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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00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1.17|조회수4,650 목록 댓글 3

태조 왕건 <제 100회>





씬 바다(새벽)

 

엷은 바다 안개 속으로 왕건의 배가 다가와 지나쳐간다. 그 배에서 왕건과 더불어 태평, 능산, 유금필, 천부장 들이 떠오르는 아침의 밝은 여명을 보고 있다.  

 

태평    주군, 무얼 그렇게 하염없이 보시옵니까?

왕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이 바다 냄새를 맡으면 세상이 편안해져.

유금필  허허허, 그렇사옵니까? 주군께서는 바다를 고향으로 하고 계시니 당연하실 것이옵니다.

왕건    (끄떡인다) 정말 그러하이.... 한동안 떨어져있으면 바로 또 그리워지는 것이 이 바다야.

 

그들은 그렇게 다시 햇살이 떠오르는 동쪽을 보고 있다.

 

왕건    다와 가는 모양일세. 이곳 정주를 우리가 벌써 몇 번째 오가는지 모르겠네 그려. 참으로 인연이 깊은 곳이야.

능산    그 인연으로 하여 이곳에서 큰 형수님을 만나시지 않으셨사옵니까?

왕건    그렇네 그려. 그때가 벌써 옛날 같은데.... 세월 한 번 빠르이. 어느새 나도 삼십대 중반을 훨씬 넘기고 있어. 무상한 것이 세월이야.....

해설    왕건이 나주전투를 모두 마무리 짓고 다시 황도로 돌아가고 있다.  

 

끄떡이는 왕건의 그 표정에서 인서트로 넘어가며, 해설이 흐른다.

 

씬 인서트/ 신라 황실

 

해설    이 무렵 후삼국의 모든 전선은 백제와 태봉의 그 치열했던 나주 전투가 일단락 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전 지난 그 해에는 진성여왕에 이어 십오년간 재위했던 신라 제 오십이대 효공왕이 죽고 신덕왕이 그 뒤를 이어 즉위를 하였다. 효공왕은 등극 이듬해인 898년에 (지도 보여주며) 궁예에게 패서도(浿西道)·한산주(漢山州) 관내의 30여 성을 빼앗기면서 고려가 일어나게 하였고,  900년에는 남서쪽의 땅을 견훤에게 크게 잃으면서 또한 후백제가 태동하게 하였다. 그리고, 904년에는 북쪽의 땅을 또 다시 궁예에게 침략당하면서 신라의 영토는 급격히 축소되어갔고, 907년에도 견훤에게 일선군(一善郡) 이남의 10여 성을 계속해 넘겨주면서 그 엄청났던 신라의 영토와 영광을 한꺼번에 잃어간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죽으면서 박씨 성의 신덕왕에게 보위를 넘긴 것이다. 이 일은 정치사적으로 볼 때 김씨가 박씨에게 왕통을 넘긴 이례적인 사건에 속한다. 다시 말한다면 신라는 이 무렵에 와서 더욱더 정정이 불안하고 귀족들간의 대립과 암투가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망국 현상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씬 그 바다(정주 포구)

 

배가 포구에 닿고 있다. 이미 포구에는 사람들이 왕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천궁과 더불어 왕식렴 형제, 그리고 유씨, 수인, 장수장 들이 함께 해 있다. 왕건과 함께 태평, 능산, 유금필 들이 다가와  예를 올린다.

 

왕건    (유천궁에게) 아니, 장인어른께서 손수 이렇게 나오셨사옵니까?

유천궁  자네가 오는 물때를 알고 있었네. 오느라고 고생 많았네 그려.    

왕건    어인 말씀을.... 오, 아우들도 나와 있었구먼.

두형제  예, 형님.

왕건    부인들께서도 여기까지 오셨소이까?

유씨    서방님께서 오신다기에 모처럼 친정집에 인사도 드릴 겸 아우와 함께 왔사옵니다.

수인    반갑사옵니다, 서방님.

왕건    모두들 건장한 모습을 보니 아주 좋습니다.

유천궁  자, 들 집으로 가세.

 

그들 그렇게 움직이면서 함께 길을 가는 그 모습에서...

 

씬 유천궁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왕건을 비롯해 유천궁, 유씨, 수인, 태평, 능산, 유금필, 왕식렴, 왕신 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유천궁  나주에 있는 둘째 부인이 산달이 가깝다 들었네. 그렇지 않아도 손이 매우 늦었다 생각했는데 참으로 반가운 소식일세.

왕건    예, 장인어른.

유천궁  우리 아이가 보란 듯이 자네 집안의 대를 먼저 이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참으로 안타까우이.

유씨    .......(미안스럽다)

유천궁  너무 섭섭해하지 말게나. 이 아이는 원래 몸이 좀 약해놔서.... 허지만 어쩌겠는가? 건강이란 하늘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딸아이도 자네를 닮은 아들을 분명히 낳아 줄 것일세. 

왕건    허허허, 장인어른, 저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누가 뭐라고 하여도 집안의 제일 큰 안주인이옵니다. 저는 그것을 잊지 않고 있사옵니다.

유천궁  고맙네.

유씨    (말을 돌리려는 듯) 차가 다 식사옵니다. 어서 드시오소서.

왕건    부인도 드시구료.

유씨    예. (눈치를 보며) 여기 충주부인도 자나깨나 서방님 생각뿐이었사옵니다. 한 말씀 해주시오소서.

왕건    허허허, 부인께서는 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주십니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허허허...

수인    공연히 제가 부끄러워지옵니다, 서방님.

 

모두들 가볍게 웃는다. 분위기를 바꾸듯 유금필이 묻는다.

 

유금필  어르신, 요즘 황도의 사정은 어떠하옵니까?

유천궁  (생각하다가) 아주 시끄럽네 그려.

