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05회>
줄거리
씬1 황궁 외경(새벽)
부감으로 보여오는 황궁이다. 천둥번개가 치고 뇌성벽력이 일어나고
있다. 화면 가득히 그렇게 비가 쏟아지고 있는 새벽이다. 카메라 다가
가면서.......
씬2 동 황궁 안
마당과 전각사이로 내군들이 경계를 서며 오가는 것이 보인다. 회랑과
전각 사이로 수많은 횃불들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마당 가득히 비
는 그렇게 계속 쏟아지고 있다. 빗속에서 금대와 장일이 서로 고개를
끄떡이며 묵례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대전 쪽을 본다.
씬3 동 대전 복도
진내관과 제조상궁, 슬이들이 황후전의 상궁나인들과 함께 길게 늘어
서서 기다리고 있다. 또한, 그 한켠으로 대전내관과 대전 소속의 내관
들이 그렇게 대기해 서 있다. 기척도 없다. 침묵이 그렇게 흘러가는
가운데 밖에서는 간헐적인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씬4 동 대전 안
침상 위에 궁예부부가 누워있다. 장지문 쪽으로 새벽이 밝고 있는 것
이 보인다. 연화는 눈을 뜬 채 빗소리를 듣고 있다. 카메라 조여들면
궁예도 그 외눈을 뜨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이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궁예가 입을 연다.
궁예 벌써 잠이 깨신 게요, 황후?
연화 예, 폐하.
궁예 밤새 비가 온 모양이구료. 허허허.... 겨울이 그렇게 마냥 계
속되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봄인가 보오. 비가 오고 있지 않
소이까?
연화 그러게 말이옵니다.
빗소리는 그렇게 요란하다. 두 사람 또 그렇게 그 소리를 듣는다. 궁
예가 일어나자, 연화도 조용히 일어나 창쪽을 본다.
궁예 (사이) 내가 어릴 때는 말이오. 저 빗소리를 듣는 것이 그렇
게 싫고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소이다.
연화 ....... 왜 그러셨사옵니까?
궁예 비를 피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오.
연화 비를 피할 곳이 없으시다니요? 어째서 그렇사옵니까?
궁예 언젠가 순행을 할 때였던가.... 그때도 이런 비가 오지 않았
소이까? 나는 그때 지나가는 말로 내 과거를 잠시 말한 적이
있었소이다.
연화 신첩은 기억이 아니 나옵니다.
궁예 허허허, 하긴 그럴 게요. 꽤 오래되었거든.... 내 어릴 때는
말이오. 유랑의 연속이었소이다. 한순간도 편한 날이 없었어
요. 매일처럼 유리걸식하면서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떠돌
아 다녔소이다.
연화 .....(측은하게 본다)
궁예 내 유모를 어머니처럼 알고 어린 애꾸 소년은 신라의 관군들
을 피해 아니 가본 곳이 없소이다. 그래서 나는 배고픈 것이
무언지를 배웠소이다. 서러움이 뭔지도 배웠고 말이오. 쫓긴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와 공포와 불안도 배웠소이다. 그리고,
죽음이 무엇인가도 알았소이다.
쫓기는 어린 궁예와 유모의 모습이 스쳐간다. 그 눈보라 속에서 피를
토하던 유모와 왕건의 아버지, 왕륭에서 구제 받았던 모습도 스쳐간
다. 그리고, 유모의 죽음과 소년 궁예의 울음까지도....
궁예 내 유모가 죽었을 때는 한겨울이었소이다. 그때도 나는 쫓기
고 있었는데, 왕건아우의 아버지인 왕륭 그 사람이 나를 구해
주었소이다.
연화 처음 듣는 말이옵니다, 폐하. 그런 일이 있었사옵니까?
궁예 (긴 한숨) 내 어린 시절은 줄곧 그랬소이다. 버려진 신라의
왕자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소이다. 그래서, 머리를 깎았고
중이 되었소이다. 나는 그래서 미륵이 되기로 하였소이다. 미
륵 말이오.
연화 예, 폐하.
궁예 그리고, 그 미륵을 이루었소이다. 늘 사형인 지금의 내원이
나를 보살펴 주었소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미륵이 되었
고 나라를 이루었소이다. 이 제국을 말이오.
연화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오서는 이 제국의 주인이시옵니다.
궁예 그런데... (사이) 그런데..... 어느 날 더러운 병마놈이 내
속으로 숨어 들어왔소이다. 내 이 가슴속으로 말이오. 미륵이
되고 황제가 되고 저 동방국의 대제국을 이루려고 하는데 마
군이 놈이 찾아 왔어요. 이 마군이 놈이 (흥분하면서) 하필
이럴 때에...... 이럴 때 내가 찾아 왔어... 이 놈이 내
게....
궁예가 가슴을 끌어안는다. 병이 오기 시작한다. 고통인 것이다. 연화
가 놀라서 본다. 궁예는 숨이 끊어지는 듯한 그 고통에 몸부림친다.
연화 폐하.... 아프시옵니까? 환후가 온 것이옵니까? 병증이시옵니
까?
궁예 (참으며, 고통스러워하며) 그렇소. 지금 마군이가 이 가슴속
에 와있소. 이 놈이 여기 숨어 있어. 이 마군이 놈이.... 소
주, 거기... 소주 좀 주시구료..... 소주 좀 주시오, 황후..
연화 (정신이 없다) 소주가 아니라 어의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
옵니까? (큰소리로)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어의를 들라
하라.
궁예 소란 떨지 마오. 소주.... 거기 소주를 이리 내란 말이오....
어서....
연화가 급히 일어나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소주를 들어다 준다. 그것을
벌컥 벌컥 마시는 궁예. 그러면서도 가슴을 부여잡고 헤맨다.
궁예 (고통스러운 비명) 어, 어.....
