소이다. 이제부터는 집중적으로 군의 체제를 바꾸면서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끌어 들여야 할 것이외다. 지금은 오로지 힘! 힘 뿐이오. 군대 말씀올시다.

강장자 그건....그렇지요.

아지태 여기 의형대를 맡고 있는 (임춘길 보며) 이 사람이 곧 군부로 옮겨가도록 손을 쓰고 있소이다. 그리고, 내봉성에 내가 데리고 있는 입전과 신방이라는 자들을 전진 배치시켜서 내군과 의형대에 배속시킬 것이외다. 군대와 법, 이 두 가지만 가지면 엄청난 힘이 되지요.

강장자 (무릎 치며) 과연.... 과연 그럴 것이외다. 힘과 법이 있는데 무엇이 안되겠소이까? 암요.... 아무튼 아학사는 대단하시오이다.

아지태 하하하, 무슨 말씀을... 어찌되었든 우리는 찰떡 같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 길이 내원이나 왕장군 사이에서 우리가 살아 남는 길이예요.


씬 어느 집 밀실


어둠 속에서 입전과 신방이 술을 마시고 있다. 그들은 두려운 표정이다.


입전 이보게, 신방이. 지난 번에 말일세 아학사 어른께서 나에게 정부의 새로운 조직에 대해 말씀을 하시더구먼.

신방 나도 들었네.

입전 헌데 말일세. 지금 의형대에 있는 임춘길 대령을 군부로 보내려고 하시더구먼.

신방 그 뿐인 줄 아는가? 상당한 청주인들의 부대를 따로 모으고 있네. 나는 두려우이. 이런 것들은 세상에 오래 감추어질 일이 아닐세.

입전 그러니까 자네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 폐하의 관심법이 무섭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기에 걸려 죽었는가 말일세.

신방 지금 아학사 어른께서 우리 청주인의 나라를 생각하시는 것 같아.

입전 (놀라며) 그건 무슨 말인가?

신방 처음에는 사실 왕건 장군을 업고 새로운 나라를 생각하셨는데 그 일이 여의찮아 이번에는 태자마마의 장인이신 강장자를 택하신 것 같네 그려.

입전 온 나라를 감찰하는 내원과 내군의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네.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삼족이 아니라 구족을 멸할 것일세.

신방 그러게 말일세. 주의해야 하겠네. 되도록 아학사 어른 주변을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 아니겠는가?

입전 그럴 것이야. 나도 그리 생각한다네. 허허, 이것 참....


씬 황궁 내원


종간, 은부가 마주해 있다.


종간 아지태가 요즘 들어서 부쩍 강장자와 가까이 하고 있다?

은부 예, 내원어른. 아무래도 뭔가가 있는 것 같사옵니다만은...

종간 허허, 아지태는 모르겠지만 강장자는 아니야. 그만한 머리가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일세.

은부 하지만, 왜 그렇게 갑자기.....

종간 주책 맞은 늙은이가 아지태에게 기대어 계속 권력의 맛을 보고 싶은 것이겠지. 그것은 그리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야.

은부 하오나, 내원어른. 아지태는 이미 상당수의 청주인들을 정부 곳곳에 배치하였고, 또 뭔가 새로운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만은..

종간 물론 아지태는 요물일세. 그 깊이나 속을 알 수가 없어.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그 자에게 그렇게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야. 계속 방심하지는 말고 지켜 보세나.

은부 알겠사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왕건이가 문제야. 저 나주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그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었어. 폐하께서는 이제 왕건이라는 이름을 하루라도 듣지 못하시면 사시지를 못하시는 분이 되셨네.

은부 ........

종간 이것이 더 걱정이야. 열 명의 아지태 보다도 소리 없이 숨어 있는 저 왕건이 한 사람이 걱정이란 말일세. 그쪽도 절대로 긴장을 놓지 말게. 절대로....


씬 왕건의 집 외경


장수장이 가신들과 함께 집안을 경계하고 있다.


씬 동 집 사랑


두 유씨가 왕신과 마주해 있다.


왕신 폐하께서 병부령을 형님께 보내셨다 하옵니다.

유씨 무엇 때문입니까?

왕신 워낙 큰 전공을 세우신지라 대신을 보내시어 축하하시고 상을 내리려는 것이라 하옵니다.

수인 기쁘기도 하지. 일찍이 폐하께서 다른 장수들에게 이만큼 정성을 쏟은 적이 없지 않사옵니까?

왕신 그렇사옵니다. 병부령을 직접 보내시어 형님을 잠시 황도로 돌아오시게 하신다 하옵니다.