능산    무엇 때문에 그러하옵니까?

유천궁  내봉성의 아지태가 모반을 하려다가 발각 되었다네 그려.

모두들  (크게 놀란다) 아니... ?

왕건    아지태가 모반을 하다니요? 언제 그런 일이 있었사옵니까?

유천궁  바로 얼마 전일세. 지금 내원에서 조사중인데, 아마도 빠져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아. 모든 게 사실로 드러나고 있어.

왕건    그랬사옵니까? 아지태는 ...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지요.

유천궁  그렇지만 현실은 자꾸만 꼬이고 있네. 내용이 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폐하께서는 오히려 내원의 조사를 마땅치 않아 하시네.

유금필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왕식렴  그런 일이 있었사옵니다. 역모 사건을 밝혀내기 위해서 잠시 법을 엄히 적용하였는데 폐하께서 그걸 아시고 못하게 영을 내리셨사옵니다.

왕건    폐하께서 어째서......?

태평    (끄떡이며) 주군, 아지태가 누구이옵니까? 그 사람은 지금까지 폐하의 분신으로 살아온 사람이옵니다.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모든 것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온 사람이 아지태이옵니다.

유천궁  그렇다네. 바로 그것이야. 아지태가 반역을 꾀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이것은 바로 폐하 자신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무너뜨리는 일이 되는 것일세. 일이 아주 묘하게 되었어.

왕건    .......(끄떡인다) 허지만 역모 사건이 아니옵니까? 나라를 엎으려는 역적들의 음모이옵니다.

유천궁  어쨌든 그 사건은 이미 내원의 손을 떠난 것 같으이. 조사 자체가 지금 엉거주춤 중지되어 버렸네. 그 때문에 모두들 자네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네 그려. 자네가 현명하게 처신해야 할 것이야.

 

끄떡이는 왕건의 표정에서 디졸브....

 

씬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궁예가 소주를 들어보다가 이내 입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그 잔을 든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손을 고정시키려 애를 쓰는 궁예.

 

궁예    (E) 이게 무엇이야? 내 손이 떨고 있지 않는가? 손까지 덜덜 떨리고 있어. 허허허, (그렇게 술을 마시며) 저주로다. 이 술은 악마의 것이야.

 

그리고, 궁예는 한참 생각에 잠긴다. 그 앞에 놓인 쇠방망이를 천천히 들어 다시 만져본다. 그때 대전내관의 소리가 들린다.

 

대전내관        (E) 폐하, 원봉성령 입시이옵니다.

궁예    오, 그래 최응이가 왔나? 들라해라.

 

잠시 후 최응이 들어와 예를 올리고 공손히 한쪽에 앉는다. 궁예가 미소를 짓고 보다가 불쑥 묻는다.

 

궁예    얘, 최응아. 그 아지태 사건은 좀 알아보았느냐?

최응    예, 폐하.

궁예    지금쯤 무엇이 어찌 돌아가고 있느냐?

최응    역모에 관련된 주모자들은 일단 구금되어 옥사에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도리질한다) 아지태가 나를 죽이려 했다..... 정말일까, 최응아?.....(사이) 다른 사람도 아닌 아지태가 왜 그랬을꼬? 아지태가 말이야.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퍼 준 사람이야. 

최응    열길 우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였사옵니다.

궁예    그럼 너는 아지태가 역모를 꾀했다는 것을 믿는 모양이로구나.

최응    이미 앞뒤 정황이 그렇게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도리질한다) 옛날 송악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내원은 아지태와 지금 오고 있는 왕건아우까지 다 엮어서 죽이려 했었지. 허지만, 그걸 내가 나서서 분명하게 가려주었단다.

최응    하오면 이번에도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 어떠하겠사옵니까?

궁예    ...... (사이) 글쎄다.

최응    관심법을 쓰시오소서. 관심법은 이럴 때 필요하지 않겠사옵니까?

궁예    내가 관심법을 쓰면 사람들이 워낙 많이 죽어서 말이다. 그것보다도..... 얘,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어차피 왕건 아우가 오고 있다 하는구나. 지금쯤은 포구에 내렸을 것이고 이 황도로 향하고 있을 것이야. 우리도 그 쪽으로 가고 또 그쪽에서 오고 하면은 오늘 밤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최응    폐하께서 직접 납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궁예    그래, 거창하게 신료들이나 내군의 근위병들을 앞세워 갈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미복을 하고 나가보자꾸나.

최응    알겠사옵니다, 폐하.

궁예    (어린애처럼 신난다) 그래, 서둘러라. 내군 몇 명만 데리고 나가보자꾸나. 성밖을 벗어나서 왕건아우와 조촐하게 한 잔 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리고 가다가 순군부 북벌 군단도 한번 들러보고....

최응    순군부의 군단을 말이옵니까? 그 곳은 병부에 먼저 알리시고...

궁예    아니다. 그저 조용히 보자는 것이다. 그건 그렇게 하고 사람을 보내 왕건아우에게 미리 연락을 해 주도록 해라.

최응    예, 폐하.

 

씬 동 황궁 어느 전각 외경

 

씬 동 옥사 안

 

옥졸들이 밖에서 오가고 있고, 옥사 안에는 아지태, 임춘길, 강장자, 능달, 기전이 보인다. 강장자가 툴툴거린다.

 

강장자  이보시오, 아학사. 그토록 중요한 일을 어떻게 그리 경박하게 처신을 하였단 말이오? 아니 어떻게 같은 청주출신인 입전과 신방이가 고변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지태  그러게 말이올시다. 밤중에 길을 잘못 헛디뎌서 똥을 밟은 모양올시다, 허허허.

강장자  웃음이 나옵니까? 우리들 목숨이 지금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아지태  압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임춘길  헌데, 입전 그 사람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배신을 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사옵니다.