연화 폐하, 어떠하시옵니까? 어서 어의를 불러야 하지 않사옵니까?
그때, 대전내관과 어의가 황급히 들어선다.
연화 어의는 무얼 하는가? 폐하께오서 힘이 들어하신다. 어서 약재
를 대령하지 않고 뭘 하는가?
궁예 아니다. (간신히) 물러가라. 나는... 그 약이 싫다.... 먹으
면 힘이 없고.... 잠이 와..... 너무 사람이 무기력해져....
나는 싫어.... 이대로가 좋아.... 물러가라... 물러가...
연화 하오나, 폐하....
궁예 황후도 가시오....황후도 물러가시오....
연화 폐하, 신첩은....?
궁예 물러가라 하지 않소? (더욱 아픈 듯 소주를 마신다) 이놈들
물러가지 않고 무얼 하느냐? 목이 달아나고 싶으냐, 이놈들?
어의 예, 예, 가겠사옵니다, 폐하.....
궁예가 옆의 검을 잡아들자, 내관과 어의가 쏜살같이 도망친다. 궁예
가 다시 연화에게 소리친다. 그런 모습은 흡사 아귀와도 같다.
궁예 아니 가고 뭘하오? 나가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나가란 말이
오. 나가...
연화 .......
궁예 어서 가지 못할까?
연화 (그제서야) 가, 가겠사옵니다, 폐하.
연화도 그렇게 나간다. 모두들 가고 나자, 궁예는 가슴을 잡으며 검을
내던진다. 그리고, 소주를 마시고 나서 그 빈병을 들고 보다가 도리질
을 한다. 그리고, 내던져 버린다.
궁예 이런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렇게 되는 것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계속 비명을
지른다) 제발, 가라...이 마군이들아... 나를 놓아다오. 나를
놓아줘....
씬5 동 대전 밖 복도
궁예의 끊어지는 고통 소리가 계속 들려 나온다. 연화는 그 소리를 들
으며 서있다가 그예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한숨을 쉰다. 참다못해
그렇게 복도 한쪽으로 걸어가면 비로소 상궁 내관들이 뒤를 따른다.
연화의 눈물 뒤로 궁예의 고통소리는 점차 멀어진다. 디졸브..
씬6 황궁 내 법당(낮)
비는 멎었고, 바람이 극성스럽게 소리를 내며 불고 있다. 한낮인데도
향로에서는 불꽃이 일고 있고, 기도하는 도인의 앞에서는 향로위의 약
탕기가 김을 품고 있다. 동남동녀가 꽃바람이 아직도 추운 듯 웅크리
고 도인 옆으로 언제나처럼 서있다. 그 뒤에서 종간과 은부가 보고 있
다.
씬7 그 곳
은부 저 도인의 기도가 끝이 나아간다고 들었사옵니다.
종간 그렇다고 하네.
은부 결국 약이 다 되어간다는 뜻이 아니옵니까?
종간 왜 아니겠는가? 제발, 제발 저 영약을 드시고 훨훨 병마에서
일어나셨으면 좋겠네 그려.
은부 (한숨) 저 도인이 크게 장담을 하고 있으니 일단은 믿어볼 수
밖에 없지 않사옵니까?
종간 믿어 보는 것이 아니라 나는 믿고 있네. 저 도인은 내게 말해
주었네. 이 약은 틀림이 없다고 말이야. 저 도인은 자신이 이
룬 도력을 폐하를 통하여 검증 받고 싶어하는 사람일세. 즉,
폐하의 병을 고쳐 드리고 도력을 인정받음으로써 자신의 도를
펴 나라와 세상을 구한다는 것이지.
은부 (끄떡인다) 그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사옵니까? (눈치 보
다가) 하옵고, 내원어른. 지금 대전에 황후마마께서 함께 계
신다 들었사옵니다.
종간 알고 있네. 장부장이 내게 일러 주었다네. 참으로 뜻밖이 아
닌가? 폐하께서 황후마마와 함께 밤을 보내셨다는 것은 그야
말로 사건일세. 큰 사건이야.
은부 하오나, 그것이 기뻐해야 할 일일지 어떨지는 아직 모를 일이
옵니다. 폐하께오서 여러 사람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부르신
황후마마이시옵니다. 진정한 자애심에서 황후마마와 함께 보
낸 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옵니다.
종간 (무거운 한숨) 우리는 좋게 생각하세. 그저 다 좋게....
은부 하오나, 폐하의 저 의심병이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지 않사옵
니까? 왕건시중에 이어서 강장자와 황후마마까지 자꾸만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 아니옵니까?
종간 충분히 드릴 만큼 말씀을 드렸네. 더 이상은 안돼. 이것은 폐
하 스스로 그 절대적인 위엄을 무너져 내리게 하시는 것이야.
황후마마를 의심해서 좋을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것도 대
미륵이신 폐하께서 말일세.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
된단 말일세. 더 이상 확대되어서는 아니돼. 절대로.
은부 하지만, 언젠가는 제거되어야 할 왕건이옵니다. 폐하께오서
왕건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나름대로 뜻 있는 일이
아니옵니까?
종간 이렇게는 아니야. 서로가 헐뜯고 상처가 나서는 안돼. 다른
방법을 써야지. 폐하께서 손상을 입으면서까지는 아니된다는
말일세.
은부 그렇기는 하옵니다만은....
종간 이렇게는 안돼.....
씬8 왕건의 집 외경
씬9 동 집 사랑
왕건이 집에서 정무를 보고 있다. 쌓인 서류들을 뒤적이고 또 다른 장
계들을 보고 뭔가를 적고 바쁘다. 그때 태평의 소리가 들려온다.
태평 (E) 주군, 태평이옵니다.
왕건 들어오게.
태평이 들어와 예를 올리고 앉는다.
