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02회>
줄거리
아지태는 석총이 예언한 새로운 미륵은 왕건이고, 이는 왕건이 반역의 뜻을 두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라며 마지막까지 발악을 해보지만, 결국 왕건의 평결대로 처형을 당하고 만다. 그러나, 국문이 끝나고 난 후 궁예는 의심병이 들기 시작하여, 연화와 왕건의 사이는 물론 태자들까지도 의심을 하기에 이른다. 궁예는 이성으로 자신의 그런 감정을 통제해 보려하지만, 역부족이다. 마침내 궁예가 병을 이기지 못하고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발작하는데, 그 모습을 왕건과 종간이 함께 목격하게 된다
씬 1 황궁 조당 앞(낮)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왕건은 차갑게 굳어진 표정으로 아지태를 보고 있다. 궁예와 더불어 수많은 신료들이 그런 왕건을 보고 있다. 무서운 정적이 흐르고 있다. 왕건이 다시 소리친다.
왕건 시중부의 태평은 뭘 하는가? 저 죄인을 즉결 처형하라 하였다.
태평 예, 시중어른. 군사들은 뭘 하는가? 죄인을 처형하라.
그러자, 그 초긴장 속에서 아지태가 벌떡 얼굴을 들며 소리친다.
아지태 폐하, 신의 말씀을 들어주시 오소서.
궁예 이미 다 들었지 않느냐?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느냐? 목숨에 미련이 많은 것 같구나.
아지태 폐하, 아직 신이 죽기는 이르옵니다. 신은 할 일이 많사옵니다. 통촉하시오소서. 북벌도 해야 하고, 저 간신들도 모두 제거를 해야 하옵니다.
궁예 틀렸다. 넌 이미 살아 남기 어렵게 된 것 같다.
아지태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폐하. 아직도 신의 말을 믿지 않으시옵니까? 저 왕건이 바로 반역자이옵니다. 왕건은 시중이 될 자격이 없사옵니다. 왕건은 또한 신의 죄를 논할 자격이 없사옵니다. 더불어 평결도 내릴 수 없사 옵니다. 폐하......
아지태는 다급하다.
이리저리 눈을 돌린다.
주변을 돌아본다.
그러나, 하나같이 반응이 없다. 그 옆에 강장자와
임춘길과 능달, 기전들도 긴장하여 주변 눈치를 살피고 있다. 궁예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를 왕건에게 던진다.
궁예 이보시게, 왕시중. 기왕 죽이려면 그 법봉을 쓰도록 하시게.
왕건 예, 폐하.
아지태 (더욱 다급하다) 드릴 말씀이 또 있사옵니다, 폐하.
궁예 그거 참.... 아지태답지 않구나. 죽는 마당에 뭘 그리 할 말이 많단 말이냐?
아지태 아직도 폐하께서는 신의 말을 믿지 못하시옵니다.
그렇다면 신 아지태가 마지막으로 왕건이 반역자라는 것을 하나 더 제시해드리겠사옵니다. 만약에 그 말에 이해가 가시오면 지금까지 모든 정황을 다시 살펴주시오소서.
궁예 ......(사이, 왕건을 보다가) 이보시게, 왕시중. 어떤가? 기왕에 죽어야 할 죄인일세. 한 마디 더 하게 해주게나.
왕건 예, 폐하. 죄인은 말하라.
아지태 폐하, 죽은 법상종의 중 석총이를 기억하시옵니까? 미륵 신앙을 믿는 법상종의 중 석총이 말이옵니다.
궁예 (꿈틀하며) 석총이?
아지태 폐하께서는 그 자가 참람하게 미륵을 운운한다 하시어 죽이셨사옵니다. 석총이가 죽어가면서 뭐라고 했사옵니까?
궁예 ........ (갑자기 관심이 간다) 말해보라.
아지태 석총이는 폐하께서 가시고 새로운 미륵이 나타날 것이라고 저주를 했사옵니다.
궁예 그랬지. 그래서?
아지태 그 새로운 미륵이 누구를 말하는지 아시옵니까?
모두들 ..........?
아지태 왕건이옵니다. 바로 저 왕건이옵니다. 새로운 미륵이란 다음에 나타날 반역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옵니까? 그 석총이가 죽기 전에 당시 충주에 있던 왕건이 에게 들려서 폐하께로 왔사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저 왕건이와 모종의 결탁을 한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조사해 보시오소서. 나올 것이옵니다.
순간적으로 왕건도 당황한다. 태평과 유금필들도 마찬가지이다. 종간은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고 있고,
궁예는 비로소 뭔가 생각이 나는 듯 마른침을 삼키며 왕건을 본다.
신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장내가 조금 소란스럽다. 한동안 종간이 갈등한다. 궁예가 묻는다.
궁예 왕시중, 그런 일이 있었는가? 석총이가 왕시중을 찾아 온 적이 있었는가? 석총이가 말이야?
왕건 예, 폐하. 있었사옵니다. 지나는 길에 들른 일이옵니다.
궁예 (생각이 많다) 석총이가..... 왕시중에게 들렸다? 석총이가?
아지태는 교활한 눈을 번뜩인다. 여기저기 본다.
신료들은 여전히 웅성거린다. 이때 종간이 나선다.
종간 폐하, 이미 아지태는 죄인이옵 니다. 왕시중에게 평결을 맡기셨사옵니다. 더 이상 죄인의 말을
듣는 것은 옳지 않다 사료되옵니다.
아지태 이보시오, 내원. 나는 지금 당신과 폐하를 위해 말하고 있는 거요.
종간 죄인은 닥쳐라. 이미 넌 할말을 다하였다. 너는 결코 이 자리 에서 죽음을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 폐하, 영을 내리시오소서.
궁예 (생각이 많다).......
아지태 폐하, 그래도 신의 말을 믿지 못하시옵니까? 바로 저 왕건이가 반역자이옵니다. 자신의 정혼녀를 불경스럽게 폐하께 바친 간악한 자가 왕건이옵니다.
북벌을 망친 자가 바로 저 왕건이옵니다. 제 스스로 다음의 미륵이라 하여 계속해 반역의 음모를 꿈꾼 자가 또한 왕건이옵니다. 이래도 모르시옵니까, 폐하?
종간 폐하, 어서 법을 시행토록 하시오소서.