아지태  겁이 많은 자들이었네. 특히나 황제의 그 관심법을 무서워하였어.  

기전    사실이.... 그렇지 않사옵니까? 소인도 그 관심법은 무섭사옵니다.

아지태  쯧쯧쯧... 그래, 너 또한 겁이 많은 놈이지. 지난번에는 그까짓 고문이 무서워서 하마터면 입을 열려고 하였어. (한숨) 이러고 보면 나는 인복이 너무 없어.

기전    (멀쑥하고) .........

강장자  소식을 들으니 왕건이가 온다고 합디다. 그 동안 세운 많은 공으로 하여 이번에 시중이 된답니다.

아지태  들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임춘길  그 왕장군이 시중이 되어서 우리 일을 조사하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큰 곤욕을 치를 것이옵니다.

아지태  무슨 소리.....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이 아지태가 아닐세.

강장자  아이구, 금방 눈앞에 옥좌가 보이는가 했더니 옥좌는 그만두고 감옥이 뭐란 말이오? 아이구, 세상에....

아지태  허허허, 분에 넘치는 영화를 보려면 그만큼 모험이 따르는 법이오. 아직 절망할 건 없소이다. 폐하께서 우리를 보호하실 게요. 나를 믿으시오,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오.

 

씬 황궁 마당

 

비상이 계속되고 있는지라 군사들이 경계를 서며 이리저리 옮겨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한쪽에 금대가 그런 군사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어느 전각 앞에서 은부와 종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종간    군부의 동향은 어떠한가?

은부    말씀하신 대로 모두 장악하고 있사옵니다. 장수들 또한 아직까지는 우리 명령에 충실히 따르고 있고 별다른 움직임은 없사옵니다.

종간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왕건이 오고 있다지?

은부    예, 그리 알고 있사옵니다. 

종간    왕건이가 시중이 되는 것은 폐하께서 공공연히 하신 말씀이시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이 그쪽으로 넘어가는 것은 거의 결정적일세.

은부    그럴 것이 옵니다.

종간    과연 왕건이가 잘 해 줄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지태를 제거해 줄 것인가, 하는 말일세.

은부    지난 번에도 말씀 올렸사옵니다만 여차해서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경우 칼을 들 수 밖에는 없사옵니다.

종간    칼을 든다....칼을 든다...?

은부    폐하께서는 이미 모든 일이 힘에 부치시옵니다. 그 때문에 왕건이 또한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옵니까? 말하자면, 권력을 손에 쥐어 주는 것이옵니다. 그 권력이 우리에게 화근이 된다면 칠 수 밖에요.

종간    (한숨)........ 일이 참 어렵게 되어 가고 있어. 하긴 그래. 최악의 경우에는 결국 그럴 수밖에 없겠지. 길이 그것밖에는 없어.

 

그때, 내관하나가 다가와 급히 보고를 한다.

 

내관    내원어른, 내원에서 연통이 왔사옵니다.

종간    무슨 일인가?

내관    백두산에서 도인 한사람이 올라왔다 하옵니다.

종간    백두산에서.....도인이?

내관    예, 내원어른. 그곳의 태수가 천거하여 보냈다 하옵니다.

종간    오, (반갑다) 폐하의 일로 하여 독촉을 거듭하였더니 이제서야 뭔가가 답이 오는 모양일세. 지금 그 도인이 어디 있는가?

내관    내원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종간    가세. 우리 함께 가보세.

 

그들 그렇게 부산하게 움직이면...

 

씬 동 내원 안

 

종간과 은부가 도인 한사람을 보고 있다.

 

종간    백두산에서 오셨다고 하셨소?

도인    그러하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혹시.... 설도인을 알고 있소이까?

도인    황제폐하를 살려드린 도인이 아니옵니까?

종간    도인께서도.... 그런 일을 맡아주실 수 있겠소이까?

도인    도를 닦는 사람들의 영원한 과제는 세상과 인간이 두루 편안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옵니다. 이미 도인들의 세계에서는 미륵이신 황제폐하의 환후가 널리 퍼져있사옵니다. 그 때문에 설부에 대한 욕을 많이 하지요. 끝까지 책임을 지지도 못하면서 왜 부질없는 일을 저질렀느냐고요.

종간    그래서요?

도인    이 사람이 백두산에서 도를 닦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찾아 온 것이옵니다. 나름대로 비방이 있으니 한 번 해보자고 말입니다.

종간    되겠소이까? 길이 있겠소이까?

도인    폐하의 가슴속에 펄펄 끓고 있는 그 불덩이들을 먼저 삭혀야 합니다. 하늘에 빌고 우주에 기를 끌어 모아서 단약을 다려 올리면 분명히 효과는 볼 것입니다.

종간    (좋아서) 오, 그래요? 그래요.... 기회를 보아서 폐하께 그대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소이다. 그리고, 잘 되면 무엇이든 은혜를 갚겠습니다. 무엇이든 말이오.

도인    하하하, 도를 구하는 사람이 무슨 다른 욕심이 있겠습니까? 소생의 소원이라면 온 세상천지를 도인들의 세계로 만드는 것이옵니다. 죽음도 없고 생노병사도 없는 영원불멸의 도인의 세계 말입니다.

종간    좋은 말씀이오. 이를테면 우리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미륵의 세계와 모르긴 몰라도 같은 것일 겝니다.

도인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옵니다.

종간    아무튼 반갑고 고맙소이다. 폐하께 올릴 약을 만들 수 있고, 폐하께서 나으실 수 있다하니 이처럼 고마울 때가 어디있겠소이까? 곧 기도처를 만들어 드리리다. 단약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도 모두 대 드리리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금대의 목소리이다.

 

금대    (E) 장군, 금대부장이옵니다.

 

은부가 문을 열고 본다.