태평 댁에서도 정무를 보시옵니까? 쉬실 때는 좀 쉬시오소서.
왕건 시중 자리는 쉴 틈이 없는 자리일세. 조정의 시중부에 나가
일을 보는 것보다 여기서 하는 것이 더 능률이 좋은 것 같네,
허허허.
태평 (눈치 보다가) 주군?
왕건 왜 그러는가?
태평 폐하의 조사가 아주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사옵니
다.
왕건 조사라니? 무슨 조사?
태평 주군에 관한 일 말이옵니다. 조정에 이미 폐하께서 하시는 일
들이 소리소문 없이 쫙 퍼졌사옵니다.
왕건 ......?
태평 일단은 황후마마와 주군께서 정혼을 하셨던 일에 대하여 세부
적인 조사에 들어간 것 같사옵니다. 원봉성령 최응이가 강장
자 집을 다녀간 것도 그 때문이었거니와 내원 그 사람도 폐하
께 그 일로 불려 들어갔다 하옵니다.
왕건 (생각하다가) 자네는 어떻게 그렇게 소식들이 빠른가?
태평 한다 하는 신료들이면 다 궁궐에 선을 넣어놓고 있사옵니다.
하물며, 소인이 시중어른이신 주군을 모시고 있사온데 황궁
소식에 어두워서야 되겠사옵니까?
왕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게. 사람이 스스로
진실 되고 죄가 없으면 결국은 다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있는 법일세. 폐하께서도 곧 아시게 될 게야.
태평 지난 밤에는 폐하와 황후마마 양위분이 대전에서 함께 밤을
보내셨다 하옵니다.
왕건 .........
태평 그 또한 근래에 없던 일인지라 아마도 지난 일을 추궁하지 않
으셨는가 하는 생각이 드옵니다.
왕건 할 일이 많이 쌓였네 그려. 자네도 일을 시작하게.
태평 (더욱 더 다가가며) 주군, 석총대사의 얘기도 저대로는 절대
로 끝나지 않사옵니다. 이미 알 사람이 다 알았사옵니다. 경
우에 따라서는 아주 위험하게도 변할 상황이옵니다. 더군다나
내원 그 사람이 지금은 조용히 있지만 결국은 그것으로 무기
삼아 주군께 다가올 것이옵니다.
왕건 그렇다고 해서 어찌해 볼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지금
도 석총대사가 준 간자는 나를 보고 세상을 바르게 하는데 일
조를 하라는 뜻으로 알고 있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미
륵이 무엇인가? 세상을 구하는 부처일세. 그것을 왜 반역시
하고 대역죄인으로 모는가? 내가 생각하는 미륵은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것과 다르네. 누구든 세상을 편안히 할 수 있으면
다 미륵이야. 나는 죄짓지 않았네. 도대체 무엇이 무서워 떤
단 말인가? 좀 더 떳떳하게 세상을 보게, 태평이.
태평 (답답하다) 하오나, 주군, 지금 위험이 주군 곁으로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느끼지 못하시옵니까?
왕건 별 일 없을 것일세.
태평 이 철원은 위험하옵니다. 생전에 폐하께서는 주군만은 의심하
지 않으셨던 분이셨사옵니다.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옵니다.
왕건 일하고 싶지 않거든 나가서 바람이나 쐬게. 봄 날씨가 아주
그만이라면서?
태평 (답답하다) 주군, 이러실 때가 아닌 것 같사옵니다.
왕건 사람하고는...(다시 일을 본다) 곧 아우들이 올 때가 되었네.
찻물이나 보게나, 허허허.
씬10 동 집 안채
두 여인이 걱정스럽게 서로를 보고 있다.
수인 큰 형님, 겉으로 말은 안하지만 모두들 서방님에 대한 걱정을
하고들 있는 것 같사옵니다. 태평군사도 그러하고, 다른 분들
도 그렇고...
유씨 그러게 말일세. 서방님께서도 요즘 들어 표정이 밝지 못하시
네.
수인 형님께서 말씀좀 해보시오소서. 대체 황후마마와 서방님 사이
에 무슨 일이 있었사옵니까?
유씨 이런 사람하고는, 무슨 일이라니? 그 무슨 불경스러운 말인
가? (한숨) 그저 어른들이 어려서부터 정혼을 약속했었다더
군. 그리고,
수인 그리고, 무엇이옵니까?
유씨 실제로 두 분이 좋아하신 것 같네. 허지만 그것 뿐이셨네. 좋
아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될 수는 없지 않는가?
수인 세상에...세상에 정말로 두 분이 그러하셨사옵니까?
유씨 지금은 우리들의 서방님이실세. 더 이상 경망스러운 말은 입
에 올리지 마세나. 나는 다른 것이 더 궁금하이. 도대체, 석
총스님은 우리 서방님과 무슨 사이시길래 죽은 아지태가 말을
꺼냈을까?
수인 그 이야기는 제가 아옵니다.
유씨 자네가 알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두 분 사이에....?
수인 세상에 발설해서는 아니되는 아주 큰 일이 있었사옵니다.
유씨 뭐라?
수인 석총스님이 예언을 한 일이 있었사옵니다. 우리 서방님께서
새로운 미륵으로 우뚝 서실 것이라고 말이옵니다.
유씨 (기겁하며) 새로운 미륵? 이 사람아 (주위 두리번 거리며) 어
떻게 그렇게 무서운 말을...?
수인 사실이옵니다, 형님. 석총스님이 일부러 충주까지 오시어서
절을 하면서 하신 말씀이옵니다.
유씨 절까지?
수인 예, 형님.
유씨 엄청난 소리일세. 이 말을 누구에게 또 하였는가?
수인 어떻게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있겠사옵니까? 형님께 처음 하옵
니다.
유씨 다시는 입밖에 내지 말게. 서방님께 위험한 말일세. 알겠는
가?
수인 예, 형님.