유씨 그렇게까지 배려를 하셨단 말입니까? 고맙기도 하시어라.

수인 그렇사옵니다, 형님. 폐하께서는 이 세상에 그 누구보다도 서방님을 아끼시고 총애하신다고 들었사옵니다.

유씨 폐하와 서방님은 의형제분이실세. 두 분이 형제분이란 말씀일세. 어찌 아니 그러시겠는가?

수인 허면 나주 형님께서도 함께 오시는 것이 옵니까?

유씨 왜 아니 그렇겠는가? 뫼시고 갔으면 같이 오시겠지.

수인 .......?


씬 바다(낮)


배가 가고 있다. 그 배에는 복지겸이 몇몇 부장들을 데리고 가고 있다. 갈매기가 하늘을 덮고 있다.


씬 나주 관아 외경


씬 동 관아 안


장수들과 오씨, 다련군들이 다 모였다. 이들은 모두 만두국을 들고 있다. 떡과 더불어 나박김치와 동치미를 놓고 술까지 마시고 있다.


왕건 나주전투를 끝내고 우리는 여기서 또 한해를 맞았소이다. 새해 첫날에 이렇게 만두국을 먹고 있으니 감회가 또한 새롭소이다. 오늘 이 만두국은 나의 내자가 솜씨를 발휘하여 정성으로 끓인 것이외다. 많이들 드시오.

오씨 많이들 드십시요. 그리고, 모두들 건강하십시요.

배현경 만두국이라, 참으로 고향 생각이 나옵니다, 총사.

홍유 왜 아니겠습니까? 허지만 이렇게라도 타향에서 만두 구경을 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이까?

김락 그렇고 말고요.

왕건 허허허, 자, 들 드십시다.

왕식렴 고맙사옵니다, 형수님. 잘 먹겠사옵니다.

모두들 .......(웃음)

능산 형수님, 만두국도 맛이 있어 보이지만 이 나박김치와 동치미는 한결 입맛을 돋우고 있사옵니다. (먹어 보며) 아이구, 참 시원하옵니다.

오씨 호호호, 많이 드시어요, 장군.

해설 만두국과 김치, 만두의 역사는 저 삼국지연의에 잘 소개되어 있다.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오다가 풍랑을 만났는데, 사람의 머리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였다 한다. 이때, 제갈량은 사람을 죽일 수 없으니 그 형상을 대신하라 하여 생겨난 것이 만두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조선조 영조 때에 그 기록이 보이지만, 실은 한참 전부터 즐겨왔던 것 같다. 그리고, 김치는 참으로 그 역사가 오래여서 고조선시대부터 우리의 식단에 올랐던 것 같다. 옛날에는 지((漬)라고도 해서 짠지, 신건지, 젓국지 등으로 불리어오다가 신라시대에 이르러 나박김치와 동치미가 생겨나면서 더욱 발전했다는 것이다.

왕건 (맛있게 먹다가) 참, 수달장군은 어찌 되었는가? 뭐라도 좀 갖다가 전하였는가? 그래도, 오늘이 설인데....

능산 소장이 여러 번 가보았으나 요지부동이옵니다.

다련군 그 사람은 안된다고 하였소이다. 될 사람이 아니예요. 어서 음식이나 계속 드십시다.

태평 드시지요, 총사.


그러나, 왕건은 목이 메인다. 우울하고 답답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기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동 옥사


천부장이 옥졸들을 데리고 옥사 안의 수달에게 권하고 있다.


천부장 이보시오, 수달장군. 그래도 오늘이 설이올시다. 총사께서 내리신 음식인데 제발 한 수저라도 들어보시구료.

수달 .......

천부장 이보시오, 수달장군.


그러나, 수달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씬 무진주 성 안


견훤이 제장들을 돌아보고 있다. 최승우, 능애, 공직, 신덕, 애술, 추허조, 최필, 지훤 들이 함께 해 있다. 견훤은 계속 참담하다.


추허조 폐하, 폐하의 영을 받들어 신들이 돌아 왔사옵니다. 저간의 사정을 다 들었사옵니다.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견훤 ....... (눈을 감고 있다)

최필 폐하, 수달장군이 아직도 나주 군영에 갇혀 있다 들었사옵니다. 영을 주시면 군사를 몰아 구해오겠사옵니다.

애술 신을 선봉에 세워주시오소서. 반드시 구해오겠사옵니다. 그리해주시오소서, 폐하.

신덕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전쟁이란 감정에 의해서 좌우 돼서는 아니되옵니다. 비록 장수들이 보강되었다고는 하나 지금으로써는 분명 무리이옵니다.