궁예 ....... (사이, 끄떡인다) 왕시중, 평결대로 하게.
즉시 처형하게.
아지태 (다급하다) 폐하, 신 아지태의 말을 아직도 못 믿으시옵니까? 폐하...폐하......?
한 번 더 생각해주시오소서. 잠시 생각을 돌려보시오소서.
태평 죄인에게 형을 집행하라.
군사들 예......
태평 저 법봉을 뫼셔다가 행형을 가하라.
군사들 예.......
그렇게 군사들이 대답하며 법봉을 가져간다.
아지태는 거퍼 주변을 돌아보며 폐하를 연발하고 있지만 궁예는 대꾸가 없다.
그러자, 아지태가 갑자기 미친 듯 웃음을 터뜨리며 독설을 퍼붓는다.
아지태 하하하..... 그래, 역시 오늘 여기서 살아 나가기는 어려운 것 같구나. 오냐, 그렇다면 바른 말 한 마디 하마.
이 미치광이 황제야.
궁예 .........?
아지태 너는 미쳤다. 그래, 이제 바른 말을 하마. 내가 모종의 사건을 꾀하였다. 왜냐, 네 놈이 미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북으로 갈 수 있었고 너와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었다. 불쌍하구나. 황제여, 너는 이미 미쳤다. 제국을 끌어 나갈 힘도 없다. 결국은 왕건이에게 다 내주게 될 것이다. 이 미련하고 불쌍한 황제여.
왕건 뭣들 하느냐? 속히 법을 시행하라.
아지태 하하하.... 왕건아, 안되었구나. 네 속셈을 다 끄집어내서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구나. 하하하하...
왕건 어서 시행하라.
태평 시행하라.
군사들이 대답하며 법봉을 들어 내친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피가 낭자하다. 아지태는 그렇게 절명하면서도 왕건을 본다.
아무도 말이 없다.
궁예는 언제까지 앉아 있을 듯 말이 없다.
왕건이 다시 평결을 내린다.
왕건 아지태는 즉결 처형되었다. 다음 죄인들을 평결하노라. 아지태 이외의 죄인들은 오로지 아지태의 농간에 이용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폐하께 불경을 드린 죄는 다 용서하기 어렵노라. 강장자는 황실의 외척으로써 그 위엄을 지키지 못하고 아지태의 역모에 일부 연루되었던 것이 드러났다. 반성하며 회계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삼년 간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근신하라.
강장자 ........
왕건 순군부 낭장 임춘길은 그 죄안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음으로 무죄방면하고 그 수하들 또한 그리할 것이니라.
그러나, 앞으로도 이 일에 관련하여 여죄가 드러날 경우 합당한 벌이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번 사건에 관한 모든 평결이 끝났음을 알리노라. (궁예에게 절하며) 폐하, 평결을 끝냈사옵니다.
궁예 (끄떡인다) 현명한 평결이었고 아주 공평하였노라. 신료들은 모두 들으라.
신료들 예.....
궁예 항상 말하거니와 법은 공정하다. 그리고, 그 법 위에 바로 나의 관심법이 있다. 그러나 관심법 에는 희생이 많이 따름으로 되도록 나랏법에 의해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다. 모쪼록 경들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법을 지키며 나라에 충성토록 하라. 알겠는가?
신료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일어나며) 자, 황후 가십시다. 구경이 끝난 것 같소이다.
연화 (아직도 제 정신이 아니다, 떨고 있다).......
궁예 아, 무얼 그렇게 보고 계시오? 어서 가십시다, 황후.
연화 (그제서야) 예, 폐하.
황제부부가 일어나자 신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은부가 내군들에게 소리친다.
은부 폐하께서 납시니라. 내군들은 길을 열라.
내군들 예.....
궁예는 그렇게 간다.
신료들이 물결처럼 갈라지며 배웅한다. 종간도 상궁 나인들도 그 뒤를 따른다.
그 뒷모습을 보는 왕건의 표정에서 카메라는 죽은
아지태를 비춘다.
디졸브.........
씬 2 황궁 어느 길
궁예가 연화와 오고 있다. 연화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고, 가다가 궁예가 중얼거린다.
궁예 이보시오, 황후?
연화 예, 폐하.
궁예 황후의 안색이 아주 좋지가 않구료. 어디가 아프신 게요?
연화 아, 아니옵니다.
궁예 허허, 그 아지태가 내가 생각한 인물과는 아주 다른 자였어. 참으로 한심한 일이야. 그렇게 옹졸한 자를 믿고 지금 까지 왔으니 말이오.
연화 ........
궁예 허지만....허지만 말이오, 황후. 아지태가 정말로 쓸데없는 말을 그렇게 순간적으로 다 만들어 낸 것 같지는 않고.....
좀 혼란스럽기는 해.
연화 ........
궁예 그리고, 우리 두 태자가 벌써 보위 이야기를 할 만큼 컸단 말인가? 허허, 보위라? 보위라?
궁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고 있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
씬 3 황궁 전각(시중부) 외경
씬 4 동 전각 안
왕건, 태평과 유금필,
능산, 왕식렴, 왕신이 함께 해 있다.
태평 (심각하다) 주군, 아지태의 마지막 발악이 참으로 대단했사옵니다.
능산 모든 신료들이 하나같이 숨을 죽였사옵니다.
왕식렴 그래도 내원 그 사람이 뜻밖에도 형님의 편을 들었사옵니다.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사옵니다.
왕신 저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내원이 왜 형님을 편들고 나섰을까요?
왕건 ...........
태평 내원은 아무래도 주군을 편들었다기보다 이 기회에 확실하게 아지태를 제거하는 것이 급했을 것이옵니다. 주군을 도운 것은 아니오니 크게 마음 두실 것은 없사옵니다.
능산 그럴 수도 있겠지요.
태평 아무튼 지금까지는 주군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셨기 때문에 신료들이 일단은 주군의 그 권위와 위엄을 느끼고 보았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아지태가 뿌려 놓은 불신의 씨앗이 워낙 크고 강하옵니다.
왕건 그럴 것이야.
태평 아마도 내원이나 폐하께서는 서서히 그 일을 가지고 다시 주군을 조여올 것이옵니다. 지금부터 대비하셔야 하옵니다. 분명히 또 다른 어려움이 닥치실 것이옵니다.