 

금대    장군, 폐하께오서 조금 전에 황궁을 나가셨다하옵니다.

은부    폐하께서 궁을 나가셔?

금대    예, 장군. 우리 내군에서는 장일이 뫼시고 갔사온데.... 미복차림이셨다 하옵니다.

종간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게야? 출궁을 하시다니.... 아니, 그것도 미복차림으로 말인가? 도대체 어디로 가셨는가?

금대    자세히는 모르오나 도성 안을 잠시 둘러보신 후 왕건장군을 만나러 가신다 들었사옵니다.

은부    (종간에게) 내군의 군사들을 뒤따라 보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종간    (생각하다가) 아닐세. 애써 의관을 바꾸고 나가셨네. 장일부장이 뫼셨다 하니 두고 보세나. 

은부    예, 내원어른.

종간    왕건이라.... 왕건을 맞으러 그렇게 가실 필요가 있으신 겐가? 그렇게까지....

 

씬 철원 저자 거리(석양)

 

일개 시골 촌락의 호족들처럼 궁예는 그렇게 변복하고 건을 썼다. 최응과 내관이 따라 붙고 그 뒤로 장일과 내군 서넛이 변복하여 따르고 있다. 평범한 호족의 행차 같은 것이다. 

 

최응    ........(미소) 어디로 납실 것이옵니까, 폐하?

궁예    왕장군을 만나자면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자, 먼저 순군부로 가보자꾸나. 북벌 군단말이다.

최응    말씀드린 것처럼 병부에 연락을 먼저 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궁예    허허, 이런... 우리끼리만 가보자는 것이다. 우리끼리...그래야 있는 그대로를 다 볼 수가 있지. 그동안 아지태가 이 순군부를 감찰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어 도대체 어찌 돌아가는 지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최응    예, 폐하.

궁예    아직까지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그 아지태 말이다. 왜 그랬을꼬?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랬을꼬? 어쨌든 가보자.

 

그들 그렇게 잠시 얼마쯤 가고 있는데, 그 앞으로 유랑하는 백성들의 한 떼가 지나쳐 가고 있다.

 

궁예    저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이냐? 

최응    오래 전부터 삼한의 많은 백성들이 전란과 배고픔에 시달리며 떠돌고 있사옵니다. 딱히 정한 곳이 있겠사옵니까?

궁예    안타깝구나.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북벌이 필요한 것이다. 강한 나라를 만들어 백성들이 안심하고 거처를 정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란 말이다. 자, 가자.

 

그들 그렇게 계속 간다. 어느 길을 돌아서면....

 

씬 그 어느 길(밤)

 

저자 거리를 벗어나 한적한 야외 길로 나서는 그들이다. 계속해서 설한풍이 불어간다. 싸락눈이 점점이 날리고 있다.

 

궁예    날씨가 별로 좋지가 않구나. 왕건아우에게는 사람을 보냈느냐?

최응    예, 도중에서 만날 장소도 일러주었사옵니다.

궁예    잘했다. 여기서... 훈련장이 얼마나 되는고? 지난번에도 우리 와 보았지않느냐?

최응    예, 폐하. 그리 많이 안 남았사옵니다. 저쪽 산모퉁이만 돌아가면....

 

그때, 어둠 속 길가에 있는 폐가 앞에서 볏짚으로 쌓은 시체를 지게에 얹고 있는 늙은이 하나가 보인다. 이들은 곧 가까워진다. 궁예가 다가오며 볏짚 속에 삐죽 나와 있는 시체의 발을 본다. 말을 멈추고 묻는다.

 

궁예    이보시게, 노인장.

노인    .........?

궁예    지금 지게에 얹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가?

노인    (퉁명스럽게) 보면 모르시오? 죽은 아이 놈을 산에 묻으러 가우.

궁예들  .......?

궁예    왜 죽었는가? 아이가 왜 죽었느냐고 묻는 게야.

최응들  ........?

노인    그렇게 묻는 당신은 누구요? (힐끗 보며) 오가는 길에 보면 곳곳에 수많은 시체들을 볼 수 있소이다. 그들이 다 왜 죽었겠수? ..... 가서 한 번 물어 보시구료. 대답이 다 똑같을 게요. 이 얘도 굶고 병들어 죽었수.

 

노인은 시체를 지고 일어선다. 다시 묻는다.

 

궁예    굶고 병이 들어 죽어, 왜? 나라에 얘기해 보았는가?

노인    나라? 나라가 어디있소? 황제는 미쳐있고, 간신배들은 저희들 배불리기에 급급한데 나라가 어디 있어. 그러고 보니 나으리도 황제처럼 애꾸눈이구먼?

궁예    ........?

장일    네 이놈 말을 삼가 하지 못할까?

궁예    (제지하며) 언제부터 그렇게 굶었는가?

노인    그 가짜 미륵 놈이 황제랍시고 이 철원에 올 때부터 그랬소이다. 지옥에나 떨어질 놈 같으니라구. 그 놈은 저주를 받은 놈이오, 저주 말이오. 빌어먹을 황제놈 같으니라구, 제 놈이 미륵이라니? 퉤...

궁예    ........ (충격이다).......? 

 

노인은 침을 뱉으며 그렇게 지게를 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궁예가 그렇게 서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한다. 모두들 그런 궁예를 본다. 그 충격은 아주 오래간다. 최응이 분위기를 바꾼다.

 

최응    폐하, 이제 훈련장에 다 왔사옵니다. 저기 저 능산만 넘으시면 그곳이옵니다.

궁예    (그제서야 끄떡인다) 그렇구나. 가자, 최응아.

최응    장부장은 앞서 인도하시오.

장일    예...