추허조 아직도 우리에게는 삼천의 대병이 있소이다. 무엇이 무리란 말이오? 수달 장군은 폐하의 의제이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구해내야 하오.

공직 그렇기는 하나, 추장군. 적의 사기는 높고 우리는 그렇지가 못하오이다. 뿐만 아니라 그 많던 해군력을 다 잃었소이다. 힘겨운 전투가 될 것이외다.

최승우 폐하, 나아가고 멈춤에는 다 때가 있사옵니다. 지금은 한숨을 돌려 충분한 휴식과 준비를 갖추어야 할 시기이옵니다. 안타깝고 억울하기는 하오나 황도로 돌아가시오소서.

견훤 (벌컥) 돌아가? 황도로 돌아간단 말인가? 그게 지금 무슨 소리인가? 저 나주에 내 아우가 붙들려 있어. 목 메이게 나를 찾고 있단 말이야. 내 아우를 두고 간단 말인가? 내 아우를.....?

최승우 폐하의 그 상심을 어찌 신이 모르겠사옵니까? 하오나, 형편이 그리 되어 있사옵니다. 살펴 헤아리시오소서.

견훤 그럴 수 없어.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이 치욕은 반드시 갚아 줄 것이야. 그리고, 수달을 구할 것이야. 그것은 형제로써의 의무이고 또 이 나라 황제로써 체신이야. 그럴 수는 없어. 다시 군사들을 점고 하라. 공격 준비를 갖추고 형세를 살펴라. 나는 절대로 이대로는 돌아가지는 못해. 알겠는가, 제장들?

제장들 예, 폐하.

견훤 갈 수가 없어. 이대로는 도저히 돌아 갈 수가 없어.


씬 나주 관아 뜰


왕건이 부복해 있고, 복지겸이 칙령을 읽고 있다. 모든 제장들과 군사들이 가득히 도열해 있다. 그 한쪽에 다련군과 오씨도 보인다.


복지겸 (읽는다) 내 사랑하는 아우, 총사 왕건은 들을 지어다. 짐은 경의 놀라운 대 전과에 대해 감축하노라.

모두들 .......

복지겸 (계속) 경은 이번 전장에 있어서도 어김없이 대 마진제국의 위엄과 권위를 세상에 또 한 번 드러내었노라. 이는 황제인 짐의 마음과 장군으로써의 경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임을 또 한 번 세상에 드러낸 쾌거였노라. 아, 아, 경이 아니면 누가 이러한 역사를 이룰 것인가? 전투에 참여한 장수들을 모두 등급에 따라 포상할 것이며, 또한 특히 큰 전공을 세운 군사 태평과 장군 능산에게 일등의 벼슬을 더하고 그에 따른 상급을 하사할 것이니라. 총사는 두 공신과 함께 포로로 잡은 적장을 대동하여 귀환할지니라. 병부령 복지겸을 보낸 것은 짐의 큰 마음을 속히 보여주고 싶었음이니 참고하여 서둘지어다.


복지겸이 예를 다하여 읽기를 마치고 장계를 왕건에게 전하여 준다. 왕건이 그것을 받고 일어선다.


왕건 폐하, 망극하옵니다.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폐하.

모두들 황제 폐하 만세!!..... (계속) 만세, 만세!!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디졸브.


씬 동 관아 왕건의 처소


왕건과 복지겸, 오씨, 다련군이 함께 주안상을 놓고 있다.


왕건 전선이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올시다. 지금은 돌아갈 때가 아닌데 오라 하시니 답답하오이다.

복지겸 어쩌겠습니까? 폐하께서 하시는 일이올시다.

왕건 물론 병부령께서 이렇게 직접 내려오셨으니 이 사람 또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만은 전선이 아직도 불안한지라.....

오씨 하지만 폐하께서 얼마나 기쁘시면 이런 사정을 다 아시면서도 잠시 다녀가라 하시겠사옵니까? 응당 따르셔야 할 줄로 아옵니다.

다련군 하지만,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한 철원보다는 그저 내처 이곳에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복지겸 하하하, 그렇사옵니다. 철원은 늘 불안하지요. 그리고, 어렵구요. 폐하께서도 많이 지쳐보이셨소이다.

왕건 그러시겠지요. 환후는 좀 어떠하시오이까?

복지겸 나아질 병이 아니질 않소이까? 금강산의 도인을 부르러 갔던 박유라는 사람도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소이다. 내원이 비록 여러 모로 챙기고는 있으나 의원다운 의원을 구할 수도 없고.... 그렇소이다.