왕건 ....(한숨) 역시 아지태였어. 모르는 척 하면서 나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었어.
태평 그러하옵니다. 내원이나 폐하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옵니다. 조심하시오소서, 주군.
주군께서는 지금 살얼음판 위에 서 계시옵니다. 황후마마의 일과 석총에 관한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옵니다.
왕건 ...............
씬 5 내원
종간과 은부가 표정이 굳어 마주해 있다.
은부 소장은 잘 이해가 아니가옵니다. 왜 왕건이를 두둔하셨사옵니까? 알아 볼 것은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지 않았사옵니까?
종간 물론 그래.
은부 왜 그러셨사옵니까?
종간 아지태는 자신이 죽을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 자가 살려고 그런 것이 아니란 말일세.
은부 예?
종간 그 자는 죽으면서 혼자 무너지기가 억울했던 것이야. 다 함께 죽자고 한 일이란 말이야. 자신도 죽고 왕건이도 죽이고 황후마마도 죽이고 또 폐하도 말일세. 그것은 결국 이 나라가 통째로 무너지는 일이지. 더 두었다가는 아니 되겠기에 그리 한 것이야.
은부 하오나..... 우리는 너무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사옵니다. 특히나 폐하께서 황후마마와 왕건이 오래 전의 일에 대하여 아시게되었사옵니다.
종간 막아야지. 그 일을 이제 논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막아야 해. 그 일만은 막아야 해.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일세.
은부 예, 내원어른.
종간 허지만, 석총이가 죽기 전에 왕건이를 만났다는 것은 아주 충격적이었어. 우리가 몰랐던 일이 아닌가?
은부 그러게 말이옵니다.
종간 바로 그런 것들이 우리를 몸서리 치게 한단 말일세. 그건 아지태 말이 맞아. 미륵 얘기 말이야. 다음 미륵 이야기.... 왕건이가 다음에 미륵이라는 것을 석총이는 알고 있었던 것이야. 아니 그런가?
은부 그러게 말이옵니다.
종간 이미 아지태는 죽었어.
이제 왕건이야. 다음 차례는 왕건이란 말일세.
은부 예, 내원어른.
씬 6 대전 복도
씬 7 동 대전 안
궁예가 생각이 많다.
한동안 고개를 외로 꼬며 자꾸 한숨을 쉰다.
습관이 된 독주를 계속해 마신다. 갑자기 조금 전에 있었던 아지태의 현장이 살아 오른다.
아지태 .......(사이) 석총이가 죽어 가면서 뭐라고 했사옵니까?
궁예 ........
아지태 석총이는 폐하께서 가시고 새로운 미륵이 나타날 것이라고 저주를 했사옵니다. (사이) 그 새로운 미륵이 누구를 말하는지 아시옵니까? (사이) 왕건이옵니다. 바로 저 왕건이옵니다.
새로운 미륵이란 다음에 나타날 반역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옵니까? 그 석총이가 죽기 전에 당시 충주에 있던 왕건이에게 들려서 폐하께로 왔사옵니다.
궁예는 한숨을 쉰다.
다시 독주를 마신다.
도리질을 한다.
궁예 아지태...? 참으로 간악한 놈이 아닌가? 죽어가면서까지 우리 사이를 훼방질하려고 하였어. 지독한 놈...(도리질하며 마신다)
아지태 (또 들려온다) 폐하, 그래도 신의 말을 믿지 못하시옵니까? 바로 저 왕건이가 반역자이옵니다. 자신의 정혼녀를 불경스럽게 폐하께 바친 간악한 자가 왕건이옵니다. 북벌을 망친 자가 바로 저 왕건이옵니다.
제 스스로 다음의 미륵이라 하여 계속해 반역의 음모를 꿈꾼 자가 또한 왕건이옵니다.
이래도 모르시옵니까, 폐하?
궁예 지독한 놈, 참으로 그럴 듯한 이간질이 아닌가 말이야? 그럴 듯 해. 헌데, 허긴 그래. 석총이가 왜 왕건아우를 만나러 거기까지 갔을꼬? 왜? (사이) 그리고, 황후가 왕건아우와..... 정혼을 했었다? 정혼을 말인가? (다시 고개를 외로 꼬며) 그리고, 뭐라? 강장자가 왜 두 태자를 보위에 올리려고 했는지 생각해 보라구? 왜, 보위에 올리려고 했나 생각해봐라?
궁예는 정말 솔깃해진다. 그럴 듯한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자신을
부정하며 도리질을 한다.
궁예 아니지. 아니지. 다 괜한 말들 이야. 아지태 그 놈에게 휘둘려서는 아니 되지. 허지만, 그래 태자 이야기는 일리가 있어. 나는 너무 오래 아이들을 보지 않았어. (생각하다가 소리친다) 대전내관 있는가?
대전내관 (E) 예, 폐하. (안으로 들어온다) 불러 계셨사옵니까?
궁예 그래, 가서 두 태자를 좀 데리고 오너라. 어서.
대전내관 두 분 태자마마를 말씀이시옵 니까?
궁예 그래. 지금 가서 데리고 오너라.
대전내관 예, 폐하.
대전내관이 다시 나가고, 궁예는 생각이 많다.
독주를 마시며 뭔가 끄떡
인다.
씬 8 황후전
연화가 놀라서 묻고 있다.
연화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폐하께서 태자들을 부르셨다 하였느냐?
슬이 예, 황후마마. 방금 전 상궁 하나가 그리 전해 왔사옵니다.
연화 생전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으시더니 갑자기 찾으시는 건 무슨 이유이실꼬?
제조상궁 너무도 오랫동안 적적하셨기에 그러시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연화 아닐세. 그럴 분이 아니야. 왕시중은 아버님을 가택에 연금 시키셨네. 다시 말하면 죄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야.
진내관 그러하옵니다, 황후마마. 그나마도 왕시중께서 아주 가볍게 처결을 하셨사옵니다.
연화 (한숨) 알고 있네. 헌데, 폐하 께서 왜 갑자기 태자들을 찾으셨단 말인가, 왜? 다시 한 번들 가서 알아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가 다시 한 번들 알아봐.
제조,진내관 예, 황후마마.
두 사람이 나가고,
연화는 아직도 겁에 질린 눈으로 슬이를 본다.