씬11 다시 동 집 사랑
왕건과 태평, 유금필, 능산, 왕식렴, 왕신 형제가 차를 마시고 있다.
왕건 금필 아우와 식렴 아우가 내일 떠난다고?
두사람 예...
왕건 환선길 장군이 총사로 되었네. 환장군은 성격이 우직하고 좀
다혈질이지만 사람은 좋아. 자네가 부총사니 잘 모시게.
유금필 예, 주군. 어차피 소인보다도 경륜이 높은 많은 장수들이 함
께 가옵니다. 좋은 경험을 쌓고 오겠사옵니다.
왕건 식렴 아우는 장수로써가 아니라 문신의 자격으로 가는 것이
야. 그곳의 인심과 사정을 잘 헤아리고 살펴서 오게나.
왕식렴 예, 형님.
능산 금필 형님이 가신다하니 당분간은 좀 허전할 것 같사옵니다.
주군, 철원의 사정이 별로 밝지 못하옵니다. 우리도 그만 나
주로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왕건 허허, 사람하고는. 나주라니? 나는 이 나라의 시중일세. 나라
전체를 맡고 있는 사람을 보고 어떻게 나주 한쪽에만 가 있으
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겐가?
능산 그런 것이 아니오라, 그것에 형수님이 계시지 않사옵니까?
왕건 아직 이곳에 할 일이 많아. 세금관계도 그렇고 저 넓은 전선
도 관리해야 하고 수많은 제도도 처음부터 다 다시 손을 보아
야 해. 자네들이나 잘 다녀오고, 할 일을 하게.
모두들 .........
왕건 간밤에는 그렇게 비가 쏟아지더니, 지금은 아주 날씨가 좋다
고 들었네. 자, 어서들 그만 가보게. 나는 바쁘이.
왕건은 다시 서류를 본다. 가신들은 서로를 보며 답답한 표정이다. 디
졸브되면........
씬12 유천궁의 집 외경
씬13 동 집 사랑
유천궁과 박지윤, 박질, 원극유가 모여 있다.
박지윤 (걱정스럽게) 황제께서 왕시중의 지난 일로 하여 아주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습니다.
박질 그 이야기는 절대로 꺼내서는 아니되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황실의 위엄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부끄럽고 추하고 말입니
다.
원극유 뭐, 추할 것까지는 없지만은 아무튼 좋은 결과는 나올 수가
없는 이야기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유천궁 나야 이미 조정에서 은퇴를 하였고, 집이나 지키는 사람이올
시다. 그러나, 답답하기는 답답합니다. 옛날에 폐하 같으셨다
면 그런 일 정도는 허허 웃고 지나가셨을 겝니다.
박지윤 그렇고 말고요. 하지만, 언젠가 이 일을 짚고 넘어가리라 하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습니
다. 우리 패서일대가 다 아는 정혼 이야기였습니다. 결국은
아지태도 알았고, 오늘 이렇게 시끄럽게 된 것입니다. 아지태
그 자가 폐하의 그 의심병에 기름을 부었어요. 허허, 이것
참.. .
유천궁 그럴수록 나라의 위신만 깎이는 일이올시다. 광평성의 원로대
신들이 앞서서 막아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정혼 이야기가 있었고, 그것이 되지 않았고, 서로
다른 곳으로 시집 장가간 그런 이야기이올시다. 이걸 부풀리
고 키워서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허허, 세상 참....
박질 그래도, 생각할수록 왕시중이 참으로 의연하십니다. 전혀 흔
들림이 없어요. 다른 사람 같아서는 벌벌 떨며 도망쳤을 겁니
다. 암요..
씬14 황궁 대전 안
궁예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혼자 몇 번씩 한숨을 쉰다. 그리고,
도리질한다.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궁예를 최응이 저만큼에서
보고 있다. 그렇게 아주 오랜 궁예의 갈등이 지나친다.
궁예 (E) 쓸 데 없는 시간을 보내고 말았어. 어리석은 짓을 하였
어. 다 술 때문이야. 술 때문에 다시 황후를 안고 말았어.
최응 .......?
궁예 (계속 도리질,E) 내가 왜 이렇게 약해져 버렸는가? 왜 이렇게
형편없이 되었는가?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아니지. 처음
먹은 생각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야 해. 암, 이렇게 물러설
바에는 처음부터 요란도 떨지 말았어야 했어. 이미 시작된 일
이란 말이야.
궁예는 혼자 그렇게 생각하며 도리질을 한다. 최응은 그런 궁예를 본
다.
궁예 그렇지. 내가 최응이 너를 불러 놓고 그냥 앉아만 있었구나.
최응 예, 폐하.
궁예 차는 마셨느냐?
최응 예.
궁예 허허, 그래. 새벽에 비도 오고 술 생각도 나고 해서 조금 마
셨다.
최응 잘하셨사옵니다, 폐하.
궁예 황후가 나와 함께 내내 있다가 새벽에 갔어. (사이) 여러 가
지를 물어 본다는 것이 그만 술 때문에... 일이 묘하게 되어
버렸다. 많은 것을 물으려고 하였는데 말이다.
최응 폐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대답이 같았사옵니다. 그만 이
일은 잊고 물리시오소서.
궁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모든 일이 다 그래. 한 번 의심이 들
면 그것은 뿌리를 뽑아야 하는 것이야. 나도 벗어나고 싶어.
황제인 내가 이런 일에 오래 붙들려 있고 싶지는 않아. 허지
만, 생각해 봐라. 누구보다도 내가 아끼는 아우야. 지금까지
믿고 살아온 아우야. 그 아우가 절대적인 일 두 가지에 관계
되어 있어.
최응 .........?
궁예 하나는 참람하게도 유일무이한 나 미륵을 참칭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황제의 안해와 불경스러운 과거가 있었다는 것이
야.