다련군 참으로 큰 일이오. 그나마 요즘에는 사람을 많이 안 죽이시는 모양입니다?

복지겸 모를 일이지요. 언제 또 어떻게 일이 터질 지는.... 왕총사.

왕건 말씀하시지요.

복지겸 폐하께서는 장군을 옆에 가까이 두고 싶어하십니다. 저에게 이런 말씀도 하셨소이다. 왕총사에게 시중을 맡기면 어떠냐고 말입니다.

모두들 .......(놀란다)

왕건 소장에게 시중을 말입니까? 아니, 시중이라면....?

복지겸 지금까지 신료 중 최고의 벼슬을 광치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시중으로 부르신 듯 합니다. 신라에서도 대신들 중 최고의 벼슬을 시중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고보면 머지않아 조정의 직제도 좀 변할 것 같은 느낌이고....

왕건 그래도 그렇지. 이 사람에게 시중이라니, 당치도 않소이다. 헌데 그 북벌 준비는 어찌되고 있습니까?

복지겸 형식 뿐이올시다. 사방이 전장터인데 그걸 다 놓아두고 어떻게 북으로 군사를 몰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다 욕심 뿐이지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들입니다.


왕건은 고개를 끄떡이며 한숨을 쉰다.


왕건 아무튼 칙령을 뫼셨으니 올라갈 수 밖에요. 허면 어찌한다....

복지겸 잠시 이 전선에 있는 장수들을 그대로 두시지요. 총사만 다녀오면 될 일이 아니겠소이까?

오씨 그렇습니다. 소첩도 잠시 더 이곳에 있겠사옵니다. 아직 확실하게 매듭을 지은 전쟁이 아니옵니다. 아버님을 돕고 호족들과 좀 더 연계하여 민심을 안정시키는데 소첩의 할 일이 있을 것 같사옵니다.

복지겸 허허, 이런. 그러고 보면 부인께서도 결국 갑옷만 안 입으셨지 훌륭하신 장수의 한 분이 아니십니까? 장하십니다.

다련군 허허허, 왜 아니겠소이까? 딸 때문에 오래전부터 이 집안은 남아 있는 게 없소이다. 돈을 내라 곡식을 내라 사람들을 다독거려라. 아이구, 말도 마시오.

모두들 .......(웃는다)

왕건 페하의 영을 받았으니 촌각도 지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인이 좀 준비를 해주시구료. 자, 우리도 서두르시십시다.

그들 예.


씬 나주 포구


전함들이 즐비하게 바다에 떠있다. 그 많은 장수들과 장졸들이 도열해 있고, 그 사이를 왕건과 태평, 능산, 그리고 복지겸이 오고 있다. 그들 뒤로 포박된 수달이 말없이 끌려오고 있다. 선창에 닿아 있는 배 위로 왕건이 오르는데, 왕식렴이 묻는다 .


왕식렴 형님, 철원으로 가셨다가 쉽게 오시지 못하시면 어찌되는 것이옵니까?

왕건 쉽게 오지 못하다니, 왜?

왕식렴 폐하께서 부르실 때에는 그만한 일들이 또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왕건 허허, 어찌하겠는가? 일단 가서 폐하를 뵙고 다시 조정들을 해야겠지. 자, 여러분 잠시 다녀오리다.

모두들 조심해 다녀오시오소서.

오씨 형님들에게도 안부 잘 전해주시오소서.

다련군 조심해서 다녀오시게.


왕건이 그렇게 배 위로 오른다. 그리고, 뱃전에서 이들을 보다가 뒤늦게 오르고 있는 수달과 호송 병사들을 본다. 천부장이 그 수달을 호송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왕건이 눈을 감는다. 그리고, 애써 외면하듯 하늘을 본다. 복지겸도 잠시 수달을 보고 있다.


천부장 죄인을 저쪽으로 데리고 가거라.


수달은 그렇게 소리 없이 끌려간다. 왕건이 그것을 보다가 다시 한숨을 쉬며 하늘을 본다.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소리 돛을 올려라. 선군들은 배를 저어라. 배를 출항시켜라!


그 혼란과 어수선함 속에서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배를 움직이는 북소리들이 규칙적으로 울려오기 시작한다. 돛폭이 오르고, 배는 바다로 나아간다. 점차 멀어지는 포구의 모습에서...


씬 동 포구


왕건의 배가 멀어지고 있다. 오씨는 여전히 아쉬운 듯 보고 있고, 장수들 중 배현경이 김락에게 중얼거린다.