연화 슬이야, 우리가 이렇게 언제까지 버틸 지 모르겠구나. 그예 아지태 입에서 나와 왕시중의 지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느냐?
슬이 하지만, 폐하께서 믿지 않으시는 것 같사옵니다. 만에 하나 다른 의도가 있으시다면 벌써 묻지 않으셨겠사옵니까?
연화 .......(한숨)
슬이 정신을 바짝 차리시오소서. 마마께서 죄를 지으신 것은 없사옵니다. 의연하게 하시오소서.
연화 그래, 네 말이 맞다. 허지만, 아니 되겠다. 내가 대전에 한 번 가보아야겠다.
슬이 대전에 말씀이시옵니까?
연화 그래, 아무래도 내 눈으로 보아야겠다. 직접 봐야겠어. 왜 태자를 부르시는지... 가자, 슬이야.
슬이 제조상궁과 진내관이 갔사옵니다. 지켜보시오소서.
연화 아니야. 내가 봐야겠다. 가자!
슬이 마마.....
연화가 앞서 가고 슬이는 할 수 없이 따라 나선다.
씬 9 다시 대전
궁예는 여전히 생각이 많다. 한참 생각하다 고개를 외로 꼬고 또 부정하듯 도리질
하고, 다시 또 생각한다.
궁예 (혼자소리) 황후와 왕건아우가 정혼을 했었다? 혼인을 약속한 사이였어. 허허... 이걸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어 본다면 내가 너무 소심한 것이 아닌가? (사이) 어쨌든 아지태는 그 일로 하여 두 태자를 의심한 것이 아닌가? 잘 생각해 보라고 하였어?..... (마신다, 취했다) 뭘 생각하란 말인가? 뭘 말이야? 아지태 죽일 놈 같으니.
나를 아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어.
씬 10 동 대전 복도
막 두 태자를 앞세운 대전내관이 오고 있다가, 저만큼 마주 오는 연화일행을 본다. 두 태자(12~13세 정도)가 반가워한다.
두태자 어마마마, 어인 일이시옵니까?
연화 오, 우리 태자들이 아닌가? 태자들이 대전으로 든다기에 이 애미도 보고 싶어 왔다오. (내관에게) 아뢰시게.
대전내관 예, 황후마마. (다시 큰소리로) 폐하, 두 분 태자님과 황후마마께서 드셨사옵니다, 폐하.
씬 11 대전 안
궁예가 취한 눈으로 대전
내관의 소리를 듣고 있다가 꿈틀한다.
궁예 뭐라? 황후도 왔어? 허허, 이런.... 다 들라 하여라.
내관의 대답소리에 이어
황후와 두 태자가 들어선다. 두 태자가 절을 하고 앉는다. 연화도 그 옆에 마주 앉는다.
궁예 갑자기 두 아들이 보고 싶어서 불렀소이다. 헌데, 황후는 웬일이시오?
연화 신첩 또한 태자들이 보고 싶었사옵니다. 폐하께서 찾으셨다기에 신첩 또한 이리로 온 것이옵니다.
궁예 허허, 그랬구료. 그래, 신광아, 그리고 청광아?
두태자 예, 아바마마.
궁예 우리 두 아들 어디 좀 보자. (한참 뜯어본다, 몇 번을 본다) 아지태는 공연한 소리를 해 가지고는.....
연화 ........?
궁예 두 태자가 과연 누굴 닮았다고 보시오, 황후?
연화 폐하의 자식이 아니옵니까? 누구를 닮겠사옵니까?
궁예 허허허, 허긴 그래요. 그래, 그만 되었다. 이제 너희들이 벌써 보위를 운운하는 나이가 되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거라. 알겠느냐?
두태자 예, 아바마마.
궁예 그만 나가 보거라.
연화 그래, 들 가보거라.
태자들이 대답하며 다시 방을 나간다. 궁예는 무섭도록 연화를 쏘아본다.
연화가 주춤한다.
궁예 황후.... 그 아지태가 한 말 말이오.
연화 예, 폐하.
궁예 이거 참 물어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이 많았는데..... 황후가 좀 말해줄 수 있겠소?
연화 무얼 말씀이시옵니까?
궁예 아니오, 아니오. 그만 하십시다. 내가 참으로 사람이 작아지는 것 같아. 그 얘기는 다음에 합시다. 지금의 황후는 바로 나의 사형인 내원 그 사람이 천거했어요. 내원은 틀림이 없는 사람이거든. 헌데,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이래서 아지태 그 놈이 아주 간악하단 말이야.
죽어서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어. 못된 놈....!
연화 .........
궁예 (한참 보다가)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소원했던 것 같소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황후를 두고 말이오.
연화 망극하옵니다.
궁예 맞아요. 내가 본 여인 중에서 단연 황후만한 사람이 없었소. 하긴 왕건아우도 사내라면 황후의 미모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야. 아니 그렇소이까, 황후? 하하하하. 자, 술 한잔 따라보시구료. 우리 모처럼 함께 한 잔 해 보십시다.
연화 폐하......?
궁예 자, 따라보시구료. 기왕 여기까지 오시지 않았소이까? 어서 따라 보시오. 허허, 이렇게 원 수줍 기는....
연화가 마지못해 술을 따른다. 살피듯 보며 웃는 궁예
에서.....
씬 12 왕건의 집 외경(밤)
씬 13 동 집 안채 방
두 유씨가 걱정스레 서로를 보고 있다.
유씨 아지태 그 사람이 국문장에서 해괴한 소리를 하였다고?
수인 예, 저도 방금 전에 들었사옵 니다.
유씨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하였다는 것인가? 무엇이 해괴하다는 것 이야?
수인 황후마마와 서방님께서 일찍이 정혼을 하신 적이 있다는 것이옵니다.
유씨 (놀라며) 무슨 말인가, 그게?
수인 저야 뒤늦게 충주에서 올라온 지라 그렇다 하지만, 형님께서도 정녕 모르시는 일이시옵니까?
유씨 ....... (한숨) 그 일이 왜 이제 와서 다시 또 불거진단 말인가?
수인 형님께서는 알고 계셨사옵니까?
유씨 (한참 보다가) 어찌 나만 아는 일이겠는가? 당시 송악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일이었다네.
수인 세상에.... 황후마마와 서방님이 정혼을 하셨사옵니까?
헌데, 왜 그 일이 성사되지 못했사옵니까?