 

그들 그렇게 간다. 궁예는 가다말고 자꾸만 노인이 사라진 쪽을 본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궁예    미치광이라고 하였어... 나를 보고 가짜 미륵이라고 하였어. 저 촌늙은이가..... 저 무지렁이 백성이 나를 보고 빌어먹을 황제, 저주를 받을 놈이라고 하였어. 허허허. 나를 보고... 나를 보고 백성들이 그렇게 말을 해?

 

기가 막히다. 궁예는 도저히 믿기 지가 않는다. 디졸브....

 

씬 훈련장

 

곳곳에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훈련장은 텅 비었고, 훈련하는 군사들은 없다. 궁예들이 다가온다. 망루에서는 초병 하나가 졸고 있다. 사람이 오는지 가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궁예    오늘은 훈련이 없는 모양이로구나. 군사들이 보이지를 않아.

최응    그런 것 같사옵니다, 폐하.

 

길 한쪽으로 늙은 병사 두엇이 다가오고 있다. 궁예가 묻는다.

 

궁예    이보시게, 오늘밤은 훈련이 없는 모양일세 그려.

군졸    훈련...? 별 이상한 사람도 다 보겠구먼. 언제는 뭐 훈련이라는 것을 했소이까?

궁예    뭐라구....?

최응    옛날에는 이곳에서 매일 훈련이 있지 않았소이까?

군졸1   처음에는 그랬지. 허지만, 안한지 아주 오래 되었소이다. 훈련은 황제가 시찰을 나온다는 날만 하지. 그것도 눈가림으로 다른 곳에서 병력들을 임시변통해 오는 것이오.

궁예    (급히) 그럴 리가 있는가?

군졸    뭐 그럴 리가 있어.....? 당신들은 어느 나라에서 왔수? 이 사람들 통 쑥맥들일세 그려. 아, 나라에 돈이 있어야 훈련을 하지? 젊은 놈들 끌어 오면 밤새 다 도망치고, 부자들은 세금을 감추려고 전정긍긍하는데 무얼로 어떻게 훈련을 해? 그저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나 이렇게 맥없이 끌려와서 자리나 채웠다 가는 것이지.

 

군졸들은 그렇게 시큰둥하게 사라진다. 갑자기 궁예가 가슴을 끌어안는다. 가슴병이 도지는 것이다.

 

최응    (놀라서 다가와) 폐하,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폐하, 독주를 올리오리까? 

궁예    아니다, 내게 있다. (마시고 절망적으로 본다) 

최응    ........ 그만 가시오소서, 폐하.

궁예    그래.... (힘없이) 가자꾸나. 가자....

 

그렇게 눈을 크게 뜨는 궁예의 고통스러운 표정에서 디졸브...

 

씬 길

 

어둠 속으로 그렇게 궁예 일행이 오고 있다. 궁예는 생각이 많다.

 

궁예    (E) 훈련장은 텅 비었고, 백성들은 유리걸식하고 시체들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런 나라가.... 이런 나라가 우리 태봉국이었단 말인가? 이런 나라가 말이야?

 

궁예는 거퍼 한숨을 내쉰다. 최응은 궁예의 분위기를 알고 있다. 궁예가 가다가 최응을 부른다.

 

궁예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오늘 왕건아우를 만나고 나면 내일 조회가 열릴 것이다. 사람을 보내 내원에게 그리 말해주도록 하라.

최응    예, 폐하.

궁예    아무래도 오늘밤은 좀 마실 것 같구나.

 

그들 그렇게 간다.

 

씬 황궁 외경

 

씬 황후전

 

연화와 백씨, 진내관, 제조상궁, 슬이가 함께 해 있다.

 

연화    폐하께서 미복차림으로 출궁을 하셨단 말인가?

제조    그렇다고 하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도대체 무슨 일로 그리 하셨을꼬? 어디로 가시려고 그리 하셨단 말인가?

진내관  아무도 그것을 모르옵니다.

연화    누가누가 따라 나섰다고 하던가?

진내관  내봉성령 최응과 내군의 장일부장이 뫼시고 있다 하옵니다.  

백씨    대체 어디를 가시려고 그렇게 몰래 궁을 빠져나가셨단 말인고...?

진내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황후마마의 어르신께서 지금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계시옵니다. 혹시 그 일로.....

연화    그 일로 왜?

진내관  폐하께오서는 지금 사건을 조사하는 것 자체를 도중에 중단시키셨다 하옵니다. 혹시 그 일로 하여 지금 오고 계시는 왕건 장군을 만나러 가신 것이 아니신가 생각되어지옵니다.

제조    충분히 그럴만 하시옵니다. 딱히 가실 곳이 없지 않사옵니까?

연화    (끄떡인다) 하긴 그렇다. 지금 왕장군이 오고 계시니 충분히 그럴 공산이 커. (긴 한숨) 아버지는 도대체 어쩌다가 그런 간신배들과 어울렸단 말인고? 내가 얼마나 만류를 드렸는데 일을 이렇게까지 만든단 말인고...?

백씨    그러게 말이옵니다. 머지않아 좋은 일이 생긴다더니...아이구, 집안의 운명이 풍전등화이옵니다, 황후마마.

슬이    그래도 왕건장군이 오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것이옵니다. 사람들은 왕장군이 오면 금방 시중벼슬을 받을 것이고 또한, 이번 역모사건을 다스릴 것이라 하고 있사옵니다. 그래도, 왕장군이 황후마마께는  호의적인 분이 아니옵니까?

백씨    아이구.... 그 속을 누가 알겠느냐? 그런 말 하지 말거라. 모르긴 몰라도 내원 그 사람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 왕건이라는 사람이야.

연화    그래도 내원보다는 왕장군이 더 믿을만 할 것입니다. 잘 되어야 할텐데....이번 일이 정말 잘되어야 할터인데...

 

씬 시골 밤 길

 

왕건 일행들이 오고 있다. 두 부인과 아우들은 보이지 않고, 나주를 떠나온 일행들만 보인다. 왕건이 내군 한사람에게 묻는다.