최응 모두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판명이 나고 있사옵니다. 아지태
의 농간이옵니다, 폐하.
궁예 농간, 농간.... 아지태....!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있어. 하
지만,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알았어야 할 일들
이었어.
최응 ........
궁예 아무도 그 일을 미리 말해 주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지금
확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만 몰랐던 그 일들을 말이야.
아무래도 말이야.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직접 강장자
를 보아야겠다.
최응 대부 강장자를 말씀이옵니까?
궁예 그래, 내가 직접 묻는다면 다 말을 해줄 것이야.
최응 이미 신이 다녀왔사옵니다.
궁예 나하고 너는 다르다.
최응 강장자는 가택에 연금 중이옵니다.
궁예 상관없다. 불러라. 그리고, 아지태의 일을 다시 조사해 봐야
겠다. 네가 나서거라. 알겠느냐?
최응 이미 끝난 사건을 또 조사하시옵니까?
궁예 그렇다. 지금까지의 기록을 모두 가져오고, 의형대인 관리들
을 풀어서 죽은 석총이의 행적도 모두 조사하여 올리라 하거
라.
최응 .......
궁예 그리고, 또 있다. 아무래도 아니되겠다. 내가 관심법으로 보
아야겠어. 왕시중에게 맡겨 놓았던 그 법봉을 다시 가져오라
하라.
최응 법봉을 말씀이옵니까, 폐하?
궁예 그래, 가져오라 하라. 이제부터는 내가 나서야겠다. 내
가.....
씬15 인서트/ 황궁마당
내군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어디론가 나가고 있다. 금대와 장일들의
군대들이다. 황궁 안은 소란스럽다.
씬16 그 황궁 마당 일각
최응이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내군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다. 그때, 저
만큼 백씨가 시녀들과 함께 들어오다가 최응을 본다. 서로 묵례를 한
다.
백씨 원봉성령이 아니십니까?
최응 예, 대부인마님. 대부어른께서는 댁에 계시옵니까?
백씨 예, 그건..... 왜 물으십니까?
최응 폐하께서 대부어른을 모셔오라 하셨사옵니다.
백씨 (파랗게 질리며) 폐하께서 말씀입니까? 아니, 지난 번에 원봉
성령이 다녀가시지 않았습니까?
최응 직접 보시겠다 하옵니다. 그럼......
백씨 세상에...아이구, 세상에... 그럼 이 일이 어떻게 되는 것인
고....폐하께서 직접..... 보시겠다고? 아이고, 세상에....
씬17 내원
종간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번쩍 들며 묻는다.
종간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폐하께서 내군을 움직이셨다?
은부 그러하옵니다. 원봉성령 최응을 시켜서 지난 아지태의 사건을
재조사하고 가택연금 중인 강장자를 소환한다 하옵니다.
종간 뭐라고? 이미 모든 게 종결된 사건들이 아닌가? 그것을 다시
폐하께서?
은부 그렇다하옵니다. 왕시중에게 내렸던 법봉도 회수하신다 하옵
니다.
종간 허허,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 가는고...? 폐하께서 도대
체 어찌 하시려고......
은부 기회이옵니다, 내원어른. 차제에 왕건이를 치시오소서. 폐하
께서 나서신 일이옵니다.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사옵니까?
종간 못난 소리.... 이것은 기회가 아니야. 기회라는 것은 그 주변
과 좌우 정황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이야. 지금 폐하께서
하시는 일은 그렇지가 못하시네.
은부 ........
종간 이럴 때에 왕건이를 치다가는 오히려 그 칼날이 우리에게 되
돌아와. 상대를 칠 때에는 세상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조건
이 따라야 해. 무리수를 두게 되면 그것이 거꾸로 돌아간단
말일세. 큰 일이로고.. 이 일을 어이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서신 게 아닌가?
씬18 황후전
연화가 놀라서 백씨를 보며 묻고 있다.
연화 폐하께서 아버님을 직접 부르셨단 말입니까?
백씨 그렇다 하옵니다, 황후마마. 최응 그 사람이 해 준 말입니다.
연화 ........(어쩔 줄 모른다) 지난밤에는 그토록 따뜻하시더
니... 참으로 그 마음이 조석변입니다. 환후가 깊지 않으시고
야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정상적으로는 차마 하실 수 없는
일입니다.
백씨 어쩌면 좋사옵니까, 황후마마? 폐하께서 직접 보시자 하신다
면 큰 일이 아니옵니까?
연화 어찌하겠습니까? 이미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님.
백씨 아이고, 아이고.... 왜 이렇게 자꾸 액운이 겹쳐드는고? 지난
번에 최응 그 사람이 우리 집을 다녀가고 나서 아무래도 찜찜
하길래 황후마마를 뵈러 왔는데 일이 또 이렇게 변하다니...
세상에....
연화 ........(한숨)
연화의 한숨으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씬19 강장자 집 외경
장일이 내군들과 함께 대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이어서 문이 열린다.
장일과 내군들이 하인들을 밀치며 마당 안으로 들어선다.
씬20 동 집 안
강장자가 방에서 툇마루로 나서다가 놀라서 장일들을 본다.
강장자 아니, 그대는 내군의 장부장이 아닌가?
장일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의 영이시오니, 지금 즉시 황궁으로
가셔야겠사옵니다.
강장자 내가 말인가? 나는 지금 연금 중인데....
장일 뫼셔라!
군사들이 대답하며 달려들어 강장자를 끌어 내린다.
강장자 아이고, 이 사람들아. 영문이나 알려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가? 뭐가 어떻게 된 것이야?...
아이고....왜 이렇게 인생 말년이 고단하고 번잡스럽단 말인
가? 아이고....
장일 빨리 뫼셔가라.....
그들 그렇게 집 안에서 밖으로 나가고 있고....