유씨 이런 쯧쯧....자네 마저 왜 이러는가? 이미 다 지난 이야기이고, 입에 담아서는 아니 되는 이야기야. 황후마마와 서방님에 관한 일일세.
수인 세상에...세상에....
이 일을 나주에 계시는 형님도 아시옵니까?
유씨 그 아우도 모를 것이야.
수인 허면, 형님은 지금까지 그 일을 아시면서도 모르는 척 해오신 것이옵니까? (다가서며) 형님, 허면 황후마마와 서방님 두 분이 서로 사모한 것이 사실이옵니까?
유씨 그만 하지 못하겠는가? 그만 하게. 이런 쯧쯧...
수인 .......?
씬 14 동 집 사랑
왕건과 능산, 태평, 유금필이 함께 해 있다.
왕건 (서류철을 넘기며) 이 조정에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도 많이 쌓여 있네.
조정에 인사를 개편해야 하고, 수많은 전선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어.
태평 그러하옵니다. 주군께서 시중이 되신 이상은 이 조정을 주군이 나아가실 방향으로 재편성하는 것은 당연하옵니다.
왕건 .......(고개를 끄떡인다)
능산 주군 옆에는 항상 내원이 지켜 보고 있사옵니다.
일단은 이 철원에서 정치를 하시려면 그 사람과 좋든 싫든 합의를 볼 일이 많을 것이옵니다.
유금필 능산아우는 무슨 말을 그리하는가? 어떻게 주군께서 그런 자들과 손을 잡고 또한 의논을 하고 합의를 본단 말인가?
태평 유장군, 여기 능산장군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그리하셔야 하옵니다. 특히나 지금 아지태 사건을 처결한 직후이옵니다. 저쪽에서 주군의 약점을 잡고 흠집을 내려 벼르고 있을 것이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되도록 싸움은 피하고 저들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옵니다.
유금필 상책이고 하책이고 간에 내원 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올시다.
수많은 신료들이 이 나라 시중이신 주군을 어찌 보실 것이오?
능산 그렇기는 합니다만은...
생각할수록 아지태가 남겨 놓은 파장이 심상치 않사옵니다. 여러 가지로 주군께 불리한 것이 많다 하는 그런 말이옵니다. 적절하게 처신을 하셔야 한다는 말씀이옵니다.
왕건 아우들의 말을 충분히 새겨듣겠네. 그러나, 겁쟁이처럼 움츠릴 필요는 없어. 더더욱 눈치만 살피는 시중이 되었다가는 세상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야.
내원 저 사람과 타협할 것은 하고 또 나에게 많은 의심이 쏠릴 것을 걱정들 하는 모양인데 당당하게 대처를 해나가세. 지금은 이 나라를 안정시키는 많은 정책들이 필요해.
눈치나 보고 움츠릴 때는 분명 아니야. 많은 것들을 자네들도 연구를 좀 해주게.
그들 예, 주군.
왕건 어려운 시국인 것만은 분명해. 그리고, 계속해서 폐하의 지원과 신임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내 자신도
몰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망설여서는 아무 것도 못해. 당당하게 나아가야 해. 당당하게.
씬 15 나주 포구(낮)
포구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전시가 아니기 때문에 상인들과 선편으로 오가는 행인들이 포구를 지나고 있다. 가끔씩 그들을 살펴보는 군사들만 보일 뿐 포구는 활발하게 열려 있어 보인다.
그 한쪽으로 윤신달과 전이갑, 김언들이 보고 있다.
전이갑 이곳 나주는 이제 예전처럼 평화롭게 된 것 같소이다.
김언 그런 것 같습니다. 언제 전쟁이 있었느냐 싶게 포구가 활짝 열렸습니다. 여러 나라의 많은 상인들이 들락거리고 있어요.
윤신달 시중이 되신 왕장군께서는 이 나주포구를 아주 대단하게 생각하고 계셨소이다. 이곳은 백제가 저 당나라나 오월국, 그리고 일본국과 문호를 넓히는 유일한 관문이었소이다. 우리도 유용 하게 써야지요.
김언 이를 말이겠습니까? 포구가 열려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제 사정도 훤히 볼 수가 있고, 또 관이나 사무역으로 하여 나라 살림도 윤택하게 되는 일이 됩니다.
전이갑 암요, 이 나주는 참으로 여러 면에서 볼 때 중요한 곳이에요. 전략지로써도 이만한 곳이 없소이다. 기가 막힌 곳이에요.
그때, 행인들 속으로 중, 형미가 지나쳐 간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보다가는 천천히 어느 쪽으로 사라져 가는데 윤신달이
보고 말한다.
윤신달 허허허, 요즘은 스님들도 많이 들어온다면서요?
김언 그렇습니다. 당나라에 공부하러 간 스님들이 많이들 이리로 돌아오고 있지요. 요즘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그렇다고 합니다. 특히나 신라에서 건너간 구법 스님들이 아주 많답니다. 허허허.
모두들 끄떡인다.
그들의 표정에서.....
씬 16 나주 관아 외경
씬 17 동 관아 안
오씨가 아이를 어르고 있다. 다련군이 그 옆에서 서찰을 보고 있다.
오씨 (아이 어르며) 철원에서 소식이 왔사옵니까?
다련군 그렇단다. 왕시중이 보낸 서찰 이다.
오씨 뭐라 하셨사옵니까?
다련군 주로 공무에 관한 것이니라. 나라에 여러 가지로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구나.
(계속 보며) 허허, 이런... 그예 아지태가 사형을 당했구나. 왕시중이 아지태를 사형 시켰어.
오씨 (놀라며) 예? 서방님께서 말이옵니까? 그럼 아지태 그 사람이 죽은 것이옵니까?
다련군 그렇다는 구나. 큰 역모 사건이 있었어. 허허, 이런... 북벌 계획도
중지되었고.... 왕시중이 아주 바쁜 모양이로구나.
오씨 (생각이 많다) 아지태가 죽다니요? 그토록 폐하의 신임을 받던 사람이 아니옵니까? 서방님께서 그 아지태를 처형하셨단 말이옵니까?
다련군 여기 그렇게 적혀 있구나. 다른 관련자들도 있었던 모양 인데... 강장자는 가택에 연금이 되었고 나머지는 풀어 주었다는 구나.