 

왕건    폐하께서 도중에 나를 기다린다고 하셨는가?

내군    예, 장군. 그러하옵니다.

왕건    몸둘 바를 모를 일이로고... 대 황제폐하께서 일개 장군을 이 밤중에 맞으러 나오셨단 말인가?

 

그러다가, 왕건은 잠시 주춤한다. 모퉁이를 돌자 어둠 속에 횃불들이 보이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점차 가까워진다.

 

씬 그곳

 

두 일행이 가까워진다. 왕건이 말에서 내려서며 부복하고 군례를 드린다. 모두들 따라한다.

 

왕건    폐하, 이렇게 밤이 깊은데 어인 일이시옵니까? 신 왕건 문후여쭈옵니다.

궁예    하하하, 아우, 일어나게. 여기는 공무를 보는 곳이 아닐세. 나도 이렇게 편한 차림이 아닌가?

왕건    하긴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오서 시골 장자들이나 입는 의복을 입으셨으니 어쩐 까닭이시옵니까?

궁예    하하하, 술 한잔 생각이 나서 그랬네 그려. 자, 저쪽으로 가세. 이 고을 태수가 우리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네. 가세,
아우.
왕건    예, 폐하.

 

그들 우~ 하니 그렇게 몰려간다.

 

씬 시골 어느 관아 외경

 

장일과 내군들이 지켜서 있다.

 

씬 동 관아 안

 

상이 잘 차려져 있다. 궁예와 왕건이 마주 앉아 있다.

 

궁예    이렇게 밖에서 아우와 한 잔을 하니 그 기분 또한 남다르네 그려.

왕건    신 또한 폐하께서 이렇게 손수 나와주시리라고는 전혀 짐작조차 못했사옵니다.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무슨 소리인가? 자네도 황궁에 들어와 몇 년씩 앉아 있어 보게. 그게 어디 감옥이지 황궁인줄 아는가?

왕건    허허허, 어인 말씀을..... 내처 이리로 오신 것이옵니까?

궁예    아닐세, 도중에 순군부의 훈련장을 좀 들러 보았네. 몇 몇 백성들도 만났지.

왕건    그러셨사옵니까? 의관을 그리 하셨으니, 백성들이 폐하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궁예    하하하, 본래 그런 의도를 가지고 궁을 빠져 나온 것이네.

왕건    좋은 것을 많이 보셨사옵니까?

궁예    (사이).... 좋은 것이라..... 좋은 것이라고 하였는가, 지금? (마시며) 좋은 것이라......허허허, 허허허......

왕건    ..........?

궁예    황제란 가끔씩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 어울려 볼 필요가 있어. (사이) 거기에 사람 사는 모습이 있었어.

왕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궁예    나 궁예가.... 대 미륵이라는 이 궁예가 오늘 왜 이렇게 되었을꼬?

왕건    무슨 일이 있었사옵니까, 폐하?

궁예    .....(사이, 말을 못한다, 가슴이 아프다, 눈물을 글썽인다)

왕건    왜 그러시옵니까? 말씀하시오소서, 폐하.

 

궁예는 다시 소주를 마시고, 한동안 왕건을 그렇게 보고 있다. 감정이 북받치고 있는 것이다. 목이 메어 그렇게 또 말을 못한다.

 

궁예    나는..... 나는 말일세, 아우. 그 관심법으로 수많은 승려들과 병사들과 신료들, 그리고 아녀자들까지 죽여가면서 북벌을 몰아부쳤네. 아지태는 할 수 있다고 하였지. 아우도 반대를 하고, 내원도 반대를 한 그 일을 아지태는 할 수 있다고 하였고, 해왔어.

왕건    말씀하시오소서.

궁예    그런데 내가 병이 들었어. 내가 말이야.....(또 마신다) 나는 아니라고 하였지.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누구든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했어. 요즘은 통증이 시도때도 없이 와.

왕건    .......?

궁예    내원 그 사람이 필사적으로 내 앞에서 장막을 치고 나를 감싸고 있지. 은부가 칼을 들고 군대를 위압하면서 황궁과 도성을 지키고 있어. 그리고, 밖에 아우 자네가 있었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언제부턴가 그 균형마저도 깨지기 시작했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걸 보았단 말이야.

왕건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폐하. 이 나라는 폐하의 것이고 폐하께서는 여전히 대 미륵이시옵니다. 이 나라를 세우신 분은 바로 형님, 폐하이시옵니다. 마음을 담대히 하시오소서.

궁예    아니야. 나는 실패했어. 그 때문에 아지태도 돌아서 버린 것이야. 아지태가 말이야. 아지태가 나에게 칼을 들이댔어. 내 충실한 주구인 그 아지태가 나를 물려고 했단 말이야. 왜 그랬을까? 왜?

왕건    그 자는 기회주의자이옵니다. 위험한 지식인이고 몽상가이옵니다.

궁예    허지만, 이제 나는 어찌하면 좋겠는가? 나는 말일세.

왕건    ......?

 

씬 그 행궁 다른 방

 

태평, 최응, 유금필, 능산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다. 

 

태평    그 동안 먼발치로 자주 뵈었으나 오늘 이렇게 가까이는 처음입니다. 반갑습니다.

최응    고맙습니다.

태평    폐하를 뫼시고 얼마나 고생이 크십니까? 앞으로 많은 고견을 들려주시오소서.

최응    무슨 겸손의 말씀을.... 태평군사께서는 많은 공부를 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행복한 분이십니다.

태평    행복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응    이 혼란한 세상에서 저만한 주군을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참으로 기대가 크옵니다.