배현경 왕총사가 저렇게 철원으로 가고 있소이다만은 왠지 난 불안하오이다. 철원 얘기만 나오면 불안해요.

김락 허허허, 왜 아니겠소이까? 그나저나 저 수달 장군이 안되었소이다. 물과 음식을 끊은지 꽤 여러 날 되었다고 하던데...

홍유 (끼어 들며) 같은 군인이지만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오. 역시 사내 중에 사내라고 할 수 있겠소이다. 대단한 사람이였어요.

염상 그 때문에 견훤왕이 아직도 물러가지 않고 무진주 성에서 다른 전선의 장수들까지 불러들이고 군사를 점고 하고 있다 들었소이다.

다련군 그럴 겝니다. 수달장군과 견훤왕은 형제올시다. 형제말입니다. 저렇게 수달이가 철원으로 끌려갔으니 이걸 알게되면 아마 견훤왕이 가만히 안 있을 겝니다. 그게 걱정이 됩니다.


씬 그 바다, 왕건의 배


왕건은 뱃전에서 복지겸과 함께 바다를 보며 서 있다. 그 한쪽으로 태평과 능산이 함께 해 있다.


복지겸 아까 그 죄인이 수달이라는 장수인 모양입니다만은...

왕건 그렇습니다.

복지겸 능산 장군이 잡았다 하셨소이까?

능산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적장이기는하나 아까운 장수올습니다.

태평 그렇습니다. 기왕이면 저렇게 끌려가기보다는 전선에서 다 끝을 보았어야 되는 일이었는데....

능산 소장도 그 점이 마음에 걸리오이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잘 압니다. 군인은 군인답게 죽는 것이 최고의 복이지요. 수달을 저렇게 끌고 가는 것이 가슴이 아프오이다.

복지겸 이미 곡기를 다 끊었다고 들었습니다만은....

왕건 그만 이야기하십시다. 우리 또한 많은 싸움터를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언제 저런 운명이 될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저 사람을 인간답게 대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인 것 같습니다.


씬 동 배 안 옥사


수달이 창살 너머의 물소리를 듣고 있다. 석양 빛 그 나무 창살에 걸려 있다. 수달이 긴 한숨을 쉬며 담담히 중얼거린다.


수달 결국 이렇게 인생이 막을 내리고 있구나. 이제 내 나이 오십이 가까운데 그 끝이 참으로 허망하도다. (사이) 그래, 산다는 것이 별 것이겠는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행히 좋은 사람 만나 의리로써 어우러져 살다가 의리로써 죽음을 맞으러 가는데 무엇이 아쉬울 것이 있겠는가?


파도 소리가 계속된다. 그 창살에 석양을 보던 수달이 한참만에 다시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린다.


수달 생각해보니, 사람 한평생이 너무도 짧구나. (사이) 폐하, 영원한 나의 주군이시며 형님이시여. 소신을 용서하시오소서. 폐하를 욕되게 하고 할 일을 다 못하고 가고 있는 이 수달을 용서하시오소서. 용서하시오소서, 폐하.


그 물소리, 그 물소리에서...... 견훤의 소리가 들려온다.


견훤 (E)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씬 29 무진주 성 안


견훤이 눈을 크게 뜨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능애를 보고 있다.


견훤 이봐라, 아우야.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뭐라고 하였어?

능애 폐하, 수달장군이 적함에 실려 금성 포구를 떠났다 하옵니다.

견훤 금성을 떠나.....? 수달이가 적함에 실려갔어?

능애 예, 폐하. 방금전 그런 보고를 받았사옵니다.

견훤 (비틀거리며) 수달이가..... 수달이가 끌려갔어?......... 그렇다면 궁예왕이 있는 철원으로 끌려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능애 그런 것으로 아옵니다. 참으로 원통하옵니다, 폐하.

견훤 아니된다. 이렇게는 아니된다. 수달을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그 사람은 내 아우란 말이다. 내 아우.....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들었는가? 수달이가 끌려 갔다네. 저들의 배에 태워져서 저들의 황도 철원으로 갔다는 게야. 들었는가, 들었어?

최승우 예, 폐하. 참으로 애통한 일이옵니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이럴 수는 없어. 동원령을 내리게. 전군에 동원령을 내리도록 해. 저 금성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겠어. 아니, 금성은 물론이고 마진을 공격할 것이야. 저 철원으로 들어갈 것이야. 내 말이 들리는가? 동원령을 내리게. 마진으로 갈 것이야.


견훤의 격노한 그 표정에서......


< 92회 끝 >




첨부파일 태조왕건92.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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