오씨 그 사건을 왜 폐하께서 처결하시지 않으시고, 우리 서방님께서 하셨단 말이옵니까? 역모사건이라면 중요한 일이 아니옵니까?
다련군 아, 그거야 폐하께서 왕시중에게 일을 맡겼으니 그리 된 것이겠지.
오씨는 여전히 생각이 많다. 뭔가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런 오씨를 보며 다련군이 묻는다.
다련군 얘야, 왜 그러느냐? 아, 그 간악한 아지태가 죽었으면 나라를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지. 뭘 그리 놀라느냐?
오씨 아버님, 지금까지 폐하의 모든 것을 대행하여 온 사람이 바로 아지태이옵니다. 모르시옵니까?
다련군 아, 그걸 왜 내가 모르겠냐만은 역모라고 하지 않느냐?
오씨 생각해보시오소서. 폐하를 대신하는 권력이라면 이 세상 제일의 힘이옵니다. 아지태가 그것을 갖고 있었사옵니다.
헌데, 서방님께서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 힘과 권력을 꺾으셨사옵니다. 다시 말하면 폐하께 대항한 꼴이 되었사옵니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다련군 글쎄다. 나는 잘 이해가 안가는 구나. 그것이 왜 폐하께 대항 하는 것이란 말이냐?
오씨 황궁에는 폐하도 계시고 또 내원 그 사람도 있사옵니다.
그런데 왜 서방님께서 모든 것을 도맡아 처리하셨겠사옵니까? 중원을 도모한다는 대 북벌 계획마저도 중지시키셨다 하옵니다. 그 북벌 계획은 폐하께서 모든 힘을 기울이셨던 대 국책사업이었사옵니다.
다련군 (그제서야 끄떡인다) 듣고 보니 그렇구나. 하나 같이 폐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뿐이었구나.
오씨 그러하옵니다. 서방님이 높은 벼슬을 하시고 시중이 되신 것은 좋지만, 결과적으로는 폐하와 맞서는 위치에 스셨사옵니다. 위험한 자리에 계신다는 뜻이옵니다.
다련군 그래, 그건 네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오씨 더군다나 이미 제정신이 아닌 폐하라 하시옵니다. 독한 소주로 살고 하루에서 몇 번씩 발작을 일으키시는 폐하와 맞서 있다는 것은 위험 중에 가장 위험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다련군 허지만, 어쩌겠느냐? 이미 그렇게 된 것을 말이다.
오씨 대비를 해야 하옵니다.
만약에 사태를 대비해서 서방님께서 이곳으로 피하실 수 있도록 여건을 준비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다련군 어떻게, 어떻게 말이냐?
우리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어?
오씨 (미소) 과히 어려운 일이 아니옵니다.
다련군 어렵지가 않아?
오씨 그렇사옵니다. 바로 우리 앞에는 백제가 있지 않사옵니까? 급할 때 저들을 앞세워 이유를 만들면 얼마든지 길이 있을 것이옵니다.
다련군 그래....? 백제를 끌어다 댄다? 백제를....?
씬 18 백제국 전주 황궁 외경
씬 19 동 대전
견훤과 최승우, 능환, 능애가 모여서 전략지도를 보고 있다. 곳곳에 군의 주둔지가 표시되어 있다.
대부분 백제와 신라의 경계선들이다.
능애 페하, 보시오소서. 신라와의 접경지역은 이렇게 우리 백제군이 곳곳에 견고하게 포진되어 있사옵니다.
견훤 (보며) 그렇군 그래. 전략지도만으로 본다면 아주 충분한 병력 이야. 믿음직해.
능환 그러하옵니다. 우리 정예병만 으로 그 많은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옵니다. 곳곳의 영향력 있는 호족들을 포섭하고 그들의 군대와 그들의 힘을 빌려야 하옵니다.
여기 표시된 우리 병력상황은 그런 방식으로 꾸며져 있사옵 니다.
견훤 암, 당연한 말이야. 지방 호족들이 우리 군대가 되어서 최일선을 맡아주어야 해. 사실 따지고 보면 지난번에 상주를 잃은 것도 태봉국의 왕건이가 충주의 호족들과 그들의 군대를 앞세워서 한 전쟁이었어.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견훤 그래야지. 되도록 보다 많은 호족들을 더 포섭을 해야 해. 그것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지름길이야. 금성에서도 호족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에 결국은 패한 것이 아니냔 말이야? 그런 면에서 왕건이는 아주 탁월한 장수야. 주변의 민심을 아주 잘 읽고 활용을 한단 말이야.
최승우 그렇다고 보아야 하옵니다.
견훤 그래서, 인심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야. 칼을 들고 싸우는 것보다 더 무서운 전투가 어떻게 인심을 잡느냐 하는 것이야.
그리고, 지난번에 뭐라고 하였 더라? 금성에 와 있던 왕건이가 태봉국의 시중이 되었다고 했던가?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태봉국에도 지금 내부사정이 아주 복잡한 것 같사옵니다. 왕건이가 시중으로 간 이후 궁예왕의 가장 측근이었던 아지태라는 인물이 숙청되었다 하옵니다. 더불어 북쪽을 노리던 궁예왕의 계획도 대부분 보류 되었다 하옵니다.
견훤 허허, 그런가? 뭔가 복잡한 것이 있는 게로군?
최승우 그런 것 같사옵니다.
민첩하고 발빠른 첩자들을 태봉국 깊숙이 보내 놓았사옵니다. 곳 상세한 사정을 알려 올 것이옵니다.
견훤 그래, 적국의 사정을 되도록이면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해. 그래야 많은 전략을 세우고 싸우는 데 있어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이야.
모두들 예, 폐하.
견훤 (다시 지도 보며) 그래 이제는 본격적으로 신라를 노릴 때가 되었어. 기왕이면 말이야. 여기 이곳 대야성 쪽을 한 번 노려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능환 좋으신 생각이시옵니다. 대야성을 함락하지 않고는 신라로 들어가기가 근본적으로 어렵사옵니다. 꼭 도모해야 할 곳이옵니다.
최승우 그러나, 폐하께서는 십여 년 전에도 그 대야성을 노리시다가 퇴각하신 일이 있사옵니다. 대야성은 견고하옵니다.
견훤 맞아. 아주 단단한 성이야. 그러나, 그곳을 넘지 않고는 신라로 갈 수가 없어.