씬21 황궁 어느 전각 안(의형대)
최응이 입전과 신방을 보고 있다. 그리고, 수북한 기록들을 본다.
최응 이것이 아지태 사건의 기록입니까?
신방 그렇소이다.
최응 기록 모두를 다시 올리라는 폐하의 분부십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는 오래전 법회 때 죽은 중 석총이라는 자와 그가 속했
던 종파에 관해서 모든 것을 조사해 올리라는 영이 내려졌습
니다. 속히 알아봐 올리도록 하시오.
입전 (떨면서)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는 것이오이까?
최응 아지태가 처형을 받으면서 내뱉은 말들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
이올시다. 두 분께서도 아마 금명간 다시 소환되실 것입니다.
입전 (두렵다) 그... 그렇다면 이번에는 폐하께서 주관하시는 국문
입니까? 관심법을 다시 쓰시게 되십니까?
최응 그럴 수도 있겠지요.
입전 과...관심법을 쓰신다....? 과, 관심법.....
두려운 그들의 표정에서....
씬22 왕건의 시중부 외경
금대 (E) 폐하의 영이시옵니다, 시중어른.
씬23 동 시중부 안
왕건과 태평, 그리고 많은 관료들이 보고 있다. 금대가 내군들을 이끌
고 오만한 모습으로 말하고 있다.
금대 황제폐하께오서 왕시중께 내어 드렸던 법봉을 다시 뫼셔오라
하셨사옵니다.
왕건 ........?
금대 다시 말씀드리옵니다, 시중어른. 폐하께서 법봉을 뫼셔오라
하셨사옵니다.
태평 법봉은 폐하의 상징이시오. 그리고, 법을 나타내는 징표요.
그대를 통해 거두신다니 믿기가 어렵소이다.
금대 우리는 내군이오. 가장 측근에서 폐하를 모시는 황군이오. 뭘
믿지 못한다는 말씀이오? 어서, 법봉을 내어주이오.
왕건 내어 드리게.
태평 시중어른, 폐하께서 무슨 말씀이 있으실 것이옵니다.
왕건 어서, 내어 드리게.
태평 (할 수 없는 듯) 법봉을 내어 드리게.
관리들이 한 쪽에 모셔져 있던 비단에 쌓인 법봉을 내어 주면 금대의
군사들이 받아 든다. 그리고, 예를 올리고 돌아서서 가버린다.
태평 일이 자꾸만 커지고 있사옵니다. 법봉을 거두어 간다는 것은
폐하께서 직접 전면으로 나서시는 것을 뜻하는 것이옵니다.
조심하오소서.
왕건 .......
씬24 대전 복도(밤)
강장자가 떨며 눈치를 보며 들어오고 있다. 대전내관이 알린다.
대전내관 폐하, 대부께서 드셨사옵니다.
궁예 (E) 뫼셔라.
씬25 동 대전 안
강장자가 떨며 안으로 들어온다. 예를 올린다.
강장자 폐하, 찾아 계셨사옵니까?
궁예 그렇소이다, 장인어른. 앉으시구료. 술이나 한 잔 하십시다.
강장자 예, 예, 예, 폐하...... (앉는다)
궁예 그래, 바깥 출입을 삼년 간 못한다 들었는데 집에서만 계시는
재미가 어떻소이까?
강장자 많이 근신하고 있사옵니다.
궁예 근신이라? 좋은 말이오. 사람은 때때로 근신이 필요해. (술
주며) 한 잔 하시구료. (받지를 못하자 버럭) 잔, 받으란 말
이오.
강장자 예, 예, 폐하.....(잔에 술을 받는다)
궁예 마시시오.
강장자 예, 예.... (마신다, 독하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궁예 내가 왜 최응이를 보냈다가 다시 보자고 한 줄 아십니까?
강장자 잘... 모르겠사옵니다, 폐하.
궁예 모른다...허허허, 모른다?
강장자는 파랗게 얼어 있다. 그때 금대의 소리가 들려온다.
금대 (E) 폐하, 신 내군부장 금대이옵니다. 시중부에서 법봉을 뫼
셔왔사옵니다.
궁예 오, 그래? 가져오너라.
금대 (E) 예, 폐하 (들고 들어온다)
궁예 시중부에서 가져오는 것이냐?
금대 예, 폐하.
궁예 오냐, 이리 주거라. 그리고, 가보아.
금대가 대답하며 나간다. 궁예가 비단에 쌓인 그 법봉을 풀어 본다.
강장자는 더욱 질린다. 궁예는 그것을 계속 매만진다.
궁예 자, 장인어른, 우리 좀 더 솔직하고 시원하게 말해 보십시다.
강장자 무... 무엇을 말이옵니까?
궁예 지난 날 황후의 정혼에 관해서 다시 한 번 말해주시구료.
강장자 폐하, 그 일은 이미 있는 그대로 말씀을 전해올렸사옵니다.
통촉하시오소서.
궁예 사실대로 말을 해달라고 했어.
강장자 사실이옵니다. 거짓이 아니옵니다. 굽어 살피시오소서.
궁예 (법봉으로 탁자를 박살내며) 사실을 말하란 말이야. 사실
을....!
강장자 더 이상 드릴 말이 없사옵니다. 사실이옵니다, 폐하.
궁예 모두가 나를 속이고 있어.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어.
내가 관심법을 쓰면 장인어른은 죽소이다. 죽어....
강장자 사....살려주시오소서, 폐하. 신은 더 이상은 아는 것이 없사
옵니다.
궁예 나는 다 알아낼 수 있소이다. 아무도 나를 속이지 못하오. 아
시겠소이까, 장인?
강장자 예, 예, 폐하......
궁예 한 번 더 기회와 시간을 주겠소이다. 한 잔 더 하시고....
자, 드시오.