태평    그리 말씀해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최응    시기가 매우 좋지 않을 때에 황궁으로 오신 것 같습니다. 이럴 때에 시중벼슬이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태평    원봉성령께서는 성인이라 불리우시는 큰 학인이십니다. 저희 주군을 많이 도와주시오소서.

최응    이를 말이옵니까? 그나마 왕장군 한 분밖에 누가 또 이 조정에 대인이라 이를만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가끔 인사드리겠습니다.

   

씬 다시 행궁 궁예 방 밖 

 

씬 다시 동 방 안

 

궁예가 상당히 취했다. 그러나, 진지하다.

 

궁예    해야 할 일은 많고 몸은 따르지를 않네. 게다가 아지태마저 엉뚱한 일을 들고 나왔어. (사이) 북벌은 실패했네. 알겠는가?
실패했어.
왕건    예, 폐하. 그때문에 아지태가 돌아선 것이옵니다. 감당할 무게가 없기 때문이옵니다.

궁예    나도 알아. 자, 이제부터는 아우의 몫이야. 아우는 시중이 될 것이고, 내가 했던 많은 일들을 대신해 주어야 할 것이야.

왕건    차마 그 말씀을 뫼시기 어렵사옵니다. 신은 아직 그 자리에 앉기는 벅차옵니다.

궁예    더 이상 사양하지 말게. 내일 조회가 있을 것이야. 내일부터는 자네가 시중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왕건    그렇다면, 폐하..... 

궁예    말해보게. 무엇이든지...

왕건    북벌이 중지되었다는 것을 선포해도 되겠사옵니까?

궁예    뭐라고..... 뭘 선포를 해?

왕건    북벌이 중지되었다고 말이옵니다.

궁예    (한참 사이, 아프다)........ 그것은..... 내 자존심이었어, 아우.

왕건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옵니다. 잠시 전략을 수정하고 검토해보자는 것이옵니다.

궁예    (끄떡인다, 술 마시고) 그래, 지금은 아우 맘대로 하게. 그러나, 포기는 아니야. 나는 꼭 그 일을 다시 해낼 것이야.

왕건    예, 폐하. 하옵고, 또 여쭙겠사옵니다. 아지태의 사건도 신이 맡으오리까?

궁예    그렇게 해야겠네. 허나, 아지태가 죽으면 대 미륵이라는 이 황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겠지. 결국, 한치 앞도 못보고 그런 인간을 내세워 이렇게 나라를 망쳤구나 하고 말이야. 아우가, 그 점을 잘 살펴주게. 황제가 신용을 잃으면 통치력에 문제가 생겨.

왕건    .........

궁예    애걸은 하지 않겠네. 그저 그렇게 내 얼굴을 좀 가려달라는 것이야.

왕건    예, 폐하.

궁예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 너무 많은 국가의 재정이 날아갔어. 너무도 희생이 크고 많았어..... 그 북벌 때문에 말이야. 북벌....북벌......!

 

한동안 그렇게 자책하고 괴로워하던 궁예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옆에 놓여 있는 쇠방망이를 들어 보인다. 왕건도 본다.

 

궁예    이게 무엇인 줄 아는가? 내가 이름을 법봉이라고 붙였네. 법을 상징하고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지. 쉽게
 말하면 몽둥이야.
왕건    .........?

궁예    나는 관심법을 쓸 것이니, 아우는 앞으로 이 쇠방망이를 쓰게. 강한 시중이 되려면은 강한 힘이 있어야 해. 들어보게, 그 법봉을 들어봐. 어서, 들어봐!

 

왕건이가 방망이를 든다. 그것은 여전히 거대하고 무서운 살기로 보인다.

 

궁예    내일 조회에서 정식으로 내가 그것을 아우에게 빌려주었다는 것을 알리도록 하겠네. 그것으로 잡을 것은 사정없이 잡아 버리게. 몇 천 몇 만을 죽여도 좋아. 법을 세워달라는 것이야. 법이 살면 모든 게 사는 게야. 법 말이야!

왕건    ...........?

 

씬 황궁 외경 부감(낮)

 

씬 동 황궁 조당

 

문무백관들이 다 모였다. 아지태, 강장자, 임춘길, 능달, 기전을 빼고 모두가 모였다. 황제인 궁예는 옥좌에 보이지 않고, 그 앞에 왕건이 서있다.

 

씬 동 황궁 대전

 

종간이 궁예에게 조르고 있다. 최응이 보고 있다.

 

종간    문무신료들이 모두 모여 있사옵니다. 어서 납시오소서, 폐하.

궁예    ..........

종간    폐하....?

궁예    어젯밤에 왕건아우와 함께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소이다. 미리 써놓은 것이오. (칙서를 내어주며) 내원께서 가서 읽어주시구료. 왕건이 시중이 되었다는 것과 명실공히 내 다음으로 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해주시구료.

종간    폐하....?

궁예    아지태의 역모 사건도 그 아우에게 넘겨주시구료. 아시겠소이까?

종간    ........(긴장한다)

궁예    지금은 강력한 시중이 필요한 때요. 그래서, 내가 관심법의 상징인 이 법봉을 왕건아우에게 빌려주겠다고 하였소이다. 전해주시구료.

 

종간이 꿈틀하며 놀란다. 참으로 의외의 말인 것이다.

 

종간    폐하, 왕건장군 이전에도 시중들은 여럿이 있었사옵니다. 하오나, 이번처럼 큰 권한을 준 적은 일찍이 없었사옵니다.

궁예    모르시는 말씀이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요. 왕건아우는 그 책임을 다 할 것이오. 그리 알아주시오, 내원.

종간    폐하, 그렇다하더라도 너무나 파격적이시옵니다. 이처럼 엄청난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옵니다.

궁예    이미 약속한 일이오. 어서, 그만 가보시오. 최응아, 내원을 따라 가거라. 가서 이 법봉을 왕시중에게 전해주어라. 그리고,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 주시오. 알겠소이까? 아주 자세히 말씀이오.