반드시 우리 성으로 만들어야 할 곳이란 말이야.
연구들을 해 보게.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우리는 어이없이 상주를 잃었어. 그렇다면 그 아래쪽에 있는 대야성을 꼭 취해야 해.
어이구, 그때 상주전선만 제대로 확보했더라면, 오늘날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되는데 말이야.
능환 되찾아야 하옵니다. 언젠가는 상주도 어떤 방법으로든 꼭 찾아야 하옵니다. 상주는 지금 아주 특별한 지역으로 폐하의 위엄에 누를 끼치고 있사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장수들이 분개 하고 그 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옵니다.
견훤 그만 하게. 그만 해.
아무튼 이번에는 대야성으로 갈 수 있도록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검토를 해주게나. 그래, 대야성이야.
대야성으로 가야 해. 상주 일은 당분간 거론들 하지 말게.
그들 예, 폐하.
씬 20 사벌주 성
아자개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21 동 성 안
아자개와 박술희가 장기를 두고 있다.
계모가 옆에서 보고 있다.
아자개 아, 장 받아. 포장이야, 이 사람아. 포장... 포가 이렇게 넘어 왔네 그려. 아, 장기 안 두는가?
계모 호호호, 우리 박장군이 아주 꼼짝을 못하네 그려.
박술희 그러게 말이옵니다, 마님. 이거 거퍼 당하고 있사옵니다.
아자개 장기라면 말씀이야 내가 자다가도 일어나는 사람이야. 자, 장 받아.
박술희 (막으며) 이렇게 받았사옵니다, 헤헤헤.
아자개 그래? (생각하다가) 자, 이번에는 차장을 받게. 어떤가? 외통수에 걸렸네 그려.
박술희 정말 그렇사옵니다.
아무래도 이 판은 접어야 되겠 사옵니다, 상부어르신.
아자개 접어? 끝난 게야?
박술희 예, 어르신. 그만 약주도 한 잔 하시고...
아자개 술, 술 말인가? 그것도 좋지. 오늘은 자네가 벌주를 내야겠네 그려. 다섯 판 두어서 세 판을 졌어.
박술희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오늘도 머루주를 두 섬이나 가져왔사옵니다.
계모 참, 정성도 지극합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달에 한 번 어김없이 찾아오니, 누가 이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자개 그건 그래요. 암, 박장군만한 사람 없지. 그러고 보면 말이야. 이 전선은 참으로 편안한 곳이야. 아, 싸움이 있어. 뭐가 있어?
박술희 다, 어르신 덕분이옵니다.
아자개 그게 어디 내 덕분인가,
이 사람아? 다 대주덕이지.
박술희 예?
아자개 박장군 자네는 대주가 좋아서 날 찾아오는 것이고 또 대주 때문에 날 대접해 주는 것이 아닌가?
박술희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상부어른은 모두가 존경하는 분이시옵니다.
계모 아, 그거야 맞는 말이지요. 왕장군도 지난번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사옵니까?
박술희 지금은 장군이 아니라 시중이 되셨사옵니다. 황제폐하 다음의 자리이지요.
아자개 허, 출세했네 그려. 내 그럴 줄 알았어. 사람 그릇이 그만하지 않는가 말이야? 시중이라.... 큰 출세했네 그려. 헌데, 대주는 어디간 게야? 아, 박술희 장군이 보고 싶어할텐데....
박술희 소장의 마음을 알아주시는 분은 역시 상부어른이시옵니다.
계모 대주는 밖에 나가 있사옵니다. 그 아이가 요즘 통 말이 없어요. 에이구, 성미는 날카롭고 세상 일은 제 생각대로 안되고.. 답답도 할 거예요.
아자개 그 놈의 성질 머리하고는.... 하여간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니까.... 에이구...이제 그만 우리 박술희 장군의 마음을 받아 줄 때도 되었는데 말씀이야.
씬 22 그 성루
대주가 용개, 보개와 함께 먼 곳을 보고 있다.
대주가 한숨을 쉰다.
대주 또 봄이 오는 것 같습니다, 오라버니.
용개 그러게 말이다. 삼한 천지가 전쟁터인데 이곳만은 참으로 조용하구나.
대주 다 견훤 오라버니께서 우리를 생각하시기 때문이옵니다. 그 오라버니가 이곳을 도모하려 했다면 벌써 끝이 났을 것입니다.
보개 끝이 나다니요? 아니, 누님, 우리는 그렇게 호락호락 안 당합니다?
대주 내가 몇 번을 말했느냐? 견훤오라버니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
용개 그렇다고 우군도 아니다, 대주야. 우리 사벌주는 지금 참으로 그 위치가 묘하게 되어 있다. 언젠가는 누구의 편으로든 가야 할 것이야.
대주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구의 편이라니요?
그렇다면 지금 안에 있는 저 박술희 장군의 편으로도 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용개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가 견훤 형님의 이복동생이라고 해서 무조건 희생할 수만은 없다.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는 줄 아느냐? 그 쪽으로 간다 한들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대주 아버님이 저리 하시면 용개 오라버니라도 마음을 크게 가지셔야 합니다. 우리는 백제인입니다, 용개 오라버니.
용개 나는 아직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그나저나 대주야, 너는 정말 저렇게 끈질기게 찾아오는 박술희가 싫으냐?
대주 예?
용개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 장수 같다. 무예도 뛰어 나거니와 학식 또한 대단한 사람이 아니냐?
게다가, 너를 향한 일편단심이 또한 대단해.
대주 ....... (한숨만 쉰다)
용개 허허허, 그 사람 너무 차갑게 대하지는 말아라. 저 박장군은 정말 볼수록 괜찮은 사람 같아. 그러고 보면 지금 시중이 되었다는 왕건이라는 사람은 수하에 좋은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두었어.
대주 ........
씬 23 철원 황궁 외경
씬 24 동 시중부 안
왕건과 태평이 마주해 있다.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
고개를 끄떡이는가 하면
뭔가를 정리하기도 한다.
왕건 (계속 서류 보며) 좋은 생각이야. 북쪽을 다시 정리한다.
(다른 서류 보며) 그리고, 군을 효율적으로 다시 배치를 한다. 농사와 생업을 장려하고 유리 걸식하는 백성들에게 땅과 집을 지어주어 안착시킨다.