강장자 예, 예, 폐하...... (떨며 술을 마신다)
궁예 오늘 밤은 이 황궁에서 주무시구료. 옥사에 들어가 조용히 내
게 하실 말씀을 잘 정리해보시구료. 아시겠소이까, 장인? 아
느냐고 물었소이다.
강장자 예, 예, 폐하.
궁예 목숨을 보전하시구료. 내 관심법은 예외가 없소이다. 예외가
없어!
씬26 내원
종간이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다.
종간 (E) 잘못하고 계시는 게야. 일이 여기까지 오면 아니되는
데.... 이걸 어찌하나...어디서부터 수습을 해야 하나... 허,
이거 참....
씬27 다시 동 대전 안
궁예가 독이 오른 모습으로 생각에 잠겨 있고, 그리고 법봉을 닦고 있
다. 최응이 보고 있다.
궁예 다들 말하게 되어 있어. 내가 관심법을 쓰면 누구든 다 이실
직고를 하게 되어 있어. 암...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기록을 보며) 이것이 다 아지태에 관한 기록이란 말이지?
최응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석총이와 그 일당들에 관한 조사는 어찌되었느냐?
최응 이미 관리들을 보내어 샅샅이 살펴 아뢰라 하였사옵니다.
궁예 그래, 그래야지. 이 모든 것은 내가 다시 시작하고 결론을 낼
것이다.
최응 신이 한 말씀 아뢰겠사옵니다, 폐하.
궁예 최응이 네가? 생전 말이 없는 네가 할 말이 있다? 해보거라.
최응 신은 폐하의 유일한 형제분이신 왕시중이 폐하의 의심을 받는
것에 대하여 깊이 우려하옵니다. 형제분이시옵니다, 폐하.
궁예 그런데?
최응 이쯤에서 모든 것을 덮으시고 어여삐보시옵소서, 폐하. 모두
가 원하는 일이옵니다.
궁예 그래? 이것아, 그 말은 백 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이
리 서두르는 것은 바로 그 아우를 이 세상에서 떳떳하고 편하
게 해주려는 것이다.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편하게 말이다.
아우가 편하면 바로 내가 편한 것이니까 말이다. 사정과 전모
를 파악하는 대로 국문을 열 것이다. 네가 그것을 준비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씬28 왕건의 집 사랑
왕건이 생각이 많다. 그저 한숨만 쉰다. 태평이 자꾸 재촉한다.
태평 주군,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드옵니다. 환후가 깊은 황제시옵
니다. 무슨 일이 어떻게 비약될지 아무도 모르옵니다. 강장자
가 다시 붙들려 갔고, 주군께서 평결을 내리신 아지태 사건을
재조사한다 하옵니다. 석총 대사에 관한 일도 다시 조사하라
는 영이 떨어 졌다 하옵니다.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주군, 큰
폭풍이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왕건 .........
태평 대비를 하셔야 하옵니다, 주군.
왕건 ........
씬29 나주 관아 외경 (낮)
씬30 동 관아 안
오씨가 다련군과 마주해 있다. 생각들이 많다.
오씨 아버님, 서방님께서 위급하시옵니다. 어떻게든 우리가 손을
써야되지 않겠사옵니까?
다련군 우리가 여기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이냐?
오씨 서방님께서는 그 동안 잘도 버티어오셨사옵니다. 이미 폐인이
되신 황제께서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시고 또한
잡으셨사옵니까? 이제 그 화살이 서방님께도 날아들고 있는
것이옵니다.
다련군 글세, 그걸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느냔 말이냐?
오씨 (한참 생각하다가) 그러길래, 서방님께서 시중으로 가실 때
소녀가 걱정하지 않았사옵니까? 아직 시중벼슬은 위험하다고
말이옵니다. 그것이 사실이 되었사옵니다. 폐하께서 비로소
서방님을 폐하의 경쟁상대로 보시기 시작했다는 것이옵니다.
다련군 (한숨 지으며) 내가 황제라 하더라도 모든 것들이 의심하게
되어 있더구나. 황후마마와 정혼을 했던 사실이 분명한데, 폐
하만이 모르고 계셨다. 또,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미륵을 가
장 잘 안다는 종파의 큰 고승이 죽으면서 왕시중을 만났다는
것 또한 쉬쉬하면서 감춰져 왔다는 것이다. 어찌 의심이 아니
들겠느냐?
오씨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나서서 그 화를 막아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다련군 좋은 생각이라도 있느냐?
오씨 (한참 생각하다가) 이곳에 총관인 김언장군을 불러서 의논하
시지요.
다련군 김언 장군을?
오씨 서둘러야 하옵니다. 지난 번에 언젠가 소녀가 말씀드리지 않
았사옵니까? 이곳 나주는 특별한 곳이옵니다. 백제를 끌어 들
여 핑계를 세워야 하옵니다.
다련군 백제를....?
오씨 예, 아버님. 백제군이 다시 이곳을 넘본다고 핑계를 대고 서
방님을 내려오시게 하는 것이옵니다. 총관 김언 장군과 의논
하시오소서. 방법이 있을 것이옵니다, 아버님.
다련군 그래, 일리가 있는 말이다. 백제라...백제라...
비로소 끄떡이는 다련군의 표정에서....
씬31 백제 황궁 외경
씬32 동 황궁 어느 뜰
박씨와 고비, 그리고 견훤, 능환이 함께 모여 금강이 무예 수업을 하
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어린 금강이지만 제법 제몫을 하고 있다.
견훤 (한참 보다가) 우리 금강이가 이제 제법 사내다운 티가 나는
구나. 그래, 어릴 때 잘 단련을 받아야 커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야. 세월은 참 빠른 것이야. 어느 덧 금강이가
저렇게 컸어. 아니 그렇소, 승평부인?
고비 황공하옵니다, 폐하. 폐하께서 늘 많은 배려를 해주시어, 저
렇게 꿋꿋하게 커가는 것 같사옵니다.