종간    예, 폐하.

 

종간은 그러나 어둡다. 뭔가 말을 못하는 그의 그런 모습에서...

 

씬 조당

 

신료들이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조당 한쪽의 문이 열리면서 종간이 법봉을 들고 앞선 최응과 함께 앞자리에 와 선다. 그리고, 한동안 좌중을 오래 둘러보다가 무거운 입을 연다. 

 

종간    모두들 들으시오.

신료들  예.....

종간    폐하께서는 그 동안 여러 면에서 나라 안팎의 사정과 현실을 살펴보신 후 그에 따른 대안을 천하에 공표하신다 하교하시었소이다.

신료들  .......

종간    오늘 이 자리의 나는 황제 폐하의 칙서를 대신 전하는 사람에 불과하오. 곧 이 칙서를 받는 사람이 오늘의 조회를 주관하게 될 것이오. 대장군 왕건은 앞으로 나오시오.

왕건    예..... (앞으로 나와 선다)

종간    폐하의 칙서를 전하겠소이다. (펼쳐 읽는다) 짐이 이르노니, 대소신료들과 경 왕건은 들을 지어다. 수많은 전쟁에서 대 태봉국의 위엄을 빛낸 나주 대 도독 겸 해군대장군 왕건을 시중에 봉하노라. 나라 사정이 심히 어려운 때에 제국을 보전하고 또한 이끌어 갈 시중이니라. 대소신료들은 모름지기 왕시중을 잘 받들고 보좌해야 할 것이니라. (칙서를 접어준다)

왕건    (받으며)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신료들  ........

종간    더불어 폐하께서 이르신 말씀을 전해 올리겠소이다. 폐하께오서는 일찍이 오랜 참선 수업 끝에 깨달음을 이루시고 관심법을 취득하셨소이다. 그 이후 다시 쇳물을 부어 법봉을 만드시고, 이 나라의 모든 법을 상징하게 하셨소이다.

모두들  .........(면면들이 지나친다)

종간    오늘 그 법봉을 왕시중에게 전하신다고 하셨소이다. 즉, 모든 법을 주관하는 중심이 이제부터 왕시중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바이오.

 

삽시간에 신료들이 웅성거리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들이다. 그 와중에서 최응이 법봉을 왕건에게 전한다. 왕건이 겸손하게 받는다. 하급신료가 탁자를 밀어주자 법봉을 그곳에 놓는다. 그리고, 종간이 조용히 뒤로 물러서면 그 자리에 왕건이 가서 선다. 좌중을 둘러본 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왕건    대소신료들은 들으시오.

신료들  예......

왕건    나는 오늘 대 태봉국 황제폐하의 영을 받들어 이 조정의 시중자리에 서 있소이다.

모두들  .........(그 면면들이 지나쳐 간다, 만족한 유천궁, 왕식렴 형제, 박지윤들과 무반인 복지겸과 환선길, 이흔암, 홍유들이다)

왕건    폐하께서는 오늘 시중인 나 왕건이로 하여금 새로운 국정을 발표하게 하시려고 애써 이 조당에 나오지 않으셨소이다.

종간, 은부      ........(표정이 무겁다)

왕건    그 동안 적지 않은 모리배들이 폐하의 용안을 어지럽히고 나라를 걱정하게 한 것이 사실이외다. 이제부터 그것들을 하나하나 바로 잡아 가게 될 것이외다. 그중 제일 먼저 처리할 것이 있소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무리하게 추진되어 온 저 북벌 계획을 잠정 중단하게 될 것이오.

신료들  ..........(우~ 하며 놀라서 본다)

왕건    또한, 불필요하고 힘겨운 크고 작은 많은 공역에서 백성들을 쉬게 할 것이며, 과다한 조세를 감면하고, 유리걸식하며 떠도는 백성들을 구휼하게 할 것이오. (사이) 또한, 조정의 상벌을 분명히 하고 공과 사를 확연히 할 것이며, 무너진 기강 또한 엄히 세울 것이오. 아시겠소이까?

신료들  예.........

 

대답하는 신료들의 표정이 모두 굳었다. 왕건이 마치 황제처럼 말하고 있다. 특히나, 종간과 은부의 표정들은 더욱 그렇다.

 

왕건    그리고, 지금 황제폐하를 능멸하는 대역죄인들의 음모가 드러났다고 들었소이다. 나는 이 나라 시중으로써 공정하고 분명하게 조사하고 신속하게 법을 집행할 것이니 그리들 아시오.

신료들  예......... 

해설    시중, 신료들의 으뜸이고 조정의 많은 부서 중 제일 윗 서열인 광평성의 수장이 시중이다. 왕건은 지금 황제 다음의 벼슬인 이 시중에 올라 대소신료들에게 앞으로 펼쳐나갈 나름대로의 정국을 강력하게 공표하고 있는 것이다. 태봉국의 시중, 그랬다. 왕건은 비로소 이때에 이르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정승 자리에 올랐다. 이때가 왕건의 나이 서른 일곱, 서기로는 913년이고 단기로는 3246년의 이른봄이었다.

 

 

 

        < 100회 끝 > 




첨부파일 태조왕건100.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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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남모와준정 | 작성시간 17.11.27 100부?이후로는대본없는건가요..?
  • 답댓글 작성자수다쟁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1.27 있어요 ㅋㅋ 근데 지금 제가 여행을 시작해서 여행이 끝나면 올리려구요. 이 대본이 뭉치로 있는게 아니라 어디 올려진거 한회한회 복사해오는거라 너무 시간이 걸려요 ㅠㅠ 아니면 인터넷에 태조왕건 대본 검색해보시면 찾을수 있어요. 저도 그렇게 찾은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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