(다시 끄떡인다) 신라와는 싸우기보다는 외교로써 해결을 한다. (계속 끄떡인다) 그래, 피차간에 싸운다는 것은 끝없는 불안과 파괴를 야기시킨다네. 그리고,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겨.
태평 그러하옵니다.
왕건 이보게, 태평이. 이만하면 되었네. 일차적인 시국 조정안은 이만하면 되었어. 상당히 구체적으로 다 들어있네 그려.
태평 여러 사람들의 많은 의견을 수렴한 것이옵니다.
왕건 (서류 보며) 이만하면 폐하께 설명을 드릴 수 있겠네 그려.
씬 25 동 황궁 법당
도인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동남동녀 여러 명을 세워 놓고, 단 앞에 꿇어앉아 묵상 기도를 하고 있다.
향이 피어오르고 있고,
그 한쪽에서는 약탕기가
끓고 있다. 주변이 엄숙해 보인다. 그 먼 발치에서
종간과 은부가 보고 있다.
은부 저 도인이 벌써 며칠 째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 중이옵니다.
종간 알고 있네. 백일 기도를 드린다 하더군.
은부 지난번에 설도인이라는 자는 기로써 폐하의 병을 다스린 적이 있사옵니다. 기적 같은 일을 그 설도인이 우리에게 보여 주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사옵니다. 저 도인은 오로지 기도만 올리고 있지 않사옵니까?
종간 이슬로써 물을 내리고, 심신산골의 영약을 찾아다가 달이고 있다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영약이 아직도 많네. 저 도인이 장담을 하였으니 기다려 보세나.
은부 제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사옵니다만은....
종간 그러게 말일세. 오늘은 왕건이 그 동안 계획한 새로운 정책들을 폐하께 올린다 하더구먼. 중요한 일인 것 같아서 내가 좀 가봐야겠네.
은부 그리하시오소서.
종간 가세.
그들 그렇게 그곳을 벗어나고, 도인의 기도는 계속된다.
씬 26 동 대전
궁예의 의심병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생각에 골똘해 있다. 그는 술이 많이 취해 있다. 다시 잔을 따르는데 소리가 들려온다.
아지태 .......(사이) 석총이가 죽어 가면서 뭐라고 했사옵니까?
궁예 ........
아지태 석총이는 폐하께서 가시고 새로운 미륵이 나타날 것이라고 저주를 했사옵니다. (사이)
그 새로운 미륵이 누구를 말하는지 아시옵니까? (사이) 왕건이옵니다. 바로 저 왕건이옵니다. 새로운 미륵이란 다음에 나타날 반역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옵니까? 그 석총이가 죽기 전에 당시 충주에 있던 왕건이에게 들려서 폐하께로 왔사옵니다.
궁예는 한숨을 쉰다.
다시 독주를 마신다.
도리질을 한다.
궁예 아니야, 아니야. (강하게 부정 한다) 내가 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하는 게야, 왜?
궁예는 부정을 하려 하지만, 생각은 계속 꼬리를 문다. 국문장에서의 일이 지나친다.
궁예 왕시중, 그런 일이 있었는가? 석총이가 왕시중을 찾아 온 적이 있었는가? 석총이가 말이야?
왕건 예, 폐하. 있었사옵니다. 지나는 길에 들른 일이옵니다.
궁예는 다시 도리질을
한다.
궁예 그래. 그냥 그렇게 만날 수도 있는 것이지, 뭘....(하다가) 아니야. 이건 우연이 아닐 수가 있어. 석총이 놈의 말이 뼈가 있지 않는가 말이야.
분명 뭔가가 있어.
다시 석총이 죽어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석총 (E) 거짓미륵이시오! 이제 그대의 세상이 다 되었소이다. 이미 다른 미륵이 일어나 내일의 세상을 준비하고 있소이다.
거짓미륵이여!! 저주를 받을 것이외다. 하늘의 저주가 있을 것이외다. (83회 중에서)
궁예는 흠칫하며 허공을 본다. 그리고, 습관처럼 뭔가를 찾는다. 옆에 검을 움켜쥔다. 석총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궁예는 무서워하며 움츠리면서도 그런 석총을 노려
본다. (97회 중에서)
석총 하하하하, 너는 거짓 미륵이다. 가짜야. 너는 미륵이 아니야.
궁예 ........? 네 놈이 또 왔구나. 석총이 이놈...
석총 그렇다. 이 거짓 미륵아. 참 미륵이 이미 나타나 네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느니라. 하하하... 이 거짓 미륵아.
궁예 이놈...석총이 이놈... 거짓말 이다. 이 세상이 미륵은 나 하나 뿐이니라. 내가 미륵이다. 내가 미륵이다, 이놈.
궁예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검집에서 검을 뺀다.
웃고 있는 석총을 내려친다. 그러나, 허공이다.
석총의 웃음소리만 커진다. 다시 몇 번이고 검을 날린다. 대전 안의 가구들이 부서져 내린다.
씬 27 동 대전 밖 복도
대전내관이 놀라서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
궁예의 고함소리와 부서지는 소리들이 한꺼번에 들려
오고 있다.
궁예 (E) 거짓말이다. 미륵은 바로 나다! 석총이 이놈...
바로 내가 미륵이단 말이다, 이놈....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이놈....
대전내관 (다른 내관에게) 폐하께서 병증이 일어나셨다. 어서 어의를 불러라. 어서!
내관 예....
내관이 급히 사라지고,
대전 안의 소리는 더욱
커진다. 바로 그때 왕건이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종간이 들어오고 있다.
소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왕건 (종간에게) 여기서 뵙사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그렇소이다, 왕시중. 폐하께 문후를 오는 길이오만은.... (대전내관에게) 어찌 된 일인가? 안에 무슨 일이 있는가?
대전내관 황공하옵니다, 아무래도 폐하께 병증이 일어나시는 것 같사옵니다.
궁예 (E) 물러가거라, 이 요괴야. 내가 미륵이니라. 내가 이 나라의 황제이고 미륵이다.
고함소리와 부서지는 소리들이 계속 들려온다.
종간은 벌써 눈치를 챘다. 곤혹스러운 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왕건을 본다.
왕건도 종간을 본다.
궁예의 절규 같은 소리들이 계속 들려온다.
< 102회 끝> (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