능환 위로 두 태자마마도 그러하시고, 또한 금강태자님도 폐하의
용맹을 쏙 빼어 닮으신 것 같사옵니다. 하오나, 이럴 때 일수
록 무예 수업도 중요하지만, 글을 읽으시는 것도 게을리하셔
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박씨 (별로 반갑지 않다) 글을 읽는 것도 그렇고 무예를 익히는 것
도 그렇고 다 그만큼 세월과 그릇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 어린 금강입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시는 것 같습니
다.
견훤 그래도 꿈이 커야 이루는 것도 큰 법이오. 황실의 자식들은
모두가 남보다는 뛰어나야 해. 그만큼 용감해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말이야. 그래야 세상을 제 형들과 더불어 다
스릴 수 있지 않겠소?
박씨 지금 백제국을 폐하께오서 홀로 다스리시옵니다. 다시리는 사
람은 하나면 족하지 않겠사옵니까? 이미 태자들이 장성했사옵
니다.
고비 .........(어쩔 줄 모르고)
견훤 이렇게 원, 도대체 황후는 무슨 얘기를 하고 계시는 게요? 어
린 아이가 대견하게 자라고 있으면 칭찬을 해주지 못할 망정,
원..쯧쯧...이보시게, 이찬?
능환 예, 폐하.
견훤 파진찬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능환 태봉국에 관한 일로 중요한 인물을 만나고 있다 하옵니다.
견훤 오, 그 문제 말인가? 그래야지. 그 문제도 서둘러야 할 일이
야.
그러면서도, 견훤은 계속 금강을 본다. 무예사부들의 지시에 따라 금
강은 계속 검을 휘두르고 있다.
씬33 동 황궁 어느 전각 안
최승우가 어느 승려 하나와 마주해 있다.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 옆에
공직이 함께 앉아 있다.
최승우 이름이..?
도우 도우라하옵니다.
최승우 도우라.... 어느 종파에 속해 계시는 스님이신가?
공직 세상을 많이 떠돈 스님이신 것 같습니다. 무진주 지훤장군이
천거했으니, 안심하고 보십시오, 파진찬.
최승우 (끄떡이며) 출가한지는 얼마나 되셨소?
도우 이십여년이 다되어 갑니다. 물론, 일정한 거처가 없는 땡초올
습니다. 그러나, 불가의 사정들은 이집 저집 훤하옵니다. 무
료하던 차에 파진찬께오서 여러 경로를 통해 은밀히 사람을
찾는다 하시어 왔사옵니다.
최승우 그대는 저 무진주 쪽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도우 그러하옵니다. 가족이 모두 그곳에 있었고, 형제가 셋이나 수
달장군 휘하에 있었는데 모두 죽었사옵니다. 그 중 제 바로
밑에 아우는 수달장군의 직계 부장이었사옵니다.
최승우 그랬구먼.... 그랬어. 그래서, 자원을 한 것이로구먼. 태봉국
을 가는 일은 아주 위험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오.
도우 그러길래 자원한 것이옵니다. 왕건의 군사들에게 제 아우들이
모두 죽었사옵니다. 그리고, 평소 사모해 온 수달장군도 저들
이 끌어다 죽였사옵니다. 세상 살 낙을 잃은 소인이옵니다.
최승우 (다시 살펴본다) 무진주에 성주로 나가 있는 지훤 장군이 천
거해 보냈다 하니, 일단 기대가 크오이다.
도우 소인이 목숨을 버려야 할 일이란 무엇이옵니까?
최승우 쉽지 않은 일이오. 저들의 조정을 뒤집어 주는 일이오. 아주
큰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 백제국에 이득
이 되니까 말이오.
도우 구체적으로 무엇이옵니까?
최승우 내가 관리하는 여러 조직 중에는 상당한 첩자들이 포함되어
있소이다. 그들은 신라에도 가 있고, 또한 태봉국에도 가 있
소이다. 물론, 태봉이나 신라도 숱한 첩자들을 움직이고 있지
요. 그들이 지금도 모종의 일을 극비리에 알아보고 있소이다.
태봉국의 시중 왕건과 그곳의 궁예왕에 관한 일이지요.
도우 듣고 보니, 상당히 묵직하고 큰 일 같사옵니다, 파진찬 어른?
최승우 그렇소이다. 태봉국이 지금 상당히 미묘한 일로 들끓고 있소
이다. 그 끓고 있는 불에 그대가 가서 기름을 끼얹어 주는 일
이오.
도우 .............
최승우 물론, 목숨은 버려야 하오. 그 옛날에도 내가 관리하는 낭인
집단을 보내서 궁예왕을 없애려 한 적이 있었소이다. 비록 죽
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일로 하여 엄청난 덕을 보았
소이다. 그런 일을 한 번 더 해보자는 것이오. 아시겠소이까?
도우 옳은 일 한 번 하고 죽기가 소원인 사람이옵니다. 명을 내리
시오소서.
최승우 고맙소이다. 그?다면, 곧 태봉국으로 가주시오. 그곳에 있는
첩자와 비밀리에 만나시면 할 일을 알게 될 것이외다. 보람있
는 일이 될 것이오. 잘하면 역사에 남는 일 말이오.
도우 역사 따위는 필요 없사옵니다. 어떻게 죽느냐가 남은 일이옵
니다.
최승우 허허허, 대단하시오. 아주 영광스러운 결과가 나올 것이외다.
도우 하나만 더 묻겠사옵니다. 태봉국의 왕건이를 죽이는 일이옵니
까?
최승우 잘하면 왕건이도 죽이고, 궁예왕도 죽이고 태봉이라는 나라
전체를 태워 버릴 수도 있는 일이올시다, 허허허.
그런 최승우의 표정에서......
< 105회 끝>